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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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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2013.03.28
    공산당 선언 2

클라이브 바커의 <미드 나이트 미트 트레인>과 스티븐 킹의 <애완동물 공동묘지>에서 나타난 공포의 키워드를 분석해서 미국인이 갖고 있는 '두려움'의 두 원형을 추출해 내고, 그것이 한국인 입장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비교 분석한 글. 2회 파운틴 리뷰 공모전에 내서 최우수상에 뽑혔다. ...그것까진 좋았는데, 뽑혀서 실리자마자 파운틴이 폐간되어 버렸다. 안습. 시부엉 내가 투고하는 데는 어째 코너가 폐지되거나 잡지 자체가 폐간되거나 왜 죄다 이 모양인가 몰라ㅇ<-<

 

And

나 원래 이런 종류의 작품들 좋아한다. 멀게는 <1984><멋진 신세계> <우리들>부터 해서 <해리슨 버거론><롱워크>를 거쳐 가까이는 <그림자 아이들><설국열차> <헝거게임 시리즈>에 이르는, 전체주의적인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그에 저항하는(최소한 그러한 체제의 끔찍함과 불합리성은 자각하고 있는) 주인공들이 나오는 작품.

 

그런데.... ....깨놓고 말해서, 이 소설에서 제시되는 사회상은 이런 장르 중에서도 특히 극도의 공포와 암울함을 달리는 <나는 입이 없다, 그러나 비명을 질러야 한다>에서 드러나는 그것에 비하면 그렇게 나쁘지 않아 보인다(내가 온갖 막장의 극한을 달리는 현시창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상대적으로 그렇게 여기는 걸지도 모른다). <나는 입이...>를 읽고 난 뒤 <1984>를 읽으면 그 세상이 따사롭게 햇볕 내리쬐고 옆에는 얼음 띄운 레모네이드가 놓여 있는 여름 해변처럼 보일 지경인데 이 정도 수준이면 뭐 양호하지(...).

 

그러한 전체주의적 디스토피아 사회가 끔찍한 이유는, 단순히 그 사회에 속한 사람들이 무자비한 억압 속에서 고통 받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멋진 신세계>의 소마로 대표되는, 현실의 그러한 끔찍함과 불합리성을 최소한 잠시 잊게라도 해주는 오락거리들 덕에 그럭저럭 그러한 억압과 고통을 견뎌가며-심지어는 위로부터의 우민화와 현실을 바꿀 수 없는 스스로에 대한 자기합리화 끝에 아예 그게 억압과 고통이라고 여기지 조차 않으며- 살아가는, 그리고 그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나머지 변혁을 주도하는 주인공들을 불신하고 비난하는 대중들의 모습도 이러한 작품군에서는 자주 묘사된다. <멋진 신세계>나 한 발 더 나아가 <쇼생크 탈출> 같은 작품에서는 그러한 사회의 피라미드 최상층부에 있는-약간 통찰이 부족한 작품에서는 그저 누가 봐도 확실히 나쁜 놈들인 탐욕스럽고 가학적인 소시오패스로만 묘사되는- 지배 계층마저도(<멋진 신세계>에서는 무스타파 몬드 총통, <쇼생크 탈출>에서는 새뮤얼 노튼 교도소장으로 대표되는) 그러한 사회적 시스템이 잘못되었다는 걸 자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너무나도 견고하게 고착되어 버린 구조에 지나치게 익숙해져 버린 데다, 다른 뾰족한 대안이 없다고 여기기에 다만 지금껏 살아왔던 대로 살아가며 스스로가 지배 계층이라는데 만족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전체주의적 디스토피아 사회가 끔찍한 진짜 이유는, 기층 대중들만이 아니라 그 사회의 최정상에서 군림하는 지배자마저도 변혁에 대한 희망을 포기한 채 그저 현상 유지에만 급급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어떠한 변화도 혁신도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근본부터 차단되어 있으며 그것은 이미 너무나도 공고해 개인적인 레벨의 선의로는 어찌할 수 없다는 것, 밑바닥부터 정점에 이르기까지 그 사회에 속해 있는 모든 이들이 체념한 채, 일체의 존엄이나 자율성을 포기하고 오직 스스로를 해당 사회의 존속을 위해서만 기능하는 무한히 대체 가능한 대상물로 격하시키게 된다는 것-철저하게 자발적인 과정을 통해!-. 그것이 이러한 종류의 작품들 속에서 묘사되는 전체주의적 디스토피아가 끔찍한 이유다.

 

하지만 이 작품 속에서 묘사되는 세상은 그 정도로까지 막장은 아니다. 색깔도 볼 수 없고, 음악도 들을 수 없을 지언정 최소한 텍스트 상으로 묘사되는 바에 의하면-종족 단위가 아니라 개인으로서의 인간이 과연 그렇게 이타적인 존재일 수 있는 지에 대한 의구심이나, 고작 2번까지의 규율 위반만 허용되고 그걸 넘어서면 임무 해제라는 최후의 수단이 기다리고 있는데 오히려 너무 임무 해제가 빈발하는 나머지 임무 해제 조치의 권위가 약해질 거라는 문제를 제한다면- 이 세상의 원로들(, 이 세상의 독재자들)은 진심으로 공공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비록 아이들의 곁에서 항상 그들의 사소한 말과 행동 하나 하나를 감시하고 심판하기는 하지만 그를 통해 얻은 데이터는 어디까지나 사회 구성원 전체의 공익과 안전을 위해 쓰인다. 결정적으로, 이 작품 속의 세상에서는 진정한 감정과 그에 대한 기억들을 보존하고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는, 기억 보유자와 전달자라는 존재가 있다. 게다가 그들은 위험한 이레귤러 취급당하는 일 없이 공식적으로 그 권위를 인정받을 뿐만 아니라 유사시의 조언자로서 존중받기까지 한다.

 

이러한 작품군의 특성에 비춰봤을 때 기억을 보존하고 전달한다는 이들의 존재의의는, 사회의 폐쇄와 정체, 부패를 막고 변혁에 대한 일말의 가능성을 남기는 최소한의 보험이라고 할 수 있다. 말로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중시한다고 하지만, 막상 내용물을 들여다보면 권력과 자본만이 자유로운 권리를 향유하며 전횡을 펼치는 한국의 현실 속에서 살고 있는 내가 보기에 이 작품 속의 세상은...... , 섹스 못하는 것부터 시작해 이런저런 개선이 필요한 요소들이 제법 많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자면 그럭저럭 사람 사는 곳으로서의 최소 조건은 충족하는 사회주의적 공동체로 보인다(책 날개에 보면 작가의 가장 논쟁적인 작품이라고 하는데... 이런 종류의 작품들 속에서 묘사된 온갖 종류의 막장 세상들을 보아 왔고, 건국 이후 반 백 년 세월에 걸쳐 권위주의적 군사 독재와 기업 친화적 경제 구조가 완연히 뿌리내린 한국사회에서 자라온 나로선 이 정도면 무슨 동화 속 세상 같다).

 

정수라의 노래, <! 대한민국>의 가사에서는 한국을 두고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 ‘우리의 마음 속에 이상이 끝없이 펼쳐지는 곳’ ‘저마다 자유로움 속에서 조화를 이뤄가는 곳이라고 규정했다. 물론 저것은 이상론이고, 현실은 언제나 이상보다 300만 광년은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해 보라. 과연 2014년 현재 한국이 최소한 그러한 이상을 지향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는가?

 

 

And

http://mirrorzine.kr/index.php?mid=w3_nonfiction&document_srl=8387

 

이번에는 시간이 급박하여 솔까말 좀 대충 썼음. ....그리고 사령관과 백작님은 내가 데려가서 결혼시킨ㄷ.....

