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브 바커의 <미드 나이트 미트 트레인>과 스티븐 킹의 <애완동물 공동묘지>에서 나타난 공포의 키워드를 분석해서 미국인이 갖고 있는 '두려움'의 두 원형을 추출해 내고, 그것이 한국인 입장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비교 분석한 글. 2회 파운틴 리뷰 공모전에 내서 최우수상에 뽑혔다. ...그것까진 좋았는데, 뽑혀서 실리자마자 파운틴이 폐간되어 버렸다. 안습. 시부엉 내가 투고하는 데는 어째 코너가 폐지되거나 잡지 자체가 폐간되거나 왜 죄다 이 모양인가 몰라ㅇ<-<
1. 개관
미국에서 만들어진 호러 영화나 드라마, 소설 등을 보다보면 미국인들은 ‘지금 자신들이 살고 있는 이 땅’에 대한 무의식적 공포심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종종 받을 때가 있다. 클라이브 바커의 단편 「미드나이트 미트 트레인」에서는 폐쇄된 지하철 역 깊숙한 곳에 숨어서는 정기적으로 살인마 ‘마호가니’가 죽인 자들의 인육을 섭취함으로써 영원한 삶을 살아가는 '이 나라의 아버지들'이 등장한다. 스티븐 킹의 장편 『애완동물 공동묘지』에서는 원주민들이 경외하던, 죽은 자를 묻으면 얼마 뒤 부활하는-그러나 무언가 중요한 '알맹이'가 바뀌어 버린 채로- 신비한 땅이 등장한다.
호러 장르의 거장,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감정은 공포이며 가장 강력한 공포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이다.”라는 언명을 남겼다. 똑같은 '두려움'의 감정이라고 해도, 잔인무도한 연쇄살인마가 자신을 묶어놓고서 칼날을 핥으며 웃어 보일 때 느끼는 감정과 모든 불이 꺼진 심야의 학교에서 홀로 복도를 거닐다가, 분명 잠겨 있을 교실 문이 열리고 무언가가 복도로 나와 자신을 쫓아올 때 느끼는 감정은 그 성격이 다르다. 대상의 정체를 알 수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는, 공포의 '성격'을 규정하는 핵심적인 요소이며 서사 내부적으로 주인공이 어떠한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위에서 제시한 두 작품의 경우 공통적으로 '미국인들이 도착하기 전, 이 땅에서 살았던 자들과 그들이 품은 비밀과 전설'에 대한 무지와 공포심을 그 기저에 깔고 있으면서도 그에 대한 접근방식이 저마다 약간씩 다르며, 그에 대해 미국인이 느끼는 두 종류의 공포감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지점에서 가질 수 있는 의문점은, 미국인이 느끼는 이러한 공포감이 한국인 입장에서 무슨 상관이냐는 것이다. 클라이브 바커는 미국 내에서도 작품 세계가 다소 매니악하다는 평을 듣는데다가 한국에서의 인지도라고는 기껏해야 영화 『헬레이저』 시리즈의 제작자라는 것 정도에 불과하다. 스티븐 킹은 한국에서도 제법 폭넓은 팬 층을 거느리고 있으며 상업적으로도 비평적으로도 크게 성공한 유명 작가지만 그의 작품 세계는 철저하게 미국인 특유의 감성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두 작가가 저마다의 작품 속에서 묘사하고 있는 ‘미국인의 공포’를 찬찬히 들여다 보면 그것은 한국인의 공포와도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어지는 글을 통해 어떤 면에서 양자가 연관을 맺는지 분석해 보고자 한다.
2. 작품 분석
1)미드나이트 미트 트레인
클라이브 바커의 이 단편은, 뉴욕에 거주하는 회사원인 레온 카우프만의 심경 묘사로 시작한다. 카우프만은 뉴욕을 한 때 ‘기쁨의 도시’라고 부르며 동경했지만 막상 뉴욕에서의 삶은 그가 막연히 상상한 것과는 달리, 매일 같이 이어지는 끔찍한 살인사건들과 그러한 사건을 먹음직한 고기요리처럼 입에 올리는 사람들 투성이다. 깔끔하게 차려 입고, 점잖게 말하고, 품위 있게 행동하는- 카우프만을 둘러싼, 얼핏 보기에는 교양 있고 세련된 도시인으로만 보이는 이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도 깨닫지 못하는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 물론 이 ‘굶주림’이라는 키워드는 바커의 소설 전반에 공통적으로 깔려 있는 키워드이긴 하다. 식욕은 성욕과도 닮아 있으며, 그러한 욕망은 인간과 괴물에게 공히 나타난다. 그리고 그 욕망이 결코 완전히 채워지지 못하기에 괴물 역시도 고통 받는 불행한 존재라는 관점이 바커의 많은 작품들 기저에 깔려 있지만 유독 이 작품에서 그것은 유달리 부각된다. 기타무라 류헤이가 감독한 이 작품의 영화판에서 특히 집요하게 묘사되는 이 굶주림은 궁극적으로 도시적인 삶-특히 미국식 소비 자본주의의 병폐로 가득한 대도시-의 근본적인 모순을 반영하고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신앙의 자유를 찾아 고향을 떠난 엄숙한 청교도들과 법망을 피해서 식민지로 향한 무뢰한들이라는 일견 어울리지 않는 두 무리에 의해서, 그 곳에 오래전부터 터전을 잡고 살아가던 원주민들에 대한 온갖 협잡과 배반, 학살을 거쳐 세워졌다. 물론 원주민들도 풍족한 환경과 넓은 사냥터를 확보하기 위해 서로 대립해왔고, 스페인이나 프랑스 등 유럽 열강들이 그 땅에 식민지를 세운 이래 대리전을 치르기도 했다. 그들이라고 해서 뉴에이지 계통 서적 등에서 흔히 묘사되곤 하는 ‘고귀한 야만인’들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 식의 인식은 오히려 어렵게나마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지키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는 원주민들의 삶을 과거의 낭만적 잔해로 박제화하는,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근대적인 중앙 집권 국가 체제를 갖추고 있지만 않았을 뿐 엄연히 이 대륙의 정당한 주인이던 원주민들의 피 위에서 미국은 건국되었고,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고 유럽이 역사의 전면에서 퇴장함과 더불어 성립된 냉전 구도 하에서 서방 진영의 맹주가 되었다. 독립 전쟁 이후로 200년이 좀 넘는 기간 동안 이러한 체제의 격변과 급격한 양적 발전,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로 떠받쳐지는 미국식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과잉’을 불러왔다. 그리고 미국인들은 그러한 지나친 물질적 풍요로움과, 매카시즘으로 대표되는 경직된 반공주의에 앞뒤로 둘러싸여서 무의식적으로 정신적, 초월적 가치에 대한 허기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히피 문화의 성립,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전 운동 등은 이러한 미국인들의 허기를 반영한다. 그러나 그러한 종류의 정신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의 부재는 겉모양새만 그럴싸한 ‘동양적 정신’에 대한 판타지와 오리엔탈리즘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고 한때 미국 사회의 문화적 색채를 선도했던 명상이나 동양 철학 등은 한때의 유행이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냉전이 종식되며 맞서 싸워야 할 적도, 물질문명의 공허를 채워 주리라 생각한 정신문화도 잃어버린 미국은 막대한 재화들에 둘러싸여서 더욱 심각한 기갈을 느끼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의 본질은, 모든 종류의 재화에 저마다 수량화된 일정한 가격를 매기고 그 가격에 대한 사적인 지불능력(즉, 재화를 사유화하는 능력)을 통해 사회적 계급이 나뉜다는 것이다. 칼 마르크스는 개인의 자아를 실현하는 수단으로서의 노동을 신성시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는 인간이 스스로의 본원적 자아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그 지불능력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 즉 생활의 방편으로서만 노동을 하게 되며, 이 과정에서 인간은 자신의 노동을 거쳐 얻은 지불능력으로 사유화시킨 재화를 통해서만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확인할 수 있게 되고 결국 주체로서의 인간은 존엄성을 잃게 되리라고 여겼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안티테제로서 공산주의를 주창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자본주의는 인류가 최종적으로 이룩할 경제 체제인 공산주의로 이행하기 위한 중간과정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물론 그는 자본가 계급이 스스로의 직접적인 노동 없이 경영과 금융을 통해 부를 축적하며 노동 계급을 착취한다고 규정하고 그에 대항하는 혁명을 촉구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자본가 계급이 스스로의 이익을 지키고자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의 ‘필연적’ 이행을 가로막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지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공산주의와 반대되는 적대적 대상으로(즉, 서로 짝패를 이루는 대등한 사상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그의 사후 제정 러시아가 붕괴하고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 러시아 임시정부가 들어섰으나 10월 혁명을 통해 엘리트 혁명가들이 인민을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과격파인 레닌의 볼셰비키가 정권을 잡았고, 이는 공포와 억압을 작동 기제로 하는 스탈린주의로 전화되었다. 스탈린주의는 국가로 대표되는 외부적 권위를 거부하고 개인 간의 이해와 상호부조를 통해 사회주의적 이상향을 건설하고자 한 아나키즘 등을 비롯한 공산주의 내부의 다른 목소리를 모두 덮어버리고서는 나치즘과 더불어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악’으로 타락했다(2차 세계대전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장은 두 ‘악의 이념’ 간의 대결이나 다름없었던 독일-소련 전선이었다는 점은 인상적인 아이러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그 후로 냉전이 이어졌지만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조직의 보전을 위해서만 작동하게 된 스탈린주의는 결국 자기모순 끝에 무너지며 냉전 체제는 끝을 고했고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부상했다. 미국의 거대한 라이벌은 사라졌고, 소련은 수많은 나라들로 해체되었다.
그러나 미국은 반세기 동안 자신의 앞에 서 있던 강대한 라이벌이 왜 그토록 빠르게 몰락했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 하에서 냉전 기간 동안 쌓아올려진 군비들과 자유진영 국가들 각지의 공장에서 쏟아져 나온 물질들에 둘러싸인 미국 사회에는 스스로를 다스리는 지침이 될 수 있을 만한 새로운 정신적 가치를 탐구할 여유가 없었다. ‘결국 이겼으니까 우리가 옳았다’는 단편적인 인식 속에서 사방에 쌓인 재화들은 이미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자기증식을 시작하고 있었고 이 시점에서 미국이, 그리고 미국인이 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었다. 넘쳐나는 재화를 소모하고, 소모하고, 또 소모하는 것. 그래서 재화를 낳는 자본주의의 자기증식을 끝없이 가속시키는 것. 고도화된 현대 사회 가운데서 필요 이상으로 나무를 베어내고, 필요 이상으로 땅을 파헤치고, 필요 이상으로 많은 물건들을 만들어내고, 필요 이상으로 그것들을 빠르게 소모해 버린다. 그러한 ‘식욕’이야말로 미국인들의 무의식이 찾은 해답이었다. 클라이브 바커의 이 작품 속에서 나타나는 ‘이 나라의 아버지들’은 이 지점에서 단순히 인육을 탐하는 식인 괴물들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나라의 본질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일종의 심볼이 된다.
…아주 독특하다고 할 만한 특징은 없었다. 카우프만 자신처럼 팔이 두 개,
다리도 두 개였다. 머리가 이상하게 생긴 것도 아니었다. 몸은 왜소했고, 열
차로 기어오르는 것이 힘에 겨운지 숨소리가 거칠었다. 정신병자라기보다는
노인병 환자 같았다. 수세기 동안 소설에 등장해온 식인 괴물 따위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그 형체가 가련할 정도로 허약했다… (중략). …그들은 머
리칼이 한 올도 없었다. 피곤에 절은 얼굴 피부가 두상을 꽉 잡아당기고 있어서
팽팽한 긴장감이 전해졌다. 그들의 피부에서는 부패와 질병의 흔적이 역력했고,
광대뼈나 관자놀이 곳곳에서 검은 고름이 흘렀다. 일부는 아기처럼 발가벗고
있었는데, 매독에 걸린 것처럼 축축한 몸에서 성적인 매력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가슴은 상반신에 가죽 자루처럼 늘어져 있었고 생식기는 쪼그라들어
있었다….
카우프만은, 아무 것도 모르는 시민들을 살해해 그 인육을 바침으로써 ‘이 나라의 아버지들’에게 봉사하는 살인마 마호가니와의 사투 끝에 뉴욕 지하철 깊은 곳에 도달하고, 비쩍 마르고 앙상하며 굶주려 있는, 도저히 인간이라고 부르기 힘든 ‘이 나라의 아버지들’과 마주한다(주 1*). 그들은 카우프만 앞에서 “너만큼이나 우리도 혐오스럽지만 이걸 먹지 않으면 우린 죽는다. 우리도 이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군침을 흘리며 마호가니가 죽인 이들의 시체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
이 지점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도시의 아버지들이고 어머니들이며 딸이고 아들, 도시의 시조이며 법의 제정자’임을 자부하는 이들이 경외감이나 위대함을 느끼기에는 너무나도 연약하고 추한 존재라는 점이다. 공포를 느끼기에는 너무도 기괴하고 추악하여 일말의 연민마저도 느껴지는 이들의 굶주림은, 소련의 해체 이후 유일한 초강대국으로서 새로운 적을 찾아 헤매던, 그러나 내면으로는 불안에 차 방황하던 미국의 그것과도 닮아 있다. 그리고 그 ‘이 나라의 아버지들’이 숭배하는 존재-이 작품에서는 ‘파사마쿼디 인디언, 혹은 샤이엔 족보다 앞서서 이 땅에 살았던 미국인의 시조’로 묘사되며 카우프만의 의식 너머, 훨씬 더 깊고 오래된 자아 속에 자리하고 있는 신적 존재-, 일종의 집단무의식적인 ‘신’을 대면한 카우프만은 영원히 변해 버린다. 인간의 내장기관처럼 파이프와 전선, 녹슨 철로가 어지러이 깔려 있는 도시의 내면에서 그는 새로 태어난다. 그리고 그 변모는 독자로 하여금 경외감과 혐오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2)애완동물 공동묘지
이 작품은 주인공 루이스와 그의 아내, 두 아이,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로 이뤄진 가족이 한가로운 교외의 저택으로 이사를 오고, 이웃에 살던 친절한 노인 저드가 그들을 반갑게 맞이해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얼핏 보기엔 아름답고 평화로운 전원주택’, ‘그 주택과 그 주변에 감도는 불길한 분위기’ ‘친절하지만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듯한 이웃’ 같은 이러한 요소들은 숱한 미국산 호러 작품들의 전형적인 클리셰이며, 거기에다가 새로 이사 온 집 근처에 무언가 꺼림칙하고 이질적인 장소가 도사리고 있고 그 장소로 인해 ‘변모’가 일어난다는 플롯은 수많은 호러 영화와 소설, 드라마 등에서 재생산되어 왔다. 그러나 스티븐 킹은 거장답게 그러한 클리셰들의 묶음에서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루이스는, 의사라는 안정된 직업과 단란한 가정을 갖춘 한 집안의 가장이다. 아름다운 아내 레이첼과 영리한 딸 엘리, 귀여운 아들 게이지, 그리고 고양이 처칠로 이뤄진 그의 가족은 더없이 행복한- 그야말로 그림으로 그린 듯한 미국 중산층의 판타지를 반영하고 있다. 루이스의 마음속에서 그늘이라고 할 만한 것은 근처의 공장에 드나드는 대형 트럭들이 집 바로 앞의 도로를 자주 오가는 바람에 누군가가 다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과, 그 자신은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딸 엘리가 아끼기 때문에 처칠에게 싫은 내색을 하지 못한다는 것 정도에 불과하다. 결혼을 강하게 반대했던 장인 장모와의 관계도 막내 게이지가 태어난 이후 호전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어린 시절 지켜본 언니 젤다의 죽음으로 인해 죽음이라는 개념 자체를 병적으로 두려워하며 아이들에게도 죽음이나 죽음을 연상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교육도 시키려고 하지 않는 레이첼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의사 루이스는 종종 갈등을 겪기도 하지만, 그것도 작품의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내내 비교적 사소한 의견차이 정도로 묘사된다-루이스의 이러한 면모는, 이사를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저드의 안내로 근처의 아이들이 죽은 애완동물을 묻는 애완동물 공동묘지에 갔다 온 이후 꾸준히 강조된다-. 루이스 일가는 이웃의 노인 저드와도 게이지가 벌에 쏘였을 때 저드가 도와준 것을 계기로 가까워지며, 저드 역시 아내 노마가 심장발작을 일으켰을 때 루이스가 도와준 이후 루이스 일가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연다. 특히 아버지를 일찍 여읜 루이스에게 있어 현명하고 친절한 저드는 좋은 유사 아버지가 되어준다. 그러나 작품의 절반 가까운 분량을 할애하는 에피소드들을 통해 공들여 쌓아올려진 이러한 평탄하고 따뜻한 분위기는, 레이첼이 엘리와 게이지를 데리고서 루이스를 남기고 친정으로 추수감사절 휴가를 떠난 도중 고양이 처칠이 갑자기 죽으면서 급전한다.
엘리가 실망할 것을 생각하고 고민하던 루이스는 저드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저드는 오랜 옛날 이 지역에 살던 원주민 부족인 믹맥 부족의 전설 속에 전해지던 늪의 매장지로 루이스를 안내한다. 전에 갔다 온 바 있는, 아름답지만 어딘가 스산한 분위기가 감도는 애완동물 공동묘지를 지나서 숲 깊은 곳에 있는 이 매장지로 가면서 저드는 루이스에게 ‘죽은 이를 이곳에 묻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살아 돌아오기에, 믹맥 부족민들은 고대부터 이 늪을 성스러운 땅인 동시에 공포의 땅으로 여겨왔다’는 전설을 들려준다. 이 부분의 묘사에 있어 킹은, 저드 역시도 이 매장지에 대한 공포심을 갖고 있으며 그 기묘한 힘을 사용하는 것을 꺼림칙하게 여기면서도 아들처럼 여기는 루이스를 위해 그 비밀을 알려준다는 것을 확실히 한다. 사이가 끈끈한 아버지와 아들이 으레 그러하듯, 둘은 아내(어머니)나 딸(여자 형제)과는 공유할 수 없는 둘만의 비밀을 갖게 된다. 믹맥 부족의 매장지로 죽은 처칠을 묻으러 가던 중, 저드는 루이스에게 말한다. “약간 죽은 것 같아. 이미 죽은 것이지만…. 얼마간… 그리고 다시 되돌아오지. 늘 그런 건 아냐. 이제 자네 딸은 아무 것도 알 필요가 없어. 고양이가 차에 치인 것도, 죽은 것도, 그리고 되살아난 것도 말일세.” 고양이 처칠은, 그렇게 해서 되살아난다. 중성화 수술 이후로 지나칠 정도로 조용하고 얌전해져 엘리의 걱정을 사던 처칠은 집 주변의 까마귀를 잡아 그 목을 잘라내고 내장을 파헤쳐서는 아무렇게나 던져둘 정도로 흉포해지고, 몸 주변에는 늘 무언가가 썩는 듯한 악취가 뒤따른다. 그토록 처칠을 좋아하던 엘리도 처칠의 내면에서 무언가가 ‘바뀌어’ 버렸다는 걸 감지하고 불안해한다. 그리고 이 부활로 인해 서서히 고조되기 시작하는- 지금까지는 루이스 일가의 단란한 일상 주변에서 그 검은 망토 자락 정도만 흘깃 비치던 불길함과 음습함은 두터운 먹구름처럼 확장되어 텍스트 전체를 뒤덮는다. 그리고 루이스가 내내 꺼림칙해하던, 집 앞의 고속도로에서 어린 막내 게이지가 트럭에 치어 죽는 것을 눈앞에서 보게 되는 것을 계기로 그 먹구름은 천둥을 가득 품고 으르렁대기 시작한다.
이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공포는 언뜻 읽으면 단지 친밀한 가족의 죽음과 그에 대한 슬픔과 상실감으로부터 비롯하는 것만으로 여겨지기 쉬우나, 꼼꼼하게 텍스트를 읽어보면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견지해오던 루이스가 게이지의 장례식 뒤 결국 무너져서는 게이지가 앞으로 순조롭게 자랐다면 성취해낼 일, 실패할 일, 기뻐할 일, 슬퍼할 일들을 상상하다가 현실로 돌아와서는 절망하다가를 반복하다, 평소의 자신이었다면 불합리하다고 일소에 붙였을 행위를 온갖 자기합리화와 더불어 시도하게 되는 부분의 심리 묘사는 절절하기 그지없지만 이 작품은 그 정도 선에서 멈추지 않는다. 루이스는 레이첼과 엘리를 외가로 보내고서는 무덤에서 게이지의 시신을 파내어 매장지로 향한다. 전에 그 매장지로 처칠을 묻으러 갈 때도 느꼈던 알 수 없는 불길한 공기로 가득 찬- 현실과 비현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영역으로 발걸음을 내딛으며 루이스는 자욱한 안개 너머 저 멀리의 숲을 배회하는 ‘그 무언가’을 목격한다. ‘그 무언가’의 정체가 명확히 무엇인지는 작중에서 끝내 설명되지 않는다. 그에 대해 루이스는 이렇게 생각할 뿐이다.
