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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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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지문화원 사이 인문특강 시리즈-2012년 진보를 다시 묻는다

고민하고 있던 문제 하나가 해결됐다.

 

뭐... 그 녀석도 나름 계산이 서서&정말 괜찮으니까 그런 말을 한 거겠지. 이래저래 좀 다른 생각도 들긴 하지만.... 아마도 피해망상의 수준으로 발전할락 말락 하는 내 인간불신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드는 거지, 그 녀석도 조교님도 그런 의도를 갖고 있던 건 아닐 것이다.

 

한 가지 문제는 일단 해결 됐고... 이제 남은 건 정식 취직 문제&그리고 소설 문제 뿐이구나. 전자 쪽의 전망이 영 좋지 않긴 한데.

 

오후에 약속 있던 다른 후배놈 하나와도 만나서 적당히 노닥거렸고, 돌아오는 길에 기차도 제깍 제깍 왔고... 최근 들어 드물게 '오늘 일진 괜찮았다'는 느낌이 든다.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 꼴이 나진 않겠지 설마_- 

And

쓸데 없는 꿈을 꿨다.

 

그런 꿈을 꾸면... ...인정한다, 그 꿈 속에서의 나는 기뻐하고 있다. 피상적이고 감각적인 '즐거움'이 아니라, 나 역시도 人間으로 살 수 있다는, 이제는 거의 포기했지만 아직 마음 속 한구석에서는 떨치지 못한 희망이 실현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그런 꿈에서 깰 때마다 그건 아마 절대로 현실이 될 수 없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때마다 지독하게 우울하다.

 

한 잔 하고 싶은데... 아침부터 마실 수야 없지, 망할. 담배 한 대 피우고 와서 일이나 하자.

And

봉급이 들어왔다. 생각보다 좀 더 많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무래도 이걸 그냥 내가 받아 챙기는 건 마음이 켕긴다, 나 대신 실제로 일을 하고 있는 그 후배한테 주는 쪽이 옳은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막상 돈이 들어온 걸 보니 좀 마음이 흔들리긴 한다. 젠장 나란 놈은 아무래도 역시 성자보다는 속물에 더 가까운 모양이다ㅋ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상담이라도 했으면 싶기도 한데... 그럴 만한 상대가 여의치 않구나. 뭐, 어쩔 수 없지.

 

아주 많은 것들이 하찮게 여겨진다.

And

을 꿨다.

 

얼마 전에, 취한 채로 헛된 희망에 휘둘리고 싶지 않으니 그런 종류의 '악몽'은 꾸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 적이 있었다. 조금 훌쩍거리기도 했던 것 같다. 그 기도가 가닿은 모양인지, 이번에는 '행복한 꿈'이 아니라 '싸우는 꿈'이었다.

 

하지만 그 싸움은 내가 원했던 대의와 신념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나보다도 강한 그 누군가에게 결국 굴복해서는 나보다 약한 타인에게 폭력을 휘둘러서 그 좌절과 울분을 푸는 것이었다.

 

 

머리 속이 멍하고 우울하다. 고작해야 꿈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다. 하지만, 가슴이 먹먹하다. 많이.

 

10년 쯤 전에는 이런 것 때문에 고민하거나 슬퍼하지도 않았는데, 나이가 먹어갈수록 어째 더 나약해지는 느낌이다. ...남들 앞에서 찌질대지만 않으면 됐지 뭐.

 

+

 

'어떤 이유로 인해 마음을 닫고 있던 사람이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 외향적인 성격으로 바뀐다'는 식의 이야기가 픽션에서 많은 이유는, 기본적으로 외향적인 성격이 내성적인 성격보다 긍정적이고 옳은 것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잘 안 일어나기 때문이다. 내가 친구라고 여겼던 사람도, 최소한 그 당시에는 나름 진심으로 나를 대했을 것이다.

 

진심과 선의는 중요한 거다. 하지만 더할 나위 없이 무력할 때가 있다. 그리고 그 무력함은 결국 스스로를 욕보인다. 당시의 내 상황이 약간 특수한 경우긴 했고, 그런 일이 또다시 일어난다는 법도 없긴 하다.

 

그러나 나는 이제 지쳤다. 

And

소설은 잘 써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을 쓰게 된 가장 직접적인 동기가 된 일과 관련하여, 그리고 아마 지금쯤 잘 지내고 있을 친구와 관련하여... 그 친구가 오해를 하게 되지 않을까, 그것이 두렵다.

 

인정한다. 나는 약간 걱정하는 정도 수준을 지나서, 그 가능성을 두려워하고 있다.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 친구라고 여긴 상대가 있었다. 그 사람이 친구라서 고맙고 기쁘다고 여긴 적이 있었다. 나도 달라질 수 있다고 여긴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게 전부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일이 되 버렸던 그 날의 절망을 아직 기억한다.

 

그 일이 또 반복되지 않을까, 지금 그것이 두렵다.

 

+

 

일단 다 쓰고 나서 공개 여부를 고민해보는 쪽이 나을 듯해 재개. 하지만 완성 못했다-_- 쯧 모임 쪽에 뭐라고 둘러대지... 이번 달에는 꼭 완성해 가져가겠다고 했는데 어쩐다... 

 

+

 

대충 넘어갔다. 다른 공모전들도 슬슬 준비해야 할텐데.... 이걸 마무리해놓지 않으면 두고두고 마음에 걸리지 싶다. 공개 여부야 나중에 결정한다 해도 역시 최대한 빨리 완성을 보긴 봐야 할 것 같다.

 

냉정해지자. 나한테 있어 그 친구가 아무리 절실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나만의 문제다. 그 친구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이제 막 아이도 태어났겠다 그 친구는 나한테까지 신경을 쓸 수 있을 만한 상황이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 '친구' 역시 나를 친구라고 여기리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내가 친구와 우정이라는 관념에 대해 일종의 환상을 품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싶기도 하고.

 

 

난 두 번 다시 그 날의 절망을 반복해서 겪지 않을 것이다. 두번 다시, 절대로.

 

절대로. 

And

이번에는, 객관적으로는 결코 즐겁다고 할 수 없는 꿈이었다. 그 꿈 속에서 나는 화를 내고, 그 와중에도 스스로를 잃어버리지 않은 채 싸우고 있었다. 해야 할 말을 하고,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이런 꿈이 훨씬 나답다.