And

이전 버젼은 주제 의식 측면에서 아무래도 다소 얄팍한 감이 있다. 이전 버젼의 주제를 한 줄 요약하면 '억압과 공포를 통해 돌아가는 시스템을 확립했다는 부분에 있어 남한이나 북한이나 마찬가지다' 정도가 되겠는데...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양자가 서로 증오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서로 밀접하게 얽혀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보다 강조하고, 화자의 고독감과 절망감이 국가주의로 전화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엮으려면 좀 더.... 좀 더 강한 묘사가 필요하다. 대충 어떤 식으로 묘사하면 될지는 감이 오는데... 내 멘탈이 버텨줄까 모르겠다. 지금까지는 내내 '카메라'가 화자의 시점에 맞춰짐으로써 독자의 이입을 유도하는 식이었는데... 지금 생각 중인 장면이 나오면 앵글이 바뀌어 버린다는 문제도 있고. 이를 어쩐다. 

 

+

 

시대 배경이 시대 배경이다 보니 추억돋는다... 내가 오락실에 처음 다닐 무렵에는 파이널 파이트와 캡틴 코만도, 골든 액스가 한참 대세 게임이었고, 연식이 좀 됐지만 서커스나 원더 보이를 하는 사람도 종종 있었다. 재미를 붙일 무렵 스트리트 파이터2가 동네 오락실을 정ㅋ벅ㅋ했고, 대전 액션 게임이 흥하자 사장님들은 뒤이어 아랑전설과 사무라이 스피리츠를 들여놨다. 다니던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뀔 때 즈음 철권과 킹 오브 파이터즈가 나왔고, 중학교 때였던가 캡콤의 던전스 앤 드래곤즈 2탄이 나왔다. 하지만 합평 모임 쪽도 거울 쪽 합평에 나오는 사람들도 대부분 여자잖아? 오락하던 이야기는 못 할 거야 아마..... 

 

And

소설을 통해 정치적 주제나 정치를 통해 구현할 수 있는 '가치'를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송곳>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이 만화가 어필할 수 있는 이유는, 민주주의의 대의라거나 시대적 정의 같은 걸 이야기하고 있는 게 아니라 이수인이라는- 그저 평균보다 약간 더 정의감 강하고 올곧은 인물을 통해 누구나 일상적으로 접하는 현실의 불의와, 그를 마주한 인간의 두려움, 무력감, 분노를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그것보다 '큰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내가 특별히 고결하고 영웅적이어서가 아니라, 그 반대로 한 없이 야비하고 비굴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난 두 번 다시 그렇게 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런 테마들에 감동하고, 스스로 그런 테마들을 그려내고 싶어하는 거다.

 

최규석 씨는 네이버에 <송곳>을 연재하기로 한 이유로 '어린 독자들이 보고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게끔 하기 좋아서'라고 말했다. 훌륭한 이유다. 하지만, 나는 오직 '두 번 다시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그 이유 뿐이기에- 즉 쓰는 나 자신을 다잡고 채찍질하기 위해서 소설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 뿐, 이로서 사람들을 바꿔 놓을 수 있다고 여기지는 않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어필할 만한 설득력을 충분히 이끌어낼 수가 없다.

 

 

그 간극이 끔찍하리만큼 먹먹하다.  

And

 

빨간색 괴물()

 

*동화인 줄 알았는데.... ....속였구나!

*풍자로 읽어야할지, 진지한 사회 소설로 읽어야 할지, 어떤 식의 독법을 적용해야 할지가 불분명하다.

*시대상이 불명확함.

*작가의 계몽적 의도같은 느낌이 드는 부분이 좀 있어서 읽으며 약간 불편했다

*독자층을 명확하게 정하고 시작해야 한다.

*종종 10살 먹은 소년이라는 서술자의 시점에 맞지 않는 문장이나 표현이 있다.

*~~했어요 식의 종결 어미가 좀 부자연스럽다.

*철수의 시선에 일관되게 이야기의 시점이 맞춰져 있어야만 철수의 변화가 의미가 있을 듯

*서술자가 10살 아이답지 않다. 어른들의 행동을 전부 꿰고 있잖아! 병원에서 스피커폰으로 간호사를 부른다거나 하는 것도 어른의 행동방식이지 아이의 행동방식이 아니다.

*철수가 선생님과 친밀감을 형성하는 과정이 너무 길다. 초반 설명이 너무 긺. 독자는 이런 거 충분히 알 수 있으니 진도를 좀 더 빨리 빼줬으면 싶다.

*선생님에게 엄마의 이미지를 전치시켜 철수의 외로움을 부각하는 과정이 그렇게 절실히 필요한 것 같지 않다

*선생님이 철수에게 밥상을 차려 주는데 미역국이라도 끓여 주지! 그냥 택시만 떨렁 잡아 철수를 태워 보낸다는 것도 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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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 예술대상에 이거 완성해서 보냈는데 떨어짐. 아슬아슬하게 검열 기준에 걸릴까 말까 하는 작품을 뽑는다는 취지에 비해, 이 글은 불온한 블랙 유머가 없어서 아마 안 될 거야... 싶긴 했다. 최소한 겉으로는 일단 메르헨의 외피를 뒤집어 쓰고 있는데, 동화답지 않은 어법이 너무 많기도 하고. 영 부족했다 싶은 부분을 증보해서 쓰고 있는 중이긴 한데 이야기가 저 혼자서 너무 침울해지고 있다(....) 내 잘못이 아니야, 이 글은 그렇게 쓰여질 운명이었을 뿐이야(..........)

 

부활절인데 정작 나는 죽어나는 기분이다. 날씨 더럽게 좋네 시부엉...

 

PS=공룡이 안 나와서 문제였던 걸지도 모른다.

 

 

And

골계미랄까, 해학이랄까.... 그런 게 부족해서, 아마 안 될 거야.... 싶긴 한데 일단 완성해서 보내놓긴 했다.

 

기본 구상과 주제만은 그럴싸한데 그게 이야기로서 형상화가 잘 안된다거나, 초반에 너무 힘을 준 나머지 진이 빠져 버려 중반 이후로 급격히 맥아리가 없어진다는 게 내 소설의 고질적인 약점이다. 이번에도 그런 내 약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듯하다. 심사위원진도 화려하고, 공모 주제도 마음에 들어서... 제법 공들여 썼는데도 불구하고 그렇다-_- 호러 장르를 좋아하긴 하지만 직접 써 보는 건 처음이었는데, 너무 모험을 하지 말 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스스로가 만족할 만한... 객관적으로 이 정도면 충분히 먹히겠다! 까진 아니어도, 나 자신이 현재 수준에서 이르를 수 있는 극한의 역량을 짜내어 썼다는 자각이 드는 소설을 쓴지 너무 오래 지났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소설 따위 관두고... 이번에는 비정규직으로 전전할 생각 말고 제대로 준비해서 번듯한 직장을 잡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위기감이 다시 밀려온다. 약 값도 필요한데...

 

...3개월이다. 앞으로 3개월만 죽어라 써보고, 그 때까지 뭔가 가시적인 성과가 없으면 관두자. 

And

*너무 날 것이다. 이야기가 아니라, 제시되는 사상들이 너무 낡았다. 이광수의 <무정> 같은 계몽주의 소설스러운 느낌.

*이반 파트와 존 파트 간의 무게중심이 맞지 않는다. 구성이 잡히지 않고 되는 대로 썼다는 느낌. 상징 또한 너무 애매하다. 서사 전체를 관통하는 확고한 이야기가 부재하고 누구나 아는 뻔한 이야기를 반복하는 감이 있다. 새로운 거라곤 관념우주라는 설정 뿐인데 그게 형상화가 부족하다.

*미메틱 포머에 대한 묘사가 부족하다.

*소재가 흥미로움. 상대의 정신에 침투해 가치관을 바꿔놓는다는 설정 자체는 흔한데, 이런 식으로 쓰인 건 본 적이 없다.

*낯선 개념들이 많다 보니 진입장벽이 좀 높다. 사상적인 문제도 그렇고.

