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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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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왕국> 봄-All hail Queen Elsa!
  2. 2014.07.20
    <로보캅>(1987년 판) 다시 봄-기계의 몸, 경찰로서의 임무, 인간으로서의 실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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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2012.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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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2012.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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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2012.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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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2012.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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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2012.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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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2011.10.10
    <도가니>보고 옴 2
  24. 2011.09.29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보고 옴
  25. 2010.12.22
    두근두근 시국선언

 

 

백설공주이래로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는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미국 애니메이션의 태산북두로 군림해왔다. 애니메이션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디즈니야말로 미키 마우스와 도덜드 덕의 고향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으며, 디즈니에서 만든 작품들 이름을 몇 개 정도는 댈 수 있다. 그러나 그 명성과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최근 10년 동안 디즈니는 2인자로 취급하던 드림웍스가 슈렉쿵푸 팬더라는 히트작을 내놓으며 위상이 추락했고, 심지어는 자회사인 픽사조차도 토이 스토리-E로 승승장구하는 가운데 마땅히 이렇다 할 성공작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1999년의 타잔을 마지막으로 10년 이상의 내리막길을 걷고 있던 디즈니는 팬들 사이에서 미국 애니메이션 장르의 첫 번째 개척자이자 첫 번째 본좌로서 경의를 바칠 만한 대상은 될 수는 있을망정 더 이상 젊은 소비자들의 새로운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는 없다고 여겨지는- 냉정하게 말하자면 애니메이션 장르에 있어서 역사적인 의미와 상징성 외에는 더 이상 기여할 게 없는 퇴물로 전락해 잊힐 위기에 처해 있었다. 디즈니가 이대로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내는 창조집단으로서의 위치를 상실 내지 포기하고서 단지 우수한 마케팅과 매니지먼트 능력만을 지닌 기업이 될 것인가 아니면 지난 세월 동안 몇 차례나 위기를 극복하며 쌓아온 저력을 다시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는 팬덤 내에서 초유의 관심사가 되어 왔다. 2010년의 라푼젤2억 불 이상을 벌어들이며 흥행에 성공한 후에도 이것을 재기의 신호탄으로 봐야 할지 회광반조로 봐야 할지에 대해선 논란이 가시지 않았지만, 20141(현지 기준으로는 1311) 디즈니는 지금까지 없었던 아주 특별한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 작품, 겨울왕국이 미국 애니메이션 사에서 갖는 의의나 장면 연출, 음악, 두 주인공들인 엘사와 안나 자매 간의 유대감과 가족애 등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분석이 이뤄졌고 아직도 더 깊이 파헤쳐볼 여지가 남아 있으나 본 글에서는 아렌델의 여왕, 엘사에 대해 초점을 맞춰보고자 한다.

 

인권 의식이 신장되고 페미니즘의 싹이 트며, 디즈니 애니메이션 속의 공주 캐릭터들은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초기에는 공주라는 우월한 사회적 위치에 더해 아름답고 선량하지만 단지 그 뿐이었던 공주 캐릭터들은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왕자라는 존재로 상징되는, 이상화된 남성상을 체현하는 상대 캐릭터 못지않게 똑똑하거나 나름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 등으로 묘사의 다양화가 이뤄졌고 개중에는 이야기 속에서 제법 적극적으로 그를 활용해 난국을 타개하거나 전통적인 이야기 구조와는 반대로 위기에 처한 왕자를 자기 손으로 구출하는 역할을 맡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그녀가 부여받는 역할은 어디까지나 왕자와 사랑에 빠지고 온갖 역경을 거친 끝에 그와 결혼하여 해피엔딩을 맞이하는, 즉 좋은 남자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는 것이 여자의 이상적 행복이라는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세계관에 종속되어 있으며 그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왕국의 공주까지는 아니어도 그에 준하는 높은 사회적 위치와 부, 무엇보다도 (그와 비슷한 물질적 조건을 갖춘) 멋진 남자 없이는 행복해질 수 없다는 식의 박탈감을 조장한다는 비판도 뒤따랐다.

 

그러나 이 영화 속의 엘사는 그러한 공주 캐릭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완전히 진일보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위험하고 통제하기 어려운 특별한 힘을 선천적으로 타고났다. 왕과 왕비는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그녀의 일부이기도 한 그 힘을 통제하고 관리하려고만 할 뿐이다. 자문을 위해 찾아간 트롤들의 수장인 패비 할아버지가 진정한 사랑이 필요하다고 조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왕과 왕비가 한 일이라고는 안나의 기억 중 엘사의 힘에 대한 부분을 지우고서 엘사를 고립시킨 것뿐이다(동생을 상처 입혔다는 엘사 본인의 죄책감도 한 몫 했지만). 자신을 사랑하고 걱정해주긴 하지만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자신의 힘에 대해서는 불신과 두려움으로 일관하며 억누르려고만 하는- 즉 어떤 이해도 내비치지 않는 부모의 처우, 대관식 날이 되어 방 밖으로 나가게 되었지만 여전히 언제까지고 힘을 숨긴 채 이상적인 여왕을 원하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감,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와 만난 지 하루도 안 되어 결혼하겠다는 동생에 이르기까지 사방이 온통 그녀를 억압하는 요소들 뿐이다. 숨기려고 했던 힘이 드러나고 사람들이 자신을 마녀라고 부르는 장면에서 그 억압성은 극대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세상에 대해 원한을 품는 대신 자신의 힘이 가진 위험성을 인정하고서 홀로 살아가는 쪽을 선택하고, 형언할 수 없는 고독과 동시에 무한한 자유를 느낀다. 세상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절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그녀의 태도가 수동적이며 그 자유도 반쪽짜리에 불과하다는 비판은 어느 정도 합당하지만 그 정도의 고립과 억압을 겪고서도 자신의 힘에 도취되거나 세상에 복수하려고 하지 않고 자기의 내면에서나마 그러한 자존과 독립성을 일궈낸 캐릭터는 공주만이 아니라 역대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거의 모든 캐릭터를 통틀어 엘사가 거의 유일하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의 신분이나 특별한 힘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보편적인 정서에 강한 호소력을 갖는다.

 

엘사의 그러한 독보적인 캐릭터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영화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서의 본분에 충실하게, 결국 악당의 음모는 밝혀지고 엘사와 안나는 자매애를 회복하며 왕국은 평화를 되찾는다. 개인적으로는 홀로 산 위에서 노래하며 한 없이 차디차 보이면서도 아름다운 얼음의 성을 지어 올리는 그 시점에서 그녀가 느낄, 그 한 없이 슬프고 고독하면서도 드높고 깨끗한 자유도 충분히 가치 있다고 보지만 인간적인 행복이라는 면에서 보면 이런 결말이 더 낫긴 하다. 그녀는 타자화된 공주’- Let it go의 가사를 빌어 표현하자면 착한 아이’-가 아닌,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왕권을 행사하는 여왕으로서 아렌델을 훌륭히 다스릴 것이다. 여왕이시여, 만수무강하소서. Long live the Queen.

 

 

사실은 이 움짤이 보고 싶었다, 여왕님 ㅎㅇㅎㅇ

And

 

 

새로운 로보캅을 관람하기 전, 다시 한 번 먼지 쌓인 DVD 박스를 뒤져서 폴 버호벤 감독의 오리지널 <로보캅>을 다시 꺼내봤다. 전작으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이후 새로 나온 후속편을 보기 전이나, 오리지널이 따로 있는 영화의 리메이크 작을 보기 전마다 필자는 거의 반드시 이러한 과정을 거치곤 한다.

 

198712월 한국에서 개봉한 이 영화의 배경은 근미래의 미국 디트로이트 시로, 디트로이트는 산업혁명 시기에 자동차 산업을 통해 한 시대를 풍미한 대도시였다. 여기서 우선 방점을 찍고 살펴봐야 할 부분은, 미국 문화에서 자동차라는 물건이 갖는 상징성이다.

 

고대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바이킹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동서로부터 얼어붙은 베링 해협과 아이슬란드를 거쳐 이 땅에 도착했고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이 땅을 신대륙으로 선포했으며 그 후 스페인과 프랑스, 영국으로 대표되는 유럽 열강들이 앞 다투어 이 땅으로 건너와 인디언들과 교역을 하고 식민지를 설립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공유하고 있던 공통된 믿음이 있었으니, 이미 오랜 세월 전부터 그 땅에 터를 잡아 살아오며 -그 문명의 성격이 백인들의 그것과 달랐을 뿐- 이미 고유한 문명을 확립하고 있던 인디언들은 야만인들에 불과하며 자신들은 개화된 인간으로서 이 신천지를 자유로이 탐험하고 개척할 권리가 있다는 신념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 땅은 끝도 없이 넓어 보였고, 백인들은 말을 몰고 그 광활한 땅을 돌아다니며 발길이 닿는 모든 땅의 주인이 될 권한을 스스로에게 부여했다. 다른 열강들과의 식민지 다툼에서 승리하고 미국을 건국한 이후에도 미국인의 시조들은 그러한 모험심과 개척의지, 프론티어 정신이야말로 미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임을 천명했다. 그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경우에 따라선 피붙이만큼이나 가까운 관계로 맺어진 짐승이 바로 말이었고, 세월과 함께 말은 자동차로 모습을 바꿨다. 지금도 미국인들에게 있어 자동차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주인의 사회적 지위와 부, 품위의 상징이며 아낌없는 애정의 대상이다. 미국에서는 부유층은 물론 어느 정도 먹고 살 걱정이 없는 중산층만 되도 아들이 대학에 입학하면 새 자동차를 선물해 주는 것이 흔한 풍습이며, 아들은 차에 별명을 지어주고 주말마다 세차를 해주고 교외로 그를 몰고 나가 데이트 상대를 찾는다. 미국인들에게 있어 자동차가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는 마이클 베이 감독의 2007년 영화 <트랜스포머>에서도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총기와 더불어 미국 문화의 양대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자동차 산업에 있어서, 이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의 디트로이트는 일본에 선두 자리를 내주고서 이미 쇠락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를 반영해서인지, <로보캅>의 디트로이트는 온갖 범죄와 부패가 횡행하는, 현대 자본주의에 지배되는 대도시의 타락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대도시다. 경찰로 대표되는 공권력은 민영화되어 있고, 민선 시장은 실권이 없으며, 뒷골목에서는 폭력 조직들이 난립하고 빈민들은 비참하게 죽어간다. 하지만 도시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대기업 OCP는 그에 신경 쓰지 않는다.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대기업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되건 더럽고 무질서한빈민가를 모두 철거하고 그 자리에 새로 세련된 첨단 고층건물들을 지으려고 한다. 이러한 혼란의 시기에, 폭력 조직과 싸우던 중 순직한 경찰 알렉스 머피는 OCP에 의해 유해가 회수되어 영화의 캐치프레이즈대로 절반 기계, 절반 인간, 완전한 경찰인 로보캅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러나 OCP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시민들에게 봉사하고 공공질서를 위해 헌신하는 경찰이 아니라, 회사의 이익을 보호하고 불순분자들을 법질서 집행이라는 명목으로 처단하는 사냥개다. 로보캅이 된 알렉스 머피는 여러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존재에 의문을 갖고, 점차 기억을 회복해가며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나가기 시작한다. 결말 부분에서 자신을 죽였던 폭력조직의 보스에게 복수하기는 하지만 그것도 사적인 복수라기보다는 경찰로서의 의무에 더 가깝게 묘사되며, 영화는 내내 알렉스 머피의 자아 찾기에 결코 작지 않은 비중을 둔다. 이러한 주제는 2편에서 머피와 주변 인물들 간의 관계에 대한 성찰로 발전하고, 시리즈 중 상업적으로도 비평적으로도 가장 수준 낮다고 평가되는 3편에까지 이어져서는 3편 마지막 부분에서 머피가 OCP 회장과 짧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집약적으로 드러난다. 그 목소리의 울림이 가볍지 않은 이유는, 자신이 알렉스 머피라는 인간이라는 선언인 동시에 여전히 로보캅이라는 기능적 존재에 불과하다는 현실에 대한 긍정을 모두 포괄한다는 점에 있다. 즉 그것은 기계의 육체 속에 갇혀 경찰로서의 의무에 매인다는 명확한 현실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자신은 여전히 인간으로서 자유로이 사고하고 판단한다는 선포다.

