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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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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2011.12.21
    기록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축하할 일이다.

 

며칠 전, 그 '친구'와 거리를 둬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아마도 이게 옳은 판단일 것이다.

 

 

그래도 행복하기를, 나의 친구. 아기도 건강하고, 남편과도 화목하게 잘 지내기를. 지금보다 더, 훨씬 더. 항상.

 

안녕.

 

그런 옛날 이야기가 있다. 숲 속에서, 어떤 은자가 홀로 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 이야기를 하는 것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서툴렀던 은자는 나이가 들수록 너무나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외로워졌고, 고독에 겨워 결국 미쳐 버렸다. 미친 은자는 길을 잃고 숲 속을 헤매던 아이를 만났고, 며칠 동안 자신의 오두막에서 아이를 재워주며 함께 생활하다 아이가 집과 가족을 그리워하자, 아이가 자신을 떠나는 걸 막기 위해 아이를 죽여 버렸고 죽은 아이의 시신을 끌어 안고서 이제는 헤어지지 않는다고 중얼거리며 눈물 흘렸다고 한다.

 

난 결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우정'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내가 어딘가 병적인 구석이 있다는 것을 종종 자각한다. ...이런 삶도 있는 거다. 담배가 떨어졌는데... 한 갑 사와서 피고 잘까. 

And

1)

며칠 전 원가 절감과 마케팅 기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물건을 빨리 배달한다'보다 '우리는 주문 30분 내로 물건을 배달한다'가 더 구체적이고 잘 된 사례...라고 나왔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30분 내로 도착하지 않을 경우 피자값을 받지 않는 한 피자 체인점의 경우 그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액을 배달원의 봉급에서 깎는다고 한다. 그래서 배달원은 기를 쓰고 신호등을 무시하고 과속을 해가면서 시간에 맞추려고 하고. 그 과정에서 사고가 나면 전부 배달원 잘못이 된다고 한다.

 

난 개인적으로 그렇게까지 도덕적이라거나 고결한 인간은 되지 못한다. 그 30분에 내 밥줄이 걸려 있다면, 나도 '사소한 과정 상의 문제'는 무시할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내 사소한 편의를 위해 누군가가 목숨을 걸어야 한다면 그런 편의는 누리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도 현대 사회에서 사회인이란 서비스의 향유자인 동시에 다른 누군가에 대한 서비스의 제공자이기도 하다. 방식과 정도는 다를지 몰라도 나 역시 누군가의 사소한 편의를 위해 일방적으로 중요한 무언가의 희생을 강요받아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불편을 감수하는 것은 나 자신을 지키는 방편이기도 하다.

 

편의를 누리면서도 위험 부담은 피하고 싶다면 피자 배달 따위 할 필요가 없는 '위너'가 되면 된다고 쉽게들 말한다. 하지만 난 애초에 소시민이고, 아마도 엄청난 부와 성공 같은 것은 평생 쌓아올리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소시민으로서 그런 위너보다는 타인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2)

같이 교육 받는 여자 사람이 있다. 왠지 눈에 밟히길래 왜 그럴까 생각해 봤는데... 이유를 알았다. 예전에 '친구'라고 여긴 적 있는 그 누군가와 닮았다. 

 

......아오 씨풋, 그 사람은 아무 잘못도 없긴 한데, 볼 때마다 불쾌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 사람은 나한테 아무 것도 잘못한 게 없고, 딱히 내게 좋고 싫은 감정도 전혀 없을 것이다. 예전에 그 일 역시 내 잘못도 어느 정도는 있었는데 엄한 그 사람을 볼 때마다 움찔움찔하게 된다는 것 자체가 짜증난다. 

 

그 때 그 일이 내게 있어 어느 정도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새삼 절감한다. 어쩌면 평생 낫지 않을지도 모른다. 몰라 썅, 이런 종류의 삶도 있는 거지 뭐. 두 번 살고 싶지는 않지만.

 

3)

얼마 전에 어떤 꿈을 꿨다. 지독한 슬픔에 짓눌려서 괴로워하고, 그런 내 어깨에 다른 누군가가 손을 얹고 조용히 위로하는 꿈이었다. 전에도 비슷한 꿈을 몇 번 꿨었다. 그리고 그런 꿈에서 깨면 순간적으로 열받았다가, 다음 순간 우울해진다.

 

현실에선 내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걸 알고 있는 데도 아직 가끔 그런 종류의 꿈을 꾼다는 건 내가 아직 '人間'이 되고 싶다는 미련을 완전히 떨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싸우는 꿈'을 꾸면 내가 '강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 싸움이 아무리 힘겨워도 그 상처의 아픔과 나를 둘러싼 '적'들로부터 내게 쏟아지는 적개심 속에서 나는 '강자'라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꿈을 꾸면 나약해지고, 무장을 해제당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런 꿈은 꾸고 싶지 않다.

 

4)

내일이 교육 마지막 날이다. 오늘은 조 별로 나뉘어 기업체 현장 교육을 받으러 갔다 왔다. 교육 사항과 해당 기업체에 대한 정보(연혁, 재무제표, 수상 경력, 주력 상품 등)를 PPT로 정리해 내일 발표해야 되는데... 같은 조 애들이 '형이 제일 잘 하실 거 같아요' 같은 소리를 하며 발표를 은근슬쩍 나한테 떠넘기려 하길래 약간 짜증을 냈다. 씨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있었더니 누굴 호구로 보나?

 

그냥 읽기만 하면 되는 건데 왜 나한테 떠 넘기냐, 가위 바위 보를 하거나 사다리 타기를 하거나 해서 아무나 정하면 되는 거 아니냐, 그래서 내가 걸린다면 군말 없이 하겠다고 했고... 사다리 타기를 해서 딱 걸렸다. 화를 낼까 싶었지만 내가 한 말을 깨뜨릴 수는 없다 싶어서 참았다. 뭐 애초부터 친한 놈들도 아니었지만 이런 사소한 것까지 남한테 미루려드는 꼴을 보니 정 떨어진다. 내일만 보면 끝이니 참자... 쯧.

 

 

And

교육 장소를 옮기게 되서... 우선 바뀐 장소가 어디인지 확인하고, 근처에 머물 곳을 찾아보던 중 조교(...라고 해야 되나)를 우연히 만났다. 무척 반가워하며 저녁을 사겠다길래... '나는 그런 호의를 받을 이유가 없다, 내 몫은 따로 계산하겠다'는 말을 어떻게 해야 예의 있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얼렁뚱땅 얻어 먹었다. 다음엔 내가 계산해야겠다.

