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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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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루릭 섬에 사는 이누이트 족 노인에게는 (조상 대대로 이어 온 능력을 감퇴시키는) GPS 기술 도입이 문화적 비극이라며 안타까워 할 충분한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방향표시가 잘 되어 있는 대로들이 종횡으로 놓여 있고, 주유소, 모텔, 세븐 일레븐 편의점들이 즐비한 곳에 사는 우리는 대부분 이미 오래 전 놀랄 만한 길찾기 기술 활용 관습과 능력을 모두 잃어 버렸다. 특히 자연적 상태에서 지형을 인식하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은 이미 많이 축소됐다. 우리가 더 쉽게 길찾기를 할 수 있다면 더 줄어들거나 아예 없어진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다.

 

더 이상 길찾기 능력을 보존하는데 문화적 차원에서 큰 관심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여전히 개인적 차원에서는 그 능력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우리는 결국 지구의 피조물들이며 컴퓨터 스크린에 뜬 가느다란 파란 선을 따라 이어진 추상적 점들이 아니다.실제 장소에 존재하는 실제 몸을 가진 실제 존재들이다. 한 장소를 알기 위한 노력은 성취감과 지식을 안겨 준다. 개인적 성취감과 자율성을 선사하고 더불어 소속감- 즉 어떤 장소를 그냥 지나쳐 가기보단 그곳에서 집에 있는 것과 같은 안도감을 느낀다.

 

부빙 위에서 활동하는 순록 사냥꾼이나 도심에서 싸고 질 좋은 물건을 찾아 다니는 사람 중 누구에게나 길찾기는 소외에서 애착으로 이어지는 길을 열어준다. 우리는 '정체성 찾기'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인상을 찌푸릴지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모호하고 진부해도 그런 비유적 표현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우리가 오래 고민한 문제와 얽혀 있다. 우리는 중요한 걸 포기하지 않고선 자아를 주변 환경과 분리할 수 없다.

 

(중략)

 

구글의 맵핑 전담 부서의 임원인 마이클 존스는 '구글 맵이 깔린 휴대폰을 갖고 있으면 지구 위 어디라도 돌아다니며 구글이 안전하고 편하게 가고 싶은 방향을 알려줄 거라고 자신할 수 있다' '이젠 누구도 다시는 길을 잃었다는 느낌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선언했다. 그의 말은 매력적인 선언처럼 들린다. 마치 우리의 몇 가지 기본적인 존재론적 문제가 영원히 해결된 것 같다. 그리고 이 선언은 사람들의 삶에서 '마찰'을 제거하기 위해 소프트웨어 사용에 집착하는 실리콘 밸리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하지만 이 선언에 대해 생각해 볼수록, 절대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영원히 위치 감각을 상실한 상태에서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현재 위치를 몰라도 걱정 없다면, 굳이 현재 위치를 알고 있어야 할 필요도 없어진다. 즉, 휴대폰과 앱의 보호 속에서 늘 그들에게 의존하는 상태로 살게 된다는 걸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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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적으로 봤을 때, 이 뒤에는 투고 사실을 잊어 버리고 있는 게 좋다. 게임이나 좀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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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로란:검을 휘두르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짧게 다듬은 붉은 머리. 다갈색 눈동자(계약 당시 화룡이 가져간 쪽 눈은 로란이 용의 힘을 쓸 때마다 붉게 빛난다). 웬만한 남자들만큼 큰 키에 잘 짜여진 근육질. 굳은 살이 박힌 손. 강인하고 당당한 인상의 30대 초반 여성.

2)케인:매우 짧게 다듬은 갈색 머리칼. 명석하면서도 고집스러워 보이는 검은 눈동자에 다리 부러진 안경. 전체적으로는 평범하고 눈에 잘 띄지 않는 인상. 비교적 작은 키에 깡마른 체격을 가진 20대 초반 남성.

3)아리엔:목을 좀 넘는 아마색 단발 머리에 해맑으면서도 당돌한 느낌을 주는 푸른 눈동자. 약간 젖살이 남은 통통한 얼굴, 희미한 주근깨. 꽤 미소녀지만 계속 들려오는 엘드레드의 목소리 때문에 평소엔 늘 살짝 찌푸리고 다닌다(이후 마음의 방에 클레톤을 들이면서 표정이 풀린다).


번외-

유마:새카만 장발 머리에 검은 눈동자, 가는 눈매에 짧은 콧수염을 기르고 판초를 두른 동유럽 풍 중년 남자.... ....라고 상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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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도 소설(특히 폴라리스 랩소디를 거쳐 눈마새, 피마새)에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관념은 니체식 허무주의다. 니체의 허무주의를 간략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원래 철학이란 게 이런 식으로 요약하면 안 되는 거긴 한데).


1)이 세상에 절대적인 가치가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2)보편적으로 '위대하다'거나 '고귀하다'거나 '선하다'고 받아들여지는 것 역시 외부의 권위에 입각한 것이기에 허무주의자는 적극적으로 그것을 거부해야 한다

3)개인이 철저하게 자신의 자유 의지로 '나에게 의미가 있다' '내 욕망의 대상이다'라고 결정한 제일가치만이 유일하게 중요하다

4)도덕이 되었건 종교가 되었건 사회적 합의가 되었건 모든 종류의 관념적 권위(그의 저서에서 신, 우상이라고 계속 비유하는 그것)를 완전히 무시하고 오직 자신이 제일가치로 삼은 그 무언가를 위해 살고 죽을 수 있는 인간이 바로 초인(위버멘쉬)이며, 모든 인간은 그러한 초인을 지향해야 한다

5)초인이 발견한 자신의 제일가치가 결과적으로 기존의 도덕이나 진리와 비슷할 수는 있어도 그저 권위에 맹종해서 그걸 따르는 것과 초인이 주체성을 갖고 제일가치라고 판단해서 따르는 건 완전히 다르다  

6)각자의 제일가치가 충돌하는 두 초인이 만나면 높은 확률로 한 쪽이 죽을 때까지 싸우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산 쪽은 계속 살아서 자신의 제일가치를 추구할 수 있으므로 좋고 죽은 쪽도 죽음을 통해 자신의 제일가치가 그만큼 의미있다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했으므로 


결과적으로 허무주의자(특히 니체식 허무주의자)는 극한의 개인주의자가 된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제일가치를 남에게 강요하지 않지만(물론 타인을 존중하기 때문에 강요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의 제일가치는 오직 그만이 독점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이 자신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특히 신이나 도덕, 전통, 충성 등을 이유 삼아 그렇게 하는 것)을 철저히 거부한다. 그리고 그 제일가치를 위해 남에게 위해를 가해야만 한다면 거리끼지 않고 그를 행한다.  


