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거창하지만 별 영양가 없는 글. 난 관심 좀 있고 책 좀 읽어봤을 뿐 정세분석까지나 할 재주는 없다.
어제의 서울시장 선거 당시, 모 게시판에서 약간 다툼이 벌어졌다. 발단은 한 회원의 '둘 다 그래봤자 보수고, 불공정 FTA와 의료민영화를 찬성하는 신자유주의자고, 비정규직 문제나 인권 문제에는 관심도 없다. 좀 더 나은 상대를 밀어준다고 진보가 그 동안 얼마나 희생해야 했느냐, 1+2의 답은 3인데도 답안지에는 1과 4 뿐이다. 나는 이번 투표를 거부한다'라는 논지의 글이었다. 일단 그 분이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게 하나 있는데.... 일단 나경원은 보수가 아니다. 이명박이 보수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 이유다. 게다가 이미 한국의 정치 상황에서 진보냐 보수냐 하는 이념성은 '승리'라는 단순한 가치를 위해서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기도 하다.
그간 진보가 그 놈의 '비판적 지지' 때문에 실속은 챙기지 못하고 대다수 국민들에게는 그저 쩌리 취급 당하며 민주당에 묻어 간다는 인식만 강화된 것은 사실이다. 최악만을 피하며 근근히 연명해갈 뿐 큰 틀에서 보자면 신자유주의적 국제 금융질서와 주체로서의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그저 가진 자들이 관대한 마음으로 자비를 베풀어 주기만을 빌어야 하는 알량한 복지제도로 대표되는 구체제의 프레임에 점차 갇혀가고 있다는 지적도 온당하다. 박원순의 도덕성은 협소한 영역에서 머물 뿐, 근본적인 시스템의 문제는 오히려 덮어버리고 개인적 도덕성으로 그를 정당화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점도 타당성이 있다. 좀 더 나가자면 정당 중심 대의민주주의 제도 자체에 대한 회의으로도 이어질 수 있긴 한데... 흥미로운 사안이지만 이것까지는 너무 나간 이야기이니 논외.
원론적인 이야기를 약간 하자면, 진보와 보수는 모두 필요하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보수가 아니며, 그저 야욕에 눈먼 광인 집단이다. 한나라당에도 상대적으로 도덕적이고 청렴한 인사는 있다. 하지만 정치의 본질은 피아의 구분이며, 아만이 아니라 피에 대해서도 인정받고-그게 마지못한 인정이라 해도- 조직 내에서 높은 자리에 오르는 거다. 조직과 체계는 개인보다 강하다. 이 지점에서 인물론은 의미가 없어진다. 그리고 그것은 한나라당에서 특히 두드러질 뿐 정당 정치 하에서는 어디에서나 있을 수 있는 문제다. 그리고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모든 인류가 광범위한 교감 능력과 의사 소통 능력을 바탕으로 신시대를 열 수 있는 뉴타입으로 각성하기라도 하지 않는 한 그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다. 대의제는 인간이 인간인 이상 필요악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는 아닐지 몰라도 경제적으로는 명백한 보수였다. 현재 한미 FTA 초안은 그의 정권 하에서 기틀이 잡혔고,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입을 전경들을 통해 틀어막았다. 그러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의 한계를 아는 사람이었고, 독선과 아집의 덫에 걸리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가 대통령이던 시기에는 진보 역시도 그나마 숨통을 트고서 그러한 노무현 정권의 실정을 비판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비판만 한다고 해서 뭐가 바뀌냐고? 하지만 비판 자체를 불허하는 것과 그것은 최악과 차악의 차이 정도가 아니다. 양자는 완전히 다르다. 그것이 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생전 펼친 정책 상당 부분을 비판하면서도 그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대통령이었다고 평가하는 이유다. 민주주의는 소통을 통해 이뤄진다.
이 글 앞에 언급한 그 분이 망각하고 있는 점이, 국민의 비판과 견제를 통해 차악을 그나마 차선으로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초인은 없다. 누구나 모순과 불안정성을 갖고 있으며, 민주주의는 느리고 혼란스러울망정 국민들이 권력자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으며, 그들 자신의 내부에도 존재할 그 수많은 모순과 불안정성을 서툴고 조잡하게나마 조정해 갈 수 있다는 것- 스스로 자신들의 진보를 이뤄낼 수 있는 기회가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유일한 체제라는 점이다. 그러한 갈등과 대립들, 단결과 연대들이 오랜 시간을 걸쳐 쌓여가며 처음에는 없었던 수많은 변수들을 낳고, 그러한 변수들이 상호작용하며 인간사를 보다 더 낫게 만든다.
김규항을 비롯한, 몇몇 자칭 진보들은 백마 타고 올 초인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 스스로가 힘겨운 현실 속에서 고민하고 성찰하고 투쟁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진보에게 필요한 것은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할 수 있는 초인에 대한 기다림이 아니라, 부단한 감시와 견제를 통해 차악을 차선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가능성을 늘려가는 것이다. 김정일 추종하는 종북 세력들을 막기 위해서는 한나라당 후보를 찍을 수밖에 없다-그리고 찍어놨으니 알아서 잘 하리라 믿고 나는 내 일 하러 가겠다-는 논리와 이것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한나라당이 광인 집단이 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진보 역시도 보다 나은 한국, 좀 더 좋은 미래를 위해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스탠스일 뿐이다. 그 자체가 절대적인 가치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보다 나은 한국, 좀 더 좋은 미래'가 빠르게 이뤄질 리도 만무하거니와, 그것이 반드시 진보의 주도 하에 도래해야만 할 이유도 없다.
박원순 서울 시장이 오늘 첫 출근을 해서, 제일 먼저 결재한 사안이 초등학교 무상급식이었다. 좋은 시작이다. 시청광장을 시민들에게 돌려주겠다는 말도 했고, 용산참사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는 말도 했다. 그에게 환상을 품고 싶지는 않다. 정치판에서 개인의 도덕성에는 너무나도 명백한 한계가 있다. 그러나 적어도 최소한의 소통 여지는 있는-이명박이 말하는 것 같은 소통을 빙자한 광고가 아닌- 사람이라는 건 믿어볼 수 있을 듯 하다. 비록 서울 시민이 아니라서 그에게 표를 주지는 못했지만, 심정적으로 지지하고 있었고 오늘은 맥주와 꼬깔콘 먹으며 그의 당선을 축하한다. 그리고 김문수 보고 있나?
PS=오늘자 한겨레 1면. 시민들의 투표 인증샷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