*이반이 코트를 벗어줬는데 그 애가 이미 죽어 있더라... 같은 장면 같은 건 좋았다

*소재만 유지하고, 가상세계를 배경으로 해 이야기를 새로 써야하지 않을까. 현재로서는 관념우주가 어떤 공간인지 설명하는 내용 뿐이다. 이야기 내의 설정으로 녹아 있어야 한다

*소소한 고증 오류. 우주공간이 검어 보이는 이유가 잘못 설명되어 있다

*이반의 캐릭터는 마음에 들었다. 완전히 그 이념을 숭상한다기보다는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동질감을 가진 인물 같음

*관념 위주의 소설이라고 해서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깊이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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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되는 사상이 낡았다는 지적은 좀 포인트를 못 잡았다고 여겼는데... 이 글을 쓰면서 염두에 둔 건 새로운 정치 사상을 구상해 제시하는 게 아니라 '미메틱 포머라는 장치를 통해 사상의 개변이 일어나고 새로운 이념이 성립하는 것이며, 그러한 이념들은 어디까지나 미메틱 포머를 조작하는 인간(특히 지배층)의 필요에 의해 인위적으로 가공된 것일 뿐 무슨 신의 섭리나 절대적 진리 같은 게 아니다'라는 주제였기 때문이다. 쓰면서 가장 역점을 둔 부분도 존이 숲을 쇼핑몰로 바꾸는 장면이었고. 그걸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하지 못한 내 잘못이라고 생각해서 굳이 반론은 안 했는데 기분은 좀 그렇긴 했다(....) 

And

미합중국 출범에 걸림돌이 된 민주주의

 

연방헌법이 인디언 부족을 어떻게 다루는지 알기 위해서는 연방정부와 주 정부 사이의 관계를 검토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연방정부와 주 정부 간의 권한 배분을 규정한 연방제 민주공화정원리는 미국 정부와 인디언 부족 사이에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1776년에 독립을 했지만 미국이 연방국가 체계를 갖춘 건 많은 세월이 지나고 나서였다. 주 헌법을 가진 각 주가 실질적으로 통치권을 행사했고, 연합정부는 각 주를 대리해 외교권을 행사하는 대표부 정도에 불과했다.

 

주 사이의 교역을 규제할 권한이 연합정부에 없는 바람에 상거래가 통일되지 않았고, 주마다 자기 필요에 의해 개별 정책을 펼치곤 했다. 통상에 관한 조약을 외국과 체결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남부 주의 교역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미시시피 강 항해권을 별 이해관계가 없는 북부 주의 대표가 포기해버려 큰 마찰을 빚기도 했다. 여러 주에서 화폐를 남발하는 바람에 재정이 붕괴되었고, 급기야 1786년에는 매사추세츠 주에서 세금과 빚의 지불 연기를 요구하는 반란이 일어났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강력한 중앙정부의 출현을 주장하는 이른바 연방파 지도자들이 등장했다. 연방파는 비교적 쉽게 합의할 수 있는 과세권 문제부터 건드리기 시작해 연방행정부와 대통령의 권한으로까지 논의를 진전시켰다. 여러 차례 진통 끝에 제헌의회는 18879월 최종적으로 연방헌법을 완성했다. 이제는 헌법을 비준하는 일만 남았다. 13개 주 중에서 9개 주가 비준하면, 연방정부가 성립하는 것으로 규정을 고쳤지만 이것도 쉽지 않았다.

 

소규모 자작농은 물론이고 대지주까지도 연방정부의 과세를 두려워했다. 연방헌법이 발효되면 연방정부는 전제군주와 같은 힘을 소유하게 되어, 자기들 마음대로 세금을 부과하고 군대를 동원해 국민을 꼼짝 못하게 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영국의 압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독립혁명을 일으켰는데 권력의 분산이라는 혁명의 성과를 연방정부가 무시하는 게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러다 보니 상당수 미국인은 자신들이 사는 지역 가까이서 공공집회를 열 수 있는 작은 규모의 국가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그 무렵 미국인의 태도는 민주주의 이념과 맥이 닿아 있다. 여기서 말하는 민주주의란 공동체의 큰 틀을 인민이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는 원리를 뜻한다. 다시 말해 미국 독립 직후에 통용되던 민주주의 이념은 직접 민주주의를 지칭하는 용어로, 요즘 우리가 민주주의 하면 떠올리는 대의제(간접) 민주주의는 아니었다. 18세기 후반까지는 민주주의라고 말하면 직접민주주의만을 가리켰다.

 

그런데 대중이 정서적으로 공감하는 민주주의 원리는 미합중국 출범에 걸림돌이 될 수 있었다. 13주 국가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려면 미합중국이 일정 규모 이상의 조직이 되어야 하는데, 민주주의의 자연적 한계는 미국의 확장에 발목을 잡을 여지가 많았다. 루소 역시 <사회계약론>에서 민주정은 국민 모두가 한 곳에 쉽게 모일 수 있고 서로 다 알 수 있는 아주 작은 국가를 전제로 한다고 적었다. 민주주의는 넓은 시장과 많은 교역을 전제로 하는 거대한 국가에 어울리는 정치 이데올로기가 아니었다. 미합중국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무언가 새로운 이념이 있어야 했다. 이렇듯 절박한 형편에 놓인 연방헌법의 기초자에게 안성맞춤의 이데올로기가 제시되었는데, 바로 공화주의였다.

 

민주공화국이라는 표현에서 보듯 요즘은 공화주의를 민주주의와 결부시켜 사용하고 있지만 이 둘은 다른 차원의 이념이다. 그러면 공화주의의 실체는 무엇일까?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공화주의를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정부 형태가 어떤 것이든 간에 법에 의해 지배되는 모든 국가를 공화국이라 부른다. 왜냐하면 법에 의해 지배될 때 비로소 공공선이 우위를 차지하고, 공적인 것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공화주의에 대한 루소의 해석은 공적인 것혹은 공공선을 뜻하는 라틴어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에서 공화주의(Republicanism)라는 용어가 유래한 사실과 맞닿아 있다. 공화주의의 특징에 대해서는 대체로 자의적인 권력으로부터의 자유, 시민의 자치적 참여 등을 핵심으로 꼽고 있다. 개인의 자율성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자유주의와 공화주의는 관련이 깊다. 역사적으로 자유주의는 자신의 주요한 원리, 특히 절대 국가에서 반대하면서 제한 국가를 옹호하는 원리를 공화주의로부터 물려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자유주의는 정치적 자유에 대한 공화주의적 관점을 잃어버렸다. 법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둘은 서로 달랐다. 모든 법은(타인의 자의에 예속되는 것을 막으려는 비자의적인 법조차도) 어쩔 수 없이 자유를 제한하게 된다는 자유주의자와는 달리, 공화주의자는 그러한 법이 자의적 권력과 예속의 중압을 경감시켜준다면 어떤 엄격한 법도 기꺼이 받아들이려 한다. 공화주의는 자의적 권력에 의한 자유의 제약은 거부하지만, 공공선에 의해 자유가 제한되는 것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문제는 공적인 것이 과연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한 사회의 구성원이 대체로 공감하는 공공선이 존재하고 이러한 공적인 것이 정치적 수사에 그치지 않고 사회를 움직이는 동력이 되려면, 법으로 형상화되어야 한다. 그런데 국가가 있는 사회에서는 국가의 법이 아닌 사회의 법이 실현될 공간이 갈수록 줄어든다. 공공선이 국익의 위세에 자꾸만 밀려난다. 그러다 보니 공화주의 이념은 겉보기만 화려한 담론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미합중국 수립 과정에서 공화주의가 한 역할이 바로 이랬다.

