...사적인 이유 때문에 일본 지진 및 방사능 누출에 관해 관련 기사를 뒤져 보던 중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22074.html
이런 기사를 발견했다. 그리고 평소 자주 가던 모 게시판은 '섬숭이 새퀴들 꺼져' '휴머니즘도 좋은데 걔들이 지금까지 뒤통수 몇 번이나 쳤냐' '쓰나미 때 성금은 성금대로 받아먹고 바로 얼마 뒤 다케시마 드립치는 거 보고 뜨악했음' 등등 성토의 목소리로 끓어 올랐다. 그 와중에 누가 북한은 도우면서 왜 일본은 안 돕냐고 헛소리를 해서 한참 시끄러웠다.
그런 싸움을 지켜보던 중, 문득 의문이 들었다. 개인적 도덕과 외교적 명분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콜버그에 의하면 도덕은 1)처벌이 두려워 지키는 단계 2)보답을 원해 지키는 단계 3)대인관계를 위해 지키는 단계 4)사회 질서를 위해 지키는 단계 5)사회 계약을 위해 지키는 단계 6)도덕률 자체를 위해 지키는 단계로 나뉜다. 개인적인 차원에 있어서의 도덕성은 나쁠 게 없다. 자기 혼자 인생의 쓴 맛은 다 본 것처럼 목에 힘주고 요즘 세상에서는 도덕 따위 일일이 지켜가며 살 수 없다고 설교하는 병신들은 일단 제끼고-곧 사라질 도덕 교과목 지못미-, 여하튼 인간이 짐승과 다른 게 이성과 양심이 있기 때문이라는 지극히 당연하고 원론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그리고 보편 인권이라는 맥락에서 보자면 아무리 일본에 대해 많은 피해를 입어왔고 저간의 감정이 험악하더라도, 어쨌든 후쿠시마 주민들이 그들의 잘못에 대해 직접 댓가를 치르는 게 아닌 한 도와주는 게 도리다. 그들은 일본 정부로부터도 실질적으로 버려진 것이나 다름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도 있고.
'아무리 일본이 재수 없어도, 이로 인해 내게 돌아오는 이익이 아무 것도 없다 해도 연민이 드는 이상 도와야겠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개인적 도덕이다. 콜버그의 도덕론에서 나타나듯, 설령 작은 도움이라 할지라도 댓가를 바라지 않고 오직 선의와 양심에 의해 상대를 돕는다면 이것은 도덕적으로 온당한 행위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옆 집에 사는 일본인 가족이 어느 날 불행한 사고를 당한 것'이 아니라 '일본에서 살고 있던 일본인들이 도쿄 전력과 일본 정부의 병신 짓으로 인해 개피를 본 것'이라는 점이다. 근본적으로 이것은 일본 정부가 해결해야 할 일이고, 일본 정부는 손을 놓고 있고, 그들은 한국에 집단 이주를 타진해 왔다. 이것은 개인 대 개인의 선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국가의 외교 문제가 된다.
위에서 난 '작은 도움이라 할지라도 댓가를 바라지 않고 오직 선의와 양심에 입각하여 상대를 돕는 것'이 개인적 도덕이라고 정의했다. 그렇다면 외교에 있어서의 '명분'은 선의와 양심 같은 것보다는 상대에게 심리적 부채를 지우고 대외적으로 언론 플레이에 유리한 기반을 쌓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 ' 선전을 앞세운 유사 도덕'으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이러한 '명분'의 기저에 당연히 깔려 있는 실리에의 추구는 일단 논외로 한다). 이 도식을 이번 사건과 관련지어 단순화해서 설명하자면,
'개인적 도덕->1대 1 수준에서 순전히 측은지심과 도덕관념 때문에 실질적으로 난민이 된 일본인들을 돕는다'
'외교적 명분->국가 대 국가 수준에서 존내 병신 같은 섬숭이 새끼들은 자국민도 제대로 못 챙긴다고 까고 한국의 관대함을 강조하기 위해 그 일본인들을 돕는다'
정도가 된다. 이렇게만 보자면, 수천 수백 명도 아니고 방사능이 사람 몸 따라 전염되는 것도 아니고 고작 40명 그 까이꺼 받아주지... 하는 것도 얼핏 보기엔 그렇게 나쁜 선택지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음,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의 정치적 지형도가 지금과 달랐었더라면 그렇게까지 나쁜 선택지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나쁜 선택지다. 그것도 존나게.