 

이번 리메이크 <로보캅>의 감독인 호세 파딜라는 브라질 출신이다. 미국의 앞마당이나 다름 없는 중남미 출신 영화감독으로서, 그가 오리지널의 주제의식을 어떻게 변주해 보일지 기대하며 나는 영화관으로 갈 것이다.

 

And

아무도 말해주지 않고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아
너는 그냥 떠밀려서
발길질하고 소리를 지르며
인생에 뛰어들었어
어째서 그것이 그렇게
느껴지는지 알지도 못하고
아니면 공포나 고통과는
한끗 차이인 이 혼란이
어째서 느껴지는지도 모르는 채
네가 이해했다고 생각했을 때가
결국 네가 틀렸던
순간으로 밝혀진단다
너는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했어
네가 여기 온지 얼마 안 돼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
그리 멀지 않은 예전에는
너를 건드리는 것만으로
편안하게 만들 수 있었단다
너 정말 따뜻하구나
이게 정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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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내 스토리가 5시즌 이후 가면 갈수록 막장을 찍는데도, 가끔 정말 괜찮다 싶은 에피가 시즌마다 한 두 개 정도는 끼어 있는데, 이번엔 이 독백이 참 마음에 들었다.

And

나야 뭐 얼마 전에 지금까지 나온 영화 시리즈들을 죄다 재주행하고서 오늘 데이즈 오브 퓨처패스트 보고 왔지만(과거 파트의 찰스가 처음 로건 보고 '어디서 본 얼굴인데' 했다가 '기억났다, 에릭이랑 뮤턴트 스카웃하러 다닐 때 술집에서 만났지? 그 때 나한테 한 말 돌려줄게, 껒여!' 하는 장면보고 웃었다, 마침 시간 이동이 주요 소재겠다 평행세계니 뭐니 하는 핑계로 넘어가겠거니 싶었는데) 잘 정리된 포스팅이 있길래 슥슥.

 

http://blog.naver.com/sec1021/30189463254

 

모 처에 정기적으로 써 주는 영화 리뷰가 있는데... 이번 달 원고는 데오퓨 보고 써주겠다고 뻐꾸기 날려놨는데, 영화는 재미있었지만 이걸 갖고 어떻게 리뷰를 써야할지 난감하다. 고질라 파이널워즈나 엣지 오브 투모로우가 더 나았으려나. 2편이나 보자니 돈 없어서 전부터 기대하던 데오퓨만 보고 왔는데-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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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타임라인 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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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친절한(게다가 한글인) 다른 요약 버젼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sphero&no=41372&page=13&search_pos=-44300&s_type=search_all&s_keyword=%EC%97%91%EC%8A%A4%EB%A7%A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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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찰스가 로건을 통해 미래의 자비에 교수를 만나 대화하는 장면은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약간 가슴 아팠다.

 

그런 일은, 현실에서는- 적어도 나한테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And

 

 

나름 상당한 호러 팬이라고 자부하면서도 '너무 유명하고 잘 알려져서 오히려 잘 안 보게 되는' 작품이 종종 있다. 어렸을 때 집 근처 비디오 대여점에 들를 때마다 이 테이프 커버에 박힌 스틸 컷과 줄거리 요약을 보면서 '언젠가 봐야지' 생각하면서도 매번 내 지갑에서 나온 꼬깃꼬짓한 천원 짜리 지폐들은 다른 작품을 빌리는데 쓰였고, 어느덧 나는 나이를 먹어 성인이 되었고, 동네 비디오 대여점은 씨가 말랐다. 그러던 차에, 평소부터 좋아하던 작가이던 클라이브 바커가 이 영화의 원작을 쓰고 제작도 맡았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서 "헐 이거 언제 한 번 봐야지 생각했는데 원작이 바커였어?" 하는 심정으로 이 영화를 봤다.

 

클라이브 바커는 안 그래도 호러 장르가 척박한 한국에서는 스티븐 킹과,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히 유명해진 러브크래프트의 명성에 밀려 인지도가 낮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둘에 비교해도 전혀 안 꿀린다고 생각하는 탁월한 작가다. 다만 그의 작품에서 묘사되는 '공포'가 대중적인 코드와는 엇박자를 밟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잘 먹히기 어려울 뿐이다. 유혈 낭자한 자극적인 고어 묘사에만 치중한다는 오해도 흔하고. 하지만 그러한 선혈 아래에는, 결코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묵직한 주제가 빛나고 있다.

 

이 영화는, 대학원생 헬렌이 논문을 쓰기 위해 시민들 사이에서 떠도는 도시전설(Urban legend)를 채록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이런 걸 수집하는 걸로 봐서 아마도 민속학과일 것이다). 헬렌은 카브리니 그린이라는 슬럼 가에서 전해지는, 거울을 들여다 보면서 그의 이름을 다섯 번 부르면 나타나 오른 손 대신 달려 있는 갈고리로 자신을 부른 자를 무참히 살해한다는 '캔디맨'이라는 존재에 대해 관심을 갖고서 조사를 시작한다. 카브리니 그린에서 예전에 일어났던 살인 사건이 캔디맨의 소행이라는 현지 주민들의 광범위한 믿음에 흥미를 느낀 헬렌은 직접 카브리니 그린으로 찾아가 살인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를 조사하다가, 자신이 캔디맨이라고 주장하는 폭력배에게 구타 당한다. 그 폭력배는 곧 경찰에 잡혀 들어가지만, 이후 '진짜 캔디맨'으로 추정되는 존재가 헬렌의 앞에 나타나고. 그가 저지르는 살인의 누명을 쓰며 헬렌은 위기에 처하기 시작한다.

 

이 영화에서 높이 사고 싶은 부분은, 캔디맨이 과연 실존하는 초자연적 살인마냐 아니면 단지 부상과 정신적 압박감에 짓눌려 미쳐가는 헬렌의 망상에 불과한 것이냐에 대한 정답을 최소한 중반이 넘는 시점까지는 명확히 관객에게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캔디맨은 항상 헬렌이 혼자 있을 때만 그녀의 앞에 나타나며, 그가 사라진 후 아무 것도 모르는 제3자가 보기에는 헬렌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볼 만한 정황이 충분하다. 클라이브 바커의 원작 단편을 읽어 보진 못했지만, 독자로 하여금 끊임 없이 일련의 살인 사건은 사실 전부 헬렌의 소행이고 캔디맨은 그녀의 공포가 반영된 허구의 존재인가 아니면 헬렌의 시점에서 묘사되는 대로 악마적인 괴물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악몽 같은 묘사로 가득할 것이다. 아, 상상만 해도 염통이 쫄깃거린다 헉헉(....) 써놓고 보니 좀 변태 같다(.......)

 

 실존하는 초자연적인 살인마인가, 아니면 헬렌의 망상일 뿐인가. 이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이 주제는 도시전설이라는 소재 자체의 핵심적 특성과 겹쳐진다. 도시전설이란,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개연성은 충분히 존재하는' 이야기다(이 점에서 음모론과도 어느 정도 특성을 공유한다). 특정한 대상(사람일 수도 있고, 사건일 수도 있고, 장소일수도 있다)에 대한 불특정 다수의 막연한 공포나 두려움, 의구심이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가고. 기승전결을 갖춘 구조의 이야기가 되고, 점차 살이 붙으며 디테일이 생기고, '내 친구의 사촌이 겪었대' '내 친구의 아는 사람이 해준 이야기래'라는 식으로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지는 과정을 거쳐 확고한 전설로 자리매김한다. 작중에서 캔디맨은 헬렌을 위협하면서 '나는 벽의 낙서와 교실에서의 속삭임 속에 존재한다' '너로 인해 내 신자들이 믿음을 잃었다' '죽음을 두려워 마라, 그로서 너는 불멸을 이루게 될 것이다' 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이 대사들은, 도시전설의 본질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해당 커뮤니티 내 사람들의 구전을 통해 떠도는 실체 없는 이야기라는 점, 그에 대한 대중들의 믿음과 두려움에 의해 이야기가 커지고 강해진다는 점, 그리고 한 인간이 늙어 죽기 충분할 정도의 긴 세월이 흘러도 두고 두고 구전되면서 일종의 불멸성을 성취한다는 점에 이르기까지.

 

캔디맨 역을 맡은 토니 토드의 우수한 연기와 탁월한 음악을 통해 쌓아 올린 이러한 장점들은, 지금의 눈으로 보자면 조악한 특수 효과와 부자연스런 설정(시체가 갈고리에 꿰어 죽은 것인지 헬렌의 손에 들려 있던 칼에 찔려 죽은 것인지도 구분 못하는 경찰들이라거나)들에도 불구하고 후반에 이르기까지 훌륭하게 빛난다.

 

......마지막 10분 전까지는. 마지막의 그 10분이, 그 장점들을 모두 망쳐 버린다.

