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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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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글을 쓴다. 전부터 블로그질이나 할까 싶었는데... 어차피 방문자도 별로 없는 데다가 왠지 별로 안 내켜서 음악이나 듣고 지인들 블로그나 좀 돌아다니다 말았다.

외삼촌이 돌아가셨다. 폐가 망가져서 근 수십 년간 고생하시고, 최근 몇 년 동안은 거의 바깥 거동조차 못하셨었다. 몇 달 전에 찾아 뵈었을 때는 그나마 상태가 좀 좋으셨을 때라서... 몸소 차를 몰아 나를 터미널까지 태워다 주시기도 하셨었는데. 그래도, 손자는 보고 가셔서 다행이다.

돌아가시던 순간, 외숙모는 울음을 터뜨리셨고 두 사촌형도 눈물 흘렸다. 나는 며칠 째 제대로 자지 못해서 멍해진 머리로 그래도 돌아가신 모습이 편해 보이셔서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이틀을 빈소에서 보내고, 입관 전 염습하고 수의를 입히는 과정을 창 너머에서 바라 보았다.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계셨다 보니 친구들과의 연락도 모두 끊겼고, 얼마 남지 않은 지인과 친척들만이 그를 지켜보며 슬퍼했다.

그리고, 나는 역시 별로 슬프지 않았다.

뭐랄까... 살아 계신 동안 고생을 많이 하셨고,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중환자실에서 홀로 고통스레 시간을 보내셨지만.... 그래도 돌아가신 지금은 아마도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라고는 생각한다. 너무 오랫동안 슬퍼하기만 하는 것도 문제긴 하고.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슬퍼해야만 인간다운 것일텐데, 그렇지 않았다. 분명히 슬퍼해야 할 일인데도.


장례식장에는 아버지도 찾아 왔다. 몇 년 만에 보는 아버지였다. 별로 만나고 싶지 않았지만... 보면 화가 치밀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얼굴을 마주할 만 했다. 서먹하긴 했지만 그것은 '예전부터 별로 살갑지는 않았던, 몇 년 째 얼굴을 비치지 않은 아버지를 보는 장성한 아들'이 가지는 감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난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를 원망하진 않지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으면서 맞이하는 건 무리라고. 아버지는 일 때문에 그런 거 알지 않냐고 하셨지만... 쯧. 대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고 있길래 어머니가 혼자 고생하시며 가정을 꾸리는 동안 얼굴 한번 안 비췄느냐, 애초에 아버지 잘못이 문제 아니었냐고 화를 내려고 했다. 하지만... 화가 나지 않았다. 여러 상황들을 따져서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화를 내는 게 옳은 건 아니지만 분명히, 나로서는 그런 잘난 이성 따위 치우고 화를 낼 만한 일들이 많았는데.

다른 친척들 앞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려고 했다. 하지만 난 외삼촌의 유해를 화장한 뒤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지 않았다. 다시 만날 때까지 또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데도. 어쩌면 다시 만나지 못할 지도 모르는데도.

언젠가는 아버지를 진정으로 용서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지금은... 내 얼굴과 닮은 아버지의 얼굴을 보기만 해도, 온갖 생각이 든다.

...지금은 도저히 그럴 수 없다.


기쁨은 마지막으로 느낀지 몇 년이나 지났다. 슬픈 감정도 화가 나는 감정도 예전 같지가 않다.

난, 대체 왜 이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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