And

http://www.engadget.com/2012/06/06/ray-bradbury-dies-at-91/

 

하루 늦게 알았다(...) <화씨 451>도 그렇고 <도시>도 그렇고 좋아하는 작품들을 여럿 쓴 작가였는데, 쩝. ...근데 정작 대표작인 화성 연대기 시리즈는 내 취향이 아니었...

 

명복을 빈다.커트 보네거트 선생도 그렇고 아서 클라크 경도 그렇고 훌륭한 작가들이 연이어 세상을 뜨는구나, 어슐러 르귄 할머니는 건강하셔야 할텐데.

And

지금 내 상황이 그렇게 엉망인 건 아니다. 이래저래 우울하지만 견딜 만하고(가끔 악몽을 꾼 뒤 그 날 하루종일 빡쳐 있다가 해질 무렵 급격히 피곤해지긴 하는데), 소설도 진도가 느리게나마 잘 써지고 있고, 노리고 있는 공모전도 있고, 봉급을 받아 챙겨야할지 그냥 포기해야할지 미묘하지만 알바도 구했고, 신체 컨디션도 나쁘지 않다.

 

그런데, 요즘 매주 금요일 RPG할 때 빼고는 '즐겁다'는 느낌이 들 때가 전혀 없다.

And

1)

알바 관련으로 근로 계약서를 본인이 직접 써야한다길래... 대전에 갔다 왔다.

 

건성으로 휘릭휘릭 서명하고 과사에서 늘 하던대로 "조교님 예뻐지셨네요, 남자친구 생기셨나요?" 같은 헛소리를 하다가.... 대학원 다니는 여자 선배를 오랜만에 만나서 "오랜만이네요, 선배님 아직도 남자친구 없으시면 저는 어떠함? 전 연상 취향임" 하다가 왼손 약지에 반지를 보고 속으로 아차 싶었다. 얼렁뚱땅 넘기고("아니... 결혼하셨던가요, 축하드립니다") 나가서 담배 한 대 피우면서 속으로 계속 생각했다. 어차피 진심으로 하는 소리도 아닌데 뭘.... 어차피 농담이라는 걸 상대도 아니까.... 나를 좀 이상한 놈으로 보겠지만 애초에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뭘.... 진심으로 대하지 않으니까 상처 받을 일도 없어... 진심이니 상처 따위를 받는 거야... 그것도 한 두번이지 이제는 지겨워.... 나이 30먹고 마음의 상처 따위로 침울해 하는 것도 찌질하고 한심해.... 나는 괜찮고 아무렇지도 않아.... 진심과 선의로 사람을 대하는 것은 분명 중요하지만 그게 빛을 보는 일은 별로 없어.... 차라리 그럴 바에는 농담과 헛소리로 대충대충...... 대충.... 대충... 나는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대충... ....아 씨발.........

 

과사에서 단 둘이 있을 때, 조교님이 정색하고서 '니가 농담삼아 하는 말인건 아는데 남들 앞에서 자꾸 그러니까 불편하더라, 그것 때문에 애들 사이에서 네 이미지도 안 좋고' 하시길래 다신 안 그러겠다고 사과했다. 내가 확실히 좀 지나쳤다 싶긴 하다. 어쩌면 내가 작업 멘트 날리고 하는 건 그저 픽션에서 자주 묘사되는 '옛 사랑에 상처 받은 남자가 일부러 지골로 짓을 하며 공허감을 메우려 하는 심리'를 무의식적으로 따라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뭐... 어쨌든 앞으론 그러지 말아야겠다, 일단 나한테 그런 건 안 어울리기도 하고.

 

게다가... 조교님한테는, 내가 예전에 반했던 사람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지금도 지갑에 그 분 사진을 넣고 다니는 주제에 그래서는 안될 것 같다. 그 분에 대한 사랑을 그렇게 값싸게 취급해서는 안 될 것 같다.

 

2)

조교님과 단 둘이 있을 기회를 포착해서(...정확히는 도중에 자꾸 과 애들이 와서 끊기는 바람에), 일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지난 2월에 졸업한 학교는 졸업자 취업률 때문에 태클이 걸려 부실 대학으로 선정되어 있다. 아마도 내가 애초부터 '대외적으로 조교 노릇을 해보지 않겠냐'고 조교님에게 제안을 받은 건 어떻게든 공식적인 취업자 수를 늘리려는 대학 당국의 필사적인 발악 때문일 것이다.

 

"네 후배 중에 조교 일에 잘 맞는 애가 있어. xx라고, 알지?" "네, 별로 친하진 않지만 똑똑하고 센스도 좋고 저보다 조교 일에 잘 어울릴 거라고는 생각해요." 걔가 이제 4학년 2학기인데, 학점은 되는데 성적 때문에 조교 지원이 안 되거든. 걔는 우리 학교 교직원이 꿈인데, 조교 일을 하면 그만큼 경력으로 인정된단 말이야. 그래서 공식적으로는 네 이름을 걸어놓고 걔한테 업무 인수 인계할 생각이야. 내가 보기엔 너는 적성이 취직 말고 어디까지나 소설 쪽이고..." 맞게 보셨어요. "그러니까, 네가 3개월 동안 공식적으로 이름을 걸어놓고, 과 애들 사이에서도 나 다음 조교가 너인지 걔인지 헷갈려 하는 애들이 많거든. 방학 중 가끔 나와서 전화 정도만 받아주고, 그 동안 나는 업무 인수인계를 걔에게 하고... 계약서와는 별도로 너는 3개월 동안 이름만 빌려주고 조교 일은 걔가 하는 거야."

 

객관적으로 보자면 아무 것도 문제될 게 없다. 조교님은 다음 조교가 걔인지 나인지 헷갈리는 과 애들 상대로 설득하느라 뒷골이 땡기시겠지만 스스로 감수한 일이고, 나는 실질적으로 3개월 간 거의 놀고 먹으며 100만원이 좀 넘는 봉급을 받으며 내 소설 쓰는 데만 집중할 수 있고, 걔는 스펙을 쌓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것과는 별도로, 내가 걔한테 이름만 빌려주고서 별로 하는 일도 없이 돈을 받아 챙긴다는 것은 무척이나 마음에 걸린다.