 

지금까지 '캔디맨이 과연 실존하는가 아닌가' 부터 시작해서는 잔혹한 연쇄 살인마 주제에 정작 헬렌에게는 털 끝 하나 안 건드리고(단지 살인 누명 씌우는 것부터 시작해 정신적으로 몰아붙일 뿐) 다정돋게 대하며 '우리의 죽음을 통해 불멸로의 문이 열릴 것이다' 같은 로맨틱한 대사까지 날리는(캔디맨의 전설 속에 등장하는, 그의 옛 연인을 헬렌과 동일시하는 걸로 보인다) 캔디맨의 모습에서 '저토록 광적이고 집착적인 애정도 어떤 의미에서 순수한 것 아닌가' 한 발 더 나아가 온갖 현시창으로 인간을 떠밀면서도 여전히 인간을 사랑하고 있는- 캔디맨을 일종의 신적 존재로, 헬렌을 인간으로 놓는 식의 훨씬 깊은 해석까지 나아갈 수 있을 법한 떡밥이 가득하다. 그런데 그걸 카브리니 그린에서 살던 앤 마리 맥코이의 아기를 캔디맨이 납치하고, 헬렌이 그 아기를 구해내어 카브리니 그린의 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앤 마리 맥코이에게 돌려주는 후반부 장면에서, 현실과 도시전설의 경계에 걸친 존재로서의 아우라로 가득하던 캔디맨의 위상은 그냥 흔한 스플래터 호러 영화 속 살인마 A로 추락해 버린다. 영화 중후반까지 계속 집요하게 관객에게 던지던 '과연 캔디맨이 실존하게 안 하게?'라는 의문은 '캔디맨이 납치해 간 아이가 살아 있고 헬렌이 그를 구해낸다'라는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너무 순식간에 해결되고, 캔디맨이라는 존재와 부재 사이에 걸쳐 있는 독특한 존재로서의 신비감을 한 순간에 탈색해 버린다. 이로서 캔디맨은 '도시전설을 통해 실체화되고 그에 대한 대중들의 믿음을 통해 영생을 얻는, 독특한 아이덴티티를 지닌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강하고 무섭고 나름 비극적 과거도 있지만 단지 그 뿐인 슬래셔 영화의 살인마'로 전락한다.

 

마지막 10분만 아니었으면, 망할!!!!!! 굳이 그렇게 안 해도 헬렌이 또 다른 캔디맨이 된다거나 하는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말이잖아!!!!!!!!! 꼭 그렇게 했어야 했냐고 감독놈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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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이슈를 접할 때마다, 난 내가 스트레이트인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긴다. 다른 문제로도 내가 충분히 '소수자'라고 늘 느끼는데, 성적 지향에 있어서까지의 부담까지 추가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기왕이면 애초에 무성애자인 쪽이 더 좋았을 것 같지만ㅋ

 

엘렌 페이지야 헐리웃 셀레브고 나야 뭐 별 거 없는 한국 남자 A고... 그러한 '소수성'의 범주 역시도 다르지만, 그래도 그녀의 용기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에 나도 일종의 소수자고 소외감 들어' 같은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이유가 나와는 전혀 다른데도 딥빡칠 때가 있고 공감갈 때가 있는데 이런 케이스는 후자인 듯. 왜 그런지는 나도 잘 모르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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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온지 10년이 넘었지만... 군대 있을 때 곁눈으로 흘깃 본 이후로 잊어 버리고 있다가, 무한세계 캠페인 쪽 준비를 하면서 무협지스러운 '의협' 내지 '인의' 같은 요소가 강조되는 영화가 있으면 참고삼아 한 번 봐야겠다 싶어서 쿡TV를 비롯해 여기저기 뒤지다가 발견. 형가의 진시황 암살시도가 배경이라는 것만 알고 봤는데........

 

.......에비.

 

....장이모 감독의 위명에 걸맞게, 장면 하나 하나의 그림은 진짜 쩐다. 초반의, 빗 속에서 벌어지는 무명VS장천의 검VS창 대결 장면은 실로 포풍간지. 그 이후로 파검과 비설의 이야기로 넘어가며, 무명이 황제에게 하는 거짓말 속의 '붉은 천 가운데서 오가는 검무'는 화려하기 그지 없다(비설이 죽은 뒤-이건 사실 거짓 죽음이었지만-그녀를 추모하면서 검을 주고받는 무명과 파검도 멋지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쪽이 더 마음에 들었다-. 처음에는 붉은 색, 그 다음은 푸른 색, 그 다음은 녹색, 그 다음은 흰색으로 이어지는 주된 배경은 그 가운데 놓인 인물들의 심리를 그대로 보여준다. 연출 방식도 막연히 '예쁜 그림들을 보여준다'는 식이 아니라, 인물과 서사의 흐름에 맞춰서 완급 조절이 잘 되어 있고. 영상미 하나는 어지간한 2010년대 이후 작품들보다 훨씬 낫다. 영화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봐도 그런데, 본격적으로 미장센 공부를 한 영화학도들이 보면 눈물 흘리며 감동할 듯. 그런데 스토리는 미칠 듯이 병맛난다.

 

파검은 '검술과 서예는 통하는 것, 서예를 통해 깨달았소이다. 검의 최고 경지는 그 검을 쓰지 않는 것이라는 걸' 운운하면서, 천하를 위해서는 황제를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무명 역시 그의 논리에 납득하고서는 마지막에 황제 암살을 포기한다. 황제 역시 대인배스럽게 '나를 유일하게 이해한 자가 나를 암살하려는 자라니!' 같은 소리를 하며 죽으려고 하지만... 신하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암살자를 살려두면 안 된다느니 나쁜 선례를 만들면 안 된다느니 하자 어쩔 수 없이 화살을 쏘라고 명령하고, 무명은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깔리는 자막 '...황제는 만리장성을 쌓아 백성들을 보호했다'.

 

..........

 

 

 

 

뭐 병시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만리장성 건설현장에서 죽어간 사람들은 백성 아니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세운 만리장성이 후세에 관광자원으로는 쓰였을 망정, 그 당시에 백성들 지키는데 실질적으로 얼마나 도움이 됐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개인적으로 제일 재수 없는 부분은, 황제의 정복 사업은 난세를 일통해 전란을 마무리하려는 '천하를 위한 대업'이고, 무명과 파검, 비설(장천은 무명의 친구라고만 나오고 정확한 동기는 묘사가 안 된다)이 원래 황제를 죽이고자 했던 것은 다만 멸망한 고국 조나라의 복수를 위해서라는 '개인적이고 사적인 동기'로 묘사해 양 쪽을 비교하는 거다. 비설이 파검에게 "당신 마음 속에는 오직 천하 밖에 없나요?"라고 비난하고, 파검이 안타까운 눈으로 비설을 바라보며 "당신도 있소."라고 대답하는 장면은 남녀 상열지사의 측면에서 보자면 명장면이지만, 이러한 '개인화'의 극한이기도 하다. 천하 같은 소리하네, 1차 세계대전도 타이틀만은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었지ㅋ

 

 

'명예원칙:협'이 제대로 묘사된 영화 어디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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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우선 이채로운 점은 1)모든 씬을 흑백으로 촬영했다는 점과 2)대사 대부분을 제주도 방언으로 처리했다는 점이다.

 

1)을 통해 나타나는 특성은, 영화 전반에 걸쳐 내내 색채감이 지워지고 그 대신 음영의 깊이를 통하여 빛과 어둠의 경계가 풍성해진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다루는 주제 자체의 특성 상 상당히 자극적인 장면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선혈의 붉은 색이나 그에 대비되는 유채꽃의 노란 색 같은... 그러니까, 관객들의 감성에 직접적으로 어필할 만한 시각적 자극이 최소화된다. 그 대신 절제된 배우들의 연기와 맞물려서, 이 영화는 매우 독특한 미장센을 연출해낸다. 이 영화에서 화려하고 자극적인 컬러 영상은 단 한 컷도 나오지 않는다. 그 대신 밝음과 어둠 사이의 매우 다양한 층위들을 적확하게 포착해서는 매 장면마다 그 '깊이'를 강조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방식이 가장 빛을 발하는 명장면은 역시 닫혀 있던 문이 열리고 뿌연 연기로 가득 찬 실내에서 '시체 앞에 앉아 소소한 잡담을 주고 받으며 사과를 깎아먹는 두 군인의 모습'을 담은 도입부 시퀀스와, 중반부 마을 사람들이 피신한 산속 동굴 속에서 모닥불을 둘러싸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퀀스다. 불꽃이 피어오르고, 연기가 맴돈다. 그 너머에서 사람들은 두런두런, 일상의 화제를 나눈다. 뭍에서는 해방을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좌우의 대립은 계속해서 첨예해지고 있지만 그 사람들은 그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들의 관심사는 돼지가 굶지 않을까, 다리가 불편하니 자신을 두고 가라고 하던 노모가 괜찮을까, 짝사랑하는 여자가 안전할까 같은 문제다. 깊은 어둠 속에서, 보다 희미한 그림자 속에서, 튀어 오르는 불씨의 파편들 속에서, 그들은 걱정하고, 슬퍼하고, 농담하고, 웃는다. 그리고 그러한 연출은 관객으로 하여금 뭐라고 하기 힘든 복잡한 연민을 불러 일으킨다. 이 영화의 주제는 어디까지나 '무고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의 추모'에 맞춰져 있으며, 특정 이념을 기준으로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주의주장을 펴는 것이 아니다-남로당 무장대를 미화하는 내용이라는 일베충들 선전에 낚이지 말 것-. 흑백 필름의 사용은 이런 부분에서 매우 상징적이고 시사점이 많아 보인다.

 

2) 역시도 특이한 시도다. 그러나 1)과는 달리 아쉬움이 많다. 뭍에서 파견된 군인들을 제외한, 현지 제주도민들은 모두 제주도 방언으로 대화를 나누며 그 때문에 한국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자막이 입혀져 있는데... '대사를 우선 귀로 듣는다'->'바로 이해가 안되서 자막을 본다'는 두 과정을 거치게 되다 보니 아무래도 영화의 흐름을 바로바로 쫓아가기가 어렵다. 고증이나 현장감을 고려하자면 불가피한 선택이었겠지만 아무래도 영 아쉽다. 애초에 서사보다는 흑백의 영상을 통한 압도적인 이미지를 내세워 먹고 들어가는 작품이니만큼, 대사의 비중을 줄이고 연출에 더욱 몰빵했으면 더 완성도가 높아졌을 듯.

