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사라진 인터넷 사이트에서 만났고, 그 사이트가 폐쇄되면서 연이 끊겼다가 우연히 다른 SNS에서 다시 만났다. 무척 반가웠고, 이후로도 몇 년 간 교류했지만... 오늘 내가 한 말을 그 사람은 다른 맥락으로 오해했고, 난 사과했지만 그 사람은 사과를 받지 않았다.
사람은 악의도 없고 논리적으로도 타당한 말을 했어도 상처를 주고 받을 수 있는 거다. 그건 이미 아주 잘 알고 있다.
직접 만나거나 연락하는 정도의 교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많은 감정을 준 사람도 아니었으니까, 울적하지만 견딜 만은 하다. 하지만 좀 자살충동이 들긴 한다. 예전에는 '죽고 싶다'가 아니라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실행에 옮겼다가 실패했다. 이번엔 그 정도까지는 아니긴 하다.
예전에 죽으려고 했던 이후, 인간관계가 싫어졌다. 사람 자체가 싫은 건 아니지만, 좋은 방향으로건 나쁜 방향으로건 타인과 깊은 감정을 나누는 게 싫어졌다. 그래도 그 이전부터 알아왔고, 어느 정도 친분을 다져왔던 사람들 상대로는 적어도 무난한 관계를 이어가길 바랐는데.... 나쁘게건, 그냥 시간이 지나서건, 사고로건... 옛 인연이 계속 줄어든다.
아마 난 당장 죽지는 않을 것이다. 술 한 잔 하고, 담배 좀 피우고, 다시 내일이 오고 모레가 오고 글피가 오면서 좀 더 견디기가 쉬워지고, 아무렇지도 않게 될 것이다.
하지만 빨리 죽어서 無가 되고 싶다.
이런 삶도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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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히 그런 예감이 든다. 이걸로 끝이 아니고, 난 앞으로도 더 많은 걸 잃게 될 것 같다. 이젠 남은 것도 정말 얼마 없는데.
내가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 너절한 자기연민에 사로잡히고 싶진 않다. 하지만... 허무하다. 예전에는, 너무 쓸쓸해서 죽으려고 했다. 이제 나는 그 때 내가 한없이 원했던 인간적인 온기나 친애, 우정 같은 걸 원하지 않게 됐다. 만약 이번에 다시 시도하게 된다면, 적어도 그 이유는 '쓸쓸해서' 따위 같잖은 이유는 아닐 것이다.
자기 작품에 대해서 이 상징은 어떻고, 저 캐릭터의 철학은 저렇고 하는 등의 해설을 붙이지 않았다. 그런 설명을 요구 받으면 '독자가 소설과 만나는데 중간에서 작가가 토 달면 그 만남을 방해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항상 견지했다. 소설 자체도 A급이지만, 개인적으로 이영도가 정말 뛰어난 작가라고 생각하는 점은 바로 그거다. 내가 죽어라고 노력하면.... 음, 죽기 전에 0.5 이영도까지는 갈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신념과 태도에 있어서는 0.2 이영도도 안 될 것 같아.
솔직한 고백. 독자가 '당신 소설에서 남자 주인공이 주변의 여성 인물들의 외모를 평가하며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묘사가 나오고, 아무도 그걸 지적하지 않고, 남자 주인공이 처벌받지도 않으니 당신은 성차별주의자가 분명하다'는 말을 하면 좀 긁힌다...
나도 '작가 입장에서 자기 소설에 대해 주절주절 말 붙이면 구질구질해진다' 정도 자각은 있으니까 개인으로서의 말과 행동을 주의하려고 하고 그에 대해 굳이 변명하지 않을 뿐이야. 진심으로 그를 받아들이는 건 아마 평생 가도 안 될 것 같다.
이재명도 민주당도 현재 잠실 올공 폭도들에 대해 흐린 눈하고 말 아끼는 건 이런 문제라고 본다.
1)강경하게 대응할 경우:애초에 투표용지를 부족하게 준비했던 선관위의 실태 자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므로, 그런 상황에서 이렇게 나가면 극우 측의 '참정권 요구를 하는 시민들을 탄압한다' '진짜 부정선거 아니냐'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꼴이 됨. 이래서는 지난 총선 때부터 계속 '부정선거 획책하는 민주당이야말로 민주주의 파괴 내란 세력이다'라는 프레임을 짜왔고 윤석열의 내란을 물타기하려는 국힘의 의도에 완전히 말려들게 된다
2)온건하게 대응할 경우:폭도들이 경찰이라도 된 것마냥(*현행법 상 경찰도 그러면 안 된다) 강압적으로 지나가는 시민들 검문하고 소지품 검사하면서 아무나 중국인 취급하며 겁박하고 극우 개신교 신도들이 기도하는 꼴이 계속 이어진다. 정작 진짜 경찰들은 그런 꼴 보면서 '양말 벗으라고 하면 안되요' 같은 소리하는 꼴도. 그냥 시민 A도 아닌 국가 대표 운동선수들이 이미 피해를 입었고,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외신도 관심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고, 장기적으로는 '한국 정치 상황이 불안정하다'는 인식이 퍼진다. 대외 신인도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이거 하나가 결정적인 요인이 되지야 않겠지만)
임기 시작하자마자 '사소한 것까지 일일이 챙기는 꼼꼼한 대통령' '공무원들 갈아서 국민들의 안위를 챙기는 대통령' 컨셉을 잡아온 이재명 및 민주당은 이 딜레마에서, 2)로 가면서 힘이 빠져 와해되기를 기다리는 걸로 내부적으로 거의 결정을 한 걸로 보인다. 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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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폭도들은 집회 신고도 하지 않았는데 짭새 새끼들은 폭도들을 두고 그간 진보 쪽 집회에는 걸핏하면 써 온 '불법집회' 대신 '다중 운집'이라는 듣도 못한 표현을 쓰고 있는 중이다. 전장연 집회와 지혜복 교사 복직촉구 집회에서 짭새들에게 팔다리 잡혀서 들어내어지고 집어던져지던 활동가들이 떠오른다. 씻팔!