 

어떻게 해야 할까... 돌아오면서 고민하던 중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3개월 뒤에는 걔 계좌로 내 봉급을 자동이체 처리해야 되는데 내가 300만원 정도 받는 걸 따로 모아놓고 그걸 같이 송금해주면 되잖아?'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지금 나는, 두 가지의 상반되는 미래를 동시에 보고 있다고. 어느 한 쪽의 미래에서는 그 돈을 받아 챙기고서는 어머니 선물도 사 드리고, 자격증 시험비도 내고, 컴퓨터도 바꾸고서 '나와 조교님, 걔 셋이 전부 납득했으니 서류 상으로는 내가 조교일 뿐, 내부적으로 나는 아무 잘못도 없다'고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한 쪽의 미래에서는 내가 걔한테 그간 모아둔 3개월치 봉급을 보내주면서 '이 돈은 내가 아니라 내 이름을 걸고 실질적으로 일한 네가 가질 자격이 있다'고 하고 있었다.

 

나는 단 한번도 스스로가 그렇게 도덕적이라거나 고결한 인간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하지만 나 자신이 번 돈도 아닌, 원래는 남이 받았어야 할 돈을 받으며 무위도식하는 나 자신의 모습은.... 상상만 해도 구역질이 난다. 지금의 나는 한심하기 그지없는, 어머니에게 용돈 받으며 방바닥이나 긁는 30대 백수다. 그 돈을 받으면 어머니 선물도 사드리고 친척들 사이에서 '나도 사회인으로서 내 몫을 하고 있음'이라는 티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돈은 내가 가져도 되는 게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앞으로 3개월 간 나오는 봉급을 쓰지 말고 따로 모아두고서, 이 3개월이 끝난 뒤 걔한테 걔좌이체 신청을 하며 그 돈도 같이 보내 주면 나는 좀 가슴아플 망정(...) 윗선에서 시달리는 조교님한테도 민폐를 안 끼치고, 걔한테도 떳떳할 수 있지 않을까. 비록 '씨발 그냥 내가 그 돈 먹어도 아무도 나한테 뭐라고 안 할 텐데 내가 왜 그런 미친 짓을 했지'하며 데꿀멍거린다 해도, 그 와중에도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나는 스스로에게 당당할 수 있도록 행동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걸 어머니에게 설득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자신이 없다.

 

 

.......

 

지금 내 입장이 대단히 미묘하긴 하다. 그냥 '나 안해!' 해버리면 내 자존심은 만족시킬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내게 300여 만원이 적은 돈이 아니라는 점도 그렇거니와 걔가 커리어를 쌓을 기회를 뺏는 셈이 된다. 조교님도 나 이전에 다른 졸업생들에게 연락해 봤다고 하셨었고. 그렇다고 해서 그냥 받아들여 버리면... 한참 동안이나 고작 300여 만원에 내 명예를 팔았다는 생각에 지독하게 우울할 것이다. 법조인 같은, 사회적으로 '명예롭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타락하는 이유 중 하나가 기왕 명예를 잃었으니 돈이라도 챙겨야겠다는 심리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심리는 '명예'라는 관념이 자기 내면에 있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굽신거림에서 나온다는 착각 때문이다.

 

내 명예는 나만의 것이다. 오직 나만을 납득시키고 만족시킬 수 있는, 일종의 아집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아집조차도 나의 것이다.

 

.....ㅅㅂ 몰라 썅, 3개월 뒤면 내 입장도 확고해지겠지. 그 동안은... 돈 들어와도 아껴둘까 일단.

 

 

 

 

 

 

 

And

예전에 있었던, 아주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다. 가끔 이렇다. 보통 때는 그 때 일이 떠올라도 좀 우울하고 마는데 가끔씩 이렇게, 오래된 옛 상처가 갑자기 쑤시는 것처럼 거의 발작적으로 그 일이 떠오르는 날이 있다. 오늘만 해도, 오전에는 맨 인 블랙3보러 갔다 온 뒤 책 주문한 거 입금하고 오후에는 쓰던 소설을 얼른 마무리해 놓고 자격증 시험 좀 공부하려고 도서관에 갔었다. 그 일을 떠올릴 만한 계기 같은 건 전혀 없었다. 하지만 가끔씩, 이렇다. 

 

괜찮다. 그 일을 겪기 전부터, '예전처럼 웃음과 믿음을 나누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면 애초부터 그런 일 따위는 없었던 모양이다. 친구라고 여기고, 나도 변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던 게 희망이 아니라 단순히 나만의 망상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일을 겪은 당시부터 이 일은 아주 오랫동안 내 안에서 지워지지 않을 恨으로 남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 당시, 아직 人間이 될 수 있으리라고 여기고 있던 그 당시의 내가 지금 내 앞에 있다면 좀 패줘야겠다 싶다. 실컷 패주고는, 네가 지금 진정으로 간절히 바라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비웃어주고 싶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이 무척이나 안타깝다.

 

해코지할 생각은 없다. 내게 어떤 이유가 있었건 간에 내가 먼저 잘못한 것은 사실이고, 거기에 대해선 변명의 여지가 없다. 상대방의 입장도 이해한다.

 

 

하지만,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우울한 것보다는 분노하는 게 요즘의 내 상태에 있어서는 좀 더 유익할지도 모르겠다. 감사해야 되려나ㅋ 

And

1)

이틀 간 강원도 다녀왔다. 할머니는 많이 늙으셨다. 앞으로 별로 오래 사실 것 같지 않다.

 

아버지와 같이 갔다. 텃밭 잡초 뽑고 이런 저런 잡 일을 같이 하며 적당히 농담도 하고, 같이 술도 마셨다. 스스로 생각해 봐도 아버지에 대해 갖고 있던 감정이 많이 순화된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아버지 얼굴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가 용돈을 좀 주겠다고 하셨지만 알바를 구했으니 괜찮다고 거절했다. 저번에 아버지를 만났을 때도 느낀 거지만... 역시 난 아버지와 많이 닮았다. 외모도 그렇고, 자존심 강하고 약한 소리 못하는 성격도 그렇고. 

