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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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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7.04
    더 새로운 라오쿤을 향하여, 클레멘트 그린버그
  2. 2008.05.31
    로망의 투사? 5
  3. 2008.05.25
    최근 쓴 단편에 대한 평들 모음. 3
  4. 2008.05.10
    Across the universe.
현재 독단적이고 비타협적으로 작업하는 '비대상적' 혹은 '추상적' 순수회화 작가들의 경향을 단순히 미술에 대한 헌신적인 예찬론자의 태도를 보여주는 징후로 가볍게 배제해버릴 수는 없다.

이것은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더 새로운 라오쿤을 향하여>의 첫부분이다. 비단 순수회화 작가들 뿐만 아니라 일련의 '순수성'에 대해 집착하는 무리들은 이러한 종류의 혐의를 벗어날 수 없다. 예를 들어, 순수문학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기성문단의 작가들이라던가 말이다. 아무튼, 그린버그의 논문 중 공감가는 부분들을 정리해 블로그에 갈무리해두려 한다.


『순수론자들은 미술을 과도하게 옹호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다른 누구보다도 미술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그들은 미술에 대해 더욱 염려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순수주의는 미술의 운명에 대한 극단적인 염려, 열망, 미술 자체의 정체성에 대한 관심을 표명한 것이다. 우리는 이 점을 유념해야 한다. 순수주의자들이 현재 그리고 미래에 조형예술에서 '문학'의 주제를 배제하자고 주장할 때 우리가 즉각 그들을 비난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비역사적인 태도 때문이다. 다른 모든 문화현상들처럼 추상미술은 그 창조자들이 살고 있는 시대의 사회적 상황이나 그밖의 다른 상황들을 반영하고 있으며, 그래서 미술이 자신을 이러저러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역사와 분리되어 미술 그 자체 내에서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은 매우 쉽다. 그러나 당대 최고의 조형예술이 추상이라는 순수주의자의 주장을 거부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서 순수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형이상학적 주장으로 옹호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하기를 고집한다면, 추상미술의 주장을 완전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채로 그 장점을 인정하는 우리들 몇몇은 추상미술이 현재 차지하고 있는 우월성을 스스로 설명해야 한다.


(중략)


나는 시대에 따라 하나의 주도적인 예술형태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17세기 유럽의 경우에는 문학이 주도권을 잡았었다.(그러나 지배적인 어떤 특정한 예술장르에서 항상 가장 출중한 예술작품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업적면에서 당시 가장 훌륭한 예술은 음악이었다.) 17세기 중엽 거의 모든 곳에서 회화는 궁정작가들의 손에 위탁되어 결과적으로는 보잘것 없는 실내장식으로 하락했다.


종교개혁의 성상파괴주의(파스칼이 얀세니즘에 근거하여 회화를 무시한 것이 하나의 징후라 할 것이다).


그리고 판화 발명 이후 비교적 값싸고 이동 가능해진 매채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을 법한, 당시의 가장 창조력있는 계층으로 부상하고 있던 상업 부르주아들은 대부분의 창조력과 성취력을 문학에 쏟았다.


하나의 예술이 지배적인 역할을 하게 되면, 그것은 모든 예술의 원형이 된다. 즉 다른 예술들은 그들자체의 특성을 벗어버리고 주도적인 예술의 효과를 모방하려고 노력하는 한편 우세한 예술은 다른 예술들의 기능을 흡수하려 한다. 예술들 간의 혼란이 초래되고 이로 인하여 종속적인 예술들은 오용되고 왜곡된다. 종속적인 예술들은 지배적인 예술의 효과를 얻으려는 과정에서 그들 고유의 특성을 부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종속적인 예술들이 이런 방식으로 단지 잘못 다루어질 수 있는 것은, 자체의 매체들을 짐짓 숨길 수 있을 정도의 숙달된 기교를 성취했을 때이다. 다시말해 (그럴 때) 그 예술가는 언뜻 보기에 환영illusion을 위하여 질료를 극복할 수 있을 만큼 힘을 얻었음에 틀림없다. 음악은 기교면에서 비교적 초보적이며, 공식적인 예술로서는 상대적으로 발전기간이 짧아 17,18세기의 회화에 닥친 그런 운명을 피할 수 있었다. 음악이 그 본질상 모방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그 당시까지 음악의 가능성들이 환영의 효과를 추구하게 될 정도로 충분히 탐구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뛰어난 환영의 예술인 회화와 조각은 당시 이미 고도의 기교를 갖추었기 때문에 환영의 효과를 얻는 것뿐 아니라 다른 예술들의 효과와도 겨루고 싶은 유혹에 빠질 만했다. 회화는 조각을, 조각은 회화를 흉내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회화와 조각은 문학의 효과를 재생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17,18세기 회화가 무엇보다도 가장 얻고자 노력했던 것은 문학의 효과였다.


