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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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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펌질]어디까지를 음악으로 정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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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서툴다는 걸 느낄 때
  25. 2009.07.15
    마음을 치유하는 정유미 짤방6.


Ooh youre a holiday , such a holiday
Ooh youre a holiday , such a holiday

Its something I thinks worthwhile
If the puppet makes you smile
If not then youre throwing stones
Throwing stones, throwing stones

Ooh its a funny game
Dont believe that its all the same
Cant think what Ive just said
Put the soft pillow on my head

Millions of eys can see
Yet why am I so blind
When the someone else is me
Its unkind, its unkind

De de de de de de de de de de de de de
De de de de de de de de de de de de de

Yet millions of eyes can see
Yet why am I so blind
When the someone else is me
Its unkind, its unkind

Ooh youre a holiday , evry day , such a holiday
Now its my turn to say , and I say youre a holiday
Its something I thinks worthwhile
If the puppet makes you smile
If now then youre throwing stones
Throwing stones , throwing stones

De de de de de de de de de de de de de de
And
졸업한 선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과대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니 아니나 다를까 충격과 공포라는 반응을 보이더라. 친하던 선배라서... 잘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즐거웠다.

선배:왜 전화했냐
나:오랜만에 목소리나 들을까 해서
선배:징그러 임마
나:아놔 형 저라고 남자한테 전화하고 싶었겠음?
선배:그럼 왜 전화했는데
나:....음, 그냥 뭐, 딱히 이유는 없고...
선배:징그러 임마

다른 이들에게는 지극히 평범할 저런 대화가 부담없이 오간다는 게.

난... 기쁨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이제는 대부분의 기대를 접었다. 내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며 노력했음에도 그 끝에 이룬 건 단지 '강함'뿐이며, '강함'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선배는 '기쁨'을 알고 있는 사람이며, 나와는 다르다.

그 선배를 알게 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

오늘 밤도 허허로이 간다. 요즘들어 쓸 데 없는 꿈은 왜 이리 자주 꾸는 지 원.
And
이번 학기 과제 중에는 '자신에 대해 쓰는 글'이 유달리 많다. 그리고 난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남들 앞에서 하는 것에 대해 저항감이 강한 편이다(읽는 이들 대부분이 나를 모르기 때문에 블로그에 쓰는 것에 대해서는 그런 저항감이 덜하다). 그게 영 껄끄럽기도 했고, 귀찮기도 해서... 써야 할 것 하나를 미뤄놓고 있다가 뒤늦게 써서 교수님 메일로 보냈는데, 답신이 왔다.

--------------------------------------------------------------------

그 내용을 정서적으로 쓸 수도 있을 텐데

개념적이고 설명적이야.


그렇더라도 XX이의 내면을 보여줘서 고마워.


XX아, 그대의 감정과 정서를 되살리렴.

그대는 아직 젊은데 못할 이유가 없잖아.

사람은 이성의 동물이지만

또한 감성의 동물이야.

그 감성을 충족시키는 게 행복의 관건이란다.


가을처럼 지내길!

-----------------------------------------------------------------
..........
..............
.................

난 스스로가 '강하다'는 것을,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절대로 절망하는 법이 없으리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 사실은 내게 어떤 종류의 기쁨이나 충족감도 주지 못한다.

난 남들과 공감하고 정서적인 교류를 나누는 것에 극단적으로 서툴다. 그렇기에 내가 '기쁨'을 알지 못하는 걸지도 모른다고 여겼고, 또한 그게 내 결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실패했고, 나의 그 노력들이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게 된 지금 나는... '강함' 이외에는 그 무엇도 이루지 못했으며 '강함' 이외의 다른 무엇도 알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교수님은 그 감성을 충족시키는 것이 행복의 관건이라고 하셨지만... 난 다른 방법은 알지 못한다.

내가 그 모든 실패와 상처들에도 불구하고 대의와 이상을 여전히 꿈꾸는 것은-  작년 여름, 광화문에서 그러했듯이 타자들과의 '연대'에 여전히 가치를 두고자 하는 것은, 심각한 모순이 아닐까.

타인에게 공감하는 것에 그토록이나 무디면서, 거기에 무슨 '연대'가 있고 '공의로움'이 있을 수 있을까?

And
사용자 삽입 이미지


친구 일 도와 줄 게 있어서 다른 친구놈이랑 9시에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전화가 와 깨어 보니 9시 20분이라 식겁해서 옷 챙겨 입고는 세수만 대충 하고 나갔다. 토스트 2개를 사 친구놈과 나눠 먹고는 기다리고 있는데 늦을 거 같다고 연락이 왔다. 대충 피시방에 박혀서 게임하며 기다리고 있다가.... 일정이 늦어져 오늘은 안 될 거 같다고 연락이 왔다-_- 다시 올라와 보니 오후 3시, 뭐야 이거.... ....늦게 일어나서는 잉여짓하다가 이 시간 됐다고 치지 뭐orz

헤어진 뒤 학교로 올라와서 세수하다가 갑자기 코피가 흘러나와 움찔했다. 왜 이래 이거;; 피곤해서 그럴 리는 없을 텐데. 요새 지나치게 잘 먹고 잘 자서 뱃살 쌓이는 게 슬슬 의식이 될 지경이구만;;

물론 정신적으로는 이래저래 부담이 걸려 있는 참이긴 한데... 물론 정신과 육체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법이지만 그렇게까지 큰 부담 같지는 않다. 역시 몸 상태가 어디 안 좋은 건가;; ....코도 후빈 적 없는데.

+

....라고 생각했는데 저녁 먹고 7시에 올라와 바로 뻗어서 잠든  뒤 눈 떠 보니 10시 반;;;;;;;; 모르는 새에 조금씩 피로가 쌓였던 모양이다-_- 생활 리듬이 개판이 된 듯. 차라리 9시 쯤에 잠들어 새벽 4시 쯤에 깨는  게 훨씬 바람직한데, 우엑.
And
...라는 심정이다 요즘.

과대 일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다. 작게는 과 행사 참가 여부를 파악하는 것부터, 크게는 졸업 여행 일정을 짜고 그에 맞춰 돈을 걷는 일에 이르기까지 인간 관계의 조율과는 무관한 게 하나도 없다.

