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미국 판 <렛미인>은 그냥 무난한 수준의 헐리웃 리메이크 작이라는 느낌이다. 영화 자체는 별 것 없되, 원작이 워낙 좋았고 그 원작의 품질을 적당히 답습한 안정적인 노선의 작품이랄까. 작년에 리메이크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는 볼거리 중심의 헐리웃 스플래터 무비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전체적인 스토리는 스웨덴 판의 그것을 충실히 따라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감독의 <클로버 필드>를 인상적으로 봐서 좀 더 과감한 재해석이 이뤄지거나 아니면 아예 원작 소설의 노선을 따라가기를 기대했었지만.
차이점 1. 시간적 배경은 여전히 80년대 중반이지만 공간적 배경이 미국으로 바뀌었고, 스웨덴 판에서는 뉴스에서 브레즈네프가 언급되고 동구권의 몰락이 화자되던 것과는 달리 레이건이 연설하는 장면이 있다. 소품이나 음악에 있어서도 당시의 미국 분위기가 잘 반영되어 있는 편.
차이점 2. 뱀파이어 소녀 애비(스웨덴 판에서는 이엘리)가 금발 벽안의 앵글로 계 미소녀로 바뀌었다. 비쥬얼적으로 보자면 일단 이쪽이 더 일반적인 관점에서 예쁘고 귀엽긴 한데, 스웨덴 판에서는 아랍계 소녀 배우를 캐스팅함으로써 보다 이질적이고 초월적인 존재라는 느낌을 강화했던 것에 비해 너무 판에 박힌 미소녀라 개성이 부족하다. 연기력이나 포스에 있어서도 스웨덴 판의 이엘리가 더 매력적. 웃기도 하고 가끔 신발도 신는 등 '귀여운' 면모를 보이는 건 애비 쪽인데 대체로 무표정한 이엘리 쪽이 더 호소력이 있었다.
차이점 3. 찌질한 미소년 주인공 오웬(스웨덴 판에서는 오스카르)이 스웨덴 판에서는 북구 미소년이었던 것과 달리, 검은 머리칼의 좀 더 어리고 중성적인 이미지를 가진 소년으로 묘사된다. 둘의 인물상은 거의 유사하지만(학교에서 불량아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거나, 거울 앞에서 허세 부리며 화풀이한다거나, 단 걸 좋아한다거나) 미국판은 미성숙하고 나약한 이미지를 좀 더 부각시킨 느낌. 스웨덴 판에서는 후반에 불량아들의 리더를 까 버리고 '성장'하는 부분에서는 오스카르가 보여주던 썩소가 대단히 인상적이었던 데 비해 이 쪽은 그 이후에도 별 차이 없어 보인다. 보기에 따라 호오가 갈릴 만한 부분.
차이점 4. 오웬의 부모가 별거 내지 이혼 상태라는 설정은 스웨덴 판과 동일. 그러나 미국판에서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아버지의 친구 캐릭터 때문에 스웨덴 판에 쏠렸던 '오스카르 아버지 게이 떡밥' '아버지 친구가 매의 눈으로 오스카르를 노리는 것 같더라' 의혹은 이 때문에 안 나올 듯). 어머니가 종교에 심취하여 오웬을 소홀히 한다는 묘사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어머니에게서 충족받지 못한 모성을 애비를 통해 찾으려 한다는 코드로 읽혔다.
차이점 5. 오프닝부터 '피를 뽑아 가는 연쇄 살인마'를 추적하던 경찰 캐릭터가 등장하고(영화에서 직접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그 경찰은 어느 정도 애비의 정체를 짐작하고 있으며 젊은 시절부터 내내 추적해 왔을 것으로 보인다), 후반에 이 경찰 캐릭터가 애비에게 살해당하며 엔딩에 대한 복선이 된다. 스웨덴 판에서는 엔딩의 개연성에 대해 약간 설명이 부족했다는 느낌이었는데 미국 판에서는 경찰이 애비에게 피를 빨리며 오웬에게 손을 내밀고, 오웬이 그를 외면하는 장면을 넣음으로써 보다 엔딩의 개연성을 강화시켰다. 설명이 보강되었다는 느낌. 보다 대중친화적인 헐리웃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이점 6. 스웨덴 판에서는 이엘리의 사회적 보호자 겸 피셔틀(...) 역할이었던 호칸(미국 판에서는 토마스)이 어렸을 때는 오스카르의 위치였다는 게 간접적으로만 암시되는데 비해, 미국판에서는 훨씬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애비의 집으로 간 오웬이 토마스가 어린 시절 애비와 함께 찍은 사진을 발견하는 장면이 있다.
차이점 7. 애비가 인간의 음식을 먹지 못한다는 묘사. 스웨덴 판에서는 오스카르가 준 과자를 먹었다가 토하는 것 뿐인데 미국 판에서는 그 전에 함께 데이트를 하며 약국에서 오락도 하고(아타리의 팩맨이다) 과자를 사는 장면이 추가로 삽입되었다. 둘 간의 감정선이 평범한 연애 감정이라기보다는 동경과 육욕 등이 뒤섞인 보다 복잡한 것으로 묘사되었던 스웨덴 판보다 좀 더 단순해지고 이해하기 쉬워졌다. 둘 간의 성적 긴장감도 보다 완화되어 묘사된다. 뱀파이어 물도 피해가지 못하는 쌀나라 아동 보호법의 위엄.
차이점 8. 후반부의 하이라이트 수영장 씬이 좀 다르다. 전후 사정이나 맥락은 스웨덴 판과 동일하다(오웬이 자신을 괴롭히던 불량아 리더를 까버렸고, 그 형이 복수하러 왔다). 그러나 좀 더 유혈이 낭자하고, 오웬이 물 속에서 괴로워 하는 동안 애비가 초음속(...)으로 날아 다니며 학살을 벌이는 게 좀 더 직접적으로 부각된다. 비명 소리, 신음 소리, 뼈 부러지는 소리 등.
차이점 9. 흡혈 시 애비의 눈동자 색깔이 바뀌고 표정도 더 험악해진다. 일본 만화 같은 느낌이 들었음.
차이점 10. 스웨덴 판의 이엘리가 입에 담던 시적이고 함축적인 대사("빛이 사라지면 너에게로 갈께" "내가 되어봐" 등)들이 왕창 짤렸다. 그 대신 사랑한다고 말한다. 이런 명쾌한 쌀국놈들.
차이점 11.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부분. 스웨덴 판에서는 초대 받지 않은 채 집에 들어왔다가 전신에서 피를 흘리고, 얼굴이 순간적으로 늙어 보이는 장면이 있었다. 뱀파이어의 비극성이 드라마틱하게 부각되는 명장면이었는데 미국판에서는
그런 거 없어
걍 피만 좀 흘리고 만다.
차이점 12. 스웨덴 판에서는 영화가 끝나고 메인 테마와 함께 스탭롤이 다 올라가고 나면 검던 화면이 천천히 붉게 물드는 연출이 있었는데 미국 판에서는 그냥 끗.
전체적으로는 스웨덴 판이 좀 더 나았다. 똑같이 눈 내리는 겨울인데도 애초에 추운 나라인 스웨덴에서 찍어서 그런지 스웨덴 판 쪽이 그 특유의 스산하면서도 매혹적인 분위기를 훨씬 더 잘 살렸다. 미국 판도 나쁘진 않고, 제법 선방했다 싶은 부분도 있는데 원작에 비해 다소 밀린다는 느낌이다. 스웨덴 판에는 그런 분위기를 극단적으로 끌어 올렸던 요한 소더크비스트의 OST 빨도 있었고.
다른 데서 좀 찾아보니 원작 소설에서는 호칸이 그냥 아동 성애자였으며 오스카르와 이엘리의 관계 같은 정서적이고 밀접한 관계가 아니었다-즉 오스카르는 나이를 먹어도 호칸처럼 되지는 않을 것이다-고 하던데, 이에 대해서는 영화의 해석이 여운도 강렬한 게 더 나은 듯 싶긴 하다. 하지만 미국 판에서는 원작 소설을 재해석하는 것도 좋아 보였는데 너무 안전하게만 간 느낌이다.
1)메모리즈 <그녀의 추억>, <체취 병기>, <대포의 거리>라는 독립된 세 에피소드로 구성된 단편집. 개인적으로는 그녀의 추억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나 의외로 로맨티스트 맞나 보다(...) SF적인 기술적 배경과 19세기 공포 소설을 연상케 하는 서사 전개가 잘 맞물려 있다. 체취 병기는 독특한 설정을 흥미롭게 풀어낸 재미있는 소품이다. 대포의 거리는 설정만 봤을 때는 가장 기대돋았는데 막상 보니 기대에는 조금 못 미쳤다. 대포가 설치된 거대한 보루에서 내려다 보는 황무지의 풍경 등 미장센은 그야말로 쩔어주긴 하는데... 다소 단선적인 느낌. 단편인 이상 어쩔 수 없는 건가 싶기도 하다.
