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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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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5.04.03
    이른바 '대치 키즈' 담론을 보고 든 생각

전부터 막연히 '집안 형편은 중산층 이상이지만 부모의 거의 광적인 교육열로 인해 사교육 시장에 혹독히 내몰리는, 어떻게든 그에 부응해 기득권 엘리트 코스를 밟는데 성공하면 자신이 보수라고 믿는 혐오스런 괴물이 되고 그에 실패하면 낙오자 취급받는 아이들'의 존재를 알고는 있었지만 솔직히 큰 관심사는 아니었다. 그를 직접 다룬 인기 드라마(스카이 캐슬이라거나)도 있었고, 이런 저런 다른 작품에서도 부분적으로 묘사되긴 했지만 별로 집중해서 보지도 않았고.

그러다가 우연히 트위터 쪽에서 관련 글을 보게 됐다. 스스로가 그러한 아이들 중 하나이며 그에 적응하지 못해서 미치거나 자살한 친구들이 주변에 여럿 있다는 내용이었다. 작성자는 그것이 교육이 아니라 아동학대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솔까말 처음 읽었을 때는 "니들도 힘든 건 알겠는데, 그래서 결국 엘리트 코스 못 타도 부모 돈 덕에 최소한의 안전망은 보장되어 있잖아" "극단적인 경쟁과 승리만을 강조하는 교육 방식에 고통받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고 니들은 하다못해 돈이라도 많지" 뭐 그런 생각이 앞서서 고깝게 보이긴 했다. 하지만 '학대이긴 하지만 특권인 것도 맞다' '당장의 끼니를 벌기 위해서 공부만을 강요당하는 환경조차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뭐냐' '트위터에서 징징대지 말고 니 부모를 원망해라, 부모랑 절연하든가'라는 조롱과 욕설들이 인용으로 줄줄이 달려 있는 걸 보고 있자니 뭔가 마음에 걸렸다. 좀 더 생각해 보니 뭐가 마음에 걸렸는지 알겠더라고.


절박한 사람의 고통에 서열을 매겨서는 안 되는 거다.


나는 생물학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남자고, 일단 이성애자다(보통 말하는 '시헤남'이다). 또한 부모의 간섭에서 상당 부분 자유로운 성인이고, 별다른 장애도 없다. 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난 '표준, 주류'에 속하며 그것 자체가 어느 정도 권력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리고 한편으로 나는 어린 시절 혹독한 경험을 했고, 그 경험으로 인해 정서적으로 꽤나 많이 비틀렸기도 하다. 군대에선 특히 좀 많이... 좀 많이 힘들었고, 제대한 이후에야 나름 스스로의 문제를 자각하고 고쳐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모두 실패하고는 자살을 시도했고, 적어도 내 일부는 그 때 죽은 것 같다. 그런 개인적 경험과, 종교에 매달리는 어머니, 비겁한 아버지,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하루에 1끼로 때우는 가난, 이젠 더 이상 젊지 않은 나이, 좋은 작가가 되고 싶다는 도저히 놓을 수 없는 꿈 때문에 괴로워하는 망가진 인간이기도 하다. 가끔은 스스로가 '인간'조차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또한 동시에 자본주의와 국가주의, 전체주의를 혐오하는 좌파이기도 하다. 

윤석열의 내란 이후 집회에 나가며, 그동안 책을 통해서만 접해 온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들었다(나는 이명박 때부터 집회에 나갔지만, 그런 이들의 목소리를 가까이서 들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 어쩌면 듣고서도 흘려버린 걸지도 모른다). 나와 같은 하류층 노동자는 물론 여성, 농민, 화교, 장애인, 퀴어, 트랜스젠더... 그들 모두가 저마다의 좌절과 신산을 겪고 있으며 윤석열의 탄핵과 구속만이 아니라 그 이후에 와야 할 개혁과 더 나은 나라에 대한 비전과 열망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목소리를 들으며 투쟁했다. 국회 앞에서, 경복궁에서, 남태령에서, 한강진에서. 그리고 다시 남태령에서. 그리고 내일은 헌재 앞에서.


고통에 급수와 서열을 따지기 시작하면 결국 내가 가장 불행하고 큰 피해를 입었으며 나보다 작은 불행과 작은 피해를 입은 상대는 닥쳐야 하고 내가 가장 큰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식으로 사고가 흐르게 된다. 지금 저짝 극우 패거리들 중 상당수를 점하는, '페미와 PC충과 꿘들이 우리를 억압하고 나라를 중국에 팔려고 한다'고 믿는 이삼대남들이 바로 그러하듯.

세계는 어둡고 비참하며 추악한 곳이다. 언제나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 세계에 속한 인간은, 나는, 당신은, 스스로의 고통과 절망이 남의 그것보다 중요하다고 믿기를 거부할 수 있다. 우리는 서로의 고통과 절망을 덜기 위해 연대할 수 있다. 흙탕물에도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그 연꽃의 만다라야말로, 탄핵 이후 우리가 다시 만들 세계다.   


대치 키즈들이 겪었을 고통에 진심어린 위로를 전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들 역시 광장으로 나와 윤석열 탄핵을, 구속을, 새로울 세계를 함께 추구하길 바란다. 난 비록 이런 인간이다 보니 친구나 연인 같은 건 될 수 없어도, 함께 싸우는 동지는 될 수 있다. 

 

  PS=이 분 트윗 좋다. 

https://x.com/symposion_/status/1907570138876096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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