그 사람은 내가 좀 껄끄러워 하는 걸 눈치챈 모양인지, 원래 자신은 동생들 챙겨주고 밥 사주고 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의심할 만한 근거는 없다. 그 말은 진심일 것이다, 아마도. 하지만 내게 있어선 별 의미가 없다. 

몇 년 전 같았으면, 나도 호의를 순수하게 호의로 받아 들이고 감사했을 것이다. 그리고 '人間'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이루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고 기대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아니다. 나는 이제 호의를 호의로만 여기고 감사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졌다.

 

오래 전에 그러했던 것처럼,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눈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당시의 내 상태는 여러 면에서 극도로 나빴던 주변 상황을 고려해도 확실히 병적인 부분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아마도 그 사람은 내게 선의를 갖고 있고, 진심으로 나를 생각해서 그런 행동을 한 게 맞을 것이다. 다만 내가 그걸 편하게 받아 들일 수 없게 되었을 뿐이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 진심과 선의를 갖는 것은 분명 중요한 거지만, 대단히 무력할 때가 있다. 난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人間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And

성공 취업 프로젝트라고 해서... 열흘 간 관련 교육 받으러 대전에 와 있다. 이런 것도 하고... 작년에 졸업자 취업률이 개판이라 학교가 부실 대학으로 선정되는 바람에 총장이 빡친 모양이다. 그러게 미리 기반 투자 좀 할 것이지 돈과 홍보에 유리한 특정 학과만 밀어줄 때부터 이럴 줄 알았다, 쯧. 

 

머물 곳이 마땅찮아 찜질방에서 지내는 중. 시설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데, 뭐만 하면 추가 요금에 무선 인터넷도 안 잡히고 오픈된 콘센트가 없다는 게 짜증난다(시설 내에 조낸 비싼 소규모 PC방이 있는 걸 보면 일부러 막아 놓은 모양이다) . 노트북이랑 핸드폰 한 번 충전하는데 1000원이라니 더러운 자본주의 같으니 망할... ...은 좀 너무 많이 나갔고, 이 찜질방이 좀 괴랄하다. 길 건너에 고시원이 있던데 거기 단기 계약을 할 걸 그랬나 씨풋. 뭐 그래도 내 돈 내고 지내는 거니 그렇게까지 불편하지는 않다. 아는 사람을 만났는데 당분간 자기 집에서 지내라고 제안하길래... 고맙지만 너무 폐 끼칠 수 없다고 거절했다. 그렇게 했다면 돈이야 굳었겠지만 조낸 가시방석일 거다. 

 

교육을 받으며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교육 과정에 있어 아무래도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한 '꿈과 비전, 열정' 같은 걸 그토록 강조하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저 일자리를 잡아 생계 수단을 확보하는데 급급해 큰 그림을 그릴 줄 모른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기업 입장에서는 꿈과 열정을 담보 삼아 값싸게 부릴 만한 말 잘듣는 사원이 필요하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 문제는 일단 제낀다).

 

내 경우에는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잘 하는 지를 알고 있다. 그러나 내게는 '그래서 구체적으로 현장에서 무엇을 익히고 무슨 일을 해야할지'에 대한 '실무적 요령'이 결여되어 있다. 대개의 다른 사람들과는 반대다. 그런 내 상황에 있어 이 교육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혼자서 삽질하는 것보다야 낫겠지 ㅅㅂ 교육비 자체는 공짜기도 하고. 담배 한 대 피우고 슬슬 자야지, 시끄러워서 어젯밤 잠을 설쳤더니 개피곤하다...  

 

 

And

옛날 옛날 한 옛날, 인종차별 나무가 있었습니다.

인종차별 나무는 마을을 굽어보는 언덕 높은 곳, 토끼풀 가득한 풀밭에 살았습니다. 낮이면 아이들이 찾아와서 사과를 달라 하곤 했습니다. 그러면 인종차별 나무는 가지를 흔들어, 닦지 않아도 빛나는 빨간 사과를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인종차별 나무가 준 사과를 먹고, 인종차별 가지 그늘에서 즐겁게 놀았습니다.

어느 날, 아이들이 새로 이사온 샘이라는 아이을 데리고 인종차별 나무에게 놀러 왔습니다.

"샘한테도 사과를 주세요." 작은 소녀 하나가 부탁했습니다.

"안 되겠는데. 쟤는 흑인이잖아." 나무가 말했습니다. 아이들은 매우 놀랐고, 나무에게 화를 내었습니다. 그래도 나무는 사과를 주지 않고, 오히려 샘을 깜둥이라고 불렀습니다.

아이 하나가 말했습니다. "인종차별 나무가 이렇게 인종을 차별할 줄은 몰랐어." 아이들은 그제서야, 인종차별 나무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은 이런 태도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은 샘이 사과를 못 받는다면 자기들도 사과 따위는 필요 없다며, 그 뒤로 인종차별 나무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인종차별 나무는 매우 고독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몇 주를 혼자 보내다가, 나무는 클로버 풀밭 건너편에서 아이 하나가 연을 날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얘야, 사과를 좀 줄까?" 나무가 간절하게 물었습니다.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ㅈㄲ 이 나치 ㅅㄲ야."

인종차별 나무는 마음이 아주 불편했습니다. 비록 인종차별은 하지만, 그렇다고 히틀러의 파쇼 사상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인종차별 나무는 이제부터 흑인 아이들에게도 사과를 주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인종을 차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계속 그랬다가는 백인 아이들에게 계속 따돌림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사회는 그렇게 진보했습니다.

- 알렉산더 블레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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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는  http://www.tumblr.com/tagged/the-racist-tree

"인종차별은 하지만, 히틀러에게 동조하는 건 아니라구요!"

저렇게 말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엊그제 친구가 조감독과 연출을 맡은 독립 영화 <줄탁동시>를 보고 왔더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이 영화에 대해서도 몇 줄 쓸까 했는데... 생각이 잘 정리가 안 된다, 좀 난해하기도 하고. 오랜만에 얼굴도 볼 겸 직접 물어볼까 싶기도 한데 연락이 안 된다. 흥.

And

작년에 결혼한 친구 생각이 났다. 그 친구가 예전에 가져온 소설을 읽었을 때 난 '남편과 요즘 관계가 별로 좋지 않은 모양이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위로해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당시 나는 내 문제만으로도 힘겨웠고, 오래지 않아 그 친구는 당시 남편과 이혼했다. 그리고 작년 말에 재혼했다.

내 가장 큰 문제는 아마도 그것일 것이다. 이기적이라는 것. 분명히 상대방도 나름의 신산과 고뇌가 있을텐데,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줄 줄은 모르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기만을 바란다는 것. 한참 전부터 그 사실을 알고는 있었다.

