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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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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원숭이 놀이'라는 것은 하루키의 소설에서 나온 것으로, '30분의 시간 제한을 두고 그 시간 안에 완결성을 갖춘 엽편 하나를 완성하는 놀이'라고 한다(어느 소설에서 나온 건지는 하루키를 읽은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소싯적에 자주 했는데... 잠 안 오는 새벽에 예전에 쓰다 만 소설을 다시 잡았다가 손이 굳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손을 풀 겸 오랜만에 다시 슥슥. ...쓰다가 결국 제한 시간을 30분 더 초과해 1시간이 걸렸다는 건 안 비밀. 사실은... 허지웅이 최근에 한 트윗보고 딥빡쳐서 썼다(...). ㅅㅂㄻ 오버가 어쩌고 저째? 5년 전에 당신이 촛불집회 나갔다가 현장에서 자기 걱정해서 나온 어머님 만난 이야기 블로그에서 보고 살짝 감동했던 그 때의 나는 뭐가 되냐?

 

써놓고 다시 보니 왠지 최규석 그림체로 그려진 만화로 상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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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 아니 어쩌면 별로 멀지 않은 미래일지도 몰라요. 어쩌면 바로 지금 지구 상에 존재하는 어느 나라의 이야기일수도 있고요. 어떤 나라에, 글밥 좀 먹었고 배운 것 좀 있다 하는 한 먹물이 살고 있었답니다. 먹물이 사는 나라는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다른 나라들보다는 잘 살았지만, 바로 위에 존재하는 진짜 강대국들 대열에 끼기에는 무리인 나라였어요. ‘성공적인 개발 도상국 모델로서, 아랫 순위 나라들에게는 선망이 되고 있었지만 자력으로 더 이상 발전할 가능성은 희박해져가고 있는 그런 나라였지요. , 학교 다닐 때 보면 반에 그런 애들 있잖아요? 성적도 중상위권 수준에는 들고, 품행이나 교우관계도 나쁘진 않은데 단지 그 뿐 죽어라 노력해봤자 최상위권 그룹에 들기는 개뿔이고 현재 위치 유지하는데 만도 힘겨운 애들.

 

대부분의 백성들은 하루하루 벌어먹기 바빠서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이 나라의 왕에게는 한 가지 비밀이 있었어요. 사실 왕은 불로불사의 육체를 갖고 있고,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단지 겉모습만 바꿔가면서 이 나라를 계속 다스리고 있었답니다.

 

오래 산다는 것은 그 자체로 힘이에요. 긴 세월을 살아오며 쌓아올린 지식과 돈, 권력, 그리고 인맥은 누구도 무시할 수가 없게 되지요. 물론 아무리 그런 힘들이 있다 해도 왕 혼자 자기 좋을 대로 모든 일을 처리하면 혼자서는 왕에게 대항할 수 없는 수준일망정 왕도 아예 무시할 수는 없는 힘을 가진 신하들의 반발을 부르게 되요. 그래서 왕은 그런 신하들 중 특히 뛰어난 몇 명들과 제휴를 맺어, 적당히 서로 견제와 협력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왕위를 유지했지요. 그 정도 힘이 없는 신하들이나 일반 백성들은 어떻게 됐냐고요? 하발이 취급받는 거죠 뭐, 알면서.

 

사실 그 비밀은 정말로 엄청나게 깊이 숨겨져서 누구도 모르는 진짜 비밀은 아니었어요. 이 나라는 객관적으로 제법 잘 사는 편이었고-물론 그 위의 초강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하는 건 무리였지만요- 백성들의 교육 수준도 높은 편이었거든요. 알려고 하면 누구나 깨달을 수 있는, 새삼 비밀이랄 것도 없는 것이었어요. 다만 다들 먹고 살기가 바빴고, 그걸 안다고 해도 딱히 그를 바꿔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을 뿐이죠.

 

5년 전, 이 나라에 큰 일이 벌어진 적 있었어요. 이 나라가 이웃의 한 강대국과 통상 조약을 맺는 과정에서 왕이 시작하기도 전부터 굽히고 들어갔거든요. 5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자면, 글쎄요. 최소한 아직까지는 별 문제가 없어요. 그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당시에 더욱 문제가 된 건 왕의 굴욕적인 자세였죠. 왕은 이해할 수 없었어요. 자기는 왕이고, 감히 자기 말에 태클걸 수 있을 만한 건 몇몇 신하들 뿐이었거든요. 그 신하들도 평소에는 왕의 권위를 인정해서 왠만한 건 왕의 명령에 순순히 따랐고요. 전국 각지에서 백성들이 들고 일어났고, 그러한 백성들의 선두에는 먹물이 있었지요. 왕은 화가 났어요. 예전에 자신이 군복을 입고 있을 때, 자신은 그저 겉모습만 바꿨을 뿐인데 우매한 백성들이 자신을 찬탈자라고 욕하면서 여기저기서 들쑤시고 일어났을 때의 악몽이 떠올랐지요. 그래도 그 때처럼 땅크 몰고 밟아 버리자니 주변의 라이벌 국가들이 비웃을 거 같아서 이를 악 물고 참았어요. , 그런 옛말 있잖아요? ‘이 또한 지나가리니’! 세상은 긍정적으로 살아야 하는 법이에요. 왕은 자비를 베풀기로 했고, 몇 달이 지나고나자 저항도 잦아들었어요. 왕과 측근 신하들은 안도했지요.

