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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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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영역이다. 기독당 창당 반대 1인 시위.... 같은 걸 해볼까 생각했는데, 뭐 코렁탕까지야 안 가겠지만 썩 좋은 꼴은 보기 힘들 듯 하다(이미 타이밍이 늦어버렸기도 하고). 뭐, 난 내 '신념과 의지'를 관철하는 과정에서 가능한 합법적인 절차를 따르고자 노력하겠지만, 만약의 경우 경찰 나리들이 내 신념과 의지를 인정해 줄 거라고는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신념과 의지라. 아아, 서울시장 자리를 노리며 언플에 열심이다가 최근 큼직한 병크를 터뜨린 나경원도 자신은 그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겠지.

신념과 의지는 어디까지나 그 자신에게만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아무리 하찮은 수준의 것이라고 해도, 그것은 나 이외엔 그 누구도 이뤄줄 수 없는 거다. 결과 조까!!!!!!  결과는 똥이야 똥! 히히히 신념 발싸!


그 신념과 의지가 개인의 만족에서 머무를 게 아니라... 다른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는 가치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선행되야 할 핵심적인 최소한의 조건이 있다. 그 신념과 의지를 위해, 일신의 이익과 안락을 희생할 수 있냐는 점이 그것이다. 김대중 정권 때 북쪽으로 송환된 비전향 장기수들의 경우가 그렇다. 북쪽의 김씨 왕조는 아무리 좋게 봐줘도 개막장 소리 밖에 안 나온다. 이런 소리 하기가 치떨리도록 싫지만 차라리 이명박이 낫지. 그를 추종하는 것은 도저히 좋게 봐줄 수 없다. 그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과 의지를 지키기 위해 수십 년에 걸친 수감 생활을 견뎌냈다. 신념이 신념이기 위해서는, 그 정도 각오는 있어야 한다. 

이익과 신념 간의 균형을 잡는 것. 이것은 곧, 이(理)와 의(義)의 균형을 잡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이 합리적인 거고, 당장 나 역시도 대개의 경우에는 가능한 양쪽을 합치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 가장 결정적인 그 한 순간에 이익에 기운다면, 그것은 신념이라고 부를 가치가 없다.

물론 이것은 '기본 사양'일 뿐이다. 2차 세계대전의 끝물, 일본 제국 말기에도 만세일계의 천황가를 지키기 위해 이 한 목숨 기꺼이 바치겠다는 병신들은 숱하게 많았다. 프랑스 혁명 말기 테르미도르 반동으로 몰락하기 전까지 무자비한 공포정치를 펼치며 수 만 명을 단두대로 보낸  막시밀리앵 로베스피에르도 개인적으로는 청렴한 인격자였다. 그래도 신념이 신념이기 위해서는, 자신의 이익과 안락을 어느 정도까지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전제다. 그 선이 어느 정도까지냐... 에 대해서는 별도의 장에서 논의해야 할 사안이다.

하지만 지금 이 나라는,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그 정도의 희생조차도 거부하는 이들이 너무도 많다. 그 가운데 뉴라이트가 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98542.html

"신념은 정신에 속한 생각이 아니라. 정신 자체가 속한 생각이다."

-로버트 옥스턴 볼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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