꽤나 전의 일이지만, 내 이야기는 제쳐 두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려고 노력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어졌다. 그 때 일은... 단순히 그것 외에도 결국 그렇게 될 만한 또 다른 이유에 대해서 나름 추측되는 바가 있긴 한데... 그저 내 추측일 뿐이고, 이미 끝난 일이다.

내 친구인 그 사람은 내가 이야기할 상대가 필요할 때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 사람도 당시 나름의 고뇌와 신산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결혼했고, 이제는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그 사람은 내게 해줄 만큼 해줬고, 난 그 사람에게 아무 것도 돌려주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내가 섣불리 나섰다가는 오히려 부담만 줄 가능성이 높다.

 

진심과 선의는 중요한 것이지만 한없이 무력할 때가 있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그 사람은 충분히 행복할 테고, 굳이 내 진심과 선의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선 그 남편 분과도 이야기를 좀 했었다. 남편 분은 지금까지처럼 그냥 편하게 대해달라고 하셨지만... 뭐, 꼭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어야만 '편한 것'도 아니고.... 그 친구와는 약간 거리를 두는 쪽이 역시 가장 합리적인 답이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착한 남편이 있고, 곧 태어날 아이가 있다. 그 친구는 지금 충분히 행복할 것이다. 이것은 완전한 진실은 아니어도 충분히 객관적인 사실이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내가 굳이 친구로서 뭔가 더 해주고 싶다거나 생각해봤자 해 줄 수 있는 건 별로 없고 오히려 거북하게 느낄 소지가 크다.

지금도 그 사람은 내 친구고, 무언가를 해주고 싶다. 그것은 내 주관적이고 이기적인 욕구의 문제다. 그리고 그 사람은 충분히 행복한 참이고, 굳이 내게서 더 바라는 건 없을 것이다. 내가 뭔가 하려고 했다가는 불편하기만 할 것이다. 이것은 지극히 객관적이고 당연한 현실의 문제다.

예전에 본 영화에서, '대상 곁에서 대상을 지키고 보호해주며 스스로가 느끼는 충족감을 위해 역설적으로 대상에게 위해를 가하는' 종류의 심리를 접한 적이 있다. 이런 심리를 칭하는 전문 용어도 있었던 거 같은데 기억 안난다. 아무튼... 난 그런 짓 못한다. 중요한 것은 내 친구의 행복이지, 내 충족감 같은 이기적인 욕구가 아니다. 난 그런 추잡한 짓 못한다.

곧 출산할텐데... 임산부한테 좋은 과일 같은 거라도 좀 사다가 보내줄까. 딱히 비싼 걸 보낼 정도로 돈도 없고 뭐, 5년 동안 보아 왔고 상대방도 나를 친구로는 여기고 있으니, 그 정도는 뭐 별 부담 없이 받아... 주려나?

행복하기를, 나의 친구.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고, 아마 있더라도 바라지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부디, 행복하길. 친구고 반했던 사람이고 별 텀도 없이 줄줄이 결혼해 버리니 뭐랄까... 쳇ㅋ

....

다시 한 번 읽어보니, 어딘가 비논리적인 부분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좀 더 생각해 보니, 어느 부분이 비논리적인지 알겠다. ....그냥 두지 뭐, 가능성은 낮지만 예전과 같은 경험을 또 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그러니, 지금 이 상태로도 괜찮다.

나는 혼자서도 잘 견딜 수 있을테니까.


 

And

흔들려 버리는 바람에,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 적는 글.

진심과 선의는 무력하다. 픽션에서 '냉정하고 타인에게 기대지 않는 사람이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게 되고 그로 인해 성장하는' 식의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 건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중2병 돋는 인간불신에 빠지거나 하지는 않는다.인간이 人間인 것은, 그만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감정들이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나름의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 그러한 믿음은 지금도 여전하다. 그 모든 고통과, 그 모든 절망을 겪어온 지금도. 그런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내 나이가 이제 서른이다. 난 변하기엔 이미 너무 나이가 들었다. 난 희망을 갖는 게 두려워졌다.

진심과 선의는 중요한 거다. 하지만 그로 인해 '변화'하는 건, 나한테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는 느낌이 든다.

And
1)
요즘 한참 인기많은 <범죄와의 전쟁>을 보고 왔다. 최근 몇 년 동안 본 한국 영화 중 상업 오락영화로서는 하나의 정점을 찍었다고 할 만 하다. 특히 민식이횽이 연기한 최익현의 캐릭터는 좀 짱인 듯. '존내 찌질한 주제에 가오잡기는 좋아하는' 인간형의 묘사가 대단히 입체적이다. 하정우가 탕수육 먹는 거보고 탕수육에 맥주가 급땡겨서... 없는 지갑 털어 탕수육 시켜서 먹고 있는 중.

2)
남들 다 신날 금요일 저녁마다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가... 생각해봤는데, '반했던 그 분과 결혼한 그 어떤 남편놈님에 대한 질투심' 때문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우와 나 존내 찌질한 듯ㅋ

뭐, 시간이 좀 더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괜찮아질 수 없는 종류의 일이 있고, 시간이 약이 되는 종류의 일이 있다. 이번 일은 명백히 후자에 속한다. 그 분은 행복할테고, 난 혼자 견디기만 하면 되니 그것 하나만으로도... 최악의 결과는 아니다.

3)
이제서야 겨우... 내가 '친구'라는 것에 지난 몇 년 간 얼마나 집착해왔는지 알 듯 하다. 내 어린 시절을 돌아보자면 뭐 충분히 가질 수 있을 만한 집착이긴 한데... 합당한 이유가 있는 집착과 망집이라고 해서, 집착과 망집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니다.

난 이제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남들은 빠르면 중고등학교 때 깨닫는 걸 이 나이 먹고서, 그것도 더럽게 비싼 수업료 내고 겨우 배웠다 싶어 좀 허무하긴 한데.

몇 년 전의 내가 지금 내 앞에 있다면 역시 일단 좀 패고 볼 것 같다. 그 다음엔 일으켜 세워서, 술 한 잔을 사줄 것이다. 그런 일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는 게 아쉽다.

주여, 제가 한 때 더 없이 간절히 바랐던 것을 이제 포기합니다.

And
예전에 친구라고 여겼던 그 누군가의 블로그에 들어갔다. 뭐, 잘 지내고 있나 보다.

내가 아직 그 사람을 친구라고 여겼을 때,  그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신께 몇 번이고 기도했었다. 그 기도는 신께 가닿은 모양이다. 지금의 내가 더 이상 그 사람을 친구라고 여기지 않는 것과는 별도로.