 

아버지를 어느 정도는 이해하기 시작했다. 몇 년 정도 더 지나면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다.

 

2)

다음 달 합평 모임에, 오랜만에 친구가 남편 분과 같이 나올 모양이다. 그리고 다음 달 쯤엔 나도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을 완성해 가져갈 수 있을 것 같다.

 

.....

 

그 날 뒷풀이는 하지 말고 돌아오는 게 나을 것 같다. 이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이다. 그럭저럭 잘 견디고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시 감정이 격해져서, 약간 한심한 꼴을 보일지도 모른다. 우리 모임 사람들과는 5년에 걸쳐 교분을 이어왔고, 취해서 울거나 하는 정도까지 가지 않는 이상 어느 정도는 그래도 괜찮다. 애초에 내가 그 정도로 스스로의 감정을 많이 드러낼 수 있는 상대는 숫자가 매우 적기도 하다. 하지만 그 친구는 이제 갓 아이를 낳았고, 한참 바쁘고 행복하면서도 걱정이 많은... 그런 시기일 것이다.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여러 가지 일들이 많은 상황일텐데 그 앞에서 나만의 감정에 젖어 있는 건 민폐다. 뭔가 도움이 되어줬으면 하지만... 그것도 지나친 참견이 될 수 있는 상황이고. 진심과 선의는 중요한 거지만, 대단히 무력할 때가 있다. 나는 그것을 매우 잘 알고 있으며, 지금도 그럴 때인 것 같다. 그냥... 앞에선 적당히, 이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것처럼 행세하다가... 합평 끝나면 빠져 나와서는 돌아와 혼자 한 잔 하지 뭐.

 

내 친구는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도 아마,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럭저럭 견딜 만하다.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꿈을 꿨었다. 내가 여전히 마음 한편으로는 바라고 있지만 아마도 절대 이뤄지지 않을 일이 그 꿈 속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아주 조금 울었다.

And

또 악몽을 꿨다.

 

객관적으로는 분명히 행복하고 즐거운 꿈인데도 그걸 악몽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는 내 꼴도 참 그렇다ㅋ 요즘 들어 부쩍 이런 꿈을 자주 꾼다, 나약해진 모양이다.

 

....옛 생각이 난다. 이젠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일들이.

And

오후는 포트폴리오 마저쓰고 회사 홈페이지 뒤지는 걸로 보내볼까

 

백설공주 초귀여움 하악하악.

 

 

...내가 사랑했던 그 분도 저렇게 행복하시겠지. 현실의 삶이 마냥 동화같을 리야 만무하지만 대체로는 행복하게,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자라는 걸 바라보며, 그 분이 사랑하는 그 누군가와 더불어 나이 들어갈 것이다. 내가 사랑했던 그 분이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그 행복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리를 두고 다만 기도하는 것 뿐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것이 조금은 서운하고 아쉽다.

 

그래도 최소한 그 분은... 행복할테지. 그것만으로도 완전히 나쁜 결과는 아니다.

 

ㅅㅂ 고작해야 짝사랑이었을 뿐인데 후유증 한번 존내 기네, 사귀다가 헤어졌으면 어쨌을지 상상이 안 간다ㅋ

 

 

........

 

...친구가 보고 싶은데, 관두자.

And

최근 통합진보당 사태를 보고 몇 자 적는다.

 

한국에서 진보의 입지는 뿌리부터 빈약할 수밖에 없다. 일제의 식민통치가 외세에 의해 종식되고, 역시 외세에 의하여 실질적으로 두 나라로 갈려 서로 죽고 죽여야만 했고,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는 자유민주주의에 반대되는 사악한 사상이다'라는 선전 속에서 군사독재가 이어졌다. 이 나라의 국민들은 불안한 정국와 피폐한 일상 가운데서 '이 나라를 이끌어 갈 올바른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해 충분히 숙고할 여유를 갖지 못했고, 한 번도 스스로가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진정한 주체가 될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다.

 

해방과 정부 수립 이후로, 이 나라의 집권층은 스스로의 권력을 유지하고 그를 공고히하기 위해 다분히 의도적으로 공산주의라는 경제체제와 사회주의라는 정치체제를 동일시했고, 그를 무자비하고 맹목적인 광신일 뿐 더 이상 국가 이념이라고 할 수 없는 '북한 체제'에 등치시켰다.

 

노태우가 물러난 이후 한국의 형식적인 민주주의는 달성되었다. 그러나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 이후 2012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20년 동안 '그것'은 한국인들의 삶 기저에 깔려 한국인들의 사고방식을 지배해왔다.

 

'그것'의 첫 형성은 단순했다. 일제 시대, 앞으로 올 세계의 냉전 구도를 대비하여 해방된 조선을 동북 아시아에서의 이념 대리전을 위한 주춧돌로 삼기 위해 음으로 조선의 독립을 지원했던 미국과 소련을 통해 '민주주의'와 더불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이 나라에 들어왔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해방이 되었고, 끔찍한 동족 상잔과 더불어 '북한 체제는 사악한 것이다'라는 인식이 확고해졌다. 이것 자체는 말할 것도 없이 사실이다. 그러나 집권층은 '북한 체제=공산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인식을 의도적으로 조장했고, 여기에서 첫 왜곡이 발생했다. 그 개념 상 근본적으로 성장보다는 분배를, 안전보다는 자유를 중시하는 진보는 애초부터 한국에서 올바른 형태로 성장하기가 극단적으로 어려운 구조가 이 무렵에 이미 형성되었다.

 

군사독재 기간 동안 이 나라의 국민들은 산업화가 가져다 주는 급속한 물질적 풍요와 외형적 성장에 감탄했다. 모든 것이 너무나도 빨리 변했다. 그리고 박정희는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 가운데 국가주의와 전체주의를 교묘히 심었고, '먹고 살기 위해선 작은 희생은 어쩔 수 없다.'라는 분위기 속에서 두번째 왜곡이 발생했다.

 

박정희는 김재규에 의해 사살당했고, 짧았던 최규하의 대리 통치는 전두환의 쿠데타로 막을 내렸다. 이후 노태우를 거쳐 김영삼이 당선되며,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대의 조류는 승리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사람만 바뀌었을 뿐, 표피적으로만 민주화를 성취했을 뿐 그 기저에 깔려 있는 두 차례의 왜곡과 그 가운데서 태어난 '그것'은 건재했다.