 

민주주의, 공화주의와 결합하다

공화주의와 민주주의는 동일한 기준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념이 아님에도 연방헌법 기초자는 공화주의를 민주주의와 같은 평면에 대립항으로 놓고 양자를 비교했다. 연방헌법 초안 작성에 관려한 알렉산더 해밀턴, 제임스 매디슨, 존 제이 등이 함께 쓴 <페더럴리스트 페이퍼>에는 민주정과 공화정 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두 가지 있는데, 공화정에서는 전체 시민이 선출한 소수의 대표에게 통치권이 위임되고, 시민의 수가 늘어나고 영토가 커지더라도 공화정은 그에 맞추어 확장될 수 있다고 쓰여 있다.

 

건국 초기의 지도자가 공화주의 이데올로기에 매력을 느끼게 된 주된 이유는 주 정부의 권한을 축소하고 연방정부의 권한을 확대하려는 자신들의 필요에 공화주의가 잘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화주의는 전제정치와 상반된 이미지를 가졌으면서도 모호한 내용으로 되어 있어 입맛대로 각색하기 좋은 이념이었다. 연방헌법 기초자들은 통치 범위를 확장하면 당파나 이해관계가 한층 더 다양해져서, 다른 시민의 권리를 침해할 만큼 다수파가 공통의 동기를 가지는 것이 어려워진다며 큰 정부를 선택해야 하는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바람직한 정부 형태인 공화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큰 규모의 정치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주의 권한을 연방정부에 양보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케케묵은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고리타분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이렇게 해서 공화제의 외투를 뒤집어 쓴 미합중국이 탄생했다. 반면 민주주의는 전혀 대우를 받지 못했다. 연방헌법 제정 과정에서 헌법 본문은 물론 전문에서조차 민주주의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처럼 뒷전으로 밀려났던 민주주의는 언제 다시 무대 위로 등장했을까?

 

왕정이 근대적 국민국가로 탈바꿈하는 시기에 왕권에 대응하는 의회를 확립하고 군주 주권과는 다른 국민 주권을 정립하는 데 공화주의는 큰 몫을 했다. 그런데 공화주의는 근대국가의 이데올로기로 채택되기에는 큰 약점이 이었다. 국가의 외형을 키우는 것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으나, 확대된 규모에 걸맞게 중앙정부의 권한을 늘리는 데는 그리 신통치 못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가 매력적인 정치 이념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산업혁명 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한 인민은 정치적으로 평등하게 대우받길 원했다. 정치 참여에 대한 요구를 국가권력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길들이는데 인민에 의한 통치라는 이데올로기는 효과적인 장치가 될 수 있었다. 다만, 사전에 조율할 게 있었다. 민주주의란 인민이 직접 참여한느 방식의 정부 형태라는 등식을 지워버려야 했다. 이러한 필요는 그대로 현실에 반영되었다. 인민이 직접 참여하면서 통치권을 행사하는 일느바 그리스 시대의 고전적 민주주의는 순수 민주주의라 불리며 실제 정치 세계에서는 발붙이기 어려운 강학 상의 정치체제로 오그라들었다. 그러고는 그 빈자리를 지금의 우리가 흔히 거론하는 간접민주주의가 채웠다.

 

민주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변하고 나자 더 이상 권력을 행사하는 통치자 수라는 잣대로 민주주의를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대신 선거권의 확대, 기회의 균등 등이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가 되었다. 1820년대 미국 사회에서 통용되던 민주주의란, 인민에 의한 직접선거를 의미하는 정치적 범주를 넘어 그 이상의 가치와 요소를 포함하는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주주의였다. 대의제 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보편적인 모습으로 바뀌면서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접목이 이뤄졌고, 이렇게 해서 민주공화정은 지금의 우리 귀에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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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재미있게 읽었는데 캐릭터가 전형적이고 빈약해 아쉬웠다.

*미메틱 포머라는 개념이 신선했다. 가난으로 뭉치는 것도 공감이 많이 갔고. 9페이지까지는 재미있게 봤는데, 10페이지부터 화자가 존으로 바뀌고 설명을 하기 시작하는 부분부터 몰입감이 떨어졌다. 설정집 읽는 느낌. 그 전까지는 스토리텔링이 잘 짜였다 싶었는데 여기서 힘이 떨어졌나 싶어서 아쉬웠다.

*원전인 <슈퍼로봇의 혼>도 후반에서 너무 설명이 많아져 아쉬웠는데 그 단점이 그대로 이어진 듯. 크로스로드에 내보면 좋았을텐데. 문장력이나 담겨 있는 사상, 철학이 거기의 기존 작품에 비해서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본다. 집중력이 초반에 집약되어 있고, 중반 이후로 그게 훅 떨어지는 느낌.

*존 파트에서 등장하는 여자가 007의 본드걸 마냥 너무 전형적이다.

*갈수록 문장이 좋아진다. SF쓰는 사람들이 과학적 정합성에 너무 집중하다 보니 문장에 있어선 읽는 재미가 떨어지는 편인데, 훨씬 나아졌다. 초기 작의 경우에는 지나치게 관념적인 경향이 짙었는데 점차 그게 이야기와 잘 얽히기 시작하고 있다.

*중반 이후로 그냥 설정뭉치 보는 느낌. 이야기의 균형감각이 결여되어 있다. 나쁜 버릇으로 굳어버릴 우려가 있다. 구상이 불완전한데 그냥 쓰는 경향이 강하다. 구성을 글로 끝까지 풀어내지 못하는 걸로 보인다

*지금 상태로는 초고에 불과함. 완성되면 지금까지 가져온 작품 중 가장 반응이 좋을 듯하다. 헐거운 부분을 좀 더 보강하고 이야기를 구체화해 완성작으로 만든 걸 꼭 보고 싶다.

*현재의 사회적 시류에 걸맞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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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공들여 썼다는 느낌이 든다. 문장이나 서술, 자료 조사에 있어 매우 공들였다고는 생각되는데, 설정 밖에 없다. 이 세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사람들이 이 체제에서 순응하느냐 반항하느냐에 대한 게 빠져있다. 그게 제일 중요한 것이어야 하는데.

*배경 지식을 작가가 완전히 소화한 상태에서 말 그대로 배경으로 작용하고 이야기가 더 확고해야 했다. 지식을 충분히 잘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내지 못하고 있음. 매우 공들였다고는 생각되는데, 그래서 더욱 아쉽다.

*잘 안 읽힌다. 공들였다는 건 확실히 알겠지만... 구체적인 액션이 없다. 이게 환상소설이나 SF의 요소를 갖고 있지만, 현실의 배경지식이 없는 독자 입장에서 봤을 때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작품 자체만으로 설 수 있는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

*글에는 흐름이 필요하다. , , 중강, .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독자가 쉬어 가야 할 포인트가 없다.

*구체적인 고유명사들을 전부 빼버렸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자꾸 현실과 중첩이 되기 때문에 그게 너무 과해진다.

*마지막에 나온 여자의 존재가 뜬금없다. 상징하는 바들이 유기적이지 못함. 집중했어야 할 이야기의 토대를 더 명확히 쌓았어야 했다.

*인물들이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라, 굉장히 위험하고 제삼자가 보기에 매력적인 상황에 처해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인데 위기감이나 절박감이 들지 않는다.

*독자가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와 현실을 거쳐 이야기를 받아들일 여지가 없다.

*후반에 등장하는 여자의 캐릭터 문제. ‘대표적인 인물상상투적인 인물상은 다르다. 작가의 의도대로였다면 존에게 입맛 맞는 말만 해주는 아예 텅 빈 인간이라는 식으로 더 강하게 밀어붙였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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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서야 프롤로그 끝나고 본편 시작인데... 전투는 여기까지 쓰고 막힘. 이야기전개상여기선배트맨이이겨야하는데이를어쩐다으어어다른부분먼저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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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터 좀 관심 있던 미국 슈퍼 히어로 만화를 이거저거 찾아 보다가 장르 자체에 본격적으로 흥미가 생겨 관련 영화, 미-일 합작 히어로 애니 <타이거 앤 버니>에 이르기까지 주르륵 챙겨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 늦기 전에 취직해야 하는데 이런 거나 보고 있으니 어쩌지....

