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가는 이야기를 멍하니 들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만일 다시 살아보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면 내게 필요한 건 진정한 우정 따위가 아니라 제대로 된 상담의와 약일 거라고.
하지만 이제 난 굳이 그러고 싶지가 않다. 빨리 죽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기를 원하게 된 이제는.
그래도 그 친구들은,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 잘 살기를 바란다.
한 잔 할까.


비록 나는, 인간관계 따위 싫고 그저 홀로 살다가 가능한 빨리 홀로 죽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기만을 바라는 사람이 됐지만 그래도 그 날 그곳에서 죽은 이들의 영혼은 신의 자비 안에서 안식할 수 있기를 바란다.

분향소 바로 맞은 편에는, 이름부터 극우 냄새 나는 자칭 시민단체 차량이 세워져 있다.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 '그만 해주십시오 -이태원 상인 및 주민 일동'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게 보인다. 그걸 보고 있자면 저 누가복음 귀절에 얼마나 큰 악의가 숨겨질 수 있는지 알게 된다.
새벽 2시 쯤 어떤 쓰레기가 와서 '얘들아 미안하다'고 적힌 문구를 '미안하다 고맙다'라고 고쳐 써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이죽대더라. 순간 욱했는데 타이밍 좋게 옆에 경찰들이 끼어들어서 그 쓰레기를 치워줬다. 그런 식으로 시비 걸어서 싸움판 만든 뒤 합의금 뜯어내거나, '분향소 지킴이가 시민에게 폭력 행사했다'는 식으로 언플하려는 수작일 가능성이 높다. 하마터면 낚여서 칠 뻔했다, 제기랄.
이명박 때 촛불집회는... 그 때도 시위대 내에서 누구는 어디로 가야 한다, 누구는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식으로 의견 대립이 있었고 그 중에는 프락치도 끼어 있었으려니 한다. 하지만 주된 상대는 대체로 전경들이었고, 시민들은 시위대에 비교적 우호적이거나 중립적이었다. 하지만 그 후로 15년이 지났고, 악의는 불특정 다수로 번졌다.
인간이 얼마나 추악하건 달빛만은 밝았다.

뉴스를 보니 신자유연대 양아치들이 바로 앞에서 스피커 틀어놓고 깽판 친다길래 재수 없으면 누구 때려서 깽값 물어줘야 할지도 모르겠다 마음 먹고 나갔는데, 밤 10시가 좀 안 되어 현장에 도착하니 개저씨 몇몇이 1호선 광인처럼 짖어대고 경찰들이 그걸 막고 있는 것 빼면 대체로 조용했다. 12시에 유가족들이 고인에게 한 마디씩 하고는 해산하고, 나는 어떤 어르신과 함께 조문하러 온 사람들 꽃 나눠주다가 아침 8시가 좀 넘어서 자리를 떴다. 바로 옆에 클럽이 있었는데, 외국인들이 춤추며 놀다가 나와 분향소에 헌화하고선 담배 한 대 피고 다시 춤추러 들어가는 걸 보니 기분이 묘했다.
2023년 새해가 절망차게 밝았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난 한 때 명예, 신의, 절조를 지키길 원했다. 이제는 내 신의도 절조도 무가치해졌고, 명예도 그런 것 같다. 하지만 만약 내가 지킬 수 있는 명예가 남아 있다면, 어떤 희망도 없이 죽는 그 날까지 싸우는 것만이 바로 그 명예의 증거일 것이다.
가능하면 빨리 죽어 아무 것도 아닌 게 되길 진심으로 바라지만, 그 날까지는.
하지만, 주여. 그 날 그곳에서 죽은 이들의 영혼은 당신 안에서 안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 영혼이 아닌.
난, 계약이 끝나고 백수가 된지 일주일이 지났다. 좀 짜증나는 부분도 있긴 했지만 그 정도 꿀직장은 다시 다니기 힘들겠지. 친절한 직원도 몇 명 있었고. 통장에 구멍이 뚫릴 뻔 했지만 일단 위험한 고비는 넘겼다. 오늘은 혼자 집에서 영화 보며 술 한 잔 하고, 연말에는 옛 친구들과 약속이 있고, 새해는 이태원 참사 분향소에서 맞이할 생각이다.
주여, 진짜 생신이 아니신 건 알지만 그래도 관행 상의 생신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기왕이면 저는 빨리 죽어 아무 것도 아닌 게 되었으면 합니다.
두 번 다시, 거짓 희망에 혹하지 않을 겁니다.