 

한편, 먹물은 어떻게 됐냐고요? 먹물은, 이 나라와 백성들을 걱정하고 있었어요.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왕이 죽지 않는 이상, 이 나라는 왕과 소수의 측근만을 위해 굴러갈 뿐 백성들의 안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게 될 것이라고 여겼죠. 5년 전의 봉기는 먹물에게 있어 좋은 기회였어요. 시작은 단지 왕의 굴욕적인 태도일 뿐이었지만 백성들의 분노를 자신이 슬기롭게 이끈다면왕을 없애고 백성들의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먹물의 명예를 위해 밝혀두자면, 먹물에게 자신이 왕이 되겠다는 야심은 없었어요. 다만 먹물은 자신이 백성들에게 깨달음을 줘야한다고 여겼을 뿐이지요.

 

하지만 상황은 먹물의 생각과는 다르게 돌아갔어요. 백성들은 그 때의 봉기가 무색하도록 빠르게 흩어졌어요. 백성들은 이 정도 했으면 왕도 정신 차렸을 거라고 믿었죠. 먹물이 혼자 잘난 척한다, 아는 척한다고 비웃고 등을 돌렸어요. 먹물은 생각했어요. 백성들은 자신처럼 똑똑해질 마음이 없었던 거라고. 이 나라가 어떻게 되건, 백성들 개개인은 자기 먹고 사는 문제 외엔 알려고 하지 않는다고. 그로부터 5년이 지났어요. 실의에 빠진 먹물에게... ...왕이 직접 찾아왔어요.

 

왕은 다시 한 번 모습을 바꾼 참이었어요. 지금까지 자신이 이 나라를 다스리면서, 가장 효과가 있었던 모습을 스스로 다시 한 번 벤치마킹한 형태로. 먹물은 반사적으로 거부감을 드러냈지만, 놀랍게도 왕은 병사들을 불러 먹물을 잡아가는 대신 먹물을 자리에 앉혀 놓고 조곤조곤 설득했어요. 지금 자신이 취하고 있는 모습은 그 당시 분명 통치에 용이했다고. 그리고 자신도 그 때 그랬던 것처럼 힘으로 억누르기만 할 생각은 없다고. 먹물은 그것이 통치에 용이할 뿐 백성들과 이 나라의 안위에 도움이 되냐고 물었지만 왕은 조용히 대답했어요. 이 모습을 그리워하는 백성들이 많으며, 자신도 자신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백성들을 위하고 있다고. 그리고 자신에게 적대했던 먹물을 잡아가는 대신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게 자신이 변한 증거라고. 그리고 왕은 제안했어요. 비록 방법은 달랐지만 이 나라와 백성들을 위하는 마음이 같다면 자신과 함께 일해보자고.

 

왕이 떠나고 난 뒤 먹물은 생각했어요. 백성들이 스스로 발전하고 향상되려고 하지 않는 이상, 자신이 그렇게 만들어야겠다고. 먹물은 자신과 함께 공부했던 선배들, 동기들, 후배들을 떠올렸어요. 그 사람들은 이제 대부분은 공부를 포기하고 이 나라의 기틀을 쌓아 올리는 평범한 백성들 중 하나가 되어서는 생업에 종사하고 있고, 일부는 완전히 변절해 왕궁에 들어가서는 어떻게든 왕의 측근에 들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어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던 먹물은 왕에게 조건을 내걸었어요. 자신이 왕의 광대가 되겠다, 그리고 왕을 뭐라고 비판하더라도 자신에게 손을 대지 말라고요. 다른 강대국들도 다들 왕성에 하나 쯤은 그런 광대를 두고 있고, 광대가 왕을 비웃는다 해도 광대를 협박하거나 억누르지 않음으로써 국가의 근본이 튼튼함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삼는다고요. 꾀바른 교섭이었죠. 왕은 그를 받아들였답니다!

 

그래서 먹물은 왕궁으로 들어갔어요. 좋은 옷과, 금은보화들 가운데 둘러싸여서, 그걸 자신에게 내려주는 왕과 신하들을 마음껏 비웃고 놀려댔지요. 왕은 자신의 약속을 지켰고, 먹물은 확신했어요. 왕도 이제는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백성들이 스스로 변화할 마음이 없다면 왕이 자비를 베푸는 수밖에 없으며, 자신의 안전이 곧 왕이 베푸는 자비의 증거라고. 먹물은 인자한 미소와 함께 자신을 내려다보는 왕을 조롱하고, 그 옆에서 분노로 수염을 떨면서도 잠자코 자신을 노려보기만 하는 신하들의 무능에 분노하고, 가끔 옛 선후배들이나 동기들과 만나면 최고급 식당에 데려가 저녁을 대접하면서 변절하지 않고서도 부와 성공을 거머쥔 자신의 성취를 은근히 자랑했답니다.

 

먹물은 그렇게 행복한 마음으로 왕궁 속에, 황금 새장 속에 스스로를 가둬버렸어요. 그는 더 이상 걱정하지도, 고민하지도 않았어요. 대신 그는 자신의 재치와 언변에 감탄하고, 그를 자랑하고, 사랑하게 되었답니다. 왕궁 밖에서 백성들의 분노가 커져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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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생각해 보니 내가 그 때 살짝 감동했던 거 자체를 쪽 팔려할 필요는 없을 듯. 김지하가 지금은 저 모양이지만 그가 젊은 시절 썼던 시들의 싯귀를 되새기며 말 그대로 '타는 목마름으로' 투쟁했던 사람들의 헌신이 무가치해지는 건 아니니까. 그래도 짜증나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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