폴랩의 경우, 데스필드가 '사람들은 정의를 위해서 한 일이라고 말하는 건 좋아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어서 한 일이라고 말하는 건 꺼려한다, 그런 건 불한당의 화법이라고 여긴다'라고 생각하는 장면이 나온다. 우상에 대한 우회적 비판이라고 읽을 수 있는 장면이다. 휘리 노이에스 역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컴플렉스 때문에 내내 괴로워하다가 파킨슨 신부와의 고해성사, 율리아나 공주와의 만남을 거치며 그러한 컴플렉스와 죄의식에서 해방되어(니체 식으로 표현하자면 노예의 도덕을 벗어나) 주체적으로 자신의 군사적 재능-증오하는 아버지의 유산이라고 생각했기에 그 동안 억눌러 온-을 마음껏 발휘하게 된다. 눈마새의 주퀘도 사르마크가 갈로텍에게 하는 "도덕을 요구하는 나약한 것들의 천박한 투정 따위 무시해. 그것들은 도구인 도덕을 삶의 목적으로 만들고 삶을 도덕의 도구로 바꾸지."라는 조언에서 그러한 주제가 특히 두드러진다.


 그러한 니체식 허무주의가 싫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영도의 소설들을 꼼꼼하게 읽어 보면 이영도 스스로가 작가로서 그러한 허무주의를 긍정 내지 옹호한다고 볼 수 없다. 그의 소설 대부분이 허무주의에 기반하고 있으며 허무주의자 캐릭터들도 다수 등장하지만 그 중 특정 캐릭터가 이영도의 사상을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근거는 없다. 드래곤 라자부터 피마새(약간 확장해서 보자면 오버 더 시리즈의 첫 작품인 오버 더 호라이즌도)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에서 내내 가장 직접적으로 강조되는 것은 한 초인의 위대한 여정이 아니라 사람들 간의 교류와 이해, 변화의 중요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교류와 이해, 변화가 다만 긍정적으로만 묘사되지 않는다는 것, 피마새에 이르러선 작품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전쟁 장면을 통해 그러한 '교류와 이해, 변화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부정적인 면면'들을 세밀하게 묘사하면서 '독자를 마음 편하게 하는 일차원적 해피 엔딩'으로 결말을 내지 않는다는 것이 이영도의 독보적인 점이다. 


만일 이영도가 그런 작가였다면 퓨처워커의 미 그라시엘(주연급 캐릭터 중 하나로서 많은 비중과 매력적인 캐릭터성으로 독자의 인기를 얻기에 충분한 캐릭터)은 자신의 비참한 미래를 알면서 세상의 시간을 지속시키기 위해 그를 담담히 받아 들이는 대신 어떤 식으로든 미래가 바뀌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캐릭터가 되었을 테고, 눈마새의 케이건도 작품 최후반 나가에 대한 증오를 버린 이후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묘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영도는 그렇게 하는 대신 쳉이 (돌아온다 해도 함께 오랫동안 행복하지는 못할) 미를 기다리며 오두막을 짓는 모습, 폴라리스가 멸망하는 모습, 나무가 되어 버린 륜의 모습을 독자에게 보여줌으로써 깊은 여운을 남긴다. 새 시리즈를 벗어나, 이영도의 작품세계 한 축을 지탱하기도 하는 오버 더 시리즈의 주인공 티르 스트라이크는 허무주의를 배격하는 인물이기도 하고(오버 더 호라이즌에서 티르와 루레인이 대화하며 티르가 "그 때문에 사람이 죽습니다, 그런 악기는 입다물어야 합니다"라고 단언하는 장면을 상기하라). 


그러한 철학이 이야기 내에서 자연스럽게 형상화되지 않았다는 관점에서 이영도의 소설을 비판하는 것은 여전히 가능하다. 하지만 '이영도가 같은 주제만 반복한다'는 식의 비판은 동의하기 어렵다. 그가 내내 하고 있는 주제는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이야기이며, 이것은 평생을 바쳐 탐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미흡했던 드래곤 라자부터 시작해 피마새에 이르기까지 내내 그가 다루는 세계는 넓어지고 있다. 


이영도 비평 관련해서는 거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영도의 문장력도 높게 평가하는 편이다. 눈마새를 거쳐 피마새로 오면서 점차 건조해지는 경향이 있지만 퓨처워커나 폴랩에서는 굉장히 시적이고 유려한 미문들이 많다. 피마새의 전쟁 묘사는 그 반대로 지극히 담담하고 건조하다. 그토록 메마르게 온갖 참상을 독자의 하트에 직격으로 쏟아 부을 수 있는 작가는 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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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lethes08 2018.07.10 22:19 address edit/delete reply

    좋은 리뷰군요. 흥미로운 분석 잘 봤습니다.

    신작인 오버 더 초이스 리뷰도 언젠가 올려주세요.

    • 자레드 갈렝 2018.07.11 11:49 신고 address edit/delete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단상 수준에 불과한 글을 좋게 봐주셔 감사합니다. 오버 더 초이스 리뷰도 생각은 하고 있지만 직장 일이 바쁘네요.


*장편에 더 어울리는 설정인 듯

*결말 부분은 스터전의 인간을 넘어서느낌이 살짝 난다

*요원이 설명해 주는 역사의 변화를 디테일하게 풀면 이야기가 상당히 길어질 듯. 타임머신 타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는 걸 더 보고 싶다. 역사가 바뀐 걸 좀 더 보여줬으면 좋았을텐데

*연작 단편들 형태였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핑크와 요원의 대화에서 제시되는, 역사의 변인에 대한 설명이 학습 만화 보는 느낌이다

*술집으로 위장된 타임머신 플랫폼 등 디테일하게 풀면 굉장히 재미있을 만한 소재가 많아 아쉽다

*마지막, 타임머신을 타고 수메르와 이집트, 중국으로 가는 게 너무 이야기가 커지는 것 같다. 이거 수습이 가능한가? 하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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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 소설 다시 써야지.... 아오 나도 얼른 데뷔하고 싶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초조함만 쌓이네. 


인터넷 방송인 '쉐리'님의 엑스컴2 중계(정확히는 3개월이나 전의 것이 유튜브에 올라온 것)를 보다가 2지구가 터지는 걸 보고는(...) 앉은 자리에서 쓴 글. 좀 건성으로 써서 배경 묘사 같은 건 거의 없지만 워밍업에는 좀 도움이 된 거 같기도 하다. 실제 게임 내의 상황과는 좀 다르다(예를 들어 예의 플레이에서 엘레나는 막스보다 먼저 어새신에게 끔살당했다). 