(중략)


일반적으로 재능이 부족한 화가나 조각가들의 작품은 단지 문학의 그림자이며 '꼭두각시'일 뿐이다. 모든 강조점은 매체로부터 벗어나 주제로 옮겨진다. 사실적인 모방이라는 과제는 이미 해결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이제는 시적인 효과를 위해 주제를 해석하는 예술가의 능력이 문제이다.


우리들 자신은 오늘날에도 문학에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에 주도적인 예술로서의 문학의 위치를 올바로 평가할 수가 없다. 반대의 경우를 예로 들면 내가 의미하는 바가 좀더 명확해질 것이다. 중국의 경우 문화가 발전해가는 과정에서 회화와 조각이 주도적인 예술형태가 되었다고 나는 믿는다. 이 경우 시는 회화와 조각에 종속된 역할을 부여받고 그 결과 양자의 한계까지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시는 회화의 한 부분에, 시각적인 세부묘사를 강조하는 데에 제한된다. 중국인들은 심지어 시를 쓴 서체를 감상하는데서 얻어지는 시각적인 즐거움마저 요구한다.


(중략)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아카데미 회화는 회화적인 것the pictorial에서 회화같은 것the picturesque으로 전락하였다. 

모든 것은 일화나 전달내용에 의존했다. (중략) 이런 상태가 단 한번의 강타로 극복될 수는 없었다. 회화를 재건하려는 운동이 처음에는 소모전처럼 비교적 느리게 진행되었다. 19세기 회화가 처음으로 문학과 결별한 것은 파리코뮨의 지지자였던 쿠르베가 정신에서 물질로 돌아섰을 때였다.


최초의 진정한 아방가르드 화가였던 쿠르베는 정신의 도움없이 기계처럼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만을 그림으로써 자신의 예술을 직접적인 감각자료로 축소시키려 했다. 그는 당시의 평범한 생활을 주제로 택했다. 아방가르드 작가들이 종종 그러했듯이 그는 관료적인 부르주아 미술을 완전히 뒤엎어 파기하려 했다. 우리는 어떤 것을 갈 수 있는 데까지 몰고 감으로써 종종 그것이 출발한 지점으로 돌아가곤 한다. 쿠르베의 회화에서 새로운 평면성이 등장하며 이와 함께 '관심이 몰리는 중심점'과의 관계와는 상관없이 캔버스의 구석구석에 대한 새로운 주목이 나타난다(문학에 있어서는 졸라, 공쿠르 형제, 그리고 베르하렌 같은 시인들이 쿠르베의 동류들이다. 그들 역시 '실험적'이었고 이념들과 '문학'을 제거하고자 노력했다. 즉 쇠락해가는 기독교적 부르주아 공동체보다도 더 확고한 토대 위에 자신들의 예술을 구축하고자 했다). 만약 아방가르드가 스스로를 자연주의라 주장하기를 꺼리는 듯이 보인다면, 그것은 그 경향이 자신이 공언한 객관성을 얻는 데 너무 자주 실패 -다시 말해 '이념들'에 굴복- 하곤 하기 때문이다.


(중략)


모든 예술은 보편적으로 이념이나 개념을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없는 경험의 요소들을 훨씬 더 직접적인 감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매체의 표현능력을 확대시키려 한다. 이런 방식으로 '문학'으로부터 탈피하려 했던 아방가르드는 모든 예술들이 문학을 제외한 서로 다른 예술을 모방하게 함으로써 예술의 혼란을 가중시킨 것처럼 보였다(이 즈음에 이르러 문학은 자신의 천박한 감각을 확장시켜서 관료적인 부르주아 문화 안에서 아방가르드가 반대했던 모든 것을 포용하게 되었다).