…하느님, 아니지. 하느님이 아니야. 이것들은 그리스도보다 훨씬 이전의
것이야. 사람들은 시대마다 다른 이름으로 그것을 불렀지만, 내 생각엔
레이첼의 언니가 그에게 가장 걸맞는 이름을 붙여줬지. 위디한 오즈의
마벗사(주 2*) 땅 위에 남겨진 죽은 것들의 신, 하수구에 남아 있는 썩은 꽃들
의 신, 수수께끼의 신….
작중에서는 그저 ‘웬디고’(주 3*)라고만 불리는,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신적인(혹은 악마적인) 존재에 대한 묘사는 많지 않다. 다만 루이스가 게이지를 되살리려고 할 것을 예감하고는 매장지에 대한 알려준 것을 후회하며 루이스를 말려야겠다고 생각하는 저드에게 최면과도 비슷한 암시를 심어 결국 그를 실행에 옮기지 못하게 한 수수께끼의 ‘이끌림’의 원천도 그 존재고, 레이첼이 어린 시절 언니 젤다를 간호하면서 간접적으로 느꼈던 ‘죽음 이후에서 기다리는 것’도 바로 그 존재라는 추측만이 가능할 뿐이다. 이 작품은 인간에게 있어 가장 커다란 미지인 ‘죽음’을 인간과 그 존재 사이의 연결고리로 놓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대단히 심오한 두려움을 이끌어낸다. 바로 이것이 「미드나이트 미트 트레인」과는 비슷하면서도 크게 다른 점이다. 「미드나이트 미트 트레인」에서 카우프만이 마호가니와의 사투라는 통과 의례를 거쳐서 인간의 이성과 논리로는 규명하거나 정의할 수 없는- 개인적 기억의 범주를 넘어서 보편적인 인간 존재의 영혼에 자리하고 있는 집단 무의식적인 ‘신’과 대면함으로써 변모하는 것과 비슷하게, 한 차례 죽었다가 믹맥 매장지에 묻혀서 되살아난 것과의 접촉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친 루이스는 먼발치에서 잠시나마 그 존재를 보는 것으로 두 번 다시 예전의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미국에서 호러 장르의 가장 핵심적인 타겟은 기독교(특히 칼뱅파 개신교)를 믿는 중산층 가정의 앵글로 색슨계 백인들이다. 이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빈곤에서 벗어나 문화생활을 영위할 경제력과 심적 여유를 갖고 있고, 이는 곧 독자의 두려움을 자극하는 동시에 그 두려움으로부터 짜릿한 쾌감을 느끼게끔 해야 한다-즉, 독자가 두려움을 오락의 일환으로 즐길 수 있을 만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만 어필할 수 있다는 호러 장르의 본질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흔히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라고 일컬어지는 이들 계층은 미국 건국 이래 내내 미국 사회의 핵심을 형성해 왔으며 오랜 세월 지배 계층의 대명사처럼 여겨져 왔으나,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독일계와 아일랜드 계, 유태 계 이민자들의 증가 추세에 이어서 흑인 민권 운동이 사회 각층에서 결실을 거두고, 특히 최근 몇 십 년 사이에 히스패닉 계 인구가 급증하면서 점차 지배적인 위치를 내려놓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여전히 이들은 ‘미국적 가치, 미국적 사고방식’을 지지하는 보수적인 계층이며 미국이라는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구성하는 근간으로써 그 영향력은 미국 문화의 디테일한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다. 그리고 그들이 표방하는 ‘미국적 가치와 사고방식’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요체가 바로 가부장적 질서에 의해 떠받쳐지는 가족애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주인공 루이스로 상징되는 그들은 오랜 세월 신성시해왔던 가족 간의 유대가 끝없이 뻗은 고속도로와 그 위를 질주하는 트레일러 트럭이라는 근대화와 산업화의 상징을 통해 붕괴되는 것, 그리고 그 빈자리에 ‘죽음 너머에서 기다리는 것’이며 전통적인 질서와 이성으로는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또아리를 트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3. 결언
상기의 분석을 통해, 「미드 나이트 미트 트레인」과 『애완동물 공동묘지』 두 소설이 미국인에 있어서 어떠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지를 살펴보았다. 이 두 소설에서 추출할 수 있는 공포의 키워드는 각각 ‘굶주림’, 그리고 ‘가족 가치의 붕괴’라고 할 수 있다.
6. 25 전쟁 이후로, 한국 땅에는 빈곤과 공포가 가득했다. 눈을 들어 주변을 둘러보면 보이는 것은 오직 폐허와 시체뿐이었고, 눈을 감으면 귓전에는 포성과 비명소리가 감돌았다. 일제의 40여 년에 걸친 식민 지배와 갑작스러운 해방, 그 혼란이 채 수습되기도 전에 벌어진 같은 민족 간의 참혹한 전쟁은 멀게는 고려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 이전 한국 땅에 있어왔던, 그리고 국민들이 공유하고 있던 거의 모든 종류의 정신적인 가치 체계들을 포맷시켜 버렸다. 이 시기에 한국 국민들 일반의 의식 속에 자리 잡은 과거와의 연속성에 대한 단절감은 실로 엄청나다. 그리고 미국은 한국을 중국과 소련을 견제할 정치적, 사상적 방파제로 선택하고서는 수많은 지원을 행하는 한편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본격적으로 이식했다. 미국의 이러한 지원은 이후 이어진 개발 중심의 군사 독재, 베트남 파병을 대가로 한 추가 지원, 80년대에 찾아온 전 세계적인 경기 호황과 맞물려서 한국을 급속히 발전시켰다. 그러나 한국인들의 의식 구조는 이러한 양적인 압축 성장을 제대로 따라잡지 못했다. 북한에서는 안 그래도 무자비하던 스탈린주의가 더욱 더 타락한 끝에 결국은 공산주의조차도 아니게 되어 버린 그 무언가와, 그 무언가를 통해 공포와 폭력으로 국민들을 옭아매는 일종의 절대왕정 체제가 들어섰다. 한국 역시도 헌정 질서와 민주주의를 무시한 군사 정권이 장기화되며 경직된 반공 교육이 보편화되었다. 물론 한국의 군사 독재와 북한의 왕정 체제를 완전히 동일시할 수는 없다. 한국은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여전히 민주주의 국가였고, 그러했기에 7~80년대에도 민주화 운동과 노동 운동은 활발하게 전개될 수 있었다. 여성 운동과 환경 운동도 그 틈에서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보자면 한국인들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 이래로 이어진 반공 사상과 급격히 밀려든 물질적 풍요 사이에서 점차 정신적 기갈을 느끼기 시작했다. 바로 그 무렵, 미국에서 그러했듯이.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취임하고 문민정부를 열며 군사정권이 실질적으로 종결되고 형식적 민주주의가 확보되었으나 역설적으로 그 시점 이후로 한국인들은 정신적, 초월적 가치에 대한 기갈을 심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매슬로우의 욕구 단계 이론에 의하면, 사람은 가장 낮은 단계인 최소한의 생존과 안전에 대한 욕구가 충족되고 나면 종족 보전과 번식에 대한 욕구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고, 그것이 어느 정도 충족되고 나면 인간적인 애정과 우정, 존경에 대한 사회적 욕구가 생기며 그것 역시 충족되고 난 뒤에는 사회적 인정과 존경에 대한 욕구로 이어지며 최종적으로는 자기완성과 삶의 보람이라는 자아실현의 욕구로 변하며 점차 고차원적이고 정신적인 수순을 밟아 나가게 된다. 그리고 IMF 구제 금융 체제가 한국인들의 집단 정서에 거대한 상처를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그리하여 얼핏 보기에는 오직 국익과 경제라는 화두에만 모든 국력을 집중시켜야만 할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굶주림’은 여전히 한국인의 내면에 남아 있다. 몇 년 전 마이클 섈던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가 서점가를 휩쓸며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불과 작년에 한국 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화두가 되었던 키워드는 ‘힐링(Healing)’이었다. 2014년 현재, 한국 사회는 이에 대한, 스스로도 무엇을 먹어야 해결될지 알 수 없는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
가족 가치의 붕괴 역시도 한국 사회에서 공히 드러난다. 조선 시대 이래로 한국 사회는 농경문화와 유교적 질서에 근거한 대가족 사회였다. 농사를 짓기 위해선 일손이 많이 필요했고, 가부장을 대표로 하는 남성적 위계를 중심축으로 하여 가족의 구성원들은 생산력과 더불어 소속감을 얻었다. 그러나 60년대 이후의 근대화와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향하며 이러한 농경 위주의 사회상은 붕괴되었다. 1차 산업에 종사하는 농어민과 생산 및 기술, 관리직에 종사하는 도시민 간의 경제적·환경적 격차가 벌어지면서 ‘양복을 입고 출근해 빌딩 속에서 서류 다발을 껴안고 일하는 건 현대적이고 세련됐지만 햇볕 아래서 흙투성이가 되어 김매기와 모내기를 하거나 그물을 꿰매는 건 촌스럽다’는 식의 인식 역시도 확산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7~80년대 이후로도 면면히 이어져서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님과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명절이나 제사 때문에 1년에 서너 번 가량 찾는 것을 제외하면 얼굴 보기도 힘든 아들 딸’이라는 모습은 한국 사회의 익숙한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형제자매들도 나이가 들어 결혼하고 나면 왕래가 뜸해진다. 90년대 이후로는 조기 유학 열풍이 불며 ‘기러기 아빠’의 수가 급증했고, IMF 이후 잠시 귀농 현상이 사회적 트렌드가 되기도 했지만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2000년 대 이후부터는 다문화 가정이 한국 가족 문화의 새로운 한 축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이촌향도의 와중에도 시골에 남아 농업이나 어업, 임업에 종사하는 청년층은 소수 나마 있었고, 귀농을 통해 시골로 돌아온 경우도 있었다. 앞서 언급한 이러한 ‘시골 사람’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 의식이나 실질적인 경제 및 환경적인 요인으로 인해 이들은 결혼 적령기를 지나서도 배우자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경제적으로 한국에 비해 낙후된 편인 동남아 출신 여성들과 국제결혼을 하곤 했다. 이러한 국제결혼 초기에는 남성 쪽은 아이를 낳아 일손을 늘리기 위해, 여성 쪽은 고향에 비해 부유한 한국 남성과 결혼해 가족에게 송금을 하기 위해서라는 매매혼적 성격이 강하고 언어나 문화충돌, 주변 사람들의 편견 등으로 인해 화목한 가정을 꾸리지 못하는 경우가 흔했다. 2000년대 이후로 국제결혼의 폭이 넓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농어촌 지역의 성비 불균형과 한국 사회 곳곳에 남아 있는 인종차별적 경향은 문제가 되고 있으며 이들의 2세가 한국 사회에서 자라나며 겪고 있는 사회적 장벽 역시 추후 한국이 풀어야 할 숙제가 되어 가고 있다. 그러한 문제들은 사회 구조의 변화에 따른 필연적 현상으로 판단하는 게 합리적이지만 그와는 별개로 더 이상 한국의 전통적인 가족 문화가 유지되고 있다고는 보기 힘들다. 그리고 2014년 지금의 한국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뺏어간다’거나 ‘한민족이 살아야 할 한국 땅에 베트남 인이나 몽골 인이나 조선족들이 넘쳐난다’는 식의 제노포비아가 사회 곳곳에서 대두하고 있다. 기존의 전통적 가족 가치가 사라지고 남는 빈자리, 한국은 단일민족 국가라는 민족주의적 자부심이 무너지고 남은 자리에 이해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실체 없는 두려움이- 그리고 그 두려움에서 비롯한 공격성이 꿈틀대고 있다.
인류는 지구 상에서 지성과 자아를 지닌 유일한 종족으로서 ‘죽음 이후 인간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라는 원초적인 의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 한발 더 나아가 ‘인간은 왜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무엇을 지향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종교와 철학을 발명해냈다. 현세에서의 물질적 기복에 그치지 않는, ‘가치’에 대한 탐구는 인간의 본성이자 인간이 만물의 영장임을 자임할 수 있게끔 하는 핵심 요소이며 그러한 탐구심이 충족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인간은 의식적으로는 자각하지 못한다 해도 필연적으로 정신적 기갈을 느낀다. 그러나 현재에 이르러 한국과 한국인은 그러한 기갈을 채울 온당한 ‘가치’를 찾지 못하고 있다. 냉전 종식 이후로 새로운 적을 찾던 미국이 그러했던 것처럼. 미국의 4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은, 미국은 신대륙 북부 전역을 지배하고 개발할 ‘명백한 운명’을 신으로부터 부여받았다는 유명한 연설을 남겼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30년 뒤 남북전쟁에서 북부가 승리한 것을 계기로 미국은 독립된 각 주의 연합체가 아닌 하나의 ‘미합중국’으로써 실질적인 제2의 건국을 맞이했다. 그리고 미국의 ‘명백한 운명’은 제국주의로 비화되어 청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그 이후 조선에 이르렀다. 그리고 6. 25 전쟁과 그 이후 이어진 미국의 ‘세례’는 한국에서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진리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은 분명 한국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그것이 어디까지나 국제 정세에서 비롯한 타산이었으며 한국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색채를 서방 세계의 그것으로 채색하기 위함이었음은 명백하지만 그것만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하에서 성립된 미국과 한국 간의 갑을 관계에 있어 그를 보다 합리적이고 상호주의적인 방향으로 개선해야 할 필요는 명백하되 그 관계를 단절할 수는 없다. 그러한 한계 속에서 한국과 미국이 앞으로 무엇을 얼마나 주고받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몫일 것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의 사고 속에서 ‘미국은 은인의 나라이며 미국의 방식이 곧 한국이 따라야 할 방식’이라는, 일종의 충성과 경의를 바쳐야 할 모범적 대상이라는 믿음은 건재하다. 「미드나이트 미트 트레인」에서 미국인의 시조이며 인간의 시조로 나타나는 그 ‘신’은, 그리고 『애완동물 공동묘지』에서 ‘죽음 이후에서 기다리는 것’은, 지금 ‘한국의 아버지’가 되어 가고 있다. 바야흐로, 그리고 시나브로. 그것은 미국과 미국인이 자신들 내부에 있는 무언가로부터 느끼는 공포인 동시에, 한국인의 입장에서 그를 이 땅에 퍼뜨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미국에 대해 느끼는 공포이기도 하다.(*)
주 1:현실에서도 뉴욕의 지하철 노선은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장소로써, 오랜 세월 동안 확장과 개수를 거듭한 끝에 현재는 수십 년 동안 일한 역무원들도 폐쇄된 구간과 정거장들을 모두 파악하지 못하는 ‘도심 속의 오지’로 악명이 높다. 수많은 벌레와 쥐, 너구리, 고양이, 노숙자들이 상주하고 있으며, 평범한 시민들이 일하고 공부하고 놀고 먹고 자는 익숙한 ‘일상의 공간’에서 바로 몇 십 미터 아래에 아무도 전모를 파악하지 못하는 이질적인 공간이 있다는 특이성으로 인해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헐리웃 데뷔작 『미믹』을 비롯해 많은 호러 장르의 픽션들이 이 뉴욕 지하철 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 2:‘위대한 오즈의 마법사’. 이 문장을 썼을 당시의 젤다와 그를 지켜보는 레이첼이 정확한 맞춤법을 모르는 어린 아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일부러 철자를 틀리게 쓴 것으로 추정된다. 비슷하게 이 작품의 영어 원제도 Pet cemetery가 아니라 Pet semetery로 되어 있다.
주 3:이 웬디고(Wendigo)라는 이름의 기원은 캐나다 원주민과 이누이트 족 사이에서 전해지는 전설 속의 식인 괴물로, 몰아치는 눈보라와 함께 설원 위를 발자국조차 남기지 않는 속도로 뛰어다니면서 나무꾼이나 광부를 잡아먹는다고 전설에서는 말하고 있다. 민속학자들은 눈 덮인 겨울 산과 숲에 대한 공포가 형상화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이 작품에서는 단지 그 이름만을 빌어온 듯하다. 영국의 작가 앨저넌 블랙우드 역시, '인간의 이성과 지혜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그 자체로 사악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말하는 인간성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초월적 존재'이며 '인간 문명과는 대치되는 자연의 화신'으로 해석하여 동명의 호러 소설을 쓴 바 있다.
나 원래 이런 종류의 작품들 좋아한다. 멀게는 <1984>와 <멋진 신세계> <우리들>부터 해서 <해리슨 버거론>과 <롱워크>를 거쳐 가까이는 <그림자 아이들>과 <설국열차> <헝거게임 시리즈>에 이르는, 전체주의적인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그에 저항하는(최소한 그러한 체제의 끔찍함과 불합리성은 자각하고 있는) 주인공들이 나오는 작품.
그런데.... ....깨놓고 말해서, 이 소설에서 제시되는 사회상은 이런 장르 중에서도 특히 극도의 공포와 암울함을 달리는 <나는 입이 없다, 그러나 비명을 질러야 한다>에서 드러나는 그것에 비하면 그렇게 나쁘지 않아 보인다(내가 온갖 막장의 극한을 달리는 현시창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상대적으로 그렇게 여기는 걸지도 모른다). <나는 입이...>를 읽고 난 뒤 <1984>를 읽으면 그 세상이 따사롭게 햇볕 내리쬐고 옆에는 얼음 띄운 레모네이드가 놓여 있는 여름 해변처럼 보일 지경인데 이 정도 수준이면 뭐 양호하지(...).
그러한 전체주의적 디스토피아 사회가 끔찍한 이유는, 단순히 그 사회에 속한 사람들이 무자비한 억압 속에서 고통 받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멋진 신세계>의 소마로 대표되는, 현실의 그러한 끔찍함과 불합리성을 최소한 잠시 잊게라도 해주는 오락거리들 덕에 그럭저럭 그러한 억압과 고통을 견뎌가며-심지어는 위로부터의 우민화와 현실을 바꿀 수 없는 스스로에 대한 자기합리화 끝에 아예 그게 억압과 고통이라고 여기지 조차 않으며- 살아가는, 그리고 그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나머지 변혁을 주도하는 주인공들을 불신하고 비난하는 대중들의 모습도 이러한 작품군에서는 자주 묘사된다. <멋진 신세계>나 한 발 더 나아가 <쇼생크 탈출> 같은 작품에서는 그러한 사회의 피라미드 최상층부에 있는-약간 통찰이 부족한 작품에서는 그저 누가 봐도 확실히 ‘나쁜 놈’들인 탐욕스럽고 가학적인 소시오패스로만 묘사되는- 지배 계층마저도(<멋진 신세계>에서는 무스타파 몬드 총통, <쇼생크 탈출>에서는 새뮤얼 노튼 교도소장으로 대표되는) 그러한 사회적 시스템이 잘못되었다는 걸 자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너무나도 견고하게 고착되어 버린 구조에 지나치게 익숙해져 버린 데다, 다른 뾰족한 대안이 없다고 여기기에 다만 지금껏 살아왔던 대로 살아가며 스스로가 지배 계층이라는데 만족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전체주의적 디스토피아 사회가 끔찍한 진짜 이유는, 기층 대중들만이 아니라 그 사회의 최정상에서 군림하는 지배자마저도 변혁에 대한 희망을 포기한 채 그저 현상 유지에만 급급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어떠한 변화도 혁신도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근본부터 차단되어 있으며 그것은 이미 너무나도 공고해 개인적인 레벨의 선의로는 어찌할 수 없다는 것, 밑바닥부터 정점에 이르기까지 그 사회에 속해 있는 모든 이들이 체념한 채, 일체의 존엄이나 자율성을 포기하고 오직 스스로를 해당 사회의 존속을 위해서만 기능하는 무한히 대체 가능한 ‘대상물’로 격하시키게 된다는 것-철저하게 자발적인 과정을 통해!-. 그것이 이러한 종류의 작품들 속에서 묘사되는 전체주의적 디스토피아가 끔찍한 이유다.
하지만 이 작품 속에서 묘사되는 세상은 그 정도로까지 막장은 아니다. 색깔도 볼 수 없고, 음악도 들을 수 없을 지언정 최소한 텍스트 상으로 묘사되는 바에 의하면-종족 단위가 아니라 개인으로서의 ‘인간’이 과연 그렇게 이타적인 존재일 수 있는 지에 대한 의구심이나, 고작 2번까지의 규율 위반만 허용되고 그걸 넘어서면 임무 해제라는 최후의 수단이 기다리고 있는데 오히려 너무 임무 해제가 빈발하는 나머지 임무 해제 조치의 권위가 약해질 거라는 문제를 제한다면- 이 세상의 원로들(즉, 이 세상의 독재자들)은 진심으로 공공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비록 아이들의 곁에서 항상 그들의 사소한 말과 행동 하나 하나를 감시하고 심판하기는 하지만 그를 통해 얻은 데이터는 어디까지나 사회 구성원 전체의 공익과 안전을 위해 쓰인다. 결정적으로, 이 작품 속의 세상에서는 진정한 감정과 그에 대한 기억들을 보존하고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는, 기억 보유자와 전달자라는 존재가 있다. 게다가 그들은 위험한 이레귤러 취급당하는 일 없이 공식적으로 그 권위를 인정받을 뿐만 아니라 유사시의 조언자로서 존중받기까지 한다.