원래는 더 어둡고 씁쓸한 분위기를 생각하다가 크리스마스에 너무 암울한 내용도 좋지 않다 싶어서 좀 전개를 바꿨는데 영 부자연스럽다. 게임에서 사령관은 플레이어 본인이고 감정 이입을 위해 얼굴은 개뿔도 안 나오고 대사도 없고 성별도 모호하게 처리됐다는 걸 고려해서 여성적인 해요체 말투를 쓰는 한편 책상에 발얹고 담배 피워대는 식의 주로 남캐들이 자주 하는 제스처를 취하게끔 서술했는데 막판에 그 바뀐 전개에 개연성을 주입하기 위해서 사령관에게 대사를 많이 주다보니 그 모호성이 약해진 느낌. 글을 끝까지 완성하는 지구력이 후달려서 그렇지 테크닉은 나쁘지 않다고 자평하고 있었는데 녹슨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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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인'의 존재를 상정하고 그가 어쩌다 악인이 되었는지 그의 유년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재구성하는+한 발 더 나아가 한국 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해 온 구체제의 신화가 어떤 식으로 구성되었는지에 대한 은유를 섞는 우화적 성격의 호러물이다. 내가 좋아하는 크툴루 신화스러움도 슬쩍 첨부되어 있고. 크툴루 신화의 소재를 일부 차용해 오긴 했지만 이 단편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작가는 클라이브 바커고, 클라이브 바커의 작품들이 대개 그렇듯 이 단편도 최소한 겉으로 드러나는 묘사나 사건은 성적이고 폭력적이다. 포르노를 쓸 생각은 없고, 내가 이해하고 있는 한국은 그렇게 기괴하고 잔혹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유형의 '악인' 중에서도 내가 특히 혐오하는 부류(동시에 내 안에도 그러한 악성이 있지 않을까 가장 고민하게 되는 부류)의 악인 내부로 들어가서 그 심리를 나름 설득력 있게 묘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극도로 힘든 작업이라서... 단편인데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쓰다 말다를 반복했다. 그런데 다시 읽어 보니 새삼 걱정스럽다. 시부엉 나한테 그런 의도가 전혀 없다 해도 포르노로 읽히면 어쩌지? 묘사를 좀 더 완화할까? 


한국 과학문학상 심사평을 읽다 보니 2배로 걱정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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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3~12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요.


-윤동주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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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절대로, 神께 내 개인적인 복락을 빌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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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레드 갈렝 2017.09.08 03:27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그래도 자각하고 있던 이상으로 무의식 중에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 있었던 모양이다...



배명훈느님이 나새끼 소설을 보셨을 리가 없지만 스스로도 느끼고 있던 문제점이라 읽고서 헉 했다. 고... 고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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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트윗을 발견했다.


출판도 집필도 실은 자기랑 비슷한 사람들을 찾기 위한 일이다. 도서 시장이라는 우주에 책이라는 금속판을 보내는 거다. 그리고 그 어두운 공간에 레이더를 맞추고 기다린다.


“휴스턴,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사실 기력도 용기도 떨어져 있었는데, 재개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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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란, 아리엔, 케인, 세 주인공들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김사장님이 의도적으로 '독자에게 이 캐릭터의 이러이러한 면모를 어필해야겠다'는 계산을 해가면서 썼다는 느낌이 별로 안 든다. 물론 그런 계산을 안 하지는 않으셨겠지만, 그런 티가 거의 안 남. 심리묘사가 세세한 것도 아니고, 상징적인 묘사를 통해 그걸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이런 걸 보며 김사장님이 RPG 오래 한 사람이라는 티가 났다, 마스터링하면서 묘사할 때 상세한 심리 묘사나 의도적으로 배치한 배경 묘사를 길게 하는 사람은 잘 없지).


보통 소설(특히 대중 대상 장르 소설)에서는 초반에 주로 각 인물들의 성향과 가치관을 드러내는 걸 주된 역할로 하는 자잘한 사건들을 주로 배치해서 독자로 하여금 어느 정도 각 인물들의 이미지를 소화하게 만든 뒤 굵직한 사건을 일으켜서 독자가 '이런 상황이라면 이 인물은 어떻게 반응할 것이다'라고 예상하게 유도하고, 그 예상을 뒤집거나, 비틀거나, 혹은 예상되는 수준 이상으로 강하게 반응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몰입을 시킨다. 그 대신 이 소설에서는 대체로 캐릭터들이 무슨 말과 행동을 하는지 덤덤하게 보여준다. 작위적인 감정적 갈등을 일으키거나 억지로 그걸 봉합하지도 않고. 


취향이 갈릴 만한 서술법인데, 작가의 의도가 날 것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 있어서 꽤 세련된 방식이긴 하다. 나도 나름 글 쓰는 사람이지만... 난 명확한 작의를 갖고서 이야기를 통해 독자에게 그걸 전달하려고 하는 쪽이다. 너무 노골적이 된 나머지 설명이 지나치게 많아지거나(..사실 지금 쓰는 소설 다시 읽어보니 찔린다) '작가가 주제를 들이댄다'는 느낌을 독자가 받지 않게끔 나름 신경을 쓰긴 하는데... 이렇게 쿨하게 쓰지는 못한다. 


그래도 재미있다.


PS=카시아나 히베리아, 파이디 같은 이전의 메르시아의 별 리플레이에서 나온 지명들이 다시 언급될 때마다 소소하게 즐거웠다.

PS2=악마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안 나온다. 그 설정 마음에 들었었는데 혹시 폐기된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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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김보영 작가님을 만났다. 간단히 인사하고, 마침 갖고 있던 책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에 사인을 받았다. 속표지에는, "늘 행복하세요, XX님." 이라는 문장이 적혔다.


이 작품은, 광속 여행이 일반화된 시대를 배경으로 이제 곧 결혼을 앞둔 남자가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연상의 연인은 알파 센타우리에 가 있고, 결혼식 날짜를 잡아 둔 남자는 날짜를 맞추기 위해 그녀를 만나러 간다. 하지만 타고 있던 우주선에서 사고가 생기고, 상대성 이론에 의해 두 남녀는 시간의 장벽에 가로 막힌다. 남자는 연인을 만나기 위해서 끝없이 기다리고, 남자의 시점으로 1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연인은 수 백년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무척 아름다운 중편이지만, 읽는 내내 가슴이 아팠다. 나는, 결코 그 아름다움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김보영 작가님은, 내게 행복하시라고 적었다. 


나는, 행복한 삶이 아닌 그저 홀로 견딜 수 있는 삶을 바란다.

 


김보영 작가님은, 책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우주를 사랑하는 것이며 한 사람을 위한 일은 우주를 위한 일이고 한 사람을 위한 선물은 우주를 위한 선물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니 이 책이 당신께도 좋은 선물이 되리라 믿으며."



이 선물은, 내가 아닌 그 누군가에게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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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irrorzine.kr/index.php?mid=w3_nonfiction&document_srl=8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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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란 무엇인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다채로울 수 있다. 요정이 나와야만 할 필요는 없다. 인간이 나오지 않아도 된다. 용이 없어도 된다. 요는 판타지에는 신비가 있다는 것이다. 이 신비성은 딱히 스케일이 커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SF에서도 신기하고 이상한 일은 벌어진다. 그럼 SF와 판타지의 차이는 무엇인가?

