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틀 간 강원도 다녀왔다. 할머니는 많이 늙으셨다. 앞으로 별로 오래 사실 것 같지 않다.
아버지와 같이 갔다. 텃밭 잡초 뽑고 이런 저런 잡 일을 같이 하며 적당히 농담도 하고, 같이 술도 마셨다. 스스로 생각해 봐도 아버지에 대해 갖고 있던 감정이 많이 순화된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아버지 얼굴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가 용돈을 좀 주겠다고 하셨지만 알바를 구했으니 괜찮다고 거절했다. 저번에 아버지를 만났을 때도 느낀 거지만... 역시 난 아버지와 많이 닮았다. 외모도 그렇고, 자존심 강하고 약한 소리 못하는 성격도 그렇고.
아버지를 어느 정도는 이해하기 시작했다. 몇 년 정도 더 지나면 아버지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다.
2)
다음 달 합평 모임에, 오랜만에 친구가 남편 분과 같이 나올 모양이다. 그리고 다음 달 쯤엔 나도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을 완성해 가져갈 수 있을 것 같다.
.....
그 날 뒷풀이는 하지 말고 돌아오는 게 나을 것 같다. 이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이다. 그럭저럭 잘 견디고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시 감정이 격해져서, 약간 한심한 꼴을 보일지도 모른다. 우리 모임 사람들과는 5년에 걸쳐 교분을 이어왔고, 취해서 울거나 하는 정도까지 가지 않는 이상 어느 정도는 그래도 괜찮다. 애초에 내가 그 정도로 스스로의 감정을 많이 드러낼 수 있는 상대는 숫자가 매우 적기도 하다. 하지만 그 친구는 이제 갓 아이를 낳았고, 한참 바쁘고 행복하면서도 걱정이 많은... 그런 시기일 것이다.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여러 가지 일들이 많은 상황일텐데 그 앞에서 나만의 감정에 젖어 있는 건 민폐다. 뭔가 도움이 되어줬으면 하지만... 그것도 지나친 참견이 될 수 있는 상황이고. 진심과 선의는 중요한 거지만, 대단히 무력할 때가 있다. 나는 그것을 매우 잘 알고 있으며, 지금도 그럴 때인 것 같다. 그냥... 앞에선 적당히, 이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것처럼 행세하다가... 합평 끝나면 빠져 나와서는 돌아와 혼자 한 잔 하지 뭐.
내 친구는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도 아마,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럭저럭 견딜 만하다.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꿈을 꿨었다. 내가 여전히 마음 한편으로는 바라고 있지만 아마도 절대 이뤄지지 않을 일이 그 꿈 속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아주 조금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