이러한 작품군의 특성에 비춰봤을 때 기억을 보존하고 전달한다는 이들의 존재의의는, 사회의 폐쇄와 정체, 부패를 막고 변혁에 대한 일말의 가능성을 남기는 최소한의 보험이라고 할 수 있다. 말로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중시한다고 하지만, 막상 내용물을 들여다보면 권력과 자본만이 자유로운 권리를 향유하며 전횡을 펼치는 한국의 현실 속에서 살고 있는 내가 보기에 이 작품 속의 세상은...... 음,섹스 못하는 것부터 시작해 이런저런 개선이 필요한 요소들이 제법 많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자면 그럭저럭 ‘사람 사는 곳’으로서의 최소 조건은 충족하는 사회주의적 공동체로 보인다(책 날개에 보면 작가의 가장 논쟁적인 작품이라고 하는데... 이런 종류의 작품들 속에서 묘사된 온갖 종류의 막장 세상들을 보아 왔고, 건국 이후 반 백 년 세월에 걸쳐 권위주의적 군사 독재와 기업 친화적 경제 구조가 완연히 뿌리내린 한국사회에서 자라온 나로선 이 정도면 무슨 동화 속 세상 같다).
정수라의 노래, <아! 대한민국>의 가사에서는 한국을 두고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 ‘우리의 마음 속에 이상이 끝없이 펼쳐지는 곳’ ‘저마다 자유로움 속에서 조화를 이뤄가는 곳’이라고 규정했다. 물론 저것은 이상론이고, 현실은 언제나 이상보다 300만 광년은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해 보라. 과연 2014년 현재 한국이 최소한 그러한 이상을 지향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는가?
이 작품을 읽으면서, 약간 슬펐다. 이 작품의 주인공 조너스는, 기억을 이어 받으면서 그를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없다는 고독감에 슬퍼한다. 하지만 적어도 조너스에겐, 믿고 의지할 만한- 자신의 기억을 전부 조너스에게 넘긴 후에도 한 때 같은 기억을 공유했으며 그 사실만은 기억하고 두고두고 되새길 스승이 있다. 비록 그렇게 되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작중에서 구체적으로는 끝내 묘사되지 않았지만 조너스와 가브리엘은 둘이서 얼어 죽어갈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조너스가 힘겨운 여정 중에서 희생한 기억들은 남겨진 사람들에게 퍼져갈 것이고, 지금껏 겪어본 적 없는 고통과, 고독과, 증오와, 욕망과, 죽음의 기억들에 직면할 사람들은 아직 남은 기억들을 갖고 있는 스승의 도움으로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 속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오직 한 사람의 기억 보유자와 전달자에게로만 이어지던 그 기억들을 공유하고, ‘사랑’에 눈뜰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실패할지도 모르지만 작가 로이스 로리는 그에 대한 직접적인 결과를 작중에서 제시하지 않는다. 독자 입장에서는 여전히 일말의 희망은 남아 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느끼는 이 모든 절망과 슬픔과 고독을, 그 누구와도 결코 공유하지 못하리라고 여기고 있다. 만일 누군가가 공유하고 싶어 한다고 해도... 나는 한 때 ‘혼자 견디지 않았으면 좋겠다’ ‘홀로 견디려고 하는 게 안타깝다’고 말해줬던 사람이, 나한테 있어서는 나도 변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 그 자체였던 사람이 끝내 날 외면하고 거부했던 기억에 눌려 그러한 진심과 선의를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그 사람도 최소한 그 당시에는 진심과 선의를 갖고 나를 대했을 테니까.
난 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한다. 난 내 절망감에 짓눌린 나머지, 그 사람의 상황을 충분히 배려하지 못했다. 그 사람으로서는 내가 부담스럽고 대하기 거북했을 것이다. 그에 대해선 미안한 마음이 여전히 남아 있다. 원하던 직종에 취직하고, 충실한 연인까지 얻은 상태에서는... 내 존재가 일종의 흑역사처럼 여겨 졌으려니 싶기도 하고.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네가 좀 더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으면서... 막상 힘들여서 그렇게 했더니 외면해 버린 그 날의 기억은 너무나도 끔찍하다. 최소한 처음에는 그 사람도 좋은 의도를 갖고 있었다는 걸 알고, 내가 먼저 잘못한 부분이 있었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렇기에 난 그 날의 기억이 엄습해 올 때마다 이렇게 블로그 같은 채널을 통해서 혼자 토로할 뿐 그 사람을 아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 사람의 험담을 하고 다닐 생각도 없고, 직접 그 사람에게 뭔가 해코지를 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절대로 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한다. 절대로. 아마도 영원히.
그런 내가,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되고, 사랑을 나누는 연인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절대로. 아마도 영원히.
몇 남지 않은 옛 친구들이 그립다. 지금도 난 그들이 친구라고 생각하고, 아마도 나 같은 고독감이나 절박함 같은 감정은 없을 망정 그들도 날 친구라고 여길 거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이상 연락하지 못하겠다. 또 똑같은 어리석은 짓을 반복하지 않을까, 그래서 그 날을 또 반복하지 않을까. 그것이 너무도 두렵다. 보고 싶다. 그래서 보고 싶지 않다.
난 희망을 남길 수 있었던 조너스가, 고작 열 두 살 먹은 꼬마가, 실존 인물조차도 아닌 소설 속 주인공이 부럽다.
이전 버젼은 주제 의식 측면에서 아무래도 다소 얄팍한 감이 있다. 이전 버젼의 주제를 한 줄 요약하면 '억압과 공포를 통해 돌아가는 시스템을 확립했다는 부분에 있어 남한이나 북한이나 마찬가지다' 정도가 되겠는데...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양자가 서로 증오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서로 밀접하게 얽혀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보다 강조하고, 화자의 고독감과 절망감이 국가주의로 전화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엮으려면 좀 더.... 좀 더 강한 묘사가 필요하다. 대충 어떤 식으로 묘사하면 될지는 감이 오는데... 내 멘탈이 버텨줄까 모르겠다. 지금까지는 내내 '카메라'가 화자의 시점에 맞춰짐으로써 독자의 이입을 유도하는 식이었는데... 지금 생각 중인 장면이 나오면 앵글이 바뀌어 버린다는 문제도 있고. 이를 어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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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배경이 시대 배경이다 보니 추억돋는다... 내가 오락실에 처음 다닐 무렵에는 파이널 파이트와 캡틴 코만도, 골든 액스가 한참 대세 게임이었고, 연식이 좀 됐지만 서커스나 원더 보이를 하는 사람도 종종 있었다. 재미를 붙일 무렵 스트리트 파이터2가 동네 오락실을 정ㅋ벅ㅋ했고, 대전 액션 게임이 흥하자 사장님들은 뒤이어 아랑전설과 사무라이 스피리츠를 들여놨다. 다니던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뀔 때 즈음 철권과 킹 오브 파이터즈가 나왔고, 중학교 때였던가 캡콤의 던전스 앤 드래곤즈 2탄이 나왔다. 하지만 합평 모임 쪽도 거울 쪽 합평에 나오는 사람들도 대부분 여자잖아? 오락하던 이야기는 못 할 거야 아마.....
소설을 통해 정치적 주제나 정치를 통해 구현할 수 있는 '가치'를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송곳>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이 만화가 어필할 수 있는 이유는, 민주주의의 대의라거나 시대적 정의 같은 걸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아니라 이수인이라는- 그저 평균보다 약간 더 정의감 강하고 올곧은 인물을 통해 누구나 일상적으로 접하는 현실의 불의와, 그를 마주한 인간의 두려움, 무력감, 분노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보다 '큰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내가 특별히 고결하고 영웅적이어서가 아니라, 그 반대로 한 없이 야비하고 비굴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난 두 번 다시 그렇게 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런 테마들에 감동하고, 스스로 그런 테마들을 그려내고 싶어하는 거다.
최규석 씨는 네이버에 <송곳>을 연재하기로 한 이유로 '어린 독자들이 보고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게끔 하기 좋아서'라고 말했다. 훌륭한 이유다. 하지만, 나는 오직 '두 번 다시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그 이유 뿐이기에- 즉 쓰는 나 자신을 다잡고 채찍질하기 위해서 소설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 뿐, 이로서 사람들을 바꿔 놓을 수 있다고 여기지는 않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어필할 만한 설득력을 충분히 이끌어낼 수가 없다.
공안 예술대상에 이거 완성해서 보냈는데 떨어짐. 아슬아슬하게 검열 기준에 걸릴까 말까 하는 작품을 뽑는다는 취지에 비해, 이 글은 불온한 블랙 유머가 없어서 아마 안 될 거야... 싶긴 했다. 최소한 겉으로는 일단 메르헨의 외피를 뒤집어 쓰고 있는데, 동화답지 않은 어법이 너무 많기도 하고. 영 부족했다 싶은 부분을 증보해서 쓰고 있는 중이긴 한데 이야기가 저 혼자서 너무 침울해지고 있다(....) 내 잘못이 아니야, 이 글은 그렇게 쓰여질 운명이었을 뿐이야(..........)
골계미랄까, 해학이랄까.... 그런 게 부족해서, 아마 안 될 거야.... 싶긴 한데 일단 완성해서 보내놓긴 했다.
기본 구상과 주제만은 그럴싸한데 그게 이야기로서 형상화가 잘 안된다거나, 초반에 너무 힘을 준 나머지 진이 빠져 버려 중반 이후로 급격히 맥아리가 없어진다는 게 내 소설의 고질적인 약점이다. 이번에도 그런 내 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듯하다. 심사위원진도 화려하고, 공모 주제도 마음에 들어서... 제법 공들여 썼는데도 불구하고 그렇다-_- 호러 장르를 좋아하긴 하지만 직접 써 보는 건 처음이었는데, 너무 모험을 하지 말 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스스로가 만족할 만한... 객관적으로 이 정도면 충분히 먹히겠다! 까진 아니어도, 나 자신이 현재 수준에서 이르를 수 있는 극한의 역량을 짜내어 썼다는 자각이 드는 소설을 쓴지 너무 오래 지났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소설 따위 관두고... 이번에는 비정규직으로 전전할 생각 말고 제대로 준비해서 번듯한 직장을 잡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다시 밀려온다. 약 값도 필요한데...
...3개월이다. 앞으로 3개월만 죽어라 써보고, 그 때까지 뭔가 가시적인 성과가 없으면 관두자.
*너무 날 것이다. 이야기가 아니라, 제시되는 사상들이 너무 낡았다. 이광수의 <무정> 같은 계몽주의 소설스러운 느낌.
*이반 파트와 존 파트 간의 무게중심이 맞지 않는다. 구성이 잡히지 않고 되는 대로 썼다는 느낌. 상징 또한 너무 애매하다. 서사 전체를 관통하는 확고한 ‘이야기’가 부재하고 누구나 아는 뻔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감이 있다. 새로운 거라곤 관념우주라는 설정 뿐인데 그게 형상화가 부족하다.
*미메틱 포머에 대한 묘사가 부족하다.
*소재가 흥미로움. 상대의 정신에 침투해 가치관을 바꿔놓는다는 설정 자체는 흔한데, 이런 식으로 쓰인 건 본 적이 없다.
*낯선 개념들이 많다 보니 진입장벽이 좀 높다. 사상적인 문제도 그렇고.
*이반이 코트를 벗어줬는데 그 애가 이미 죽어 있더라... 같은 장면 같은 건 좋았다
*소재만 유지하고, 가상세계를 배경으로 해 이야기를 새로 써야하지 않을까. 현재로서는 관념우주가 어떤 공간인지 설명하는 내용 뿐이다. 이야기 내의 설정으로 녹아 있어야 한다
*소소한 고증 오류. 우주공간이 검어 보이는 이유가 잘못 설명되어 있다
*이반의 캐릭터는 마음에 들었다. 완전히 그 이념을 숭상한다기보다는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동질감을 가진 인물 같음
제시되는 사상이 낡았다는 지적은 좀 포인트를 못 잡았다고 여겼는데... 이 글을 쓰면서 염두에 둔 건 새로운 정치 사상을 구상해 제시하는 게 아니라 '미메틱 포머라는 장치를 통해 사상의 개변이 일어나고 새로운 이념이 성립하는 것이며, 그러한 이념들은 어디까지나 미메틱 포머를 조작하는 인간(특히 지배층)의 필요에 의해 인위적으로 가공된 것일 뿐 무슨 신의 섭리나 절대적 진리 같은 게 아니다'라는 주제였기 때문이다. 쓰면서 가장 역점을 둔 부분도 존이 숲을 쇼핑몰로 바꾸는 장면이었고. 그걸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하지 못한 내 잘못이라고 생각해서 굳이 반론은 안 했는데 기분은 좀 그렇긴 했다(....)
연방헌법이 인디언 부족을 어떻게 다루는지 알기 위해서는 연방정부와 주 정부 사이의 관계를 검토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연방정부와 주 정부 간의 권한 배분을 규정한 ‘연방제 민주공화정’ 원리는 미국 정부와 인디언 부족 사이에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1776년에 독립을 했지만 미국이 연방국가 체계를 갖춘 건 많은 세월이 지나고 나서였다. 주 헌법을 가진 각 주가 실질적으로 통치권을 행사했고, 연합정부는 각 주를 대리해 외교권을 행사하는 대표부 정도에 불과했다.
주 사이의 교역을 규제할 권한이 연합정부에 없는 바람에 상거래가 통일되지 않았고, 주마다 자기 필요에 의해 개별 정책을 펼치곤 했다. 통상에 관한 조약을 외국과 체결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남부 주의 교역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미시시피 강 항해권을 별 이해관계가 없는 북부 주의 대표가 포기해버려 큰 마찰을 빚기도 했다. 여러 주에서 화폐를 남발하는 바람에 재정이 붕괴되었고, 급기야 1786년에는 매사추세츠 주에서 세금과 빚의 지불 연기를 요구하는 반란이 일어났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강력한 중앙정부의 출현을 주장하는 이른바 연방파 지도자들이 등장했다. 연방파는 비교적 쉽게 합의할 수 있는 과세권 문제부터 건드리기 시작해 연방행정부와 대통령의 권한으로까지 논의를 진전시켰다. 여러 차례 진통 끝에 제헌의회는 1887년 9월 최종적으로 연방헌법을 완성했다. 이제는 헌법을 비준하는 일만 남았다. 13개 주 중에서 9개 주가 비준하면, 연방정부가 성립하는 것으로 규정을 고쳤지만 이것도 쉽지 않았다.
소규모 자작농은 물론이고 대지주까지도 연방정부의 과세를 두려워했다. 연방헌법이 발효되면 연방정부는 전제군주와 같은 힘을 소유하게 되어, 자기들 마음대로 세금을 부과하고 군대를 동원해 국민을 꼼짝 못하게 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영국의 압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독립혁명을 일으켰는데 권력의 분산이라는 혁명의 성과를 연방정부가 무시하는 게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러다 보니 상당수 미국인은 자신들이 사는 지역 가까이서 공공집회를 열 수 있는 작은 규모의 국가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그 무렵 미국인의 태도는 민주주의 이념과 맥이 닿아 있다. 여기서 말하는 민주주의란 공동체의 큰 틀을 인민이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는 원리를 뜻한다. 다시 말해 미국 독립 직후에 통용되던 민주주의 이념은 직접 민주주의를 지칭하는 용어로, 요즘 우리가 민주주의 하면 떠올리는 대의제(간접) 민주주의는 아니었다. 18세기 후반까지는 민주주의라고 말하면 직접민주주의만을 가리켰다.
그런데 대중이 정서적으로 공감하는 민주주의 원리는 미합중국 출범에 걸림돌이 될 수 있었다. 13개 ‘주 국가’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려면 미합중국이 일정 규모 이상의 조직이 되어야 하는데, 민주주의의 자연적 한계는 미국의 확장에 발목을 잡을 여지가 많았다. 루소 역시 <사회계약론>에서 민주정은 국민 모두가 한 곳에 쉽게 모일 수 있고 서로 다 알 수 있는 아주 작은 국가를 전제로 한다고 적었다. 민주주의는 넓은 시장과 많은 교역을 전제로 하는 거대한 국가에 어울리는 정치 이데올로기가 아니었다. 미합중국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새로운 이념이 있어야 했다. 이렇듯 절박한 형편에 놓인 연방헌법의 기초자에게 안성맞춤의 이데올로기가 제시되었는데, 바로 공화주의였다.
민주공화국이라는 표현에서 보듯 요즘은 공화주의를 민주주의와 결부시켜 사용하고 있지만 이 둘은 다른 차원의 이념이다. 그러면 공화주의의 실체는 무엇일까?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공화주의를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정부 형태가 어떤 것이든 간에 법에 의해 지배되는 모든 국가를 공화국이라 부른다. 왜냐하면 법에 의해 지배될 때 비로소 공공선이 우위를 차지하고, 공적인 것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공화주의에 대한 루소의 해석은 ‘공적인 것’ 혹은 ‘공공선’을 뜻하는 라틴어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에서 공화주의(Republicanism)라는 용어가 유래한 사실과 맞닿아 있다. 공화주의의 특징에 대해서는 대체로 자의적인 권력으로부터의 자유, 시민의 자치적 참여 등을 핵심으로 꼽고 있다. 개인의 자율성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자유주의와 공화주의는 관련이 깊다. 역사적으로 자유주의는 자신의 주요한 원리, 특히 절대 국가에서 반대하면서 제한 국가를 옹호하는 원리를 공화주의로부터 물려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자유주의는 정치적 자유에 대한 공화주의적 관점을 잃어버렸다. 법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둘은 서로 달랐다. 모든 법은(타인의 자의에 예속되는 것을 막으려는 비자의적인 법조차도) 어쩔 수 없이 자유를 제한하게 된다는 자유주의자와는 달리, 공화주의자는 그러한 법이 자의적 권력과 예속의 중압을 경감시켜준다면 어떤 엄격한 법도 기꺼이 받아들이려 한다. 공화주의는 자의적 권력에 의한 자유의 제약은 거부하지만, 공공선에 의해 자유가 제한되는 것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문제는 ‘공적인 것’이 과연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한 사회의 구성원이 대체로 공감하는 공공선이 존재하고 이러한 ‘공적인 것’이 정치적 수사에 그치지 않고 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이 되려면, 법으로 형상화되어야 한다. 그런데 국가가 있는 사회에서는 ‘국가’의 법이 아닌 ‘사회’의 법이 실현될 공간이 갈수록 줄어든다. 공공선이 국익의 위세에 자꾸만 밀려난다. 그러다 보니 공화주의 이념은 겉보기만 화려한 담론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미합중국 수립 과정에서 공화주의가 한 역할이 바로 이랬다.
민주주의, 공화주의와 결합하다
공화주의와 민주주의는 동일한 기준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념이 아님에도 연방헌법 기초자는 공화주의를 민주주의와 같은 평면에 대립항으로 놓고 양자를 비교했다. 연방헌법 초안 작성에 관려한 알렉산더 해밀턴, 제임스 매디슨, 존 제이 등이 함께 쓴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에는 “민주정과 공화정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두 가지 있는데, 공화정에서는 전체 시민이 선출한 소수의 대표에게 통치권이 위임되고, 시민의 수가 늘어나고 영토가 커지더라도 공화정은 그에 맞추어 확장될 수 있다”고 쓰여 있다.
건국 초기의 지도자가 공화주의 이데올로기에 매력을 느끼게 된 주된 이유는 주 정부의 권한을 축소하고 연방정부의 권한을 확대하려는 자신들의 필요에 공화주의가 잘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화주의는 전제정치와 상반된 이미지를 가졌으면서도 모호한 내용으로 되어 있어 입맛대로 각색하기 좋은 이념이었다. 연방헌법 기초자들은 통치 범위를 확장하면 당파나 이해관계가 한층 더 다양해져서, 다른 시민의 권리를 침해할 만큼 다수파가 공통의 동기를 가지는 것이 어려워진다며 큰 정부를 선택해야 하는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바람직한 정부 형태인 공화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큰 규모의 정치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주의 권한을 연방정부에 양보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케케묵은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고리타분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이렇게 해서 공화제의 외투를 뒤집어 쓴 미합중국이 탄생했다. 반면 민주주의는 전혀 대우를 받지 못했다. 연방헌법 제정 과정에서 헌법 본문은 물론 전문에서조차 민주주의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처럼 뒷전으로 밀려났던 민주주의는 언제 다시 무대 위로 등장했을까?
왕정이 근대적 국민국가로 탈바꿈하는 시기에 왕권에 대응하는 의회를 확립하고 군주 주권과는 다른 국민 주권을 정립하는 데 공화주의는 큰 몫을 했다. 그런데 공화주의는 근대국가의 이데올로기로 채택되기에는 큰 약점이 이었다. 국가의 외형을 키우는 것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으나, 확대된 규모에 걸맞게 중앙정부의 권한을 늘리는 데는 그리 신통치 못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가 매력적인 정치 이념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산업혁명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한 인민은 정치적으로 평등하게 대우받길 원했다. 정치 참여에 대한 요구를 국가권력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길들이는데 ‘인민에 의한 통치’라는 이데올로기는 효과적인 장치가 될 수 있었다. 다만, 사전에 조율할 게 있었다. 민주주의란 인민이 직접 참여한느 방식의 정부 형태라는 등식을 지워버려야 했다. 이러한 필요는 그대로 현실에 반영되었다. 인민이 직접 참여하면서 통치권을 행사하는 일느바 그리스 시대의 고전적 민주주의는 ‘순수 민주주의’라 불리며 실제 정치 세계에서는 발붙이기 어려운 강학 상의 정치체제로 오그라들었다. 그러고는 그 빈자리를 지금의 우리가 흔히 거론하는 간접민주주의가 채웠다.