프랑스 혁명도 그렇고 러시아 혁명도 그렇고... 대규모 민중혁명은, 보통 적극적인 체제 변혁 행위로 여겨진다. 나도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요즘 생각이 바뀐 게, 민중혁명이란 그런 '능동적이고 진보적인 작용'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의 누적 결과 발생하는 필연적 반작용'일지도 모른다.
'기득권의 착취와 수탈에 저항하는 백성의 봉기'는 과거에도 있었다. 심지어 원시 부족사회에도 족장이나 제사장과 그 측근들 같은 소수 상류층이 나머지 구성원을 억압하다가 분노한 이들에게 맞아 죽거나 쫒겨 나는 일은 있었다. 그러나 따져 보면 애초에 그러한 '착취와 수탈을 행하는 기득권'이 형성되는 것 자체는 인류사를 통틀어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훗날 국가가 될 정도의 대집단을 이루기 위해서는 안정적으로 식량을 얻고 재화를 축적할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기반을 다지려면 정주민족의 농경사회가 가장 유리하다. 그렇게 자리를 잡고 대를 잇는 사회 집단이 커지고 구조가 복잡화 및 다변화되는 것과 병행하게 잉여 재산을 독점적으로 축적하고 계급의 격차가 커지면서 그러한 '착취와 수탈을 행하는 기득권'이 생겨난다. 이 과정은 역사적으로 세계 어디서나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제국주의 시기 인류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의 착각(또는 반쯤 고의적인 왜곡)과는 달리 '조직화된 대규모 문명을 세울 수 있는 정주민족이 유목민족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어디까지나 '기득권의 착취와 수탈에 저항하는 백성의 봉기'로 시작해 사회 구조 전체를 흔드는 민중혁명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국가나 그에 준하는 대규모의 조직화된 공동체가 이미 존재한다는 전제가 필요하고, 그 전제 성립을 위해선 농경사회 기반의 안정성-확장성 위주 질서가 확고한 상태여야 한다는 차원의 이야기다(유목민족 국가에도 '착취와 수탈을 행하는 기득권'은 종종 있었지만, 안정성-확장성 질서가 아닌 역동성-기동성 질서였기에 구조적으로 민중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 해당 질서를 포기하고 정착과 대규모 제국을 이룬 이후에나 발생했다).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앞으로 돌아가서 내가 민중혁명이 '구조적 문제의 누적 결과(그리고 체제 내에서의 완충 및 개혁이 실패하면) 발생하는 필연적 반작용'이라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인류사의 흐름을 주도하는 강대국들은 대부분 그러한 농경사회 기반 안정성-확장성 질서를 통해 최소 수백 년에 걸쳐 힘과 영향력을 쌓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 안정성-확장성 질서 속에서 필연적으로 발생 및 강화되는 사회적 계급의 격차가 바로 위에서 말한 그 '구조적 문제'인 거.
이상의 과정을 짚어보면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한다. 농경사회 기반 안정성-확장성 질서에 따르는 인간 집단이 다수 존재하며 경쟁한다면 결국 갈등과 절충과 흡수와 전쟁을 거듭한 끝에 그 가운데서 1)사회적 계급의 격차가 크고 2)기층 민중의 불만과 분노가 쌓이고 3)결국 민중혁명이 일어나는 거대 국가 형성 이 과정이 자연스럽고 논리적인 귀결이라는 점이다. 이것이 '작용'이다.
민중혁명이 '체제를 변혁하는 능동적이고 진보적인 작용'이 아닌 '필연적 반작용'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오해를 피하기 위해 다시 강조하자면 이 글에서는 '능동성' '진보성' 같은 표현을 쓺에 있어서 윤리적 가치판단을 배제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팩터를 더 추가하자면, 민중혁명의 가장 핵심적인 원동력은 소수 이론가와 지도자들이 공유하는 구체적인 체제 변혁의 비전이 아니라 대다수 기층 민중의 지극히 직관적이고 감정적인 동시에 그 자체로는 충분히 정당한 분노와 억울함이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그것이 폭발하는 민중혁명은 항상 파괴적이고 혼란스럽다. '오직 착취와 수탈을 행하는 기득권만 정확히 찍어서 심판하고 이후 자유와 평등이 실현되는 순수하고 정의로운 민중혁명'은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그렇기에 본질적으로 방향성을 가진 작용이 아니라 그에 반하는 폭주이며 반작용인 민중혁명은, 그 자체로는 그 분노와 억울함 속에 작지만 분명히 포함되어 있는 자유와 평등에 대한 바람을 실현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민중혁명이 (현대에 이르러서도 보수적인 부유층 엘리트들이 은근히 라벨링하고 싶어하는대로)무절제하고 무의미한 폭력과 광기에 불과하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그 반작용은 창조적 파괴이기 때문이다. 상기한대로 민중혁명이 그 자체로는 자유와 평등을 직접 달성할 수는 없더라도, 부와 권력을 가진 이들은 끝없이 그를 더 원하고 혁명은 그 욕망을 효과적으로 통제한다는 게 역사적으로 증명되어왔다. 비스마르크가 세계 최초로 사회보험법을 만들어 입법했을 때 당시 독일 제국의 많은 자본가들은 회사가 무너지고 나라가 망한다고 그를 맹렬히 비판했다. 그러나 비스마르크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다. 그건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당근이었을 뿐이고, 의도대로 잘 먹혔다.