그 사람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그 사람 입장도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하지만 용서할 마음도 전혀 없다.

뭐... 나는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끔 악몽을 꾸는데, 그 사람은 나에 대해선 거의 잊어버린 채 잘 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솔직히 좀 아니꼽긴 한데ㅋ 어쩔 수 없지. 

당시 상황을 대충이나마 아는 다른 친구 녀석 하나는 지금의 삶을 사는데 과거의 기억을 지나치게 덧씌우지 말라고 했었다. 과거의 기억을 덧씌우고 싶지 않았기에 난 노력했었다. 무슨 소리인지 알아 먹기도 힘든 와인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보고, 베토벤이나 바흐 정도나 듣던 클래식 CD를 사고, 전 같으면 별 관심 안 가졌을 발레나 오페라 공연 포스터도 괜히 한 번 더 들여다 보고. 그리고 그 노력들은 결국 아무 의미도 없어졌다.

진심과 선의로 사람을 대한다는 건 중요한 거다. 하지만 그것이 한 없이 무력할 때도 있다. 뭐, 사는 게 그렇다. 이런 삶도 있는 거다.


방문자 목록... ...지우기가 귀찮네, 뭐 그 사람은 내 블로그 타이틀도 기억 못할테니 상관 없겠지. 나도 포트폴리오 쓰다 던져둔 거나 마저 쓸까ㅋ
And


...이, 이거 당긴다.... 10만원이라... 눈 딱감고 한방에 들을까 몇 개만 골라 들을까...:Q
And
조연출을 맡은 독립영화가 개봉했다고 한다. 검색 때려보니 cgv에선 며칠 새에 간판 내린 모양이다. 뭐 돈 안 되는 독립영화가 그렇지.

한참 못본 친구 하나가 생각나서 같이 갈 생각 없냐고 물어봤는데 바쁜 모양이다. 거울 쪽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만나서 놀거나 할 정도로 절친하지 않거니와, 거울 쪽엔 당분간 얼굴 안 비칠 생각이고... 합평 모임 쪽 사람들도 뭐 같이 영화보자고 부르면 올 만한 사람들이 몇 있긴 한데, 그 사람들은 뭐 어차피 한 달에 한 번은 꼬박꼬박 보고.... rpg하며 친해진 형들은 재미 드립따 없는 독립영화 보려고 홍대까지 가야 되냐고 츤츤댈테고ㅋ 혼자 가지 뭐. 


문득... 요즘 내가 그 친구를 너무 귀찮게 한 건 아닌가 싶어졌다. 친하다곤 해도 여자애 입장에선 좀 거북할 만한 이야기도 무심코 한 적 있고. 걔는 괜찮으니까 그런 거 신경 안써도 된다고 했지만.... .....아아, 예전에 그 누군가도 더 편하게 자신을 대해도 된다고 했었지. 망할.

아마 걔가 괜찮다고 한 건 진심일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 역시, 그 당시엔 나름 진심이었겠지.


.......당분간 메신저에서 걔가 보여도 말 걸거나 하지 말아야겠다ㅋ 잘 지내라, 이놈아. 나하고 안 놀아줘도 되니까.

뭐... 만일 걔가 날 부담스럽다고 느껴서 피하게 되고, 다시 전처럼 지내지 못하게 된다면 이래저래 아쉽고... 약간, 어쩌면 조금 많이 우울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괜찮다. 아무리 나쁜 일이라 해도 미리 어느 정도 예상하고 준비를 해두면 그럭저럭 받아 넘길 만 하다. 예전 그 때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은 한 번으로 충분하다.


그 때 그 일 이후로, 하루도 잊은 적이 없다. 진심과 선의는 한없이 무력할 때가 있다는 걸. 아아, 사는 게 그렇지 뭐ㅋ

몇 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내 앞에 있다면 아무래도 역시 일단 한 대 패고 볼 거 같다, 와하하.
And
...사적인 이유 때문에 일본 지진 및 방사능 누출에 관해 관련 기사를 뒤져 보던 중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22074.html

이런 기사를 발견했다. 그리고 평소 자주 가던 모 게시판은 '섬숭이 새퀴들 꺼져' '휴머니즘도 좋은데 걔들이 지금까지 뒤통수 몇 번이나 쳤냐' '쓰나미 때 성금은 성금대로 받아먹고 바로 얼마 뒤 다케시마 드립치는 거 보고 뜨악했음' 등등 성토의 목소리로 끓어 올랐다. 그 와중에 누가 북한은 도우면서 왜 일본은 안 돕냐고 헛소리를 해서 한참 시끄러웠다.

그런 싸움을 지켜보던 중, 문득 의문이 들었다. 개인적 도덕과 외교적 명분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콜버그에 의하면 도덕은 1)처벌이 두려워 지키는 단계 2)보답을 원해 지키는 단계 3)대인관계를 위해 지키는 단계 4)사회 질서를 위해 지키는 단계 5)사회 계약을 위해 지키는 단계 6)도덕률 자체를 위해 지키는 단계로 나뉜다. 개인적인 차원에 있어서의 도덕성은 나쁠 게 없다. 자기 혼자 인생의 쓴 맛은 다 본 것처럼 목에 힘주고 요즘 세상에서는 도덕 따위 일일이 지켜가며 살 수 없다고 설교하는 병신들은 일단 제끼고-곧 사라질 도덕 교과목 지못미-, 여하튼 인간이 짐승과 다른 게 이성과 양심이 있기 때문이라는 지극히 당연하고 원론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그리고 보편 인권이라는 맥락에서 보자면 아무리 일본에 대해 많은 피해를 입어왔고 저간의 감정이 험악하더라도, 어쨌든 후쿠시마 주민들이 그들의 잘못에 대해 직접 댓가를 치르는 게 아닌 한 도와주는 게 도리다. 그들은 일본 정부로부터도 실질적으로 버려진 것이나 다름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도 있고. 

'아무리 일본이 재수 없어도, 이로 인해 내게 돌아오는 이익이 아무 것도 없다 해도 연민이 드는 이상 도와야겠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개인적 도덕이다. 콜버그의 도덕론에서 나타나듯, 설령 작은 도움이라 할지라도 댓가를 바라지 않고 오직 선의와 양심에 의해 상대를 돕는다면 이것은 도덕적으로 온당한 행위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옆 집에 사는 일본인 가족이 어느 날 불행한 사고를 당한 것'이 아니라 '일본에서 살고 있던 일본인들이 도쿄 전력과 일본 정부의 병신 짓으로 인해 개피를 본 것'이라는 점이다. 근본적으로 이것은 일본 정부가 해결해야 할 일이고, 일본 정부는 손을 놓고 있고, 그들은 한국에 집단 이주를 타진해 왔다. 이것은 개인 대 개인의 선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국가의 외교 문제가 된다.