민주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변하고 나자 더 이상 ‘권력을 행사하는 통치자 수’라는 잣대로 민주주의를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대신 선거권의 확대, 기회의 균등 등이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가 되었다. 1820년대 미국 사회에서 통용되던 민주주의란, 인민에 의한 직접선거를 의미하는 정치적 범주를 넘어 그 이상의 가치와 요소를 포함하는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주주의였다. 대의제 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보편적인 모습으로 바뀌면서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접목이 이뤄졌고, 이렇게 해서 민주공화정은 지금의 우리 귀에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미메틱 포머라는 개념이 신선했다. 가난으로 뭉치는 것도 공감이 많이 갔고. 9페이지까지는 재미있게 봤는데, 10페이지부터 화자가 존으로 바뀌고 ‘설명’을 하기 시작하는 부분부터 몰입감이 떨어졌다. 설정집 읽는 느낌. 그 전까지는 스토리텔링이 잘 짜였다 싶었는데 여기서 힘이 떨어졌나 싶어서 아쉬웠다.
*원전인 <슈퍼로봇의 혼>도 후반에서 너무 설명이 많아져 아쉬웠는데 그 단점이 그대로 이어진 듯. 크로스로드에 내보면 좋았을텐데. 문장력이나 담겨 있는 사상, 철학이 거기의 기존 작품에 비해서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본다. 집중력이 초반에 집약되어 있고, 중반 이후로 그게 훅 떨어지는 느낌.
*존 파트에서 등장하는 여자가 007의 본드걸 마냥 너무 전형적이다.
*갈수록 문장이 좋아진다. SF쓰는 사람들이 과학적 정합성에 너무 집중하다 보니 문장에 있어선 읽는 재미가 떨어지는 편인데, 훨씬 나아졌다. 초기 작의 경우에는 지나치게 관념적인 경향이 짙었는데 점차 그게 ‘이야기’와 잘 얽히기 시작하고 있다.
*중반 이후로 그냥 설정뭉치 보는 느낌. 이야기의 균형감각이 결여되어 있다. 나쁜 버릇으로 굳어버릴 우려가 있다. 구상이 불완전한데 그냥 쓰는 경향이 강하다. 구성을 글로 끝까지 풀어내지 못하는 걸로 보인다
*지금 상태로는 초고에 불과함. 완성되면 지금까지 가져온 작품 중 가장 반응이 좋을 듯하다. 헐거운 부분을 좀 더 보강하고 이야기를 구체화해 완성작으로 만든 걸 꼭 보고 싶다.
*대단히 공들여 썼다는 느낌이 든다. 문장이나 서술, 자료 조사에 있어 매우 공들였다고는 생각되는데, 설정 밖에 없다. 이 세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사람들이 이 체제에서 순응하느냐 반항하느냐에 대한 게 빠져있다. 그게 제일 중요한 것이어야 하는데.
*배경 지식을 작가가 완전히 소화한 상태에서 말 그대로 ‘배경’으로 작용하고 이야기가 더 확고해야 했다. 지식을 충분히 잘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내지 못하고 있음. 매우 공들였다고는 생각되는데, 그래서 더욱 아쉽다.
*잘 안 읽힌다. 공들였다는 건 확실히 알겠지만... 구체적인 액션이 없다. 이게 환상소설이나 SF의 요소를 갖고 있지만, 현실의 배경지식이 없는 독자 입장에서 봤을 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작품 자체만으로 설 수 있는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
*글에는 ‘흐름’이 필요하다. 강, 약, 중강, 약.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독자가 쉬어 가야 할 포인트가 없다.
*구체적인 고유명사들을 전부 빼버렸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자꾸 ‘현실’과 중첩이 되기 때문에 그게 너무 과해진다.
*마지막에 나온 여자의 존재가 뜬금없다. 상징하는 바들이 유기적이지 못함. 집중했어야 할 이야기의 토대를 더 명확히 쌓았어야 했다.
*인물들이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라, 굉장히 위험하고 제삼자가 보기에 매력적인 상황에 처해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인데 위기감이나 절박감이 들지 않는다.
*독자가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와 현실을 거쳐 이야기를 받아들일 여지가 없다.
*후반에 등장하는 여자의 캐릭터 문제. ‘대표적인 인물상’과 ‘상투적인 인물상’은 다르다. 작가의 의도대로였다면 존에게 입맛 맞는 말만 해주는 아예 텅 빈 인간이라는 식으로 더 강하게 밀어붙였어야 했다.
차르가 몰락하고 3차례의 혁명과 적백내전을 거치면서 러시아의 농촌사회는 극도로 피폐화되었다. 농부들은 말 한 마리, 양 한 마리만 있어도 ‘부농’으로 분류되어서는 끌려가 처형당했고 이 과정에서 온갖 밀고와 협잡이 끊이지 않았다. ‘선언’들의 집합이 아니라 ‘이야기’이기 위해서는, 또한 소비에트 연방 식 공산주의의 폐단 역시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그러한 과정의 흐름을 캐치해 내야 했는데 사상사적인 변화에만 너무 치우쳐서 이야기가 너무 관념적인 방향으로 흘렀다. 피상적인 자료조사의 한계가 보임.
현재 이 작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중 하나의 접근방법을 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는 보다 더 많은 자료조사를 해서 아예 역사적 고증에 충실하는 것. 그러나 이 방법은 이야기의 덩치가 너무 커지고 단편으로서는 소화할 수 없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 두 번째는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고유명사들 대부분을 없애 버리거나 다른 이름으로 대체하고 추상화시켜서, ‘슬라브 연방’도 ‘천조’도 소련과 미국에 딱딱 대응하는 가상 국가가 아니라 해당 세력의 이념적 상징성만 가져온 그 무언가로 바꾸는 것. 이 방법은 정치장교를 비롯해 나름 열심히 조사한 디테일이나 캡틴 아메리카 디스를 비롯한 근사한 장식품들을 죄 포기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개인적으로야 가혹하지만(캡틴 아메리카 디스는 꼭 하고 싶었는데!), 객관적으로 보면 이쪽 방법을 취하는 게 더 나아 보인다.
프로파간다를 소재로 한 작품은 이미 많다. 하지만 그 소재를 어떤 식으로 다뤘느냐에 따라 실제로 나온 작품들의 면면은 천차만별로 갈린다. 테크닉 차원의 이야기긴 하지만, 서사의 구성을 바꿔서 현재부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거나 독자가 존과 이반을 동일시하게끔 두 파트를 섞는 방법도 있다.
초기 구상에서는 이 이전에 런던 만국박람회에서 루이스 캐럴과 칼 마르크스가 대화를 나누고 그 대화에서 힌트를 얻은 마르크스가 사상 개변장치를 만드는 내용과 그보다 이전 프랑스 혁명 말기 생 쥐스트와 로베스피에르가 대화를 나누며 사상 개변장치의 개념적 기반을 유추해내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내가 파악하기로는 자본주의의 탐욕성을 앞세운 천조의 방식이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완성형 모델이고, 헤게모니를 쥔 입장에서는 이보다도 더 ‘진보’된 사상 개변장치 이용법을 생각해내기 어려울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상태로 시작해 역순행적 구성을 취함으로써 ‘어떻게 이런 물건이 만들어졌냐’를 더듬어 보는 것도 괜찮은 접근법이 될 수 있다.
고담의 밤하늘은 언제나처럼 매연으로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 낮에는 늘 당장이라도 비가 한 바탕 퍼부을 것처럼 어둑어둑하고, 밤에는 스모그 구름에 반사된 도시의 불빛들 때문에 요사스러운 기묘한 색으로 물드는 모습만이 고담의 하늘이 지을 줄 아는 두 표정이었다. 4년 전까지는 고담시경 옥상에서 발사된 대형 서치라이트- 통칭 배트 시그널의 빛에 새겨진 박쥐 무늬만이 때때로 그 혼탁한 하늘을 가로질러 수 놓이곤 했지만 그 빛에 이끌려 날아들던- 한 때는 고담 시민들의 과반수가 고담을 지키는 흑기사라고 믿었던 비질란테, 배트맨이 사실은 영웅 하비 덴트를 포함한 6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한 범죄자일 뿐이라는 게 밝혀진 지금 고담의 밤하늘은 혼탁하기만 했다. 그 고담의 한 뒷골목에서, 두 줄기의 마리화나 연기가 가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배트맨이 설치고 다니긴 했지만 예전이 더 좋았는데.”
“어차피 배트맨과 마주칠 가능성은 낮고, 짭새들한테 뇌물도 잘 통했고….”
“큰 조직들이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으니 뒷골목 관리도 더 잘 됐고.”
“팔코네부터 해서 마로니, 갬볼, 체첸, 자즈… 한 가닥 하던 조직 간부들이 줄줄이 죽거나 달려 들어갔더니, 오히려 별별 듣도 보도 못한 잡놈들이 우글댄다니까.”
“그래, 고담도 영 예전만 못해. 뭐, 그래도 미국 동부에선 아직 고담만큼 장사하기 좋은 곳도 별로 없으니까.”
“조커 기억하지? 그 미친 새끼가 한참 난리칠 때 말야, 내 사촌이 그 등쌀 견디다 못해 메트로폴리스로 옮겼는데 얼마 전에 다시 고담으로 돌아오고 싶다고 칭얼대더라. 거기선 장사는 커녕 숨도 크게 못 쉰다던데? 아니, 자기 심장 소리마저도 죽이고 살아야 한다던가?”
이야기를 나누던 둘 중 뚱뚱한 흑인이 피우고 있던 마리화나를 발치에 쓰러져 있던, 회색 정장 차림의 중년 남자의 목덜미에 꾹 눌러 불을 껐다. 남자의 몸 아래서 흘러나온 피가 지저분한 바닥 위로 퍼져가고 있었다. 옆에 있던 덩치 큰 히스패닉 청년이 피식 웃었다.
“크핫, 메트로폴리스? 거긴 우리 같은 놈들한테는 무덤이야! 아니, 웬만해선 죽진 않으니 무덤이라기엔….”
그 때,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한 쌍의 검은 장갑을 낀 손이 히스패닉 청년의 목덜미를 잡아채고는 입을 틀어막은 채 그를 소리 없이 골목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어?”
불을 끈 흑인이 방금까지 옆에 있던 동료가 사라진 걸 깨닫고 어리둥절하여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은 바람 한 점 없었고, 쥐죽은 듯 조용하기만 했다.
“디에고, 어디 갔어? 야, 장난 치지마! 빨리 안 나오면 돈 나 혼자 챙긴….”
덜그럭. 골목 안에서 빈 깡통이 굴러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흑인은 품에서 베레타 권총을 뽑아 들어 안전장치를 풀고 골목 안을 겨누었다. 그의 음성에 불안감이 묻어났다.
“씨발… 야, 디에고! 빨리 안 나와?”
그 때, 그가 서 있던 골목 위쪽에서 작은 금속조각 같은 게 날아들어서는 권총을 든 팔에 박혔다.
“아악!”
그는 고통보다는 놀라움에 순간적으로 권총을 떨어뜨렸다. 타앙! 충격으로 권총이 골목 안으로 발사되었고, 멀찌감치서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던 고양이가 기겁하며 달아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거대한 박쥐의 날개가 비좁은 골목길 위로 펼쳐졌다. 그것을 올려다보는 흑인의 눈이 커졌다. 경악으로 크게 떠진 그의 흰자위가 어둠 속에서 희번뜩거렸다.
“배….”
뒷말을 채 잊지 못한 채 그는 억센 발길에 뒷통수를 얻어맞고는 정신을 잃었다.
그는 흑인의 팔에 박혀 있던, 자신이 손수 갈아 만드는 박쥐 형상의 표창- 배터랭을 회수했다. 늘 느끼는 것이었지만 일회용 무기를 일일이 만들어 쓰는 것도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주물 공장에 수주를 넣어 한 2~3000개 정도 대량 제작해 쌓아놓고 다니며 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랬다간 꼬리가 밟힐 게 뻔했다. 다음은 응급처치였다. 팔의 동맥은 맞지 않게 던졌지만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런 지저분한 곳에 방치해뒀다가는 파상풍을 일으킬 것이다. 그는 허리의 유틸리티 벨트에서 붕대 스프레이를 꺼냈다. 커다란 지포라이터처럼 생긴 이 스프레이는 응용과학 부서에서 미군에 납품하기 위해 개발한 것으로, 노출된 피부에 몇 번 뿌리기만 하면 약제가 신속하게 흡수되어 지혈 및 진통 작용을 함과 동시에 산소와 반응해서는 열린 상처 위로 막을 형성해 웬만한 밀폐 붕대보다 확실하게 2차 감염을 예방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미군에서는 이미 표준 장비로 채용됐고, 수출도 되고 있으니 이거라면 정체를 들킬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다음으로 쓰러져 있는 중년 남자의 목덜미에 손을 얹은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맥박은 멈춰 있었고, 피부도 차갑게 굳어가고 있었다. 이미 늦은 것이다. 그는 잠시 고개를 숙여 죽은 남자에게 조의를 표했다. 이 남자는 어떠한 삶을 살아왔고,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자 했을까. 결혼은 했을까? 아이는 있을까? 그 아이는 아버지의 죽음을 접하고 어떤 슬픔과 절망을 느낄까? 그는 오래된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감상에 잠길 때가 아니었다.
유틸리티 벨트에 돌돌 말려 있는 로프를 꺼내 기절한 흑인 남자와 역시 기절시켜 골목 구석에 박아둔 히스패닉 청년을 묶어서는 사람들이 자주 오가는 거리 근처로 옮겼다. 아무리 그라 해도 정신을 잃고 축 늘어진 건장한 성인 남자 두 명을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일을 시작한 이후 계속 몸을 혹사시켜 온 결과도 몇 년 전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전기를 흘려서 활공 형태로 변화시킬 수 있는 망토와 그래플링 훅 건, 무엇보다 그 자신의 처절하기까지 한 신체 단련 덕택에 아직은 움직이는데 지장이 없었지만 걸핏하면 높은 데서 뛰어내리거나 하는 바람에 부담이 쌓인 양 무릎은 조금만 날씨가 험악하면 지독하리만큼 쑤셔왔고, 허리와 어깨도 정상이 아니었다. 그는 자조적으로 생각했다. 4년 전 그 날 이후, 최소한 내 흉내를 내는 자경단원은 더 이상 나타나질 않으니 그것 하나는 다행이로군. 그 기간 동안 한 번은 관심을 끌고 싶어 하는 찌질이 하나가 겉모양만은 제법 그럴싸하게 만든 슈트를 걸치고 밤거리를 돌아다니다가 고담 시경 소속의 존 블레이크라는 젊은 신참 경찰에게 떡이 되도록 두들겨 맞고 체포된 사건이 한 번, LSD를 투약한 친구 하나가 하비 덴트를 추모하는 특집 프로그램 촬영 현장에 난입하여 미녀 리포터 앞에서 바지와 속옷을 끌어내린 채 사실은 자신이 바로 ‘그’이며 자신은 누명을 쓴 것이고 하비 덴트 검사가 악당이라고 외친 사건이 한 번 있었지만 배트맨이 6명의 무고한 자들을 해친 살해범이라는 ‘사실’이 고담 타임즈 지면과 TV를 통해 두고두고 대서특필된 결과 자기 행세를 하던 이들은 더 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대형 마트 장난감 코너에서 팔려나가던- 법을 무시하는 자경단원의 우상화 따위는 인정하지 못한다는 법원의 경고로 인해 노골적으로 닮지는 않았지만 잘 뜯어보면 자신을 모델로 만든 것이 명백한 슈퍼히어로의 인형 따위도 모조리 치워졌다. 대신 ‘마스크를 쓴 미치광이 사이코패스 살인마’의 사고방식을 분석하고 그의 정체를 추론한, 자칭 심리학자들의 책들이 서점에 한 동안 범람했고 그 중 한 권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영웅을 살해한 무자비한 살인마의 존재조차도 돈벌이 수단이 되는 고담이여, 내가 사랑하는 도시여 만세.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두 양아치들을 옮긴 그는 작은 권총처럼 생긴 그래플링 훅 건을 발사해서는 옆 건물의 옥상에 걸고 권총이라면 공이치기가 있을 부분에 달린 버튼을 눌렀다. 케블라 재질의 와이어가 소리 없이 감기며 그를 허공으로 끌어올렸다. 야트막한 옥상과 옥상을건너뛰고, 홈통을 기어오르고, 누군가의 집 베란다에 매달리기를 몇 차례, 그는 벌써 숨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마스크 안이 땀에 젖어 축축했다. 자신도 언제까지고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슬슬 후계자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그는 고개를 저어 버렸다. 그 날의 진실을 아는 제임스 고든 경감, 아니 고든 청장마저도 최소한 대외적으로는 자신을 비난하고 추적하고 있으며 도시 전체가 적이나 다름없는 현재 상황에서 믿을 만한 후계자를 찾아낸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쉽지 않은 일인데다가… 자신이 매일 밤 수행해야 하는 의무는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남에게 부여하기에는 지나치게 가혹했다. 차라리 언제까지고 자신 홀로 묵묵히 이 힘겨운 의무를 계속해 나가는 것이 더 나았다.
하지만.
하지만, 그게 언제까지 가능할까. 시민들을 지키고 범죄와 싸운다는 것이, 나 혼자서 얼마나 더 가능할까. 자신은 나이가 들어 갈 테고, 몸 상태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더 나빠질 텐데. 한 순간 알프레드도 폭스도 고든도 모두 죽은 뒤 홀로 남은, 지치고 병든 노인이 된 자신의 모습이 연상되며 끔찍한 절망과 무력감이 밀어닥쳤다. 시야가 새카맣게 흐려지고, 앵커슈터의 그립을 움켜 쥔 손이 미끄러졌다.
“……!”
실수다. 늘 긴장하고 감각을 곤두세워야만 할 정찰 도중에 잡념이 끼어든 대가다. 그는 이를 갈며 반사적으로 망토에 전류를 흘려보냈다. 파바바앗----! 형상 기억 섬유로 된 망토가 펼쳐지며, 글라이더가 되어 건물들 틈의 허공을 미끄러진다. 하지만 약간 늦었다. 지면에 정통으로 추락해 다리가 부러지는 것은 면했지만, 착지 타이밍을 제 때 잡아내지 못하는 바람에 그는 비스듬히 바닥에 충돌하며 10여 미터 이상을 미끄러져나갔다. 비명조차도 나오지 않는 고통이 전신을 휩쓸었다. 그 와중에도 반사적으로 이 지역은 고담에서도 후미진 폐공장 지대라 보는 사람이 없을 거라는 일말의 안도가 뇌리를 스쳤다.
바닥에 길게 누운 채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우선 몸 상태를 확인한다. 망토와 슈트의 방호 패드, 반사적으로 취한 낙법이 낙하의 충격을 상당히 줄여주긴 했지만 그래도 가슴팍이 지독하게 쑤셨고 시야 가장자리가 새카맣게 물들었다가 원래대로 돌아오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전신 타박상. 약간의 뇌진탕이 있다. 뼈가 부러지거나 금이 가는 건 면했다. 둔하게나마 아직은 움직일 수 있다. 일어나야 한다. 혹시라도 보고서 쫓아오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고, 훅 건도 회수해야 한다. 그는 그렇게 판단하고는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새벽이었지만 날이 밝을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하늘을 올려다 본지 얼마나 되었더라? 그 날, 고담시경 옥상의 배트 시그널이 깨진 이후로는 하늘을 볼 일이 없었다. 범죄는 하늘 위에서는 벌어지지 않으니까. ‘하느님은 하늘에 계시며, 세상은 모두 평온하도다.’ 로버트 브라우닝의 싯귀를 떠올리며 그는 잠시 그렇게 누워있었다.
시야 가장 자리, 폐공장의 거대한 탱크-한 때는 화학 약품 증류용으로 쓰였을- 위에서 작고 검은 형체가 나부끼는 게 보인다. 나뭇잎일까? 고담에서도 낙후된 이곳에 나뭇잎이 있을 리가 만무하다. 온통 녹슨 파이프와 시멘트, 철근 골조 뿐인 이곳에. 그 검은 형체가 가볍게 탱크 위에서 보다 작은 다른 탱크 위로, 중간이 끊어진 커다란 파이프로, 엉성하게 매달려 있는 비좁은 비상계단으로, 지면에 선 채 녹슬어 있는 탱크로리의 지붕으로 연이어 건너뛰며 누워있는 그를 향해 다가온다.
“……!”
자기학대에 가까운 혹독한 단련을 통해 가다듬은 반사신경과 체력, 그리고 운이 그를 구했다. 그는 양 다리를 붙여 무릎을 끌어올린 뒤, 허리에 스프링처럼 탄력을 붙이며 한 동작으로 몸을 일으켜 서면서 옆에 굴러다니고 있던 쇠파이프를 집어 들어 첫 공격을 받아냈다. 챙강. 쇳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고, 그는 거의 시간차를 두지 않고 손을 뻗어 쇠파이프를 내려친 검을 휘두른 손목을 잡아채려 했다. 극히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는 문득 날 길이 60센티미터 가량의 짧은 검이 묘하게 눈에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 형체는 간발의 차로 검을 놓아 버리고서는 바닥에 손도 짚지 않은 채 몇 바퀴 백 텀블링을 돌며 순식간에 거리를 벌렸다. 빠르다.