만일 회사였다면 내 입장이 훨씬 더 편했을 것이다. 부처의 장으로서 아랫 사람들을 움직이고, 필요한 일이 있으면 지시하고, 불응할 경우 그에 합당한 불이익을 부과하면 된다. 그러나 이곳은 회사가 아니라 학교이며, 모든 학생들에게 '과 행사에 충실히 참여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에 응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이익을 줄 수 있을 권력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결과적으로, 임원 일을 하면서 만사가 원활히 돌아가게끔 하기 위해서는 다른 애들과의 개인적인 친분에 의존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나는 타인과 정서적인 교류를 나누거나 개인적인 친분을 쌓는 것에 극단적으로 서툴다.

애초에 내가 과대를 맡겠다고 나선 직접적인 계기는 '친한 애들이 몇 년 째 계속 임원을 해 오며 고생하는데 옆에서 보고만 있기가 껄끄럽다'는 개인적이고 감정적인 이유였다. 나 자신의 약점에 대해서도 충분하고 남을 만큼 자각하고 있었지만, 당시의 난 '어디까지나 일이니만큼 개인적인 감정과는 별도로 합리성에 기반해 큰 문제 없이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임원이 되고 나서 보니, 실제적인 업무 능력과 정치 능력이 별도로 작용하는 게 아니라 하나로 얽혀 있다는 걸 절실히 알았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가진 가장 큰 약점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도.

만일 이것이 기업이거나 정치 조직이었더라면 그런 식으로 개인적인 친분 여부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조직이 돌아갈 수 있도록 내적인 기준을 세우고 체제를 확립하려는 움직임이 진작부터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찌됐건 그것이 옳은 것이며, 나도 그를 정비하고 발전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대학교 학과이며, 졸업하고 나면 끝인 이상 그러한 체제를 마련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한 학기 동안 남은 행사는 많다. 앞으로도 신경써야 할 일들이 많을 것이고, 그것들이 모두 잘 처리될 리는 만무하다.

난, 이번 학기의 경험이 나 자신을 보다 더 향상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으리라고 여긴다. 하지만 그와는 별도로, 결코 '성공적으로' 과대 업무를 수행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잘 해봤자 보통 수준이겠지. 그렇다 해도 난 감정적으로 움츠러 들거나 좌절하지는 않을 테지만, 바로 그 사실이 약간은 허무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게 있다는 것. 그것이 딱히 위대한 이상 같은 게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것인데도.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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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은 <길너스의 탄생>. 제작 년도 2009년. 화가는 태호로 보티첼리.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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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전에 담배 한 대 피우려고 나갔다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맑은 가을 밤 하늘, 달빛이 비치는 가운데 별들이 왕관처럼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한없이 슬퍼졌다.


나의 이 恨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한 동안, 담배를 좀 독한 걸로 바꿔야겠다.

And

졸업 여행지 알아보느라 패닉 상태. 일단 생각 중인 장소는 있는데.... 2박 3일 동안 지내며 여기저기 구경도 다니고 해야할텐데, 과연 하루나 버틸 수 있을까 쩝. 차편도 복잡한 편이고. 저렴한 비용으로 편하게 쉬다 온다는 컨셉으로 간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만 그래도 졸업 여행인데 애들이 내켜할 가능성이 낮다. 애들이 동의한다고 해도 과연 교수님이 납득하실까(...............)

내가 여행 다니고 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었다면 여기저기 미리 알아두고 애들에게 선택지를 제시했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보니 어렵다, 끙. 안하던 걸 하려다 보니 긴장해 버렸다-_- 다음 주 개강 파티 때 운을 띄워봐야 할 듯. 아직 졸업 여행까지는 2달 가까이 남았으니 그 전까지 어떻게든 되겠지....

내가 어떤 분야에서 어떤 식으로 서투른 지를 새삼 느낀다. 난 자기의존적인 인간이고, 결과가 좋건 나쁘건 내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는데 익숙해져 왔다. 하지만 졸업 여행 계획처럼 모두의 만족을 위해 여럿이서 움직이는 걸 전제로 행동해 본 적은 거의 없었다, 이거저거 물어 보면서 남의 도움을 구하는 것 자체도 어색하고. 좋게 보자면 발전의 여지가 있다는 뜻이긴 한데... 책임을 져야하는 입장에서 내 개인적인 발전 가능성이 무슨 소용이냐능... 그런 거 없다능....;ㅁ;

ps=여행지 물색 때문에 지인 분과 연락하던 중 상식적으로 당연히 '개인당 얼마'일텐데 머릿속이 꼬여 있던 참이라 단체로 그 가격이냐고 물어봐 버렸다orz 이 글 설마 그 분이 보시진 않겠지으어어괜찮아그분은이블로그안오시는거같으니까못보실꺼야

And
1)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내일까지 읽고 반납해야 하는데 손이 안 간다. 전부터 한번 읽어봐야 겠다고는 생각하고 있었는데 과제 때문에 읽는 거다 보니 왠지 읽기가 싫다(...) 과제제출까지는아직기한이넉넉하니걍반납하고나중에다시빌려볼까아냐그때엔다른과제에치여정신이없을거야으어어orz

2)
어째서 이번 학기 과대를 하겠다고 나서는 놈들이 아무도 없었는지 이유를 알았다. 중간 고사 뒤 졸업 여행 일정을 잡아야 하는데 그걸 과대가 해야 한다고 한다, 하자 있는 물건을 샀는데 약관을 안 읽어봐서 반품을 못하는 기분이다(......)

3)
RPG도 안 한지 한참 됐더니 예전만큼 당기지가 않는다. 애정이 식은 것 같지는 않고... 딱히 자극이 없으니 그런 거겠지. 그러고 보니 겁스 파워즈를 아직 안 질렀구나, 그걸 질러서 읽어보면 자극이 되려나.... 그러고 보니 성X형이랑 당X형이 OR 돌린다고 했던 거 같은데?