(중략)

인상주의 회화는 자신의 분위기와 색채의 율동적인 충만함으로 인상주의자 자신들이 낭만적 음악이라고 이름붙인 그런 효과에 도달했다. 그러나 회화는 이 새로운 혼란의 영향을 가장 적게 받았다. 그 주요 희생자는 음악과 시였다. 시 역시 '문학'으로부터 탈피해야 했기에 회화와 조각의 효과를 모방했으며(고티에, 고답파 시인들, 후기의 이미지스트들), 음악의 효과도 모방했다(포우는 진정한 시를 서사시로 좁혔다). 음악은 낭만주의자들이 가진 무절제하고 끝을 모르는 감상성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묘사하고 설명하고자 애썼다(표제음악). 이 시점에서 음악이 문학을 모방했다는 사실이 나의 논조를 흐려놓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음악이 재현적이 될 때는 시를 모방하는 만큼 회화를 모방한다. 게다가 드뷔시는 표제 자체를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실험을 위한 하나의 구실로서 사용했던 것 같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색채 저변에 내재된 구조를 찾고자 노력한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드뷔시는 '음표 저변에 깔린 소리'를 찾아내고자 한다.
음악 내부의 사정은 접어두고라도, 예술가로서의 음악은 이 당시 다른 예술들과 연관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중략)

시를 마술이나 최면, 혹은 마약 등의 심리적인 약제로서 보는 이론은 포우로, 궁극적으로는 시의 즐거움을 환상이나 상상력에서 찾으려 했던 코울리지와 버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이 이론을 토대로 하여 실제로 일관성있게 시를 쓴 최초의 인물은 말라르메였다. 그에 의하면, 소리는 그 자체가 매체가 아니라 시의 보조물일 뿐이다. 게다가 오늘날은 대부분의 시가 눈으로 읽히되 낭독되지 않으며 소리는 그 의미의 한 부분이지 의미를 담는 그릇이 아니라고 그는 강조했다. 시를 주제로부터 구출하여 시가 진정한 영향력을 십분 발휘하도록 하려면 단어들을 논리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필수적이다. 시의 매체는 연상을 불러일으키며 뜻을 암시하는 단어의 힘 속에 격리되어 있다. 시는 더이상 의미로서의 단어들 간의 관계 속에 존재하지 않고, 소리 그리고 의미의 역사와 가능성들로 구성된 개성적 존재들을 움직이게 할 필요가 있을 때에만 보존된다. 관련되지 않은 단어들이 눈으로만 읽히고 소리내어 낭송되지 않을 때에는 정적이기 때문에 문법적인 논리는 이들 개성적 존재들을 움직이게 할 필요가 있을 때에만 보존된다. 운율의 형식과 리듬을 제거하려는 실험적인 노력이 기울여졌는데 그 이유는 그 요소들이 시의 본질에 속하기에는 너무나 국부적이며 한정적이고 특정한 시간과 장소와 사회적 관습에 밀착해 있기 때문이다. 시적인 산문에서도 실험이 행해진다.

그러나 음악의 경우처럼, 형식적인 구조가 필수적이고 그 중 어떤 구조는 그 저항의 한 양상으로서 시의 매체에 절대 필요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시는 여전히 의미의 가능성들을 제공하지만 그것은 단지 가능성들일 뿐이다. 그러나 만약 그 가능성들 중 어떤 것이 철저하게 구체화된다면 시가 가진 가장 큰 효력, 즉 의미의 테두리에 접근만 하고 결코 그 선을 넘지 않음으로써 무한한 가능성으로 의식을 동요시키는 그 효력이 상실될 것이다. 시인은 표현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독자의 의식에 작용하여 시의 감동을 만들어낼 어떤 것을 창조하기 위해 시를 쓴다. 시의 내용은 시가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에게 영향을 주는 그 무엇이다. 독자는 하나의 독특한 대상으로서의 시로부터 감동을 받는 것이지 시와 관계된 시 이외의 것에서 감동을 받지 않는다.

(중략)

조형예술의 경우에는 매체를 고립시키는 것이 더 쉬우므로 결과적으로 아방가르드 회화나 조각이 아방가르드 시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순수성'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회화와 조각은 더욱 철저하게 단지 자신들이 행하는 바 그 자체가 될 수 있다. 즉 기능적인 건축물과 기계처럼 회화나 조각은 그것이 행하는대로 보여진다. 그림이나 인물조각은 그것이 만들어내는 시간적인 감각 속에서 완결된다. 연결지어 생각해 볼 것은 아무것도 없고 단지 느껴야 할 것들이 있을 뿐이다. '순수한' 시가 무한한 암시를 추구한 반면 '순수한' 조형예술은 최소한의 것을 추구한다.  발레리가 주창한 것처럼 시가 그 정서를 기계적으로 만들어낸다면, 회화나 인물조각은 '조형적인 시각'의 정서를 기계적으로 산출해낸다.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예술작품의 순수하게 조형적인 혹은 추상적인 성질이다.

