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잡았다가 깨져서... 도서관 가서 글 좀 쓰다가 돌아오던 중 저녁 먹으면서 혼자 술 한잔 하고 들어왔다.
그런 옛날 이야기가 있다. 숲 속에서, 어떤 은자가 홀로 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 이야기를 하는 것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서툴렀던 은자는 나이가 들수록 너무나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외로워졌고, 고독에 겨워 결국 미쳐 버렸다. 미친 은자는 길을 잃고 숲 속을 헤매던 아이를 만났고, 며칠 동안 자신의 오두막에서 아이를 재워주며 함께 생활하다 아이가 집과 가족을 그리워하자, 아이가 자신을 떠나는 걸 막기 위해 아이를 죽여 버렸고 죽은 아이의 시신을 끌어 안고서 이제는 헤어지지 않는다고 중얼거리며 눈물 흘렸다고 한다.
난, 그럴 수 없다.
이제는 이해한다. 나는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를 나누는데 너무나도 서툴다는 걸. 한 때는 그런 자신을 끔찍한 괴물 같다고 여겼고, 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고 여겼다. 난 노력했고... 몇 번이고, 매번 방식을 바꿔가면서 필사적으로 노력했고, 결국 그 모든 것들은 아무 의미도 없게 되어 버렸다. 지금은... 그 때, '보다 더 나은 자신'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던 그 때의 나 자신이 지금의 내 앞에 있다면 '네가 가장 간절히 원하는 것은 결코 이뤄지지 않는다'고 비웃거나, 혹은 아무 말 없이 술 한 잔을 살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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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일요일, 어떤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내가 가져간 소설을 읽으면서, 나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격렬히 분노했다.
...그 사람은, 왜 화를 냈던 걸까.
그 사람은... 일단은 그 소설에서 나타나는, 화자의 마초적이고 비속어를 지나치게 남발하는 화법이 불쾌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서 느낀 분노의 감정은, 단순히 소설 상에서 나타난 화법에 대한 불쾌함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나 자신이 봐도, 그 소설이 썩 편안하게 읽힐 만한 작품은 아니다. 그 작품에서는 쩔어주는 마초의 혐오스러운 화법이 있고, 광신자의 끔찍한 대의가 있고, 한 없이 냉혹하고 무감각한 '괴물'의 열망이 있다. 어느 정도는 의도된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 정도로 격렬한 분노를 유발할 만한 요소가 아닌 것 같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 소설을 쓴 나 자신이 보기에도 그 소설은 그 정도로 강한 감정을 이끌어 낼 수 있을 정도의 작품은 되지 못한다. 그 사람이 분노한 진짜 원인은 아무래도 역시 다른 데 있을 듯 한데...
난, 그 이유를 모르겠다.
어쨌든 내 소설 때문에 꽤나 불쾌하셨던 듯 하니, 그 점은 사과드려야 할 것 같은데... 나는 그 사람이 분노한 진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내가 그 사람에게 느끼는 미안한 감정은 진실이지만, 그 사람이 그걸 이해해야 할 이유는 없고, 내가 느끼는 그 '미안함'이 과연 그 사람이 원하는 성격의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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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써 사람을 대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재능이다. 하지만, 난 아무래도 역시 그런 재능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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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주일 내내 그 생각을 했다. 그 때마다 그 사람의 환하게 웃는 얼굴이 떠오르고, 동시에 견디기 힘들 만큼 가슴이 아려온다. ...이런 감각은 알고 있다. 이것은, 연애 감정의 초기 증상이다.
...그 사람은 나에 대해 별 감정이 없으리라 여겼지만.... 저번에 그 사람이 화낸 것 때문에, 아마도 나에 대한 감정은 꽤나 나빠졌을 것이다.
이제는 남이 나에 대해 어떻게 여기건, 아무래도 상관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직도 내 안 깊숙한 곳에서는.... 여전히,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고 싶다는 욕구가 남아 있는 모양이다. 그토록 실패를 거듭하고, 친구라고 여겼던 이를 잃어 버리고, 슬퍼하고, 다시 시도하고, 똑같은 결과를 몇 번이나 반복하면서도.