4)
창작예술상 심사가 있어서 부학회장한테 전에 써 둔 소설을 메일로 보냈다. 당선작은 대전 문예에 실리니 그것만으로도 등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스스로 문장력은 나쁘지 않은 편이고, 소설을 쓰는 것에 있어서의 기본기도 어느 정도 갖춰져 있다고 생각하지만 당선은 기대하기 힘들 듯 하다. 내 소설은, 그 기저에 깔려 있는 마인드 자체가 현대 문단의 기조와는 살짝 어긋나 있다. 참여 문학이 보편적으로 인정받던 80년대라면 모를까, 현대의 관점으로 봤을 때 내 소설은 아무래도 거칠다. 그걸 커버할 수 있을 정도로 문장이나 구성이 탁월한 것도 아니고. 심사위원들의 취향을 파악하고 보편적으로 잘 먹힐 만한 내용으로 어필하는 '등단용 소설'에는 별로 가치를 두고 싶지도 않고 잘 쓸 자신도 없었는데... 씁, 역시 일단 등단한 뒤에 자기가 쓰고 싶은 걸 써야 하려나.

5)
졸업하고 영화를 찍는 친구 녀석에게 얼마 전에 전체 문자가 왔다. 안 좋은 일이 있어서 예상과는 달리 2, 300만원 정도가 모자라게 됐으니 조금씩이라도 빌려줄 수 있냐고 하더라. 그 안 좋은 일이 무엇인지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뭐 뻔하다. 스탭 중 하나가 돈을 들고 튀었다거나 뭐 그런 일이겠지. 문자비의 압박에 떨어야 하는 입장이지만-_ 일단 적은 액수나마 보내 줬다.

인간은, 절망하더라도 꿈이나 이상 앞에서 절망해야 한다. 돈 앞에서가 아니라.

6)
매일... 은 좀 무리고, 하루 걸러 하루 정도 저녁 때마다 죽도를 들고 나가 1시간 정도 휘두르고 들어오곤 한다. 내가 검을 휘두르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이 검이 되어 스스로를 내던진다는 느낌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 검 끝이 향하는 것이 어디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7)
허무함은... 아직 내 안에 남아 있기는 하지만 대충 견딜 만 하다. 내가 '강하다'는 증거겠지.
....만일 내가 강하지 않았더라면, 훨씬 사소한 일로도 슬퍼하고 훨씬 사소한 일로도 희망에 들뜰 줄 아는 인간이었더라면.... 난 지금보다 행복했을까?
 
And

그는 얼마 전, 집에 갔다 오면서 검은 정장을 챙겨왔다. 교수님 한 분의 모친상에 다녀 온 다음 날의 일이었다. 그 일이 있기 얼마 전에, 그는 큰외삼촌의 부고를 접하고는 포항에 다녀 왔으며 며칠 지나지 않아 또 학교 동창 한 명이 조모상을 당했다. 불과 한 달 사이에, 한 두 다리 걸쳐 있는 사람들 셋이 이 세상을 떠났다. 냉정하게 봤을 때, 그것들은 남의 일에 불과하다. 큰외삼촌의 경우도, 그는 단지 몇 차례 만났을 뿐이었다. 그는 전혀 슬퍼하지 않았으나, 또한 그런 스스로에 대해 혐오감을 느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음에도 서둘러 집에 갔다 온 것에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학자들은 종교의 기원에 대해 다양한 견해를 갖고 있다. 그러나 가장 주요한 이유로는 역시 죽음, 피안 저편에 있는 무언가에 대한 공포일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태어나고 살아갈 환경을 스스로 정할 수 없으며, 그래서 삶이 잔인한 것은 당연한 것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단지 살아 있기에 살아 가고자 하며, 그 맹목적인 열망은 이 만인에게 적대적이고 냉혹한 세계 속에서 인간을 한 없이 이기적으로 만든다. 어떤 이들은 종교가 신을 인간의 수준으로 떨어뜨렸다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이기적인 속성마저도 삶을 위해서는 필요악이기도 하다. 그는 신앙을 갖고 있으며, 죽음에 대한 공포를 떨치기 위해 신을 믿은 적은 없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 들어, 타인의 죽음을 대할 때마다 자신이 얼마나 그에 대해 무심한 지를 자각하게 된 그는 결국 자신도 역시 이기적이고 냉담한 속물에 지나지 않는 걸까 생각해 본다.


그는 집에서 가져 온 정장을 꺼내 한번 입어본다. 그는 정장 차림을 좋아하지 않는다. 작은 키 때문에 정장이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는 둘째치고라도, 뭔가 묻거나 때가 타지 않을까 항상 신경써야 하는 데다가 올가미처럼 목을 죄어 오는 넥타이가 너무도 갑갑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갑갑함과 불편함은 어쩌면 사람들이 죽음과 소멸에 대한 이야기를 거북스러워 하는 이유와 맞닿아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죽음은 고양이처럼 살그머니 다가와서 어느 한 순간 호랑이처럼 포효한다. 누구나 무의식적으로는 그것을 알고 있지만 적어도 지금 그 순간 그들은 살아있고, 죽음에 대한 원초적인 공포는 굳이 그것에 대해 입에 올리느니 차라리 일상의 소소한 잡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게 만든다. 그 역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스스로가 그 수많은 죽음들에 대해 단지 남의 일이라는 이유만으로 얼마나 냉담한가를 자각한다. 그는 자신이 무한한 인류애를 지닌 성자는 될 수 없다는 것도, 그러한 무관심 역시 자신의 삶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도 안다.


