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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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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거창하지만 체계적인 분석이라기보다는 일단 생각나는 것부터 적고 보는 단상에 가까운 글이다-,.-

이 시리즈의 배경은 대체 역사적인 성격을 띈다. '실제' 역사에서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는 십자군 전쟁에 참전했다가 석궁에 부상을 입고는 프랑스에서 사망하지만, 이 작품에서 리처드 왕은 부상에서 회복한 뒤 성격이 바뀌어 현명한 성군이 되어서는 프랑스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영국, 아일랜드, 북 아메리카의 일부까지 포함하는 통합 영불 제국을 건립하는 것으로 나온다. 새로운 왕조인 플랫태지넷 왕가와 영불 제국은 20세기 초반인 현재까지 쇠락의 징후를 보이지 않는 초강대국으로 군림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도 배경이지만 이 작품에서 가장 특기할 만한 것은, 이 세계에서는 마술(魔術)이 실존한다는 것이다. 전체적인 문명 수준은 가스등과 증기 기관차, 초기 형태의 잠수함, 전염병의 미생물 이론 등 실제 역사의 빅토리아 왕조 시대 정도에 머물러 있되, 마술의 현존이라는 요소가 이 세계를 독특한 색채로 수놓는다.

이 세계의 마술이 타 판타지 펑크 물(소설이 아니라 게임의 설정이지만, D&D3.5의 배경 세계인 에버론이 이 범주에 속한다)과 비교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1)확고히 체계가 잡힌, 논리적이고 이론적인 기반이 존재한다

2)마술을 통해 가능한 일과 불가능한 일이 뚜렷이 구별된다

3)중세 시절 과학이 그러했듯, 교권의 엄격한 통제와 후원 속에서 점진적으로 발달했다

4)마술은 물론 강력한 힘이지만, 마술사는 사회적인 질서와 규칙에 종속된다

의 4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이 세계에서 마술은, '초자연적인 미지의 힘'이 아니라 관찰과 실험을 통해 수치화와 계량화를 거쳐 보편적인 검증을 이끌어 내는 게 가능한 '자연 법칙의 일부'이며 그를 다루는 재능(탤런트라고 부른다)과 적절한 교육을 거친 사람이 바로 마술사이다. 그리고 이 시리즈의 주인공인 다아시 경은, 자신은 마술사가 아니되 유능한 마술사 조수를 곁에 두고서 풍부한 마술적 지식과 추론 능력을 통해 마술이 개입된 범죄 사건을 해결하는 수사관이다.

'마법이나 초능력 같은 게 존재한다면 추리물은 끝장'이라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러나 이 시리즈에서 랜달 개릿은 마술의 원리와 그 행사 과정에 있어서 대단히 엄밀한 과학적 방법론을 적용하고, 또한 작품에 따라서는 마술의 존재 자체를 일종의 떡밥으로 활용하기까지 함으로써(처음에는 마술적 범죄로 보였는데 사실은 아니었다거나) 그러한 고정 관념을 성공적으로 깨뜨린다. 게다가 사소한 설정 하나, 문장 하나도 낭비되는 법 없이 정교하게 짜맞춰져 복선으로 기능하는 추리물의 성격 때문에 작품 전체의 지적이고 정밀하며 논리적인 색채는 더욱 강화된다.

이러한 비학 탐정물-'오컬트'적인 지식과 기술을 수사에 활용하는 탐정물, <야쿠시지 료코의 괴기 사건부>나, <사이코 메트러 에지>도 이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 같다-에 있어서 위의 4가지 요소는 '투시 마법 한방으로 증거물 확보 끝' '마음을 읽는 마법 한방으로 범인 색출 끝'이라는 식의 안일한 해결을 방지하고 작품 전반에 걸쳐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이 중 한 둘 정도의 요건을 만족하지 못한다고 해서 당장 그 작품의 수준이 떨어진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런 경우에는 적어도 독자가 다른 데서 재미의 포인트를 잡을 수 있게끔 하기 위한 별도의 배려가 있어야 한다-하다 못해 '주인공의 모에함' 같은 종류의 배려라 해도-.

PS=원작에서는 마법을 Magic, 마술을 Sorcery라고 표기한다. 역자는 이 세계의 마술이 객관적 검증이 가능한 체계적 기준에 따라서 행사되는 것이므로, 역어를 마법이 아니라 마술로 택했다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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