부와 권력을 가진 이들의 그 욕망이 억제되고 물러난 빈 자리에서 대화와 타협이 이뤄지고 계급 간의 격차는 줄어들며 일시적으로나마 긴장이 해소된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착취와 수탈을 행하는 기득권'은 민중을 두려워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로베스피에르의 공포 정치가 테르미도르 반동으로 몰락하고 나폴레옹이 등장하고 왕정 복고가 이뤄진 이유 중 하나도, 로베스피에르를 비롯한 혁명가들은 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자신들이 프랑스를 구원할 '작용'이라고 여겼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물론 더 직접적인 다른 이유들도 많다만). 그 연장으로, 시민 개개인의 도덕성이나 이타심과는 별개로(그 자체로는 물론 가능한 함양하는 게 바람직한 미덕이지만)... 기층 민중과 지배 엘리트 간에는 항상 일정한 감정적 긴장이 좀 있는 게 서로 웃으면서 화합하는 것보다도 공공을 위해서는 더 나은 것 같기도 하고ㅇㅇ
어제 점심 때 쯤 허리가 좀 쑤신다 싶었지만 곧 괜찮아 지겠거니 했는데, 어젯밤에도 통증 때문에 깊이 못잤다. 출근하자 고통이 너무 심해서 담당자에게 말하고 병원 갔다. 엑스레이 찍어보니 척추가 약간 어긋났다고 한다. 한동안 무거운 거 들거나 허리 굽히지 말라더라. 당장 출근 때문에 고민했지만.... 아파서 일을 제대로 못하면 그것대로 눈치 보이고, 이러다가 허리 완전히 조지면 월급보다 병원비로 돈이 더 나가겠다 싶어서 일을 관둬야 할 것 같다고 말해놨다. 아무래도 갑작스레 관두는 거니까 담당자는 싫은 티를 내긴 했는데... 그래도 솔까말 무리해서 일하다가 허리 완전히 작살나면 댁이 병원비 내 줄 거 아니잖수.
하지만 그간 함께 일한 사람들에게는 미안했다. 많이.
일단 주사 맞고, 물리 치료 받고(무려 7만원이 넘게 들었다), 약 받고 일주일 뒤 재진 예약 잡았다. 지금은 집에 돌아온 상태.
어머니와 이모들이 사고 당하시고, 그 다음은 누나가 입원하고, 괜찮아졌다 싶으니 이번엔 내가 문제다. 바깥에선 비가 내리고... 지금도 허리가 쿡쿡 쑤시고, 그저 울적하다.....
이런 삶도 있는 거라고, 늘 그렇게 생각해왔다. 더 나쁜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늘 그렇게 생각해왔다. 그게 실제로 일어났을 뿐이다.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되면 뭐... 예전에 실패했던 걸 다시 할 뿐이다. 사실 그 때 이후로 너무 오래 살았다 싶기도 해.
'다수 여당을 견제하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선 국힘을 밀어줘야 한다' 같은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망상이다. 그 주장이 성립하려면 국힘이 '현대 민주국가의 정상적인 보수정당'이라는 전제가 필요한데, 현실적으로 국힘은 해방 이후 한국의 근현대사 태반을 지배해 온 구체제다.
이건 내 개인의 관점이 아니다. 정치사 관점에서 봤을 때 국힘은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그 구체제의 성골이며 그 DNA는 북한의 존재를 핑계 삼은 권위주의와 국가주의 독재다. 87년 이후 한 풀 꺾였고 이후 좀 이질적인 계보가 섞이기도 했지만 근본은 같다.
놈들은 박근혜 때 이미 쿠데타를 준비했고, 24년 겨울 실제로 시도했다. 그게 빠르게 실패한 건 어디까지나 현장 지휘관의 준비 부족, 즉시 대응한 당시 범야권, 무엇보다 거리로 나온 시민들 덕이었다. 당시 놈들은 비웃으면서 계엄 해제 투표를 거부했고, 정권이 바뀐 후에도 거의 1년 가까이 끌다가 지선이 가까워지자 마지못해 사과하면서 동시에 윤어게인 운운하는 뇌 빠진 패거리들에게 자리를 주고 있다. 놈들의 입장에서 이것은 권력을 지키느냐 감옥에 가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지금까지의 선례를 봤을 때, 이번 선거에서 세력을 회복한다면 놈들은 반드시 다시 쿠데타를 시도할 거다.
국힘 당사에는, 지금도 이승만 박정희 사진이 걸려 있다. 놈들은 그 권위주의와 국가주의 독재를 통해 '우리만이 한국 정치 권력의 정당한 주인' '민주당에게 정권이 가 있는 건 고쳐야 할 잘못된 상태'라는 자의식을 키워 왔다.
반복적으로 그러한 입장을 보여온 국힘 놈들이 다시는 쿠데타 같은 짓을 하지 않을 거라고 가정하고 반대 방향의 문제(이른바 '민주당 독재' 같은 거ㅋ)를 막기 위해 국힘을 찍겠다는 건 현실주의가 아니다. 행복회로다. 놈들은 이미 꽤나 구체적으로 국회와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하려고 했다.
다시 시도해서 성공하고 '친중 종북 세력 타도' 같은 소리하며 시민들 쏴 죽이면 그 때도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 같은 소리할래?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국혐 종자들은 사람 새끼가 아니고 전부 광화문 광장에서 산 채로 태워 죽여서 방역해야 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그건 실제로 불가능하고, 옳지도 않다. 현실성이 있는 최선은 정당 해체고, 그를 실현하는 첫 걸음은 지선에서 국혐 놈들을 완전히 배제하는 거다.
국힘이 '실제로 지금도 힘과 영향력이 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정당 해체가 무리하고 비현실적인 주장으로 보일 수도 있는 거고. 하지만 그 힘과 영향력으로 놈들이 뭘 할까?ㅋ 놈들은 자신이 권력을 잃고 감옥에 가느니 나라가 불타고 사람이 죽는 걸 선택할 거다.
보통 사람들은 이상주의를 막연히 '무책임함' '도피'로 연결짓는다. 하지만 난 이른바 '현실주의'적인 이유로 국힘 처단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현실주의(처럼 보이는 것)이 무책임한 도피일 때도 있는 거라고. 그 권위주의와 전체주의를 향한, 자유로부터의 도피.
민주당이 절대 선이냐고? 당연히 아니다. 현실 정당이 절대 선일 리는 없고 되는 것도 불가능하다. 난 내가 지지하는 노동당이나 정의당도 온전한 선이나 정의가 아니라는 걸 안다. 이건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앎의 문제다. 하지만 국혐 놈들은 '현대 한국의 정치판'이라는 보드 위에서는 확실히 절대 악에 가깝다. 확실히. 있는 쓰레기부터 치워야지.
2026년 5월 9일, 서울 종로 3가 전태일 기념관에서 진행. 전태일 기념관은 처음 가봤는데 좀 더 일찍 가서 천천히 이거저거 구경할 걸 그랬다...