그는 담배를 피워문 채, 그것이 타들어 가는 것을 멍하니 지켜본다. 생명은 매 순간순간마다 이 담배처럼 타들어 사라져 간다. 필터 근처까지 태울 때도 있고, 반 정도 피우다 영 맛이 없어 버릴 때도 있으며, 몇 모금 빨기도 전에 뭔가 일이 생겨서 아쉬워하면서도 급히 장초를 꺼버릴 때도 있다. 담배는 자신이 언제 어떤 이유로 꺼져 버릴지 알지 못하며, 인간은 자신이 언제 어떻게 죽을지 알지 못한다. 그는 몇 해 전, 충북 음성에서 일주일 간 호스피스 봉사활동을 했던 때를 떠 올린다. 각양각색의 이유로 가족들에게 버려져 죽음의 때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 그들의 침대 곁에서 기도를 올리면서 자신은 스스로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던가. 육체적인 피로 외엔 느끼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냉담함과 무관심, 망각이 삶을 이어나가는 데 어느 정도는 필요한 요소라는 것을 이해한다. 그러나 자신은 정도가 지나친 게 아닐까 자문해 본다. 진정으로 인간답기 위해, 자신은 검은 정장의 거북함을 어느 정도 감내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는 벚꽃이 피어있는 나무 아래 계단을 오른다. 누구에게나 있어 삶은 이 계단과 같은 오르막길이다. 가끔은 평지도 있으나 전체적으로 봐서 살아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비슷한 짐일 것이다. 편안한 내리막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려감이 있으면 올라감이 있고, 올라갈 때의 고통을 항상 염두에 두고 정신을 긴장시키고 있느니 차라리 내리막 같은 건 애초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편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새삼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속물임을 깨닫고 자조한다. 그러나 그러한 속물근성 때문에, 자신은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올 수’ 있었던가. 그는 자신이 결코 성자는 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는 성경을 펴 놓고 기도를 올린다. 신이 인간의 모든 고민을 해결해 주는 무보수 만능하인이라고 믿지 않은 지는 오래되었다. 이 지상에서 인간으로 살아가는 이상 누구나 많은 고통을 겪어야 하며, 어느 정도의 죄를 짓는다. 그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또한 그것이 나태와 무관심, 그리고 거기에서 비롯하는 ‘악’을 합리화하는 핑계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그는 자신의 냉담함, 타인의 슬픔에 대한 무심함이 도를 넘어서지 않게 해 달라고, 언제나 자기반성과 성찰을 게을리 하지 않는 정신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아주 가끔씩은 자신과 아무 상관 없는 타인의 죽음에도 눈물 흘릴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를 올린다. 남의 일에 진정으로 슬퍼해 본 것이 얼마나 오래 전의 일이던가, 그는 문득 자문해 본다.


그는 문득 허기를 느낀다. 그는 항상 정신적으로 강인하고 깨어 있는 인간이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 그렇지 못하며, 설령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육체의 피로와 허기, 고통을 느껴야 함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육체도 정신만큼이나 중요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상기하며 그는 허겁지겁 밥을 먹는다. 공복감이 서서히 물러감을 느끼면서 그는 문득 자신은 아직 살아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살아가야 함을 절실히 깨닫는다. 언제나 자신의 그림자 속에서 빙그레 웃어 보이고 있는 죽음이 그 마른 손을 내밀 때, 자신은 과연 기쁨도 슬픔도, 쾌락도 고통도 아는- 거기에 더해 항상 날카로움을 잃지 않는 진정한 ‘인간’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그는 알고 있다. 자신은 지구 상에서 살아가는 수십 억의 사람 중 하나에 불과하며, 지극히 작고 미미한- 결코 특별하지 않은 존재라는 것을. 자신이 결국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있든 없든 그것은 언젠가 찾아올 죽음 앞에서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누가 영원히 살기를 원하는가? 그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학교를 가고, 수업을 듣고, 밀린 레포트에 허덕이고, 그런 와중에도 종종 시간을 내서 영화를 보러 가거나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술을 마실 것이다. 누구나 가끔은 죽음을 생각하고 잊어 버리길 반복하며, 서로 싸우고는 화해하거나 헤어지기를 반복하며 각자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죽음이 그 냉랭함으로 스스로를 입증하듯, 삶도 그 가열참으로 스스로를 입증할 것이다. 선한 자에게도 악한 자에게도, 행복한 자에게도 불행한 자에게도 똑같이 밝고 푸른 하늘 아래서.

----------------------------------------------------------
재작년에 썼던 글. 오늘 저 글에서 언급한 교수님이 또 다시 상을 당하셔서(...) 장례식장에 다녀 왔다. 2년 전과 비교해 봐서 죽음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나 궁금해져 옛날 글을 뒤져서 다시 읽어 보니 별로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And

이번 학기 강의는 '자화상'이라거나, '자신이 가장 기뻤던 순간' 등 '자신에 대한 글을 쓰는' 수업이 유달리 많다. 발표 때문에 슬펐던 순간에 대해 쓰고 있었는데....

....어렵다.

살아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결코 가볍지 않은 짐이다. 그러나 누구나 자신의 고통이 가장 견디기 힘든 법이고, 그건 나도 예외가 아니다. 인정한다. 나는 뼛속까지 자기본위적인 인간이라는 걸.

그를 인정하기에.... 나는 내가 살아오며 어떤 일들을 겪어야만 했는지를 남들 앞에서 이야기하기가 힘들다. 비극 따위는 이미 이 세상에 차고 넘치며,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비슷하다. 그것이 나라고 해서 예외가 되지는 않는다. 내가 받아야만 했던 고통은 내게 있어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이며 지금의 나를 이룬 근원이지만, 그것은 결코 특별한 게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타인의 고통을 연민하면서도 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삶에 있어서, 고통 받는 것은 너무나도 흔하고 평범한 것이기에. 그리고, 나는 스스로의 내면에 집중된 인간이기에. 나 자신이 타인의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타인이 나의 고통을 이해해 주기를 바랄 수 없다. 그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물론 다만 자신의 상처 자국을 드러내는 것과 어쩌다 그런 상처가 생겼으며 자신이 그 때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알아달라고 요구하는 건 다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 때의 고통을 되새기며 신음하거나, 대상도 없이 분노하거나, 자기연민에 빠져 탄식하는 일 없이 그걸 그 자체로 평온히 직시할 수 없다.

난 '자신의 이야기'를 남에게 할 때마다 칭얼거리는 어린애가 된 듯한 느낌을 떨치기 힘들었다.  이제 와서 어떻게 해 보기에는 난 이미 너무 나이가 들어 버렸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블로그에 글을 쓸 때면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좀 더 스스로를 객관화시켜서 이성적으로 돌아 볼 수 있는 느낌도 들고. 남이 아니라, 스스로에 의해 통제 받는다는 느낌은 싫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이런 글을 비공개로 쓰지 않느냐고 자문해 볼 때는 가슴 한 구석이 막혀 온다. 역시... 짐작하고 있는 이유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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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근본적으로 개인주의자다. 내가 조직과 질서를 중시하는 건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필요 때문이지, 그러한 체제 내에 속해 있는 게 익숙하다거나 그 자체에 가치가 있다고 여겨서가 아니다. 과 행사 같은 게 있더라도 학생으로서 임원들이 시키는 일이나 적당히 할 뿐 내가 나서서 할 일은 아니라고 여겼다-내가 통솔력이나 인간적인 소통 능력이 워낙 부족해서이기도 했고, 고학번인데 귀찮게 그런 걸 굳이 해야 하냐 싶은 생각도 좀 있었다-. 그러나 친한 애들이 몇년 째 계속 임원 일을 맡으며 고생하는 걸 옆에서 보고만 있기가 좀 껄끄럽기도 했고, 개인적으로 좀 바쁘게 움직여야 할 필요성도 있어서... 이번에 과대를 하겠다고 나섰다.