사르락. 격렬한 움직임에 길고 매끄러운 머리칼을 모아 묶은 끈이 풀려 떨어져 나간다. 그 검은 머리칼이 바위에 부딪쳐 비산하는 파도처럼, 섬세하게 세공된 작은 보석을 연상케 하는 차갑고 단정한 얼굴 주변으로 흩어진다.
“어지간히 단련한 인간도 한 순간에 목에 구멍이 났을 텐데. 듣던 대로 대단한 실력이군, 배트맨.”
그녀의 입가로 새하얗고 싸늘한 미소가 퍼져 나갔다. 허리 뒤에서 날이 크게 휘어 있는, 중국풍의 만도(彎刀)를 뽑아 드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배트맨은 쇠파이프를 일본 검도 식으로 쥐고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허리가 깊이 가라앉고, 다리는 어깨 너비보다 약간 좁게 벌려서 왼 다리를 뒤로 한 발짝 거리만큼 빼어 체중 대부분을 싣는다. 파이프 끝은 상대의 목젖을 향한다. 고담에서 한 가닥 하는 범죄자들의 면면은 모조리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얼굴은 낯설었다. 짙게 쌍꺼풀진 큰 눈과 오똑한 콧날은 인도계의 느낌을 연상시켰지만 인도계라기엔 피부색이 너무 밝았다. 앵글로 색슨계 백인과의 혼혈이 분명했다.
“…너는 누구지? 고담에선 처음 보는 얼굴인데.”
그녀는 대답 대신 쿡쿡 웃으면서 만도를 앞으로 내밀고는 과시하듯 휘둘러대며 천천히 배트맨을 중심으로 해 옆으로 돌기 시작했다. 배트맨도 더 이상의 대답은 기대하지 않고 신중하게 그녀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았다. 그 날랜 움직임은 평범한 범죄자의 그것이 아니었다. 숱한 훈련과 경험을 쌓은 노련한 암살자가 분명했다. 정체가 뭘까, 누군가가 날 죽이려고 고용한 걸까? 배트맨은 자신을 죽이려고 들 만한 이들의 리스트를 쭉 떠올려봤지만 머릿속에서 그 리스트가 끝나지 않을 듯한 느낌을 받고 포기했다. 팽팽한 긴장감이 둘 사이의 공기를 가득 메웠다. 쿠르르릉. 둘의 머리 위 높은 하늘에서 나직하게 뇌성이 울고,
탓.
그것이 신호라도 된 듯 배트맨 쪽이 먼저 움직였다. 뒤로 빠져 있는 왼쪽 발에 일순 체중이 실리고, 슈트에 싸인 육체가 대지를 박차고 순간적으로 거리를 좁히며 그 손에 들린 쇠파이프가 적의 목을 향해 찔러져 들어가다가 한 순간 방향을 꺾어 만도를 든 팔을 노렸다.
“흥!”
그에 대해 그녀는 연필 깎듯 만도를 마주 베어 와서는 파이프를 비스듬히 쳐냄과 동시에 손목을 뒤틀며 배트맨의 손에서 파이프를 떨어뜨리려고 해왔다. “!” 목을 노린 게 페인트란 걸 눈치챈 건가. 배트맨은 파이프를 쥔 양 손에 힘을 주며 그대로 밀어 붙이려고 했으나 사각에서 날카로운 로우킥이 날아들어 그의 허벅지에 꽂혔다.
“큭…!”
“당신이 치명적인 공격은 안 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어, 좀 더 그럴싸하게 노리라고.”
비웃음과 함께 비틀대는 배트맨의 마스크 위로 만도를 쥐지 않은 왼 주먹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들었다. 허공에서 손가락이 갈고리처럼 벌려지고, 그것이 배트맨의 눈을 노린다. 피할 틈은 없다. 배트맨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이마로 그 손가락을 들이받았다. 빠각. 마스크가 금이 가는 소리와 함께 그녀는 손을 털며 다시 물러났다. 그 짧은 순간에 다시 주먹을 쥐고 장저로 박치기를 받아내 손가락이 부러지는 걸 모면한 것이다.
“좋은 순간 판단력이야, 그 정도는 되야 고담까지 온 보람이 있지!”
그녀는 배트맨이 쥔 쇠파이프의 간격 바로 바깥에서 가볍게 풋워크를 밟으면서 도발해왔다. 여전히 오른 손에 들린 만도가 번뜩이고 있었다. 배트맨은 상대가 어떻게 나와도 빠르게 대처할 수 있도록 중단 자세를 유지한 채 그 움직임을 신중하게 관찰했다. 복싱을 연상케 하는, 통통 튀는 가벼운 발놀림이 멎고 천천히 그녀의 자세가 바뀌었다. 무게 중심을 허리 아래에 두는 낮고도 좁은 자세와 신속한 진퇴 및 방향전환이 가능하도록 자연스럽게 앞뒤로 벌려 선 양 다리, 양 팔을 ㄴ자로 꺾어서는 팔꿈치를 몸에 바짝 붙이고 앞으로 가볍게 펼친 손. 그 중 앞 쪽을 향한 오른 손에 만도가 들려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배트맨도 익히 아는 자세였다. 당랑권(螳螂拳)이로군, 17세기 경 소림사의 한 무술가가 나비를 사냥하는 사마귀의 모습을 본 따 만들었다고 하는 무술. 외모는 중국 권법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데. 당랑권의 파해법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저 만도가 신경 쓰였다. 배트맨은 가볍게 호흡을 내뱉으며 짧게 찔러 들어갔다. 당랑권은 본질적으로 기다리면서 상대의 움직임을 읽은 뒤 선공을 회피하고 붙잡아 던지기나 빠른 연타로 반격하는 무술. 그만큼 고도의 정신집중을 요하는 고급 무술이었고, 그러한 집중을 깨뜨리기 위해선 의외의 움직임으로 허를 찔러야했다. 배트맨이 내지른 쇠파이프는 순식간에 그녀의 가는 몸을 향해 쇄도해 들어가는 듯하다가 빠르게 다시 거둬졌고, 그녀는 그걸 미리 읽은 듯 미동도 않고 그 자리에서 대기했다.
“뭐야, 겨우 그런 얕은 수에 내가 말려들 거라고 생각한 거야?”
그녀의 얼굴에 희미한 분노가 떠올랐다. 역시 이렇게 노골적인 페인트는 안 통하는군. 무시할 수 없는 실력자다. 하지만…. 그 덕에 알아낸 게 하나 있었다.
“짜증나네, 당신. 소문의 배트맨이 이렇게 쪼잔한 남자일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뭐, 좋아. 그럼 이 쪽에서 먼저 가지.”
타탁, 가벼운 발놀림과 함께 만도가 짓쳐들어와 쇠파이프를 걷어냄과 동시에 그 칼날이 쇠파이프를 타고 불꽃을 튀기며 미끄러져 내려와 배트맨의 오른 손목을 노린다. 역시. 평범한 인간은, 아니 제법 단련된 인간이라고 해도 당장 눈앞에 무기가 있으면 무의식적으로 그걸 상대의 ‘공격수단’으로 판단한다. 그렇기에 동서를 막론하고 모든 무술에서는 상대의 특정한 무기 하나나 타격 부위 하나에 현혹되지 말고 항상 시야에 적의 움직임 전체를 넣으라고 가르치는 것이며, 반복 훈련을 통해 생각하기도 전에 그를 읽어내고 몸이 반응하게끔 하는데 역점을 둔다. 그러나 아무리 훈련해도 사람에게 있어 가장 의존도가 큰 외부 감각기인 눈에 우선 들어오는 무기나 주먹, 팔꿈치 따위에 한 순간 본능적으로 정신이 분산되는 건 어쩔 수 없고, 그 ‘한 순간’을 극한까지 줄여 말 그대로 찰나 미만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것이 고수의 조건이다. 이 여자는 그걸 이용해 만도로 상대를 현혹시킨 뒤 공격을 받아 내거나 흘리고 반대쪽의 주먹이나 발차기로 반격을 가하는 게 특기다. 그렇다면….
배트맨은 순간 양 손에 힘을 줘, 크게 손목을 뒤틀며 쇠파이프를 뒤집었다. “!?” 그녀의 표정에 미미한 경악이 스친다. 만도의 날이 미끄러져 허공을 베고, 그 궤적 뒤에 그림자처럼 숨어 배트맨의 마스크 아래 노출된 턱을 노리고 날아들던 주먹을 배트맨은 왼쪽 어깨 위로 흘려보낸다. ‘문’이 열렸다. 망토가 크게 나부끼고, 배트맨은 크게 진각을 밟으며 노출된 그녀의 명치- 인체의 중심선을 한 줄로 잇는 급소 가운데를 향해 오른쪽 팔꿈치를 깊이 꽂아 넣는다. 대팔극- 정심주(大八極- 頂心肘). 완벽한 호흡과 타이밍으로, 팔극권의 여러 타법 중에서도 단타로서는 가장 강맹하다 꼽히는 기술이 정통으로 들어갔다. 배트맨의 팔꿈치가 그녀의 흉골을 박살내기 직전,
한 기억이 그를 잡아챘다. 조커, 고담의 백기사를 자신의 수준으로 끌어내렸고 자신도 그렇게 만들려고 했으며 한발 더 나아가 고담 시민들도 추악한 괴물들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려고 했던 혼돈의 사도. 그의 일그러진, 광기로 가득 찬 미소가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난, 살인은 하지 않아.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 그 결의가 배트맨의 손속을 늦췄다. 그리고 그녀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야아-!”
그녀는 배트맨의 정심주에 직격당하기 직전 몸을 뒤로 빼며 크게 도약했고, 그 덕에 혼신의 일격은 충분히 깊은 타격이 되지 못했다. 그걸 보며 배트맨은 혀를 찼다. 백학권(白鶴拳)의 도약 기술이었다. 단숨에 거리를 벌린 그녀는 인상을 찌푸리며 착지해 가슴을 손으로 눌렀다. 얕게 맞았지만 꽤 고통스러운 모양이었다. 배트맨은 숨을 몰아쉬며 자세를 수습했다. 아드레날린에 잠시 억눌렸던 통증이 다시 밀려오고 있었다. 땀방울이 속눈썹에 맺히고, 사이키델릭 조명이라도 켠 듯 눈꺼풀 안쪽이 껌뻑거렸다. 끝을 낼 기회였는데, 뭐 어쩔 수 없지.
그녀가 고개를 들고 이쪽을 바라보았다. 시종일관 차가운 미소가 깃들어 있던 입매는 딱딱하게 굳어있고, 눈은 스산하게 빛났다.
“팔극권이로군, 도시 환경 내에서 총을 든 범죄자들과 싸운다는 당신의 특성으로 봐서 이런 무술은 거의 잊어버렸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너무 얕본 것 같네. 사과하겠어, 배트맨.”
배트맨은 대답대신 조용히 숨을 고르면서 빠르게 생각했다. 복싱 특유의 가벼운 풋워크, 당랑권과 조합한 만도술, 게다가 백학권이라. 일개 암살자가 모두 익히기에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무술들이었다. 암살자는 격투기 선수가 아니다. 게다가 배트맨이 보기에 이 여자는 그 중 어느 한 가지 무술도 겉핥기로 익히지 않은, 달인이라고 불러 아깝지 않은 고수였다. 그가 알기로, 이토록 기원과 철학이 다른 상이한 무술 체계들을 골고루 익히고 상황에 따라 자유자재로 전환해가며 싸우기 위해서는 지구 전체를 통틀어서도 단 하나만 존재하는 조직에서 훈련을 받아야만 했다. 그리고, 그녀가 사용하던 어딘가 눈에 익은 검.
“넌, 그림자 동맹(The league of shadow)의 생존자인가?”
억제하려고 했지만, 배트맨은 자신의 목소리가 미미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목표에게 자기 정체를 들켜서야 암살자로서 실격이지만, 그 목표가 옛 동문이라면 눈치채여도 어쩔 수 없겠군. 정식으로 소개할게, 내 이름은 탈리아 알 굴.”
그녀는 정중하게, 그림자 연맹 특유의 동양적인 방식으로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건네 왔다.
“당신도 잘 알고 있을, 듀커드- 라스 알 굴의 딸이야.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당신을 죽이고 고담을 정화하러 왔어, 브루스 웨인.”
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제서야 프롤로그 끝나고 본편 시작인데... 전투는 여기까지 쓰고 막힘. 이야기전개상여기선배트맨이이겨야하는데이를어쩐다으어어다른부분먼저쓸까
전부터 좀 관심 있던 미국 슈퍼 히어로 만화를 이거저거 찾아 보다가 장르 자체에 본격적으로 흥미가 생겨 관련 영화, 미-일 합작 히어로 애니 <타이거 앤 버니>에 이르기까지 주르륵 챙겨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 늦기 전에 취직해야 하는데 이런 거나 보고 있으니 어쩌지....
웹서핑을 하다가, 마블 코믹스의 대표적인 히어로 중 하나인 캡틴 아메리카에 관한 에피소드를 발견했다(해당 이슈를 보지 못해서 진짜인지는 잘 모르겠다). 9.11 이후, 미국 내에서 아랍인에 대한 편견이 극심해지는 바람에 한 무고한 무슬림 청년이 시민들에게 린치 당하는 걸 본 캡틴 아메리카가 '이슬람 교는 선한 종교다, 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테러 단체 지도자들이 문제인 거다' 같은 소리를 하면서 그 청년을 보호해준다는 내용이었는데... 그걸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에피소드에서 캡틴 아메리카의 행동은 원론적으로 옳다. 하지만 9.11 테러를 감행한 알 카에다는 바로 미국이 한 때 사담 후세인을 견제하기 위해서 지원하고 훈련시킨 조직이었다. 캡틴 아메리카는 분명히 선한 영웅으로 묘사되지만, 정작 그 에피소드의 작가는 알 카에다를 키운 게 바로 미국 자신이었으며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서는 미국 사상 최초로 자국의 중심부가 공격받았다는 쇼크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다는 이면의 진실은 외면하고 있다는 생각, 그리고 그러한 인식이 '도덕적이고 고결한 인물'인 동시에 '애국적인 미국 시민'이라는 캡틴 아메리카라는 히어로의 한계라는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아아, 9월 11일은 '최초로 미국 본토가 공격받고 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죽어간 날'인 동시에 CIA의 공작으로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살해당하고 군사 독재자 피노체트가 권좌에 오르게 된 날이기도 하지 암.
<다크 나이트>가 개봉했을 때, 알프레드 역을 맡은 마이클 케인은 "슈퍼맨은 미국이 바라보는 미국의 모습이며, 배트맨은 다른 나라가 바라보는 미국의 모습"이라고 인터뷰에서 본인의 의견을 밝혔다. 다크 나이트에서 배트맨이 조커를 잡기 위해 고담 시민들 전체의 핸드폰 통신을 도청하여 그 통신 데이터를 기반으로 3D 렌더링된 지도를 만드는 장치를 만드는 묘사를 두고 한 발언이 명백하다. 얼핏 보기에 이것은 작년에 스노든의 폭로로 인해 명백해졌지만 전부터 꾸준히 의혹이 제기되어 온 미국의 정보 통제와 대중 감시에 대한 비판- 즉, 지극히 타당하고 합리적인 비판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을 보는 다른 나라의 관점이 배트맨'이라는 것은, 악과의 싸움에 있어 극단적이고 정도가 지나친 수단을 택했을 뿐 미국이 근본적으로는 순수한 정의감에 의거해 행동한다는 인식을 전제로 하고 있다(마이클 케인은 영국인이지만).
굳이 이러한 예를 들지 않는다 해도, 미국 슈퍼 히어로 장르를 보다보면... 미국인들 전반의 미국이라는 자신들의 조국에 대한 일종의 '집단적 자아상'이 어느 정도 보인다는 생각이 든다. 그 자아상 속의 미국은
1)중국과 러시아로 대표되는 라이벌들에게 지위를 위협받고 있지만 여전히 세계 제일의 강대국이며
2)그 힘을 '정의로운 목적으로 사용하는 선한 나라'이고
3)정의감이 지나친 나머지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수단에 기댈 때도 아주 가끔가다 한 번씩 있고, '적'들에게 그러한 정의감을 이용당할 때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여전히 선하고 위대한 나라
라는, 더 없이 오만한 동시에 순진한 이미지로 뒤덮여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미국은, '강하고 정의로운 국가'여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국제 사회에서 그러한 정의를 선도하고 힘으로 집행하는 '선의 진영'의 수장은 언제나 미국이어야 하며, 그 힘과 정의가 정말로 정당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거부한다. 그것이 미국적인 '자유와 정의'의 한계다.
슈퍼 히어로 장르는 본질적으로 법과 공권력, 사회 질서가 자신들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공동체 의식이 빈약하고 개인주의적인 미국인들의 사고방식에 더해, 광활한 초원 가운데 점점이 흩어져 이웃의 도움을 기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껏해야 일가족 하나, 커봤자 작은 마을 하나 단위가 스스로 총을 들어 산적과 맹수들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켜야 했던 개척 시대 당시의 현실적 풍토와 맞닿아 있다. 총으로 상징되는 '법이니 공권력이니 하는 외부적 권위에 의존하지 않는, 자기자신에서 비롯하는 자유로운 자위권'에 대한 신성시 역시 그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심심하면 벌어지는 총기 난사 사건에도 불구하고 총기 규제 법안이 번번이 물먹는 핵심적 이유도 그거고). 가면 쓴 자경단원과 그를 위협적인 무법자 취급하는 공권력 간의 갈등은 이 장르에서 이미 숱하게 우려먹은 소재다.
그러한 미국적인 정서를 기반에 깔고 있는 게 슈퍼 히어로 장르라면... 미국과는 정서가 다른 한국 배경의 히어로 물은 어떤 모습일까. 역시 매니지먼트 회사에 소속되어 자본주의적 논리로 움직이는 연예인 히어로 또는 국가 기관에 속해 '국익'을 위해 움직이는 공무원 히어로로 양분되어 있고, 미등록 히어로는 싸그리 빌런 취급 받는다거나 하는 식이려나. ....그러고 보니 <타이거 앤 버니>도 그렇고... <초인동맹에 어서 오세요>도 이런 스타일이구나.
브래들리 장갑차의 후방 셔터가 열리고, 여남은 명의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전원 리시버를 끼고 방탄 조끼를 걸친 채 라이플을 들고 있었지만 파벨 박사의 시선을 가장 먼저 잡아끈 것은 그들 모두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종 구성에다가 연령대도 각양각색이었다는 점이었다. 흑표범을 연상케 하는, 군복 차림을 한 날렵한 체구의 젊은 흑인이 있는가 하면 이제 막 IT 회사 같은 곳에서 퇴근하던 것처럼 정장을 입고 안경을 낀 40대 백인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미국 뉴욕의 뒷골목에서 마리화나라도 한 대 피우다 온 듯한, NBA 져지의 레플리카와 헐렁한 트렁크를 걸친 뮬라토 청년도 있었고, 등산복을 걸친 50대 정도의 동양인 남자도 보였다.
하나하나 뜯어보자면 별 문제 없어 보이지만 한 군데 모아 놓으면 그 엄청난 부조화가 잦아내는 위화감에 지나가는 사람 누구나 돌아볼 만한 기묘한 멤버들이었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바닷바람이 파도와 맞물리듯 착착 맞아 떨어졌다. 잘 갈아진 한 자루 칼을 연상케 하는 조용히 가라앉은 눈빛과 수백 번의 연습으로 합을 맞추기라도 한 듯 딱딱 맞는 손발. 그들 중 넷은 라이플을 어깨에 견착하고 장갑차 양쪽으로 둘씩 흩어져 주변을 경계했고, 하나는 셔터 옆에 보초처럼 섰다. 부조화 속의 조화라는 문장이 절로 떠오르는, 그 조직적이고 절제된 움직임은 명백히 군대를 연상케 했지만 그 절도 있는 움직임들 너머에서는 무수한 훈련과 통제를 거쳐서도 완전히 억누를 수 없는 거친 무언가가 약동하고 있었다. 동양인 남자가 다가와, 얼떨떨해하고 있던 파벨 박사의 팔을 잡아채서는 거칠게 장갑차 안으로 데려갔다. 나머지 5명은 바깥에서 대기했고, 후방 셔터가 닫혔다. 동양인 남자는 파벨 박사를 내던지듯 거칠게 시트 한쪽으로 떠밀고서는 포수석에 앉았다. 상부 해치를 닫고 실내로 내려와 차장석에 앉은 베인은 팔걸이에 얹혀 있던 리시버를 둘러쓰고는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타겟 확보 완료. 브라보 팀, 연구소 경비 병력 제압은 어떻게 되가나? 찰리 팀은 퇴로의 안전을 유지해라!”
비좁은 브래들리의 실내 공간. 시트 구석에 내던져진 파벨 박사는 얼떨떨한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윤활유 냄새와 거친 사내들의 땀 냄새가 뒤섞인, 뭐라 형언하기 힘든 악취가 코를 찔렀다. 일촉즉발의 긴장된 대기가 실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군 경험이 없는 파벨 박사였지만, 지금 그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지금 이곳은 전장이라는 것을.
“꽉 잡으쇼, 박사!”