일단 난 '국가'의 존재 의의를 '부와 힘을 가진 개인 또는 집단에게 약자가 억압과 착취를 당하는 걸 막는 공적 도구'로 규정한다. 홉스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무한히 이어지는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계약의 결과로서의 '국가'를 규정했다. 하지만 난 추가로 '모두에게 똑같은 자연 상태에서의 무제한적 자유가 주어지면 결국 힘 센 놈 마음대로 된다'고 여기고 있고, 거기에 내 '하류층 노동자-예술가' 정체성이 겹치면서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지 말아야 한다'보다는 '국가는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걸 적극적으로 막아야 한다'고 본다. 국가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성립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지향과 긴장 관계일 수밖에 없지만, 동시에 '부와 힘을 가진 개인 또는 집단에게 약자가 억압과 착취를 당하는 걸 막는' '규모와 강제성 측면에서 효과적인' 사회적 시스템 중 가장 성공적인 모델이 현재로선 '국가' 뿐이라는 걸 마지 못해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애국심' 같은 건 개소리로 여길 망정(계약 상의 의무를 다 하면 됐지 감정적 충성까지 갖다 바칠 이유는 없다) 군대 갔다 왔고, 세금 꼬박꼬박 내고, 4년제 대학 나왔고, 법도 뭐... 어지간해선 지킨다. 애국심은 없을 망정 최소한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 4대 의무는 다 하고 있다. 그 의무 이행의 반대급부로 좌파적 의제(노동, 환경, 여성, 장애인, 여타 소수자 등)를 국가에 요구하는 건 정당하다고 여기는 거고. 그리고 국가가 그 요구에 반복적으로 불응하면, 혁명을 통해 뒤엎는 것도 '어디까지나 최후의 수단'으로서나마 인정한다. 이론적으로 따지자면 나는 사민주의자에 가깝고 정통파 맑시스트나 아나키스트는 아니다.
정리하자면 내 관점은 이렇다. 1)자연 상태에서는 강자가 약자를 착취한다. 2)그걸 억제하기 위해 사회계약으로 국가를 만든다. 3)따라서 국가는 단순한 치안기구가 아니라 권력 불균형을 교정해야 한다. 4)시민은 계약상 의무(세금, 병역, 법 준수 등)를 수행한다. 5)그 반대급부로 시민은 국가에 보호·복지·권리 보장을 요구할 정당성이 생긴다. 6)애국심은 개인의 선택적 감정일 뿐, 시민권의 본질은 아니다(그리고 난 그걸 ㅈ까라고 생각한다).
다만 군대와 전쟁에 대한 인식은 예외적으로 그러한 내 기본적인 사상과 부분적으로 충돌한다. 난 2000년대 초반에 일반 병으로 징집된 현역으로써 2년+1개월 정도 군 복무를 했고, 한국 군대의 그 저열함과 폭력성과 비합리성을 아주, 뼈저리게 잘 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저열함과 폭력성과 비합리성이, 국가에 의해 대외적 폭력을 행사할 권한을 독점적으로 위임받은 군대라는 조직 자체의 근본적인 필연적 속성이라는 것 역시도 인정한다.
무엇보다도, 국가주의나 전체주의, 군사주의 같은 (개인적으로는 혐오하는)틀을 배제하고 보더라도 사회 내지 공공의 자기 방위를 위한 강제적 무력은 필수다. 역사적으로도, 그리고 모든 생물이 공유하는 자기본위성 차원으로도 그것은 필연적이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은 물론, 식물이나 박테리아조차도 존재와 번식을 위해 한정된 자원을 두고 서로 갈등하고 투쟁한다. 이것은 개개인이 '평화를 원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이건 당위의 문제가 아니다. 그저 건조하고 (솔직히 감정적으로는 썩 유쾌하지 않은) 사실의 문제다. 실질적인 자원 배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개개인의 평화에 대한 의지'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전쟁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자원 배분의 문제가 영원한 딜레마인 이상, 나는 제대하고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군대 시절 악몽에 시달리면서도 그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나는 군대 대신 저마다의 이유로(어떤 사람들은 종교, 어떤 사람들은 사상, 어떤 사람들은 개인적 양심) 감옥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완전히 동의하지는 못하면서도, 동시에 그 의지와 결의의 단호함에 일말의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말하자면... 국가는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적 권력의 지배로부터 개인의 실질적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강제력을 체계적인 제도화한 총체다. 그러므로 시민의 국가에 대한 의무(납세, 국방, 근로 등)는 국가에 대한 충성의 연장이 아니라 사회계약에서 발생하는 상호적 의무이며, 국가는 그 의무의 반대급부로 시민의 권리와 안전, 사회적 조건을 보장해야 한다는 게 내 관점이다.
오늘 본 이 다큐멘터리 영화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에서 한 부분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 2008년 촛불집회 당시, 특별외박을 나왔다가 복귀를 거부한 전경 이길준의 사연이었다. 영상 속에서 그는 "내 양심이 하얗게 타들어가는 걸 느꼈다"고 탄식했다.
바로 그 무렵, 난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고 전경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자정이 지나고 기자들이 적어지자 가로등이 꺼지고 욕설과 노성이 쏟아졌다. 전경들이 소화기를 쏘아대고, 분노한 시위자 몇 명이 사다리를 가져다가 닭장차 위로 올라가려고 했다. 그 때 차 위에 있던 한 전경이 외치는 목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그는 "미안해요!"라고 울먹이면서 외치고 있었다. 부대 복귀 이후, 그 이름 모를 전경은 고참들에게 얼마나 맞았을까.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지금, 그 전경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도 작년 탄핵집회에 나갔을까. 이길준 이경 같은 이가 그 때 전경들 중에, 그리고 지금 경찰들 중에 얼마나 있을까. 이른바 '빛의 혁명' 이후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지 거의 1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노동자들은 얻어맞고 잡혀 들어가고 있는 중인데.
상영 및 질의응답 시간이 끝나고 최근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재판을 앞두고 있는 한베평화재단의 김민형 활동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솔직히 완전히 공감은 못하겠어요. 그렇지만 힘든 결정이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그건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김민형 활동가는 그저 웃으면서 날 몇 번 본 기억이 난다고, 가끔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난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솔직히... 오늘 본 이 다큐멘터리 영화가, 앞서 길게 적은 내 기본적인 생각을 바꾸지는 못했다. 그저, 대체 복무 제도를 지금보다 더 더 강화 및 확대하고 병역 거부자를 국가주의적 논리로 낙인 찍는 짓거리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좀 더 강해진 정도다.