위에서 난 '작은 도움이라 할지라도 댓가를 바라지 않고 오직 선의와 양심에 입각하여 상대를 돕는 것'이 개인적 도덕이라고 정의했다. 그렇다면 외교에 있어서의 '명분'은 선의와 양심 같은 것보다는 상대에게 심리적 부채를 지우고 대외적으로 언론 플레이에 유리한 기반을 쌓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 ' 선전을 앞세운 유사 도덕'으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이러한 '명분'의 기저에 당연히 깔려 있는 실리에의 추구는 일단 논외로 한다). 이 도식을 이번 사건과 관련지어 단순화해서 설명하자면, 

'개인적 도덕->1대 1 수준에서 순전히 측은지심과 도덕관념 때문에 실질적으로 난민이 된 일본인들을 돕는다'

'외교적 명분->국가 대 국가 수준에서 존내 병신 같은 섬숭이 새끼들은 자국민도 제대로 못 챙긴다고 까고 한국의 관대함을 강조하기 위해 그 일본인들을 돕는다'

정도가 된다. 이렇게만 보자면, 수천 수백 명도 아니고 방사능이 사람 몸 따라 전염되는 것도 아니고 고작 40명 그 까이꺼 받아주지... 하는 것도 얼핏 보기엔 그렇게 나쁜 선택지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음,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의 정치적 지형도가 지금과 달랐었더라면 그렇게까지 나쁜 선택지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나쁜 선택지다. 그것도 존나게.

지금 상황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멀게는 조선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일본과의 험악한 관계와 그로 인한 국내에서의 반대 여론이 아니다. 내가 문제삼고 싶은 것은, 이 나라는 해방 이래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된 적이 한 번도 없으며 그들의 후손이 대대 손손 이 나라의 정계와 재계에 뿌리박혀 있다는 거다. 난 정치적으로 진보일망정, 보수를 보수이게 하는 애국심이나 민족애 같은 개념도 그렇게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한나라당... ...아니 이젠 새누리당이구나. 아무튼 실질적으로 대한민국 건국 이래 단 한번도 이 나라의 권력 중심부를 벗어난 적이 없는 저 견고한 앙시엥 레짐 중심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은 '한국을 사랑하며 강한 한국의 미래를 꿈꾸는' 보수가 아니라 일제 부역을 통해 돈과 권력을 끌어 모으고 그걸 방패로 삼아 보신해 온, 교활하고 야비한 기회주의자들이다.

난 '일본이 싫다' 같은 저차원적인 이야기를 적으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일본이라는 특정한 국가가 아니라, 부당한 권위에 굴종하고 그에 투신하고 타협함으로써 부와 권력을 성취하고 스스로를 돌보는 것이 세상을 움직이는 게임의 법칙이라고 믿는 자들이 현재 한국의 권력 중심에 있다는 것이며, 그 사실은 그 자체로 게임의 법칙을 고착시키고 있다는 것이다('진보' 내에서조차도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 운운하며 타협하고는 은근슬쩍 자기 밥그릇 챙기는 행태가 보인다. 좀 벗어나는 이야기지만, 이게 바로 이 게임의 법칙이 제일 좆같은 점이다). 

일본인들이 역사의식 쥐뿔도 없고 골 빈 것까진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인이라면 그래선 안 된다. '생각 없는 일본인'보다, 그 일본으로 상징되는 권위에 부수적으로 딸려 오는 소소한 이익에 눈이 먼 '한국의 기회주의자'가 더 질이 나쁘다. 그리고 이승만이 다수의 기회주의자들이 속한 대한민국 1대 국회를 연 이래로 그들은 한국의 헌정 역사 중심에서 한 번도 비껴나 본 적이 없다. 


주절주절 쓰다 보니+요즘 한참 개인 사정 때문에 정줄을 놓은 채 뉴스도 제대로 안 보고 멍하니 지냈더니 머리 회전이 좀 둔해져서 논리가 좀 널뛰는데-_- 아무튼, 내 입장은 그렇다. '한국의 국익을 우선시해야 할 정치가들이 재분배도 제대로 안 될 알량한 투자 이익 때문에 굽신굽신하면서 타진안을 받아들이는 꼴 보는 건 존내 아니꼽고 자존심 상한다. 댁들은 안 됐지만 일본 내에도 비교적 안전한 곳 많으니 거기로나 꺼지쇼'.



....다시 읽어보니 논리 비약 쩐다. 고치자니 귀찮고. 최근 머리가 나빠진... ...것까진 아닐지 몰라도, 확실히 논리력은 좀 취약해진듯. ㅅㅂ 끝난 일 가지고 언제까지 찌질하게 굴 수야 없지... 다시 예전처럼 책도 읽고, 글도 자주 쓰고, 일자리도 알아보고 하면서 바쁘게 지내야지 망할.

+

지금 확인해 보니 '일본인 마을' 조성한다고 기사떴다. 국내 언론에서 공론화도 안 되고 물 밑에서 진행할만큼 했다는 게 빡침 2배. 그런가 하면 전북 도청 측은 그런 계획 없다고 발뺌하고 있다. 뭐 병시나?
And
걱정되서 미치겠다, 일상 생활이 어려울 지경. 왜 하필 요즘 같은 시기에 일본이냐고.....

후쿠시마와는 충분히 거리가 머니까 괜찮겠지... 생각하면서도 방사능 누출 현황이나 지진 현황에 대해 뉴스 검색만 해봐도 속이 뒤집힐 거 같은 느낌이 든다.

차라리 평범한 친구 관계였으면 나중에 연락해서 괜찮았냐고 물어볼 수라도 있는데 그렇지도 않다. 일본으로 가실 줄 알았으면 애초에 고백 안하는 건데, 망할. 그 분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그리고 자신에게 고백했던 남자가 가끔씩이라 해도 주변에 보이고 연락하고 하면 그 분 입장에서는 부담되지 않을 리가 없다. 그런 짓을 하면... ...그 분은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건 괜찮은데.......

진짜 왜 하필 일본이냐고 돌겠네 이거...........'_` 차인 것까진 뭐 괜찮은데, 이런 걱정까지 해야 되냐...


내가 그 사람을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계속해서 걱정하고, 부디 그 사람과... 기왕이면 그 사람 남편도 지켜달라고 신께 기도하는 것 뿐이라는 건 매우 기분이 더럽다.

...아오 샹..... 냉정해지자. 기분 더럽긴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그 사람도 충분히 알아보고 괜찮다 싶으니까 가신 거겠지...... 그러니 괜찮을 거야......