 

아서 클라크는 고도로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는 유명한 언명을 남겼다. 랜달 개릿의 다아시 경 시리즈에 등장하는 마법은 보편적인 논리와 분석, 계측이 가능하다. 슬레이어즈에서는 마법으로 만든 냉장고와 거대 로봇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둘을 구분하는데 의미가 없는가? 그렇지는 않다. 판타지는 환상의 모험담이다. 반면 SF가능성의 세계. 판타지는 뭔가 신기한 일이 일어났을 때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 신이나 요정이 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SF는 그 에 신경을 쓴다. 판타지는 주로 자연의 경이와 신비를 다룬다. 한 발 더 나아가, 판타지는 과학에 있어 모종의 공포심을 갖고 있다. 판타지의 거두인 톨킨과 루이스는 2차 대전 참전 경력자였다. 톨킨과 루이스는 과학의 소산인 폭격기와 잠수함이 무수한 이들을 죽이는 걸 보았고, 톨킨은 그러한 경험을 살려 반지의 제왕에서 과학기술을 부정했다. SF와 판타지를 반드시 구분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둘은 각자의 방향성이 전혀 다르다는 점에 있어 그를 이해한다면 보다 더 훌륭한 SF와 판타지를 쓸 수 있게 된다.

 

세상사가 자기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느낄 때 사람은 신과 정령의 존재를 상정하고 그에 기원을 올린다. 늑대의 경우, 사람들은 가축을 잡아먹고 가끔 사람도 습격하는 늑대를 두려워했다. 누군가가 자신은 늑대의 힘을 빌릴 수 있다고 여기기 시작했고, 그들은 이후 샤먼이 된다. 그 이후 샤먼은 신정일치 사회의 신왕으로 발전한다(애니미즘에서 토테미즘으로의 전화). 그 이후 다신교 판테온이 성립된다. 다신교 판테온의 신들은 인간보다 강하고 현명하지만 그 욕망이나 성향, 사고방식 등에 있어 근본적으로는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신들의 이야기가 신화가 되었다.

 

하지만 신화는 동시에 인간에게 주는 교훈을 내포하기도 했다. 수메르의 여신이었던 이난나는 저승의 문을 통과하며 갖고 있는 것(광채, 옷가지, 장신구 등)을 하나 씩 빼앗기다가 결국 마지막 문을 통과하고 나자 죽어 버린다. 이는 저승에는 아무 것도 가져갈 수 없다는 교훈이 반영된 것이다(그래서 고대 수메르와 바빌론 문명의 고분에는 부장품이 없다). 신조차도 어찌할 수 없는 이러한 절대적인 정의의 개념은 교훈으로서의 신화에서 규율로서의 신화로 발전하여 인간의 도덕관념을 규정하고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하나의 대원칙- 즉 유일신 신앙이 성립되게 된다.

 

그렇다면 신화에서 판타지로 어떻게 발달했는가? 판타지는 신화에서 비롯했다. 그렇다면 역으로 판타지를 통해 신화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판타지에는 실로 다양한 갈래가 존재한다.

우선 동화(Fairy tale)가 있다. 동화는 신과 정령이 직접 등장하지 않는 신화다. 동화에서 중요한 건 어떻게 나무 인형이 말을 하느냐, 어떻게 평범한 아줌마가 작아지느냐가 아니다. 그로 인해 무슨 사건이 벌어지느냐에 주안점을 둔다.

그 다음은 검과 마법 이야기다. 이것은 신이 존재할 수는 있되 결코 직접 나서지 않는 세계에서 인간이나 그에 준하는 이종족이 펼치는 모험담이다. 검과 마법 이야기가 발달하면 할수록 신의 비중은 줄어든다. 신은 인간사에 직접 간섭하기에는 지나치게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초자연적 픽션(Supernatural Fiction)이다. 이것은 인간의 일상에 초자연적 힘이 개입하고, 인간이 그를 막는 이야기다.

그 다음은 슈퍼 히어로 판타지다. 이것은 평범한 일상을 무대로 신적 존재로부터 힘을 얻은 영웅들이 세상을 구하는 이야기다. 초자연적 픽션의 경우, 그러한 초자연적 존재가 주인공이 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드라큘라는 주인공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안타고니스트다.

그 다음은 다크 판타지다. 이것은 기사도 로망이 사라진 버젼의 검과 마법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검과 마법이라는, 인간들 고유의 힘은 남아 있지만 그러한 인간을 둘러싼 세상 자체가 꿈도 희망도 없다.

그 다음은 도시 판타지다. 삶의 공간인 도시에서 펼쳐지는 신비한 이야기다. 일상의 공간인 도시를 배경으로 하다 보니 대단히 친숙하다. 하지만 여전히 비일상적, 초자연적 요소가 있다.

그 다음은 마술적 사실주의다. 이것은 어른만을 위한 동화라고 할 수 있다. 카프카의 벌레같은 경우,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잠에서 깨고 나자 벌레로 변해 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가 왜 벌레가 되었느냐에 대해선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그 대신 그 변화는 주변 사람들의 내면의 추한 욕망과 질시를 자극한다.

그 다음은 역사 판타지다.

그 다음은 신마 이야기/기담이다. 이것은 신화와 전설이 현실과 공존하는 세계의 ’(모험이 아니라)의 이야기다.

그 다음은 차원 이동물이다. 이것은 현실을 떠나 판타지 세계를 오가는 이야기로서 주인공에게 신화적 영웅의 성격이 강하게 부여된다. 오즈의 마법사, 나니아 연대기가 이에 해당한다.

 

역사는 전설이 되고, 전설은 신화가 된다. 신화 속의 영웅 전설은, 신명 사상(신의 뜻에 따라 옳고 그름을 결정)에 기반하고 있다. 다른 한 기반은 신은 옳은 자를 수호하기에, 피고와 원고가 결투를 벌여 승리하는 쪽이 옳다는 논리에 입각한 사법 결투다. 왕의 경우, 처음에는 신의 권위에 복종한다. 하지만 지배하다 보면 자신의 욕망을 더 추구하게 되고, 권력의 망자로 타락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권력의 망자(반드시 타락한 왕 자신이 아니라, 그 왕의 타락을 상징하거나 타락의 결과물인 다른 무언가일 때도 있다)를 타도하기 위해 신명을 받드는 영웅이 탄생한다. 그러한 영웅의 여정(일상->경이의 세계->거대한 대결->보상을 얻고 귀환)을 밟는 것이 그리스 신화적 영웅의 삶이다. 조셉 캠벨이 이러한 영웅의 여정의 기본 도식을 정리했고, 그 이후 영웅의 12단계로 세분화된다(평범한 일상->모험에의 소명->소명의 거절->조언자와의 만남->첫 관문 통과->아군과 적과 시험->핵심부로의 접근->시련->보상->귀환->부활->보상과 함께 귀환). ‘호빗이 이에 잘 부합하며, 약간 변형된 형태긴 하지만 마블 히어로 영화 앤트맨도 이러한 영웅 서사의 도식에 대체로 들어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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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은 추후 업로드 예정. 