며칠 전, 꿈을 꿨다. 현재의 기억을 유지한 채로 과거의 나 자신에게 빙의해서... 내 실패들, 내 회한들, 내 좌절들, 내 오욕들을 모두 고치는 꿈이었다. 덤으로, 한 때 사랑했던 사람과도 결국 이어지는... 그런 꿈이었다.
깨고 나서 반사적으로 중얼거렸다. "빙의 따위, 집어치워. 그것도 내 인생이야."
솔직히 인정한다. 그것들은, 아주 큰 상처다. 그 상처가 너무 커서 난 망가졌고, 죽으려고 했고, 그조차도 못했다. 그 이후로 난 더 이상 희망이나 행복 같은 걸 원하지 않게 되었다. 난 타인과 섞여 화내고 웃고 울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人間으로 사는 걸 더 이상 원하지 않게 되었고, 그런 건 人間에게나 필요한 것이라고 여기게 됐다. 그 날 이후 항상 '애초에 그런 감정 같은 걸 느끼지 않는 바람이나 빗방울이나 모래알 같은 걸로 태어났다면 좋았을텐데' '빨리 죽어 無가 돼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속에 있었다.
이제 그 절망은 너무나도 길고 깊어서, 내 정체성을 구성하는 근본이 됐다. 만약 지금 와서 그걸 전부 없던 걸로 할 수 있다면,
이제 나는, 이 절망이야말로 내 영혼의 모습이라는 걸 안다. 나는 결코 떨쳐낼 수 없는 이 약함과 초라함, 남루함과 함께 홀로 살다 홀로 죽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절망은 오직 나만의 것이며 내 삶의 증거이기도 하다. 그걸 쉽게 없애거나 '행복'으로 대체하면, 내 절망도 그만큼 쉽고 가벼운 얄팍한 것이 된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거다.
마침 오늘은 노동절이었다. 노동자의 삶과 권리라는 대의도 물론 있다. 당장 지금의 나 자신도, 소설로 밥 벌어먹지 못하고 계약직과 임시직을 전전하며 사는 가난한 노동자기도 하고.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나 자신의 삶을 스스로에게 입증하기 위해, 나의 삶과 고통과 투쟁을 하찮은 걸로 만들지 않기 위해 집회 현장에 나간다.
오다가 '노동절이라는 칭호는 공산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적힌 피켓을 든 애들이 보이길래 비웃어주고 지나쳤다. 트위터 쪽에서 얼핏 보니 내가 오기 전 무대에 난입해 난동부리다가 끌려나간 모양이다. 뭐... 그렇게 살다 뒈지라지.
청계광장에 있는, (나 혼자 멋대로 나선력 탑이라고 부르는) 정체불명의 구조물. 2008년 이명박 때도 난 여기에 있었다. 그 때 난, '더 나이가 들면 나도 세상이 원래 그런 거라고 대충 얼버무리며 타협하고, 내 좌파로서의 이상이고 뭐고 다 집어치우게 될지도 모른다'고 불안해했었다. 세월이 지나 박근혜와 윤석열을 거쳐 이재명에 이른 지금, 난 여전히 여기에 있다. 그걸로 괜찮다.
우리는 지금보다 더 강하게... 오늘 우리가 사는 이곳이 더 아름다울 수 있게...
인터내셔널 깃발 아래, 전진.
이명박 때, 부모님 손을 잡고 집회에 나온 어린아이들을 보면서 그 때의 나는 '저 아이들이 거리로 나올 필요가 없는 나라'가 되길 바랐다. 이제 다시 또 아이들이 있다.
그 겨울날 밤 한강진에서 "정권이 바뀌어도 우리는 계속 싸울 것이다, 그래도 너무 미워하지 말아달라"던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도, "노조 마음껏 해라"고 말하던 이재명 대통령도 지혜복 선생님의 부당전보와 고진수 님의 구속, 그리고 서광석 열사의 죽음을 외면하고 있는 지금, 그 바람은 앞으로도 이뤄질 수 없을 거라는 걸 안다.
꽉 막힌 하늘 언제부턴가 네 앞에 길은 막혀버렸나 너의 심장 속의 노랫소리가 이제 더는 들리지 않는가 눈을 떠 눈을 떠 어서 눈을 떠 새로운 적이 다가오기 시작해 너의 가슴속에 고동소리가 타오르며 들리지 않는가 끝이 나지 않은 노래여 너를 끝내 불러 내리라 가슴속에 묻은 기억이 너를 끝내 지켜 주리라 흐르는 시간 빛 바랜 영광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달콤한 시간 네가 다시 일어나 싸울 벌판에 적의 눈이 보이지 않는가 메마른 나의 영혼 가득히 뜨거운 눈물 차오르기 시작해 다시 뛰기 시작한 심장속으로 한줌의 피를 보낸다 끝이 나지 않은 노래여 너를 끝내 불러 내리라 가슴속에 묻은 기억이 너를 끝내 지켜 주리라 어두운 하늘 끝으로 진실을 보러 가리라 내게 쥐어진 삶의 무게를 버티고 다시 또 일어나 네게 들려주리라 심장의 노래를 메말라 붙은 나의 영혼 가득히 뜨거운 눈물 차오르기 시작해 끝이 나지 않은 나의 노랫소리여 이 밤이 가기 전에 불러 내리라
"피청구인 윤석열을 파면한다"라는 선고가 나오는 순간 "이겼다!" 라고 외친 것,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던 감각을 아직 선명히 기억한다. 그로부터 딱 1년이 지났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오늘, 개인적으로 내 일상은 변한 게 없다. 여전히 직장 일은 힘들고(작년에는 정신적으로, 올해는 육체적으로 힘들다), 돈은 지지리도 없고, 가족과의 관계는 서먹하고, 내가 사랑하는 소설은 아무도 관심 없고, 연락 주고 받는 친구도 변변히 없고, 지극히 당연히 연인도 없다. 원하지도 않게 된지 제법 됐다.
