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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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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터 좀 관심 있던 미국 슈퍼 히어로 만화를 이거저거 찾아 보다가 장르 자체에 본격적으로 흥미가 생겨 관련 영화, 미-일 합작 히어로 애니 <타이거 앤 버니>에 이르기까지 주르륵 챙겨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 늦기 전에 취직해야 하는데 이런 거나 보고 있으니 어쩌지....

 

웹서핑을 하다가, 마블 코믹스의 대표적인 히어로 중 하나인 캡틴 아메리카에 관한 에피소드를 발견했다(해당 이슈를 보지 못해서 진짜인지는 잘 모르겠다). 9.11 이후, 미국 내에서 아랍인에 대한 편견이 극심해지는 바람에 한 무고한 무슬림 청년이 시민들에게 린치 당하는 걸 본 캡틴 아메리카가 '이슬람 교는 선한 종교다, 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테러 단체 지도자들이 문제인 거다' 같은 소리를 하면서 그 청년을 보호해준다는 내용이었는데... 그걸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에피소드에서 캡틴 아메리카의 행동은 원론적으로 옳다. 하지만 9.11 테러를 감행한 알 카에다는 바로 미국이 한 때 사담 후세인을 견제하기 위해서 지원하고 훈련시킨 조직이었다. 캡틴 아메리카는 분명히 선한 영웅으로 묘사되지만, 정작 그 에피소드의 작가는 알 카에다를 키운 게 바로 미국 자신이었으며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서는 미국 사상 최초로 자국의 중심부가 공격받았다는 쇼크로 이어지는 결과를 낳았다는 이면의 진실은 외면하고 있다는 생각, 그리고 그러한 인식이 '도덕적이고 고결한 인물'인 동시에 '애국적인 미국 시민'이라는 캡틴 아메리카라는 히어로의 한계라는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아아, 9월 11일은 '최초로 미국 본토가 공격받고 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죽어간 날'인 동시에 CIA의 공작으로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살해당하고 군사 독재자 피노체트가 권좌에 오르게 된 날이기도 하지 암.

 

<다크 나이트>가 개봉했을 때, 알프레드 역을 맡은 마이클 케인은 "슈퍼맨은 미국이 바라보는 미국의 모습이며, 배트맨은 다른 나라가 바라보는 미국의 모습"이라고 인터뷰에서 본인의 의견을 밝혔다. 다크 나이트에서 배트맨이 조커를 잡기 위해 고담 시민들 전체의 핸드폰 통신을 도청하여 그 통신 데이터를 기반으로 3D 렌더링된 지도를 만드는 장치를 만드는 묘사를 두고 한 발언이 명백하다. 얼핏 보기에 이것은 작년에 스노든의 폭로로 인해 명백해졌지만 전부터 꾸준히 의혹이 제기되어 온 미국의 정보 통제와 대중 감시에 대한 비판- 즉, 지극히 타당하고 합리적인 비판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을 보는 다른 나라의 관점이 배트맨'이라는 것은, 악과의 싸움에 있어 극단적이고 정도가 지나친 수단을 택했을 뿐 미국이 근본적으로는 순수한 정의감에 의거해 행동한다는 인식을 전제로 하고 있다(마이클 케인은 영국인이지만).

 

굳이 이러한 예를 들지 않는다 해도, 미국 슈퍼 히어로 장르를 보다보면... 미국인들 전반의 미국이라는 자신들의 조국에 대한 일종의 '집단적 자아상'이 어느 정도 보인다는 생각이 든다. 그 자아상 속의 미국은 

 

1)중국과 러시아로 대표되는 라이벌들에게 지위를 위협받고 있지만 여전히 세계 제일의 강대국이며

2)그 힘을 '정의로운 목적으로 사용하는 선한 나라'이고

3)정의감이 지나친 나머지 도덕적으로 의심스러운 수단에 기댈 때도 아주 가끔가다 한 번씩 있고, '적'들에게 그러한 정의감을 이용당할 때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여전히 선하고 위대한 나라 

 

라는, 더 없이 오만한 동시에 순진한 이미지로 뒤덮여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미국은, '강하고 정의로운 국가'여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국제 사회에서 그러한 정의를 선도하고 힘으로 집행하는 '선의 진영'의 수장은 언제나 미국이어야 하며, 그 힘과 정의가 정말로 정당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거부한다. 그것이 미국적인 '자유와 정의'의 한계다.

 

슈퍼 히어로 장르는 본질적으로 법과 공권력, 사회 질서가 자신들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공동체 의식이 빈약하고 개인주의적인 미국인들의 사고방식에 더해, 광활한 초원 가운데 점점이 흩어져 이웃의 도움을 기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기껏해야 일가족 하나, 커봤자 작은 마을 하나 단위가 스스로 총을 들어 산적과 맹수들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켜야 했던 개척 시대 당시의 현실적 풍토와 맞닿아 있다. 총으로 상징되는 '법이니 공권력이니 하는 외부적 권위에 의존하지 않는, 자기자신에서 비롯하는 자유로운 자위권'에 대한 신성시 역시 그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심심하면 벌어지는 총기 난사 사건에도 불구하고 총기 규제 법안이 번번이 물먹는 핵심적 이유도 그거고). 가면 쓴 자경단원과 그를 위협적인 무법자 취급하는 공권력 간의 갈등은 이 장르에서 이미 숱하게 우려먹은 소재다.

 

그러한 미국적인 정서를 기반에 깔고 있는 게 슈퍼 히어로 장르라면... 미국과는 정서가 다른 한국 배경의 히어로 물은 어떤 모습일까. 역시 매니지먼트 회사에 소속되어 자본주의적 논리로 움직이는 연예인 히어로 또는 국가 기관에 속해 '국익'을 위해 움직이는 공무원 히어로로 양분되어 있고, 미등록 히어로는 싸그리 빌런 취급 받는다거나 하는 식이려나. ....그러고 보니 <타이거 앤 버니>도 그렇고... <초인동맹에 어서 오세요>도 이런 스타일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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