강의 내용에 대한 설문도 좀 했는데 '북팔은 너무 멀어요'라고 쓸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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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이야기가 지나치게 어둡지 않은가?


A:딱히 일부러 어둡게쓰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다. 다만 현실적으로 있을 법한,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쓰고자 했다. 애초에 이 작품의 방향 자체가 특별한 힘을 가진 사람이나 초자연적 존재가 실존하며 역사나 사회 현상에 영향을 미친다고 가정하되, 그 영향력이나 영향을 미치는 방식을 한정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이런 놈들이or 이런 현상이 진짜로 있지 않을까 하는 역설적인 의문을 갖게 하는 것이기도 하니까.

 

아무튼 그건 차지하고예를 들어 새뮤얼 같은 경우. 그는 나이가 50이 넘도록 반평생 동안 인권운동을 해 왔다. 그에 대해 디테일하게 과거사를 설정하지는 않았지만 그 동안 실패나 좌절을 겪은 적이 없을 리가 만무하다. 가끔은 자신이 좋은 의도로 돕고자 하는 사람들끼리도 별 같잖아 보이는 이유로 싸우거나 자신한테 어느 편이냐고 윽박지르는 꼴도 당해봤을 테고, ‘과연 이 고생을 해가며 이 사람들을 도울 가치가 있는지회의도 숱하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해서 이 일을 해왔다. 온갖 한계와 모순에 직면해 가면서도 그럴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이었을까? 새뮤얼 재퍼드라는 인간은 어떤 마음으로 이 일을 해왔을까


숱하게 생각해 본 결과 내린 결론은, ‘새뮤얼은, 이상을 따르던 인간이 변질되거나 타락하는지의 여부와 그 이상 자체가 과연 올바른지의 여부를 엄격히 구분하고 만일 후자라는 결론이 나온다면 그런 변질이나 타락을 아무리 많이 접하더라도 끝까지 그 이상을 추구하는 인간이라는 것이었다. 현실에서도 사회운동 오래 한 사람들 중에서는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내가 의식적으로 어둡게쓸 생각이었다면 후반에 예정되어 있는 총격전과 대규모 사망 이후 그의 신념이 깨지고 좌절한 나머지 타락하는 방향으로 썼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 일을 하며 이미 좌절이나 실패 역시 여러 번 겪어 본 사람이고, 그 사건이 그의 신념을 꺾을 정도는 아니라고, 음, 물론 무척이나 슬프고 고통스럽긴 하겠지만 마음이 무너질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새뮤얼은 최후까지 자신의 그 이상과 신념을 관철하다가 죽을 것이다. 작위적으로 상황을 시궁창으로 이끌어간다고 해서 있을 법한이야기가 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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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 백인들이 모여 사는 작은 시골 마을. 어느 날 잔인하고 악랄한 인디언들이 쳐들어 와, 말들을 훔쳐가고 주인공 일가의 딸을 납치해 간다. 가장인 아버지는 빼앗긴 말들과 딸을 되찾으려고 하지만 겁쟁이인 마을 사람들은 그냥 포기하기로 결정한다.기병대를 부르자는 말도 나오지만 주둔지까지는 너무 멀기도 하고 알려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을 거라고 여긴다. 분노한 아버지는 단신으로 인디언들과 교섭하려고 금괴와 함께 만일을 대비해 총을 한 정 챙기고서 해질 무렵 인디언들에게 찾아가고, 집을 지키라는 지시를 거부한 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쫓는다. 물론 교섭은 결렬되고 총격전이 벌어진다. 그 와중에서 아버지는 큰 부상을 입고는 남자답게 살아라” “가족들은 이제 네 책임이다운운하는 유언과 함께 아들에게 총을 넘겨준다. 아들은 무쌍을 펼쳐 인디언들을 물리치고 누나와 빼앗긴 말들을 되찾아 동틀 무렵 마을로 돌아오고, 떠오르는 태양을 배경으로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비겁함을 뉘우치며 영웅의 귀환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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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영화를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대략적인 이미지에 따라 생각나는 대로 '수정주의 서부극 대두 이전, 전형적인 흑백 무성영화 시절 서부극 스토리'를 구상해 본 결과물. 오글거려서 모니터가 폭발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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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자기 소설의 평을 받고 싶을 때는 가능한 프로한테 돈 주고 맡기는 게 좋다. 제3자라서 객관적으로 봐 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제3자이기 때문에 건성으로 보고 대충대충 말해줄 수도 있다. 아니면 '이 사람이라면 제대로 봐주겠다' 싶을 정도로 충분히 신뢰가 쌓인 사람한테 부탁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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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irrorzine.kr/index.php?mid=w3_nonfiction&document_srl=8403


원래 지난 달에 쓴 거였는데 한 달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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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자레드 갈렝 2016.05.13 10:58 신고 address edit/delete reply

    내 리뷰에 니그라토 묻었어. 에비 지지.

...글쓰기는 숲 속에서 홀로 춤을 추는 일이다. 발가락에서 피가 흐르고 관절이 쑤실 지경에 이르도록 춤을 추는 일이다. 신이 내 작품을 지켜본다는 희망밖에 남지 않는 순간까지 계속해서 춤을 추는 일이다. 신이 존재하며, 우리의 소설이 출간되든 그렇지 못하든 신이 이 작품을 기쁘게 여기리라는 희망에 매달려 춤을 추는 일이다. ...(중략)... 글쓰기란 믿음의 궁극적인 행위이며 우주를 손 안에 움켜쥐기 위한 행위다. 그에 비해 출판은 룰렛 바퀴일 뿐이다. 그래서 난 이런 결론을 얻게 되었다. 완성된 작품 안에서 어떠한 만족을 얻고 싶다면 글쓰기, 글을 쓰는 행위 자체에 내재된 정신적인 면을 해방시켜야 한다. ...(중략)... 글쓰기는 마치 신앙과도 같은 것이다. 여기에는 신과 직접적으로 교류하는 나 자신만이 존재할 뿐이다.그 어떤 블로그 운영도 글쓰기와 나와의 관계에 간섭할 수 없다. 요한이 썼듯이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글쓰기는 단지 신에게 말을 거는 행위가 아니다. 글쓰기 자체가 실로 신인 것이다...


-에릭 스테너 칼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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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 자체는 마음에 든다.

*뉴욕 할렘보다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끝까지 쓰면 되게 길어질 듯:Q

*앞 부분은 봤던 거고... ‘아 이게 이런 식으로 풀리는구나’ 하며 봄

*두 가지 문제만 고치면 될 거 같은데 그 두 가지 문제가 작품 전체에 걸쳐 있다독자 입장에서 궁금한 것독자가 빨리 보고 싶어하는 것을 보여주지 않고 있음독자가 궁금하지 않은 것을 자꾸 들이밀고 있다.