2)잠입자 오오 타르코프스키 오오... 예전에 한번 본 적이 있었는데, 중간에 잠들어 버려서 마지막 부분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재도전했는데... ...이번에는 중반 부분에 잠들어서 마지막 30분 정도 남았을 때 깨버렸다...... ....지루해서 그런 게 아니다! 그 전날 밤 잠을 적게 잤기 때문이다! ...음, 이래저래 재미있는 부분도 좀 있긴 했는데 아직은 내가 소화할 레벨이 아닌 것 같다OTL
3)메트로폴리스 비디오 테잎으로 갖고 있긴 한데, 짤린 버젼이라서 풀버젼으로 재감상. 지상에서 화려하고 세련된 삶을 사는 부자와 권력층(머리), 지하의 컴비나트에서 혹사 당하는 노동자들(손)이라는 이원화된 세계와 두 세계를 하나로 잇고자 하는 처녀 마리아(심장)... 음, 대단히 성서적인 느낌이다. 노동자들의 집회에서 마리아가 하던 이야기는 세례자 요한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주인공 프레더가 예수 그리스도인 셈인가? 무성 영화인 대신 상영 시간 내내 피아노를 직접 연주한 연주자 분께 감사.
4)단편선1 6개의 저예산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편선2도 있었는데 그건 패스. <화성이 아프다>는 화성 무인 탐사장비를 쏘아보낸 나사의 과학자들과 화성인들의 이야기. 대사가 전혀 없어서 내용 해석에 있어 혼란의 여지가 있다. 화성인들은 사실 대단히 유쾌한 친구들이지만 카메라 앞에서는 아닌 척 한다는 의미인가?; <기억의 여신:므네모시네>는 우주 통신 중계소에서 홀로 일하는 인간의 고독과 그리움이라는 다소 낡은 테마를 다루고 있다. 중간까지는 썩 훌륭했는데 결말이 지나치게 성급해서 주인공의 감정이 잘 와닿지 않았다. <데브리스>는 우주 주유소에서 혼자 일하는 남자의 고독과 권태를 감각적인 연출로 묘사했다. 그런데 좀 지나치게 감각적이라서 MTV 뮤직 비디오 보는 느낌이다(...) <No. 1009>는 인간처럼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로봇의 자기 복제를 다루고 있다. 이야기 자체는 흔하지만, 음악과 풀 CG로 만들어진 영상은 꽤나 훌륭했다. <솔라트리움>은 설정은 그럴싸 했지만 자체적으로 완결된 서사구조를 가진 단편이라기보다는 해당 설정을 기반으로 한 짤막한 영상 모음집에 가깝다. 구성이 전체적으로 망했어요 수준. 설정 안 읽어보고 이것만 본 사람은 무슨 내용인지 이해 못할 가능성이 높다. <최종 면접>은 10급 공무원 면접을 보러 간 두 남녀의 이야기. 설정도 흥미롭고 연기도 연출도 이야기를 푸는 방식도 중간까지는 대단히 좋았는데... ...처절한 조루 엔딩이 뷁끼. 더 잘 주물러서 1시간 정도 길이의 중편으로 만들어도 좋았을텐데.
5)제로 시티 뭐 하나 정상적인 게 하나도 없는 러시아의 시골 마을에 출장을 간 주인공을 통해 스탈린 시대의 소련을 풍자한 영화. 곳곳에 깔려 있는 블랙 유머에 쿡쿡대면서 보다가 문득 마음이 싸해진다. 다시 보고 싶은 영화. ...그런데 이건 SF가 아니지 않나?
6)2010 우주 여행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후속작. 보고서 감동했다. 할은 나쁜 놈이 아니었어, 흑. 다만 프로그램대로 행동해야 하는 인공지능으로서 모순된 두 명령 사이에서 가장 나은 결과를 위해 행동한 결과였을 뿐이지. 보통 '컴퓨터의 반란'이라는 주제를 이야기할 때 스페이스 오딧세이가 자주 언급되던데 그건 좀 에러라고 본다. 그리고 충격의 엔딩. 이거야! 이런 게 SF지!
7)아엘리타, 로봇들의 반란 2차 세계대전을 앞둔 소련에서 스크리아빈 음악 담당(!!!) 그리고 무려 알렉세이 톨스토이 원작(!!!!!!!!!!)으로 만든 선전 영화. 내용 자체는 비교적 단선적이고 평이하다, 프로파간다 물이 그렇지 뭐. 하지만 화성인들의 복장이라거나 건축물 같은 미장센은 대단히 독특하다. 그 시대 미국인들이 보던 '화성인'과 소련인들이 보던 '화성인'의 관점 차이가 드러난 듯해 흥미로웠다. 그나저나 톨스토이 선생, 정치 선전물을 썼다는 건 대단한 흑역사에 스스로도 엄청 치욕이었을 텐데(......) 후반부 들어 갑자기 서사가 폭주하는 걸 보면서 톨스토이 선생이 원작을 쓰던 중 "ㅅㅂ 내가 이 따위 선전물을 써야하다니!" 절규하면서 대충 마무리하는 모습이 연상되서 좀 웃었다. 상당히 원작에 충실하게 영화화했다던데... 원작이 한국에 들어왔으려나?
1995 | 일본 | 35mm | Color | 113min Dir. 모리모토 코지 / 오카무라 텐사이 / 오토모 카츠히로 MORIMOTO Koji / OKAMURA Tensai / OTOMO Katsuhiro
모리모토 코지, 오카무라 텐사이, 오토모 카츠히로 등 일본을 대표하는 3명의 감독들이 참여한 3인3색으로, 각 에피소드들 모두 뛰어난 완성도로 SF 옴니버스 애니메이션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녀의 추억]은 우주 공간을 배경으로 폐우주선을 발견한 승무원들이 이곳을 탐사하면서 겪는 이야기며, [체취병기]는 독감에 걸린 연구원이 화학무기로 개발한 특수약품을 감기약으로 오인하고 복용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풍자극. 오토모 카츠히로의 [대포의 거리]는 온통 대포만 있는 나라에서 벌어지는 파시즘적인 모습을 통해 미래 사회의 어두운 면을 묘사한다.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1 Patlabor Theatrical Version 1989 | 일본 | 35mm | Color | 95min Dir. 오시이 마모루 OSHII Mamoru
레이버라는 이름의 기계가 인간의 모든 일을 대신하기 시작한 1999년, 일본 정부는 레이버들이 범죄에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기동경찰 패트레이버를 탄생시킨다. 한편 모든 레이버들을 감염시키는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도쿄에 퍼지고, 이 바이러스는 모든 레이버들을 통제하는 메인 컴퓨터도 점령하기에 이른다. 미쳐 날뛰는 레이버들로 인해 무법지로 변한 도쿄,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동경찰 패트레이버가 투입된다. 6년에 걸친 유키 마사미의 동명의 장편 코믹스를 오시이 마모루가 연출한 첫 극장판 메카닉 액션. 다채로운 캐릭터와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돋보인다.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2 Patlabor Theatrical Version II 1993 | 일본 | 35mm | Color | 113min Dir. 오시이 마모루 OSHII Mamoru
2002년, 수수께끼의 미사일이 요코하마에 투하된다. 매스컴들은 일본 자위대 소속 기체에서 발사된 미사일이라 보도하지만, 자위대는 이 사실을 전격 부인한다. 이와 더불어 계속해서 일어나는 일련의 위험한 사건들은 경찰과 자위대의 대립을 조장하고, 정부는 치안 유지를 위해 실전 부대를 대도시에 투입하기에 이른다. 마침내 도쿄에서 엄청난 전쟁을 획책 중인 테러리스트들을 소탕하기 위해 기동경찰 패트레이버가 또 다시 최후의 출격을 시작한다. 4년 만에 다시 제작된 <패트레이버>의 두 번째 극장판 영화로, 오시이 마모루가 연출한 최고의 애니메이션으로 손꼽힌다.
<메트로폴리스 Metropolis> 1927 | 독일 | D-Cinema | B&W | 149min Dir. 프리츠 랑 Fritz LANG
메트로폴리스는 행복한 자본가들의 지상 세계와 비참한 노동자들의 지하 세계로 나뉘는 미래의 도시. 지상의 자본가 아들 프레더는 지하의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을 목격하고, 천사 같은 소녀 마리아를 만난다. 프레더의 아버지 프레더슨은 노동자들을 파괴적으로 선동하고 계급 투쟁을 고양하는 데 이용하기 위해 악마적인 과학자에게 마리아와 똑같은 로봇을 만들라고 지시한다. <메트로폴리스>는 프리츠 랑의 SF 영화의 고전으로, 1920년대 표현주의 영화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작품. 피아니스트 요아힘 바렌즈의 반주와 함께 148분 리마스터링 복원판으로 선보인다
화성이 아프다! Pimpin' Planet Mars 2009 | 노르웨이 | Digi-Beta | Color | 6min Dir. 룬 에릭슨 Rune ERIKSSON
자랑스럽게 화성에 무인 탐사선을 쏘아 올린 미 항공우주국(NASA) 요원들. 그러나 이 탐사선이 이들에게 보내오는 자료 화면은 실로 놀랍고도 놀라운 광경들뿐인데!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 Mnemosyne Rising 2010 | 미국 | HD | Color | 20min Dir. 미구엘 알바레즈 Miguel ALVAREZ
머나먼 우주 공간에서 송수신을 담당하는 우주인 카스틸로는 근무 도중 예사롭지 않은 플래시백을 경험하기 시작하는데, 바로 그때 카스틸로는 자신이 지구로 귀환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데브리스 Debris 2009 | 한국 | HD | Color/B&W | 16min 15sec Dir. 김용민 KIM yong-min, 이한빛 LEE han-beet, 최봉준 CHOI bong-jun
2086년, 한 남자가 우주 주유소에서 홀로 근무한다. 극한의 권태와 외로움에 지칠대로 지친 이 남자는 자신만의 파편적인 환상과 기억에 사로잡힌다.