매체와 그것의 어려움을 강조하라. 그러면 당장에 시각예술의 순수하게 조형적인 가치가 전면에 나타날 것이다. 매체 자체의 저항감이 모두 사라지는 지점에 이르기까지 매체를 압도하라. 그러면 예술의 우연한 효용성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아방가르드 회화의 역사는 그 매체의 저항력에 점진적으로 굴복해간 역사이다. 그 저항력은 사실적인 원근법적 공간을 위해 회화평면 위에 깊이감을 내려는 노력을 거부하는 회화평면 자체에 존재한다. 이러한 굴복 속에서, 회화는 모방을 그리고 이와 함께 '문학'을 제거했을 뿐만 아니라 사실주의적인 모방에서 비롯되는 회화와 조각 간의 혼란도 제거했다.

(중략)

큐비즘이라는 회화적인 수법에 의해 사실적인 회화공간의 파괴와 대상의 파괴가 함께 완성되었다. 큐비즘 화가들은 색채를 제거했는데 그것은 그들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양감과 깊이감을 내기 위한 명암과 원근법이라는 아카데믹한 기법 - 그 자체로는 상식적 의미의 색채와 별 관계가 없는 - 을 패러디를 통해 파괴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생략) 결국 마지막 단계의 큐비즘 회화에서는 3차원적 그림 공간의 탄생과 죽음이 동시에 목격된다.

(중략)

화가로 출발했던 한스 아르프같은 작가들은 나무나 석고 위에 색을 칠하고 주형틀이나 목조물을 사용하여 평면을 높이고 낮춤으로써 결국은 단 하나의 평면이라는 감옥으로부터 탈출했다. 다시말해 그들은 회화에서 시작하여 채색된 저부조를 만들었고 - 환영의 창조라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으면서도 3차원성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그들은 그만큼 멀리 나아가야만 했다 - 마침내 그들은 조각가가 되어 환조를 제작함으로써 점차 심해져가는 순수 회화의 금욕적인 기하학으로부터 자신들의 운동성과 방향성에 대한 감성을 해방시켰다.

(중략)

사실상 대다수는 아닐지라도 현대회화의 발전에 중요한 공헌을 한 수많은 작가들은 보다 강렬한 표현성을 위해 모사적인 사실주의와의 관계를 끊으려 했으나, 그 발전의 논리가 너무나 냉혹하여 결국은 그들의 작업이 추상예술을 향한 또 하나의 걸음이 될 뿐이었고, 표현적인 요소를 더욱 경직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것은 고호나 피카소나 클레 그 누구에게든 마찬가지로 해당되는 사실이다. 그 모든 노력이 같은 곳을 향한 것이었다.


(중략)

추상미술의 본질 안에는 강제로 이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해두는 것으로 족하리라. (생략) 추상미술은 단순하게 회피한다고 해서, 혹은 부정한다고 해서 제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추상미술을 완전히 이해함으로써, 그것을 뚫고 헤쳐 나감으로써만 그것을 제거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을 향해서 가야 하는지 나는 모른다. 예술에 있어 자연의 모방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희망사항은 추상미술의 영원성을 합법화하려는 몇몇 추상미술의 파르티잔들의 욕구보다도 더 정당화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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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쪽 블로그를 쓰고 계신 이웃분, Armand님의 글. 생각해 볼 게 많은 글이라, 양해를 구하고 긁어왔다.

And
물타기 용 포스팅(...)

몇 년 전, 갓 군대를 제대했을 무렵에 쓴 단편의 일부. 여기서 묘사된 소녀의 이미지가 너무 반짝거리고 생동감 있다, 실존 인물이 모델 아니냐, 작가의 로망도 좀 투사된 거 같다... ....라고 진x님에게 무지 놀림 받았다-_-;;; 그,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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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랑.

 “하아, 하...”

 핸드백을 머리에 얹고 뛰어왔는데도 불구하고 흠뻑 젖어버렸다. 맞은 편의 카운터 뒤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문 채 신문을 읽던 남자가 화들짝 놀라 일어서는 게 언뜻 보인다. 어차피 이럴 거 괜히 뛰어왔잖아... 숨을 고르며 머리의 물기를 짜내던 내 앞에 흰 타올이 내밀어졌다.