 

 

'그것'의 정체는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이 나라의 정치적 주도층 가운데 뼛속까지 박혀 있는 승리와 효율에 대한 집착- 한 발 더 나아가, 오직 자기 증식만을 위해 존재하는 권력욕이다. 노골적으로 권위적이고 억압적이었던 군사정권을 종식시킨다는 공통된 대의 앞에서 선과 악은 분명해 보였지만, 막상 그 군사정권이 적어도 겉으로는 사라지고 나자 '그것'은 지금까지 그에 맞서 싸워왔던 이들 사이에서 나래를 펼쳤다. 승리를 위해서는 작은 희생은 어쩔 수 없고, 내부의 사소한 불의는 '적'의 커다란 불의를 깨뜨리기 위해 덮어둬야 한다는 논리가 팽배했다. 그것이 한국 정치계의 현주소다.

 

 

한국의 진보는 약하다. 물리적인 규모나 정치공학적 기술적인 의미에서만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미에서 한 없이 약하다. 애초부터 약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구보다도 드높이 자유를 노래하고, 생명을 찬양하고, 인권을 관철해야 할 진보가 '승리'를 위해 '그것'에 무릎 꿇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진보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

 

 

한국에서 진보임을 자처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수없이 패배하고, 수없이 갈등하고, 수없이 좌절하는 것이 현재 한국에서 진보가 나아갈 길이다. 지켜야만 할 가치를 이루기 위해 타협하지 않았다는 긍지를 품고서 죽기 위해. 언젠가 그 먼 훗날, 지금의 패배와 갈등과 좌절들이 진보의 이상을 실현시키는 초석이 된다는 희망을 품고서 죽기 위해.

 

 

운명의 나라를 그리며, 우울하고 갑갑한 현실 가운데 속해 그와 싸우며 살아 나가는 것.

 

와야만 할 그 날을 위해, 용기를 가지고서 패배하는 것. 

 

 

그것이 한국에서 진보를 자처하는 이의 자세다.    

And

이번에는 아버지도 같이 갔다.

 

가던 도중, 배가 고프다고 하자 아버지가 '네가 사줄 거냐'고 여쭤 보셨다. 알았다고 하고는 휴게소에서 내려 나는 유부 우동, 아버지는 비빔밥을 주문해서 먹었다. 계산한 뒤 옆에 편의점에서 가는 도중 먹을 과자들을 좀 샀다. 아버지는 백수라면서 그렇게 막 사도 되냐고 웃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난 그 이유를 알고 있다. 난 아버지와 외모만이 아니라 성격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자존심 강하고, 꿀리는 걸 싫어하고, 약한 소리를 못한다. 내가 그렇게 행동한 건 아버지 앞에서 '나는 아무 문제 없이 잘 지내고 부족함도 느끼지 않는다'는 걸 표현하기 위한... ...일종의 허세였을 것이다.

 

12시 쯤 집에 돌아왔고, 아버지는 새벽에 회의가 있다고 바로 출발하셨다. 또 한참 동안 볼 일 없겠지. 여전히 아버지와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는 건 좀 거북하다. 그러나 예전만큼 아버지가 싫지는 않다.

 

내가 아버지에게 거부감을 갖고 있는 부분은, 나 자신도 어느 정도 갖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좋건 싫건 간에 내가 아버지와 닮은 점이 많다는 걸 느낀다.

 

And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축하할 일이다.

 

며칠 전, 그 '친구'와 거리를 둬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아마도 이게 옳은 판단일 것이다.

 

 

그래도 행복하기를, 나의 친구. 아기도 건강하고, 남편과도 화목하게 잘 지내기를. 지금보다 더, 훨씬 더. 항상.

 

안녕.

 

그런 옛날 이야기가 있다. 숲 속에서, 어떤 은자가 홀로 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 이야기를 하는 것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서툴렀던 은자는 나이가 들수록 너무나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외로워졌고, 고독에 겨워 결국 미쳐 버렸다. 미친 은자는 길을 잃고 숲 속을 헤매던 아이를 만났고, 며칠 동안 자신의 오두막에서 아이를 재워주며 함께 생활하다 아이가 집과 가족을 그리워하자, 아이가 자신을 떠나는 걸 막기 위해 아이를 죽여 버렸고 죽은 아이의 시신을 끌어 안고서 이제는 헤어지지 않는다고 중얼거리며 눈물 흘렸다고 한다.

 

난 결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우정'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내가 어딘가 병적인 구석이 있다는 것을 종종 자각한다. ...이런 삶도 있는 거다. 담배가 떨어졌는데... 한 갑 사와서 피고 잘까. 

And

1)

며칠 전 원가 절감과 마케팅 기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물건을 빨리 배달한다'보다 '우리는 주문 30분 내로 물건을 배달한다'가 더 구체적이고 잘 된 사례...라고 나왔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30분 내로 도착하지 않을 경우 피자값을 받지 않는 한 피자 체인점의 경우 그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액을 배달원의 봉급에서 깎는다고 한다. 그래서 배달원은 기를 쓰고 신호등을 무시하고 과속을 해가면서 시간에 맞추려고 하고. 그 과정에서 사고가 나면 전부 배달원 잘못이 된다고 한다.

 

난 개인적으로 그렇게까지 도덕적이라거나 고결한 인간은 되지 못한다. 그 30분에 내 밥줄이 걸려 있다면, 나도 '사소한 과정 상의 문제'는 무시할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내 사소한 편의를 위해 누군가가 목숨을 걸어야 한다면 그런 편의는 누리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도 현대 사회에서 사회인이란 서비스의 향유자인 동시에 다른 누군가에 대한 서비스의 제공자이기도 하다. 방식과 정도는 다를지 몰라도 나 역시 누군가의 사소한 편의를 위해 일방적으로 중요한 무언가의 희생을 강요받아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불편을 감수하는 것은 나 자신을 지키는 방편이기도 하다.