 

 

네이버 영화의 댓글란에서 일베충들이 감성팔이 영화니 선전물이니 하며 별점 테러를 하는 것과 달리, 이 영화는 특정 이념(그게 '남의 이념'이건, '북의 이념'이건)을 앞세우고 그것을 옹호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이념이나 정치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그러나 그러한 폭력에 직면해야 할 어떤 죄도 저지르지 않은, 무고한 이들의 넋을 달래는 씻김굿으로서의 성격이 훨씬 강하다. '신위' '신묘' '음복' '소지'라는 제사 순서에 맞춰 배치된 영화의 흐름도 그렇고. 이것만으로는 좀 아쉽다 싶기도 하지만, 훌륭한 영화다.

 

4.3 사태(이 칭호는... 1948년부터 한국전쟁이 끝날 때까지 5년에 걸쳐 계속해서 이어졌던 민간인 학살이라는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특정 날짜를 기점으로 단순화한다는 점에 있어서 좀 거부감이 들지만 다른 대체어를 못 찾겠다)에 대해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 정권 당시 최초로 국가 차원에서 사과를 했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비극적인, 그러나 이제는 잊어야 할 과거사' 같은 게 아니다. 엄한 사람 붙잡고 빨갱이 타령하면서 조리돌림하는 매카시즘은 여전히 한국 사회 전반의 망틸리떼를 지배하고 있고, 그러한 파시즘적 분위기가 공고해져 가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여전히 남도는 잠들지 못하고 있다. 한라산이 굽어보고 있는 아래, 21세기 초 '지금 여기'서 살아 있는 이들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PS=개인적으로,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에 대해 명확한 입장 정리를 못하고 있었는데... 이거 보고서 반대 입장을 굳혔다. 시밤 취준생 입장에서 제주도까지 갔다 오기엔 돈도 시간도 없는데 뭐 할 일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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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할머니도 섬이 하나 있었지. 자랑할 건 없었어, 걸어서 한 시간이면 둘러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도 그곳은, 그곳은 우리한테 천국이었어. 어느 여름에, 우리가 찾아갔는데 섬에 쥐들이 우글거리는 걸 발견했지. 고기잡이 배를 타고 들어와선, 코코넛을 잔뜩 먹으면서 산 거야.

 

그럼 쥐들을 어떻게 섬에서 쫓아낼까? 할머니가 보여주셨지. 기름통을 파묻고 뚜껑에 경첩을 단 다음 미끼로 코코넛을 매달아놓는거야. 그리고 쥐가 코코넛을 먹으러 오면... 통 안에 빠지게 되지. 한 달이 지나면 쥐들을 죄다 잡게 돼. 그럼 뭘 해야 할까? 통을 바다에 버려? 태울까? 아니지.

그냥 내버려 두는거야.

그리고 놈들이 배가 고파지면 한놈씩.... 서로를 잡아먹기 시작하지. 단 두 마리가 남을 때까지, 두 생존자를 그럼 어쩔까, 죽여? 아니.

데려다가 숲 속에 풀어주는거야. 그럼 놈들은 더이상 코코넛을 먹지 않아. 다른 쥐만을 잡아먹지. 녀석들의 본성을 바꿔놓은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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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나 스릴러 영화도 아닌데 보면서 오싹했던 경험은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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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일러를 비롯해서 거의 모든 사전 정보를 최대한 피해 다니다가, 드디어 보고 왔다. 머릿 속으로는 '호빗은 온통 시커멓고 수염 텁수룩한 드워프 남정내들만 득시글 거리는데 얼굴과 이름 매치나 제대로 될까' '어렸을 때 소설로 읽었을 때도 드워프들은 리더인 소린, 늙었다는 묘사가 많은 발린, 뚱뚱하고 잠이 많다는 묘사가 많은 봄부르, 가장 젊다는 묘사가 나란히 나오는 필리와 킬리 정도나 기억해가며 읽었는데' '애초에 동화가 시작이었으니 이야기 자체가 아무래도 반지의 제왕에 비해 스케일이 작고 소소한 편이긴 한데 3부작이라고? 억지로 스케일링한 거 아냐?' '반지의 제왕 때도 아라곤과 아르웬의 로맨스는 좀 따로 노는 느낌이었는데 억지로 여캐 우겨넣는 거 아냐?' 같은 생각을 하며 가서... 어느 정도는 '흥흥 나으 호빗은 이러치 아나! 라고 까줄테다'라는 불손한 생각도 좀 하면서 좌석에 앉았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되고, 빌보가 프로도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하는 순간 그런 생각들이 전부 머릿속에서 표백됐다. 2시간 반 가량의 상영 시간 내내 아닥하고서 헉헉대며 보다가 스탭롤이 올라가고 나서야 제 정신으로 돌아왔다. 난 갈 데 없는 톨킨덕후가 맞나 보다 아아(...)

 

일단 총평을 하자면, 원작에 대한 경의를 유지하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상업적 각색이 많이 들어갔다는 느낌. 거기에 더해서 호빗 3부작 자체를 반지의 제왕 3부작에 종속시키고자 한 의도가 강하게 느껴진다. 팬의 입장에서는 호오가 갈릴 만한 접근이지만, 영화화를 함에 있어 충분히 합리적인 접근 방식이라고 보인다. 왜냐면, 거대한 선과 악의 전쟁이라는 표면적 서사가 있었으며 중간계 전체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봐도 한 시대의 종막을 장식하는 장대한 에픽 사가였던 반지의 제왕에 비해 호빗 원작은 훨씬 작고 소소한 이야기이고, 근본적으로 아동용 작품이기 때문이다. 아동 대상 판타지 물이 나름 인기있긴 하지만, 전 세계의 톨킨 덕후들이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거의 장인에 가까운 마인드로 최대의 가용 대자본과 현존하는 최상급 기술들을 모두 쏟아부어 만듦으로써 극한까지 관객을 동원하고 그만큼의 수익을 내는 게 컨셉인 이 시리즈를 다만 '아동 대상 판타지 물'로만 국한시키는 것은 너무 소극적인 접근이다. 그렇다면, 동일 컨셉으로 이미 기록적인 흥행몰이를 하고 비평가들의 평까지 좋았던 반지의 제왕에 처음부터 끝까지 플롯을 종속시키는 것도 괜찮은 접근이다. 그 예로, 호빗 원작에서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프로도가 레드북을 기록하고 있는 빌보의 이야기를 듣는 도입부 씬. 최근 반지의 제왕 영화 시리즈를 재주행한 사람들은 기억하겠지만, 이 초기 상황은 반지의 제왕 시작 시점인 빌보의 생일 잔치 직전이다. 프로도에게 옛 이야기를 해줌으로써 우선 관객들에게 소린과 그가 이끄는 드워프들의 과거사 및 소린의 열망에 대해 기본적인 정보를 전달해주고, 현재로 돌아와 프로도가 간달프를 마중나간 뒤(이 역시 반지의 제왕 1부 시작 시점과 이어진다) 담배를 피워물고 60년 전의 모험을 본격적으로 회상하는 식으로 반지의 제왕 영화 팬들에게 우선적으로 어필하고 있다.

 

원작에서 빌보는 드워프들이 떠난 다음 날 아쉬움 반 안도감 반의 심정으로 뒷정리를 하고 있다가 갑자기 돌아온 간달프에게 "왜 아직 출발 안하고 미적대고 있냐"고 귀잡혀서 끌려가는데(간달프가 어디로 오라고 쪽지를 남겨뒀는데 안 봤냐고 따져묻자 14명 분 설거지 하는 것만으로도 빡치는데 쪽지가 눈에 들어오겠냐고 불평하는 장면이 웃겼기 때문에 기억한다) 영화에서는 어린 시절의 모험심을 다시 떠올리곤 얌전히 자기 발로 쫓아가는 걸로 바뀌었다. 중간에 뛰어가는 빌보에게 깜짝 놀라 물러나는 호비트 농부는 60년 뒤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 일행이 떠나는 걸 보며 흐뭇하게 전송해주는 그 아저씨로 추정. 드워프들과 합류해 길가던 중 손수건 안 챙겨왔다고 당황하는 깨알 같은 원작 재현에 흐뭇.

 

간달프가 "파란색이 둘인데 이름이 기억 안나"라고 하는 거 보고 알라사르랑 팔란도가 좀 존재감이 없긴 하지... 생각하며 빵터지던 와중에 라다가스트가 갑툭튀, 그가 나온다는 걸 전혀 모르고 봤기 때문에 헉했다. 하지만 명색이 마이아 씩이나 되면서 고작 거대 거미 정도에 ㅎㄷㄷ하고, 뒤이어 돌 굴두르에서 나즈굴(훗날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앙마르 윗치킹으로 추정된다, 그냥 나즈굴 A였다면 60년 뒤 웨더톱에서 나즈굴 전원과 싸워 후퇴시킨 간달프와 너무 비교되서 불쌍해지니 윗치킹이라고 생각하련다)과 투닥투닥하다가 아직 힘이 덜 회복된 사우론을 보고 토끼 마차 타고 죽어라 튀는 걸 보며 안구에서 육즙이 흘렀다(...) 이건 원작에도 없던 장면인데 토끼 마차랑 몸 개그 보여주려고 나왔냐ㅠㅠㅠㅠㅠㅠㅠ

 

트롤들과 만났을 때, 원작에서는 그냥 빌보가 '어떻게 잡아 먹는 게 제일 맛있냐'는 화두를 던져 아침이 올 때까지 서로 조리법을 두고 싸우게 유도해서는 햇빛에 돌이 되도록 시간을 끌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영화에선 간달프 빼고 전원이 붙잡혀 굴욕을 당하다가 빌보가 시간이나 좀 벌던 중 간달프가 멋진 장면을 독식하는 걸로 바뀌었다(그리고 간달프의 이 '아침 햇살과 함께 멋진 장면 독식하기'는 60년 뒤 헬름 협곡 전투에서도 유감없이 과시된다).

 

리븐델 입성 씬에서, 원작에서는 그냥 엘론드가 저택에서 일행들을 맞이해주는 걸로 나오는데 영화에선 엘론드가 걍 예지력만 좀 있는 딸바보 뒷방 늙은이가 아니라 여전히 말 타고 활 쏘고 칼질하는 현역이라는 걸 강조하고 싶었는지, 등장씬이 좀 더 푸쉬를 받았다. 사루만과 갈라드리엘이 여기서 등장하는 것도, 원작에서도 없었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터라 두번째로 헉했다. 사실 갈라드리엘이 굳이 나와야 할 이유는 없긴 한데... 위에서 언급한 대로 반지의 제왕과의 연계성 강화 겸 팬 서비스로 보인다. 사실 그 동안 내내 머릿속이 '오오 갈라드리엘 마님은 이 때도 여전히 아릿다우시고도...'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60년 뒤 사루만의 타락 플래그는 여기서 이미 암시된다(간달프가 사루만을 두고 우리들 중 가장 훌륭한 마법사라고 띄워주면서도 '그는 위대한 힘만이 세계를 구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서 은근히 디스한다).