No.1009 2010 | 한국 | DV 6mm | Color | 9min 30sec Dir. 이승민 LEE Seung-min
황량한 평야 위 로봇의 시야게 거대한 비행 물체가 나타난다. 이 물체에 기어오른 로봇은 제단에 도착한다. 자신의 핵심 부품을 뽑아내어 아기 로봇을 만든 로봇. 결국 자신은 작동을 멈춘다.
솔라트리움 Solatrium 2010 | 미국 | HD | Color | 20min Dir. 크리스 바우어 Chris BOWER
우주정거장에 홀로 있는 여자 우주인 브라이아 리빙은 자신의 권태감을 잊으려고 과도한 약물에 의존한다. 자신이 신약 ‘솔라트리움’의 생체 실험자 신세가 되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최종면접 The Last Interview 2010 | 한국 | HDCam | Color | 35min 50sec Dir. 황문석 Munseok HWANG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마지막 남은 10급 미화공무원 최종 면접을 보러 온 철수와 영희. 긴장된 마음을 추스르며 이들은 담당자가 알려준 의문의 면접 장소, B04호로 이동한다.
<제로 시티 Zero City> 1988 | 러시아 | 35mm | Color| 103min Dir. 카렌 샤크나자로프 Karen SHAKHNAZAROV
모스크바의 기술자인 바라킨은 그들이 필요로 하는 에어컨 부품을 생산하는 공장이 있는 작은 마을로 보내진다. 그런데 이 마을은 도무지 예사롭지가 않다. 공장의 여비서는 나체로 근무하고, 식당의 요리사는 바라킨이 후식을 먹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앞에서 권총 자살한다. 놀란 바라킨은 이 마을을 탈출하려 하지만 이는 그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모스필름의 현 대표 카렌 샤크나자로프의 1988년 칸 감독주간 진출작. <제로 시티>는 과거 스탈린 시대의 코믹한 풍자와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동시에 담고 있는 작품이다.
<2010 우주여행 2010: The Year We Make Contact>
1984 | 미국 | 35mm | Color| 116min Dir. 피터 하이암스 Peter HYAMS
디스커버리호 사고로부터 9년이 지난 2010년. 사건 당시 책임자였던 플로이드 박사는 하나의 모험을 시도한다. 자신을 비롯하여 할을 만든 챈들러와 엔지니어 등 3명의 미국인이 목성 탐사를 떠나는 소련의 우주선 네오노프호에 동승한 것. 목성으로 돌진하던 네오노프호는 목성의 한 위성을 통과하고, 그곳에서 생명체를 발견한 무인 탐사기가 미지의 힘에 의해 격추되는 사고를 당한다.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속편 격인 영화. 피터 하이암스의 뛰어난 연출력과 로이 샤이더, 존 리트고우, 헬렌 미렌 등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인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 2001: A Space Odyssey> 1968 | 영국, 미국 | 35mm | Color| 141min Dir. 스탠리 큐브릭 Stanley KUBRICK
인류에게 문명을 가르쳐준 돌기둥의 정체를 밝히러 목성으로 향하던 디스커버리호에 재난이 닥친다. 우주선의 컴퓨터 할이 반란을 일으킨 것. 할은 풀을 우주선 밖으로 던져버리고, 보우만까지도 모선 밖으로 끌어내지만 그는 필사의 노력으로 할을 제압한다. 목성 궤도에서 검은 돌기둥을 발견한 보우만은 이내 우주의 급류에 휘말린다. 지구로의 귀환을 위해 노력하던 보우만은 놀라운 시간의 흐름을 경험한다. 굳이 설명이 필요없는, 거장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SF 마스터피스의 대표로 평가되는 작품. 우주의 신비에 노래하는 위대한 한 편의 서사시다.
<아엘리타, 로봇들의 반란 Aelita, Revolt of The Robots>
1924 | 러시아 | Digi-Beta | B&W | 81min Dir. 야코프 프로타자노프 Yakov PROTAZANOV
엔지니어인 로스와 그의 동료는 우주선을 만들어 잔인한 독재자 투스콥이 지배하는 화성으로 날아가고, 그곳에서 로스는 독재자의 딸인 아엘리타와 사랑에 빠진다. 노예들은 반란을 일으키고 혁명의 지도자를 자처하던 아엘리타는 결국 그녀 자신을 위한 전제국가를 탄생시킨다. 대규모 제작비가 소요된 구 소련 최초의 SF 영화인 <아엘리타, 로봇들의 반란>은 독일 표현주의와 프랑스 아방가르드의 강력한 영향을 받아 탄생된 작품이다. 선동적인 메시지 전달과 엔터테인먼트, 두 요소를 모두 충족시키는 <아엘리타, 로봇들의 반란>은 이후 등장할 러시아 SF의 그 화려한 출발점에 해당되는 영화다.
프레데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크리처 중 하나다. 그 고도로 발달한 과학력과 우수한 지성, 그리고 호전적이고 원시적인 용맹성과 명예욕. 일견 상충하는 것처럼 보이는 두 요소들이 공존하는 외계 생물체라는 컨셉은 그 세련된 디자인과 맞물려서 10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내내 날 하악하악거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티저 무비를 보면서도 어딘가 시망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게 좀 불안했는데... 프레데터라는 크리처를 워낙 좋아하다 보니(난 그토록 악명 높았던 에일리언VS프레데터2도 그럭저럭 재미있게 봤다) 영화적으로 좀 구려도 어지간해서는 수긍하고 볼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나는 상상한 그 이상(나쁜 의미로)을 보아 버렸다.
일단 이 영화 자체는 프레데터1, 프레데터2, AVP 중 일반적으로 가장 걸작으로 일컬어 지는 프레데터1을 베이스로 하고 있다. 배경도 1에서 아놀드 주지사님하와 프레데터가 맞붙었던 정글(당시는 과테말라 밀림이라는 설정이었지만 이번에는 아예 프레데터들이 우주 각지에서 잡아 온 외계 괴물들을 풀어놓은 사냥터로 전용하고 있는 정글 행성이다)이고, 영화 초반에 1에 대한 내용도 잠깐 나온다(유일한 생존자였던 주지사 님하가 자신이 맞서싸운 괴물의 외양과 특성, 능력에 대해 증언을 남겼다고 언급된다). 2편의 도시 한 가운데서의 '우주 최고의 사냥꾼'VS'리쎌 웨폰'이라는 컨셉도 괜찮았지만 2의 프레데터는 좀 포스가 떨어졌으니까... 이건 마음에 들었다. 첫 장면 이후, 주인공들이 하나 둘 모이는 부분에서 약간 위화감을 느꼈지만("출근길에 빛이 번쩍했다가 정신차려 보니 낙하산 매달고 떨어지고 있었다? 프레데터들은 뇌의 절반 중 반에는 과학기술, 나머지 절반 중 반에는 전사의 자존심(해골 트로피 만들기 포함), 나머지 절반에는 사냥만 들어차 있는 애들이고, 지구인들의 가치관이나 장비에 대해서는 도통 개념이 없어 보이던데 그런 것까지 마련해 주디?" "너는 점쟁이냐? 얼굴만 보고 누구는 이스라엘 군, 누구는 스페스나츠, 누구는 멕시코 마약 갱이라는 식으로 바로바로 견적이 나오냐? 게다가 연쇄 살인마는 아예 범주가 다르쟝?")... 애초부터 기대치를 약간 낮춰두고 그저 오오 프간지 오오 하고 찬양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갔었기 때문에 대충 넘어 갔었다. 다들 험악하게 살아온 인물들이고, 낯선 상황에 갑작스레 떨어져서 서로 의심하고 죽이려고 드는 거야 충분히 자연스럽긴 한데 그 싸움이 멈추고 서로 협력하게 되는 과정이 부자연스럽다. 차라리 서로 죽이려 들다가 프레데터들 사냥개가 난입해 와 얼떨결에 협력하게 됐다고 하지 그래. 그래도 여기까지는 한정된 시간 안에 많은 주인공들 집어 넣고 설명하려니 그런 거라고 넘어갔다. 그리고 내내 클로킹 상태로 감질나게 하던 프레데터들이 적외선 탐지 장비가 실린 비행 로봇으로 인간들을 포착하고는 차례차례 클로킹을 풀며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은 그야말로 폭풍간지. 그 장면 하나 만은 구라 안까고 정말 멋졌다.
....그리고 나는 그 시점에서 극장을 나왔어야 했다.
프레디 로드리게즈 이생퀴야, 타란티노랑 헤어지고 정줄 놨냐!? 님 왜 이럼, 옛날엔 이런 감독 아니었잖아! 로렌스 피시번 같은 배우를 그런 식으로 소모해야겠음? 무려 모피어ㅅ... ...어흠. 아무튼, 가장 눈에 띄는 문제는 인물들이 생동감이 없다는 점이다. 무려 외계인이 눈 앞에 돌아 다니는데 지나치게 상황에 빨리 적응하는 등 '각본 상의 필요로 인해 기능적으로만 움직이는' 티가 너무 뻔히 나는 것까지는 넘어갈 수 있다. 그런데 나름 인간미를 부여한답시고 취하는 방법이란 게 지나치게 뻔하고 진부하다는 게 문제다. 어린 자식들 사진 보여주며 '난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야 해'드립이라니, 맙소사 이게 무슨 80년대 전쟁 영화임? 그것만으로도 문제인데 영화가 진행되며 인물들이 우수수 죽어 나가니 더 심각해진다. 안 그래도 그럴싸한 과거사가 풀린 것도 아니고 도통 공감이 안 가는 인물들인데 그저 진행 상의 필요로 인해 그렇게 소모되어 버리니 긴장감도 안 들고 맥이 풀린다. 최근 몇 년 간 본 영화 중에서 이 정도로 인물들이 매력 없는 영화는 처음 본다.