사실, 난 '사람'이 싫은 게 아니었다. 다만, 난 긍정적인 방향의 감정선이건, 부정적인 방향의 감정선이건... 타인과 일정 이상 마음을 나누고 엮이는 게 싫었던 거다.
대략 지금 직장 사람들과 교류하는 정도 수준의 인간관계만 유지하면서 살다가 죽으면 충분하려니 싶다.
그래도, 가능한 빨리 죽어 아무 것도 아닌 게 되길 바란다.

호러 장르 역시 다른 장르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하부 장르가 있고 저마다 정형화된 클리셰가 다수 존재한다. 그 중 대표적인 클리셰 중 하나가 '물 맑고 공기 좋고 한적한 시골로 놀러 온 도시인들이 음침하고 폐쇄적인 시골 출신 살인마(아니면, 한 때 살인마였던 것)에게 공격받는다'는 내용이다. 미국에서 이런 시놉시스의 B급 호러 영화는 수백 편은 족히 나왔을 것이다.
미국은 땅이 넓고 그에 비해 시골의 인구밀도는 낮다. 특히 남부와 서부 같은 경우는 하루 종일 운전을 해야 겨우 주유소 하나 나올까 말까 한 곳이 흔하다. 이 말은 즉 지역사회의 게토화가 강하다는 의미다. 그에 더해 남부는 지금도 여전히 근본주의적 기독교 교세가 강하고, 공화당을 열성적으로 지지하며, 인종차별적인 경향이 여전히 남아 있는, 백인들 위주의 작은 마을이 많다. 21세기 들어선 많이 변했지만 도시인들은 그들을 '레드넥' '힐빌리' 등의 멸칭으로 부르며 조롱하는 동시에, 자신들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이방인이라는 두려움을 품었으며, 헐리웃 호러 영화에도 예의 그러한 클리셰를 심었다.
이 영화는 그러한 클리셰를 대놓고 뒤집는다. 도시에서 놀러 온 대학생 일행은 비교적 전형적인 구성(보통 섹스를 하다가 죽는 경우가 많은 금발 여자, 운동선수 느낌이 나는 잘생긴 남자, 보통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학구파 여자, 구색맞추기용으로 끼워넣은 조연급 흑인이나 동양인 친구 캐릭터 한두 명 등)이지만 터커와 데일은 촌스럽고 아둔할 망정 선량하고 순박한 농부들이다. 이들은 우연히 마주치고, 대학생 일행 중 한 명인 엘리슨이 수영을 하려다가 물에 빠지자 터커와 데일은 그녀를 구해주지만 먼 발치에서 그걸 본 대학생 일행은 시골뜨기 살인마들이 엘리슨을 납치해갔다고 착각하고는 구출하려고 한다. 그러나 황당한 오해와 실수가 엇갈리면서 진짜 우연히 대학생들은 하나씩 죽어나가기 시작하고, 그걸 본 데일과 터커는 이 대학생들이 도시에서 자살 관광을 하러 온 거라고 착각한다.
이 영화의 주된 포인트는, 각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런 착각이 나름 설득력이 있다는 점이다(별로 현실적이진 않지만, 전통적인 장르 문법에는 매우 충실하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관객은 전지적인 시점으로 양쪽 모두의 입장을 볼 수 있지만 인물들은 각자의 관점에서 합리적으로 행동함에도 불구하고(역시, 장르 문법에 비춰봤을 때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는 의미에서의 합리다) 상황이 점점 더 꼬이며 사람이 죽어나가는 걸 지켜보는 건 고구마와 사이다를 섞어 먹는 듯한 괴이한 즐거움을 준다.
그 외에도 잘려나간 나뭇가지에 몸이 꿰이거나 머리에 못이 박히는 등 순한 맛 고어 씬들이 중간 중간 나오면서 양념을 쳐 주고, 비교적 소소하게 클리셰를 비트는 장면들이 여럿 있어서 보는 내내 지루하지 않다. 그리고 클라이막스의 반전에 이르러서는 주로 호러 영화를 통해 반복적으로 재생성된 '시골뜨기 살인마' 이미지를 역전시킴으로써 클리셰 전복의 즐거움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근본적 의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근본주의적 기독교 교세가 강하고, 공화당을 열성적으로 지지하며, 인종차별적인 경향이 여전히 남아 있는" 그들에 대한 경멸과 공포는 과연 정말로 우리 외부의 그들에게서 비롯한 것일까? 우리는 경멸과 공포를 향할 알기 쉬운 적을 원했던 것 아닐까? 그러한 경멸과 공포가 사람을 괴물로 만드는 것 아닐까?
전체적으로, 꽤나 훌륭한 블랙 코메디 영화(호러나 고어는 기대하면 안 된다). 요즘 내내 우울했는데 오랜만에 웃었다.