 

안개 산맥에서 빌보가 일행들과 떨어지고, 드워프들이 고블린들에게 끌려가 굴욕 당하는 동안 절대반지를 득템하고 골룸과 만나 수수께끼를 주고받은 뒤 탈출하는 장면은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하던 장면이었는데 아쉬움이 많다. 반지의 제왕 영화에서는 빌보가 반지 줍고 "이거 뭥미?" 하는 동안 골룸이 크아아읆;ㅇ렇;ㅁ흠;ㄷ허;ㅁㅎㄴㄱ하ㅓ;ㄱ허;ㅁ 하는 거 듣고 흠칫해 얼떨결에 반지를 주머니에 쑤셔넣는 걸로 묘사됐는데, 당시엔 호빗 영화화는 아직 계획에 없었을테니(나중에 호빗도 찍고 싶다 하는 생각 정도야 있었겠지만) 그 묘사와 다르다는 건 넘어가 줄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너무 설렁설렁 넘어갔잖아!!!!! 원작에서 골룸은 빌보와 수수께끼를 주고받으며 지상에서 살았던 시절을 희미하게 떠올리고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동시에 지상에서 온 빌보에 대해 미움과 맹렬한 굶주림을 느낀다는 묘사가 나오는데, 이것은 골룸이라는 존재의 비참함과 혐오스러움, 그리고 그 모두를 아우르는 불쌍함에 크게 일조한다. 60년 뒤 그가 맡게 되는 중요한 역할을 감안해서라도 이 시퀀스는 좀 더 힘을 줬어야 했다.

 

1부의 보스로 나오는 아조그. 원작에서의 아조그는 이미 한참 전에 죽었는데 나름 포스있게 나온다. 기왕 연계성을 강화하는 김에, 소린에게 '네 놈의 목은 내가 취하고, 피는 우리의 진정한 주인에게 바치겠다' 같은 대사를 하며 은근히 사우론의 존재를 암시해도 좋았을 거 같은데, 그냥 리븐델에서 간달프가 '스마우그가 우리의 적과 동맹을 맺을 경우 커다란 재앙이 될 거요'라는 식으로 지적하자 엘론드가 '적? 누구? 사우론은 이제 없고 세상은 평화롭소'라고 말해 버려서 좀 그림이 안 사는 느낌. 흠.

 

마지막에 독수리들을 불러 위험에서 빠져 나오는 시퀀스에서는 속으로 오오 과이히르 오오를외쳤다. 호빗 마지막 부분에서 투입되어 다섯 군대의 전투를 끝낼 최종 병기 역할도 할테고, 60년 뒤에는 간달프를 아이센가드에서 구해내기도 할테고, 최종 임무까지 완수한 프로도와 샘을 운명의 산에서 회수해 오는 역할도 하고... 대사 한 마디 없는 주제에 매번 결정적인 순간에서는 독수리들이 활약하는 듯하다.

  

소린의 캐릭터 묘사는 꽤 만족스러운 편. 참나무 방패 소린이라는 인물은, 톨킨의 드워프 상을 대표하는 아이콘에 가깝다. 부하들 뒤에 숨는 법 없이 늘 위험에 앞장서는 의리의 소유자에 책임감 강하고 성실하지만, 완고하고 탐욕스럽고 독선적이기도 하다. 원작에서는 심술쟁이에 욕심꾸러기라는 느낌이 더 부각됐는데 영화에서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양 쪽 다 균형 있게 묘사되는 편. 다른 드워프들은 원작에서도 그랬다시피 대체로 존재감이 좀 희미하긴 한데... 뭐 이거야 원작에서도 그랬으니 어쩔 수 없지. 임의로 숫자를 줄이거나 했으면 전 세계의 톨킨덕후들이 분노했을 거다.

 

전체적으로, 나올 거 다 나오고 빠질 건 적당히 빠졌다는 느낌. 두번째 감상 때는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거 같지만, 지금은 그저 마냥 좋다 모드로 할렐루야 할렐루야 하고 있다. 내가 그렇지 뭐(...) 이제 다음 편에서는 베오른과, 에스가로스의 바르드가 등장할 듯. 아참, 스란두일도 나오겠군. 레골라스도 곁다리로나마 나와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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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 간 뉴스로 자주 접하다 보니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겼다 생각했는데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 보자니... ....-_-.....한 심정이 되서 눈만 가렸다. 훨씬 낫구만!

 

이 영화는 맛집 소개 프로그램의 허위성을 신랄하게 비판(했다고 한다, 직접 보지는 못했다)한 다큐멘터리 영화 <트루맛 쇼>의 김재환 감독이 5년 전부터 기획한 작품이라고 한다. 감독 인터뷰를 보면, 굳이 MB를 까겠다는 의도라기보다는... 정치인에게 있어 말 빚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경고하고 싶었던 쪽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

 

일단 그 의도에 비춰서 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평해보자면... 절반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그들(국민들)을 동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한 번도 그들에게 강요한 적이 없다. 우리는 한 번도 우리가 할 것을 감추지 않았고, 그들은 그들 스스로 우리에게 정권을 위임한 것이다. 이제 지금은 그들이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뿐이다."

 
악명 높은 나치의 선전부장, 파울 요제프 괴벨스의 유명한 말로 이 다큐멘터리는 시작된다. 그리고 5년 전, '대통령 후보자'로 거리에 나선 MB가 나라와 국민을 위해 몸바쳐 일하겠다는 유세 장면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MB의 시점에서 가끔씩 깔리는 나레이션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당시의 선거 유세 장면들(먹는 이명박이라거나 먹는 이명박이라거나 먹는....)과, 정책이 아닌 이미지의 창출을 통해 대권을 잡고자 하는 모습들(5년 전 한참 이슈였던 태안 반도 기름 누출 현장에 가서 현장의 목소리에 신경쓰기보다는 사진 한 장이라도 더 찍으려고 하는 장면이라거나), 그리고 경제를 아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야 경제가 살아난다는 주장을 현재의 시점에서 되짚는 연출들로 작품이 구성되어 있다.

 

의도도 좋았고, 내용도 괜찮긴 한데... 절반의 성공에 멈출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아무래도 하드 펀치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전문용어로 가득한 정치적, 사회적 해석이나 복잡한 도표들 갖다 붙이지 않고서 다만 '그 때 그 사람이 했던 이야기'를 현재의 시점에서 되짚어 봄으로써 그의 허위성과 근자감을 고발한다는 것만으로도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결국 5년 전 그 날, MB를 당선시킨 원동력이 되었던 이 나라 국민들의 '공포'와 '욕망'은 단순히 MB의 선전에 국민들이 휘둘렸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것은 훨씬 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다.  

 

감독은 '어머님도 볼 수 있을 만한 수위로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진지하고 무거운 이야기를 가볍고 편하게 함으로써 부담감 없이 받아들이게 하는 것은 물론 훌륭한 전술이지만, 그것이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물리적 수량'이 확보되야 한다. 일베 같은 데서 퍼뜨리는 개드립이 인터넷 여기저기서 흔하게 발견되고, 그냥 재미있어서 쓰다가 부지불식 간에 그 기저에 깔린 천박함에 동조하게 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도 그만큼의 '수량'이 담보가 되기 때문이다. 이것만으로는 '대안 없는 비판이다, 어쩌라는 거냐' '투표를 그렇게 강조하는데, 투표한다고 박근혜가 안 된다는 법 있냐'는 식의 거부감만 유발할 소지가 크다.

 

두번째 문제는, 내적인 논리 흐름이 불명확하다는 점이다. 5년 전 그 때 MB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살림살이 나아진 거라곤 아무 것도 없는데도 이번엔 박근혜를 지지하겠다고 말하는 장면.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에게는 이 장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너무나도 명확하다. 하지만 이 작품이 기본적으로 타겟팅하고 있는 관객 층은 투표에-한발 더 나아가, '정치' 전반에- 무관심한 평범한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은 그 장면의 함의를- 즉, '왜 박근혜가 되면 안 되는 것인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박근혜도 최소한 입으로는 경제 민주화를 말하고 있고, 기본적인 관심이나 지식, 나름의 관점이 없는 사람이 보기에는 박근혜가 말하는 경제 민주화가 현실적이고 온건한 것으로 느껴질 가능성이 높다. 이 부분에 있어 충분히 작품 내에서 설명을 해주거나 아니면 아예 빼 버렸어야 했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극장가서 볼 만한 가치가 있다. 5년 전, MB가 목청 높여 비판하던 말을 바로 지금 그에게 적용하면 '어떤 풍자나 비꼼도 없이 사실 그대로만으로 블랙 코미디가 된다'는 것의 아이러니만으로도 충분히 그럴 만하다. 하지만 상당히,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PS=허경영이 '우리 공화당 당원 수가 30만인데 10만 표 밖에 안 나왔어. 이런 결과는 있을 수 없어, 나 불복할 거임 뿌잉뿌잉'하는 장면이랑 김제동이 '저는 돈 많아서 등록금 올라도 괜찮아요, 하지만 저만 그러면 뭐해요? 함께 행복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요. 투표하시면 반값 등록금 성사되요'하는 장면은 빵 터졌다.  

 

PS2=오늘은 수능 날이었다. 이 작품에서 교육 양극화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장면을 곱씹으면서 집으로 돌아왔다가 수능 삼수생이 자살했다는 뉴스를 봤다. 이제는 큰 이슈거리조차도 되지 못하는, 매 해 있어왔던 일이다. 담배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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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신이며 황폐의 대왕이신 아버지여

인간이 갈망하는 분이여

재림의 시련으로부터 세상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주시옵시고

그 교리도 멸하게 하소서

2000년이면 족합니다

이제 인간에게 당신 왕국의 기쁨을 주시어

우울함의 위대함과 고독의 극치...


악의 순수함과 고통의 희열을 알게 하소서

지옥이 땅 밑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터무니없는 상상입니까?

유일한 지옥은 인간존재의 단조로움에 있으며

유일한 천국은 아버지 나라의 환희에 있습니다

(십자가 상을 돌아보며)

허풍쟁이 나사렛인이여 네가 인간에게 뭘 할 수 있나?

천한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이후로 한 일이라곤


인간의 한없는 욕망을 신성한 체하는 도덕에 가둔 것뿐이지


그 지긋지긋한 원죄 교리로 순진한 청년들을 선동하더니

이제는 사후세계 극치의 즐거움마저 빼앗으려는 건가?