 

편의를 누리면서도 위험 부담은 피하고 싶다면 피자 배달 따위 할 필요가 없는 '위너'가 되면 된다고 쉽게들 말한다. 하지만 난 애초에 소시민이고, 아마도 엄청난 부와 성공 같은 것은 평생 쌓아올리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소시민으로서 그런 위너보다는 타인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2)

같이 교육 받는 여자 사람이 있다. 왠지 눈에 밟히길래 왜 그럴까 생각해 봤는데... 이유를 알았다. 예전에 '친구'라고 여긴 적 있는 그 누군가와 닮았다. 

 

......아오 씨풋, 그 사람은 아무 잘못도 없긴 한데, 볼 때마다 불쾌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 사람은 나한테 아무 것도 잘못한 게 없고, 딱히 내게 좋고 싫은 감정도 전혀 없을 것이다. 예전에 그 일 역시 내 잘못도 어느 정도는 있었는데 엄한 그 사람을 볼 때마다 움찔움찔하게 된다는 것 자체가 짜증난다. 

 

그 때 그 일이 내게 있어 어느 정도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새삼 절감한다. 어쩌면 평생 낫지 않을지도 모른다. 몰라 썅, 이런 종류의 삶도 있는 거지 뭐. 두 번 살고 싶지는 않지만.

 

3)

얼마 전에 어떤 꿈을 꿨다. 지독한 슬픔에 짓눌려서 괴로워하고, 그런 내 어깨에 다른 누군가가 손을 얹고 조용히 위로하는 꿈이었다. 전에도 비슷한 꿈을 몇 번 꿨었다. 그리고 그런 꿈에서 깨면 순간적으로 열받았다가, 다음 순간 우울해진다.

 

현실에선 내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걸 알고 있는 데도 아직 가끔 그런 종류의 꿈을 꾼다는 건 내가 아직 '人間'이 되고 싶다는 미련을 완전히 떨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싸우는 꿈'을 꾸면 내가 '강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 싸움이 아무리 힘겨워도 그 상처의 아픔과 나를 둘러싼 '적'들로부터 내게 쏟아지는 적개심 속에서 나는 '강자'라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꿈을 꾸면 나약해지고, 무장을 해제당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런 꿈은 꾸고 싶지 않다.

 

4)

내일이 교육 마지막 날이다. 오늘은 조 별로 나뉘어 기업체 현장 교육을 받으러 갔다 왔다. 교육 사항과 해당 기업체에 대한 정보(연혁, 재무제표, 수상 경력, 주력 상품 등)를 PPT로 정리해 내일 발표해야 되는데... 같은 조 애들이 '형이 제일 잘 하실 거 같아요' 같은 소리를 하며 발표를 은근슬쩍 나한테 떠넘기려 하길래 약간 짜증을 냈다. 씨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있었더니 누굴 호구로 보나?

 

그냥 읽기만 하면 되는 건데 왜 나한테 떠 넘기냐, 가위 바위 보를 하거나 사다리 타기를 하거나 해서 아무나 정하면 되는 거 아니냐, 그래서 내가 걸린다면 군말 없이 하겠다고 했고... 사다리 타기를 해서 딱 걸렸다. 화를 낼까 싶었지만 내가 한 말을 깨뜨릴 수는 없다 싶어서 참았다. 뭐 애초부터 친한 놈들도 아니었지만 이런 사소한 것까지 남한테 미루려드는 꼴을 보니 정 떨어진다. 내일만 보면 끝이니 참자... 쯧.

 

 

And

교육 장소를 옮기게 되서... 우선 바뀐 장소가 어디인지 확인하고, 근처에 머물 곳을 찾아보던 중 조교(...라고 해야 되나)를 우연히 만났다. 무척 반가워하며 저녁을 사겠다길래... '나는 그런 호의를 받을 이유가 없다, 내 몫은 따로 계산하겠다'는 말을 어떻게 해야 예의 있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얼렁뚱땅 얻어 먹었다. 다음엔 내가 계산해야겠다.

그 사람은 내가 좀 껄끄러워 하는 걸 눈치챈 모양인지, 원래 자신은 동생들 챙겨주고 밥 사주고 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의심할 만한 근거는 없다. 그 말은 진심일 것이다, 아마도. 하지만 내게 있어선 별 의미가 없다. 

몇 년 전 같았으면, 나도 호의를 순수하게 호의로 받아 들이고 감사했을 것이다. 그리고 '人間'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이루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고 기대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아니다. 나는 이제 호의를 호의로만 여기고 감사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졌다.

 

오래 전에 그러했던 것처럼,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눈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당시의 내 상태는 여러 면에서 극도로 나빴던 주변 상황을 고려해도 확실히 병적인 부분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아마도 그 사람은 내게 선의를 갖고 있고, 진심으로 나를 생각해서 그런 행동을 한 게 맞을 것이다. 다만 내가 그걸 편하게 받아 들일 수 없게 되었을 뿐이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 진심과 선의를 갖는 것은 분명 중요한 거지만, 대단히 무력할 때가 있다. 난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人間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And

성공 취업 프로젝트라고 해서... 열흘 간 관련 교육 받으러 대전에 와 있다. 이런 것도 하고... 작년에 졸업자 취업률이 개판이라 학교가 부실 대학으로 선정되는 바람에 총장이 빡친 모양이다. 그러게 미리 기반 투자 좀 할 것이지 돈과 홍보에 유리한 특정 학과만 밀어줄 때부터 이럴 줄 알았다, 쯧. 

 

머물 곳이 마땅찮아 찜질방에서 지내는 중. 시설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데, 뭐만 하면 추가 요금에 무선 인터넷도 안 잡히고 오픈된 콘센트가 없다는 게 짜증난다(시설 내에 조낸 비싼 소규모 PC방이 있는 걸 보면 일부러 막아 놓은 모양이다) . 노트북이랑 핸드폰 한 번 충전하는데 1000원이라니 더러운 자본주의 같으니 망할... ...은 좀 너무 많이 나갔고, 이 찜질방이 좀 괴랄하다. 길 건너에 고시원이 있던데 거기 단기 계약을 할 걸 그랬나 씨풋. 뭐 그래도 내 돈 내고 지내는 거니 그렇게까지 불편하지는 않다. 아는 사람을 만났는데 당분간 자기 집에서 지내라고 제안하길래... 고맙지만 너무 폐 끼칠 수 없다고 거절했다. 그렇게 했다면 돈이야 굳었겠지만 조낸 가시방석일 거다. 