동기로서 내 성격을 익히 아는 학회장새퀴와 조교놈은 엄청 의외라는 시선으로 날 바라봤지만 개의치 않았다. 후배 자식 하나도 '선배님이 전면에 나서는 성격이라고는 생각 안했는데 과대라길래 놀랬어요' 같은 드립을 치더라-_-

굳이 과대 일이 아니라 해도, 내게는 무언가 '다른 사람들과 섞여 바삐 움직이는 일'을 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이 경험이 과연 나를 향상시킬 수 있을지. 학기가 끝날 무렵에는, 알 수 있게 될까.

하지만 문자비가 얼마나 깨질 지는 이번 월말부터 알 수 있을 거 같다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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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놈들 3명이랑, 친한 후배 애들 3명과 술 마시고 들어왔다. 몇 달 만에 보니 반가웠다. 나는 이번 학기 3학년 과대를 맡기로 잠정적으로 결정됐고, 그로 인한 암울함(...)을 떨치기 위해 술잔을 앞에 놓고 앉아 노닥거렸다. 술자리가 2시간 이상 이어지자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한 화제가 시 이야기, 정치 이야기, 역사 이야기, 그림 이야기로 번지면서 점차 안드로메다로 갔다(...)

나는 기쁨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자리는 '즐겁다.' 남들에게는 별 것 아닐, 마음 맞는 친구들과 둘러 앉아 툭탁대는 지극히 평범한 순간들이 즐겁다.

어쩌면... 기쁨을 모른 채 살아 가더라도, 모르면 모르는 대로 그 역시 나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잠깐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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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어느 대학 면접에서 이런 질문이 출제되었다고 한다. <이 작곡가의 작품이 음악으로 분류될 수 있는 근거>를 질문하며, 한 현대음악을 들려주었다. 물론 통상의 관점에서 음악으로 들릴 만한 것이 아닌 것에 가까운 소리였다.
나는 그 음악을 들어본 적은 없으나, 그와 비슷한 건 요즘 많이 들었다. 여기서 슈톡하우젠의 작품에 관한 언급은 일단 제하겠는데, 이미 그의 작품은 의도야 어찌됐건 음악이라고 인식할 만한 요소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나는 많이 들어봤으되 정작 이름을 기억하는 작곡가는 많지 않으므로, 굳이 내가 들 수 있는 예를 든다면 스티브 라이히의 테이프 루프 정도가 되지 않을까. (테이프 루프의 시초가 된 피에르 쉐퍼의 무지끄 콩끄리뜨는 역시 제하기로 한다.) 스티브 라이히는 소음이나 인간의 목소리 중 한 부분을 발췌하여 여러 테이프로 복사한 다음 각각 루프를 만들어 각기 일정한 시차를 두고 재생시키는 방식으로 루프를 계속 반복시키며 위상의 변이에 따른 소리의 변화를 통해 음악적인 요소를 얻는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스티브 라이히의 “Come out”으로, 폭동 중 흑인이 경찰에게 상처를 보이기 위해 상처에 일부러 피를 내며 외친 “Come out to show them”이라는 말이 우연히 녹음된 테이프에서 그 말만 잘라 네 개의 루프를 만들어 위상변이를 부여해 만든 테이프 루프 기법의 작품이다. 테이프 루프를 통해 만들어진 작품은 각자 처음에는 하나의 루프 반복을 계속하는 듯 들리다 어느덧 재생 시간에서 조금씩 차이가 나기 시작해 점점 Sustain처럼 바뀌며, 이는 반복되는 복합적인 시간차를 통해 점차 각자 여러 성부로 분할해간다. 이는 기존에 존재했던 음악적인 기법이 아닌, 기존의 음악 체계에서 완전히 벗어난 기법이며 루프도 음악이 아닌 단순한 소리를 차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를 음악이라 정의할 수 있는 것은 단순한 소리에 재생 시간에 차등을 두는 작업을 통해 얻어낸 결과물에 “음악적인 효과”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스티브 라이히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의미 있는 말을 차용해 루프를 만들어, “음악”에 저항 정신까지 담아내었다. 이로 인해 말로 이루어진 단순한 소리는 스티브 라이히의 작업을 통해 음악이 될 수 있었다.


내가 저번 학기에 작업했던 것 중 “알고리즘 음악”이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알고리즘은 음악이 수학의 일부로 받아들여졌던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존재해 왔고, 푸가, 캐논에 이르는 고전 음악까지도 아우르는 개념이지만 존 케이지를 비롯한 야니스 크세나키스 등의 현대음악가 내지는 전자음악가들은 알고리즘을 음악적인 차원보다는 보다 철저히 수학적인 개념의, 혹은 우연에 의존하는 차원의 방법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전혀 음악적이지 않은 소재를 이용해 음악적인 요소를 부과하고, 이를 통한 하나의 음악으로 만들어 내는 작업의 일환 중 하나가 알고리즘 기법이었고, 요즘은 상당히 보편화되어 (음악공학용으로 분류되는 프로그램인)MaxMSP와 같은, 음악 작곡을 위한 알고리즘 기반의 프로그램까지 나와 있다. 나도 피보나치 시퀀스에서 나오는 수를 [12X허용된 옥타브(C2~C8)]로 나누어 얻은 나머지에 그에 상응하는 음을 대입하여 만드는 방식의 알고리즘 음악을 계획했던 바 있는데, 이 역시 단순한 수열에 음을 대입했을 뿐이지 기존에 존재해 왔던 음악적인 방식을 기반으로 한 작업이 아님은 자명하다. 그럼에도 실제로 내가 그 곡을 만든다면 선율적인 진행을 떠나 일단 음악이라는 칭호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근대까지의 음악은 사람의 수요 및 필요, 기호에 따라 맞추어진 가장 의존적이고 원시적인 개념의 예술이었으나 바그너, 드뷔시, 에릭 사티, 스트라빈스키 등의 근대 음악가들의 시도를 통해 극복되어갔으며, 쇤베르크의 12음 기법을 통해 음악은 비로소 <인간을 위한 음악>에서 <음악을 위한 음악>으로, 철학적인 진보를 이루었다.


