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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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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 장르 역시 다른 장르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하부 장르가 있고 저마다 정형화된 클리셰가 다수 존재한다. 그 중 대표적인 클리셰 중 하나가 '물 맑고 공기 좋고 한적한 시골로 놀러 온 도시인들이 음침하고 폐쇄적인 시골 출신 살인마(아니면, 한 때 살인마였던 것)에게 공격받는다'는 내용이다. 미국에서 이런 시놉시스의 B급 호러 영화는 수백 편은 족히 나왔을 것이다.

미국은 땅이 넓고 그에 비해 시골의 인구밀도는 낮다. 특히 남부와 서부 같은 경우는 하루 종일 운전을 해야 겨우 주유소 하나 나올까 말까 한 곳이 흔하다. 이 말은 즉 지역사회의 게토화가 강하다는 의미다. 그에 더해 남부는 지금도 여전히 근본주의적 기독교 교세가 강하고, 공화당을 열성적으로 지지하며, 인종차별적인 경향이 여전히 남아 있는, 백인들 위주의 작은 마을이 많다. 21세기 들어선 많이 변했지만 도시인들은 그들을 '레드넥' '힐빌리' 등의 멸칭으로 부르며 조롱하는 동시에, 자신들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이방인이라는 두려움을 품었으며, 헐리웃 호러 영화에도 예의 그러한 클리셰를 심었다.

이 영화는 그러한 클리셰를 대놓고 뒤집는다. 도시에서 놀러 온 대학생 일행은 비교적 전형적인 구성(보통 섹스를 하다가 죽는 경우가 많은 금발 여자, 운동선수 느낌이 나는 잘생긴 남자, 보통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학구파 여자, 구색맞추기용으로 끼워넣은 조연급 흑인이나 동양인 친구 캐릭터 한두 명 등)이지만 터커와 데일은 촌스럽고 아둔할 망정 선량하고 순박한 농부들이다. 이들은 우연히 마주치고, 대학생 일행 중 한 명인 엘리슨이 수영을 하려다가 물에 빠지자 터커와 데일은 그녀를 구해주지만 먼 발치에서 그걸 본 대학생 일행은 시골뜨기 살인마들이 엘리슨을 납치해갔다고 착각하고는 구출하려고 한다. 그러나 황당한 오해와 실수가 엇갈리면서 진짜 우연히 대학생들은 하나씩 죽어나가기 시작하고, 그걸 본 데일과 터커는 이 대학생들이 도시에서 자살 관광을 하러 온 거라고 착각한다. 

이 영화의 주된 포인트는, 각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런 착각이 나름 설득력이 있다는 점이다(별로 현실적이진 않지만, 전통적인 장르 문법에는 매우 충실하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관객은 전지적인 시점으로 양쪽 모두의 입장을 볼 수 있지만 인물들은 각자의 관점에서 합리적으로 행동함에도 불구하고(역시, 장르 문법에 비춰봤을 때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는 의미에서의 합리다) 상황이 점점 더 꼬이며 사람이 죽어나가는 걸 지켜보는 건 고구마와 사이다를 섞어 먹는 듯한 괴이한 즐거움을 준다. 

그 외에도 잘려나간 나뭇가지에 몸이 꿰이거나 머리에 못이 박히는 등 순한 맛 고어 씬들이 중간 중간 나오면서 양념을 쳐 주고, 비교적 소소하게 클리셰를 비트는 장면들이 여럿 있어서 보는 내내 지루하지 않다. 그리고 클라이막스의 반전에 이르러서는 주로 호러 영화를 통해 반복적으로 재생성된 '시골뜨기 살인마' 이미지를 역전시킴으로써 클리셰 전복의 즐거움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근본적 의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근본주의적 기독교 교세가 강하고, 공화당을 열성적으로 지지하며, 인종차별적인 경향이 여전히 남아 있는" 그들에 대한 경멸과 공포는 과연 정말로 우리 외부의 그들에게서 비롯한 것일까? 우리는 경멸과 공포를 향할 알기 쉬운 적을 원했던 것 아닐까? 그러한 경멸과 공포가 사람을 괴물로 만드는 것 아닐까?


전체적으로, 꽤나 훌륭한 블랙 코메디 영화(호러나 고어는 기대하면 안 된다). 요즘 내내 우울했는데 오랜만에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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