*분위기 묘사가 상당히 많은데 구체성이 부족함. ‘형언할 수 없다고 되어 있는데 형언할 수 없다고 넘길 게 아니라 그걸 독자에게 납득을 시켜줘야 한다이런 묘사들이 배경의 분위기만 잡고 있고사건과 갈등이 안 나옴이야기가 핵심으로 직행하지 않고 계속 주변부에서 맴돈다예를 들어가르시아의 첫 등장바이크 설명을 길게 할 게 아니라 10분의 1형으로 옛 부하를 족치는 장면부터 들어가고얘가 어떤 인물인지 슬슬 푸는 게 더 나았을 듯.

*모든 캐가 설명충스러워지고 있다.

*캐릭터들의 어조나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 차별화되어있지 않음전부 동일인물 같다.

*이 긴 분량 동안 죽은 건 쩌리 하나 뿐독자로서 위기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인물들의 숫자도 그렇고 문장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웹소설 포맷과는 거리가 멀다가볍게 읽기가 어려움

*니마 좀 버리고 포기하는 법을 배우셈이거 중요.

*루시엔가르시아록슬리섀넌이 정도가 중요한 인물일 거 같은... ....

*작가가 록슬리를 너무 아낀다’ 싶음출연분량도 아껴서 내보내고캐릭터 자체를 애지중지한다는 느낌도 들고.

*사건 배치나 전개플롯 같은 건 이대로 가도 괜찮을 거다그런데 거기까지 가야 하는 길이 너무 길달까완급 조절에 문제가 크다.

*일반 독자 입장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와닿을 부분은 역시 초반 로보의 10분의 1형 장면인 듯

*뭔가 초자연적인 사건인 거 같긴 한데평범한 살인사건처럼 보인다이 정도 분량까지 왔는데!

*외모 묘사가... ...아무튼 묘사가 좀 많다. ‘선명하지만 투박하지 않은 단정한 이목구비’ 같은 묘사는 모순됨.

*부사를 지나치게 남발한다.

*작가가 작중에 개입하여 이건 이렇고 저건 저런 의도로 썼으니 그대로 읽어라’ 라고 들이댄다는 느낌을 주는 묘사가 많다더 능청스럽고 세련되게.

*한국 작가가 쓴 미국 배경 소설이라는 게 계속 상기됨마피아라는 놈들이 한국 조폭 같고철거민들이 농성하는 것도 그렇고그런 게 너무 적나라하게 한국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왜 굳이 미국을 배경으로 했는가현대 한국의 독자 입장에서는 물리적인 거리감이 너무나 크다그러다 보니 독자 입장에선 누구에게 이입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문제가 있음.

*헐리웃 영화나 미드를 봐도 이입을 할 수는 있다주인공들이 미국인인 건 어쩔 수 없는데독자들을 사로잡는 힘이 부족하다.

*독자들은 인내심이 없다더 빨리쭉쭉 달려야 한다.

*자료조사한 걸 일일이 설명하려고 하지 마셈 니마

*서스펜스를 보다 강조해야 흥한다

*요즘 독자들은 예전 독자들처럼 성실하게꼼꼼하게 읽지 않는다다들 먹고 살기가 빡세다 보니 에너지를 써서 정독하지 않으려 함이걸 고려할 필요가 있음

*제목이 별로 좋은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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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은 글씨는 특히 와닿은 지적. 평이 별로 안 좋은 건 괜찮은데, 전부 읽어 온 사람이 1명 밖에 없는 건 좀 기분 상한다, 쯧. 1달도 더 전에 올려놓고 분량 많으니 미리 봐두라고까지 해뒀구만.


확실히 굳이 필요하지 않다 싶은 설명이 너무 많긴 하다. 내가 좀... 공들여서 자료조사한 걸 최대한 써먹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 나머지 독자를 지치게 하는 것도 사실이고. 


다만... 애초에 이 작품은 독자를 몰입시켜서 메인 스토리 라인을 쭉쭉 달리는 스타일이 아니고, 디테일을 하나하나 쌓아 올려서 견고하게 필연성을 구축하는 스타일이다. 가볍고 빠른 읽을거리를 선호하는 독자가 많고, 그러한 독자들의 필요를 수용해야 흥하는...  요즘 트렌드에 뒤처진 방식이라는 건 인정한다. 그리고 나는 그 방식을 철회하고 싶지는 않다. 적어도 이 작품에 있어서는. 


기본적인 방향성을 관철하되 자잘한 설명을 쳐내고 이야기 전개를 가속하는 게 최선의 방책이긴 한데 어느 선에서 타협해야 할까?   



아무도 읽지 않는 작품을 끌어안고, 알아주지 않는 세상만을 원망하다가 홀로 죽어 간 작가나 작가 지망생들이 대체 얼마나 많았을까. 나도 그들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억눌러 뒀던 절망이 다시 밀려온다. 단 한 번도 사라진 적 없는, 다만 필사적으로 눌러두기만 해 온 그 절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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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가장 근본적인 주제는 "우월한 힘을 가진 입장에서 임의로 선과 악을 규정하고 자신이 선이라고 판단한 이들만 '구원'하고 나머지는 버리는 것은 오만한 태도이며억압 당하는 약자 편에 서서 함께 싸우는 행위 자체가 고결한 것이다"로 압축할 수 있다. 일단... 작가 입장에선 그렇다. 그러한 현실지향적 주제를 갖고 있는 만큼, 난 이 글을 읽은 사람 100명 중 10명 정도는 '사회적 정의'에 관심을 갖기를 바라고 그 10명 중 1명 정도는 인권이나 연대 같은 가치를 위해 작은 행동이나마 하길 바란다. 


그를 위해서는, 독자가 '이런 일이 세상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현실감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토 나오게 자료 조사한 것도 이것 때문이고, 새벽 4시가 되도록 컴퓨터 앞에 멍하니 앉아 어떻게 해야 다음 페이지를 쓸 수 있을지 고민한 것도 이것 때문이고, 그러다가 게임과 웹서핑으로 샌 것도 이것 때문이고, 조금만 눈 붙이려고 누웠다가 꿈 속에서도 글을 쓰는 것도 이것 때문이고, 그런 꿈 속에서조차 '아 시발 현실에선 나 다음 연재분 못 썼는데' 같은 생각을 떠올리고 가위에 눌리는 것도 이것 때문이고, 가능한 파워 레벨을 낮추고 현실감 있는 서술을 하려고 하는 것도 이것 때문이다.