난 지금도 작은 임대 아파트에서 홀로, 대충 밥 차려 먹고 설거지하고 배수구 청소를 하고 세탁기 돌리고 화장실 타일에 낀 물때와 곰팡이 청소를 하고(잘 안 닦인다) 가끔 바퀴벌레가 나오면(요즘 갑자기 보인다,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에프킬라 뿌리고 그 주변을 벅벅 닦아내는 일상을 산다.
하지만, 내 남루하고 보잘 것 없는 일상은 그 승리의 기억을, 내 투쟁의 기억을, 내 명예의 기억을 더럽히지 못한다. 그것은 나의 것이다, 인터넷에서 누군가가 자기만족 때문에 시위놀이한다고 비웃건 말건. 그 기억은 변함 없이 나를 지켜주고 있다. 이명박 때 그랬듯, 박근혜 때 그랬듯.
전에도 트위터에 썼다시피... 내 경우, 이 투쟁은 결국은 나 자신을 위해서일 뿐이다. 그게 제일 큰 이유기에, 남들의 인정이나 감사를 바랄 수는 없다. 내 핵심적인 동기는 어디까지나 이기적이다. 나는 내가 그런 인간이라는 걸 이해하고, 그런 스스로를 인정한다.
그렇기에, 오늘도 간다. 4시 안국역 6번 출구 앞 비상행동 시민대회. 그 후에는 용산 서울시 교육청 앞.
나름 이타심이나 정의감도 아예 없지는 않지만 결국은, 오직 나를 위해. 미래의 나 자신에게 수치를 주지 않기 위해, 과거의 나 자신에게 감사할 수 있기 위해. 그것은 오직 나만이, 오직 나만을 위해 지펴낼 수 있는 불꽃의 노래이기도 하다.
"...끝이 나지 않은 노래여 너를 끝내 불러 내리라 가슴속에 묻은 기억이 너를 끝내 지켜 주리라 어두운 하늘 끝으로 진실을 보러 가리라 내게 쥐어진 삶의 무게를 버티고 다시 또 일어나 네게 들려주리라 심장의 노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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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엄청 비장돋게 써놓고서는 '갔다 와서 마음 편히 탄핵 1주년 기념으로 비싼 거 먹으며 한 잔 하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밀린 청소랑 잡일하다 보니 생각보다 늦어져 4시인데도 아직 못 나가고 있다 어버브브븟. 히밤 안국역은 제끼고 교육청만이라도 가야겠다. 작년 오늘 걸었던 그 길을 한 번 더 걷고 싶었는데 내가 뭐 늘 이렇지ㅠㅠㅠㅠㅠㅠㅠ
사실 이 바닥에서 '정부나 기업의 비밀 초능력 연구시설에서 탈출한 실험체가 자신을 이용하려는 자들과 자신이 지키고 싶어하는 일상 사이에서 분투한다'는 설정은 진부한 수준을 넘어서 현재 시점에서는 오히려 일종의 양식미로 느껴질 정도다. 말하자면 요즘 판타지물에서 '오직 세계 정복과 인류 멸망을 목적으로 하는 정통파 마왕'이 오히려 신선하게 보일 정도랑 비슷한 수준인 거.
하지만 이 시리즈의 장점은 그 진부한 설정을 현대 한국 배경으로 옮겨놔서 맛이 꽤나 독특하다는 점이다. 일단 배경 설정 설명을 작중 인물들이 별로 많이 하지 않는 편인데, 워낙 설정이 전형적이다 보니 이런 장르에 익숙하다면 충분히 알 만하고 일반인 관객들도 대강 맥락 상 때려 맞출 만 하다. 장르 영화에서는 인물 입으로 설정 설명을 많이 할수록 영화가 구려지기 쉽다.
김다미부터 해서 최우석, 박희순, 조민수 등 배우들도 다들 한 가닥하는 뛰어난 배우들이고. 무엇보다도 초능력(주로 염동력)과 강한 신체능력으로 싸우는 초인들의 격투 장면이 무척 훌륭하다.
클라이막스 부분에 대부분의 전투 씬이 몰려 있긴 한데, 싸우고 부수는 액션 장면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얼추 만족할 수 있을 정도다. 마블 히어로 영화와 비교해도 전혀 떨어지지 않는 수준이다.
단점으로는 1과 2 모두 이야기 구조가 대칭적인데 비해(조직의 연구 시설에서 탈출한 초능력자 소녀와 일반인 보호자의 만남, 그리고 소녀를 이용하거나 죽이려는 조직의 갈등) 두 주인공의 갈등요소나 대비점이 미약해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는 느낌이 든다.
만화 캐릭터가 한다면 자연스레 넘어갈 수 있는데 실사 영화의 배우가 연기하는 인물들이 하니까 오그라드는 중2스러운 대사도 문제점.
비주얼이나 디테일은 매력적이고 개성 있는 악역들을 여럿 풀어놓고, 정작 스토리 상에서는 '혐성질이나 좀 하다가, 주인공이 본격적으로 힘을 쓰자 쳐발리는 역할'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문제. 그래도 이건 2에서 3자 대결구도가 잡히며 좀 나아졌다.
가장 큰 문제는 2에서도 1에서 제시한 떡밥들을 전혀 해소하지 않고, 더 많은 떡밥들만 풀린다는 거. 감독으로서는 잔뜩 모아뒀다가 한꺼번에 터뜨릴 심산인 모양이지만, 이야기의 탄력이 유지되려면 앞서 던진 떡밥을 금방 회수하는 동시에 새 떡밥을 던지는 걸 반복해야 한다. 예술영화라면 그건 단점이 아니지만(오히려 예술영화에서는 그러한 기존 플롯의 해체 자체가 미학적 시도 내지 새로운 실험의 일환이 된다), 이건 액션 위주의 상업 장르 영화다. 이런 장르에서 플롯이 늘어진다는 건 큰 문제다.