고전 음악을 위한 <음악의 정의>는 음정과 리듬, 템포, 화성이라는 요소를 통해 가능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보다 진보된, 이 시대를 위한 <음악의 정의>는 이와는 따로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음악에 관한 생각이 보다 다원화된 현대의 음악은 기존에 비해 보다 폭넓은 시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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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좆선일보와 똥아는 뺐다. 원 출처는 듀나 게시판의 '닥터 슬럼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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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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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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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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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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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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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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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뉴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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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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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대충 20대 중반에서 후반을 넘긴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10년 전 오늘, 1999년 8월 18일, 노스트라다무스의 지구 멸망 떡밥을. 당시 사춘기였던 나는 그 나이대 특유의 "쉬밤쾅이딴세상망해버려"하는 심리 때문에 믿고싶어 했었다 그거(...)


결국 아무 일 없이 세기말은 지나갔고(당시 세계적으로 분위기가 여러 모로 흉흉하긴 했지만, 당시 한국도 98년의 IMF크리로 국가부도 이야기까지 나오던 참이었고)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만은,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든다. 어쩌면 '멸망'은 물리적인 형태로 닥쳐 오는 게 아니라, 기존에 믿어져 왔던 모든 '가치'들이 부정되고 혼돈 속에서 전혀 다른 종류의 가능성들(좋건 나쁘건)이 태어나는, 일종의 '시대적 패러다임의 초기화'일 지도 모른다고.


이 '종말'이란 관념을... '전쟁이나 천재지변 같은 물리적인 대재앙'이 아니라, 인류 집단의 심리적, 정신적 대격변기라고 가정한다면 노스트라다무스의 떡밥은 어쩌면 제법 그럴싸하게 들어 맞은 것 같기도 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그때까지 세계를 주도해 왔던 '이성과 합리'의 패러다임이 붕괴하고 포스트 모더니즘이 일어났던 것처럼. 지금 이 시기는 그 시절의 '이성과 합리'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가 태동하는 시기일지도 모른다.


한국으로 시야를 좁혀 본다. 일제 치하 조선인들의 정신 세계를 주도했던 가치는 '근대화'였다. 충실히 일제에 부역했던 이들도, 조국 독립의 대의에 헌신했던 이들도 '조선이 이전의 폐쇄적이고 고루한 방식을 답습해선 안된다'는 것 하나에 있어서만은 뜻이 일치했다(그딴 거 없고 그저 돈과 권력 때문에 친일했던 작자들도 있지만 그런 막장들은 일단 논외). 해방이 이뤄지고, 강대국들의 입김에 따라 6.25가 발발한 이후 한국인들의 정신 세계를 주도한 가치는 '산업화'와 '반공'이었다. 그리고 조금만 거슬리면 총구 들이대며 '국민님드라자꾸이럼빨갱이들이쳐들어오거등여?시키는대로만하세염' 하던 군부 독재 시절, '산업화와 반공'의 가치에 도전하던 또 다른 가치가 '자유와 민주화'였다. 그리고 독재 정권이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종식되고 형식적 민주주의나마 어느 정도 정착된 김영삼 정권 이후 한국인들의 정신 세계를 주도하게 된 핵심적 가치가 '경제'였다. 정확히는 '개인의 이익'.


그리고 지금, 경제를 살려줄 거라는 막연하고 근거 없는 기대 하나에만 기대어(그것 뿐인 건 아니지만 다른 이야기니까 일단 젖혀놓고) 수많은 도덕적 의혹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된 이의 행보를 본다. 과연 그가 진정한 의미에서 '경제 대통령'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는 일제 시대 이래 계속 가면을 바꿔가며 한국의 주도권을 한번도 놓지 않은 앙시렝 레짐의 총화나 다름 없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든다.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이름으로 상징되는 한국의 가장 부정한 면모- 한국에서 가장 절대적인 힘으로 군림해 온 패러다임에 대해, 새로운 '가치'를 안티 테제로 삼아서 가장 치열히 항거했던 두 명의 전직 대통령들이 짧은 간격으로 세상을 뜬 2009년 여름의 한국에서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뤄져 가고 있다고. '개인의 이익'이라는 지금까지의 가치에서 벗어나, '또 다른 가치'에 대한 각성이 시작되고 있다고.


바로 지금이 '종말의 시기'이며, '두 개의 달이 떠오르는 밤'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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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절과는 다르다! 건국절과는!

1년 전 민중의 소리에 실렸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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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논란은 헌법소원에 이르렀다. 독립운동가 후손들로 구성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 사업회'를 비롯한 55개 단체가 7일 헌법재판소에 "광복절을 '건국기념일'로 바꾸고 대한민국건국 60년 기념사업위원회가 추진하는 건국행사는 헌법 위반"이라며 헌법소원을 낸 것이다.

이들은 헌법소원과 함께 대한민국건국 60년 기념사업위원회가 추진 중인 건국 60주년 행사 및 관련 사업을 위헌 여부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중지해달라는 내용의 가처분청구서도 함께 제출했다.

'건국절'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 건국절 고집하는 '뉴라이트' = 건국절을 만들자는 제안은 '뉴라이트' 인사들로부터 비롯됐다. 뉴라이트 인사들은 1945년 8월15일의 광복보다는 1948년 8월15일의 건국을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 역시 이에 암묵적으로 동조하면서 건국60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준비했다. 한나라당도 부화뇌동했다. 정갑윤 한나라당 의원을 비롯한 13명의 의원들이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어야 한다는 법안을 제출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건국절 논란을 불러일으킨 뉴라이트 인사들은 도대체 왜 건국절을 고집할까? 그들이 최근 펴낸 <건국 60년의 재인식>이라는 책을 보면 그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에는 안병직 뉴라이트재단 이사장을 비롯해 이영훈 서울대 교수,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 전상인 서울대 교수,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 노재봉 성신여대 객원교수 등 12명이 지난 3월부터 6월까지 성신여대에서 진행한 특강 내용을 담고 있다.

이들은 전반적으로 건국의 유일무이한 주역으로 이승만을 내세우고 있다. 유영익 연세대 석좌교수는 "이승만은 대한민국 건국에 절대적으로 공헌한 건국 대통령"이라며 "이승만이 대한민국을 건국한 것은 하느님과 밤새도록 씨름한 끝에 드디어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낸 야곱의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위업"이라고 말했다.