난, 왜 이러할까.
내가 꿈꾸는 '강함'을 위해서는 그것마저도 넘어서야 할 텐데... 나는 왜 이러할까.
나는, '강자'가 될 수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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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사람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은.... 단순히,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을 갖고 있는' 사람에 대한 동경을 넘어선- 일종의 연애 감정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드러내선 안 된다. 나 자신의 감정에 휩쓸린 나머지 결국 스스로를 억누를 수 없게 되고, 상대의 입장과 감정을 배려하지 못하고, 결국 멀어지는 과정을 또 반복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겪어왔던 일들이, 또 다시 반복될 것이다.
나는... 인정한다. 나는 나 자신의 감정에는 민감하지만, 타인의 감정은 잘 읽지 못한다. 그것이 단순한 눈치 없음인지, 반사회적 인격 장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만에 하나, 모든 것이 '잘 되서' 그 사람도 내게 호의가 있고, 연인은 아니더라도 친구는 될 수 있다 해도.... 언젠가는 분명 그 사람은 내 '불가해성'에 염증을 느끼고, 멀어질 것이다. 내게 실망하고, 부담스러워 하고, 거리를 두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 해도, 내가 그 사람에 대해 갖고 있는 '좋은 인상' 혹은 그 사람의 미소에서 본 '빛' 역시 어디까지나 나의 착각에 불과하며, 그 사람도 나름의 번민과 슬픔을 갖고 있을 지도 모른다. 아니, 아마도 그럴 것이다. 고통 없는 영혼은 없다. 내가 그 사람에게 갖고 있는 감정이 연애 감정이라면, 그 고통과 어둠 역시도 포용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나는, 내 문제들과 맞서 싸우기만도 힘겹다.
....정작 중요한 상대방의 마음을 배려하고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일방적으로 기대하고 멋대로 실망하는 것은 한심한 짓이다. 그것만은, 도저히 못하겠다. 패배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에 꺾여서는 안 된다. 그것만이 내게 남은 유일한 '명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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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시간인데다 술까지 마시고 왔더니 아무래도... 감정적이 됐다. 어차피 그 사람은 이 글을 보지 못할테니... 상관 없겠지.
하지만,
저 위에 쓴 그 모든 사실들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라는 지금의 내 감정이 더욱 커져서.... '그 사람 곁에서 함께 하고 싶다'는 감정이 되어 버리면,
그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저번에 가져 갔던 소설 때문에 그 사람은 화가 났을 테고, 나에 대한 감정도 나빠졌을 수도 있는데...... 아니, 그 모든 것을 다 떠나서,
인간인 이상 누구라도 가질 수 있는 고통과 어둠을 이해하고 포용할 준비가 되지 않은 채, 여전히 나 자신의 감정과 욕구만 중요한... 괴물에 가까운 채로 연애감정 같은 걸 가진다는 건.... 단지 그 자체만으로 크나큰 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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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 사람이 행복하기를, 그 미소가 그대로이기를 바란다.
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해도.
이것이, 이기적인 욕구라 해도.
오랜만에.... 눈물이 나온다. 나잇살이나 먹어 놓고........ 한심한 꼴이다. 이 감정이, 어디까지나 '나 자신'의 감정에 의한 것이며 타인의 고통이나 슬픔에 대한 연민 때문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자기 연민만큼 한심하고 나약한 짓거리도 많지 않다.
난 강자여아만 한다. 다른 방법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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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읽어보니 엉망이다. 동어반복 쩌는 것 봐, 앞에서 한 이야기와는 다른 이야기 하는 부분도 많고... ...일기에서까지 그런 거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쯧. 신경써서 볼 사람도 없겠지만 좀 부끄럽다. 어제는 나 자신이 느끼고 있던 것보다 더 많이 취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