외전 드라마도 있다던데 그건 아직 안 봤고... 현재로서는 '새로운 건 없지만 대체로 재미있고 볼 만한, 한국산 초능력 액션 영화. 하지만 캐릭터 활용과 이야기 구성에서 문제가 있다' 정도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1 2편만 가지고서는 전체 세계관 내에서 유의미하게 이야기가 진전되고 있다는 느낌이 딱히 없어서... 드라마가 이 문제를 해결했다면 더 볼 예정. 위에선 진부하다고 까긴 했지만, 내가 원래 이런 거 좋아하는 것도 있고.
자신들의 자랑스러운 조국을 '정의로운 대의를 위해 실질적인 힘을 행사하는, 다른 나라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특별한 나라'라고 믿었다. 이 '미국만은 특별하고 예외적이다'라는 거의 종교적인 확신은 파운딩 파더들의 시대부터 시작해,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고 냉전기 블루팀의 수장 겸 세계경찰(웃음) 역할을 할 때 절정에 달했다. 냉전이 끝난 후에도 중국이건 러시아건 단독으로는 군사적, 경제적, 문화적 모든 측면에서 미국을 도저히 상대할 수 없다는 압도적인 유일 초강대국으로서의 실질적 파워가 그 믿음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사상 최초로 미국 본토가 직접 외부에 의해 공격받고,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정보통신의 발달로 미국의 정의와 특별함이 실제로는 대단치 않다는 것, 한 발 더 나아가 트럼프가 집권하고 국회에 남부 연합 깃발이 걸린 이후 그것은 환상에 불과했다는 게 명백해졌다.
진실은 드러났고, 그 진실 앞에서 미국인들의 시대정신(그런 게 있다면)이 갈 길은 둘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한다. 1)어떻게든 그 정의와 특별함을 진짜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거나 2)자신들이 정의롭지도 특별하지도 않다는 걸 인정하고 그냥 노골적으로 양아치 짓을 하거나.
예의 그 환상은... 팍스 아메리카나를 선도하는 제국주의적 오만과 자기기만의 증거이기도 했지만, 적어도 동맹국들에 대해서는 나름 '관대하고 품격 있게' 대하는 여유의 원천이기도 했다. 그리고 난 미국인들의 시대정신이 2)로 기울 거라는 꺼림칙한 예감을 떨치기 힘들다. 오타쿠스럽게 비유하자면... 마블 드라마 데어데블 1시즌 막판에서 '자신이 선한 사마리아인은 커녕 사제나 레위인조차도 아닌, 행인을 습격하는 강도였다'는 걸 자각하고 완전히 빌런으로 각성한 윌슨 피스크와 같은 길을 가지 않을까 싶은 거.
영감을 얻기 위해 엄청 오랜만에 스티븐 킹의 '샤이닝'을 다시 읽는 중이다. 새삼 확인한 사실은, 내가 잭 토런스와 꽤나 닮은 인간이라는 점이다. 그래도 난 결혼도 안 했고 자식도 없이 혼자 사니까, 최소한 가까운 사람을 다치게 할 가능성은 낮다. 앞으로도 그러길 바란다. 혼자 살다, 혼자 죽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길 바란다. 진심을 담아, 아주 간절히.
....
그래도 내가 한 때 사랑했던 사람은.... 행복하게 잘 살길 바란다. 나에 대해선 잊은 채.
오늘은 룬썩10 탄핵 이후 첫 삼일절이다. 국내 문제는 일단 급한 불길은 막았지만(좌파로서 이재명의 행보가 마냥 좋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국제 레벨에서는 여전히 상황이 나쁘다. 팔란티어 사 중역이란 새끼는 미군과 제휴해 팔레스타인 공격 과정에서 데이터를 수집하면서 사이코패스 같은 소리를 지껄였고, 트럼프는 베네수엘라 때에 이어 또 의회 동의 없이 미군을 동원해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의 민간인들을 폭격했다.
아침에 평소보다 몇 분 빨리 나왔는데, 바로 앞에서 버스 놓쳤다. 신호등 걸린 상태라 뛰어갈 수도 없었다. 저번에도 이런 상황에서 뛰다가 굴러서 다친 게 떠올라 얌전히 10분 쯤 늦게 가는 걸 선택했다 옘병.
한 주의 시작이 참 가뿐하고 좋네 생각했는데... 손 느리다고 사수에게 한 소리 들었다. 하 씹 지금도 내 딴에는 최대한 서두르고 있는 중인데, 이 나이 처먹고 느리다고 갈굼 먹으니까 이등병 때로 돌아간 기분이 드는 게 젊어진 거 같아서 막 졸라 상퀘했다. 퇴근하면서 집 앞 벤치에서 담배 피우고 있다가 저 앞에서 어떤 사람이 개 데리고 산책하길래 무심코 중얼거렸다. "개같네." 중의적인 의미다. 씻팔.
꿈 속에서, 난 2025년 겨울로 돌아가 있었다. 그 꿈 속에서, 윤석열의 내란은 성공했고 날 비롯해서 저항하는 사람들은 무장한 군인들과 장갑차, 헬기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 절망감과 두려움 속에서 난 군인들을 향해 맨 손으로 돌진했고, 그러다가 깼다.
수많은 가능성의 평행 세계 중에선, 어쩌면 그런 곳도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이 곳의 나는, 결국 내가 믿는 대의나 가치, 신념 같은 것과는 무관한 종류의 고통과 좌절을 견디지 못하고 홀로 미쳐서 죽을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가치 있는 일을 위해 싸우다가 죽는 나도 어딘가는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하지만, 대의나 가치, 신념 같은 것을 위해 견디는 고통과 그저 개인적인 실패와 상실로 인한 고통은 어차피 결과적으로 같은 것이며 어느 한 고통이 유독 대단히 고결하고 다른 고통이 비천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죽는 걸 굳이 힘들여가며 미룰 필요가 있을까?
이미 죽으려고 했던 적이 있다. 그 때는 실패했고, 그래서 지금 숨이 붙어 있다. 그러나 그 이후로 항상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면 다시 시도하면 돼, 이번엔 더 확실한 방법으로'라는 생각을 마음 속에 품고 있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긴 하다.
몇 년 동안 한 집에서 산 사촌 누나가 극도의 쇠약 증상으로 입원 중이다. 지금도, 생명유지장치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다.