이태원 참사 이후로 한 달 가까이 지났다. 집권 여당은 지금도 윤썩엿이 ''바이든'이 아니라 날리면'이라고 발음하는 영상을 내보내서 국익을 침해했다고 MBC 기자를 대통령 전용기에서 쫓아내고 대통령실 출입도 막는 등(덤으로 이로 인해 도어스테핑이 중지된 것에 대해 대통령실 출입 기자단은 아가리를 여물며 기레기 인증을 했다) 찐따짓이란 찐따짓은 다 하고 있는 와중에, 인터넷 매체 '민들레'에서 임의로 희생자 명단을 공개했었다. 친 정권 성향인 측은 일단 제끼고, 윤썩엿 극혐하던 측에서도 이에 대해선 찬반이 갈리는데... 양쪽의 주요 주장은 대강 이렇다.
찬성측:윤썩엿 정권은 유가족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대상도 특정하지 않은 분향소를 설치하고, 근조 문구조차도 없는 검은 리본 패용을 공무원들에게 지시하고,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하는 등 '적당히 애도하는' 분위기만 내면서 정작 아무 책임도 지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우리라도 희생자들을 명확히 호명하고, 그들을 기려야만 한다
반대측:세월호 때도 희생자들 유가족이 밝혀지자 그 분들은 자칭 보수라는 양아치들과 일베 벌레놈들에게 온갖 조롱과 위협을 당했다. 그걸 뻔히 봤으면서 유가족들 동의 없이 명단을 깐 것은 무책임하고 위험하며, 이것 자체로도 유가족들의 상처를 후벼파는 2차 가해가 될 수 있다
2022년 11월 22일 현 시점에서 민변과 유가족들은 명단 공개 여부 자체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 지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고 본다. 윤썩엿 정권은 이제 고작 6개월 지났을 뿐이고, 그들이 보인 무능과 무책임으로 봤을 때 앞으로 또 이러한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또 그런 사고가 일어났을 때 희생자들을 호명하고 기리며, 정치로서 책임을 묻는 행위가 어디까지 가능한가? 만약 희생자 유가족들과 친지들 대부분이 너무도 큰 고통을 견딜 수 없고, 정치인들이 건네는 믿기 힘든 얄팍한 위로와 약속이 지겹고, 알지도 못하던 타인들의 동정이 부담스러워서 그냥 잊혀지는 걸 원한다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개인적인 수준의 '선'의 차원에서 보자면 마땅히 가장 큰 상처를 받았을 희생자 유가족들과 친지들의 의사를 최우선적으로 존중해야 한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가장 큰 피해를 입고 가장 슬퍼하는 사람들은 그들이고, 그렇다면 그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뜻에 따라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차원을 넘어서 보다 거시적인 수준의 '정의'의 차원에서 보자면 설령 희생자 유가족들과 친지들의 의사를 거스르는 한이 있더라도 책임자에게 응당한 처벌을 가하고 향후 또 다른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결국 문제를 공론화하고, 정치의 장으로 끌어내어야만 할 것이다.
이태원 참사에 한정해서는, 현재 유가족들은 민들레의 명단 공개에 대해선 크게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다. 이것만큼은 법적으로도 별 논란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머지 않아 한국민들은 '선'과 '정의'가 충돌하는 순간이 왔을 때, 어느 편에 설 것인가를 결정해야 할 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건 이태원 참사와 맞먹거나 능가하는 또 다른 참사가 터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애초에 그런 참사는 일어나지 않는 쪽이 가장 낫다.