텁수룩하게 턱수염을 기른, 프랑스 어 억양이 강한 러시아 어로 조종수가 파벨 박사에게 한 마디를 던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괴물 같은 신음 소리와 함께 장갑차가 선회했다. “으악!” 파벨 박사는 비명과 함께 한 바퀴 굴러서는 반대편 구석에 강하게 부딪쳤다. 손을 뻗어 아무거나 꽉 움켜쥔 채 기도문을 중얼대는 파벨 박사를 흘낏 돌아보며 조종수가 피식 웃었다.
“강철 운구차에 잘 오셨수다, 정신 단단히 붙잡으라고! 뭐, 재수가 없으면 어차피 조만간 뒈지겠지만!”
쿠르르릉. 한번 크게 덜컹거리는 걸 느끼며 파벨 박사는 눈을 꽉 감았다. 혼란에도 불구하고 의구심이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들의 목적은 노심의 코어와 수식이 담긴 내 노트북의 하드디스크 아니었나? 대체, 왜 나를?
“벨트를 매라.”
베인은 짧게 명령했다. 정신을 수습하느라 한 타이밍 늦게서야 그 말이 자신에게 한 것임을 알아차린 파벨 박사는 시트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허둥지둥 벨트를 매었다. 그런 그에게 무언가 길쭉한 물건이 날아들었다. 얼떨결에 그걸 받아 든 박사는 기겁했다. AK-74 돌격소총이었다. “전 이거 쏠 줄 모릅니다! 호신용 권총 사격 솜씨도 형편없다고요!” 그러나 베인은 박사의 절규에 가까운 말을 무시하고서는 브래들리의 토우 미사일 발사관에 보관탄을 재어 넣으며 명령했다. 발사관과 이어진 송탄 벨트가 나직한 기계음을 울리며 회전한다.
“모두 철수한다! 가도에서 합류해서, 장비를 파기하고 거기서부터는 숨겨둔 차량으로 항구로 간다!”
텁수룩한 수염의 조종수가 흘깃 베인을 돌아보며 보고했다.
“대장, 예정보다 작전 수행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SVR이 냄새를 맡기까지 5분도 안 남았어요!”
“플랜 B로 이행해!”
“프, 플랜 B 말씀입니까?”
조종수가 약간 말을 더듬었다. 아까 파벨 박사를 데리고 들어온 이후 한 마디도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동양인이 포수석에서 대신 리시버에 딸린 마이크에 대고 외쳤다.
“찰리 팀에게 전달한다! 타이밍이 나쁘니, 여기서 시간을 끌다 모두 죽으라는 명령이다!”
조종수는 잠시 눈을 꾹 감았지만, 그 뿐이었다. 조종수는 장갑차를 거칠게 전진시켰다. 콰르릉! 장갑차가 다시 한 번 요동을 쳤다. 토기가 치밀어 오르는 걸 참으며 파벨 박사는 옆으로 몸을 돌려서는 측방 관측창으로 바깥을 흘깃 내다보았다. 허공에 떠 있던 전투 헬기 한 대가 길게 불꽃의 꼬리를 달고 날아든 스팅어 미사일에 명중당해 폭발하는 것이 보였다. 베인이 조종수에게 명령했다.
“지금은 시간의 확보가 최우선이다, 그레고리. 앞에 걸리는 건 전부 뭉개고 돌진해!”
“넷!”
콰아아아---! 격렬한 엔진음과 함께 총중량 27.2톤, 최대출력 600마력의 강철의 야수가 돌진했다. 이들은 진짜 뭘 하는 자들인 걸까, 왜 날 납치한 걸까. 엄청난 요동과 귀가 먹먹해지는 소음 속에서 파벨 박사는 눈을 질끈 감았다.
+
그것은 항구라기보다는, 시골 마을의 강변에 설치된 부두에 더 가까웠다. 파벨 박사를 태운 브래들리는 이 항구에서 5Km 가량 떨어진 한적한 가도 기슭에서 버려졌고, 그 후 베인은 근처에 세워둔 픽업 트럭으로 박사를 데리고 이 부두까지 왔다. 파벨 박사는 콜록대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새벽 하늘은 두텁게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었고, 거센 바람이 불고 있었다. 한참을 정신없이 굴려졌지만, 그는 여기가 어디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저 앞에서 시커멓게 흐르고 있는 큰 강은 우크라이나 전역을 뒤져봐도 단 하나 뿐이다. 저 먼 북쪽 국경 너머, 벨로루시에서 발원하여 우크라이나 전토를 양분하며 흐르는 이 강은 키예프 시와 체르카시, 자포로지에와 니코폴을 거쳐 크림 반도 서쪽의 흑해로 이어진다. 그리고 강의 넓이와 물살로 보아 꽤나 하류가 분명했다. “예정대로다, 이 날씨라면 인공위성을 통한 추적은 불가능 할테지. 서둘러라!” 베인은 동행한 조종수-그레고리라고 불린-와 50대 동양인에게 파벨 박사를 잡고 있도록 지시한 후 부두에 접안되어 있던 보트를 향해 걸어갔다. 그레고리가 물었다.
“대장, 다른 녀석들은 아직 안 왔는데요. 바로 출발하실 겁니까?”
베인은 대답 대신 보트 난간에 한 손을 짚고서는 그 거구로는 상상도 되지 않는 날렵한 동작으로 몸을 날려 갑판 위에 올라섰다. 갑판 위에서 기다리고 있던, 파리한 인상의 청년이 불안하게 눈동자를 굴리며 베인에게 물었다.
“이대로 최고속력으로 공해까지 나가서, 거기서 대기하고 있던 ‘파도 질주자’ 호에 인계하는 걸로 제 일은 끝. 맞지요?”
“물론. 시동은 걸어놨겠지?”
“네!”
베인은 돌아서서는 박사 쪽을 향해 손짓했다. 반쯤 질질 끌다시피 조종수와 동양인이 박사를 데려와서는 거친 손놀림으로 그를 보트 갑판에 던져 넣고는 자신들도 보트에 올랐다. 청년은 힐끗 박사 쪽을 돌아보더니 입술을 한 번 핥았다.
“저, 저도 데려가 주시면 안 됩니까? 어, 전 너무 오랫동안 대장 밑에서 일했어요. 다르게 사는 방법 따윈 모르겠고요. 저, 제가 별로 똑똑한 것도 아니고 늘 실수만 하고 대장 발목만 잡는 쓰레기긴 하지만요. 어, 이미 끝난 이야기인 것도 알고, 대, 대장이 같은 말 반복하게 하는 것 싫어하시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저기, 전 조금이라도 더 대장과 같이….”
“이건, 너무 하잖아요 대장! 처음 만났을 때 그랬잖아요, 자신만 믿고 따라오라고! 그런데 아프리카다 남미다 중동이다 온갖 곳을 돌아다니면서 전 평범한 시민으로 사는 법 따위 배우지도 못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제 와서 제가 쓸모가 없다고요?”
베인은 그를 무시하고 선실로 들어갔다. 대신 동양인이 조종실로 들어가더니 청년의 가슴팍을 짓밟듯이 한 차례 걷어차고는 등산조끼 안쪽으로 멘 홀스터에서 마카로프 권총을 뽑아들어 그의 머리를 겨누고 입을 열었다. 약간 서툰 러시아어였다.
“대장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셋 셀 때까지 일어나 배를 출발시켜.”
“킴 형님! 형님까지….”
“하나.”
철컥.
“형님, 우리 친했잖아요! 저만 그렇게 생각한 거에요?”
“둘.”
“아, 알았어요!”
청년은 사색이 되어 콜록대면서도 비틀비틀 일어나 조종석에 앉았다. 부르르릉, 텅텅텅텅. 보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킴이라고 불린 동양인은 마카로프로 그의 뒷통수를 겨누었다.
“조금이라도 늦장 부린다 싶으면 쏘겠다.”
“크흑….”
청년은 울상을 하고서도 능숙하게 손을 움직였고, 보트는 거친 파도를 가르며 빠르게 속력을 높이기 시작했다. 파벨 박사는 얼떨떨한 심정으로 그걸 바라보았다. 머릿 속이 어지러웠다. 베인은 왜 자신을 납치한 걸까? 대체 이제 어디로 가는 거지? 보트를 모는 저 젊은이와 베인은 무슨 관계인걸까? 보아하니 베인의 부하인 모양인데. 조종석 뒤에 서서 한 손에 쥔 마카로프로 청년의 머리를 겨누고 있던 킴은 조끼 주머니에서 안경 케이스만한 은색 갑을 꺼내 파벨 박사를 잡고 있던 그레고리에게 집어던졌다.
“아아, 슬슬 시간이 되긴 했구만. 어이 킴, 좀 봐주라고! 보트 몰던 중 심장마비라도 일으켜 뻗어 버리면 우리만 손해라고!”
그레고리는 한 손으로 그걸 가볍게 낚아채고는 외쳤다. 킴은 냉랭한 시선을 돌려 조종수를 단 한 번 흘깃 바라봤다. 그 싸늘한 눈빛에 파벨 박사는 좀 위축되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레고리는 유들유들하게 미소 지으며 그 시선을 받아넘겼다.
“대장 명령이 있잖아? 웬만하면….”
“입 다물어.”
“…아차.”
파벨 박사를 잡고 있던 그레고리는 어깨를 으쓱한 뒤 박사를 먼저 선실로 밀어 넣고는 자신도 따라 들어왔다. 찰칵.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파벨 박사는 한숨을 푹 내쉬다가 비로소 자신의 전신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다는 것, 그리고 문이 닫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자비한 강바람이 실내로 새어들고 있으며 그것이 무시무시하게 차갑다는 것을 인식했다. 맞은 편에 앉은 베인은 비좁은 선실이 화려한 대저택의 거실에 놓인 소파라도 되는 듯 편하게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지만, 박사는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대장, 이것을.”
그레고리는 킴에게 받은 은색 갑을 정중하게 베인에게 내밀었다. 묵묵히 그를 받아든 베인은 갑을 열어, 그 안에 가지런히 놓인 10여 개의 작은 앰플들 중 하나를 집어 든 채로 손을 코와 입 주변을 뒤덮은 마스크로 가져갔다. 찰칵, 찰칵, 탁. 굵은 손가락이 놀라울 만큼 우아하게 움직이고, 해골의 턱이 벌려지듯 마스크 일부가 열렸다. 실내등을 켜지 않아 선실 안은 캄캄했지만, 파벨 박사는 마스크 안쪽으로 살짝 드러난 베인의 입술과 턱, 코에 이르기까지의 살가죽이 모조리 벗겨져 있고 근육과 턱뼈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걸 흘깃 볼 수 있었다. 베인은 마스크 안쪽에 삽입되어 있던 빈 앰플을 뽑아내서는 창문을 살짝 열어 그걸 난간 너머 강에 던져 버리고, 그 자리에 방금 꺼내든 새 앰플을 끼워 넣은 뒤 다시 마스크를 닫았다. 철커덕.
“왜 그렇게 멍하니 서 있나, 박사. 앉지 그래.”
베인은 놀랍게도 유쾌한 어조로 박사에게 말을 건넸다. 박사는 맞은편에 조심스럽게 앉아서는 옆에 구겨져 있던 담요를 집어 어깨에 둘렀다. 식은땀이 급격히 마르면서 얼어붙을 듯한 추위가 전신을 파고들었다.
“춥겠지만 한 두 시간만 참게나, 박사. SVR의 명령을 받은 오뎃사 해안 경비대가 지금 우리 뒤를 쫓아오고 있거든. 적외선 탐지에 안 잡히게 엔진에는 배기열을 급속 냉각하는 설비를 해뒀지만, 공해로 나가 배를 옮겨 타기 전까진 불을 피울 수 없어서 말이야.”
“SVR이라면… KGB에 전신을 두고 있다는, 러시아 해외 정보국 말인가? 놈들이 왜 우리를 쫓지?”
아차. 질문을 한 다음 순간 박사는 자신의 말실수를 깨닫고 후회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베인은 그를 놓치지 않고 물었다. “방금 ‘당신들’이 아니라 ‘우리’라고 말했지 박사? 그렇다는 건, 우리는 이제 공동 운명체라는 사실을 댁이 마음 속으로 받아들였다는 걸로 생각해도 되겠지? 안 그런가?”
박사는 이를 딱딱 부딪치며 몸을 최대한 옹송그렸다. 속이 부글거리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게, 뱃멀미가 일어나려는 모양이었다. 그레고리는 그런 박사를 바라보며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베인이 제지했다. “직접 설명하겠다, 우리 귀빈에게 그 정도 성의는 보여야겠지.” 그러자 그레고리는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옆에 굴러다니던 망원경-적외선 야시 장비가 달린 최고급품이었다-을 집어 들어 눈 가에 갖다 대고선 창밖, 보트 뒤쪽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베인의 나직한, 약간 독특한 억양-지금 들어보니 남미 억양인 듯했다-의 러시아어가 박사의 귓전을 두들겼다.
“우선, 이렇게 거친 방법으로 데려오게 된 것을 사과하겠네 레오니드 파벨 박사. 더불어, 핵융합로 노심의 코어와 팔라듐 동기화 수식이 필요하다는 거짓말을 한 것도.”
“역시… 거짓이었군. 하지만, 왜 날 납치한 거지? 인신매매라도 할 셈인가? 나보다는 그게 훨씬 더 팔아먹기 쉬울 텐데.”
박사는 날카로운 음성으로 물으려고 노력했지만, 격렬한 추위에 이빨이 마구 부딪치는 바람에 자신이 듣기에도 그 음성에 위협적인 기운은 전혀 없었다. 차라리 들고양이가 쉭쉭거리는 게 더 무섭겠군.
“그건 곧 알게 될 게야. 하지만 자네가 궁금해 할 다른 한 가지 정도는 지금 답해줄 수 있어, 박사. 우리는 ‘파도 질주자’ 호로 갈아탄 뒤, 멕시코를 거쳐 미국으로 간다. 최종 목적지는….”
베인의 눈이 웃는 듯 가늘어졌다.
“웨인 가문의 영지, 고담 시.”
“고, 고담이라고?”
박사는 인상을 찌푸렸다. 평생을 연구에만 바쳐 온 그도 그 이름은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뉴욕과 뉴저지 사이에 있는, 5개의 거대한 다리를 통해 육지와 연결되어 있는- 5개의 섬으로 이뤄진 인구 3천만의 대도시. 현대 자본주의의 모든 타락과 부패들로 쌓아 올려진 바벨탑. 바깥 세상과는 반쯤 단절되어 있다시피한 연구소 내에서도 미국의 고담 시가 갖는 이미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지는 기업인들의 탈세와 주가 조작, 납품 비리, 꼬리를 무는 조직범죄와 환경오염의 온상 그 자체였다. 4년 전, 세간에는 조커라고 알려진 한 미치광이 테러리스트가 두 척의 페리 선에 나눠 탄 고담의 시민들과 죄수들에게 죄수의 딜레마를 연상케 하는 모종의 사회학적 실험을 시도하려 했지만 ‘백기사’ 하비 덴트 검사의 노력으로 결국 실패한 사건이 있었다. 조커는 아캄 정신병원에 수감되었지만 그 직후 배트맨이라는 자경단원에 의해 하비 덴트가 결국 살해당한 이후, 매스컴에서는 대오각성한 고담시경의 경찰들이 하비 덴트의 유지를 이어받아서는 범죄 소탕에 매진한 끝에 조직범죄를 대부분 일소했다고 보도되고 있었으나 파벨 박사를 비롯한 연구원들에게 있어서는 냉소적인 농담 소재에 불과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본국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데다 냉전이 끝나고 맥도날드와 코카콜라가 들어온 지도 20년 이상이 지났지만, 여전히 파벨 박사 자신을 비롯한 연구원들의 사고방식은 공산주의적 관념 내에서 머무르고 있었고 ‘미국적’인 온갖 종류의 화이트칼라 범죄와 그러한 범죄를 끝없이 확대 재생산하는 물신을 조장하는 자본주의적인 탐욕의 사슬은 경멸의 대상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고담의 시민들에게….”
베인의 음성에 열기가 깃들었다.
“진정한 자유를 보여줄 것이다. 온갖 상표와 일상의 편리함이라는 화려한 족쇄가 없는 세상. 정부와 대기업이 쌓아올린 알량한 법과 제도, 도덕에 너무나도 익숙해진 나머지 그것들이 스스로의 눈을 가리고 있다는 것조차도 깨닫지 못하게 된 자들에게 진실을 보여줄 것이다. 지옥과 같은 공포와 혼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끝에 존재하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 보일 거다.”
베인의 커다란 손이 파벨 박사의 어깨를 붙잡았다. 강력한 손길이 강철 덫처럼 박사의 살 속을 파고들었다. 박사는 고통에 얼굴을 찡그렸다.
“박사, 자네가 우리와 거래를 하려고 한 목적이 뭐였지? 자네와 자네의 동료들이 모든 걸 바쳐 이룩한 연구 성과를 러시아가 착복하게 두느니, 차라리 그걸 우리에게 팔아넘겨 세상에 퍼뜨리려고 한 것 아니었나?”
“난 자네들이 그러리라고는 별로 기대하지 않았어. 다만… 러시아 놈들이 엿 먹는 걸 보고 싶었을 뿐이야.”
박사는 대답하면서 씁쓸한 자괴감을 느꼈다. 처음 베인과 그의 부하들에게 접촉했을 때, 자신은 만인을 위해 쓰여야 할 신의 힘이 정치 논리와 막후싸움의 카드로 전락하는 걸 막고 세계에 그를 퍼뜨림으로써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되자, 비로소 박사는 스스로도 미처 깨닫지 못하던 자신의 본심을 알 듯했다. 조국을 배반하고, 자신의 가족들이 방사능 속에서 타 죽어가게끔 방치한 러시아에 대한 복수. 자신이 진정으로 원한 것은 대의가 아니라 고작해야 개인적인 원한의 해소에 불과했던 것이다. 소인배구나, 나란 인간은.
“해상 경비정들은 더미로 준비해 둔 다른 보트들을 쫓아갔습니다, 대장의 계획대로입니다. 지금 우리는 공해 위고, 곧 랑데뷰 포인트에 도착합니다.”
망원경과 계기판을 번갈아 들여다보던 그레고리가 보고했다. 베인은 고개를 돌렸다.
“경계를 풀지 마라. 놈들 입장에서 봤을 때 손실은 연구소 경비병력 몇 명 죽고 파벨 박사 하나를 납치당한 것뿐이니 적극적으로 추적하지는 않겠지만 만일이라는 게 있으니까. 다른 녀석들에게서 연락은 왔나?”
“즉시 확인하겠습니다.”
“아니, 넌 감시를 계속해라. 킴, 브라보 팀에 연락해 상황을 파악해! 공공 주파수를 써라, 압도적인 통신량 가운데 숨는 거다!”
공공 장파 주파수는 통신 범위가 좁고 노이즈가 심하기 때문에 경찰이나 군대의 비밀 통신은 대체로 전파를 지구 전리층에 여러 번 반사시킴으로써 멀리까지 통신이 가능한 단파에 주로 의존한다. 하지만 그 말은 곧 단파를 사용하는 절대 통신량 자체가 적으며 단파 대역만 집중적으로 감시하면 수상한 통신을 잡아내는 게 어렵지 않다는 의미기도 했다. 물론 암호화가 되어 있지만 슈퍼 컴퓨터의 알고리즘을 동원하면 시간이 걸릴 뿐 현존하는 어떤 암호 체계도 언젠가는 깨뜨릴 수 있다. 그러나 장파 대역은 좁은 통신 범위 안에 온갖 TV와 라디오 전파가 한데 뒤섞여 거대한 노이즈를 구성하고 있으며, 감시하는 입장에서는 그 중 유의미한 정보를 잡아내는 것이 극히 어려웠다. 비유하자면 단파를 통한 비밀 통신은 넓은 숲 속 어딘가에 자물쇠가 걸린 박스를 잘 숨겨두는 것과 비슷했다. 뒤져야 할 범위는 넓지만 찾아야 할 목표는 이질적이고 명백하다. 그러나 장파 가운데 정보를 흘려보내는 것은 영미 문학 소설책들로 가득 차 있는 작은 방 속에 표지를 위장한 단 한 권의 러시아 문학 소설책을 몰래 섞어두는 셈이었다. 뒤질 범위는 좁지만 찾아야 할 목표는 배경 가운데 뒤섞여 있다. 어떤 주파수를 잡아내야 하는지에 대한 기밀 유지만 확실하다면 공공 장파 주파수 가운데 정보를 섞어 흘려보내는 게 상황에 따라선 훨씬 나을 수도 있었다.
조종석에서 청년에게 마카로프를 겨누고 있던 킴이 선실로 들어와서는 그레고리의 옆자리에 앉아 무전기를 집어 드는 걸 흘깃 본 베인은 천천히 박사를 향해 말을 이었다.
“당신에 대한 조사는 이미 해뒀어. 우크라이나 프리피야트 출신에… 체르노빌 발전소 사고 때 부모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여동생을 잃었지? 그리고 러시아 정부는 외면했고.”
“…그렇소.”
박사의 어깨를 움켜쥐고 있던 베인의 손아귀에서 힘이 약간 빠져나갔다.