씨발, 나도 어디 만화 캐릭터처럼 소수라도 셀까. 

+

생각해보니까 나 20 넘어가면 소수 못 세잖아...... ....마음을 가라 앉힐 거리가 필요한데, 으으.... 소설 쓰는데 자료 용으로 구해둔 다큐멘터리나 보다 잘까, 가능한 밝고 훈훈한 내용으로... ...그런데 <사이코패스 그들은 누구인가> <79년 10월 김재규는 왜 쏘았는가> <전쟁을 생산한다- 민간 군사기업> 이런 거 밖에 하드에 없네 어째.... 

+

이젠 그럴 일 없으려니 싶었는데 잠깐 낮잠 들었을 때 그 사람이 오랜만에 꿈에 나왔다. 그 사람은 내게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듯 했지만... 한 번이라도 그, 가을 햇빛을 닮은 미소를 다시 보면 흔들릴 거 같아서... 역지로 외면해 버렸다.

실제로는 그럴 리가 만무하다. 그 사람은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을 것이다. 나에 대해선 가끔 떠올릴 일조차도 없을 것이다. 아마도 그 꿈은 겉으로 나타난 것과는 반대로, 아직도 내 안 깊은 데서는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덧없다.


썅 담배 거의 다 피웠네. 사춘기 소년이 이러면 풋풋하기나 하지 이 나이 처먹고 존내 찌질하게 이게 뭐하는 짓이야...
And
그래, 올 게 왔구나.

이미 결혼하셨으려니 생각했었는데 예상보다는 약간 늦으셨네.......

.......음, 괜찮다. 지금까지 수천 번은 상상하고, 예상하고, 각오해뒀다. 내가 할 일은 다만 혼자서 견디는 것 뿐이다. 그 동안 슬퍼할 만큼 슬퍼했고, 힘들어할만큼 힘들어했다. 이제는 견딜 수 있다.

어지간히 나쁜 일이라고 해도 미리 예상하고 준비를 해둘 수 있었다면 견딜 만하다. 사소한 문제라고 해도 정신적으로 무장을 해제해둔 상태에서 급습당하면 몇 달, 길 경우 몇 년 동안 괴로워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번 일은, 나쁜 일이 아니다. 나는 그럭저럭 견딜 수 있을 것이며, 무엇보다도 그 사람은 행복할 것이다.


...........

부디, 행복하시길. 사랑하는 사람.


제 차례에는 못 올 사랑임을 압니다. 그러나 전 혼자서 꾸준히 생각하겠습니다.

내내 그리 어엿브소서.

.................................

졸업했다. 그리고 내가 품었던 사랑도 끝이 났다. 많은 것이 끝을 맺었다.


그러니, 이제는 새로 시작할 시간이다.

난 내 사랑이 집착과 질투로 타락하게 두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나는 그 맹세를 지킬 것이다.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기까지는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그 분은 행복하게 자신의 삶을 영위할 것이다.

그 맹세가 순수하다는 것은 내 명예도 아직까지는 완전히 흐려지지 않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

제 사랑이 당신께는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할 것임을 압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비록 너절한 짝사랑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당신을 사랑하는 것 자체로 행복했습니다. 

그럼, 내내 평안하시길.


안녕히.

+

신혼 여행은 일본으로 가실 모양이다. 왜 하필 일본이냐.... 쯧.
And
했다.

학과에 정이 떨어진 것은 이미 하루 이틀이 아니다. 내가 사랑했고, 내가 다니고자 한 것은 '문예창작학과'였지, '국문창작학과'라는 이상한 듣보잡과가 아니었다.

뭐,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는 문제기도 하고.... 다른 애들한테 불평할 일도 아니니 별로 내색하지 않고 마지막 1년을 다녔다. 그 와중에도 소소하게 재미있게 들은 수업도 있고, 친해진 교수님도 계시고, 알게 된 사람들도 있었다. 뭐, 애초부터 무슨 시트콤마냥 꿈과 낭만이 넘쳐나는 캠퍼스 라이프~ 같은 걸 기대하며 입학한 것도 아니었겠다.... 그냥저냥, 지난 학교 생활을 되돌아보면 뭐... 안 좋은 기억들도 좀 있긴 한데 뭐 크게 불만스러울 정도는 아니다.


졸업식이 끝나고 돌아오던 중 도서관 앞을 지나쳤다. 몇년 전, 사랑했던 분이 있었다. 그 분과 함께 거기서 사진을 찍고, 인사를 나누었다. 당시에는 내 사랑이 그런 식으로 결말이 날 지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약간 회한이 들었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And


요즘 내가 혼란스럽고 엉망인 건 이 나이 먹고서야 졸업이라는 것 이상의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듯하다.

모든 게 다 잿빛이야 씨풋, 난 존내 개새끼라고!!!!!!!!!

....그래도 무언가 한 가지, 마지막 하나 남은 중요한 것이 있다는 느낌이 들긴 하는데....

그게 뭔지 이름을 못 붙이겠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젠 인정해야 할 듯하다.


'명예'마저도, 더 이상 예전처럼 날 가슴뛰게 만들지 못한다.
And
성격이 변해가는 느낌이 든다. 학교에서도 조교 누님한테 '남친 없으시면 저는 어떠함?' 같은 개드립을 치질 않나... 얼마 전엔 아무렇지도 않게 초면인 여자분한테 작업을 걸지 않나... 유부녀라고 하시자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과장된 태도로 엄청 아쉽다는 티를 내질 않나.... ...그러고 보니 욕설과 담배도 늘었구나... ...아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 전혀 이런 캐릭터가 아니었던 거 같은데-_- 

확실히, 좀 변한 느낌이 든다. 그 일은 뭐... 이뤄지지 못한 애달픈 사랑 같은 것도 아니었고, 평범한 짝사랑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분은 나에 대해선 가끔 떠올리는 일조차도 없이 행복하게 잘 살고 계실 것이다. 이건 극히 평범하고 흔한 일이다. 앞으로 한참, 어쩌면 꽤 오래 그럴 수 없겠지만... 시간이 가면 다시 또 누군가에게 반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혼란스럽다. 휘파람 불며 '올ㅋ 미인이시네요' 같은 소리를 하면서도 내 내면에서는 '이런 개드립을 해도 될 만한 분위기인가' '자주 만날 상대인가' 무엇보다도 '난 과연 진심으로 상대를 대하는 것인가' 등등의 계산이 돌아가고 있다. 예전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분명 "사랑은 고결하고 순수한 감정이다, 그렇게 가볍게 입에 담을 만한 게 아니다" 같은 말로 시작해서 엄청난 잔소리를 쏟아부었을 거다.