 

교육을 받으며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교육 과정에 있어 아무래도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한 '꿈과 비전, 열정' 같은 걸 그토록 강조하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저 일자리를 잡아 생계 수단을 확보하는데 급급해 큰 그림을 그릴 줄 모른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기업 입장에서는 꿈과 열정을 담보 삼아 값싸게 부릴 만한 말 잘듣는 사원이 필요하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 문제는 일단 제낀다).

 

내 경우에는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잘 하는 지를 알고 있다. 그러나 내게는 '그래서 구체적으로 현장에서 무엇을 익히고 무슨 일을 해야할지'에 대한 '실무적 요령'이 결여되어 있다. 대개의 다른 사람들과는 반대다. 그런 내 상황에 있어 이 교육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혼자서 삽질하는 것보다야 낫겠지 ㅅㅂ 교육비 자체는 공짜기도 하고. 담배 한 대 피우고 슬슬 자야지, 시끄러워서 어젯밤 잠을 설쳤더니 개피곤하다...  

 

 

And

옛날 옛날 한 옛날, 인종차별 나무가 있었습니다.

인종차별 나무는 마을을 굽어보는 언덕 높은 곳, 토끼풀 가득한 풀밭에 살았습니다. 낮이면 아이들이 찾아와서 사과를 달라 하곤 했습니다. 그러면 인종차별 나무는 가지를 흔들어, 닦지 않아도 빛나는 빨간 사과를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인종차별 나무가 준 사과를 먹고, 인종차별 가지 그늘에서 즐겁게 놀았습니다.

어느 날, 아이들이 새로 이사온 샘이라는 아이을 데리고 인종차별 나무에게 놀러 왔습니다.

"샘한테도 사과를 주세요." 작은 소녀 하나가 부탁했습니다.

"안 되겠는데. 쟤는 흑인이잖아." 나무가 말했습니다. 아이들은 매우 놀랐고, 나무에게 화를 내었습니다. 그래도 나무는 사과를 주지 않고, 오히려 샘을 깜둥이라고 불렀습니다.

아이 하나가 말했습니다. "인종차별 나무가 이렇게 인종을 차별할 줄은 몰랐어." 아이들은 그제서야, 인종차별 나무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은 이런 태도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은 샘이 사과를 못 받는다면 자기들도 사과 따위는 필요 없다며, 그 뒤로 인종차별 나무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인종차별 나무는 매우 고독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몇 주를 혼자 보내다가, 나무는 클로버 풀밭 건너편에서 아이 하나가 연을 날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얘야, 사과를 좀 줄까?" 나무가 간절하게 물었습니다.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ㅈㄲ 이 나치 ㅅㄲ야."

인종차별 나무는 마음이 아주 불편했습니다. 비록 인종차별은 하지만, 그렇다고 히틀러의 파쇼 사상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인종차별 나무는 이제부터 흑인 아이들에게도 사과를 주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인종을 차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계속 그랬다가는 백인 아이들에게 계속 따돌림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사회는 그렇게 진보했습니다.

- 알렉산더 블레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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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는  http://www.tumblr.com/tagged/the-racist-tree

"인종차별은 하지만, 히틀러에게 동조하는 건 아니라구요!"

저렇게 말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엊그제 친구가 조감독과 연출을 맡은 독립 영화 <줄탁동시>를 보고 왔더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니 이 영화에 대해서도 몇 줄 쓸까 했는데... 생각이 잘 정리가 안 된다, 좀 난해하기도 하고. 오랜만에 얼굴도 볼 겸 직접 물어볼까 싶기도 한데 연락이 안 된다. 흥.

And

작년에 결혼한 친구 생각이 났다. 그 친구가 예전에 가져온 소설을 읽었을 때 난 '남편과 요즘 관계가 별로 좋지 않은 모양이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위로해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당시 나는 내 문제만으로도 힘겨웠고, 오래지 않아 그 친구는 당시 남편과 이혼했다. 그리고 작년 말에 재혼했다.

내 가장 큰 문제는 아마도 그것일 것이다. 이기적이라는 것. 분명히 상대방도 나름의 신산과 고뇌가 있을텐데,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줄 줄은 모르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기만을 바란다는 것. 한참 전부터 그 사실을 알고는 있었다.

꽤나 전의 일이지만, 내 이야기는 제쳐 두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려고 노력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어졌다. 그 때 일은... 단순히 그것 외에도 결국 그렇게 될 만한 또 다른 이유에 대해서 나름 추측되는 바가 있긴 한데... 그저 내 추측일 뿐이고, 이미 끝난 일이다.

내 친구인 그 사람은 내가 이야기할 상대가 필요할 때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 사람도 당시 나름의 고뇌와 신산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결혼했고, 이제는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그 사람은 내게 해줄 만큼 해줬고, 난 그 사람에게 아무 것도 돌려주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내가 섣불리 나섰다가는 오히려 부담만 줄 가능성이 높다.

 

진심과 선의는 중요한 것이지만 한없이 무력할 때가 있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그 사람은 충분히 행복할 테고, 굳이 내 진심과 선의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선 그 남편 분과도 이야기를 좀 했었다. 남편 분은 지금까지처럼 그냥 편하게 대해달라고 하셨지만... 뭐, 꼭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어야만 '편한 것'도 아니고.... 그 친구와는 약간 거리를 두는 쪽이 역시 가장 합리적인 답이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착한 남편이 있고, 곧 태어날 아이가 있다. 그 친구는 지금 충분히 행복할 것이다. 이것은 완전한 진실은 아니어도 충분히 객관적인 사실이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내가 굳이 친구로서 뭔가 더 해주고 싶다거나 생각해봤자 해 줄 수 있는 건 별로 없고 오히려 거북하게 느낄 소지가 크다.

지금도 그 사람은 내 친구고, 무언가를 해주고 싶다. 그것은 내 주관적이고 이기적인 욕구의 문제다. 그리고 그 사람은 충분히 행복한 참이고, 굳이 내게서 더 바라는 건 없을 것이다. 내가 뭔가 하려고 했다가는 불편하기만 할 것이다. 이것은 지극히 객관적이고 당연한 현실의 문제다.