오랜만에 다른 옛날 친구들도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약간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다들 각자 자기 길 가고 있는데, 나만 혼자 뒤에 남아 옛 추억에만 매달리는 기분'을 털어놨다. 다들 성심껏 들어주고, 각자 자신들의 힘든 부분이나 약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기분은 한결 나아졌지만, 사실 내심으로는 여전히 나만이 '미래'를 꿈꿀 수 없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다른 친구들의 고민과 힘겨움은 어디까지나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에서 겪을 만한 것이지만 나는 아니었기에.
여기서 조금만 더 나아가면 '내가 제일 불행하고 힘들다'는 생각에 빠져들어 망가질 거라는 사실을 안다. 그러고 싶지 않다. 그런 생각을 도저히 떨칠 수 없다면 적어도 억누르기라도 해야 한다.
다들 행복하게 잘 살길 바란다.

오늘 근조 문구가 없는 검은 리본을 나눠줬다. 난 안 달 생각이다 씻팔. 이럴 때만큼은 내가 공무원이 아니라 일개 알바라서 다행이다 싶다. 안 달았다고 누가 뭐라고 하면 상대가 동장이건 회장이건 '제 신념에 위배됩니다'라고 말해줄 거다. 지가 어쩔 거야.

연평도 포격 때는 반사적으로 제일 먼저 든 생각이 '이걸 계기로 해서 이명박 정권을 어떻게든 족칠 방법이 없을까' 였다. 다음 순간에 '사람이 죽었는데 그게 할 만한 생각이냐' 싶어서 엄청 자괴감이 들었었다. 이번엔 그런 식으로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나아진 걸지도 모르겠다.
사실 지금도 '윤뻐커가 억지로 용산으로 집무실 옮겨가고 돈은 있는대로 쓰고 호위인력으로 경찰 빼 갔으니 통제 인력 모자라서 사단이 난 거다'는 생각이 안 드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런 생각을 앞세울 때가 아닌 거 같다.
죽은 이들의 명복을 빈다.


민주당과 국혐당이 진심으로 '똑같이 나쁘고 똑같이 더럽다'고 믿는다. 정도 차이나 개선 가능성 같은 건 고려하지 않는다. 윤리적으로 똑같이 나쁜 두 거대정당이 대립하는 상황이라면 더 강한 쪽 편을 들어서 그 쪽 편이 보장하는 체제 내에서의 입신양명을 위해 노력하는 쪽이, 민주당이 자신의 삶을 개선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기보다는 훨씬 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믿는다.
민주당의 부정에는 공정을 외치면서 국혐당의 더 큰 부정에는 침묵하는 데에는 대강 이런 심리가 작용하는 것 아닌가 싶다. '어차피 똑같이 더러운 놈들이 위선 떤다' '내가 보기에도 진짜 완벽하게 선하고 정의롭다면 인정해주겠지만 민주당은 아니다' '나도 힘들어 죽을 지경인데 장애인이나 성소수자 같은 층에 내 세금 낭비하지 마라, 그 핑계로 해먹기나 하겠지' 뭐 그런 심리.
이들이 전통적인 민정당 계열 지지 세대와 다른 점은, 군사독재의 '강력한 리더십'에 대한 향수가 없다는 점이다. 이들이 보기에 그런 건 촌스러울 뿐이고, 노년층이 박정희 영정 앞에서 제사 지내는 사진은 조롱의 대상에 불과하다. 하지만 동시에 '사회운동이니 민주화운동 경력 같은 거 걸어놓고 성추행이나 하는' '스펙 쌓기 위한 노력은 안 하고 데모나 하며 꿀 빨다가 편하게 좋은 직장 잡고 부동산으로 돈 번' '값싸게 쓰고 버릴 수 있는 비정규직을 만들어낸' 민주당 586세대에 대해선 조롱이 아니라 극도의 증오로 대한다.
내가 이렇게 추측하는 근거는, 디씨나 에펨코리아 같은 데서도 민주당과 노무현 문재인 욕하는 글은 념글 치트키 취급을 받지만 윤썩과 '그 당'이 깨끗하고 정의롭다거나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선 '그 당'이 이겨야 한다는 식의 글은 그것대로 또 컨셉 취급받으며 비웃음당하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윤썩 찍은 젊은 세대는 나라를 위해 국힘당을 찍어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국힘의 도덕성에 대해서도 매우 부정적이다. 다만 자신의 이익과 출세를 위해선 국힘당이 정권을 잡는 게 그나마 좀 더 유리하다고 믿으며, 무엇보다 민주당이 증오스러울 뿐이다. 이들의 세계관에선 '국힘은 부패하고 천박하지만 민주당보다 더 강하며, 최소한 자신에게 성공의 기회라도 주는 정당'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국힘보다 강한 것도 아닌 주제에 위선적이고 혐오스러운 정당'이다.
사람을 가장 강하게 결집시키는 건 애정이 아니라 증오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이들이 앞으로도 어디에 투표할지는 명백하다. 기본적으로 '둘 다 똑같이 더럽다'는 믿음이 베이스에 깔려 있고, 당장 별 힘이 없는 소수정당은 애초에 관심 밖이기 때문에 누가 국혐당의 온갖 추잡한 면을 비판하면 반사적으로 상대를 민주당 지지자로 간주하고 '민주당도 똑같다'면서 알레르기적인 반응을 보이는 거지.