날 죽여서?

하지만 넌 이번에도 실패할 것이다

우린 둘 다 인간의 형상이지만

넌 무능한 신으로 태어났고

난 자칼로 잉태되었지

사탄... 황폐하게 하는 자...

널 못박은 자...

네 십자가의 고통은 내 아버지의 고통에 비하면 보잘 것 없지

천국에서 쫓겨난 날개 꺾인 천사로

추방당하고 비난 받으셨어

너의 썩은 시신에 가시 면류관을 깊이 박아주마

이 저주받은 나사렛인이여

사탄이시여

그리스도를 영원히 없애

당신의 고통에 복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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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인 내용은 중2력이 넘치지만 "유일한 지옥은 인간 존재의 단조로움에 있다"는 구절은 인상적이다. 샘 닐의 연기와 장면 연출도 간지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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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사진을 보니 슬슬 나이 드는 게 티가 나는구나, 하긴 나와 동갑이니. 잠깐 저녁잠(?)이 들었다가 정유미가 나오는 꿈을 꿨다. 영화 촬영 중이었는데 정유미는 항공 개발 분야 연구원, 나는 그 동료(...라기보다는 기자재 들고 다니는 조수) 배역이었다. 전국의 비행장들을 돌아다니면서 유체역학 같은 거 연구하고 활주로 설계도면 들여다보는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시골 외딴 곳의 어느 한적한 연구소에 도착해서는 내가 '우리 전에 여기 온 거 같지 않아요?' 하자 정유미가 '우리 여기는 처음인데요'하고, 내가 기억을 되살리면서 저 건물 뒤에는 무슨 시설이 있고, 소장은 어떤 사람이고, 마당 구석에는 엄청 크게 자란 다람쥐가 있고... 등의 이야기를 하다가 깼다. 깬 뒤에 헐 내가 이 배우 진짜 좋아하긴 하는 모양이구나, 싶어서 혼자 실실 웃었다. 수영장 시간 놓친 건 안 자랑.

 

...하고 있었는데, 모 웹툰 작가가 트위터에서 아이유에게 제 사인 몇 장을 보내드려야 아이유 사인 한 장과 교환해줄 수 있냐고 울부짖다가 아이유가 웹툰 연재 분량을 좀 늘려달라고 하자 엄청 비장돋게 "오늘부터 철야다"하는 걸 보고 빵터졌다. 그런데 거기에 나와 정유미를 대입해 보자 미친듯이 이입이 됐다. 근데 난 데뷔도 못했잖아? 알바도 끝났고 현재 백수나 다름 없잖아?

 

....ㅅㅂ 글쓰자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런 정유미도 좋아.......'_` 한가인이 연정훈과 결혼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연정훈 ㅅㅂㄻ를 외치는 걸 봤을 땐 마냥 웃겼는데 어느 날 갑자기 정유미 결혼 소식 같은 거 들으면 나도 넋나간 부랑자가 될 거 같긴 하다. 아니 뭐 본인이 행복하다면 좋은 거긴 한데..... 나는 멘붕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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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dvdprime.donga.com/bbs/view.asp?major=MD&minor=D1&master_id=22&bbsfword_id=&master_sel=&fword_sel=&SortMethod=0&SearchCondition=1&SearchConditionTxt=%B4%D9%C5%A9%B3%AA%C0%CC%C6%AE&bbslist_id=2172803&page=1

 

나만의 다크 나이트 라이즈 소설판을 쓰기 시작한 김에 참고 삼아ㅇㅇ 이런 쪽에서 디피는 참 괜찮은 사이트란 말야...

And

 

 

*원래는 별로 볼 생각이 없었는데... RPG하다가 팀원들과 우연히 이야기가 나왔다. "양키들 센스란 알다가도 모르겠다" "한국으로 치면 <김구:데몬 슬레이어>나 <여운형:워울프 킬러> 같은 센스 아니냐" "김구도 백범 일지 보면 한 성깔 하는데 의외로 어울릴 거 같기도 하다" 운운하는 대화가 오갔다.

*조조로 볼 생각이었는데 조조 상영이 없네? 으? 으?! 보지 말까? 하다가 지인에게서 '짱 재밌음ㅇㅇ 꼭 봐라 두번 봐라'라는 문자가 날아와서 걍 보기로 결정.

*당연히 역사적 고증 따위는 안드로메다를 천원돌파해서 오리온으로 간다. 애초에 뭐 그런 걸 바라고 보는 것 자체가 웃기는 거긴 한데. 하지만 악처로 유명했던 메리 토드가 현명하고 품위 있으면서도 적극적인 현대적 여성상으로 나온 건 좀 많이 깼다. 

*의외로 제법 재미있다. 머리 비우고 볼 만한 액션 영화. 딱히 대단한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물들의 성격도 그다지 복잡하다거나 입체적이라거나 하지 않고서 심플하게 이해하기 쉬운 편.

*에이브러햄 링컨이라는, 미국에선 조지 워싱턴을 잇는 '제2의 국부'로 존경받는 대통령이 사실 흡혈귀 사냥꾼이었다....는 쌈마이한 설정을 앞세운 B급 영화일거라고 생각했고, 그 예상대로긴 한데 돈은 제법 쓴 티가 난다. 특히 후반부 달리는 기관차 위에서의 대결과, 불타오르는 다리 장면은 꽤 볼만한 편.

*링컨이 헨리에게 총보다 도끼가 더 잘맞는다고 하고, 내내 도끼를 주무기로 쓰는 것은 목수의 아들이었던 링컨의서민적 면모를 강조하기 위한 설정으로 보인다.

*누가 봐도 초반부터 뻔히 보이는 헨리의 정체(...그 시대에도 선 크림이 있던가?)에 대해선 뭐 넘어가고... 그런데 헨리도 최소한 수백년은 살아온 거 같은데 그 동안 키운 제자가 링컨 하나 뿐이진 않을텐데?

*기관차에서의 전투 시퀀스에서 헨리가 아담을 후드려 패는 건 많이 웃겼다. 뱀파이어끼리는 서로 못 죽인다고 했으니, 죽을 가능성이 높은 총질이나 칼질은 불가능하지만 가능성이 낮은 주먹질과 돌질은 되는 모양이다.

*은이 뱀파이어에게 효과적인 이유에 대해서 '가리옷 사람 유다가 은 30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팔아 넘긴 이후 은은 악과 배반의 상징이 되었으며, 뱀파이어 같은 괴물에게 즉효가 되었다'는 설정은 나름 신선했다. 그런데 뱀파이어가 유럽과 신대륙에만 있는 건 아니쟝(...) 뱀파이어의 기원에 대해 명확히 나오진 않았지만, 기독교가 전파되지 않은 동양이나 아프리카 같은 동네에도 뱀파이어가 있을텐데 걔네들도 은탄 맞으면 으앙 죽음인 건가? 남북전쟁 이후 살아남은 뱀프 친구들이 유럽만이 아니라 아시아로도 튀었다고 하는데, 아시아에는 기독교 세력이 거의 없는데?(...)

*미국 남부 지역의 주들은 지금까지도 북부에 대한 지역감정이 강한 걸로 아는데 '남군이 뱀파이어와 결탁했음! 뿌잉뿌잉'하는 설정보고 무슨 생각 들었으려나.ㅋ

*내가 좌빨이라 특히 더 그렇게 느낀 거겠지만(...) 너무나도 평범하고 고전적인, 개인의 자유와 생명을 무엇보다도 중요시하는 미국식 도덕관을 그대로 체현한 듯한 영웅상을 하고 있는 링컨의 캐릭터는 그 자체로도 너무 무매력적이거니와, 현실의 링컨과는 지나치게 넘사벽이다. 나도 바로 위에서 역사적 고증을 따지면 안 된다고 쓰긴 했지만, 그것도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를 재해석한다거나 '사실 너머의 진실'을 그럴싸하게 녹여넣는 차원의 문제지 이렇게 성격과 가치관이 확 달라서는 몰입이 안 된다. 링컨은 노회하고 언플에 능한 정치가였지, 투사가 아니었다. 노예 해방론도 어디까지나 대규모 농장을 비롯한 노동 집약적 산업이 주축이던 남부와 달리 공장제 대량 생산이 자리잡음으로써 노동력보다는 기술과 자본이 중요한 북부의 환경에서 나온 주장이었으며, 그 내용물 역시도 분리주의적인 성격이 강했다(토마스 J 딜로렌조의 책 <링컨의 진실>에서는 이러한 관점을 확장시켜서 링컨을 미국의 중앙집권화를 추진하고 경제적으로 산업화와 보호무역을 통해 대기업을 성장시키며 외부 식민지나 중소기업을  비롯한 외부 체제를 거기에 종속시킴으로서 경제적 제국주의의 기틀을 놓은 인물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꽤나 설득력 있는 해석이라고 본다).

*근면함, 정직함, 소박함, 순결함, 신앙심. 이것이 미국식 도덕관(좀 더 정확히는 청교도식 도덕관)의 근본이다. 그리고 목수의 아들이라는 태생부터 시작해 클리셰 쩔지만 나름 귀엽고 훈훈하게 묘사되는 연애 과정, 검소한 집무실 등 이 영화는 링컨의 그러한 면모를 부각시키는데 꽤나 주력한다. 그리고 존 스피드 등 남부에 대한 정치적 승리 및 연방의 존속을 무엇보다 의식하는 주변 인물들과 달리 '자유'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묘사에서 이것은 극대화된다. "모두가 자유롭기 전에는 우리 모두가 무언가의 노예다."라는 대사는 영화 내내 나타나는 이러한 연출의 절정을 이룬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포카혼타스>에서 묘사된 존 스미스와 포카혼타스의 아름다운 사랑(...)만큼이나 위선적으로 보인다.       

*원작 소설도 있는 모양이지만 별로 읽을 마음이 안 든다. 워낙에 뱀파이어니 늑대인간이니 마법사니 하는 이런 장르를 좋아하고, 무려 <트와일라잇>에서도 나름 즐길 만한 건덕지를 찾아낸 내가 뱀파이어 물을 거부하게 되다니...!!     