예전에 본 영화에서, '대상 곁에서 대상을 지키고 보호해주며 스스로가 느끼는 충족감을 위해 역설적으로 대상에게 위해를 가하는' 종류의 심리를 접한 적이 있다. 이런 심리를 칭하는 전문 용어도 있었던 거 같은데 기억 안난다. 아무튼... 난 그런 짓 못한다. 중요한 것은 내 친구의 행복이지, 내 충족감 같은 이기적인 욕구가 아니다. 난 그런 추잡한 짓 못한다.

곧 출산할텐데... 임산부한테 좋은 과일 같은 거라도 좀 사다가 보내줄까. 딱히 비싼 걸 보낼 정도로 돈도 없고 뭐, 5년 동안 보아 왔고 상대방도 나를 친구로는 여기고 있으니, 그 정도는 뭐 별 부담 없이 받아... 주려나?

행복하기를, 나의 친구.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고, 아마 있더라도 바라지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부디, 행복하길. 친구고 반했던 사람이고 별 텀도 없이 줄줄이 결혼해 버리니 뭐랄까... 쳇ㅋ

....

다시 한 번 읽어보니, 어딘가 비논리적인 부분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좀 더 생각해 보니, 어느 부분이 비논리적인지 알겠다. ....그냥 두지 뭐, 가능성은 낮지만 예전과 같은 경험을 또 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그러니, 지금 이 상태로도 괜찮다.

나는 혼자서도 잘 견딜 수 있을테니까.


 

And

흔들려 버리는 바람에,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 적는 글.

진심과 선의는 무력하다. 픽션에서 '냉정하고 타인에게 기대지 않는 사람이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게 되고 그로 인해 성장하는' 식의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 건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중2병 돋는 인간불신에 빠지거나 하지는 않는다.인간이 人間인 것은, 그만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감정들이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나름의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 그러한 믿음은 지금도 여전하다. 그 모든 고통과, 그 모든 절망을 겪어온 지금도. 그런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내 나이가 이제 서른이다. 난 변하기엔 이미 너무 나이가 들었다. 난 희망을 갖는 게 두려워졌다.

진심과 선의는 중요한 거다. 하지만 그로 인해 '변화'하는 건, 나한테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는 느낌이 든다.

And
1)
요즘 한참 인기많은 <범죄와의 전쟁>을 보고 왔다. 최근 몇 년 동안 본 한국 영화 중 상업 오락영화로서는 하나의 정점을 찍었다고 할 만 하다. 특히 민식이횽이 연기한 최익현의 캐릭터는 좀 짱인 듯. '존내 찌질한 주제에 가오잡기는 좋아하는' 인간형의 묘사가 대단히 입체적이다. 하정우가 탕수육 먹는 거보고 탕수육에 맥주가 급땡겨서... 없는 지갑 털어 탕수육 시켜서 먹고 있는 중.

2)
남들 다 신날 금요일 저녁마다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가... 생각해봤는데, '반했던 그 분과 결혼한 그 어떤 남편놈님에 대한 질투심' 때문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우와 나 존내 찌질한 듯ㅋ

뭐, 시간이 좀 더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괜찮아질 수 없는 종류의 일이 있고, 시간이 약이 되는 종류의 일이 있다. 이번 일은 명백히 후자에 속한다. 그 분은 행복할테고, 난 혼자 견디기만 하면 되니 그것 하나만으로도... 최악의 결과는 아니다.

3)
이제서야 겨우... 내가 '친구'라는 것에 지난 몇 년 간 얼마나 집착해왔는지 알 듯 하다. 내 어린 시절을 돌아보자면 뭐 충분히 가질 수 있을 만한 집착이긴 한데... 합당한 이유가 있는 집착과 망집이라고 해서, 집착과 망집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니다.

난 이제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남들은 빠르면 중고등학교 때 깨닫는 걸 이 나이 먹고서, 그것도 더럽게 비싼 수업료 내고 겨우 배웠다 싶어 좀 허무하긴 한데.

몇 년 전의 내가 지금 내 앞에 있다면 역시 일단 좀 패고 볼 것 같다. 그 다음엔 일으켜 세워서, 술 한 잔을 사줄 것이다. 그런 일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다는 게 아쉽다.

주여, 제가 한 때 더 없이 간절히 바랐던 것을 이제 포기합니다.

And
예전에 친구라고 여겼던 그 누군가의 블로그에 들어갔다. 뭐, 잘 지내고 있나 보다.

내가 아직 그 사람을 친구라고 여겼을 때,  그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신께 몇 번이고 기도했었다. 그 기도는 신께 가닿은 모양이다. 지금의 내가 더 이상 그 사람을 친구라고 여기지 않는 것과는 별도로.


그 사람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그 사람 입장도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하지만 용서할 마음도 전혀 없다.

뭐... 나는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끔 악몽을 꾸는데, 그 사람은 나에 대해선 거의 잊어버린 채 잘 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솔직히 좀 아니꼽긴 한데ㅋ 어쩔 수 없지. 

당시 상황을 대충이나마 아는 다른 친구 녀석 하나는 지금의 삶을 사는데 과거의 기억을 지나치게 덧씌우지 말라고 했었다. 과거의 기억을 덧씌우고 싶지 않았기에 난 노력했었다. 무슨 소리인지 알아 먹기도 힘든 와인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보고, 베토벤이나 바흐 정도나 듣던 클래식 CD를 사고, 전 같으면 별 관심 안 가졌을 발레나 오페라 공연 포스터도 괜히 한 번 더 들여다 보고. 그리고 그 노력들은 결국 아무 의미도 없어졌다.

진심과 선의로 사람을 대한다는 건 중요한 거다. 하지만 그것이 한 없이 무력할 때도 있다. 뭐, 사는 게 그렇다. 이런 삶도 있는 거다.


방문자 목록... ...지우기가 귀찮네, 뭐 그 사람은 내 블로그 타이틀도 기억 못할테니 상관 없겠지. 나도 포트폴리오 쓰다 던져둔 거나 마저 쓸까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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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거 당긴다.... 10만원이라... 눈 딱감고 한방에 들을까 몇 개만 골라 들을까...: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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