이 글은 결국 비극에 가깝게 끝날 것이다. 주인공들은 작은 승리를 거둘 테지만 그를 위해 큰 희생을 치루게 될 것이며, 많은 이들이 죽게 될 것이다. 여전히 현실은 시궁창이고 극적으로 나아지는 것 따윈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독자 입장에서는 고구마일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주제가 저러한 이상 모든 게 잘 해결되어서 해피 엔딩으로 끝나 버리면 이야기의 진실성이 없어지게 되고, 결국 독자는 그러한 주제를 잊어 버리고 그냥 '현실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허구의 이야기'로만 이 글을 받아 들이게 될 것이다. 이 글의 엔딩은, 독자를 불편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불편함은, 독자로 하여금 행동을 촉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이야기의 방향성을 확고히 하는 차원에서 정리해 둔다.


나는, 사람이 싫다. 하지만 사람들끼리 모여 이루는 연대는 그렇게까지 싫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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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제:호러물에서 공포감을 유발하는 핵심 요소는 '공포의 대상과 교감할 수 없을 것' '공포의 대상을 이해할 수 없을 것' 그리고 '공포의 대상에 대해 저항할 수 없을 것' 이 3가지다. 그런데 대체로 중세 판타지 물에서는.... 대상이 오크나 오거, 트롤 같은 비교적 흔한 몬스터가 됐건 마법이 됐건 거기에 관한 설명이 세계 속에서 너무 많고, 또 주인공들이 그걸 알아낼 수 있을 만한 루트도 너무 많다. 현자가 설명충 짓을 해주건, 마법대학 도서관을 뒤지건, 다른 모험가들에게 이야기를 듣건.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은 무섭지가 않음. 물론 그 대상이 존내 강할 수도 있고, 그 스펙을 통한 두려움도 어느 정도는 줄 수 있는데 그것과는 별개로 그 대상은 그 세계 내부에서 객관적인 분석과 연구가 가능한 구체적인 실체로서 존재하고 있는 상태기 때문에 이런 건 너무 빨리 익숙해지게 됨.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는가?
 
1)'오크' '오거' '레이쓰' '스펙터' '뱀파이어' 같은 잘 알려진... 이 바닥에선 일반명사 취급되는 이름을 쓰지 말 것. 대신 외모와 행동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그냥 주인공들이 임의로 가칭을 붙여서 부르게 할 것.
 
2)몬스터의 경우, 디테일을 바꿀 것. 예를 들어서 뱀파이어 같은 경우... 햇빛을 받으면 재가 된다는 설정이 워낙 유명하고, 여기저기서 마르고 닳도록 쓰였지만 정작 가장 대중적인 뱀파이어 이미지의 원천인 브람 스토커의 소설에서 등장하는 드라큘라 백작은 햇빛 받아도 안 죽었다. 낮에는 그저 관에서 자고 있으며, 자는 중에도 주변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는 묘사 뿐이고. 머리를 굴리면 해당 개념의 핵심 컨셉을 유지하면서도 얼마든지 변형할 수 있음.
 
3)마법의 경우, 모든 마법 주문이 뭔가 희생 의식이 필요하다거나 주문의 효과 자체가 흑마법 삘이 난다거나하게 설정할 것.그리고 모든 주문에 대해 완전히 예측할 수 없는 부작용을 붙일 것. 이 부작용은 뭔가 음산하고 섬뜩하고 기분 나쁠수록 좋다(주문을 쓸 때마다 검은 개나 까마귀가 어디선가 나타나 기분 나쁘게 마법사를 쳐다보다 어느새 사라진다거나, 쓰고 나면 그날 밤 반드시 악몽에 시달리게 된다거나, 점점 외모가 추하게 변한다거나). D&D 식으로 표현하자면, 모든 와일드 서지가 뭔가 칙칙하고 공포 분위기가 나도록 바뀐 와일드 메이지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중세 판타지 세상인 이상 마법사가 한 둘이 아닐테고, 그런 부작용에 대해 연구하고 왜 그런 부작용이 생기는지, 어떻게 하면 부작용을 없애거나 완화할 수 있는지 연구한 사람들도 한 둘이 아닐테지만 아무도 그걸 확실히 밝혀내지 못했다고 해둘 것. 그리고 이런 요소들을 통하여 마법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그 진정한 근원이 무엇인지에 대해 그 누구도 완전히 알 수 없다고 못 박아둘 것. 마법은 자연법칙을 거스르는 힘이고, 원래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종류의 힘이라는 걸 명확히 할 것. D&D 기반이라면 아케인 스펠이 거의 다 이 분류에 들어갈 듯?
 
4)신의 힘을 빌리는 성직자의 신성 마법 같은 경우, 저런 종류의 부작용은 없다고 해도 됨. 대신 그 어떤 훌륭한 성직자도 지금 자신이 사용하는 주문이 정말로 자신이 섬기는 신의 은총인지 아니면 대악마나 악신이 일시적으로 힘을 빌려주며 자신을 조종하려고 하는 것인지 결코 완전히 확신할 수 없다고 못 박아둘 것. 기도 등을 통해 신과 직접적으로 소통하거나 하는 종류의 마법 주문은 전부 금지.
 
5)세상의 전반적인 파워 레벨 자체를 낮게 잡을 것. 이해하게 쉽게 D&D 기반으로 쓴다고 가정할 경우... 주인공들은 그래도 유능해야 쓰기도 쉽고 보는 입장에서도 답답하지 않으니 대략 3레벨 정도. 3레벨이면 D&D의 표준 배경세계 세팅인 그레이호크 기준으로 상당한 경험과 훈련과정을 거친 베테랑들이다. 전사라면 혼자서 칼 한 자루 들고 오거와도 맞장뜰 수 있고, 도둑이라면 도둑 길드의 하급 간부로서 시골 마을 하나 정도는 관리할 수 있고.... 등등. 그 대신, 상한선을 낮출 것. 너님이 지금 쓰고 있는 건 호러물이지 에픽 히어로물이 아닙니다.  

6)캐릭터들이 속해 살아가는 세상의 묘사도 어둡고 침울하고 질척질척해야 분위기가 산다. 왕궁에서는 한 때는 현명하고 자비롭게 나라를 다스렸지만 이젠 늙어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왕이 있고, 그 왕을 둘러싸고 신료들이 수군수군하며 파워게임 벌이고 있고, 귀족 가문에서는 작위와 영지를 계승해야 할 첫째 아들이 전신에 털이 자라나며 성격이 난폭해지는 기묘한 병에 걸리는 바람에 그 소식이 가문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도시 광장에서는 이단심문관들이 마녀를 화형하고 있고, 그걸 지켜보는 평민들은 내일은 또 누가 잡혀갈까 혹시 이웃이 날 밀고하지 않을까 불안해하고, 뒷골목에선 재수 없는 행인이 칼침 맞아 죽어가도 아무도 돌아보지 않고, 시골에서는 역병과 기근이 돌고.... 등등.  
 