가끔 직원들이 먹을 거 사주거나 하면 "전 직원도 아닌데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그냥 동사무소 비품 같은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뭐 그런 말을 한다. 뭐 그 사람들은 '이 사람 자존감이 좀 낮구나' 생각하고 말겠지.
사실 내 딴엔... 일종의 비웃음을 담아서 하는 말이다. 내가 뭐라고 말하건 간에, 너희가 뭐 신경이나 쓰겠냐... 뭐 그런 비웃음. 거기서 일한지 석 달이 지났는데도 직원들 대부분은 내 이름도 모를 걸.
어차피 알바일 뿐이지만 그래도 일을 허투루 할 생각은 없고, 최소한 겉으로는 웃는 낯으로 예의를 지킬 생각이다. 그게 스스로 정한 기준선이다. 그래도 새삼 내가 사람을 싫어한다는 걸 절감한다. 난 사람이 싫고, 사람과 거리를 둬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기왕이면 가능한 빨리 죽어 아무 것도 아닌 게 되고 싶다.
새삼스레 내가 꽤 비틀린 인간이구나 싶다.
어제는 목요일이고 해서 그냥 넘어가고... 오늘 퇴근해서 한 잔 하는 중.
만일 신께 생일선물을 바랄 수 있다면, 가능하면 빨리 죽어 아무 것도 아닌 게 되고 싶다고 바랄 것이다.
그래도, 내가 한 때 소중히 여긴 옛 친구들은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뭐, 그 친구들은 이제 날 기억도 못 하겠지만.

좀 더 자기관리에 노오력을 기울였으면 그런 꼴 안 당했을 거라는 인알들이 많던데, 사실 그건 별로 중요한 이유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그럭저럭 보통 정도의 외모였다 해도 어떤 꼬투리든 잡혔으면 그런 꼴을 당하긴 마찬가지였을 거다. 원래 따돌림 내지 집단 괴롭힘은,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서 하는 게 아니기도 하고.
사람은 그저 상대가 저항하지 못한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상대를 증오할 수 있다. 남자건 여자건 마찬가지다. 난 피해자이기도 했지만 가해자이기도 했었고, 그 사실을 아주 잘 안다.
비 오는 밤이다, 담배 땡긴다.

같은 소설 합평 모임에서 만나, 어느 정도 친분이 생긴 사람이었다.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라지만, 동시에 남들은 다들 각자 자신의 미래로 가고 있는데 나만이 혼자 남아 얼마 되지도 않는 과거의 추억에 매달려 있구나 싶어서 새삼 약간 쓸쓸해졌다.
이것만이 내 운명이라는 걸, 아주 오래 전부터 막연히 알고 있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럭저럭 받아들이게 됐지만, 그래도 가끔은.... 많이 그렇다.
내 옛 친구가 행복하기를. 뭐, 난 성격도 침울하고 경계심도 강하고 이래저래 별로 호감 가는 타입이 아니다 보니 그 사람은 딱히 날 친구로 여기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대강 뭐 친구라고 치자고.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란다.
그리고 난, 홀로 살다 홀로 죽을 수 있기를 바란다. 기왕이면 빠를 수록 좋다.