각잡고 액션 영화로 만들었으면 전투 씬이라도 화려하던가, 하다못해 일본도 한 자루 든 야쿠자와 프레데터 간의 1대 1 대결은 오리엔탈리즘 스멜이 물씬 풍기면서 오글거리는 재미라도 있는데 나머지는 개판이다. 나의 프레데터는 리스트 블레이드만으로 수많은 에일리언들을 철근처럼 씹어 먹으며 무쌍난무를 펼치는 폭풍간지지 고작 총 몇 방 맞았다고 어버버하다 주저 앉아 버리는 약골이 아냐OTL ...냉정히 생각해 보면, 프레데터1 기준으로는 그 정도 파워 레벨이 적당하긴 하다. 그 이후 나온 게임 등에서 지나치게 파워풀해진 거지. 하지만 초반에만 전술 같은 걸 좀 쓰는 것 같다가(목소리 흉내내는 아이디어는 꽤 그럴싸했다) 중반 이후로는 수류탄을 비롯한 폭발물에 얄짤없이 낚인다. 프레데터가 플라즈마 캐스터나 디스크 같은 원거리 무기에 의존하기보다는 육박전을 통한 정면 승부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고려해도, '최소한 인간 수준, 어쩌면 그 이상으로 지적인 놈들'이라는 게 거의 어필이 안 됐다. 상대의 특성에 따라 무기와 편성을 바꾼다고 인물들 입으로만 주절주절 설명해주면 뭐하냐고 정작 중요한 영화 상에서 그런 모습이 도통 안 보이는데 이거 어떻게 설명할거야 로드리게즈 ㅅㅂㄻ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 넷건이나 디스크, 콤비 스틱 같은 다양한 무장들은 엿바꿔 먹었냐? 그것들은 1에서 안 나왔으니 무시했다 치더라도, 초반에 잠깐 나온 정찰용 비행 로봇은 왜 안 쓰는 거고 그야말로 필살 무기 포스를 자랑했던 플라즈마 캐스터 위력은 왜 그리 조루인 거고 개나소나 간파하고 쏴 맞추는 클로킹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데 응응응?
꽤 괜찮은 영화였던 1편의 오마쥬로 보이는 장면들이 이래저래 많은데, 그 장면들은 1에서는 영화 내에서 확실히 '그런 장면이 나올 수 있을 만한' 개연성이 있었고 그걸 최대한 살려 주는 연출이 받춰 줬기에 명장면이 되었던 거다. 그런데 그냥 아무 설득력 없이 적당히 '그 장면 간지났으니까 여기서도 집어 넣자'라는 마인드로 대충 우겨 넣은 티가 난다. 머 병시나?
그리고 결정적으로, 후반의 어이 없는 반전(이라고 해주기도 아깝다). 니마 복선 없는 반전은 보통 반전이라고 하지 않고 걍 ㅈㄴ 생뚱맞은 전개 내지 억지라고 하거든요?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 나름 그걸로 지금까지의 다른 프레데터 영화에서는 표현하지 못했던 주제의식을 드러내고 싶었던 모양인데, 내적으로 무리수돋는 설정이나 전개가 너무 많아서 설득력 쥐뿔도 없거든요?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
마지막으로, 나는 저 커플링 반댈세. 영화 도중에 저 둘은 별다른 플래그도 안 섰거등요? 걍 마지막에 살아남은 게 저렇게 둘이니까 적당히 사귀라는 거임? 게다가 여자 쪽이 너무 아깝잖아, 저래놔선!!!!!!! 그 조루 엔딩은 또 뭐고, 장난함?
총평은 별 다섯개 만점에 두 개. 별 하나 중 절반은 '그래도 어쨌든 프레데터가 나오니까'라는 이유로 줬고, 절반은 알리스 브라가가 연기한 이사벨 누님이 마음에 들었다는 이유로 줬음(....)
만일 프레디 로드리게즈가 후속을 만들면(세계적으로 폭풍까임 당하고 장렬히 흥행 시망할 거 같지만) 아무리 프레데터라고 해도 내가 머리에 총맞지 않는 한은 안 보러 갈 거다 후(...)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히트 이후로 달착지근한 하이틴 로맨스 물에 뱀파이어 등의 초자연적 요소를 끼워 넣는 게 유행이 되고 있다. 이것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이미 전범이 마련된,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고전적인 테마에다가 ‘일상에서 벗어난 힘과 근원을 가진 초월적인 존재’라는 요소를 추가하여 인물에게 이질적인 매력을 부여하는 동시에 ‘진부하고 지루하지 않은, 운명적이고 특별한 사랑’이라는 판타지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욕구의 발로로 풀이될 수 있다. 중세 유럽의 민담 속에서 전해지는 나무꾼과 숲의 요정 간의 사랑 이야기와 같은 서사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는 이러한 욕구는 결코 새삼스러운 게 아니며 현대에서도 수 없이 재생산되어 왔다. 그리고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그러한 판타지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다. 그 영화 속에서는 인간을 양에, 그리고 뱀파이어를 늑대에 비유하며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의 관계를 ‘양과 사랑에 빠진 늑대’로 묘사한다. 그러나 그런 류의 작품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점은, 거기서 묘사되는 ‘괴물’들이 전혀 괴물답지 않았다는 점이다. SF작가이자 영화 평론가인 듀나는 그 시리즈에서 그려지는 뱀파이어를 두고서 ‘모든 폭력성과 불편함이 거세된 괴물은 괴물이라고 불릴 필요가 없다’고 불평했다. 나는 거기에 동감한다. 그런 류의 작품 속에서 묘사되는 괴물은 그저 독자의 판타지를 충족시키기 위한, ‘강하고 예쁘고 멋있고 내게는 다정한 그 무언가의 번데기(...)’일 뿐이며, 괴물이라고 불릴 만한 존재 고유의 이질성이나 위험성은 그저 ‘뭔가 신비롭고 이국적인 매력을 부여할 수 있는 배경 요소’로 최소화된다. 본질적으로 이것은 ‘부자 부모를 뒀고 잘 생겼고 싸움 잘하고 터프하지만 고독해 보이는 고등학교 일진’과 별로 다르지 않다. 초자연적인 존재, 그 중에서도 특히 뱀파이어나 워울프를 다루는 이러한 작품은 그 정의 상 벗어나기 힘든 그림자가 몇 개 더 겹쳐져 있다. 첫 번째는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 연대기』다.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가 동유럽의 흡혈귀 전설과 이전의 몇몇 흡혈귀 물을 집대성하여 근대적인 뱀파이어 물의 완전체가 되었다면 그 시리즈는 뱀파이어라는 존재에게 반 기독교적인 악마의 이미지를 벗겨내고는 대신 영원한 저주에 고통 받는 고독한 영혼이라는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창조해냄으로써 현대적인 뱀파이어 물의 완전체가 되었다. 사랑했던 이들이 늙어 죽어가고 한 때 소중했던 것들이 시간과 더불어 아무런 의미도 없는 티끌로 변해 가는 걸 지켜보면서 느끼는 절망과, 생명의 근원인 피를 살아 있는 인간에게서 갈취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죽어 있지도 살아 있지 않은 자신의 존재를 유지해간다는 모순 등 일반인들이 뱀파이어 물이라고 하면 떠올리곤 하는 거의 모든 것들이 그 시리즈에서 완성되었다. 두 번째는 캐나다의 TRPG 회사인 화이트 울프 사에서 나온 『World of darkness』 시리즈다. 현실 지구와 대단히 비슷하지만 보다 더 어둡고 퇴폐적인, 고딕적인 분위기와 펑크적인 분위기가 기묘하게 얽힌 세계를 배경으로 뱀파이어나 워울프, 메이지, 레이쓰(WOD 세계관의 ‘유령’), 체인즐링(요정들의 후예) 등의 초자연적 존재들이 저마다의 목적과 이상을 가지고서 인간 역사의 배후에 숨어서 세계를 움직이며 한편으로는 인간들에게 영향을 받는다는 스케일이 큰 음모론적 설정을 기반으로 현실과 가상을 교묘하게 뒤 섞어 놓은 이 세계관은 현재 유행하고 있는 초자연적 존재들을 전면에 내세운 숱한 픽션-앞에서 언급한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비롯해-들에게 거대한 영향을 미쳤다-제작사인 화이트 울프는 게임이 아니라 소설을 비롯한 관련 설정을 팔아먹고 산다고 팬들이 농담을 할 정도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다르다. 이 영화에서 묘사되는 워울프는, 여타 초자연체들을 전면에 내세운 여러 다른 영화(『블레이드』나 『언더월드』를 비롯한)와는 달리 그러한 괴물이 얼마나 위험하고 치명적인 존재인지를 전면에 부각시킨다. 게다가 이 영화의 주체가 되는 건 퇴폐적이고 관능적인 흡혈귀나 음험하고 교활한 마법사가 아니라, 야성적이고 광포한 워울프다. 산업 혁명이 한창이던 19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가장 야만스럽고 흉폭한 초자연체인 워울프가 날뛴다는 것은 독특한 대비를 이룬다. 이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첫 변신을 마친 주인공이 정신 병원에 갇히는 부분이다. 스스로가 늑대라고 믿는 정신병은 물론 실제로 존재한다. 그러나 주인공이 그 병에 걸렸다고 판단하고, 학회에 모인 동료 의사들 앞에서 자랑스레 자신의 연구 성과를 보이려던 의사가 만월을 보고 변신해 미쳐 날뛰는 주인공에게 도망치다 목숨을 잃는 장면은 매우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 영화에서도 사랑 이야기는 나온다. 그러나 그 사랑은 주인공을 결국 구원하지 못한다. 앞선 명작들이 남긴 그림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시달린 나머지 억지스러운 해석을 부여하거나, 괴물이라는 이미지에서 대중적으로 잘 먹힐 만한 달콤한 코드만을 뽑아내서 적당히 포장하는 대신 전통적인 워울프 전설의 형태에 가까운 영화의 설정은 대단히 단순하고 직접적이며, 그만큼 감상자에게 강한 임팩트를 준다(이것은 히라노 코우타의 만화 『헬싱』에서 제시된, 스스로의 존재에 고뇌하는 대신 적극적으로 어둠을 즐기는 광기에 찬 흡혈귀 상이 정말로 ‘괴물’스러운 임팩트를 준 것과도 비슷하다). 이 영화에서는 아쉬운 부분도 많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대단히 중요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심리에 대한 설명이 상당히 부족하고, 여주인공이나 영화 초반에 나타난 은탄환을 사용하는 워울프 사냥꾼들에 대한 묘사도 아쉬움이 있다. 워울프로 변한 주인공의 광기에 찬 파괴 묘사도 힘이 딸린다. CG에 부을 제작비가 좀 부족했던 모양이다(...) 워울프의 괴물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한 제작진의 노력은 확실히 보이지만 그 결과물은 아무래도 미흡한 감이 있다-‘워울프’ 부분이 보통 사람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압도적이고 강대하면서도 불안정한 존재라는 묘사가 부족하며, 대신 주인공 역을 맡은 베니치오 델 토로의 ‘인간’ 부분의 섬세한 연기와 우수한 연출로 그를 보충한다-. 그러나 민간전승에서 나타나는 전통적인 형태에 가까운 고전적 워울프 상을 썩 괜찮게 스크린에서 재현했다는 점만 봐도 『울프 맨』은 상당히 볼 만한 영화다.