지금 상황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멀게는 조선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일본과의 험악한 관계와 그로 인한 국내에서의 반대 여론이 아니다. 내가 문제삼고 싶은 것은, 이 나라는 해방 이래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된 적이 한 번도 없으며 그들의 후손이 대대 손손 이 나라의 정계와 재계에 뿌리박혀 있다는 거다. 난 정치적으로 진보일망정, 보수를 보수이게 하는 애국심이나 민족애 같은 개념도 그렇게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한나라당... ...아니 이젠 새누리당이구나. 아무튼 실질적으로 대한민국 건국 이래 단 한번도 이 나라의 권력 중심부를 벗어난 적이 없는 저 견고한 앙시엥 레짐 중심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은 '한국을 사랑하며 강한 한국의 미래를 꿈꾸는' 보수가 아니라 일제 부역을 통해 돈과 권력을 끌어 모으고 그걸 방패로 삼아 보신해 온, 교활하고 야비한 기회주의자들이다.
난 '일본이 싫다' 같은 저차원적인 이야기를 적으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일본이라는 특정한 국가가 아니라, 부당한 권위에 굴종하고 그에 투신하고 타협함으로써 부와 권력을 성취하고 스스로를 돌보는 것이 세상을 움직이는 게임의 법칙이라고 믿는 자들이 현재 한국의 권력 중심에 있다는 것이며, 그 사실은 그 자체로 게임의 법칙을 고착시키고 있다는 것이다('진보' 내에서조차도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 운운하며 타협하고는 은근슬쩍 자기 밥그릇 챙기는 행태가 보인다. 좀 벗어나는 이야기지만, 이게 바로 이 게임의 법칙이 제일 좆같은 점이다).
일본인들이 역사의식 쥐뿔도 없고 골 빈 것까진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인이라면 그래선 안 된다. '생각 없는 일본인'보다, 그 일본으로 상징되는 권위에 부수적으로 딸려 오는 소소한 이익에 눈이 먼 '한국의 기회주의자'가 더 질이 나쁘다. 그리고 이승만이 다수의 기회주의자들이 속한 대한민국 1대 국회를 연 이래로 그들은 한국의 헌정 역사 중심에서 한 번도 비껴나 본 적이 없다.
주절주절 쓰다 보니+요즘 한참 개인 사정 때문에 정줄을 놓은 채 뉴스도 제대로 안 보고 멍하니 지냈더니 머리 회전이 좀 둔해져서 논리가 좀 널뛰는데-_- 아무튼, 내 입장은 그렇다. '한국의 국익을 우선시해야 할 정치가들이 재분배도 제대로 안 될 알량한 투자 이익 때문에 굽신굽신하면서 타진안을 받아들이는 꼴 보는 건 존내 아니꼽고 자존심 상한다. 댁들은 안 됐지만 일본 내에도 비교적 안전한 곳 많으니 거기로나 꺼지쇼'.
....다시 읽어보니 논리 비약 쩐다. 고치자니 귀찮고. 최근 머리가 나빠진... ...것까진 아닐지 몰라도, 확실히 논리력은 좀 취약해진듯. ㅅㅂ 끝난 일 가지고 언제까지 찌질하게 굴 수야 없지... 다시 예전처럼 책도 읽고, 글도 자주 쓰고, 일자리도 알아보고 하면서 바쁘게 지내야지 망할.
+
지금 확인해 보니 '일본인 마을' 조성한다고 기사떴다. 국내 언론에서 공론화도 안 되고 물 밑에서 진행할만큼 했다는 게 빡침 2배. 그런가 하면 전북 도청 측은 그런 계획 없다고 발뺌하고 있다. 뭐 병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