아마도 지금 내 상태는, '이뤄지지 못한 사랑의 이상적 이미지를 대리 충족하기 위해 다른 여자들을 섭렵하고 다니는' 식의 바람둥이의 초기 심리 상태와 비슷한 것일 것이다. 아니면 단순히 지금까지 윤리와 도덕관념으로 억눌러 온 욕구가 튀어나오기 시작한 것이거나. 만일 그런 거라면 고삐를 슬슬 잡아야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또 한편으로는 '좀 방탕할 수도 있지 뭐' '정말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만 잘 절제하면 돼' '너님은 좀 더 멋대로 살아볼 필요가 있음' '유열 YEAH' 같은 생각도 든다.

푸념할 만한 상대도 별로 없고, 친한 친구 몇 명 정도는 있지만 그 사람들도 뭐 내 푸념 들어주기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니고..... 쯧. 전에 그런 이야기를 했을 때, 그 사람들은 괜찮으니 편하게 이야기해도 된다고 했었지만.... 전에도 누군가가 내게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고, 이제 그건 아무 의미도 없어졌다. 

........

지금 쓰고 있는 소설 성격 상, 이번에 합평 모임 나가면.... 아마도 예전에 그 분 이야기 화제가 나올 거 같은데, 다들 친한 사람들이지만 그에 대해서 별로 깊은 이야기는 하고 싶지가 않다. 그 분에 대한 이야기는... 술자리 안주 같은 걸로 삼아 버려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게이드립이나 치면서 놀다가 중간에 일어나서... 돌아오는 길에 한 잔 할까.

+

쓰다가 정신적으로 무너지는 느낌이 들어서 일단 접어 버리곤... 합평 모임 쪽에는 땜빵용으로 다른 거 올려뒀다. 아 젠장, 몇 달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이러네...
And

을 꿨다. http://garleng.tistory.com/846 에서 이어지는 듯한 내용이었다.

이번엔 다른 사람들도 같이 있었다. 그 분은... 계속해서 내 주변을 맴돌며 내게 무언가 말을 걸려 했지만 난 외면해 버렸다.

꿈은 꿈일 뿐이다. 이제 내가 그 분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부담스럽지 않게끔 가능한 거리를 두고서 다만 그 분의 행복을 빌어주는 것 뿐이다. 그 분은 아마도, 그 분이 사랑하는 다른 누군가와 함께 행복한 신혼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나에 대해 생각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시간이 더 지나면 나에 대해 잊어 버리실 테고, 내가 그 분께 가졌던 모든 감정은 아무런 의미도 없어질 것이다. 짝사랑이란 게 원래 그렇지 뭐. 


하지만 그 분이 행복하다면 그것도 괜찮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나 역시도 이런 헛된 꿈에 시달리지 않겠지. ...내 일에나 신경쓰자.

And


2012년 첫 해는 하늘의 눈동자를 닮아 있었다. 그 눈이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네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난 대답했다.

명예.

아직도 내게 남은 유일한 것.
And
속에서, 사랑했던 분과 함께 있었다. 그 분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웃으면서 붙임성 있게 말을 붙여왔고, 난 외면했다. 지나가던 사람이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제안했지만, 난 그 분한테 혼자서 찍으시라고 하고는 물러나다가 깨 버렸다. 깨자 마자.... 두 가지 모순되는 생각이 거의 동시에 들었다.

'어차피 현실도 아닌데 같이 사진 찍다가 도둑 키스 정도는 할걸 젠장'
'자제력을 잃지 않아서 다행이다, 이제 곧 유부녀가 될 사람한테 뭐하는 짓거리야'

..........

그 분 꿈은 이미 여러 번 꿨었다. 하지만 그 꿈 속에서... 그 분은, 유달리 아름다웠다. 가슴이 저려올 정도로.


난 내 사랑이 집착과 질투로 타락하게 두지는 않을 것이다.


알고 있다. 난 앞으로 한참, 어쩌면 꽤나 오랫동안 누군가를 그렇게 사랑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상의 싯귀에서처럼,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임은 알고 있으면서도 나 혼자서는 꾸준히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그 분은 그 분이 사랑하는 다른 누군가와 함께 곧 밝아올 새해를 보고, 마음을 나누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자라는 걸 지켜보며 나이를 먹어갈 것이다. 나에 대해선, 기억조차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모쪼록, 행복하시기를.
And
어떤 꿈을 꾸고서... '요즘 내가 연애에 굶주려 있는 게 아닌가' 자문해봤다. 답은 '의식적으로는 결코 그렇지 않다. 난 앞으로 한참은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할 만한 상태다. 그러나 무의식적으로는 아닐지도 모른다'라는 거다.

살짝 자기 혐오가 들려고 하는 걸 떨쳐냈다. 무의식까지 통제할 수야 없는 노릇이기도 하고... 애초에 꿈이라는 건 욕망과 두려움의 파편들이 무작위로 뭉쳐진 덩어리에 불과하며, 큰 의미를 둘 게 못 된다.


내가 해야 할 일들이나 하자. 기한이 얼마 안 남은 공모전들이 몇 개 있다. 거기 맞추려면 서둘러야 한다.

And
가장 나쁜 흐름은 면했구나. '기쁘다'는 느낌보다는 '다행이다'라는 안도감이 앞선다.

마지막으로 기쁨을 느껴본지 한참이나 지났다. 뭐... 그런 거 좀 못 느끼면 어때. 바로 며칠 전까지 '이번 주말에 내가 무슨 느낌을 받고 있을지' 궁금해하며 괴로워했는데, 지금은 정말... 정말 다행이라는 심정이다. 안도감이 지나친 나머지 좀 폭주한 감이 있긴 한데-_-

큰 고민 중 하나는 일단 해결됐다. 다른 고민...은 내가 손 쓸 수 없는 문제니 뭐 어쩔 수 없다.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이나 가다듬어 두자.
And
...(전략)....

탐내지 말고, 속이지 말며, 갈망하지 말고, 남의 덕을 가리지 말고,
혼탁과 미혹을 버리고 세상의 온갖 애착에서 벗어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세상의 유희나 오락 혹은 쾌락에 젖지 말고 관심도 가지지 말라.
꾸밈 없이 진실을 말하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물속의 고기가 그물을 찢듯이
한번 불타버린 곳에는 다시 불이 붙지 않듯이
모든 번뇌의 매듭을 끊어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중략)...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불교 경전 <숫타니파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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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성자의 도리지, 인간의 도리는 아니다.