 

웹서핑을 하다가, 마블 코믹스의 대표적인 히어로 중 하나인 캡틴 아메리카에 관한 에피소드를 발견했다(해당 이슈를 보지 못해서 진짜인지는 잘 모르겠다). 9.11 이후, 미국 내에서 아랍인에 대한 편견이 극심해지는 바람에 한 무고한 무슬림 청년이 시민들에게 린치 당하는 걸 본 캡틴 아메리카가 '이슬람 교는 선한 종교다, 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테러 단체 지도자들이 문제인 거다' 같은 소리를 하면서 그 청년을 보호해준다는 내용이었는데... 그걸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에피소드에서 캡틴 아메리카의 행동은 원론적으로 옳다. 하지만 9.11 테러를 감행한 알 카에다는 바로 미국이 한 때 사담 후세인을 견제하기 위해서 지원하고 훈련시킨 조직이었다. 캡틴 아메리카는 분명히 선한 영웅으로 묘사되지만, 정작 그 에피소드의 작가는 알 카에다를 키운 게 바로 미국 자신이었으며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서는 미국 사상 최초로 자국의 중심부가 공격받았다는 쇼크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다는 이면의 진실은 외면하고 있다는 생각, 그리고 그러한 인식이 '도덕적이고 고결한 인물'인 동시에 '애국적인 미국 시민'이라는 캡틴 아메리카라는 히어로의 한계라는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아아, 9월 11일은 '최초로 미국 본토가 공격받고 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죽어간 날'인 동시에 CIA의 공작으로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살해당하고 군사 독재자 피노체트가 권좌에 오르게 된 날이기도 하지 암.

 

<다크 나이트>가 개봉했을 때, 알프레드 역을 맡은 마이클 케인은 "슈퍼맨은 미국이 바라보는 미국의 모습이며, 배트맨은 다른 나라가 바라보는 미국의 모습"이라고 인터뷰에서 본인의 의견을 밝혔다. 다크 나이트에서 배트맨이 조커를 잡기 위해 고담 시민들 전체의 핸드폰 통신을 도청하여 그 통신 데이터를 기반으로 3D 렌더링된 지도를 만드는 장치를 만드는 묘사를 두고 한 발언이 명백하다. 얼핏 보기에 이것은 작년에 스노든의 폭로로 인해 명백해졌지만 전부터 꾸준히 의혹이 제기되어 온 미국의 정보 통제와 대중 감시에 대한 비판- 즉, 지극히 타당하고 합리적인 비판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을 보는 다른 나라의 관점이 배트맨'이라는 것은, 악과의 싸움에 있어 극단적이고 정도가 지나친 수단을 택했을 뿐 미국이 근본적으로는 순수한 정의감에 의거해 행동한다는 인식을 전제로 하고 있다(마이클 케인은 영국인이지만).

 

굳이 이러한 예를 들지 않는다 해도, 미국 슈퍼 히어로 장르를 보다보면... 미국인들 전반의 미국이라는 자신들의 조국에 대한 일종의 '집단적 자아상'이 어느 정도 보인다는 생각이 든다. 그 자아상 속의 미국은 

 

1)중국과 러시아로 대표되는 라이벌들에게 지위를 위협받고 있지만 여전히 세계 제일의 강대국이며

2)그 힘을 '정의로운 목적으로 사용하는 선한 나라'이고

3)정의감이 지나친 나머지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수단에 기댈 때도 아주 가끔가다 한 번씩 있고, '적'들에게 그러한 정의감을 이용당할 때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여전히 선하고 위대한 나라 

 

라는, 더 없이 오만한 동시에 순진한 이미지로 뒤덮여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미국은, '강하고 정의로운 국가'여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국제 사회에서 그러한 정의를 선도하고 힘으로 집행하는 '선의 진영'의 수장은 언제나 미국이어야 하며, 그 힘과 정의가 정말로 정당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거부한다. 그것이 미국적인 '자유와 정의'의 한계다.

 

슈퍼 히어로 장르는 본질적으로 법과 공권력, 사회 질서가 자신들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공동체 의식이 빈약하고 개인주의적인 미국인들의 사고방식에 더해, 광활한 초원 가운데 점점이 흩어져 이웃의 도움을 기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껏해야 일가족 하나, 커봤자 작은 마을 하나 단위가 스스로 총을 들어 산적과 맹수들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켜야 했던 개척 시대 당시의 현실적 풍토와 맞닿아 있다. 총으로 상징되는 '법이니 공권력이니 하는 외부적 권위에 의존하지 않는, 자기자신에서 비롯하는 자유로운 자위권'에 대한 신성시 역시 그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심심하면 벌어지는 총기 난사 사건에도 불구하고 총기 규제 법안이 번번이 물먹는 핵심적 이유도 그거고). 가면 쓴 자경단원과 그를 위협적인 무법자 취급하는 공권력 간의 갈등은 이 장르에서 이미 숱하게 우려먹은 소재다.

 

그러한 미국적인 정서를 기반에 깔고 있는 게 슈퍼 히어로 장르라면... 미국과는 정서가 다른 한국 배경의 히어로 물은 어떤 모습일까. 역시 매니지먼트 회사에 소속되어 자본주의적 논리로 움직이는 연예인 히어로 또는 국가 기관에 속해 '국익'을 위해 움직이는 공무원 히어로로 양분되어 있고, 미등록 히어로는 싸그리 빌런 취급 받는다거나 하는 식이려나. ....그러고 보니 <타이거 앤 버니>도 그렇고... <초인동맹에 어서 오세요>도 이런 스타일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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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에 대한 정열

 

삶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신의 한계에 도달해보고 나서도 논리, 원인, 결과, 또는 도덕적인 성찰을 운운할 수 있을까? 물론 그럴 수 없다. 그때 삶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남는 것은 근거 없는 이유들뿐이다. 절망의 끝에서는 부조리에 대한 정열만이 혼돈을 악마적 광채로 치장한다. 도덕적, 미적, 종교적, 사회적, 그 외 어떤 차원의 이상으로도 삶에 방향이나 목적을 부여할 수 없을 때, 삶을 허무로부터 어떻게 보호할 수 있겠는가? 거기에 도달하려면 부조리와 절대적인 무가치함, 그리고 거짓말로 삶에 대한 환상을 조작하는 본질적으로 내용 없는 그 무엇인가에 매달리는 길밖에 없다.

 

산이 웃을 줄 모르고, 벌레가 노래할 줄 모르니깐 나는 살고 있다. 이러한 부조리에 대한 정열은, 모든 것을 깨끗이 청산하고 나서 미래의 몸서리나는 변신을 감수할 능력이 남아 있는 인간한테만 생겨난다. 모든 것을 잃은 인간의 삶에는 그러한 정열만이 남는다. 그 어떤 것이 그를 유혹할 수 있겠는가? 그러한 정열만이 남는다. 그 어떤 것이 그를 유혹할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들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할 것이다. 인류의 이름으로 혹은 공익의 이름으로 희생하는 것, 미를 숭배하는 것 등등이 가치 있는 것이라고, 나는 일시적일지라도 그 모든 것을 체험한 사람들만 사랑한다. 그들만이 절대적으로 살았던 유일한 인간들이고, 삶을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 유일한 인간들이다. 우리가 사랑과 평온을 되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무의식이 아니라 영웅적 용기를 통해서다. 강한 광기가 숨어 있지 않은 존재함은 가치가 없다. 그러한 존재함은 돌이나 나무조각, 잡풀의 존재함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러나 아주 정직하게 단언한다. 인간이 돌이나 나무조각 혹은 잡풀이 되기를 원하려면 강한 광기를 지녀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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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irrorzine.kr/index.php?mid=w3_nonfiction&document_srl=8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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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새로 쓰기 시작한 장편 하나가 있다. 제목은 일단 완성한 다음에 정할 생각이고... 장르는... 기본적으로 좋아하긴 하지만 별로 직접 쓸 생각은 없었던, 현대 배경의 괴물 사냥물. 전에 금요일 RPG팀에서 뉴욕 배경 헌터물 캠페인 마스터링 당시 준비했던 시나리오와 배경을 재활용해서 쓰고 있는 참.