*개봉 전에 공개된 볼투리 일가의 이미지만 봤을 때는 토레도 삘이 난다고 생각했는데 뚜껑 열어보니 벤트루였다 파문. *클랜 중 누군가가 모탈이랑 금단의 사랑에 빠지면 비극 한 편 감상하는 마인드로 그걸 지켜보며 한숨짓고 눈물 흘리고 안타까워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둘 다 쳐 죽이고서(...정확히는 한 쪽은 디아블러리하고 다른 한 쪽은 구울로 만들고서) 오오 앵스트 어쩌구 하며 눈물 한 방울 떨궈 주는 게 토레도 퀄리티죠, 압니다. 그런데 볼투리 일가는 벤트루였을 뿐이고... 처형 방식도 우아함이 결여됐을 뿐이고... 보는 입장에서는 진성 벤트루가 아니라 이새퀴들 안티트리뷰 벤트루가 아닌가 싶을 뿐이고... *전작을 봤을 때부터 느낀 건데... 영화에서는 ‘사람 피 안 마시는 뱀프들->금빛 눈, 사람 피 마시는 뱀프들->붉은 눈’으로 도식화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아로가 하는 짓을 보면 그 정도 수준이 아니라 무슨 모탈들을 가축 취급하는 사바트 같다, 네놈들 카마릴라가 아니었냐(...) *에드워드가 자살 어쩌구 하며 드립치는 걸 보면서 ‘죽을 수가 없어서 고민임? 너희들이 죽을 수 없다는 건 나도 마음이 아프지만 맨 몸으로 어그리 데미지를 뽑아내는 워울프가 출동한다면 어떨까? 워! 울! 프!’ 같은 생각을 했었는데... ....현시창. *우월하신 칼라일 선생은 윌파워 10찍으신 듯ㅇㅇ... 하지만 님도 너무 허여멀건 게 비쥬얼은 솔직히 좀(...) *에드워드는 남자가 보기엔 여전히 재수 없음ㅇㅇ. 제이콥이 훨씬 낫다! 그나저나 이생퀴는 나이는 고작 100살 좀 넘은 주제에 도대체 몇 세대길래 저 정도 디시플린을 써대는 겅미... *벨라도 워낙 배우가 미인이라 ‘오오 여신 포스 오오’하면서 보긴 했지만... 캐릭터가 하는 짓은 재수 없다. 어장관리 즐. 제이콥은... 그저 지못미일 뿐ㅠㅠㅠ 하지만님손연기는쩜. *전작부터 ‘후속작에서는 워울프도 나온다능’이라는 떡밥을 워낙 노골적으로 뿌려대서 워울프 쪽을 더 좋아하는 나로서는 기대하고 있었는데 예상보다 포스가 떨어져 아쉬웠다. 강하고 빠른 거야 뱀파이어들도 마찬가지고 추가로 뱀파이어들은 감정 조작이다 독심술이다 초능력도 펑펑 쓰는데 늑대들은 그런 거 없뜸 ㄱㅅ. 슈ㅣ발 <반 헬싱>도 그렇고 <언더월드>도 그렇고 왜 뱀파이어 대 워울프 대립구도로 가는 영화들은 전부 왜 이렇게 워울프 취급이 안습이냐ㅠㅠㅠㅠㅠㅠㅠㅠㅠ WOD처럼 늑대들한테도 간지 나는 설정이나 다양한 특능 좀 붙여달라고! *워울프들은 리더에게 절대복종한다는 설명에서 WOD 워울프의 팩과 알파에 대한 복종 관련 설정의 냄새가 났다 킁킁. 그러고 보니 제이콥 쪽 패거리도 5명이네?(...) 자아 각자 어스피스를 밝혀 보게나, 일단 일개 인간 여캐의 도발에도 넘어가서 프렌지하지 않나 열 좀 받았다고 여자친구 얼굴에 발톱빵 새기질 않나 병크 골고루 저지른 얼간이 샘은 아론이라고 치고(........) *머리 자르고 문신 새기고 퍼스트 체인지(...)한 제이콥이 어리버리하는 걸 보면서 “훗훗 처음 퍼스트 체인지한 다음에는 원래 다들 그래 클리아쓰 제이콥군, 그래도 계속 동족들이 옆에서 지켜봐주고 챙겨주는 자네는 운이 좋은 편일세” 같은 생각을 한 나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WOD덕후가 맞나 보다(............) 하지만님손연기는쩜 *영화 자체로 보자면... 꽤 문제가 많다. 로렌트가 갑자기 벨라를 죽이려 드는 것도 설득력이 부족하고, 뱀파이어의 왕가랍시고 볼투리 가가 갑툭튀하는 건 지나치게 뜬금없다. 에드워드와 벨라가 서로 반한 것까지는 좋지만 망설임 없이 죽음도 감수하려고 드는 것도 비약이 심하다. 애초에 작품 자체가 초자연적 요소를 살짝 넣은 할리퀸 로맨스니까 치밀한 서사나 밀도 있는 구성 같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해도, 하다못해 인물들이 모에로워야 하는데(...나왔다 전문용어) 스토리의 핵심인 남주 여주가 쌍으로 재수 없다는 건 큰 문제다. *<언더월드>에서 워울프들의 수장 루시안 역으로 나온 마이클 쉰이 여기서는 볼투리 가 수장으로 나오는 걸 보고 대박 웃었다. 노린 게 분명해(...) *후반부 아로의 모습을 보면서 내내 ‘이동무레반동이구만이런어보미네이션샛퀴’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파릇파릇하던 시절의 루시안이 사고 화끈하게 쳤다가 뱀파이어들에게 발리고, 연륜 좀 쌓여서 좀 침착해졌는데 빅터에게 살해당한 것... 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어보미네이션이 돼서 볼투리 가문 수장까지 된 거구나’라는 말도 안 되는 뒷설정을 떠올리고는 혼자 납득하고 있던 나는.... ...인정하련다, WOD덕후 맞는 모양이다(...) *다코타 패닝은 바람직하게 자랐건만, 뱀파이어 분장이 영 안 어울린다. 3부에선 걍 나오지 마라(...) 출연 분량도 그저 안습. *애슐리 그린이 연기한 앨리스 땅은 여전히 카와이하고도....ㅎㅇㅎㅇ(야임마) 구글로 사진 찾아보니 머리 긴 모습이 많던데 영화에서와는 이미지가 확 달라서 놀랐다. ....이런 누님 분위기도 좋아!(그만해) 확실히 여자들은 머리 모양으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는구나, 그러고 보니 정유미도 그렇네...? *뉴문 첫주 흥행이 다크 나이트를 넘어섰다고 한다. ....=_=<-이런 기분이다... *듀나의 영화평을 보며 대박 웃었다. 특히 모든 잔인함과 불편함이 제거된 순둥이 뱀파이어/워울프 설정을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대목이랑 마이클 쉰이 아로로 나온 걸 보고 <언더월드>팬들은 배반이라고 외칠 거라는 대목은 캐공감.
구성이 좀 들쭉날쭉하고 신 캐릭터의 출연 때문에 구 캐릭터 모 양(지못미ㅠㅠㅠ)의 비중이 심각히 축소되서.... 원작을 모르는 사람들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던 '서'와 달리 이번 '파'는 약간 문제점이 많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럽게 잘 봤다, 재미 있었음.
PS=......이제 시험 공부 해야지 후ㄱ-
PS2=별 관계는 없지만(....) 서의 최종 보스였던 라미엘땅의 모에한 면모(.......)