오늘 출근했다가 사수에게 혹시 조퇴 가능하냐고 물었다. 당장 할 생각은 아니고 만약 조퇴해야 할 상황이 생길 경우 어떻게 하면 되느냐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다가 가족이 입원 중이라는 걸 말했는데... 사수는 별 관심 없는 듯하더라.
당연한 일이다. 사수는 대체로 괜찮은 사람이지만 나와는 별로 오래 본 사이도 아니고, 딱히 친분도 없다. 그 사람 입장에서는 부사수가 그런 말을 해도 타인의 집안 일에 뭐라고 말 얹기가 애매할 것이다. 당장 지금 일터에 사람이 한 명 빠지면 구멍이 확 생기기도 하는 상태고.
다만... 바로 얼마 전에 '비굴하게 웃으면서 남의 우산 밑으로 기어 들어가지 마라'라고 20년 전의 자신에게 조언해놓고, 무의식 중에 남에게 싸구려 위안을 얻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어서 그게 좀 수치스럽다. 좋은 말 몇 마디, 사소한 친절 한두 번 따위로 나아질 리가 없다는 건 뼈저리게 아는데도, 또 무심코 그 따위 것에 의지하려 든 게 아닐까 해서.
내가 이런 인간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난, 홀로 낡고 닳아 부서져 갈 것이다. 빠를 수록 좋다.
뉴스를 보며 문득 노무현 전 대통령이 떠올랐다. 그 역시 이라크 전쟁 파병 결정을 내리면서 '미국과의 관계를 위해선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 '기왕 하는 거 국익을 위해 최대한 반대급부를 받아내야 한다' '전투부대 파병하는 건 아니니까 이 정도는 괜찮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아마도 분명히 많이 고민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잘한 짓이 되는 건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그를 많이 닮았다. 난 노무현의 근성과 투지, 용기와 기개를 높이 사면서도 바로 그 이라크 파병, FTA 강행,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분신을 투쟁 수단으로 삼아선 안 된다"고 혀 차면서 내려다 보던 태도 때문에 그를 좋아할 수는 없었다. 그랬기에 그가 결국 그렇게 죽었을 때도, 슬퍼하면서도 추모는 하지 않았다. 노무현이 대통령으로서 국가를 위해 내린 결정 때문에 갈려나갈 미래를 예감하던 가난한 좌파 대학생은,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지금의 이재명도 그와 같은 근성과 투지, 용기와 기개를 갖고 있다. 난 그걸 인정하고 높이 사면서도(이낙연 따위 야비한 기회주의자는 그게 없다) 무심하고 냉정하게 전장연 앞에서 "다 하셨어요?" 하던, 그리고 작년 대선 전 진보당의 단일화에 "뭐 저야 고맙죠" 하던, 양적 공리주의자 행정기계 이재명을 대통령으로서 좋아할 수 없다. 그리고, 노무현이 결국 그러했듯 이재명 역시 미국에 굴종한다면 저항할 것이다. 지금도 썩 좋아하진 않지만 더 강하게, 적극적으로.
결국은 대의가 아니라 오직 나를 위해. 나는 굴복하지 않았다는 기억을 미래의 나에게 전하기 위해. 그 미래의 내가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것은 철저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이유다. 난 내가 그런 인간이라는 걸 알고, 받아들이게 됐으며, 부끄럽지 않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지난 1년이 좀 넘는 기간 동안 광장에서 스쳐 지나간 많은 사람들의 '동지'가 될 수 없는 이유기도 하다. 그들은 훌륭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다. 그리고 나는 내가 나인 것으로 만족한다.
트위터 쪽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썼는데(내일 쯤이면 지울 지도 모르겠다)... 그 쪽에는 쓰지 않은 이야기 하나 더. 사실 낮까지만 해도 트위터에서 현장의 활동가나 진보정당 당원들이 '늘 보는 사람들만 보인다' '새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고 푸념하는 걸 보고 기분이 복잡했다. 딱히 대단한 환대나 상찬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나도 없는 돈과 시간 쪼개가며 후원하고 교통비 들여서 투쟁현장 가는데 없는 사람 취급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하지만 좀 더 생각해 보니 그런 생각도 들었다. 내가 나라는 걸 진심으로 받아들인다면, 그것 역시 받아들여야 하는 거다. 솔직히 누가 "저번에 오신 그 분이군요, 반가워요! 자주 보는 것 같네요. 연대 감사합니다! 활동가세요? 어느 지회 소속이세요? 여기 오셔서 같이 앉아 이야기해요!" 뭐 그러면 난 부끄러워서 도망치고 싶어질 것 같기도 하고.
세종호텔 로비에서 함께 웃고 있던 그 사람들처럼 확고한 신념과 정의감을 갖고 싸우는 게 멋있는 거지... 이런 건 멋없고 짜친다고 스스로도 생각한다. 뭐, 그게 나니까.
문득 작년 이맘 때 꾼 꿈이 기억났다. 어느 투쟁 현장에선가, 같이 집회 나온 낯선(하지만 친절한) 사람들과 둘러 앉아 웃고 노래하는 꿈이었다. 그 꿈 속에서 나는 행복했던 것 같기도 하다.
사실 가지 말까 고민했다. 그 사람들은 다들 작가로서 어느 정도 (벌이는 안 좋을 망정 최소한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져 있고 일감이 들어온다는 부분에서)안정된 궤도에 올랐거나, 인간으로서의 행복을 찾았다. 여전히 그 사람들과 나름 친분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사람들이 잘 됐으면 좋겠지만... 한편으로는 직접 보면 열등감과 질투심이 들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스스로의 추함을 견디기 힘들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만나보니 평범하게 반갑고,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마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한다. 열등감이나 질투심은 대상이 '삶'을 영위하는데 있어 나보다 나은 조건이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드는 거다. 그리고 나는 '삶'을 원하지 않는다.
내 소설은 그저 쓸 수밖에 없으니까 쓰는 거다. 그리고 나 자신은 이제 홀로 살다 홀로 죽기만을 원하게 됐다.
다시는 그 사람들을 만날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오늘 모임도 몇 년 만이었다. 내 옛 친구들인 그들이 부디 행복하게 잘 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