“내 부하들 중에도 비슷한 과거를 가진 녀석들이 많아. 그레고리만 해도 아버지가 독소전에 참전한 용맹한 군인이었지만 정치장교에게 찍히는 바람에 반동 혐의로 굴라그에 끌려갔다가 형벌 부대에 배속되서 전사했지. 전쟁 후 친절한 양부모에게 입양됐지만, 그 양부모도 몰래 서방권에서 들여온 금서를 읽다가 KGB에게 들켜 ‘실종’되었고.”
“거 대장, 쪽 팔리게 새삼 그런 이야기는 왜 합니까? 우리 중 사연 없는 놈이 어디 있다고.”
그레고리가 이쪽을 돌아보며 투덜거렸다. 베인은 이제 박사의 어깨에 가볍게 한 손을 얹어둔 채, 푸른 눈으로 박사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도 순진한 사람은 아니니 빈 말은 않겠다, 박사. 내 계획을 위해선 유능한 핵물리학자가 필요했어. 하지만 굳이 당신을 고른 건 당신의 분노와 원한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야.”
“러시아 정부를 상대로 혁명이라도 일으키겠다는 거요? 그것이 고담의 시민들에게 자유를 보여준다는 것과 무슨 상관이지?”
박사는 불신이 가득한 시선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사실은 두려웠다. 아무 말 없이 서 있기만 해도 위축이 될 정도의 거구에 우람한 근육, 주변을 찍어 누르는 듯한 압도적인 존재감. 하지만 자신을 속여서 납치했다는 것과 그 진의가 아직 불명확하다는 것, 그 두 가지 사실은 고분고분하게 상황에 순응할 생각을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나, 생각보다 강단 있구나. 당장 바다에 던져질 수도 있는데. 침을 꿀꺽 삼키면서도 박사는 베인을 노려보려고 했다. 베인의 눈이 다시 한 번, 미소 짓는 듯 가늘어졌다.
“저, 저기요? 이, 이제 랑데뷰 포인트에 도착했습니다 대장! 배가 보여요!”
조종실에 들어가 있던 청년이 몸을 돌려 선실로 연결되는 쪽창을 열고 말했다. 베인은 몸을 일으켜 갑판으로 이어지는 문을 열었다.
“아직 계획의 구체적인 사항을 설명해 줄 수는 없겠군. 우선 따라오게, 박사.”
말 없이 신경질적으로 무전기를 조작하던 킴이 리시버를 벗고는 옆에 놓여 있던 AK-74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레고리도 망원경만을 챙기고선 몸을 일으켰다. 휘우우우우ㅇㅇㅇㅇ-! 엄청난 바닷바람이 베인을 쫓아 나가려던 박사의 깡마른 몸을 때렸다. 박사는 이를 악물고 균형을 잃지 않으려고 했지만 허리가 휘청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 박사를 베인의 커다란 손이 붙잡았다.
“대, 대장!”
보트를 몰고 온 청년이 울상을 지으며 베인에게 다가섰다. 베인은 돌아보지도 않고, 저만치 보이는 배를 향해 섰다.
“부탁입니다. 제발, 저도….”
퍼억.
베인은 순간적으로 몸을 돌리며 팔을 몸 바깥으로 휘둘러, 묵직한 주먹의 위쪽 검지와 중지가 튀어나온 부위으로 그의 명치를 후려쳤다. “……!” 원래 무방비한 사람을 주먹으로 치면, 그 사람은 맞은 방향으로 밀려 나간다. 하지만 베인은 어디를 어떻게 쳤는지, 청년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고스란히 무릎을 꿇으며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박사는 알지 못했지만 이 타법은 중국 무술의 발경 기법 중 하나로, 타격 뒤 남은 충격량이 상대를 밀어내는 일반적인 공격과는 달리 주먹으로 가한 충격량 대부분을 상대의 몸속에 남겨둠으로써 내장을 진탕시켜 최대한의 피해를 가하는 고급 기술이었다. 갑판 위로 쓰러진 청년을 내려다보는 베인에게, 그레고리가 물었다.
“저기, 대장. 정말로 녀석을 조직에서 내보내실 겁니까? 운전과 잔심부름만 했다 해도, 우리 조직에서 한두 해 일한 게 아니잖습니까.”
“…….”
그레고리는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그동안 녀석한테 정 붙은 것도 있지만… 녀석은 너무 아는 게 많아요. 그렇게 똑똑한 녀석은 아니니 오래지 않아 SVR에 잡힐 겁니다. 녀석도 대장과 조직에 대해 입을 여느니 죽는 쪽을 선택하겠지만, 무엇을 말하냐만이 아니라 무엇을 말하지 않냐를 두고도 캘 수 있는 정보란 게 있잖습니까.”
“내가, 그리고 우리가 고작 그 정도 가지고 꼬리를 잡힐 정도로 허술하다고 생각하나?”
“그건 아닙니다.”
“우리가 이제부터 맞서 싸워야 하는 적은 강대하다. 상징적인 의미도 크고. 그런 싸움에, 약한 놈을 데려갈 수는 없어. 무엇보다도….”
베인은 잠시 말을 끊었다.
“녀석은 아직 돌아갈 곳,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그런 녀석은… 중요한 순간에 약해져. 우리와는 다르게 말이다. 그런 놈은 쓸모가 없어.”
“…대장 말씀이 맞습니다.”
그레고리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시한 일은 해결했겠지?”
“예, 녀석 구좌로 입금해 놨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차명계좌 몇 개를 거쳐서요. 이 정도면 들킨다 해도 추적 못할 겁니다. 저 정도 부상이면….” 그레고리는 쓰러진 청년을 흘깃 쳐다봤다.
“SVR 놈들도 금방 의심을 접겠죠.”
“그럼 됐다, 동지들이 기다린다.”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던 킴이 기절한 청년의 어깨를 매고 선실에 던져둔 뒤 다시 나와서는 어렴풋하게 밝아오는 사위 너머 다가오는 배를 향해 신호용 플래쉬를 켜서는 일정 간격으로 깜박이며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박사를 향해, 베인은 시선을 돌렸다.
“목표는 러시아 정부만이 아니야. 우리는, 이 세상의 구조를 뒤엎어 놓을 것이다.”
“!”
“러시아도, 중국도, 유럽도, 미국도… 이 세상 대부분은 하나의 환상에 지배받고 있지. 열심히 노력해서 성실하게 일하면 부와 지위를 획득할 수 있고, 인간의 욕망은 원래 무한한 것이며, 그렇게 쌓아올린 부와 지위를 통해 그 욕망을 쫓아갈 수 있다는 환상. 하지만 박사, 자네도 알고 있겠지. 그것이 거짓이라는 걸.”
파벨 박사는 침묵했다. 그의 사고방식은 아직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는 공산주의적 관념에 훨씬 익숙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상일 뿐, 냉전이 끝나기도 전부터 이미 공산당의 고급 간부들은 ‘자본주의의 추잡한 산물’인 모피 코트와 캐비어와 최고급 위스키와 신형 스포츠카를 즐겼고 그들은 자신들의 그러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 대참사가 일어났을 때 그의 고향을 외면했다. 공산주의의 이상이 이상일 뿐이라는 것은 그도 이미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모든 탐욕을 긍정하고 오직 그의 충족만을 위해 돌아가는, 일해서 돈을 벌 의무와 그 돈을 쓸 권리 외엔 그 무엇도 약속하지 않는 자본주의의 천박함 역시 도저히 곱게 보이지 않았다. 박사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베인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미국의 고담 시… 그러한 현재의 세상을 지배하는 환상의 결집체나 다름없는 곳이지. 부자들은 그 환상을 독점하고, 가난한 자들도 그 환상을 갈망하며 서로 반목하고. 우리의 목표는 거기다. 대법원을 폭파하고, 증권 거래소를 묻어 버리고, 대형 마트에 불을 지를 것이다.”
베인은 박사의 목덜미를 움켜쥐고는 강렬한 푸른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두 눈동자가 알 수 없는, 섬뜩하면서도 묘하게 사람을 잡아끄는 열정과 광기로 번들거렸다.
“우리가 정의라는 얄팍한 위선은 떨지 않겠다, 박사. 하지만 이것만은 약속하지. 우리는 어떠한 역동성도 창조성도 없이, 어떤 종류의 새로운 지평도 없이 타성에 젖어 매일을 살아가는 자들에게 변혁을 가져다 줄 것이다. 자극을 줄 것이다. 고담은 변화의 바람을 맞이할 것이다. 그 바람이 모든 것을 쓸어가 버린 후에는,”
그 때, 베인의 등 너머 수평선에서 아침 해가 떠올랐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니, 이전 것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니라.’ 요한 계시록 24장 4절.”
베인은 일출의 빛을 후광처럼 등지고서 선언했다. 그 후광과 어우러져, 베인의 강대한 거구는 마치 검은 태양을 연상케 했다.
“나를 따라와라. 레오니드 파벨 박사.”
박사의 직감이 경고했다. 이 자는 결코 선인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 힘, 그 눈빛, 그 목소리, 그 압도적인 존재감은 형언할 수 없이 거대한 격류가 되어 박사를 휩쓸었다.
삶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신의 한계에 도달해보고 나서도 논리, 원인, 결과, 또는 도덕적인 성찰을 운운할 수 있을까? 물론 그럴 수 없다. 그때 삶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남는 것은 근거 없는 이유들뿐이다. 절망의 끝에서는 부조리에 대한 정열만이 혼돈을 악마적 광채로 치장한다. 도덕적, 미적, 종교적, 사회적, 그 외 어떤 차원의 이상으로도 삶에 방향이나 목적을 부여할 수 없을 때, 삶을 허무로부터 어떻게 보호할 수 있겠는가? 거기에 도달하려면 부조리와 절대적인 무가치함, 그리고 거짓말로 삶에 대한 환상을 조작하는 본질적으로 내용 없는 그 무엇인가에 매달리는 길밖에 없다.
산이 웃을 줄 모르고, 벌레가 노래할 줄 모르니깐 나는 살고 있다. 이러한 부조리에 대한 정열은, 모든 것을 깨끗이 청산하고 나서 미래의 몸서리나는 변신을 감수할 능력이 남아 있는 인간한테만 생겨난다. 모든 것을 잃은 인간의 삶에는 그러한 정열만이 남는다. 그 어떤 것이 그를 유혹할 수 있겠는가? 그러한 정열만이 남는다. 그 어떤 것이 그를 유혹할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들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할 것이다. 인류의 이름으로 혹은 공익의 이름으로 희생하는 것, 미를 숭배하는 것 등등이 가치 있는 것이라고, 나는 일시적일지라도 그 모든 것을 체험한 사람들만 사랑한다. 그들만이 절대적으로 살았던 유일한 인간들이고, 삶을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 유일한 인간들이다. 우리가 사랑과 평온을 되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무의식이 아니라 영웅적 용기를 통해서다. 강한 광기가 숨어 있지 않은 존재함은 가치가 없다. 그러한 존재함은 돌이나 나무조각, 잡풀의 존재함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러나 아주 정직하게 단언한다. 인간이 돌이나 나무조각 혹은 잡풀이 되기를 원하려면 강한 광기를 지녀야 한다고.
그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새로 쓰기 시작한 장편 하나가 있다. 제목은 일단 완성한 다음에 정할 생각이고... 장르는... 기본적으로 좋아하긴 하지만 별로 직접 쓸 생각은 없었던, 현대 배경의 괴물 사냥물. 전에 금요일 RPG팀에서 뉴욕 배경 헌터물 캠페인 마스터링 당시 준비했던 시나리오와 배경을 재활용해서 쓰고 있는 참.
플레이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배경은 2011년 겨울, 월 가 99% 시위가 한참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매스컴으로부터는 듣보잡 취급당하고 있는 뉴욕 할렘이다. 신임 시장이 할렘을 밀어버리고 월마트와 주차공원을 세우려고 하고 있는데, 보상금 지급이 제대로 안 되는 바람에 불만을 품은 할렘 거주민들과 건설 회사에 고용된 용역들이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연쇄 살인이 벌어지고, 사실 이 살인 사건에는 초자연적인 '괴물'의 영향이 있다... 는 게 기본 구상.
주인공들은 경찰, 범죄자, 그리고 반요정 셋으로 구상하고 있었는데.... 경찰과 범죄자의 경우는 현지 밀착적인 인물들이기도 하고 '유능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평범한 인간'들인데 비해 반요정은 뭐랄까.... 혼자 존재가 튄달까... 다른 주인공 둘에게 이야기의 포커스가 가 있을 때는 비교적 평범하게 <슈퍼 내츄럴>이나 <애니타 블레이크>를 찍고 있는 느낌인데, 반요정은 혼자서 <페이트 스테이나이트>를 찍고 있는 느낌. 이런 저런 설정을 붙여서 능력에 제한을 건다고 해도, 평범한 인간들인 경찰이나 범죄자에 비해 독자 입장에서는 그 능력의 포텐셜이 어디까지인지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없으니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될 것 같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으로 봐서도 아무래도 좀 이질적이다는 판단이 들어 결국 반요정은 삭제하고, 다른 평범한 인간 캐릭터를 집어 넣기로 결정했다.
약간 아쉽긴 하다. 캐릭터의 이미지가 워낙 뚜렷하게 잘 잡혔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로저 젤라즈니의 그림자 잭이나, 이영도의 가이너 카쉬냅 같은... 작가의 고유한 시그내처 캐릭터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도 있어서. 뭐, 이야기랑 안 어울리면 어쩔 수 없지 씁.
+
....라고 며칠 전에 생각하고, 반요정의 자리에 대신 끼워넣을 새 캐릭터로 여고생을 구상하고선 새로 쓰기 시작했는데.... 영 이미지가 불명확하다. 기본 가닥은 잡혔는데... '앞으로의 전개에 있어 이런 상황이 나오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행동을 할지, 저런 상황이 나오면 어떨지'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자연스럽게 캐릭터가 움직이질 않고 그 대신 '이러이러한 배경이니 이렇게 굴려야한다' '앞으로는 저러한 역할을 할 테니 저렇게 굴려야 한다'를 자꾸 의식하게 되는데... 구체적으로 작품 내에서 그걸 작위적인 느낌 없이, 자연스럽게 녹여낼 방법이 안 떠오른다. 경찰이나 범죄자의 경우는 배경 지식도 좀 있겠다, 오랫동안 머리 속에서 굴려온 캐릭터들이라 이미지가 명확한데 '미국의 평범한 여고생'은 영 이거다 하고 딱 집히지가 않는다. 시밤 한국 여고생들의 일상 패턴이나 사고방식은 얼추 알겠는데-_-
일하는 도중에도 내내 머리를 굴려봤는데... 아무래도 영 괜찮은 아이디어가 안 떠오른다. 머리 속 한 구석에서 반요정이 슬그머니 다시 나타나...
'어이 형씨 그러니까 그냥 날 캐스팅하라니깐'
'나를 봐, 컨셉 확실하고 이야기가 너무 어두워진다 싶으면 분위기 환기시키기도 좋고 괜찮지 않음?'
'나 같은 타입은 원탑 주인공 포지션엔 잘 맞아도 평범한 사람들과 같이 등장시키기엔 좀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지? 걍 나를 주인공으로 하고 짭새랑 조폭 비중을 줄이라니깐?'
'능력 조정 걱정은 안 해도 됨. 짭새랑 조폭이 할 일까지 전부 뺏을 정도로 나도 뻔뻔하진 않다니깐? 내가 주인공이면 됨ㅇㅇ'
...등등의 소리를 하며 날 꼬드기는 느낌이 든다...
.....참고 삼아 미드나 하나 보면서 고민해 봐야지, 얼른 결정 내려야 계속 쓸 수 있을 듯.
블로그가 짝사랑에 빠진 남자의 음울찌질 포스 가득 찬 공간이 되어 가는 느낌이 들어(어차피 보는 사람도 얼마 없지만) 모처럼 정상적인 포스팅.
1)공포의 유령 대소동
어렸을 때 무척 좋아했던 책인데 이사하면서 잃어 버렸었다. 특히 무당의 딸로 태어난 소녀를 다룬 <못다 핀 작은 꽃> 같은 작품은 작위적인 공포를 강조하기보다는 잔잔하게 슬픈, 독특한 종류의 이야기라서 어린 마음에도 깊은 인상이 남아 있었는데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 중고책을 내놓은 사람이 있어서 즉구. 지금 읽어봐도 여전히 좋으려나?
2)전략과 전술
전쟁사나 무기 체계 같은 건 전부터 좀 관심이 있는 분야긴 한데... 전쟁 영화나 드라마, 관련 서적 몇 권 정도만 봤을 뿐 별로 잘 아는 건 아니다. 대학 때 전쟁사 강의 한 번 들어봤다가 베이스가 없다 보니 아무래도 쫓아가기 어려웠던 기억이 나기도 했고(그래도 타과생이 열심히 강의 듣는 걸 좋게 봐준 모양인지 학점은 잘 나왔었다) 금요일 rpg팀 쪽에서 하고 있는 독소전 캠페인에 도움이 될까 싶어 중고 구매.
3)세계 진문기담
어렸을 때 빌렸다가 무척 인상 깊게 봐서, 한참 동안 찾았지만 반쯤 포기했는데 누가 또 중고책을 내놔서 즉구. 아무래도 좀 오래된 책이다 보니 사실 관계가 좀 부정확한 부분도 있고, 지금 와서는 조작이나 착각이었던 걸로 밝혀진 사례(시리우스와 도곤 족 떡밥이라거나...)도 있긴 한데 여전히 흥미진진하다.
4)그림자 잭
전에 웹진 거울 쪽에 리뷰 주려고 읽은 <고독한 시월의 밤>에 등장하는 잭이, 바로 이 책에 나온 잭을 가져온 캐릭터라길래 관심이 있었는데 검색해 보니 번역이 되 있더라.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문화나 일상 풍경 같은 데도 관심이 있어서 삼.
5)슈퍼내츄럴 네버모어
미드 <슈퍼내츄럴>의 오피셜 소설 중 하나. 아직 초반이긴 한데, 배경인 뉴욕 브롱스의 풍경이나 분위기 묘사가 충실해 읽을 맛이 난다. 윈체스터 형제가 주고 받는 드립들도 드라마에서의 그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놓은 느낌. 작가의 묘사에서 동인녀 냄새가 좀 나서 그렇지(...) 지금 쓰고 있는 소설에 좋은 참고 자료가 될 듯.
6)겁스 추리와 수사
날... ...아니 내 지갑을 가져요 초여명 엉엉. 지금 쓰고 있는 소설에 좋은 참고 자료가 될 듯222222
7)웬디고
앨저넌 블랙우드의 걸작 호러 소설. 값도 싸고 판형도 작고 해서, 들고 다니면서 읽기 좋을 듯. 거의 몇 년 전부터 사야지 사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이제야 삼.
미국 원주민 부족들 사이에서 전해지던 노래나 가훈, 잠언들을 모은 책. 몇 년 전부터 구상 중이던 경장편이 남북전쟁 시기 미국 배경이라... 참고용으로 몇 개 골라 봄.
신성한 땅에서
새벽으로 만든 집에서
저녁 황혼으로 만든 집에서
먹구름으로 만든 집에서
남자 비로 만든 집에서
검은 안개로 만든 집에서
여자 비로 만든 집에서
꽃가루로 만든 집에서
메뚜기들로 만든 집에서
검은 안개가 문간에 드리워진 곳
무지개를 타고 가면 있는 곳
구불구불한 번개가 꼭대기에 높이 서 있는 곳
오, 남자 신이여!
먹구름으로 만든 모카신을 신고 우리에게 오소서
먹구름으로 만든 각반을 차고 우리에게 오소서
먹구름으로 만든 윗도리를 입고 우리에게 오소서
먹구름으로 만든 머리 장식을 하고 우리에게 오소서
먹구름 속에 마음을 감싼 채 우리에게 오소서
검은 번개를 드리운 채 우리에게 날아오소서
구름을 발밑에 두고 우리에게 날아오소서
먹구름으로 만든 아득한 어둠을 머리 위에 드리우고 우리에게 날아오소서
남자 비로 만든 아득한 어둠을
머리 위에 드리우고 우리에게 날아오소서
여자 비로 만든 아득한 어둠을
머리 위에 드리우고 우리에게 날아오소서
구불구불한 번개를 머리 위에 뻗은 채 우리에게 날아오소서
무지개를 머리 위에 높이 매달고 우리에게 날아오소서
날개 끝에 먹구름으로 만든 아득한 어둠을 달고
우리에게 날아오소서
대지 위에 어둠을 드리운 채 우리에게 오소서
제가 제물을 바치나이다
당신을 위해
제 두 발이 회복되고
제 두 다리가 회복되고
제 몸이 회복되고
제 마음이 회복되고
제 목소리가 회복됩니다
오늘, 당신의 주술을 제게서 가져가소서
오늘, 당신의 주술을 제게서 거두어가소서
당신이 멀리 가져가셨습니다
저 멀리 가버렸습니다
당신께서 가져가셨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저는 회복됩니다
제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제 팔다리가 힘을 되찾고
제 머리가 차가워집니다
제가 다시 들으며
제가 걷습니다
고통을 모르고 제가 걷습니다
가뿐해진 마음으로 제가 걷습니다
생기에 넘쳐 제가 걷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나이든 남자들이 당신을 바라볼 것입니다
나이든 여자들이 당신을 바라볼 것입니다
젊은 남자들이 당신을 바라볼 것입니다
젊은 여자들이 당신을 바라볼 것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소년들이 당신을 바라볼 것입니다
소녀들이 당신을 바라볼 것입니다
아이들이 당신을 바라볼 것입니다
추장들이 당신을 바라볼 것입니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며 당신을 바라볼 것입니다
집으로 향하면서 당신을 바라볼 것입니다
꽃가루 길을 따라 집으로 향하기를
기쁜 마음으로 그들 모두 돌아가기를
아름다움 속에서 제가 걷습니다
아름다움을 앞에 두고, 제가 걷습니다
아름다움을 뒤에 두고, 제가 걷습니다
아름다움을 아래에 두고, 제가 걷습니다
아름다움을 위에 두고, 제가 걷습니다
아름다움 속에서 끝을 맺었습니다
아름다움 속에서 끝을 맺었습니다
-나바호 족의 노래 ‘새벽으로 만든 집’
*이 노래는 많은 사람이 모여 모래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며 아픈 사람의 회복을 빌어주는 치유의식에 사용되었다. 나바호 족에게 건강은 자연스러움이며 질병은 불균형이었다. 이 의식의 목적은 아픈 사람의 균형을 회복시켜 주는 데 있었다.