노재봉 성신여대 객원교수는 "그는 국가가 어떤 상황에 놓였더라도 사상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았다"며 "그는 고독한 국가 건설자였다"고 이승만을 높이 평가했다.

이들이 이승만을 치켜세우는 밑바탕에는 '반공주의'와 '한미동맹은 절대선'이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는 "이승만 대통령은 좌우합작이라든지 남북협상 방식에 따른 통일을 거부하고 미국과의 연대를 선택함으로써 양극적 냉전 질서에 능동적으로 대처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건국 이후 대한민국의 정치적, 경제적 발전은 한-미 동맹의 틀에서 이뤄졌다는 점을 인식하고 한-미 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지정학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처한 대한민국은 미국과 같은 좋은 친구를 항상 가까이 두는 것이 생존과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 "건국절 주장은 친일파의 음모" = 건국절 주장이 '친일파'들의 음모라는 주장도 널리 설득력 있게 제시되고 있다.

8·15를 건국절로 기념해야 한다는 주장은 우리나라가 1948년 8월15일을 기해 영토와 주권을 갖춘 제대로 된 국가를 새로 세웠다는 인식에 기초한다. 문제는 이 경우 1948년 8월14일 이전의 역사는 우리나라의 것이 아니게 된다는 점이다.

강창일 민주당 의원은 "일본은 1905년에 독도를 자기 영토로 편입했다고 주장하는데 건국절이 인정된다면 (대한민국은) 1948년에 탄생한 신생독립국으로 전락해 그 전에는 나라가 없었다는 의미가 된다"며 "일본이 독도를 자기 영토화할 수 있는 합법적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강 의원은 "건국절 제정 움직임은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는 행위이며 일제침략과 광복과정에서 외세에 의해 임의적으로 분단되었던 것을 수용하고 3.8선 이남지역만을 대상으로 설립된 정부만을 인정하게 되는 것으로 헌법전문, 영토조항 및 통일지향 등 헌법 정신을 유린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강 의원은 "보수는 원래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있어야 하는데 지금 뉴라이트는 개념 정리가 안 돼 있다"며 "이명박 정부가 과거사에 대한 철학이 없어서 무대포, 막무가내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해구 교수(성공회대 정치학과)는 "뉴라이트 식으로 1948년 8월15일을 ‘건국’으로 본다면 그것은 그 이전의 역사와도 단절되는 것이며, 지역적으로 북한과도 단절되는 것"이라며 "굳이 1948년 8월15일의 ‘건국’이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분단 된 상황에서 남한만의 근대국가 수립 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보면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굳이 ‘건국절’이라 부를 이유는 없으며, 더더욱 그것이 광복절을 대체할 이유는 없다"며 "그런데도 편협한 역사 해석에 바탕하여 특정한 정치적 의도로 ‘건국절’ 논란을 야기 시키고 있는 일부의 행태는 참으로 유감스럽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한홍구 교수(성공회대 교양학부)는 아예 뉴라이트 인사들이 '광복' 보다 '건국'을 앞세우려는 의도에 대해 "우리 민족 대다수에게 건국과 광복은 대립되는 개념일 수가 없지만, 몇몇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생물학적 또는 정치적 후예들에게는 해방이나 광복의 의미가 전혀 다르게 다가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며 "친일파"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지적했다.

'광복'하면 순국선열들을 떠올리게 되고, 그 반대편에는 당연히 친일파가 어른거리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한 교수는 "친일의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군사정권의 실력자들은 자신들의 친일 경력을 감추려고 했을지언정 감히 그것을 미화할 엄두를 내지는 않았다"면서 "그런데 지금 저들은 친일을 대놓고 미화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건국 60주년' 미련 못버린 정부 = 건국절을 추진하는 뉴라이트나 건국60주년을 기념하는 정부가 그토록 믿고 따르는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를 살펴봐도 건국절은 희한한 발상이다.

미국은 1783년 9월 3일 파리조약(Treaty of Paris)에 의해 영국으로부터의 공식적으로 독립을 쟁취했지만 독립기념일(Independence Day)은 9월 3일이 아닌 7월 4일이다.

송민순 민주당 의원은 이에 대해 "독립을 완수한 날이 아니라 자신들의 건국의지가 세상에 천명되었던 1776년 독립선언서(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발표일을 자국의 기원(紀元)으로 삼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은 아예 1966년에 2월11일을 '건국기념일'로 제정했는데 "이는 자신들이 주장하고 있는 기원전 660년 2월 11일 최초의 건국일을 기념일로 삼으면서 자국 역사의 유구함을 은연중에 내세우고 있는 것"이라고 송 의원은 설명했다.

송 의원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많은 신생국가들이 당시를 기준으로 건국일을 기념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이들 나라들은 대부분 국가형태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해당 지역이 제국주의 열강에 의해 점령당했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신생국으로 독립한 나라들"이라며 "대한민국은 식민지 이전부터 유구한 기간 동안 세 가지 요소를 온전히 보전하고 있었던 역사적 실체였다"고 반박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건국 60주년'에 미련을 못 버리고 있다.

정부는 애초 8.15행사 이름을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및 광복 63주년 경축식'으로 정했다가 광복회 등에서 행사 보이콧을 거론하며 거세게 반발하자 '광복 63주년 및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경축식'으로 이름을 바꿨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지난 4일 "정부 차원에서 건국절로 바꾸려는 어떤 계획도, 의도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건국 60주년'은 살아남았다는 점에 비춰보면 정부의 이 같은 해명은 '조삼모사'에 불과해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은 같은 날 "광복없는 건국은 있을 수 없고, 건국없는 광복 역시 의미가 없다"며 "건국 60주년을 맞는 우리는 이제 모두 하나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이 대통령에게 있어 적어도 오는 8월15일은 광복절이나 정부수립 기념일이 아니라 '건국 60주년'이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http://www.vop.co.kr/A00000218215.html
And

어제가 정기 합평 모임 날이었다. 마침 내 글을 합평하는 날이기도 했고, 한참 못 나오던 분들 몇몇이 나오셔서는 보통 12시 경 끝나는 모임이 새벽 3시 반까지 이어졌다.