*좀 더 뒤져보니 <아브라함 링컨vs좀비> 같은 괴작도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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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비긴즈와 다크나이트 재주행하고 오늘 조조로 보러 갔다옴. 다크나이트는 몇 번을 다시 봐도 약빨고 만들었냐 소리가 절로 나왔는데 이번엔 왜 이럼으ㅡㅍㅎ;ㅡㅁ헏;ㄱ호;ㄷㄴ소ㅜ;소ㅑㅓ;ㅠㅜㄴ소ㅓ;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엄청 불만을 쏟아냈지만 다크나이트가 워낙 킹왕짱이어서+다크나이트와 인셉션에서 폭발한 놀란의 포텐스에 대한 과도한 기대 때문에 그렇지, 일단 저렇게 쭉 써놓고 곰씹어 보니 라이즈도 꽤 좋은 작품이긴 하다. 간지넘치는 한스 짐머의 음악과 잘 어우러지는 연출도 그렇고, 배트윙도 멋지고. 까놓고 이렇게 덧붙여봤자 설득력 없을 거 같지만 약파는 거 아니다 진짜다(.....) 베인이 포스가 없다고 불평했지만 톰 하디도 객관적으로 꽤 호연한 편이다. 조커가 워낙 넘사벽이다 보니 그에 가릴 뿐이지. 4년을 기다린 보람이 없지는 않다. 이제 올해 개봉작 중 꼭 봐야겠다 싶었던 건 에바Q하고 호빗 2개 남았구나...

 

PS=톰 하디의 베인과 조셉 고든 레빗의 블레이크와 마리옹 꼬띠아르의 탈리아가 만나 인셉션드립 치길 은근 기대했는데 아쉬움. 

 

+

 

좀 생각해 보니 (네타)배트맨은 죽은 게 맞을 거 같다. 놀란은 RISES라는 단어에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했는데... 나는 다크나이트에서 조커에게 판정패 당하고 실의에 빠져 있던 배트맨이 복귀하고 영웅으로서의 면모를 회복한다는 차원에서 물리적으로 '날아 오른다'는 의미로만 생각했는데, '승천함으로써 영원히 고담 시민들의 기억에 남는다'라는 의미도 될 듯. 다크나이트에서, 하비 덴트는 '영웅으로 죽든가 오래 살아서 악당이 된 스스로를 발견하든가'라고 말했었다. 배트맨은 진실을 은폐하면서 하비 덴트를 죽은 영웅으로, 스스로를 살아남은 악당으로 만들었다. 그러한 다크나이트의 결말이 이번 라이즈에서는 '배트맨은 영웅으로 죽음으로써 전설로 '승격(RISE)'되었고 그 승격으로서 고담에는 희망이 생겼다고 보는 게 가장 합리적일 듯하다. '배트맨은 죽어서 전설이 되고 브루스 웨인은 살아서 행복을 얻었다'는 관점도 있던데... 그것은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이라는 자신의 본질을 포기한다는 의미다. 캣우먼이 배트맨과 사랑에 빠질 이유도 없거니와... 배트맨에게 그런 고식적인 해피엔딩은 어울리지 않는다.

 

 

+

 

다시 생각해 보니 (네타) 배트맨은 살아 있다! 로 생각이 바뀌었다. 이래저래 애매모호하긴 한데... 마지막에 알프레드가 브루스 웨인과 셀리나 카일이 같이 있는 걸 보는데, 알프레드는 셀리나가 메이드로 위장해 웨인 저택에 잠입해 들어왔다는 것까지는 알지만 중반에 저택을 떠나므로 그 이후 벌어진 사건을 거쳐 둘이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는 것까지는 모른다. 게다가 엔딩에서 셀리나는 마사 웨인의 진주 목걸이를 걸고 있다. 배트맨이 히어로 일을 관두고 평범한 행복을 찾는다는 건 내가 보기엔 아무리봐도 캐릭터 붕괴긴 한데 뭐 놀란 감독은 다크나이트 리턴즈와는 다른 해석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

 

다크나이트에서는 유일하게 약간 꺼림칙했던 부분이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선 몇 배로 확대되어 나타났던 터라... 이에 대해선 아무래도 난 다소 부정적인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 상세한 것은 재관람 뒤에 포스팅 예정. 

 

+

 

http://gall.dcinside.com/list.php?id=darkknight&no=52487&page=10&bbs=

 

라이즈 자막 번역 문제 관련 글. 번역자 개생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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飛上.

 

드디어 오늘이다(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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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포럼에서 단관 개봉했을 때 보러 갔다가 미친 듯이 웃었던 기억이 나서... 오늘 홍대 SF/판타지 도서관에서 상영회를 한다길래 다시 보러 갔다 왔었다.

 

초반엔 '사랑'을 두고 '가능한 피해야 할 것'이라고 나왔다가....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 질문의 답은 42가 아니라 사랑이라고 나왔다(원작 소설과는 다르다).

 

...아니 나한텐 42맞아 젠장.

 

누군가를 만났다가, 금방 헤어졌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들었다. 혹시 반한 건가 생각해 봤는데, 그 사람과는 이제 겨우 3번째 봤고, 그 중 짧은 대화라도 나눈 건 단 1번 뿐이다. 난 그 사람 이름조차도 모른다. 살다 보면 '첫눈에 반한다'라는 경우도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예전 일 이후로 나도 살다보면 다시 누군가에게 반할 날이 올 거라고 최소한 머리로는 생각했었기도 하고. 하지만, 물론 그 아가씨가 꽤 미인이긴 하지만 더 미인인 사람도 여러번 만나봤다. 아무래도 반한 건 아닌 거 같다. 그런데 대체 뭐지 이 감정은?

 

.......

 

걍 42라고 치고 살지 뭐. 몰라, 잠이나 자자.

 

 

한 잔 할까 하다가 요즘 너무 자주 마신 것 같아서 관뒀다. 다음에 마시지 뭐.

 

+

 

현실 감각을 유지하자. 백번 양보해서, 내가 첫 눈에 반한 게 맞다고 치자. 그래서, 그게 뭐? 난 지금 그럴 여유가 없다.

 

....그런데 올 해 목표가 '재고 계산하는 짓거리 넣어두자'였구나 그러고 보니. 아 젠장 몰라, 앞으로 볼 일이 몇 번이나 있겠어. 안 보면 신경 안 쓰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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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에 있던 SF/판타지 도서관이 이관하면서 짐을 줄이기 위해 창고 떨이를 했을 때 가서 산 책. 오컬트 분석 파트는 아는 내용도 많았고, 작자가 썩 글을 매끄럽게 잘 쓰는 편이 아니긴 했지만 그럭저럭 재미있게 읽었다. 하지만 구미호 파트에서 환빠스러운 내용이 있어 그게 영 마음에 안 들어서... 다른 사람에게 넘길 생각.

 

소개된 영화들 중 명작이나 아직 못 봤지만 흥미로운 것들을 대충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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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나이트 라이즈 개봉을 기다리며 비긴즈와 다크 나이트를 돌려보다, 비교해 보면 재미있을 거 같아서 오랜만에 팀 버튼의 배트맨 1, 2를 꺼내 정주행했다. 마이클 키튼보다 크리스찬 베일이 외모도 그렇고 간지도 그렇고 더 브루스 웨인의 이미지에는 잘 맞는 듯. 팀 버튼 배트맨은 1편보다 2편이 더 마음에 든다. 1편은 조커의 포스가 쩔긴 하는데 그 외에는 아무래도 옛날 영화 감성이 너무 진하달까... 그래서 좀 부담스럽다. 잭 니콜슨의 조커는 히스 레저의 조커와는 반대로 '악당'보다는 '광대'의 캐릭터가 더 강하기도 하고.

 

2편의 중후반 가장 무도회 장면에서 다들 가면을 쓰고 있는데 맨 얼굴로 그 자리에 있는 건 브루스 웨인과 셀리나 카일 뿐이다. 그러나 브루스의 '본 모습'은 배트맨이며, 셀리나의 '본 모습' 역시 캣우먼이다. 어떻게 보자면 그 자리에서 진짜로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은 이 둘 뿐이기도 하다.

 

브루스가 셀리나에게 "대체 당신은 누구요?"라고 묻자 셀리나가 "이젠 저도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하는 장면, 그리고 후반부 브루스가 셀리나에게 "함께 돌아가자, 우리는 같다"고 말하는 장면은...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약간 가슴 아팠다. 나한테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것은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일이 되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괜찮아 질 것이다.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견디고 살 수 있게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적당히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날도 많을테니 괜찮을 거다. 누군가가 내게 '너는 强者가 아니길 바란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 말이 한없이 하찮은 게 된 이제 난 强者로 살 것이다. 그 날의 절망을 두 번 다시는 겪지 않을 것이다. 난 '강함'을 이룰 것이다. 그게 '진정한 강함'이 아니라 해도. 신이여, 부디, 부디, 부디.

 

 

...한 잔 하고 싶은데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할 때마다 마실 수야 없으니 참아야겠다. 조만간... 그럴 날이 있을 거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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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까지 갔다 온 보람 없이 면접도 떨어지고 자소서 쓰긴 지겹고 소설 쓸 마음도 통 안들고... 날씨는 우라지게 맑고... 요즘 우울하던 참. 주말엔 기분전환 삼아 소풍이나 갈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신이 확 든다. 베인이 좀 만화적인 디자인이라 살짝 걱정스럽긴 한데... ...믿는다, 놀란 감독!

 

 

ps=일본 애니메이션 UN-GO와 관련한 구설수 보고 느낀 점 하나. 기자라는 거 되기가 빡세서 그렇지 일단 되고 나면 사실 관계 파악 그런 거 없이 발로 기사 써도 되는 직업이 맞나 보구나, 나도 언론 고시나 준비할까.

And

rpg 시나리오 작성에 참고하려고 이거 저거 본 것들. 시나리오 특성 상 대부분이 호러 영화다. ...결국 그 시나리오는 동결 처리로 결정했다, 안습. 내가 한 번 당해보고 치를 떤 마스터링 방식을 스스로가 대부분 따라하고 있다는(게다가 테크닉적으로는 훨씬 더 거칠고 미성숙한 방식으로) 걸 깨달았을 때는 자괴감마저 살짝 들었다. 반성하자, 윽.

1)지퍼스 크리퍼스1
23년마다 잠에서 깨어나 23일 간 살육을 벌이고 다시 잠드는 괴물을 소재로 한 호러 영화. 날아다니는 걸 제외하면 여타 호러 영화의 괴물들처럼 초월적인 괴력을 갖고 있다거나 한 건 아니지만 상당한 지성과 판단력을 갖고 있으며 희생자의 신체 부위를 먹어치워 해당 부위의 능력을 얻는다는 설정이 특이하다(눈을 먹어 앞을 보고, 귀를 먹어 소리를 듣고, 심장을 먹어치워 '추가 생명'을 얻는 등). 1편은 괴물 주제에 꽤나 패션 센스도 좋고 나름의 예술 감각도 뛰어나다는 걸 강조한 것 외엔 별 거 없음. 초반부터 계속 근친 관련 농담이 나오길래 '혹시 주인공 남매가 근친 관계인가' 생각했고 후반에 누나가 괴물한테 '남동생을 놔줘, 남동생이 갖고 있는 건 내게도 있어'라고 호소하길래 70% 확신했는데 해당 떡밥은 결국 회수가 안 됐다.  