PS3=서의 차회 예고에서 '다음 번에 화려하게 등장할 것 같았던' 포스를 작살나게 뿌렸던 카오루는 몇 장면 안 나왔다(....) 하지만 이번 파의 차회 예고에서 나온 카오루의 독백대로라면 역시, (드래그) 신극장판 에바는 오리지널 당시 서드 임팩트가 발생하고 세계가 리셋된 이후 진행되는 엔드리스 에이트(....)라는 설이 유력할 것 같기도 하다, ㅇㅇ....
PS4=신지에게 어른이 되라고 꾸짖는 겐도. 어른이 뭔지 모르겠다고 대답하고는 떠나려 한 신지. 그의 입장에서 보자면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겐도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으며, 거기에서 정말로 떠나 버렸어도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는 결국 스스로 되돌아 왔다. 그냥 떠났다 해도, 누구도 그를 비난하지는 않았을 터인데. 이 장면은 내게 있어서도 특별히 의미가 깊어 보였다.
사실 웰즈의 <우주 전쟁> 이후로 일반화된, '압도적인 힘과 지성을 갖고 있으며 인간에 대해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는,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저항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이질적 타자'로 외계인을 정의하는 것은 갈등구도의 단순화를 통해 보다 많은 관중에게 어필해야 할 필요가 있는 헐리웃 영화와 같은 매체에서나 주종을 이뤄왔을 뿐이다. SF 소설에서는 꾸준히 다른 유형의 외계인들이 등장해 왔고(렘의 <솔라리스>나 크라이튼의 <스피어>처럼 접촉한 이의 정신세계를 투사한다거나,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에서처럼 비교적 합리적이고 온건한 형태로 접촉해 온다거나), 지구인과 외계인의 갈등이라는 표피 아래 정치적 사회적 상징성을 담아 세련되게 표현한 작품들도 많았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서 참신하다고 여기는 요소인 '일반적인 지구인보다 지적이지도 세련되지도 못한, 너절하고 구질구질한 내키지 않는 이웃'으로 외계인을 묘사한 점은 그렇게 특기할 만한 사항이 아니다. 레이 브래드버리를 비롯한 선구자적인 SF작가들은 반대로 지구인들이 옮긴 치명적인 질병으로 멸망의 위기에 처한 외계인들이 언젠가 돌아올 지구인들을 기다리며 복수의 도시를 건설하는 이야기 같은 걸 쓰기도 했고.
그러나 이 영화가 좀 더 특별한 이유는, 그러한 '구질하고 너절한 모습의 외계인들'이 있는 장소가 외계의 어느 먼 별이 아니라 바로 지구이며, 벽을 통해 외계인 거주구역이 격리되어 있다는 배경 때문이다.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부분적으로 차용한 영화의 서두에서, 카메라는 고양이 사료 통조림에 열광하거나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인간의 옷을 훔쳐 아무렇게나 둘러 입은 외계인들의 모습을 비춰주며 또한 그런 외계인들을 무시무시하거나 적대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귀찮고 떨쳐 버리고 싶은 이방인 취급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병치해서 보여준다. 주인공 역시도 그러한 현실에 분노를 느끼고 외계인 권익 보호에 앞장서거나 반대로 외계인 격리 조치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인물이 아니라, 적당히 덜떨어지고 심약하며 속물적인 '극히 평범하거나 혹은 평범 이하인' 인물이며, 이러한 배경은 관객들이 살고 있는 지금의 이 현실 풍경들과도 중첩된다.
서사 매체는 그 자체로 즐기는 것이 가장 좋은 감상법이지만 현실과 접목하여 해석을 이끌어내는 것도 감상자로써는 놓치고 싶지 않은 재미이기도 하다. 나는 이 영화에서 그려지는 외계인들이 소수민족이나 장애우, 성적 소수자 등 이 세계의 그늘에 속해 있는 사회적 소수자들로 보였다. 난마처럼 얽혀 있는 남아프리카의 인종문제 역시도 겹쳐 보였고. 넬슨 만델라의 결단 이후로 벌써 10년이 넘게 지났지만, 지금껏 누적되어 온 문제들이 해결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굳이 그에 한정짓지 않더라도, 미디어 권력의 사실 은폐나 정치와의 결탁, 인간의 탐욕 등 곰씹어 볼 거리가 많은 훌륭한 영화다.
PS=마지막 장면 보며 패닉의 노래 UFO가 떠올랐다. "날아와 머리 위로 날아와~ 어두운 하늘 환히 비추며 솟아~ 모두를 데려갈 빛을 내리리~"
기분 전환 겸 조조로 영화보고 왔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터미네이터 샐베이션도 보고 왔구나, 난 미소녀보다 로봇이 더 좋... ....이게 아니고-_-
아는 사람이 너무 좋았다고 극찬을 하긴 했지만... 별 생각 없이 때려 부수고 집어 던지고 우걱우걱하는 영화가 필요해서 갔고, 만족했다(.........야임마)
객관적으로 보자면, 극히 당연히도(...) 잘 만든 영화는 아니다. 액션은 완급 조절이 부족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헤비하게 달린다. 마침 그런 게 필요하던 참이었기에 개인적으로는 만족했지만 일반 관객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처음에는 오오오하다가 뒤로 갈 수록 지치게 된다. 2시간이 훌쩍 넘어가는 러닝 타임을 고려해 보면 말할 것도 없고.
인물들도 썩 잘 살지 못했다. 특히 초반에 나오는 여성형 디셉티콘은 좀 더 써먹을 여지가 많았는데 어느샌가 묻혔고, 마티즈 닮은 오토봇 둘은 재미없는 농담만 한다. 데바스테이터였던가, 합체 디셉티콘은 그 덩치와 간지에 비해 뭐랄까 음;; 메가트론 너머의 흑막으로 나오는 폴른은 디자인은 파라오 닮은 게 간지나는데 하는 짓이 너무 볍진 같음. 제트파이어 영감도 좀 더 사연이 많은 캐릭터여야 했을텐데 "깨어 나세요 용자여!" 밖에 안한다-_- 아니 물론 그렇다고 해서 구구절절 설명하고 앉아 있는 것도 영화를 늘어지게 만드는 병크이긴 한데. 샘의 룸메로 나오는 해커 애들 둘은 뭐...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0= 결정적으로, 정부 관료들은 항상 쓸모가 없다....
보고 와서 평소 자주 눈팅하던 영화 관련 게시판을 좀 둘러보니 돈지랄이라고 악평이 넘쳐나고 있었다. 뭐, 대체로 맞는 이야기긴 한데... 난 약간 다른 생각이 들었다. 이거 개봉한 지도 제법 됐는데 이렇게 상영관을 3개씩 혼자 먹고 있으면 다른 영화가 나올 기회가 없어진다는 생각. 어이구 저놈의 트랜스포머가 내 영화 다 처먹네...(야) 국내 배급사 사정이 안 좋아서 이거 한방에 사운을 걸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진짜인 모양.
ps=정유미가 나오는 차우와 십억이 조만간 동시 개봉한다. 속으로 춤을 추면서도 '너무' 유명한 배우가 되어 가는 거 같아서 조금 복잡한 심정(......)
<다크 나이트>이후로 <차우>와 더불어 최고 기대작이었던-정유미가 나오니까!- <왓치멘>을 보고 왔다.
배트맨은 부모의 죽음에 트라우마를 가진 사내가 타락한 도시의 어둠 속에서 외로운 정의를 추구하는 이야기였다. 엑스맨은 자신들이 가진 특별한 힘 때문에 차별 당하는 초인들의 이야기였다. 헐크는 압도적인 힘과 체력, 그리고 거대한 분노를 가진 내면의 또 다른 자신과 투쟁하는 이야기였다. 스파이더맨은 힘과 책임, 그리고 사회와의 조화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왓치멘의 영웅들은, 물론 일반인들보다 훨씬 강하긴 하지만 그 중 한 명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그 한 명은, 거의 신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이렇다 할 초능력 같은 건 전혀 없는 일반인들이다. 그들은 하늘을 날지도 못하고, 바위를 집어 던지는 괴력도 없고, 불로불사하지도 못한다. 그들도 굶주리고, 피로해지고, 총에 맞으면 죽고, 개인적인 감정과 욕망에 번민한다. 그들은, 그들 주변을 둘러싼 사회의 거대한 흐름에 거역하지 못한다.
내가 왓치멘의 원작 만화를 읽으며 가장 높이 평가한 부분은 이러한 '현실적인 초인들'의 딜레마가 아주 잘 표현되었다는 점이었다. 코미디언은 미국이라는 '제국'의 가장 어둡고 추한 면을 가장 극단적으로 반영하는 인물이었다. 로어셰크는 자신만의 정의에 대한 편집증적인 집착을 갖고 있었다. 나이트 아울은 실크 스펙터에 대한 애정, 실크 스펙터는 어머니와의 갈등이라는 식으로 다른 인물들도 나름의 사정과 고뇌를 가진 채 그에 얽매여 있었다. 주인공들 중 유일한 초능력자이며, 작중에서 "슈퍼맨은 존재하며, 그는 미국인이다"라고까지 표현되는 반신적인 인물인 닥터 맨해튼마저도 바로 자신의 거대한 힘 자체에 구속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베트남 전쟁이 가면을 쓴 영웅들의 활약에 힘입어 미국의 승리로 끝난 뒤 정부는 영웅들의 자경 활동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그들의 대중적 인기와 영향력을 두려워한 결과일 것이다-, 종전 이후 반전 평화의 목소리가 높아지며 대중들은 영웅들을 정체 모를 위험한 어릿광대 취급하며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나이를 먹은 퇴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원작 만화에서, 나이트 아울이 젊은 시절 입던 슈트 옆에 앉아 고뇌하는 장면은 원작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였다. 내게는 그랬다.