자연은 너를 아무 것도 바꾸지 않았다
그런데 왜 너는 자연을 바꾸려 드는가?
동물들은 아무도 너를 지배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너는 동물을 지배하려 드는가?
-모호크 족의 ‘충고’
동물의 눈을 보라.
그가 너를 의심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네 마음에 빗장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가 너를 화난 눈으로 바라본다면
네가 누군가를 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너를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본다면
네가 오늘 허상을 쫓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너를 위로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이제 거짓말을 멈춰야 할 때이다
그가 너를 웃는 눈으로 바라본다면
이제 너도 한 사람의 인디언이 된 것이다
-주니 족의 ‘성년식 축사’
아이가 태어나
제일 먼저 배워야 할 것은
냄새 없는 것을 냄새 맡는 법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법,
들리지 않는 것을 듣는 법이다
-라코타 족의 ‘서 있는 곰’의 ‘가르침’
우리 부족 사람들은 현명했다
그들은 나이 어린 사람들을 무시하지 않았고,
부족의 큰 어른들이 먼저 모범을 보였다
우리의 스승들은 적극적이고 철저했다
그분들은 다름 아닌 우리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삼촌들이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뒤처지는 아이가 있으면
모두 재빨리 그 아이의 장점을 칭찬하고
아이의 영혼에 상처를 입히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모든 배움에서 계속 뒤처진 아이가 있다 해도
그저 더 많이 가르치고 더 많이 보살펴 줄 뿐이었다
그 아이가 최대한 잘해낼 수 있을 때까지
-크로우 족의 ‘교육’
우리는 서반구의 원주민이며
이곳에서 수천 년을 살아 온 사람들이다
우리가 이곳에 언제 어느 때 생겨났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전해지는 이야기게 따르면 우리의 역사는 태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세상이 창조된 태초에 우리도 생겨났다
우리에겐 선생님도, 지도자도, 학교도 없었다
우리는 고개를 돌려 만물을 바라봐야 했다
자연을 배우고, 자연을 모방했다
태초에 우리를 이끌어준 것은 자연이었다
우리의 종교는 그 때 만들어졌다
우리의 삶의 방식도 그런 배움으로 형성되었다
우리는 자연을 배워 정부를 세웠다
우리는 변하지 않는 정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정부 밑에서 살았다
우리가 지켜온 법은 최근까지도 변한 게 없다
1492년, 그 조상들의 법이 바뀌기 시작했다
우리는 수천 년간 정부를 의지하며 살아왔다
법은 우리 모두가 지킬 수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암묵적으로 합의된 법을 지키며 살았다
역사학자와 인류학자들은 서반구의 역사를 알아내기 위해
우리 땅을 온통 파헤쳐 놓았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감옥도, 정신병원도 찾아내지 못했다
어떻게 그처럼 다양한 언어를 가진 여러 부족의 사람들이
그런 시설 하나 없이 살아올 수 있었을까?
그런데 이제 우리는 정부와 법의 간섭을 받게 되었다
1492년 이전에 우리에겐 인간의 삶이 있었다
그 삶은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었다
우리에겐 서반구의 모든 원주민이 알고 있던 종교가 있었다
백인들은 그 종교가 옳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신 우리는 백인들이 인정하는 종교를
억지로 받아들여야 했다
우리 부족의 많은 이들이 기독교도가 되어
조상들이 믿던 옛날의 종교를 버렸다
우리는 여전히 자연을 보고,
자연이 아이들을 키워내는 모습을 목격한다
우리는 오리와 거위가 수천 년 된 자연의 정부 밑에서
아무 탈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본다
동물들은 지금도
태초에 그들에게 주어진 자연의 정부를 따르며 살고 있다
태초에 모든 생물에게는 삶의 지침이 주어졌다
만물은 여전히 그 지침을 따르고 있다
나무와 계절들은 실수를 하는 법이 없다
그들은 늘 어김없이 제철에 과실을 맺는다
동물들도 실수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창조된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
만물 중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삶의 가르침은 무엇인가?
우리는 만물을 본다
생명, 그 시작도 끝도 없는 거대한 원을
-머스코지 족 추장의 ‘회고’
인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밤에 보이는
반딧불이의 반짝임
겨울에 내뿜는
들소의 숨결
풀밭 위를 가로질러
석양 속으로 사라지는
작은 그림자
-블랙핏 족의 ‘인디언의 초상’
자신이 좋아하는 동물을 정하라
그리고 그 동물에게 배워라
그들의 순박한 삶을 닮는 것이다
그들의 울음소리, 그들의 움직임을
조용히 들여다보라
세상의 어떤 동물도
너보다는 지혜롭다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테톤 수 족의 ‘꾸중’
저 위로
너와 나는 가리라
은하수를 따라
너와 나는 가리라
꽃길을 따라
너와 나는 가리라
길에 핀 꽃을 꺾으며
너와 나는 가게 되리라
-윈투 족의 ‘하늘 노래’
우리는 노래하는 별들
빛으로 노래하네
우리는 불새들
하늘 위를 날아가네
우리의 빛은 목소리
영혼이 지나갈
길을 만든다네
-파사마쿼디 족의 ‘별의 노래’
우리 테와 족의 어느 현명한 어르신은 살아계실 때 내게 “핀 페 오비”, 즉 “산 꼭대기를 보라”고 자주 말씀하셨다. 나는 25년 전, 일곱살 때 이 말을 처음 들었다. 그때 난 하늘을 운행하는 태양 아버지께 힘을 드리기 위한 목적으로 푸에블로에서 열리는 릴레이 경주에 처음 참가하려고 연습 중이었다. 나는 태양이 지나가는 길처럼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경주로의 한쪽 끝에 서 있었다. 앞을 보지 못하던 그 어르신은 나를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다. “얘야, 다릴 때는 산꼭대기를 보렴.” 그리고 그 분은 멀리 서쪽에 어렴풋이 보이는 치코모 산을 가리켰다. 그 산은 테와 족이 신성하게 여기는 산이었다.
“저 산꼭대기에 마음을 고정하면 아무리 먼 거리도 네 발밑에서 사라져버리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거야. 그럼 덤불도, 나무도, 심지어 강물도 뛰어넘을 수 있지.”
나는 마지막 말의 의미를 이해하려고 애썼지만 당시 나는 너무 어렸다. 며칠 뒤, 나는 그 분에게 정말 나무도 뛰어넘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분은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네가 살며 어떤 어려움을 만나든, 언제나 산꼭대기를 보는 것을 잊지 마라. 더 큰 것을 바라보는 거란다. 기억하거라. 어떤 문제도, 어떤 어려움도, 그것이 아무리 어마어마해 보이더라도 용기를 잃지 말고 오로지 산꼭대기에만 집중하거라. 그것이 내가 너에게 주고 싶은 가르침이란다. 먼 훗날 우리가 다시 만날 때는 산꼭대기에서 만나자꾸나.”
이유를 궁금해할 시간은 많지 않았다. 그 분은 다음 달, 옥수숫대가 대지 위에 단단히 서 있을 무렵 주무시다가 조용히 돌아가셨다. 여든일곱 번의 여름을 보낸 후였다.
*'거미 원숭이 놀이'라는 것은 하루키의 소설에서 나온 것으로, '30분의 시간 제한을 두고 그 시간 안에 완결성을 갖춘 엽편 하나를 완성하는 놀이'라고 한다(어느 소설에서 나온 건지는 하루키를 읽은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소싯적에 자주 했는데... 잠 안 오는 새벽에 예전에 쓰다 만 소설을 다시 잡았다가 손이 굳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손을 풀 겸 오랜만에 다시 슥슥. ...쓰다가 결국 제한 시간을 30분 더 초과해 1시간이 걸렸다는 건 안 비밀. 사실은... 허지웅이 최근에 한 트윗보고 딥빡쳐서 썼다(...). ㅅㅂㄻ 오버가 어쩌고 저째? 5년 전에 당신이 촛불집회 나갔다가 현장에서 자기 걱정해서 나온 어머님 만난 이야기 블로그에서 보고 살짝 감동했던 그 때의 나는 뭐가 되냐?
옛날 옛적, 아니 어쩌면 별로 멀지 않은 미래일지도 몰라요. 어쩌면 바로 지금 지구 상에 존재하는 어느 나라의 이야기일수도 있고요. 어떤 나라에, 글밥 좀 먹었고 배운 것 좀 있다 하는 한 먹물이 살고 있었답니다. 먹물이 사는 나라는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다른 나라들보다는 잘 살았지만, 바로 위에 존재하는 진짜 강대국들 대열에 끼기에는 무리인 나라였어요. ‘성공적인 개발 도상국 모델’로서, 아랫 순위 나라들에게는 선망이 되고 있었지만 자력으로 더 이상 발전할 가능성은 희박해져가고 있는 그런 나라였지요. 왜, 학교 다닐 때 보면 반에 그런 애들 있잖아요? 성적도 중상위권 수준에는 들고, 품행이나 교우관계도 나쁘진 않은데 단지 그 뿐 죽어라 노력해봤자 최상위권 그룹에 들기는 개뿔이고 현재 위치 유지하는데 만도 힘겨운 애들.
대부분의 백성들은 하루하루 벌어먹기 바빠서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이 나라의 왕에게는 한 가지 비밀이 있었어요. 사실 왕은 불로불사의 육체를 갖고 있고,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단지 겉모습만 바꿔가면서 이 나라를 계속 다스리고 있었답니다.
오래 산다는 것은 그 자체로 힘이에요. 긴 세월을 살아오며 쌓아올린 지식과 돈, 권력, 그리고 인맥은 누구도 무시할 수가 없게 되지요. 물론 아무리 그런 힘들이 있다 해도 왕 혼자 자기 좋을 대로 모든 일을 처리하면 혼자서는 왕에게 대항할 수 없는 수준일망정 왕도 아예 무시할 수는 없는 힘을 가진 신하들의 반발을 부르게 되요. 그래서 왕은 그런 신하들 중 특히 뛰어난 몇 명들과 제휴를 맺어, 적당히 서로 견제와 협력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왕위를 유지했지요. 그 정도 힘이 없는 신하들이나 일반 백성들은 어떻게 됐냐고요? 하발이 취급받는 거죠 뭐, 알면서.
사실 그 비밀은 정말로 엄청나게 깊이 숨겨져서 누구도 모르는 진짜 비밀은 아니었어요. 이 나라는 객관적으로 제법 잘 사는 편이었고-물론 그 위의 초강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하는 건 무리였지만요- 백성들의 교육 수준도 높은 편이었거든요. 알려고 하면 누구나 깨달을 수 있는, 새삼 비밀이랄 것도 없는 것이었어요. 다만 다들 먹고 살기가 바빴고, 그걸 안다고 해도 딱히 그를 바꿔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을 뿐이죠.
5년 전, 이 나라에 큰 일이 벌어진 적 있었어요. 이 나라가 이웃의 한 강대국과 통상 조약을 맺는 과정에서 왕이 시작하기도 전부터 굽히고 들어갔거든요. 5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자면, 글쎄요. 최소한 아직까지는 별 문제가 없어요. 그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당시에 더욱 문제가 된 건 왕의 굴욕적인 자세였죠. 왕은 이해할 수 없었어요. 자기는 왕이고, 감히 자기 말에 태클걸 수 있을 만한 건 몇몇 신하들 뿐이었거든요. 그 신하들도 평소에는 왕의 권위를 인정해서 왠만한 건 왕의 명령에 순순히 따랐고요. 전국 각지에서 백성들이 들고 일어났고, 그러한 백성들의 선두에는 먹물이 있었지요. 왕은 화가 났어요. 예전에 자신이 군복을 입고 있을 때, 자신은 그저 겉모습만 바꿨을 뿐인데 우매한 백성들이 자신을 찬탈자라고 욕하면서 여기저기서 들쑤시고 일어났을 때의 악몽이 떠올랐지요. 그래도 그 때처럼 땅크 몰고 밟아 버리자니 주변의 라이벌 국가들이 비웃을 거 같아서 이를 악 물고 참았어요. 왜, 그런 옛말 있잖아요? ‘이 또한 지나가리니’! 세상은 긍정적으로 살아야 하는 법이에요. 왕은 자비를 베풀기로 했고, 몇 달이 지나고나자 저항도 잦아들었어요. 왕과 측근 신하들은 안도했지요.
한편, 먹물은 어떻게 됐냐고요? 먹물은, 이 나라와 백성들을 걱정하고 있었어요.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왕이 죽지 않는 이상, 이 나라는 왕과 소수의 측근만을 위해 굴러갈 뿐 백성들의 안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게 될 것이라고 여겼죠. 5년 전의 봉기는 먹물에게 있어 좋은 기회였어요. 시작은 단지 왕의 굴욕적인 태도일 뿐이었지만 백성들의 분노를 ‘자신이 슬기롭게 이끈다면’ 왕을 없애고 백성들의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먹물의 명예를 위해 밝혀두자면, 먹물에게 자신이 왕이 되겠다는 야심은 없었어요. 다만 먹물은 자신이 백성들에게 깨달음을 줘야한다고 여겼을 뿐이지요.
하지만 상황은 먹물의 생각과는 다르게 돌아갔어요. 백성들은 그 때의 봉기가 무색하도록 빠르게 흩어졌어요. 백성들은 이 정도 했으면 왕도 정신 차렸을 거라고 믿었죠. 먹물이 혼자 잘난 척한다, 아는 척한다고 비웃고 등을 돌렸어요. 먹물은 생각했어요. 백성들은 자신처럼 똑똑해질 마음이 없었던 거라고. 이 나라가 어떻게 되건, 백성들 개개인은 자기 먹고 사는 문제 외엔 알려고 하지 않는다고. 그로부터 5년이 지났어요. 실의에 빠진 먹물에게... ...왕이 직접 찾아왔어요.
왕은 다시 한 번 모습을 바꾼 참이었어요. 지금까지 자신이 이 나라를 다스리면서, 가장 효과가 있었던 모습을 스스로 다시 한 번 벤치마킹한 형태로. 먹물은 반사적으로 거부감을 드러냈지만, 놀랍게도 왕은 병사들을 불러 먹물을 잡아가는 대신 먹물을 자리에 앉혀 놓고 조곤조곤 설득했어요. 지금 자신이 취하고 있는 모습은 그 당시 분명 통치에 용이했다고. 그리고 자신도 그 때 그랬던 것처럼 힘으로 억누르기만 할 생각은 없다고. 먹물은 그것이 통치에 용이할 뿐 백성들과 이 나라의 안위에 도움이 되냐고 물었지만 왕은 조용히 대답했어요. 이 모습을 그리워하는 백성들이 많으며, 자신도 자신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백성들을 위하고 있다고. 그리고 자신에게 적대했던 먹물을 잡아가는 대신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게 자신이 변한 증거라고. 그리고 왕은 제안했어요. 비록 방법은 달랐지만 이 나라와 백성들을 위하는 마음이 같다면 자신과 함께 일해보자고.
왕이 떠나고 난 뒤 먹물은 생각했어요. 백성들이 스스로 발전하고 향상되려고 하지 않는 이상, 자신이 그렇게 만들어야겠다고. 먹물은 자신과 함께 공부했던 선배들, 동기들, 후배들을 떠올렸어요. 그 사람들은 이제 대부분은 공부를 포기하고 이 나라의 기틀을 쌓아 올리는 평범한 백성들 중 하나가 되어서는 생업에 종사하고 있고, 일부는 완전히 변절해 왕궁에 들어가서는 어떻게든 왕의 측근에 들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어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던 먹물은 왕에게 조건을 내걸었어요. 자신이 왕의 광대가 되겠다, 그리고 왕을 뭐라고 비판하더라도 자신에게 손을 대지 말라고요. 다른 강대국들도 다들 왕성에 하나 쯤은 그런 광대를 두고 있고, 광대가 왕을 비웃는다 해도 광대를 협박하거나 억누르지 않음으로써 국가의 근본이 튼튼함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삼는다고요. 꾀바른 교섭이었죠. 왕은 그를 받아들였답니다!
그래서 먹물은 왕궁으로 들어갔어요. 좋은 옷과, 금은보화들 가운데 둘러싸여서, 그걸 자신에게 내려주는 왕과 신하들을 마음껏 비웃고 놀려댔지요. 왕은 자신의 약속을 지켰고, 먹물은 확신했어요. 왕도 이제는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백성들이 스스로 변화할 마음이 없다면 왕이 자비를 베푸는 수밖에 없으며, 자신의 안전이 곧 왕이 베푸는 자비의 증거라고. 먹물은 인자한 미소와 함께 자신을 내려다보는 왕을 조롱하고, 그 옆에서 분노로 수염을 떨면서도 잠자코 자신을 노려보기만 하는 신하들의 무능에 분노하고, 가끔 옛 선후배들이나 동기들과 만나면 최고급 식당에 데려가 저녁을 대접하면서 ‘변절’하지 않고서도 부와 성공을 거머쥔 자신의 성취를 은근히 자랑했답니다.
먹물은 그렇게 행복한 마음으로 왕궁 속에, 황금 새장 속에 스스로를 가둬버렸어요. 그는 더 이상 걱정하지도, 고민하지도 않았어요. 대신 그는 자신의 재치와 언변에 감탄하고, 그를 자랑하고, 사랑하게 되었답니다. 왕궁 밖에서 백성들의 분노가 커져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까스로 데드라인... ...에는 맞췄는데 다시 읽어보니 ㅈㅄ같다. ㅅㅂ 비문 쩔어... 줄바꿈도 제대로 안 되 있고.. 피는 생명의 상징이니 어쩌니 하는, 해당 분야에 좀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뻔한 소리만 늘어놓은 느낌. 10주년 기념호인데 이런 원고로 괜찮은가orz
외상 사건이 자연 재해에서 비롯되었거나 '신의 뜻'이었다면 증언하는 이는 피해자를 동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의도한 결과였을 때, 증언하는 이들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충돌 사이에 사로잡히고 만다.
이러한 충돌 속에서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하는 일은 도덕적으로 불가능하다. 국외자는 어느 한편을 선택하도록 강요받는다.
가해자를 편들기는 너무나 쉽다. 가해자는 국외자에게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가해자는 악을 보고 싶어 하지 않고, 듣고 싶어 하지 않고,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보편적인 바람을 악용한다. 반대로 피해자는 국외자가 고통을 덜어주기를 원한다. 피해자는 행동하고 관여하고 기억하기를 요구한다.
나치 수용소의 생존자들을 연구한 정신 의학자 레오 아이팅거는 피해자와 국외자가 가진 관심 사이의 잔혹한 충돌을 설명한다.
"전쟁과 피해자는 공동체가 잊고자 하는 무엇이다. 망각의 베일은 고통이 담긴 불쾌한 모든 것들에 드리워져 있다. 우리는 얼굴을 맞댄 두 측면을 발견한다. 한편은 잊고자 소망하지만 잊지 못하는 피해자들이고, 다른 편은 잊기를 원하고 또한 그러는 데 성공하는 강하고 종종 무의식적인 동기를 지닌 다른 모두이다. 그 대립은…… 늘 양편 모두에게 너무 고통스럽다. 가장 약한 편이…… 이렇게 불평등한 침묵의 대화 속에서 패배자의 자리에 남겨진다."
범죄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해자는 망각을 조장한다. 가해자는 할 수 있는 것이란 다 한다. 은폐와 침묵이야말로 가해자의 첫 번째 방어책이다. 은폐에 성공하지 못하면 가해자는 피해자의 신뢰성을 공격한다. 그녀를 완전히 침묵시킬 수 없다면 그는 아무도 그녀의 말을 들을 수 없도록 만든다.
이 목적을 위하여, 그는 가장 뻔한 부정에서부터 가장 정교하고 고상한 종류의 합리화까지 일련의 인상적인 논쟁을 늘어놓는다. 잔학 행위 이후 우리는 비슷하고 뻔한 사과를 들을 수 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피해자가 거짓말을 한다. 피해자가 과장을 한다. 피해자가 초래한 일이다. 그리고 어떤 사건이든 이제 과거는 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가해자의 권력이 크면 클수록, 현실을 명명하고 정의하는 그의 특권은 더욱 커지고, 그의 논쟁은 더욱 완전해지고 강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