 

플레이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배경은 2011년 겨울, 월 가 99% 시위가 한참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매스컴으로부터는 듣보잡 취급당하고 있는 뉴욕 할렘이다. 신임 시장이 할렘을 밀어버리고 월마트와 주차공원을 세우려고 하고 있는데, 보상금 지급이 제대로 안 되는 바람에 불만을 품은 할렘 거주민들과 건설 회사에 고용된 용역들이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연쇄 살인이 벌어지고, 사실 이 살인 사건에는 초자연적인 '괴물'의 영향이 있다... 는 게 기본 구상.

 

주인공들은 경찰, 범죄자, 그리고 반요정 셋으로 구상하고 있었는데.... 경찰과 범죄자의 경우는 현지 밀착적인 인물들이기도 하고 '유능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평범한 인간'들인데 비해 반요정은 뭐랄까.... 혼자 존재가 튄달까... 다른 주인공 둘에게 이야기의 포커스가 가 있을 때는 비교적 평범하게 <슈퍼 내츄럴>이나 <애니타 블레이크>를 찍고 있는 느낌인데,  반요정은 혼자서 <페이트 스테이나이트>를 찍고 있는 느낌. 이런 저런 설정을 붙여서 능력에 제한을 건다고 해도, 평범한 인간들인 경찰이나 범죄자에 비해 독자 입장에서는 그 능력의 포텐셜이 어디까지인지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없으니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될 것 같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으로 봐서도 아무래도 좀 이질적이다는 판단이 들어 결국 반요정은 삭제하고, 다른 평범한 인간 캐릭터를 집어 넣기로 결정했다.

 

약간 아쉽긴 하다. 캐릭터의 이미지가 워낙 뚜렷하게 잘 잡혔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로저 젤라즈니의 그림자 잭이나, 이영도의 가이너 카쉬냅 같은... 작가의 고유한 시그내처 캐릭터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도 있어서. 뭐, 이야기랑 안 어울리면 어쩔 수 없지 씁.    

 

+

 

....라고 며칠 전에 생각하고, 반요정의 자리에 대신 끼워넣을 새 캐릭터로 여고생을 구상하고선 새로 쓰기 시작했는데.... 영 이미지가 불명확하다. 기본 가닥은 잡혔는데... '앞으로의 전개에 있어 이런 상황이 나오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행동을 할지, 저런 상황이 나오면 어떨지'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자연스럽게 캐릭터가 움직이질 않고 그 대신 '이러이러한 배경이니 이렇게 굴려야한다' '앞으로는 저러한 역할을 할 테니 저렇게 굴려야 한다'를 자꾸 의식하게 되는데... 구체적으로 작품 내에서 그걸 작위적인 느낌 없이, 자연스럽게 녹여낼 방법이 안 떠오른다. 경찰이나 범죄자의 경우는 배경 지식도 좀 있겠다, 오랫동안 머리 속에서 굴려온 캐릭터들이라 이미지가 명확한데 '미국의 평범한 여고생'은 영 이거다 하고 딱 집히지가 않는다. 시밤 한국 여고생들의 일상 패턴이나 사고방식은 얼추 알겠는데-_-

 

일하는 도중에도 내내 머리를 굴려봤는데... 아무래도 영 괜찮은 아이디어가 안 떠오른다. 머리 속 한 구석에서 반요정이 슬그머니 다시 나타나...

 

'어이 형씨 그러니까 그냥 날 캐스팅하라니깐'

'나를 봐, 컨셉 확실하고 이야기가 너무 어두워진다 싶으면 분위기 환기시키기도 좋고 괜찮지 않음?'

'나 같은 타입은 원탑 주인공 포지션엔 잘 맞아도 평범한 사람들과 같이 등장시키기엔 좀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지? 걍 나를 주인공으로 하고 짭새랑 조폭 비중을 줄이라니깐?'

'능력 조정 걱정은 안 해도 됨. 짭새랑 조폭이 할 일까지 전부 뺏을 정도로 나도 뻔뻔하진 않다니깐? 내가 주인공이면 됨ㅇㅇ'  

 

...등등의 소리를 하며 날 꼬드기는 느낌이 든다...

 

.....참고 삼아 미드나 하나 보면서 고민해 봐야지, 얼른 결정 내려야 계속 쓸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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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가 짝사랑에 빠진 남자의 음울찌질 포스 가득 찬 공간이 되어 가는 느낌이 들어(어차피 보는 사람도 얼마 없지만) 모처럼 정상적인 포스팅.

 

1)공포의 유령 대소동

어렸을 때 무척 좋아했던 책인데 이사하면서 잃어 버렸었다. 특히 무당의 딸로 태어난 소녀를 다룬 <못다 핀 작은 꽃> 같은 작품은 작위적인 공포를 강조하기보다는 잔잔하게 슬픈, 독특한 종류의 이야기라서 어린 마음에도 깊은 인상이 남아 있었는데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 중고책을 내놓은 사람이 있어서 즉구. 지금 읽어봐도 여전히 좋으려나?

 

2)전략과 전술

전쟁사나 무기 체계 같은 건 전부터 좀 관심이 있는 분야긴 한데... 전쟁 영화나 드라마, 관련 서적 몇 권 정도만 봤을 뿐 별로 잘 아는 건 아니다. 대학 때 전쟁사 강의 한 번 들어봤다가 베이스가 없다 보니 아무래도 쫓아가기 어려웠던 기억이 나기도 했고(그래도 타과생이 열심히 강의 듣는 걸 좋게 봐준 모양인지 학점은 잘 나왔었다) 금요일 rpg팀 쪽에서 하고 있는 독소전 캠페인에 도움이 될까 싶어 중고 구매.

 

3)세계 진문기담

어렸을 때 빌렸다가 무척 인상 깊게 봐서, 한참 동안 찾았지만 반쯤 포기했는데 누가 또 중고책을 내놔서 즉구. 아무래도 좀 오래된 책이다 보니 사실 관계가 좀 부정확한 부분도 있고, 지금 와서는 조작이나 착각이었던 걸로 밝혀진 사례(시리우스와 도곤 족 떡밥이라거나...)도 있긴 한데 여전히 흥미진진하다.

 

4)그림자 잭

전에 웹진 거울 쪽에 리뷰 주려고 읽은 <고독한 시월의 밤>에 등장하는 잭이, 바로 이 책에 나온 잭을 가져온 캐릭터라길래 관심이 있었는데 검색해 보니 번역이 되 있더라.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문화나 일상 풍경 같은 데도 관심이 있어서 삼.

 

5)슈퍼내츄럴 네버모어

미드 <슈퍼내츄럴>의 오피셜 소설 중 하나. 아직 초반이긴 한데, 배경인 뉴욕 브롱스의 풍경이나 분위기 묘사가 충실해 읽을 맛이 난다. 윈체스터 형제가 주고 받는 드립들도 드라마에서의 그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놓은 느낌. 작가의 묘사에서 동인녀 냄새가 좀 나서 그렇지(...) 지금 쓰고 있는 소설에 좋은 참고 자료가 될 듯.