바로 이 장면.
그러나 중반을 넘어서며 영화는 원작과는 약간 다른 전개를 취하며 설득력을 잃는다. (이하 네타)
오지맨디아스는, 핵의 위험과 자원고갈의 불안에 떠는 법 없이 평화롭게 번영을 구가할 수 있는 세계라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도시 하나를 날려 버렸다. 원작에서 이 장면은 1대 나이트아울이던 홀리스의 저작 발췌나 과거 회상을 통해서 오지맨디아스라는 인물의 여러 면모가 구체화되며, '영웅주의에 빠진 과대망상 파시스트'라고 단순하게 까기가 상당히 힘들어지게 하는 과정이 독자에게 충분히 제시된 이후에 나온다. 게다가 원작 내에 액자 형식으로 삽입되어 있는 만화인 검은 배 이야기나, 거의 마지막 부분 오지맨디아스가 닥터 맨해튼에게 자신이 과연 옳은 일을 한 거냐고 물으며 절규하는 장면은 이 인물에 대해 연민을 가지게 만든다. 그러나 영화에서의 오지맨디아스는 독선적이고 재수없는 영웅주의자일 뿐이다.
잭 스나이더 감독은 원작을 충실히 재현하려는 욕심이 지나쳤다. 러닝 타임이 길어봤자 180분을 넘기기 힘든 상업 영화에서는 원작의 밀도를 재현하며 주제의식을 잘 살려 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나이트아울과 실버 스펙터의 비중을 줄이고 로어셰크와 닥터 맨해튼, 그리고 오지맨디아스의 인물을 부각시키는 데 집중하는 게 더 나은 결과를 가져왔을 듯 하다. 아니면 차라리 '한물 간 영웅들이 다시 뭉쳐 과대망상에 빠진 캐악당을 때려잡고 하하호호하며 끝내는 액션 영화'로 만들던가. 원작을 읽었을 때는 영화 그렇게 만들면 제작사를 폭파시키리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뭐랄까-_-
그러나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불만스러웠던 장면은, 군중들의 시위 장면에서 등장한 문구 '누가 감시자들을 감시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관객이 생각해 볼 만한 여지를 주지 않은 채 그냥 휙 넘어가 버렸다는 점이다. 원작에서 저 문구는, 최종보스(?)의 결정과 나란히 독자들에게 많은 생각꺼리들을 던져 준다. 하지만 영화에서 저 문구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장면 중 하나로 끝나 버렸다. 그럴 꺼면 차라리 빼라고!
ps=그래도 영화만의 장점도 있긴 하다. 케네디 암살의 진범에 관한 추가 설정이라거나, 오지맨디아스가 협력 중인 에너지 기업체 중역들을 협박하는 장면은 꽤나 그럴 듯한 해석이었다. 그리고 특히 화성에서의 장면 오오... 내가 왓치멘을 한번 더 보러 간다면, 그 이유 중 절반은 화성에서의 그 장면을 다시 보고 싶어서 일 거다(....)
24화:폭주 1천 야마노가와 류세이. 개인적으로는 최고로 꼽는 에피소드. 31화도 강렬하지만 결정적으로 내 퓨즈를 끊어놓은 에피.
31화:지인이 최고로 꼽는 에피소드. 갑토보구 특유의 미쳐 돌아가는 막장성이 잘 드러난 명작 에피. 갓츠~~~ 진!!!
38화:24화에선 류세이가 제일 나쁜 놈이라고 생각했다. 이 화를 보고서는 놈이 제일 무서워졌다.
46화:...이 애니에서 처음으로 '진짜' 죽은 사람이 나왔어!(ㄷㄷㄷㄷ) ------------------------------------------------------------------- 후암, 쓰르라미랑 그렌라간 이후로는 본 애니가 없구나. 건담 더블오가 재미있어 보이던데 본격적으로 봐볼까.
한국 영상자료원 11월 기획전으로, '몸짓의 행로:김승호 對 에밀 야낭스'를 시네마테크 KOFA에서 하고 있다. 이번 기획전에서는 독일 나치 시대의 선전 영화 5편을 묶어 상영하고 있는데, 그 중 2편인 <지배자>와 <크뤼거 아저씨>는 특히 선전의 수위가 높아서 홈페이지 신청자에 한해 입장이 가능하며, 독일 정부가 인가한 해설자를 초청한 상태에서 단 1회만 상영한다는 제한이 붙어 있다. 모 게시판에서 소개 글을 봐서, 그걸 보러 갔다 왔었다.
*이하 스포 있음*
<지배자>는 나치 치하의 독일에서, 이름 높은 군수 회사인 클라우센 사의 노 회장이 주인공이다. 그는 아내를 잃고서 한 동안 비탄에 빠지지만 그를 성심껏 돌보아 주는 젊은 비서와 곧 사랑에 빠지고, 재혼하려고 하지만 클라우센의 사장인 사위와 자녀들은 그런 하층 계급의 여자와 결혼하는 건 말이 안된다, 1년 만에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면 죽은 어머니는 뭐가 되느냐고 반대한다. 당연한 수순으로 사위는 둘의 결합을 막기 위해 비서의 집으로 사람을 보내 이 도시를 떠날 것을 요구하고 블라블라... 한 끝에, 결국 회장은 인간에 환멸을 느끼고서 조국과 노동자들을 위해 클라우센을 국영 기업으로 전환할 것을 선언하고 차기 회장은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중에서 선출할 것을 유언으로 남긴다.
<크뤼거 아저씨>는 영국과 그 식민지였던 남 아프리카 보어 공화국 간의 전쟁을 다루고 있다. 보어에서 다량의 금광이 발견되자, 영국은 그를 손에 넣기 위해 보어의 대통령인 크뤼거를 압박해 오고 그에 분노한 크뤼거는 전쟁을 선포한다. 친영파이며 평화주의자인 그의 아들은 전쟁에 반대하나, 결국 전쟁이 발발하고 자신의 아내가 영국군에게 겁탈당할 위기에 처하자 그를 살해하고는 전선으로 뛰어 든다. 1년 동안 보어 인들은 영국군에게 맞서 대항하나 결국 병력과 장비의 열세로 위기에 빠지고, 크뤼거 대통령은 시력을 잃은 몸으로 유럽을 돌면서 이 전쟁의 부당함과 영국의 탐욕을 설파하지만 정치적인 문제에 얽힌 유럽의 국가들은 지원을 거부한다. 결국 크뤼거의 아들과 그의 아내는 포로 수용소에서 학대당하다 목숨을 잃고, 보어는 패배한다. 마지막에, 완전히 눈이 먼 크뤼거 대통령이 주치의에게 우리는 옳은 일을 위해 싸웠으며 결국 우리의 정당함은 역사가 알아 주리라고 말하는 장면으로 영화가 끝난다.
난 지금까지 프로파간다 영화라고 하면 <똘이 장군>이나 <배달의 기수>같은 것부터 떠올리곤 했다(...) 그러나 이 두 영화는 결코 '게르만 민족은 우월하며 히틀러 총통은 민족의 태양이다'라고 대놓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 대신 조국애, 공장 노동자로 대표되는 하층 계급에 대한 동정심, 탐욕스런 제국주의에 대한 분노와 같은 비교적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을 만한 주제들을 일단 앞세운다.
물론 이 영화들이 개봉할 당시 독일 내에서 제대로 된 비평가와 지식인들은 이미 망명하거나 투옥당한 뒤였고, 당연히 이 영화들은 그 뒤에 깔린 정치적 음모를 논외로 하고 순전히 영화적 완성도라는 면에서 보더라도 형편없는 수준을 자랑한다(특히 <지배자>는 상영 시간 내내 한국 아침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 들어 손발이 오그라 들었다). 그러나 모든 외부 정보가 통제되는 상황에서 동일한 선전을 끝없이 접하다 보면 부지불식 간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는 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크뤼거 아저씨>에서는 그런 대사가 나온다. "계속 거짓말을 하다보면, 스스로도 그걸 믿게 된다."