 “이걸로 닦으세요, 손님.”

 “.....”

 고개를 돌려보니 깔끔한 회색 정장 치마와 가디건 차림에 흰 블라우스를 받쳐 입은 소녀가 미소지으며 서 있었다. 타올을 받아 머리를 닦으며 난 소녀를 다시 살펴보았다. 나이는 이제 10대 후반 쯤? 아직 학생 같은데... 아르바이트? 여름방학은 아직 안 했을 텐데... 것보다 학생이 이런 곳에서 일해도 되나? 순간 의문이 떠오른 난 찬찬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윤기흐르는 갈색 머리를 위로 둥글게 망으로 틀어올린, 귀여운 인상의 소녀다. 생기있게 반짝거리는 눈동자와 코 주변에 희미하게 남은 주근깨 자국이 은근히 말괄량이처럼 보인다. 그녀는 카운터 쪽을 향해 곱게 이마를 찌푸리더니 허리에 손을 얹고서 남자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다.

 “사장님도 참, 가게 안에서 담배 피우시지 말라니까요! 냄새 배면 손님들이 싫어하신다고요.”

 내용만 보면 분명 힐난조인데 워낙 태도가 꾸밈없어서인지 마치 가볍게 투정부리는 것처럼 들린다. 아까 엉겁결에 흘린 꽁초를 슬그머니 다시 집어들던 그는 멋쩍게 미소지었다. 나이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정도? 탈색시킨 듯한 회색 머리를 길게 길러 포니 테일로 묶은, 서글서글한 인상의 남자다.

 “...흠흠, 그러니 네가 맑은 날이면 환기도 자주하고 청소도 깨끗이 해주고... 네가 워낙 깔끔하잖아? 그러니 괜찮지 않을까?”

 “얼렁뚱땅 넘어가려 하시지 마세요, 저번에는 화장실에 걸레빨러 들어갔더니 무슨 담배냄새가 그렇게 나는지... 오늘처럼 비오는 날은 특히 더 하다고요. 정 피고 싶으시다면 좀 나가서 피우시면 안되요?”

 뒷머리를 긁적이던 그는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난처한 미소를 지으며 카운터에서 돌아 나와 가볍게 목례를 해 보이고는 날 지나쳐 문 밖으로 나갔다. 소녀는 그 뒷모습을 보며 팔짱을 끼고 한숨을 폭 내쉬더니 내게 꾸벅 고개를 숙여보였다.

 “죄송합니다 손님, 도대체 남자들은 저게 뭐가 좋다고 피워대는지... 그래도 저희 사장님이 칵테일은 잘 만드세요. ...말 나온 김에 한 잔 하시고 가시겠어요?”

 “.....” 

 대충 고맙다고 중얼거리며 그녀에게 타올을 돌려주고서야 난 비로소 내부를 둘러볼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은은한 조명을 헤치고서 낮게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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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렇게 보이나?;;;;;;;;

And
합평회 A)

*짧다(...) 밥을 막 먹으려는데 밥상이 사라진 느낌.
*장편의 서론을 읽은 듯 하다.
*배명훈님의 <누군가를 만났어>에 영향을 받은 인상이 너무 강함. 좀 더 다른 색채를 가져야 할 필요가 있음.
*<누군가...>에서 제시된 여러 꺼리들 중 하나를 물고 늘어진 듯(남자는 땅 속으로, 여자는 하늘로).
*짧은 분량과 맞물려서, 작가만의 색채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전작들과는 문장이나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꽤나 다양한 문장을 구사할 수 있는 듯해 놀랐음.
*첫 문단과 둘째 문단이 좀 뜨는 듯. 굳이 태클걸지 않는다 해도, 첫 문단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
*역사에 관련된 부분이 작중에 잘 녹아있지 못하다. 작가의 통제 의지가 너무 강해 독자의 몰입을 방해한다.
*우주에 있는 아내는 무슨 눈으로 지구를 볼까?
*이소연 씨를 언급하는 부분에서 에러가 있음. 중국 문화재청 관리와의 대화 부분 수정 요망.
*아내에 대한 구체적인 회상이라거나 그런 걸로 아내의 캐릭터를 구체화시켜줘야 할 필요가 있음. <우주류>의 화자와 차별화 필요.
*결말은, 남자가 하늘을 이해하려고 하는 걸로 보인다.
*화자가 무게를 잡는 듯?
*아내의 인터뷰 부분에서 주어가 불확실한 느낌. 말은 되지만 깔끔하게.
*동료와의 대화 부분 수정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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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평회 B)

