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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를 위한 연대는 괜찮다. 그리고 그 연대를 통해 큰 승리를 하나 거뒀다. 좋은 일이다. 앞으로도 국혐 해체, 차금법 통과부터 해서 이뤄야 할 일이 많다.
하지만 이 정도 했으면 됐고 빨리 죽어서 無가 되고 싶다는... 젖혀뒀던 욕망도 슬슬 다시 밀려온다. 트위터 쪽에서 텅 빈 광화문 사진을 보았다. 깃발과 천막이 모두 떠나간 광화문 광장은 비 속에서 적막했다.
한 번 죽으려다가 실패했다. 다시 올 그 때까지, 누구와도 사적인 깊은 감정을 나누고 싶지 않다. 그런 건 인간이나 하는 거다.
어떤 결과가 나오건 (높은 확률로 극우 놈들이 먼저 시비 걸어서) 폭력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몸빵이라도 하자는 생각으로 오늘 휴가 내고 헌재 앞으로 갔다. 경찰들이 막고 있어서 헌재 바로 앞까지는 못 갔지만 아무튼.
어쩌면 크게 다칠지도 모른다고 나름 비장하게 각오하다가 그런 스스로가 좀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하늘도 그런 날 웃기게 봤는지 현장에는 사람이 넘쳐나고 분위기는 안전 그 자체였다. 뻘쭘해 하는 나를 반겨준 마교 깃발. 저 깃발 지난 1월 비정규직 집회 때도 봤던 거 같은데?
평일인데도 10만은 온 듯 했다.
익숙한 문구가 보여서 한 장 찍었다. "분노를 노래하소서"
공룡들이 지구 온난화를 두고 인간들에게 너도 멸종되지 않게 조심하라고 걱정해주고 있었다(거짓말)
어떤 어르신이 데리고 나온 댕댕이들이 귀여워서 한 장.
LED 없는 정대만 깃발 발견.
이름 모를 저항군이 포스가 함께 하기를 빌어줬다.
저번에 본 곰 다시 발견. 민주당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곰탈은 죄가 없지.
최선두에서 방송보는 중. 나도 모르게 성호 긋고 기도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소서...
탄핵 인용 선언 직전, 웬 비둘기 한 마리가 방송 스크린 너머 가로등 위에 날아와 앉았다.
그리고 드디어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라는 선언이 떨어지는 순간, 얼싸 안는 한복 차림의 여자분 둘. 퀴어 커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12월 3일 이후 123일 간 이어지던 그 춥고 어두운 겨울밤이 드디어 끝을 맞이했다. 조금 울었다. 기쁘다는 감정을 마지막으로 느낀지 10년이 넘었고, 그 때의 그 기쁨마저도 절망으로 변했다. 이제 난 기쁨을 느끼는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가능했구나. 스스로가 꽤나 뒤틀리고 냉소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해왔는데, 가끔은 스스로가 인간조차도 아닌 것 같은데 아직 기뻐하고 눈물흘릴 수 있었구나.
누가 적어둔 대로, 진짜 8:0 만장일치로 인용됐다.
붕어빵 천원에 3개 협회 깃발 저것도 소소하게 반가웠지만 굳이 아는 척은 안 했다.
남태령 깃발도 이하동문.
아카이아 노조 깃발 기수분에게는 짧게 인사. 옆에 다른 트위터 지인도 계시더라.
황금거룡 깃발 옆 무진장 떡볶이 단골연합
전에 몇 차례 본 적 있는 타디스 도둑 협회 깃발. 과감히 직접 말 걸어서 사진 찍게 펼쳐달라고 부탁했다. 웃는 낯으로 허락해 주셔 감사합니다.
오늘이 생일이셨다는 분. 피켓 찍고 생일 축하드린다고 인사한 뒤 괜히 창피해져서 도망쳤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순신 장군님, 그 때 그러했듯 이번에도 저희가 승리했습니다.
우리는 큰 전투에서 한 번 승리했다. 하지만 룬썩10 탄핵은 시작에 불과하다. 좌파로서, 이 정도로 만족할 수는 없다. 다음 과제는 국혐 정당 해체와 차금법 통과 그 둘이다(그리고 유력한 차기 대통령인 이재명은 앞쪽이라면 모를까 뒷쪽에는 부정적이다). 앞으로도 길고 힘든 싸움이 이어지겠지만 오늘 하루 정도는 비싼 거 먹으면서 마음껏 축하하자는 생각으로 족발 사왔다.
이런 걸 썼었다(도사려 숨은 굿것 내어 몰아라라는 저 문구는 한겨레 신문에도 실렸다). 이제 운명의 나라가 열리고 와야만 할 그 날이 오고 있다. 오늘은 2025년 봄이 피는 첫 날이다.
