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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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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에 대한 정열

 

삶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신의 한계에 도달해보고 나서도 논리, 원인, 결과, 또는 도덕적인 성찰을 운운할 수 있을까? 물론 그럴 수 없다. 그때 삶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남는 것은 근거 없는 이유들뿐이다. 절망의 끝에서는 부조리에 대한 정열만이 혼돈을 악마적 광채로 치장한다. 도덕적, 미적, 종교적, 사회적, 그 외 어떤 차원의 이상으로도 삶에 방향이나 목적을 부여할 수 없을 때, 삶을 허무로부터 어떻게 보호할 수 있겠는가? 거기에 도달하려면 부조리와 절대적인 무가치함, 그리고 거짓말로 삶에 대한 환상을 조작하는 본질적으로 내용 없는 그 무엇인가에 매달리는 길밖에 없다.

 

산이 웃을 줄 모르고, 벌레가 노래할 줄 모르니깐 나는 살고 있다. 이러한 부조리에 대한 정열은, 모든 것을 깨끗이 청산하고 나서 미래의 몸서리나는 변신을 감수할 능력이 남아 있는 인간한테만 생겨난다. 모든 것을 잃은 인간의 삶에는 그러한 정열만이 남는다. 그 어떤 것이 그를 유혹할 수 있겠는가? 그러한 정열만이 남는다. 그 어떤 것이 그를 유혹할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들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할 것이다. 인류의 이름으로 혹은 공익의 이름으로 희생하는 것, 미를 숭배하는 것 등등이 가치 있는 것이라고, 나는 일시적일지라도 그 모든 것을 체험한 사람들만 사랑한다. 그들만이 절대적으로 살았던 유일한 인간들이고, 삶을 이야기할 자격이 있는 유일한 인간들이다. 우리가 사랑과 평온을 되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무의식이 아니라 영웅적 용기를 통해서다. 강한 광기가 숨어 있지 않은 존재함은 가치가 없다. 그러한 존재함은 돌이나 나무조각, 잡풀의 존재함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러나 아주 정직하게 단언한다. 인간이 돌이나 나무조각 혹은 잡풀이 되기를 원하려면 강한 광기를 지녀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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