내게 어느 정도 호감을 보였지만, 그 때 내 상태가 상태였다 보니 일부러 좀 거리를 뒀던 여자애들 중 하나였다. 그 꿈에서 난 그 애 손등에 입을 맞추고는 행복하게 잘 지내라고 말하고는 깼다.
왜 지금 와서 그 애 꿈을 꿨나 모르겠다. 활달하고 매력 있고, 좋은 애긴 했다만 사실 걔도 그렇게 날 좋아했던 것까지는 아니었을지도 모르고. 어...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도 그 애 꿈을 꿨던 거 같은데.
잘 지내길 바란다.
지금의 나는, 그저 혼자 살다 혼자 죽기만을 원하게 됐지만.
나의 이 절망조차도 어떤 측면에선 약간 위안이 된다. 두 번 다시는 하찮은 거짓 희망에 흔들려서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일은 없을 거라는 위안. 절망에는 일종의 안온함이 있다. 난 그 사실을 알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 애는 행복하게, 앞날의 희망을 가지고 잘 살길 바란다.

https://news.v.daum.net/v/20220722110048525
[속보]"재유행 대비 화장로 6기 증설..안치공간도 추가"
[세종=뉴시스]
news.v.daum.net
이 와중에 안철수는 과학방역이란 관료나 정치인이 정무적 판단에 따라 방역 정책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전문가가 과학적 근거를 갖고 결정하는 것이라고 입 털었다. 국혐당 패거리가 저 지랄을 하는 거야말로 싸이언쓰겠지.
오래 전부터 했던 생각이지만, 국혐당 놈들의 현실적인 영향력과 저력을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투표에서 표 줄 가치가 있는 민주국가의 보수정당 취급해주면 안 된다. 놈들은 국가를 운영하는 정치 집단이 아니라, 국가의 이름을 앞세워 자기 앞으로 해먹을 생각 밖에 없는 모리배 집단이다.

이번엔 그 분과 맺어져서 함께 여행을 다니는 꿈이었다. 어떤 평행세계의 나는 실제로 그렇게 됐을 지도 모르지ㅋ
내가 반했던 여자가 그 분 뿐인 것도 아닌데 꿈에는 그 분만 나온다. 뭐... 그 사람이 좀 각별하긴 했었지. 이젠 의미 없지만.
이제는 꿈 속에서 그 분을 보면 '아, 꿈이구나' 하고 알아차린다. 사실 그 꿈 속에서는.... 행복하다. 깰 때마다 그 행복은 결코 내가 현실에서 가질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절감하게 될 뿐이다.
난 오늘도 내 남루한 현실을 다시 견뎌가야 할 테지만, 그래도 그 분은 행복하게 잘 사시길 바란다.

그 사람이 떠나고, 난 꿈 속에서 다시 꿈을 꿔 그 사람을 만나고, '이게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생각을 하다가 깨어나 그 사람을 쫓고, 마침 되돌아오던 그 사람과 만나는 꿈이었다.
난 그 꿈 속에서조차도, 이것은 현실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 꿈 속의 꿈이었다는 사실이 좀 달콤하면서도 슬프다.
10년이 더 넘었으니, 이제 그 사람은 날 잊었으려니 한다. 그래도 괜찮다. 모쪼록, 행복하기를.

곰팡이가 슬었길래 그냥 버렸다. 사실 피자 한 쪽 그 까이꺼 별로 비싼 것도 아닌데 내내 기분이 언짢은 건 '힘들 때 먹으려고 아껴 놓았던 것' 자체가 무의미해져서 그런 거겠지. 이 나이나 되서는 어린애처럼 그런 거 가지고 처진다는 것 자체가 좀 짜증나기도 하고.

종종 꾸곤 한다. 한 때 가깝게 지냈던, 그러나 이제는 내가 너무 많이 변해 버리는 바람에... 여전히 그립긴 하지만 우연히 다시 만난다면 다시 그 때처럼 웃으면서 볼 자신이 없는 친구들의 꿈을. 그 꿈 속에서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그 친구들과 웃고 떠들면서 어울리고, 그러다 깰 때마다 마음이 아팠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꿈 속에서도, 그 친구들은 멀리서 웃고 있고 나는 일부러 그 친구들을 피했었다.
꿈이 현실을 닮아간다는 건 그것대로 슬픈 일이다.

남들이 뭐라고 하건, 현실이 어떻건, 결과가 어떻건 간에 나는 좌파이며 좌파로서 원하는 것을 할 것이다. 그에 대해선 고민도 후회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개인적 차원에서는 가능한 빨리 죽어서,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한다. 애초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바람이나 빗방울이나 모래알 같은 것이었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