*첫 문단 주인공의 독백 부분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너무 거품을 뺀 게 아닌가? 주제는 명확히 이해되지만 깔끔하게 구성이 짜인 것과는 거리가 먼 듯.
*주인공과 아내의 상반된 입장은 매우 매력적인 설정이지만, 작품에 소설로써의 마침표가 찍히지 않은 느낌이 든다.
*이전의 작품들에 비해 문장이나 호흡에 있어 장족의 발전.
*'현실'의 문제를 본격적인 소재로 다룬다는 것은 좋은 시도지만, 너무 피상적. 고고학자인 주인공의 작업 과정 등, 디테일이 잘 살아 있지 못함.
*아내의 입장이 너무 뻔하다. 너무 평면적. 남편의 그것에 비해 너무 단선적이다.
*좀 더 전통적이면서도 검증된 방식, 즉 챕터를 나눠 남편과 아내의 관점을 교대로 보여주는 게 더 효과적이었을 듯.
*사건이 피상적이고 외부인의 입장에서 잘 와닿지 못하다. 동북 공정이나 대통령의 탄핵 건 등, '현실'에 대해 다루고 있는 부분이 책으로만 얻은 지식이라는 티가 난다. 작가가 진정으로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느낌.
*남편의 입장이란 기둥에 비해 아내의 입장이라는 기둥이 너무 약하다. 더 깊이 파고 들어야 하는 걸 너무 쉽게 넘어갔다.
*남편이 발견한 유물(토기라거나)에 대해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표피와 내면을 이어가는 식으로 둘의 갈등을 형상화했다면 어떨까?
*전부터 지적되는 문제, 작가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에 단편적으로 끌어 모은 지식들이나 이야기의 무게추가 따로 놀게 된다.
*작가의 시야가 너무 좁고 피상적이다. 정소연님과 배명훈님, ida님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도 그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공감하지만, 작가가 스케일이 큰 문제를 다루고자 하는 욕심이 지나치다. 좀 더 일상적이고 평이한 소재를 통해서도 큰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주인공의 가장 큰 욕심이 아내를 이해하는 것인데 주인공의 나이대를 고려하면 좀 더 세상에 대해 깊이 있으면서도 건조한 성찰이 어울린다.
*주인공이 아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걸 명확히 하면 독자로 하여금 더 풍부한 사유를 이끌어 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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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SF 창작 세미나 제출 겸 거울 합평용으로 단편 하나를 쓰고 있다. 소설은 몇 달 째 쓰지 않고 있었더니 손이 굳은 게 느껴진다. 그래선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이 조급해 온다. 너무 오랫동안 글 다운 글을 쓰지 않았다. 이대로는, 곤란하다.

ida님의 단편 <땅 밑에>와, 배명훈님의 <누군가를 만났어>, 정소연님의 <우주류>를 읽으면서 착상을 얻었다. 미지의 영역에 속해 있기는 마찬가지인데, 왜 사람들은 하늘 만을 올려다 볼 뿐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땅 아래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을까. 이미 일어난 일들, 과거에 속한 일들이라고 해서 과연 제대로 알 필요가 없는 걸까.

그러한 문제의식과, 전부터 간간이 들려오던 동북 공정 계획에 대한 소식들, 그리고 최근 이소연 씨가 우주에 갔다 온 것 등을 보면서 주제가 구체화되었다.

1/3가량 쓴 지금, 좀 빠르게나마 중간 평가를 해보자면... 현실 정치와 관련된 내용은 좀 더 줄여야 할 듯 하다. 실명을 사용한 것도 지워 버리고. 원래의 의도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숫자나 이름의 사용은 가능한 배제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처음부터 끝까지 두드러지는 사건 없이 주인공의 내면과 그를 둘러싼 주변 환경을 보여주기 방식으로 이끌어 나가는 걸 주로 하고... 주인공이 어째서 지금 거기서 그런 일을 하고 있는 지에 대한 설명은 들려주기로 처리하되, 분량을 가능한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지금 같아서는 '자료 조사 많이 했어염'하고 자랑하는 꼴 밖에 안 된다. 더 줄일 방법 없나, 끙.

새벽에 시골로 출발해야 하는데... 으음 나중에 생각하고 지금은 걍 자야겠다, 잠을 적게 자면 푸른 기와집 누구처럼 될 꺼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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