그리고, 난 아직도 人間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
 

...집착은 집어 치우자. 내 과거를 보상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 따윈 하지 않는 게 좋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몇 번이고 똑같은 패턴이 반복되온 거다.

어떤 방향으로든 흘러가겠지.

+

영 마음이 수습되질 않아서... 오랜만에 타로를 꺼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한 장을 뒤집어보니 '황제'였다.

.....10년 전, '10년 후의 내가 어떤 모습일지'를 주제로 잡아봤을 때도 황제가 나왔었지, 아마. 타로 종류에 따라 의미가 약간씩 달라지지만... 공통적인 코드는 명확하다.

권위, 지배, 고귀, 엄격함, 단호함, 부, 성공...

그리고, 고독함.

And
1.의식적으로 노력한 결과이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건 누군가와 친해진다. 난 옛 일들을 상기하며 마음을 열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가끔 한계가 가깝다는 느낌을 받을 때마다 상대방을 떠올린다.
2. 시간이 지난다. 역시 어쩌다 보니 사소한 계기로건 뭐로건 멀어지거나, 현상을 유지하거나, 좀 더 가까워진다.
3. 술자리나, 비슷한 자리에서 속내를 꺼내놓기 시작한다.
4. 너무 스스로를 억누르지 말고 좀 더 편하게 행동하라는 조언을 듣는다.
5. '이 사람 이상하다' '좀 무섭다' 혹은, '의도는 이해되지만 방법과 상황이 안 좋았다'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다시는 예전처럼 살지 않겠다, 다시 노력해 '인간'답게 살겠다고 결심한 이후로, 지난 몇 년에 걸쳐 계속 비슷하게 반복되어 온 흐름이다. 4.와 5. 사이에서 괴리가 생기는 이유는 아마도...

1)내가 평소에는 자각하지 못했을 뿐, '난 나 자신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 그런 일들을 겪었다. 난 변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이제는 그런 일을 겪어선 안 된다'라는 식의 불합리한 보상 심리를 갖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2)난 필사적으로 노력했었다. 그러나 노력한다고 해서 그대로 고스란히 보상이 주어진다면 그게 바로 낙원이다. 현실이 낙원이 아닌 건 그 노력의 방향과 적절한 정도를 확실히 알기가 극히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노력의 방향이 제대로 된 것인지, 얼마나 더 해야할지에 대해선 생각이 미치질 못했다. 
3)4.까지는 비교적 자연스러운 흐름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5.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1)과 관련이 있다. 친구라고 해서 속내를 모조리 털어놓고 지낼 수 있다는 법은 없다. 난 실패를 거듭하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현실에는 있을 수 없는, 이상적인 친구 상'을 부지불식 간에 상정해 놓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면 좌절하는 거고.
4)난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인간관계'가 어떠한 것인지, 이 나이가 되도록 학습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새에 '이상적인 친구 상'을 상정해 놓고 있다 보니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만하고 당연히 나도 갖고 있는 '부정성'을 구체적으로 접하면 내 쪽에서 정이 떨어지는 거고. 그래서 멋대로 기대하고 멋대로 실망해왔던 모양이다.

총체적으로 정리를 해보자면.... 어린 시절의 불행+그렇게 살지 않겠다는 집착+지나친 기대가 합쳐져 지금까지의 패턴이 반복되어 왔던 것으로 보인다. 정리를 해놓고 보니 대단히 단순한 이유라서, 고작 이것 하나를 깨닫기 위해 그런 과정을 거쳐야했나... 싶어서 약간 허무하기도 한데... 쯧, 어쩔 수 없지. 혼자서 깨달았다는 게 어디냐.

자학하는 취미는 없다. 당시의 난 너무나도 절박했다.


무엇보다도, 나는 그 모든 순간들을 진심으로 살았다.



앞으론 어쩔까... 상당히 '답'에 근접했다는 느낌이긴 한데, 그래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고... 무엇보다, 지금은 지쳤다. 많이. 
And
내가 오는 사람도 없는 이 블로그를 일기장으로 전용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지... 에 대해 생각해 봤다.

내가 남들 앞에서는 거의 하지 않는 이야기들을 이 블로그에 적는 이유는 극히 단순하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의 '벽'은 있는 법이고(그리고 그러한 '벽'이 있어야 할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도 있고) 속에 있는 모든 이야기들을 온전히 꺼내놓기는 힘든 법이다.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이며, 나 역시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그런 이야기들이 많이 쌓이다보면 '임계점'을 넘어 버리는 경우가 있다.

내가 블로깅을 하며 내 내면을 기록해두고는 있지만, 극히 당연하게도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모든 것을 온전히 적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오는 사람도 거의 없는 썰렁하기 그지 없는 블로그라 해도 스스로의 내면을 불특정 다수에게 드러낸다는 행동의 현실적인 위험성 문제도 있거니와... 정말 내밀한 사정은 적지 않거나,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은 굳이 구체화하지 않거나, 자기검열을 거쳐 에둘러 적곤 한다. 추상적이고 막연한 이미지들의 덩어리에 불과한 여러 상념들을 '문자'의 형태로 기록하면서 그를 다시 읽어 보고 있자면 생각을 정리하는 데도 도움이 되고, 내가 지나치게 감상적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구질구질한 자기 연민 따위에 젖어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보는 데도 유용하다.


하지만, 이 블로그에 적는 글을 통해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식의 생각, 자기 치장을 하고 싶다는 식의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다. 이 블로그에 적힌 글들은, 정신적인 의미에서 반쯤 누드로 춤을 추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런 걸 통해 누군가에게 좋게 보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그렇다면 난 왜 개인 노트나 워드 같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공공에 노출된 블로그에 이런 걸 적고 있는 걸까. 그에 대해서는 몇 번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역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결론은, 그야말로 벽에 대고라도 속에 쌓인 이야기를 털어놓고자 할 때 필연적으로 따라 오는 '그런데 결국 이게 무슨 의미가 있지?'라는 우울함이나 고독함 대신 '어느 정도는 열려 있는 공간인 블로그에 적으니 난 최소한의 소통은 하고 있다'라는 자기만족을 위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냉정하게 보자면 이것은 일종의 자기 기만이다. 하지만 이 정도 수준의 자기 기만은 스스로가 받아 들일 수 있는 레벨이다. 


지금까지 의식적으로는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내가 이 블로그를 폐쇄하지 않는 건 그러한 자기 기만이나 모순마저도 나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고 살아가고자 하는, 나름 긍정적인 의지가 내 안에 남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혹은, 이를 통해 소통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터무니 없는 희망을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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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일요일 쯤, 혹은 다음 주 오늘 쯤 내가 어떤 느낌을 받고 있을까. 아, 제기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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