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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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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눈팅하던 인터넷 게시판 몇몇 곳에선 '충격적이다' '배신감 느껴진다' '진보진영 전체에 똥을 줬다' '너님만 좋은 의도였으면 뭐하냐'라는 여론이 대부분이다. 그런가 하면 실드도 간간이 보이고.

내 관점에서 보자면, 곽 교육감의 선의드립은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깨끗한 척 하더니 잘 걸렸다는 식인 검찰의 표적 수사도 짜증나고, 증여 방식도 너무 허술하고 조악해서 도무지 믿기지가 않지만... 그와 별도로 어쨌든 잘못한 건 잘못한 거다.

백보 양보해서 그가 주장하는 대로 '선의'에서 나온 행동일지는 몰라도, 지금 상황에서 그가 말하는 선의를 인정하자면 자연을 사랑해서 땅투기를 했다거나 아들에게 서민의 삶을 체험시키고 싶어 산업 기능요원으로 보냈다는 헛소리도 인정해야 한다. 진심과 선의는 그 자체로 분명 중요한 것이지만, 별로 쓸모는 없다. 개인적인 레벨에서도 그러할진데, 큰 조직에 속해서 정치를 하는 입장에서는 말할 나위도 없다. 반드시 도덕적 잘못이나 탈법적 행위가 아니어도 '입장 상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게 있다.

어떤 이들은 그렇게도 말한다. 곽노현이라는 '개인'이 진보의 가치이며 진보의 미래라고. 사람만이 희망이며, 사람을 버리는 것은 진보를 버리는 것이라고. 이것은 대단히 위험한 논리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민주주의의 근간은 특정한 뛰어난 개인의 영웅성에 의존하지 않고 범속하고 평범한 이들이 동등한 위치에 서서 시끄럽고 서툴게나마 조금씩 스스로를 향상시켜 가는 것이다. 우상이 아니라 이상을 받드는 것(Serve the Ideal, not Idol), 그것이 민주주의다. 한 개인이 아무리 위대하고 고귀하다 해도, 그 한 가지 사실에 매몰되서는 진영논리에 기울어 비판 받을 짓을 비판하지 않는 것은 진보고 보수고를 떠나 민주주의가 아니다. 곽 교육감이 무상급식이나 학생 복지 등의 이슈에 대해 좋은 정책들을 여럿 내놓은 것은 사실이나 그 사실 하나에 매몰되어 '한나라당은 더 심하게 해먹는 데도 아무도 처벌받지 않으니 곽노현 교육감도 사퇴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나 편리한 핑계다. 그런 식으로 해서 곽 교육감의 사퇴를 막을 수 있다 해도 그것은 악마의 거래에 불과하며,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의 탈을 쓴 수구들'이 만들어 낸 게임의 법칙에 굴종하는 짓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충격적이라거나 실망스럽지는 않다. 나는 내 명예를 위해- 주어진 현실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자긍심을 위해 좌파로서의, 진보로서의 정체(政體)를 택했다. 노회찬 씨나 조국 씨, 진중권 씨 같은 이들마저 모두 포기하고 절망한다 해도 나는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는 결코 고결한 인간이 아니다. 난 더 없이 범속한 인간이며, 평범하고 낮은 이의 방식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계속 해나갈 것이다.

 내가 진정 원하는 건 '진보로서의 이상향이 실현된 나라'가 아니라, '나 자신의 명예와 긍지'이기 때문이다. '동지'들이 타락하고, '대의'가 모독당해도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은 나 자신의 의지가 꺾이지 않는 것이기에. 바로 위에 쓴 글과 모순되는 내용이지만, 나는 그러한 나 자신의 모순마저도 감내하고 살아가며, 싸워나갈 수 있다.


.........

나도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겐 강했던 무렵이 있었다. 제대로 교활해지지도 못한 채, 그저 비열하게 살던 때가 있었다. 아무리 어렸을 때라 해도, 그리고 당시 내가 처해 있던 여러 안 좋은 상황들을 고려해봐도 그것은 철이 없어서 그랬던 거라고 대충 넘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내 의지가 현실을 바꾸는 데는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할 알량한 자기만족에 불과하다 해도 좋다.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