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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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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타로를 볼 줄 아는 친인에게 부탁해 "시간이 얼마나 걸리건 상관 없다, 한국의 진보가 집권해서는 정치 싸움에 물들지 않고 '사람 사는 나라'를 만들 수 있는지 봐달라"고 부탁했었다( 타로 보면서 그런 거 질문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그 분은 웃었다). 돌아온 답을 대강 요약해 보자면(괄호 안은 개인적인 추측)....

"진보 세력 내의 세다툼이 너무 심각하다. 섞여서는 안 될 요소들이 섞여 버렸다(...민노당과 진보신당이 결국 다시 합쳐진 걸 의미하는 듯. 모두 외쳐, 김정일 개객끼!!!!!!). 그래도 한 때는, 이 기사처럼 나름 순수한 이상과 대의를 우선해서 행동한 적도 있었지만(촛불 정국 때가 마지막이었으려나) 지금은 아니다. 대의가 아니라 권력을 위해, 그것도 대권 같은 게 아니라 고작 당권 정도 수준의 권력을 위해 진보입네 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나름 재주 있고 능력 있는 사람들도 많지만(노회찬 씨 같은 사람들이 있지...) 너무 갈갈이 찢겨져 있어서 앞으로 한참 더 혼미를 거듭할 것이다. 지지하던 사람들도 많이 등을 돌렸고 해서 결코 상황은 희망적이지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스스로는 여전히 자신이 고귀하고 위대한 이상을 위해 싸운다는 나르시즘에 빠져 있다. 이런 상황은 앞으로도 한참 동안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진보 정당이 한국에서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며, 그 이상을 계승하는 이들이 언제나 최소 수준은 남을 것이다. 한국의 진보는 길고 가늘게 한참 더 명맥을 이어가게 될 것이다."   


그 점괘를 듣고서, 난 웃음을 터뜨렸다.

애초부터 희망은 갖고 있지 않았다. 내가 '진보'로서의 정치적 스탠스를 견지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통한 무관심과 '그러니까 나도 내가 먹고 사는 문제에만 신경쓰겠다'는 식의 정당화를 거부하고 항상 보다 드높은 가치를 추구한다는 나 자신의 명예 때문이다. 그것이 실제로 이뤄질 수 있으리라고 여겨서가 아니다.

나는 결코 순수하고 고결한 인간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한 순수성과 고결함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대중이 민중으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는 신념을 가지고서 소통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나는, 한 발 떨어져 선 채 전라디언이 어쩌고 홍어가 저쩌고 뇌무현이 이렇고 슨상님이 저렇고 시시덕대기만 하는 이들이 변화하리라고 믿지 않는다. 나는, 그들을 경멸한다.


나는 한없이 범속한 인간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스스로에게 가질 수 있는 긍지가 있다고 한다면, 바로 그 '절망은 내 의지를 꺾지 못한다'는 명예에서 비롯할 것이다. 이게 설령, 알량한 자기만족에 불과한 것이라 해도.

희망이 없어도 괜찮다. 결과가 나빠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끝까지 굴복하지 않을 수 있냐, 그리고 마지막에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냐는 거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희망 버스가 있는 날이다. 헤게모니를 가진 자들의 잔치에 불과하다고 여겨서 나갈 생각이 없었지만, 저 점괘를 듣고서 생각이 바뀌었다. 오늘 낮에 가야만 하는 선약이 있어서 불참하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최소한 카페 마리 같은 곳이라도 들러야겠다.


희망이 없더라도 싸울 수 있다.

이것이 나의 聖戰, 내가 수행하는 Jihad다.


  "피빛의 탄식은
  동방까지 넘치고
  누군가 나직이 외친다.
  꿈은 아직도 수천년을
  인내해야 한다고..."


ps=...반해 있는 그 분과 함께 갈 수 있다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나친 욕심이다, 핫하...

ps2=며칠 전, 지인이 '졸업하고 나면 취직 때문에 고민이 많을텐데 아는 출판사 쪽 몇 군데에 자리를 알아봐 줄 수도 있다'고 제안했다. 그 때는 대답을 얼버무렸지만... 생각해 보니 그렇게 되면, 명절 때 취직한 친척들 앞에서 공연히 위축되지도 않을테고, 어머니 용돈도 드릴 수 있게 되겠지만... 또한 동시에 낙하산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나 때문에 그 자리를 정당하게 잡지 못한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 대한 미안함, 소개해준 사람에게 빚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언제나 위축되어 있고 불안할 게 확실하다. 당당하지 못한 방식으로 취직한 사회인, 30대 대졸 백수. 양쪽 다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최소한 나는 나 자신이 조금이라도 더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살고 싶다. ...스스로 생각해봐도 허세돋는다. 1년이나 갈까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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