 

6)겁스 추리와 수사

날... ...아니 내 지갑을 가져요 초여명 엉엉. 지금 쓰고 있는 소설에 좋은 참고 자료가 될 듯222222

 

7)웬디고

앨저넌 블랙우드의 걸작 호러 소설. 값도 싸고 판형도 작고 해서, 들고 다니면서 읽기 좋을 듯. 거의 몇 년 전부터 사야지 사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이제야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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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원래 인문학 쪽 책도 꽤 읽는 편인데 요즘 산 건 죄 저 모양. 취향이 보인다(...) ....지금 읽고 있는 슈퍼내츄럴 네버모어만 얼른 읽어 치우고 나면 저번 와우북에서 샀던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마저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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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루는 내용들 자체도 재미있고, 잡다하게 알아가는 것도 많고, '역시 난 덕후가 아니야'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도 새삼 확인할 수 있고 다 좋은데... 그만 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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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원주민 부족들 사이에서 전해지던 노래나 가훈, 잠언들을 모은 책. 몇 년 전부터 구상 중이던 경장편이 남북전쟁 시기 미국 배경이라... 참고용으로 몇 개 골라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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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원숭이 놀이'라는 것은 하루키의 소설에서 나온 것으로, '30분의 시간 제한을 두고 그 시간 안에 완결성을 갖춘 엽편 하나를 완성하는 놀이'라고 한다(어느 소설에서 나온 건지는 하루키를 읽은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소싯적에 자주 했는데... 잠 안 오는 새벽에 예전에 쓰다 만 소설을 다시 잡았다가 손이 굳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손을 풀 겸 오랜만에 다시 슥슥. ...쓰다가 결국 제한 시간을 30분 더 초과해 1시간이 걸렸다는 건 안 비밀. 사실은... 허지웅이 최근에 한 트윗보고 딥빡쳐서 썼다(...). ㅅㅂㄻ 오버가 어쩌고 저째? 5년 전에 당신이 촛불집회 나갔다가 현장에서 자기 걱정해서 나온 어머님 만난 이야기 블로그에서 보고 살짝 감동했던 그 때의 나는 뭐가 되냐?

 

써놓고 다시 보니 왠지 최규석 그림체로 그려진 만화로 상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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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 아니 어쩌면 별로 멀지 않은 미래일지도 몰라요. 어쩌면 바로 지금 지구 상에 존재하는 어느 나라의 이야기일수도 있고요. 어떤 나라에, 글밥 좀 먹었고 배운 것 좀 있다 하는 한 먹물이 살고 있었답니다. 먹물이 사는 나라는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다른 나라들보다는 잘 살았지만, 바로 위에 존재하는 진짜 강대국들 대열에 끼기에는 무리인 나라였어요. ‘성공적인 개발 도상국 모델로서, 아랫 순위 나라들에게는 선망이 되고 있었지만 자력으로 더 이상 발전할 가능성은 희박해져가고 있는 그런 나라였지요. , 학교 다닐 때 보면 반에 그런 애들 있잖아요? 성적도 중상위권 수준에는 들고, 품행이나 교우관계도 나쁘진 않은데 단지 그 뿐 죽어라 노력해봤자 최상위권 그룹에 들기는 개뿔이고 현재 위치 유지하는데 만도 힘겨운 애들.

 

대부분의 백성들은 하루하루 벌어먹기 바빠서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이 나라의 왕에게는 한 가지 비밀이 있었어요. 사실 왕은 불로불사의 육체를 갖고 있고,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단지 겉모습만 바꿔가면서 이 나라를 계속 다스리고 있었답니다.

 

오래 산다는 것은 그 자체로 힘이에요. 긴 세월을 살아오며 쌓아올린 지식과 돈, 권력, 그리고 인맥은 누구도 무시할 수가 없게 되지요. 물론 아무리 그런 힘들이 있다 해도 왕 혼자 자기 좋을 대로 모든 일을 처리하면 혼자서는 왕에게 대항할 수 없는 수준일망정 왕도 아예 무시할 수는 없는 힘을 가진 신하들의 반발을 부르게 되요. 그래서 왕은 그런 신하들 중 특히 뛰어난 몇 명들과 제휴를 맺어, 적당히 서로 견제와 협력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왕위를 유지했지요. 그 정도 힘이 없는 신하들이나 일반 백성들은 어떻게 됐냐고요? 하발이 취급받는 거죠 뭐, 알면서.

 

사실 그 비밀은 정말로 엄청나게 깊이 숨겨져서 누구도 모르는 진짜 비밀은 아니었어요. 이 나라는 객관적으로 제법 잘 사는 편이었고-물론 그 위의 초강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하는 건 무리였지만요- 백성들의 교육 수준도 높은 편이었거든요. 알려고 하면 누구나 깨달을 수 있는, 새삼 비밀이랄 것도 없는 것이었어요. 다만 다들 먹고 살기가 바빴고, 그걸 안다고 해도 딱히 그를 바꿔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을 뿐이죠.

 

5년 전, 이 나라에 큰 일이 벌어진 적 있었어요. 이 나라가 이웃의 한 강대국과 통상 조약을 맺는 과정에서 왕이 시작하기도 전부터 굽히고 들어갔거든요. 5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자면, 글쎄요. 최소한 아직까지는 별 문제가 없어요. 그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당시에 더욱 문제가 된 건 왕의 굴욕적인 자세였죠. 왕은 이해할 수 없었어요. 자기는 왕이고, 감히 자기 말에 태클걸 수 있을 만한 건 몇몇 신하들 뿐이었거든요. 그 신하들도 평소에는 왕의 권위를 인정해서 왠만한 건 왕의 명령에 순순히 따랐고요. 전국 각지에서 백성들이 들고 일어났고, 그러한 백성들의 선두에는 먹물이 있었지요. 왕은 화가 났어요. 예전에 자신이 군복을 입고 있을 때, 자신은 그저 겉모습만 바꿨을 뿐인데 우매한 백성들이 자신을 찬탈자라고 욕하면서 여기저기서 들쑤시고 일어났을 때의 악몽이 떠올랐지요. 그래도 그 때처럼 땅크 몰고 밟아 버리자니 주변의 라이벌 국가들이 비웃을 거 같아서 이를 악 물고 참았어요. , 그런 옛말 있잖아요? ‘이 또한 지나가리니’! 세상은 긍정적으로 살아야 하는 법이에요. 왕은 자비를 베풀기로 했고, 몇 달이 지나고나자 저항도 잦아들었어요. 왕과 측근 신하들은 안도했지요.

 

한편, 먹물은 어떻게 됐냐고요? 먹물은, 이 나라와 백성들을 걱정하고 있었어요.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왕이 죽지 않는 이상, 이 나라는 왕과 소수의 측근만을 위해 굴러갈 뿐 백성들의 안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게 될 것이라고 여겼죠. 5년 전의 봉기는 먹물에게 있어 좋은 기회였어요. 시작은 단지 왕의 굴욕적인 태도일 뿐이었지만 백성들의 분노를 자신이 슬기롭게 이끈다면왕을 없애고 백성들의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먹물의 명예를 위해 밝혀두자면, 먹물에게 자신이 왕이 되겠다는 야심은 없었어요. 다만 먹물은 자신이 백성들에게 깨달음을 줘야한다고 여겼을 뿐이지요.

 

하지만 상황은 먹물의 생각과는 다르게 돌아갔어요. 백성들은 그 때의 봉기가 무색하도록 빠르게 흩어졌어요. 백성들은 이 정도 했으면 왕도 정신 차렸을 거라고 믿었죠. 먹물이 혼자 잘난 척한다, 아는 척한다고 비웃고 등을 돌렸어요. 먹물은 생각했어요. 백성들은 자신처럼 똑똑해질 마음이 없었던 거라고. 이 나라가 어떻게 되건, 백성들 개개인은 자기 먹고 사는 문제 외엔 알려고 하지 않는다고. 그로부터 5년이 지났어요. 실의에 빠진 먹물에게... ...왕이 직접 찾아왔어요.

