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별로 볼 생각이 없었는데... RPG하다가 팀원들과 우연히 이야기가 나왔다. "양키들 센스란 알다가도 모르겠다" "한국으로 치면 <김구:데몬 슬레이어>나 <여운형:워울프 킬러> 같은 센스 아니냐" "김구도 백범 일지 보면 한 성깔 하는데 의외로 어울릴 거 같기도 하다" 운운하는 대화가 오갔다.
*조조로 볼 생각이었는데 조조 상영이 없네? 으? 으?! 보지 말까? 하다가 지인에게서 '짱 재밌음ㅇㅇ 꼭 봐라 두번 봐라'라는 문자가 날아와서 걍 보기로 결정.
*당연히 역사적 고증 따위는 안드로메다를 천원돌파해서 오리온으로 간다. 애초에 뭐 그런 걸 바라고 보는 것 자체가 웃기는 거긴 한데. 하지만 악처로 유명했던 메리 토드가 현명하고 품위 있으면서도 적극적인 현대적 여성상으로 나온 건 좀 많이 깼다.
*의외로 제법 재미있다. 머리 비우고 볼 만한 액션 영화. 딱히 대단한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물들의 성격도 그다지 복잡하다거나 입체적이라거나 하지 않고서 심플하게 이해하기 쉬운 편.
*에이브러햄 링컨이라는, 미국에선 조지 워싱턴을 잇는 '제2의 국부'로 존경받는 대통령이 사실 흡혈귀 사냥꾼이었다....는 쌈마이한 설정을 앞세운 B급 영화일거라고 생각했고, 그 예상대로긴 한데 돈은 제법 쓴 티가 난다. 특히 후반부 달리는 기관차 위에서의 대결과, 불타오르는 다리 장면은 꽤 볼만한 편.
*링컨이 헨리에게 총보다 도끼가 더 잘맞는다고 하고, 내내 도끼를 주무기로 쓰는 것은 목수의 아들이었던 링컨의서민적 면모를 강조하기 위한 설정으로 보인다.
*누가 봐도 초반부터 뻔히 보이는 헨리의 정체(...그 시대에도 선 크림이 있던가?)에 대해선 뭐 넘어가고... 그런데 헨리도 최소한 수백년은 살아온 거 같은데 그 동안 키운 제자가 링컨 하나 뿐이진 않을텐데?
*기관차에서의 전투 시퀀스에서 헨리가 아담을 후드려 패는 건 많이 웃겼다. 뱀파이어끼리는 서로 못 죽인다고 했으니, 죽을 가능성이 높은 총질이나 칼질은 불가능하지만 가능성이 낮은 주먹질과 돌질은 되는 모양이다.
*은이 뱀파이어에게 효과적인 이유에 대해서 '가리옷 사람 유다가 은 30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팔아 넘긴 이후 은은 악과 배반의 상징이 되었으며, 뱀파이어 같은 괴물에게 즉효가 되었다'는 설정은 나름 신선했다. 그런데 뱀파이어가 유럽과 신대륙에만 있는 건 아니쟝(...) 뱀파이어의 기원에 대해 명확히 나오진 않았지만, 기독교가 전파되지 않은 동양이나 아프리카 같은 동네에도 뱀파이어가 있을텐데 걔네들도 은탄 맞으면 으앙 죽음인 건가? 남북전쟁 이후 살아남은 뱀프 친구들이 유럽만이 아니라 아시아로도 튀었다고 하는데, 아시아에는 기독교 세력이 거의 없는데?(...)
*미국 남부 지역의 주들은 지금까지도 북부에 대한 지역감정이 강한 걸로 아는데 '남군이 뱀파이어와 결탁했음! 뿌잉뿌잉'하는 설정보고 무슨 생각 들었으려나.ㅋ
*내가 좌빨이라 특히 더 그렇게 느낀 거겠지만(...) 너무나도 평범하고 고전적인, 개인의 자유와 생명을 무엇보다도 중요시하는 미국식 도덕관을 그대로 체현한 듯한 영웅상을 하고 있는 링컨의 캐릭터는 그 자체로도 너무 무매력적이거니와, 현실의 링컨과는 지나치게 넘사벽이다. 나도 바로 위에서 역사적 고증을 따지면 안 된다고 쓰긴 했지만, 그것도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를 재해석한다거나 '사실 너머의 진실'을 그럴싸하게 녹여넣는 차원의 문제지 이렇게 성격과 가치관이 확 달라서는 몰입이 안 된다. 링컨은 노회하고 언플에 능한 정치가였지, 투사가 아니었다. 노예 해방론도 어디까지나 대규모 농장을 비롯한 노동 집약적 산업이 주축이던 남부와 달리 공장제 대량 생산이 자리잡음으로써 노동력보다는 기술과 자본이 중요한 북부의 환경에서 나온 주장이었으며, 그 내용물 역시도 분리주의적인 성격이 강했다(토마스 J 딜로렌조의 책 <링컨의 진실>에서는 이러한 관점을 확장시켜서 링컨을 미국의 중앙집권화를 추진하고 경제적으로 산업화와 보호무역을 통해 대기업을 성장시키며 외부 식민지나 중소기업을 비롯한 외부 체제를 거기에 종속시킴으로서 경제적 제국주의의 기틀을 놓은 인물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꽤나 설득력 있는 해석이라고 본다).
*근면함, 정직함, 소박함, 순결함, 신앙심. 이것이 미국식 도덕관(좀 더 정확히는 청교도식 도덕관)의 근본이다. 그리고 목수의 아들이라는 태생부터 시작해 클리셰 쩔지만 나름 귀엽고 훈훈하게 묘사되는 연애 과정, 검소한 집무실 등 이 영화는 링컨의 그러한 면모를 부각시키는데 꽤나 주력한다. 그리고 존 스피드 등 남부에 대한 정치적 승리 및 연방의 존속을 무엇보다 의식하는 주변 인물들과 달리 '자유'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묘사에서 이것은 극대화된다. "모두가 자유롭기 전에는 우리 모두가 무언가의 노예다."라는 대사는 영화 내내 나타나는 이러한 연출의 절정을 이룬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포카혼타스>에서 묘사된 존 스미스와 포카혼타스의 아름다운 사랑(...)만큼이나 위선적으로 보인다.
*원작 소설도 있는 모양이지만 별로 읽을 마음이 안 든다. 워낙에 뱀파이어니 늑대인간이니 마법사니 하는 이런 장르를 좋아하고, 무려 <트와일라잇>에서도 나름 즐길 만한 건덕지를 찾아낸 내가 뱀파이어 물을 거부하게 되다니...!!
*좀 더 뒤져보니 <아브라함 링컨vs좀비> 같은 괴작도 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