2)지퍼스 크리퍼스2
괴물의 손재주는 한층 더 발전한 듯. 압축 공기를 이용해 피톤을 발사하는 농기구로 괴물을 격추해 버리는 시퀀스는 웃기면서도 은근히 간지나는 연출이 인상적. 1편과 2편의 시간 차가 불과 며칠 수준이라는 설정이라 1편의 배우가 꿈의 형태로 재등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미회수 떡밥이 좀 있다...? 근친 암시하던 그 떡밥은 어떻게 된 거임?

3)옥수수 밭의 아이들 제네시스
스티븐 킹의 동명의 호러 단편을 영화화한 것. 지금까지 여러 번 영화화된 작품이라는데, 이 '제네시스'는 재미 더럽게 없다. 원작의 그 불길하고 음산한 분위기라거나 아이들의 순수와 광기가 뒤섞인 신앙심의 묘사 같은 걸 전혀 못 살렸다.

4)사일런트 힐
전에도 본 적 있지만 다시 재탕. 서사 전개가 게임스럽다는 걸 제외하면 꽤나 훌륭한 공포 영화다. 사이렌 소리와 함께 이면 세계로 진입하며 건물이나 거리의 '표피'가 갈갈이 찢겨져 날아가고 음산한 모습으로 변모하는 연출이나 간지넘치는 삼각두 형님을 비롯한 다양한 크리처 디자인만 해도 호러 팬이라면 볼 가치가 있다.

5)아미티빌 호러
전에도 본 적 있지만 다시 재탕2. 사일런트 힐은 첫번째로 봤을 때는 별로, 두번째로 봤을 때는 올ㅋ였는데 이건 반대로 처음 봤을 때는 올ㅋ 두번째로 봤을 때는 푸헹ㅋ이다. 그렇게 나쁘진 않은데, 집 터에 무언가가 씌어 있다는 묘사나 그 무언가 때문에 미쳐 가는 인간상 같은 건 이미 <샤이닝>에서 너무 훌륭하게 보여줬다.

6)입 찢어진 여자
중반까지는 대단히 좋다. 입 찢어진 여자에 대한 민속학적 관점에 입각한 분석은 여러 개 읽어봤지만 입 찢어진 여자가 물리적 육신을 가진 '괴물'이 아니라 영적 실체에 기반한 '유령'에 가까운 존재로 아이를 학대하는 어머니의 몸에 빙의한다는 설정은 제법 신선한 재해석이었다. 하지만 중반을 넘어서면 억지스런 전개가 이어지고(그 상황에서는 우선 경찰을 부르라고 병시나, 단 둘이서 터덜터덜 들어가지 말고!) 무리하게 속편으로 이어질 여지를 남기려다 깔끔하게 끝낼 수도 있던 이야기를 오히려 망가뜨렸다.  

7)공공의 적1~2
최근 본 영화들 중 거의 유일하게 호러물이 아니다(...) 1은 군대 있을 때 어깨 너머로 대충 봤다가 이번에 유료 결제해서 제대로 봤다. 2는 1과는 바뀐 설정이 좀 있어서 초반엔 별로 적응 안됐는데(강철중이 반쯤 양아치에 가까운 무식한 형사이던 1과 달리 2는 과격하고 충동적인 경향은 있지만 꽤나 엘리트 검사다!!!) 그렇게 나쁘지 않다. 설경구가 엘리트 검사 배역과 좀 따로 놀긴 하는데... '나름 청렴하던 사람도 명예를 한번 잃고 나면 돈이라도 챙기고 싶어진다'는 주제는 제법 잘 살린 듯. 이런 일은 현실에서도 흔하고. 현실에서 그런 일이 흔한 이유는 명예라는 게 대외적으로 과시할 수 있고 그를 통해 사람들의 존경을 이끌어 내는 '무형 자산'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돈과 권력, 그리고 명예가 이른바 '남자의 로망'을 이루는 삼위일체로 취급되는 이유도 그거고.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명예는, 보다 더 직관적이고 자기충족적인 것이다. 명예를 자기현시욕과 착각하니까 한 때 민주화의 첨병으로서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며 싸운 이들이 이제는 새누리당 같은 데 가서 금뱃지 달고 친이계다 친박계다 하며 진흙탕 싸움 벌이고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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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보고서 이것도 한번 봐야겠다 싶어서+정유미가 나와서(...) 생각만 해두고 있다가 마침 오늘 새벽 일찍 일어났겠다 조조로 보고 왔다.

'아카데믹'한 측면에서 보자면, 영화에 있어서는 문외한에 가까운 내가 보기에도 썩 잘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다. 선한 사람은 선하고, 악한 사람은 악하다. 진정으로 선하거나 악한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며, 대다수의 사람들은 다만 평범하다가 '악해질 수 있는 순간'에 설 경우가 많을 뿐이라는 내 관점에 비춰보자면 이 영화의 인물 묘사는 지나치게 단순하다. 구성도 단선적이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이러한 문제점은 감독도 자각하고 있었을테고, 대신 감독은 그러한 문제점마저도 떠안고 강하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밀고 나간 것으로 보인다. 모델이 된 광주 인화학교를 폐쇄하고 '도가니 법'을 제정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현재 상황에 비추어 보자면 그 시도는 절반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애초부터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체제를 정비하기 보다는 이미 일어난 일을 가지고 분노할 뿐이며 이러한 일들은 바로 지금도 여전히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많다. 원작과는 차이가 많은 결말 부분도 억지스럽고. 그래도 뭐, 이것조차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긴 하니까.

<김복남...>을 봤을 때도 느낀 거지만, 이런 작품을 접하면 스스로가 남자라는 것, 그리고 당장 나 역시도 성욕을 느낄 때가 많다는 것 자체가 한없이 불편하게 느껴지곤 한다. 관건은 그걸 어떻게 통제하느냐인만큼, 불합리한 사고긴 한데, 씁. 


PS=영화의 말미에 나온 대사,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세상에 의해 변하지 않기 위해서에요."라는 대사는 영화에서와는 다른 의미로 내게 무겁게 다가왔다. 나의 이상, 나의 명예, 그 모든 것들은 결국 나의 자기만족만을 위해서일 뿐이다. 나 역시도, 결국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바꾸기 위해 행하는 그 모든 것들'에는 결국 어떤 기여도 하지 못할 것이다. 언제나 그렇게 생각해왔다. 괜찮다,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약간은 허무하다.

PS2=졸업작품 용으로 제출하려고, 전에 쓴 단편 <안개 끼는 언덕>을 수정 중이다. 그 작품도 김승옥의 <무진기행>에 대한 오마쥬로 시작된 거였고... 이 영화에서도 실제 사건의 배경인 광주 대신 무진이라는 안개 자욱한 가상 도시를 차용해 왔다. 기묘한 인연이다.   

PS3=정유미는.... ...여전히 귀엽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PS4=네이뷁에서 누가 실로 병맛이 넘쳐나는 논리로 이 영화를 깐 거 보고 한 순간 열받았다가 순식간에 식었다. 볍진한테 일일이 빡칠 수야 없지, 그저 재미삼아서 호성드립치며 전라디언 운운하는 쓰레기들이 널린 게 인터넷인데. 아아, 그런 놈들도 일상에 있어서는 극히 평범하고 멀쩡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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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수업 중 관련이 있는 내용이 있어서,...오늘 수업 시간엔 그걸 봤다.

관점에 따라서는 <델마와 루이스>의 계보를 잇는(그리고 그것을 훨씬 어둡고 비관적으로 해석한) 일종의 여성주의 영화로도 볼 수 있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권력과 계급'의 문제라고 본다. 평화롭고 목가적인 섬마을이라는 낭만적인 배경 너머에 감춰진, 전통과 질서로써 강요되는 압도적인 폭력과 부조리. 폐쇄된 작은 공동체는 정체되고, 거기에 끔찍한 야만이 깃든다.

'오, 그렇지! 이렇게 훈훈하게 진행될 리가 없지! 그럼 그렇지, 바로 저거거든! 흠, 대놓고는 묘사되지 않았지만 난 저게 무슨 의미인지 알 거 같은데. 호오, 아까 대충 지나간 그게 그런 의미였나? 이렇게 연결되는군. 음, 저건? 설마 그런 건가?' ...등등의 생각을 하며 2시간 내내 몰입해서 봤다. 보고 나니.... 미치도록 담배가 땡겼다.

요즘 세상에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냐, 비현실적이다... 라는 이야기도 간간이 들리던데, 그거야말로 비현실적인 관점이다. 바로 얼마 전에도 시골에서 지체장애가 있는 여중생을 마을 남자들이 윤간해 임신시킨 사건이 터졌다. 픽션이라는 점과 그 주제의식으로 인해 별 다른 복잡한 기교도 없이 너무 노골적으로 '아름다운 자연과 추악한 인간'을 병치시켜 보여주긴 하지만, 그와 비슷한 사건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게 현실적인 거다.


본 뒤 리뷰들을 좀 찾아보니 '페미년들이나 좋아할 영화' '하여간 더러운 전라디언 새끼들ㅋㅋㅋ' '님들아 이 영화 노출씬 많나여? 허억허억' 운운하는 소리가 어김없이 있더라. 퉤.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별로 사악하다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부모님께 잘 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직장 생활 열심히 하는... 그런 '평범한 사람들'일 것이다. 이 영화의 배경인 무도에서, 김복남을 둘러 싼 마을 노인들이 자신들끼리는-그리고 외부에서 잠시 찾아온 경찰에게는- 더없이 훈훈하고 인정많은 사람들인 것과 마찬가지로.

사악하다는 것은 극히 평범한 것이다. 난 그걸 뼈저리게 안다. 2시간 내내 분노나 슬픔, 혐오감보다는 비웃음에 가까운 감정을 품고서 난 그 영화를 봤다.


편하게 볼 영화는 아니지만 훌륭한 영화고, DVD나 합법 다운로드 등의 방식으로 구매해서 종종 꺼내보게 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용서받지 못한 자>는 도저히 다시 볼 용기가 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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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터 느낀 거지만 이 감독 센스 진짜 좀 쩌는 듯. 낄낄거리면서 보다가도 문득 '나도 사실 저런 사고 방식 아닌가' 싶어서 가슴 한켠이 서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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