 

왕은 다시 한 번 모습을 바꾼 참이었어요. 지금까지 자신이 이 나라를 다스리면서, 가장 효과가 있었던 모습을 스스로 다시 한 번 벤치마킹한 형태로. 먹물은 반사적으로 거부감을 드러냈지만, 놀랍게도 왕은 병사들을 불러 먹물을 잡아가는 대신 먹물을 자리에 앉혀 놓고 조곤조곤 설득했어요. 지금 자신이 취하고 있는 모습은 그 당시 분명 통치에 용이했다고. 그리고 자신도 그 때 그랬던 것처럼 힘으로 억누르기만 할 생각은 없다고. 먹물은 그것이 통치에 용이할 뿐 백성들과 이 나라의 안위에 도움이 되냐고 물었지만 왕은 조용히 대답했어요. 이 모습을 그리워하는 백성들이 많으며, 자신도 자신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백성들을 위하고 있다고. 그리고 자신에게 적대했던 먹물을 잡아가는 대신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게 자신이 변한 증거라고. 그리고 왕은 제안했어요. 비록 방법은 달랐지만 이 나라와 백성들을 위하는 마음이 같다면 자신과 함께 일해보자고.

 

왕이 떠나고 난 뒤 먹물은 생각했어요. 백성들이 스스로 발전하고 향상되려고 하지 않는 이상, 자신이 그렇게 만들어야겠다고. 먹물은 자신과 함께 공부했던 선배들, 동기들, 후배들을 떠올렸어요. 그 사람들은 이제 대부분은 공부를 포기하고 이 나라의 기틀을 쌓아 올리는 평범한 백성들 중 하나가 되어서는 생업에 종사하고 있고, 일부는 완전히 변절해 왕궁에 들어가서는 어떻게든 왕의 측근에 들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어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던 먹물은 왕에게 조건을 내걸었어요. 자신이 왕의 광대가 되겠다, 그리고 왕을 뭐라고 비판하더라도 자신에게 손을 대지 말라고요. 다른 강대국들도 다들 왕성에 하나 쯤은 그런 광대를 두고 있고, 광대가 왕을 비웃는다 해도 광대를 협박하거나 억누르지 않음으로써 국가의 근본이 튼튼함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삼는다고요. 꾀바른 교섭이었죠. 왕은 그를 받아들였답니다!

 

그래서 먹물은 왕궁으로 들어갔어요. 좋은 옷과, 금은보화들 가운데 둘러싸여서, 그걸 자신에게 내려주는 왕과 신하들을 마음껏 비웃고 놀려댔지요. 왕은 자신의 약속을 지켰고, 먹물은 확신했어요. 왕도 이제는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백성들이 스스로 변화할 마음이 없다면 왕이 자비를 베푸는 수밖에 없으며, 자신의 안전이 곧 왕이 베푸는 자비의 증거라고. 먹물은 인자한 미소와 함께 자신을 내려다보는 왕을 조롱하고, 그 옆에서 분노로 수염을 떨면서도 잠자코 자신을 노려보기만 하는 신하들의 무능에 분노하고, 가끔 옛 선후배들이나 동기들과 만나면 최고급 식당에 데려가 저녁을 대접하면서 변절하지 않고서도 부와 성공을 거머쥔 자신의 성취를 은근히 자랑했답니다.

 

먹물은 그렇게 행복한 마음으로 왕궁 속에, 황금 새장 속에 스스로를 가둬버렸어요. 그는 더 이상 걱정하지도, 고민하지도 않았어요. 대신 그는 자신의 재치와 언변에 감탄하고, 그를 자랑하고, 사랑하게 되었답니다. 왕궁 밖에서 백성들의 분노가 커져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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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생각해 보니 내가 그 때 살짝 감동했던 거 자체를 쪽 팔려할 필요는 없을 듯. 김지하가 지금은 저 모양이지만 그가 젊은 시절 썼던 시들의 싯귀를 되새기며 말 그대로 '타는 목마름으로' 투쟁했던 사람들의 헌신이 무가치해지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짜증나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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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futhark.egloos.com/m/3970903

 

...전 여사님 다 좋은데 젭라 태탑 좀........... 세월의 돌 읽고 고스란히 빠가 되었던 1n년 전 고삐리 시절의 제가 지금의 저를 보면 그 때도 기다려야 되냐고 경악할 거 같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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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irrorzine.kr/index.php?document_srl=37371&mid=w2_oversea

 

가까스로 데드라인... ...에는 맞췄는데 다시 읽어보니 ㅈㅄ같다. ㅅㅂ 비문 쩔어... 줄바꿈도 제대로 안 되 있고.. 피는 생명의 상징이니 어쩌니 하는, 해당 분야에 좀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뻔한 소리만 늘어놓은 느낌. 10주년 기념호인데 이런 원고로 괜찮은가orz

 

...분발하자-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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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대문 초예쁘다 ㅎㅇㅎㅇ. 원래는 데드라인 못 맞추는 바람에 저 대문에 기사 박진 못했지만 데드라인 연장으로 간신히 10주년 기념호에 기사 실었다는 최소한의 면피는 했다. 아아 이제 안심하고 늘어져서 맥주 한 캔 마시면서 영화나 하나 보자.......  

 

 

http://mirror.pe.kr/index

 

+

 

관대하신 양원영님께서 대문에 박아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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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상 사건이 자연 재해에서 비롯되었거나 '신의 뜻'이었다면 증언하는 이는 피해자를 동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의도한 결과였을 때, 증언하는 이들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충돌 사이에 사로잡히고 만다.


이러한 충돌 속에서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하는 일은 도덕적으로 불가능하다. 국외자는 어느 한편을 선택하도록 강요받는다.


가해자를 편들기는 너무나 쉽다. 가해자는 국외자에게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가해자는 악을 보고 싶어 하지 않고, 듣고 싶어 하지 않고,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보편적인 바람을 악용한다. 반대로 피해자는 국외자가 고통을 덜어주기를 원한다. 피해자는 행동하고 관여하고 기억하기를 요구한다.


나치 수용소의 생존자들을 연구한 정신 의학자 레오 아이팅거는 피해자와 국외자가 가진 관심 사이의 잔혹한 충돌을 설명한다.


"전쟁과 피해자는 공동체가 잊고자 하는 무엇이다. 망각의 베일은 고통이 담긴 불쾌한 모든 것들에 드리워져 있다. 우리는 얼굴을 맞댄 두 측면을 발견한다. 한편은 잊고자 소망하지만 잊지 못하는 피해자들이고, 다른 편은 잊기를 원하고 또한 그러는 데 성공하는 강하고 종종 무의식적인 동기를 지닌 다른 모두이다. 그 대립은…… 늘 양편 모두에게 너무 고통스럽다. 가장 약한 편이…… 이렇게 불평등한 침묵의 대화 속에서 패배자의 자리에 남겨진다."


범죄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해자는 망각을 조장한다. 가해자는 할 수 있는 것이란 다 한다. 은폐와 침묵이야말로 가해자의 첫 번째 방어책이다. 은폐에 성공하지 못하면 가해자는 피해자의 신뢰성을 공격한다. 그녀를 완전히 침묵시킬 수 없다면 그는 아무도 그녀의 말을 들을 수 없도록 만든다.


이 목적을 위하여, 그는 가장 뻔한 부정에서부터 가장 정교하고 고상한 종류의 합리화까지 일련의 인상적인 논쟁을 늘어놓는다. 잔학 행위 이후 우리는 비슷하고 뻔한 사과를 들을 수 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피해자가 거짓말을 한다. 피해자가 과장을 한다. 피해자가 초래한 일이다. 그리고 어떤 사건이든 이제 과거는 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가해자의 권력이 크면 클수록, 현실을 명명하고 정의하는 그의 특권은 더욱 커지고, 그의 논쟁은 더욱 완전해지고 강해진다.


- 주디스 허먼,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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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arxists.org/korean/marx/communist-manifesto/index.htm

 

독일어 원문을 읽을 능력이 못되어 비록 번역에 의존하는 형편이지만... 번역이라는 필터링을 거치고서 읽어봐도 진짜 명문은 명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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