7)주인공들도 정통적인 영웅이 아니라, 어딘가 엇나갔거나 뒤틀린, 병적인 부분이 있는 부분이 있는 캐릭터들인 쪽이 배경과도 자연스럽게 섞이고 스토리 속에서 움직이기도 좋음. 고결하고 이타적인 기사지만 미녀의 유혹에 극도로 약하다거나, 오랜 세월 전쟁터를 전전한 베테랑 전사지만 검으로는 벨 수 없는 유령 같은 존재를 무척 두려워한다거나, 강력한 마법사지만 더욱 강한 마력을 얻기 위해 몰래 악마와 계약을 맺었다거나, 경건하고 신실한 사제지만 독선적이고 오만한 면이 강하다거나, 쾌활하고 놀기 좋아하는 한량이지만 저주를 받아서 한 번 화가 나면 주체할 수 없어질 정도로 난폭해진다거나, 기타 등등. 
 

8)적으로 나오는 몬스터의 경우... 대전제에서 언급한 대로 '교감 불능' '이해 불능' '저항 불능'이라는 3대 요소를 극한까지 살리려면 2)에서 제시한대로 평범한 오크나 고블린 같은 놈들을 더 강하고 살벌하고 이질적으로 묘사하는 방법도 있지만 아무래도 역시 '이 세계에 속한, 비교적 평범한 생물체'라는 한계가 있다. 그런 면에서 가장 좋은 놈들은 역시 유령을 비롯한 언데드와 애초에 다른 세계 출신인 요정, 악마, 그리고 만든 마법사의 역량에 따라 유니크한 결과물이 나올 여지가 많은 골렘 및 키메라 종류. 역시 다른 세계 출신인 애버레이션 계열 몬스터들도 가능성이 높다. 성격을 좀 꼬아서 인간이 자기 기준의 선과 정의에 철저히 부합하지 않으면 대량학살도 거리끼지 않는 식의 극도로 독선적이고 오만하며 두려운 존재로 설정한다면 천사도 호러물의 몬스터로 등장시킬 만하다(그렇다고 해서 자기 입으로 "하찮고 천박한 인간" 운운하는 대사를 치면 깬다. 크툴루 신화의 고대신들이 "우매한 인간들 전부 죽어 버려라 크하하" 같은 소리를 하면 그 파워와는 별개로 얼마나 병신 같아 보이겠음? 어떤 의도도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자기 일만 한다거나, 자기 할 말만 할 뿐 유의미한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고 처리할 것. '나름 자기 기준의 선과 정의에 따라 이런 짓을 하는 것 같긴 한데 하는 짓이 존내 끔찍한 데다가 인간 입장에선 그 기준이 뭔지 영 이해할 수 없다' 정도의 느낌을 받게 하는 걸로 충분함).


*참고할 만한 작품:블러드본(게임, 초반 한정), 더 위처(게임), 다키스트 던전(게임), 디아블로1(게임), 적사병의 가면(소설), 오트란토 성(소설), 슬리피 할로우(소설), 베르세르크(만화, 초반~중반 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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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쓰는 장편인 <도심환경>에는 세 주인공들이 나온다. 그 중 한 명은 가르시아 '로보'라는, 전직 마피아 조직원이다. 그가 몸 담았던 조직은 해산됐고 충성을 바치던 대부는 감옥에 있으며, 그는 여전히 자신의 폭력으로 가득한 삶을 후회하는 법 없이 살아왔던 대로 살고 있다.


오늘치 연재분을 쓰면서 내내 고민했다. 작가로서 가르시아라는 캐릭터에게 부여한 속성은, '냉정하고 잔혹한, 하지만 나름의 의리와 명예를 알고 있는 배드애스'다. 그러나 가르시아는 미국적인 마초라기보다는, 홍콩 느와르 영화나 무협지의 '협객'에 가깝다. 마피아 출신 폭력배를 미화하는 건 내 도덕 관념이 허락하지 않고... 결국 그는 자신의 낭만이 무의미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끔 내 안에서 예정되어 있다.


그 순간이 임팩트가 있기 위해선 하드보일드한, 거칠면서도 기사도 정신에 투철하다는 가르시아의 행동 원리가 독자에게 설득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갖고서 지금까지 가르시아가 작품 내에서 묘사된 모습을 보자면 설명이 지나치게 많다. 독자가 설득되기 전에 나 자신이 작가로서 설명해 버리는 느낌이랄까.


이미 써서 업로드해 버린 부분은 어쩔 수 없긴 한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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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완전한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쓰지 않는다 해도, '카메라'가 특정 인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으면 어느 정도 캐릭터의 속 생각을 묘사해줘야 장면의 긴장도를 높이기가 좋은 듯. 총기나 무술 관련 설명을 자연스럽게 하기도 쉽고.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면 심리 묘사를 하되 부분적으로만 하고 특정 부분에 대해선 보여주기로 일관해서 독자를 낚는 수법도 있을 수 있겠다.


2)이야기의 구성이 조밀하지 못해서 고민 중. A라는 인물의 시점에서 주어진 떡밥을 B라는 인물이 캐치해 간다거나 하는 요소가 더 필요한데 지금까지 쓴 걸 다시 읽어보니 각 부분들이 따로 노는 느낌이 강하다. 이런 건 그 때 그 때의 흐름에 맡기면 안 되고 사전 설계 단계에서 철저하게 준비를 해둬야 하는데 내가 이 나이가 되도록 장편을 쓴 경험이 없다 보니 그런 부분에서 아직 부족하다는 게 느겨짐.

3)총기 좋아 무술 좋아 액션 씬 좋아 헉헉헉. 특히 총. 전에 합평 모임에서 '내가 이번 작품 배경을 미국으로 한 이유는 마음껏 총질을 하고 싶어서다'라고 한 적 있는데 보람이 느껴진다. 한국 배경이면 총질을 정당화하기 위한 부가 설정이 너무 많아져서 도저히 이렇게 못할 듯. ...나는 재미있게 쓰고 있긴 한데 너무 설명이 많은 거 아닌가 싶어서 좀 그렇긴 함.

4)'사냥꾼' '경찰' '마피아' 세 주인공 중 경찰을... 상업적 고려 때문에 한국계 혼혈이라는 설정으로 바꿨는데 머리 속의 이미지와 따로 놀고 있는 상태. 지금이라도 원래 설정대로 라틴계 혼혈로 고칠까 싶음. 

5)배경이 미국이라는 걸 어필하기 위해서 가능한 등장 인물들의 인종을 다변화하고 있는 중. 에스키모부터 마오리 족까지 최대한 폭넓게... 가능하면 단역으로라도 다종다양하게 인종 분포를 한다는 게 소소한 목표. 

6)12월 5일에 광화문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 규탄 집회를 한 번 더 한다고 한다. 지난 주 토요일엔 못 갔었는데 이번에 가려면 열심히 써서 어느 정도 비축분을 모아 둬야 할 듯. ...조회수 보면 탈력감이 들긴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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