전부터 막연히 '집안 형편은 중산층 이상이지만 부모의 거의 광적인 교육열로 인해 사교육 시장에 혹독히 내몰리는, 어떻게든 그에 부응해 기득권 엘리트 코스를 밟는데 성공하면 자신이 보수라고 믿는 혐오스런 괴물이 되고 그에 실패하면 낙오자 취급받는 아이들'의 존재를 알고는 있었지만 솔직히 큰 관심사는 아니었다. 그를 직접 다룬 인기 드라마(스카이 캐슬이라거나)도 있었고, 이런 저런 다른 작품에서도 부분적으로 묘사되긴 했지만 별로 집중해서 보지도 않았고.
그러다가 우연히 트위터 쪽에서 관련 글을 보게 됐다. 스스로가 그러한 아이들 중 하나이며 그에 적응하지 못해서 미치거나 자살한 친구들이 주변에 여럿 있다는 내용이었다. 작성자는 그것이 교육이 아니라 아동학대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솔까말 처음 읽었을 때는 "니들도 힘든 건 알겠는데, 그래서 결국 엘리트 코스 못 타도 부모 돈 덕에 최소한의 안전망은 보장되어 있잖아" "극단적인 경쟁과 승리만을 강조하는 교육 방식에 고통받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고 니들은 하다못해 돈이라도 많지" 뭐 그런 생각이 앞서서 고깝게 보이긴 했다. 하지만 '학대이긴 하지만 특권인 것도 맞다' '당장의 끼니를 벌기 위해서 공부만을 강요당하는 환경조차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뭐냐' '트위터에서 징징대지 말고 니 부모를 원망해라, 부모랑 절연하든가'라는 조롱과 욕설들이 인용으로 줄줄이 달려 있는 걸 보고 있자니 뭔가 마음에 걸렸다. 좀 더 생각해 보니 뭐가 마음에 걸렸는지 알겠더라고.
절박한 사람의 고통에 서열을 매겨서는 안 되는 거다.
나는 생물학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남자고, 일단 이성애자다(보통 말하는 '시헤남'이다). 또한 부모의 간섭에서 상당 부분 자유로운 성인이고, 별다른 장애도 없다. 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난 '표준, 주류'에 속하며 그것 자체가 어느 정도 권력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리고 한편으로 나는 어린 시절 혹독한 경험을 했고, 그 경험으로 인해 정서적으로 꽤나 많이 비틀렸기도 하다. 군대에선 특히 좀 많이... 좀 많이 힘들었고, 제대한 이후에야 나름 스스로의 문제를 자각하고 고쳐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모두 실패하고는 자살을 시도했고, 적어도 내 일부는 그 때 죽은 것 같다. 그런 개인적 경험과, 종교에 매달리는 어머니, 비겁한 아버지,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하루에 1끼로 때우는 가난, 이젠 더 이상 젊지 않은 나이, 좋은 작가가 되고 싶다는 도저히 놓을 수 없는 꿈 때문에 괴로워하는 망가진 인간이기도 하다. 가끔은 스스로가 '인간'조차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또한 동시에 자본주의와 국가주의, 전체주의를 혐오하는 좌파이기도 하다.
윤석열의 내란 이후 집회에 나가며, 그동안 책을 통해서만 접해 온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들었다(나는 이명박 때부터 집회에 나갔지만, 그런 이들의 목소리를 가까이서 들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 어쩌면 듣고서도 흘려버린 걸지도 모른다). 나와 같은 하류층 노동자는 물론 여성, 농민, 화교, 장애인, 퀴어, 트랜스젠더... 그들 모두가 저마다의 좌절과 신산을 겪고 있으며 윤석열의 탄핵과 구속만이 아니라 그 이후에 와야 할 개혁과 더 나은 나라에 대한 비전과 열망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목소리를 들으며 투쟁했다. 국회 앞에서, 경복궁에서, 남태령에서, 한강진에서. 그리고 다시 남태령에서. 그리고 내일은 헌재 앞에서.
고통에 급수와 서열을 따지기 시작하면 결국 내가 가장 불행하고 큰 피해를 입었으며 나보다 작은 불행과 작은 피해를 입은 상대는 닥쳐야 하고 내가 가장 큰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식으로 사고가 흐르게 된다. 지금 저짝 극우 패거리들 중 상당수를 점하는, '페미와 PC충과 꿘들이 우리를 억압하고 나라를 중국에 팔려고 한다'고 믿는 이삼대남들이 바로 그러하듯.
세계는 어둡고 비참하며 추악한 곳이다. 언제나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 세계에 속한 인간은, 나는, 당신은, 스스로의 고통과 절망이 남의 그것보다 중요하다고 믿기를 거부할 수 있다. 우리는 서로의 고통과 절망을 덜기 위해 연대할 수 있다. 흙탕물에도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그 연꽃의 만다라야말로, 탄핵 이후 우리가 다시 만들 세계다.
대치 키즈들이 겪었을 고통에 진심어린 위로를 전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들 역시 광장으로 나와 윤석열 탄핵을, 구속을, 새로울 세계를 함께 추구하길 바란다. 난 비록 이런 인간이다 보니 친구나 연인 같은 건 될 수 없어도, 함께 싸우는 동지는 될 수 있다.
PS=이 분 트윗 좋다.
https://x.com/symposion_/status/1907570138876096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