다른 분들과 헤어져 사당으로 와서는 책을 읽으며 버스 시간을 기다리는데, 어떤 여자분이 핸드폰을 쥔 채 흐느끼며 곁에 와 앉았다. 아마도 남자 친구와 다툰 거겠지.

비극 따위는 이 세상에 이미 차고 넘친다. 나만 해도 최근 그런 일이 있었고, 아직 그 허무감이 메워지지 않고 있다. 남의 일에 일일이 신경 쓸 여유도 없거니와 사정도 모른 채 섣불리 간섭하는 건 예의도 아니다.

....하지만 남들 시선도 아랑곳 않은 채 우는 모습을 보는 것도 마음이 좋지는 않아서, 갖고 있던 티슈를 건넸다. 하지만 그 분은 의외로 또렷한 목소리로 괜찮다고 하고는 곧 그 자리를 떠났다.

..........

나도... 사람을 연민하는 법을 배웠다.

난, 나이가 들었다. 내 글이 그러하듯.

And
....덥다............ㅇ<-<

쓰르라미가 쓰름쓰름
보그라미가 카부카부

정신이 대략 멍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집 근처 수영장에라도 갈까 하다가 당일 입장권 살 돈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대신 죽도를 들고 집 앞으로 나가 휘두르다 들어와서는 찬 물로 샤워하고 미지근한 바람이 나오는 선풍기 앞에 앉았다.

슬슬 여름방학도 끝이 보인다........ 으으. 더운 건 싫어, 하지만 개강도 싫어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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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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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껏 죽도를 휘두른 게 몇 번일까. 10만 번은 넘은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이 허무함은 베어지질 않는다.

난 노력했고, 실패했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삶을 지탱하는 줄은 하나가 아니다.

 
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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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눈을 뜨면 끝없는 모래바다
메마른 이곳에선 모든 게 낯설고
나조차도 낯설고 끝도 없이 낯설고
보이지 않는 길 하지만 모든 게 길

이것은 두려운 자유 나는 텅 빈 나라의 왕
시간은 간데 없고 질문은 되돌아 오고
전화는 고장나고 아무도 없고
보이지 않는 길 하지만 모든 게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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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따라, 달이 처연히 밝다.

거의 1년 가까이 번민하던 문제로부터 해방된 셈인데, 너무도 허무하여... 자유롭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
언제까지 갈까, 이 공허감은.

글도 쓰고 있고, 운동도 하고 있고, 책도 읽고 있고, 사람들도 만나고 있다. 돈버는 것 빼면 다 하고 있는 셈인데... 목이 마르다.

ps=의식적으로는 전혀 그렇게 느끼지 않고 있지만, 어쩌면 무의식적으로는 꽤나 까칠하고 공격적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주의해야겠다.

.

And
1)

어제 조조로 <차우> 보고 왔다. 그 시간에 부분일식이 있었다(...) 평생 두 번 올까 말까한 기회였는데 알았더라면 걍 오늘 볼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_- 나중에 그 이야기를 들은 누나 왈 "일식 관찰 대신 정유미를 택했구나, 넌 진정한 팬인 듯." ...하지만 막상 나는 초딩들이 떠드는 바람에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머릿속에 남은 감상은 "정유미는진리입니다"(......) ...한 번 더 보러 갈까.

2)

지난 주 토요일 테드 창 강연 때문에 피판 갔던 거 사진 포스팅을 해야 하는데 귀차나... 우겍.

3)

할머니가 편찮으시다. 모레 생신이신데... 음, 그만 노닥거리고 얼른 출발해야지.

4)

내일 지인 결혼식이 있다. 전부터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어서, 잘 지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아무 대답도 없다. 좀 무안하다(....) 뭐내가친하고싶다고해서꼭그걸받아줘야한다는법도없고타이밍상좀부담스럽게느껴질수도있긴한데걍그러면그렇다고말을해주지(.........)

5)

문득, 새삼스럽게 다시 느낀다. 나란 놈은 참 서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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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서는 더 이상 촛불을 말하지 않는다. 언급하더라도, 작년 여름만을 회상할 뿐 촛불은 이미 꺼졌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그 날 그 자리에 모인 얼마 안 되는 사람들(100여 명도 되지 않았다)의 손에는 여전히 촛불이 빛나고 있었다.

난 사실 민노당을 좋아하지 않는다. 강경 투쟁 일변도라는 경향성도 그렇고, 내부에 포진한 종북주의자들에 대한 배제가 미적지근하다는 이유도 있지만 '자신의 주장만 앞세우고 상대를 이해하려고는 하지 않는' 태도가 가장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그들의 주장은 새겨 들어야 할 부분이 많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주장만이 옳은 건 아니다.

하지만, 친한 동생에게 문자로 농담하듯이 말했던 대로.... 버닝 리전을 앞에 두고 얼라와 호드가 갈려서 싸우고 있는 지금 상황도 결코 좋지는 않다. 결국엔 함께 가야 한다. 이명박이라는, 한나라당이라는, 공화국 대한민국의 가장 어둡고 부정한 일면 앞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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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민단체 대표 분이 강기갑 의원께 전해 달라면서 보좌관(으로 추정)에게 건넨 천. '함께 비 맞으면 비 갠 하늘 더욱 맑고 푸르네.'라고 적혀 있다. 작년 촛불집회 현장에 만난 민노당 당원 하나도 그런 말을 했었다, 비가 올 때는 우산을 건네 주는 사람도 고맙지만 같이 비를 맞아주는 사람이 더 절실할 때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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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찍은 사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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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착륙 40주년이라고 한다. 저번엔 테슬라 탄생 기념이었지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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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좋지 않은 지인과 메신저로 이야기를 나눴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시시덕대며 가볍게 잡담을 주고 받다가 그 지인의 건강 문제가 화제에 올랐다.

그 지인은 평소엔 대단히 쾌활하고 장난끼가 많은 편이다. 하지만 그 짧은 대화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은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동정을 받았을까. 어떤 종류의 차별을 받았을까.

이래저래 든 생각은 많았지만 아무 말도 못하고서, 잘 자라는 말만 남기고 접속을 끊었다. 나란 놈은 참... 서툴구나, 여러 가지로.

그 사람이 마음 상했던 문제가 잘 풀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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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바람이나 좀 쐬고 들어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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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가항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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