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이 바닥에서 '정부나 기업의 비밀 초능력 연구시설에서 탈출한 실험체가 자신을 이용하려는 자들과 자신이 지키고 싶어하는 일상 사이에서 분투한다'는 설정은 진부한 수준을 넘어서 현재 시점에서는 오히려 일종의 양식미로 느껴질 정도다. 말하자면 요즘 판타지물에서 '오직 세계 정복과 인류 멸망을 목적으로 하는 정통파 마왕'이 오히려 신선하게 보일 정도랑 비슷한 수준인 거.
하지만 이 시리즈의 장점은 그 진부한 설정을 현대 한국 배경으로 옮겨놔서 맛이 꽤나 독특하다는 점이다. 일단 배경 설정 설명을 작중 인물들이 별로 많이 하지 않는 편인데, 워낙 설정이 전형적이다 보니 이런 장르에 익숙하다면 충분히 알 만하고 일반인 관객들도 대강 맥락 상 때려 맞출 만 하다. 장르 영화에서는 인물 입으로 설정 설명을 많이 할수록 영화가 구려지기 쉽다.
김다미부터 해서 최우석, 박희순, 조민수 등 배우들도 다들 한 가닥하는 뛰어난 배우들이고. 무엇보다도 초능력(주로 염동력)과 강한 신체능력으로 싸우는 초인들의 격투 장면이 무척 훌륭하다.
클라이막스 부분에 대부분의 전투 씬이 몰려 있긴 한데, 싸우고 부수는 액션 장면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얼추 만족할 수 있을 정도다. 마블 히어로 영화와 비교해도 전혀 떨어지지 않는 수준이다.
단점으로는 1과 2 모두 이야기 구조가 대칭적인데 비해(조직의 연구 시설에서 탈출한 초능력자 소녀와 일반인 보호자의 만남, 그리고 소녀를 이용하거나 죽이려는 조직의 갈등) 두 주인공의 갈등요소나 대비점이 미약해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는 느낌이 든다.
만화 캐릭터가 한다면 자연스레 넘어갈 수 있는데 실사 영화의 배우가 연기하는 인물들이 하니까 오그라드는 중2스러운 대사도 문제점.
비주얼이나 디테일은 매력적이고 개성 있는 악역들을 여럿 풀어놓고, 정작 스토리 상에서는 '혐성질이나 좀 하다가, 주인공이 본격적으로 힘을 쓰자 쳐발리는 역할'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문제. 그래도 이건 2에서 3자 대결구도가 잡히며 좀 나아졌다.
가장 큰 문제는 2에서도 1에서 제시한 떡밥들을 전혀 해소하지 않고, 더 많은 떡밥들만 풀린다는 거. 감독으로서는 잔뜩 모아뒀다가 한꺼번에 터뜨릴 심산인 모양이지만, 이야기의 탄력이 유지되려면 앞서 던진 떡밥을 금방 회수하는 동시에 새 떡밥을 던지는 걸 반복해야 한다. 예술영화라면 그건 단점이 아니지만(오히려 예술영화에서는 그러한 기존 플롯의 해체 자체가 미학적 시도 내지 새로운 실험의 일환이 된다), 이건 액션 위주의 상업 장르 영화다. 이런 장르에서 플롯이 늘어진다는 건 큰 문제다.
외전 드라마도 있다던데 그건 아직 안 봤고... 현재로서는 '새로운 건 없지만 대체로 재미있고 볼 만한, 한국산 초능력 액션 영화. 하지만 캐릭터 활용과 이야기 구성에서 문제가 있다' 정도로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1 2편만 가지고서는 전체 세계관 내에서 유의미하게 이야기가 진전되고 있다는 느낌이 딱히 없어서... 드라마가 이 문제를 해결했다면 더 볼 예정. 위에선 진부하다고 까긴 했지만, 내가 원래 이런 거 좋아하는 것도 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