히틀러는 적어도 집권 초기에는 독일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부패한 관료들을 척결하고, 공공 복지 시설을 확충하고, 독일 내에서의 경제적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던 외국계 자본(특히 유태계) 의 흐름을 차단했다. 그리고 애국심과 민족애, 단결과 정신력을 강조했다. 그렇다, 3제국의 군인들도 유태인들과 집시들을 학살하고 숱한 만행을 자행하며, 자신들이 도덕적으로 정당하고 올바른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큰 거짓말(혹은 '커다란 악')을 행하기 위해서는, 작은 진실들(혹은 '작은 선들')로 토대를 깔아줘야 한다. 자신의 악은 숨기고, 적의 악은 드러낸다. 자신의 선은 부풀리고, 적의 선은 축소한다. 이것이 선전의 본질이다. 그리고, 나치의 악명높던 선전상 요제프 괴벨스는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해설자의 설명에 의하면 네오 나치에게 이용되는 걸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러한 나치 시대의 선전 영화들 중 30편 가량이 제한 상영작으로 묶여 있다고 한다. 그들의 역사의식이 부럽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부러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물 건너 섬나라의 역사 인식은 한심하지만 지금 한국 정부의 역사 인식은 혐오스럽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PS=그리고 독일 패망 이후 괴벨스가 정립한 대중 매체 통제 기술과 선전 이론은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이 배워가서 유용히 써먹었었지, 우왕ㅋ굳ㅋ
PS2=영화가 끝나고 나오던 중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났다. 반가워서 인사라도 하고 싶었지만... 친구분들과 같이 오신 것 같아서 간단히 눈인사만 하고 나왔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원래 BBC에서 방영된 일련의 연작 다큐멘터리를 편집하여 하나의 작품으로 만든 것이다. 40명의 촬영 인원, 26개 국 로케라는 포스터의 광고 문구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엄청난 예산과 시간을 들여서 찍은 티가 역력하다. 겨울잠에서 깨어나 먹이를 찾는 북극곰 가족의 모험에서 시작해 점차 남쪽으로 내려오며 지구 각지의 독특한 생물 생태, 자연 풍광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는데 탁월한 연출과 음악이 어우러져 나레이션이고 뭐고 안 듣고 그냥 멍하니 화면만 보고 있어도 만족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세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다큐멘터리가 정작 관객들에게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인 '지구 온난화 방지(내지 '환경 보호')가 썩 잘 와닿는 것 같지는 않다. 앨 고어의 <불편한 진실>이 구체적인 데이터를 조목조목 제시해 가며 관객들을 설득시키는 전략을 취한 것과는 달리 이 다큐멘터리는 '귀여운 동물들'+'아름다운 자연풍경'을 보여주며 "이런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서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를 막아야 한다'고 거듭 역설한다. 이 차이는 기본적으로 두 다큐가 타겟팅하고 있는 대상 연령층이 다르다는 이유도 있지만, <지구>에서 채택하고 있는 접근 방법은 지나치게 나이브해 보인다.
'우리들이 사는 세계는 미래의 후손들에게서 빌려 온 것입니다'라는 메시지는 유치원 다닐 때부터 누구나 숱하게 들어온 것이다. 자연보호가 중요하다는 공감대도 막연하게나마 폭넓게 퍼져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누구나 일단 먹고 사는 문제에 급급하기 마련이고, 환경 문제로 인한 폐해는 당장 체감되지 않는 성격의 것인데다 학교에서 심도 있게 다루는 문제가 아니다 보니 대부분이 관심도 없고, 관심이 있다 해도 어찌 해볼 방법을 모른다. 영화 마지막에, 유빙 가운데서 홀로 헤엄치고 있는 북극곰을 배경으로 던지는 메시지는 물론 대단히 인상적으로 연출되어 있긴 하지만 다만 거기에서 멈춰 버린다. 이런 식으로라면 위기감을 느꼈다가도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다 이내 바쁜 일상에 치여서 잊어 버리게 된다.
뭐... 메시지의 전달 방식이 비효율적이라고 투덜대긴 했지만 그래도 때깔고운 화면과 멋진 음악들만으로도 극장에서 볼 만한 가치는 충분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대개 흥행을 기대하기 힘든데, 큰 화면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광들 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ps=장동건이 나레이션을 맡았다는 것에 대해 혹평이 심하던데, 약간 불안했지만 생각보다 들을 만 했다.
ps2=새벽 출근 때문에 잠이 모자라 후반에 10분 정도 졸아 버렸다... ....하, 한번 더 볼까?;;
롬보르 교수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알 것 같다. 나름 일리가 있는 주장이기도 하고. 그러나 실제로 미국과 중국이 지구에 쏟아 붓는 엄청난 공해 물질들로 인한 해악과 센세이셔널리즘을 위해 실제보다 위협을 과장하는 환경주의자들로 인한 해악 중 어떤 게 더 심각한 것인지는 자명해 보인다.
엊그제 몸이 안 좋아 뻗어 버리는 바람에 조이SF 페스티발 참가 계획이 불발됐다. 어제 저녁 때 아는 형들과 약속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나갔다가, 어제 심야로 닭나를 신촌 아이맥스에서 다시 봤다.
*아이맥스로 보니 느낌이 확 다르다. 고담 시의 전경을 부감으로 비추는 장면들이 꽤 많은데, 공간감과 깊이감이 일반 상영관에서 봤을 때와는 비교를 불허한다, ㅎㄷㄷ.
*두번 째로 보니 처음 봤을 때는 놓친 것들이 꽤나 많이 눈에 들어왔다. 하비 덴트가 처음 고든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내사과 시절의 별명을 언급하는 것이라거나, 지하 도로 카 체이스 이후 하비 덴트가 '구출'되는 장면에서 옆에 있던 경찰이 짓던 미묘한 표정 등. 인물들의 감정선도 보다 더 잘 이해된다.
*조커에 대한 느낌은 바뀌지 않았다. 설정 상으로는 분명 모든 걸 유희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순수한 카오스인데... 그렇게 느끼기엔, 히스 레저의 연기는 너무 진지하고 무거웠다.
*조커 최고의 명대사는 역시 이거다. "I believe... whatever doesn't kill you simply makes you stranger."
원래 이 대사는 "널 죽이지 못하는 시련은 널 더 강하게 만든다"로 보통 해석되는 유명한 경구로(니체가 한 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조커의 대사는 이 경구에서 '더 강하게(stronger)'를 '더 이상하게(stranger)'로 살짝 바꿔서 "난 믿어, 널 죽이지 못하는 시련은 널 더 이상하게 만든다는 걸."이라고 한 것이다.
*인물들 중에서는 제임스 고든에게 가장 강하게 감정이입했다. 그는 고담 시경에서 유일하게 청렴한 경찰이지만, 동시에 워낙 현실이 시궁창인 것+여러 명의 부하 형사들을 관리해야 하는 자기 입장 상의 난처함에 지친 나머지 동료들의 부패나 비리에 대해서는 대체로 무관심한-내지는 가능한 덮어주고 믿어보려 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 때문에 고든은 정의감에 불타고 흑백이 명확한 하비 덴트도 불신했다. 그러나 고든의 그러한 태도는 하비 덴트가 투페이스로 바뀌는 것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가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며, 그리고 배트맨이 음지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을 자책하며 배트맨 호출 신호등을 스스로 깨 버리는 장면에서는... 좀 가슴이 아팠다.
*메기 질렌할을 보면서 한 친구가 생각났다. 약간 불안해 보이고, 조심스러워 보이고, 그러면서도 온화함을 잃지 않는... 세파에 꺾이지 않기 위해 계속 노력하는 친구다. 부디, 그 친구가 레이첼과 같은 운명에 처하지 않기를 바란다. 부디.
단편적인 짤막 감상들만. 처음에는 별로 볼 생각이 없었는데, 닭나를 보고 온 뒤 재감상 때까지 뭘 볼까... 하다가 주변에서 평이 좋길래 보러 갔었다. ...그리고 월척을 건졌다.
난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디즈니-내지 픽사 계열-의 작품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월.E만큼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어헝헝.
*오프닝이, 오프닝이이이이이.....(모니터를 긁는다)
*처음 시작하고서 한참 지나도록 대사가 한 마디도 없길래 '설마 영화 끝날 때까지 이런 거?'했었다. 그리고, 첫 대사가, 첫 대사가아....;ㅁ;
*파쇄재로 쌓여진 빌딩들로 가득 찬 도시 위로 내리는 석양을 지켜보며 조금 뭉클해져 버렸다. 저 로봇은 스스로가 외롭다는 것도 자각하지 못한 채, 수백 년을 저렇게 보내왔구나.
*로봇 한 대와 바퀴 한 마리 외엔 어떤 생명체도 없는 황량한 지구의 풍광은 아름다웠다. 그건 마치, 사막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과도 비슷했다.
*이브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며 '저 정도면 반할 만 하겠다' 싶었는데... 그 뒤에 나오는 장면을 보며 '터프한 아가씨야;;;;;;'
*많은 사람들이 놓치는 것 같지만, 이 영화에서 BnL사와 더불어 가장 주목할 만한 요소는 월.E도 이브도 대량생산된 기성품 로봇들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초반, 폐허에서 멈춰 서 있는 수많은 다른 월.E 모델들이나 우주선 내부에 실려 있는 수많은 다른 이브 모델들의 모습은 시사점이 많다.
*맨몸으로 대기권 이탈 퍼포먼스 좀 짱인 듯. 우주 장면이 근사했다.
*월.E가 이브의 손을 잡을까 말까 잡을까 말까 망설이는 장면에서 좋아하는 분이 떠오르는 바람에 퓨즈가 나가 버렸다. 많은 로봇 캐릭터들을 봐왔지만 이토록 강하게 감정 이입해 보긴 처음이다;ㅁ;
*고군분투하는 선장도 멋졌음.
*존과 메리는... 존재의 필요성은 어느 정도 납득이 가지만 너무 기능적으로만 다루어진 느낌이다, 쩝.
*모 외에 파라솔을 비롯한 엑스트라 로봇들도 좀 더 다뤄줄 것이지, 쳇.
*보고 나오면서 그런 생각을 해봤다. ...저거 분명 조만간 장난감으로 나올텐데, 하나씩 사서 월.E는 내가 갖고 이브는 그 분께 보내드릴까....
볼 만한 영화가 유달리 많이 나온 올 여름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다크 나이트>는 날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최고의 기대작이었다. 그리고 역시 날 비롯한 많은 이들이 이 영화에 만족을 표시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대해 저마다 한 마디씩을 했지만, 난 이 글에서 '조커'란 캐릭터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뤄보고자 한다.
1) 히스 레저의 조커
영화 시작과 동시에 보이는 그의 뒷모습이다. 한 손에 광대 가면을 들고 고개를 떨군 채, 그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내가 파악하는 조커는 단지 도시가 불타고, 밝고 선량한 면모도 분명 갖고 있던 사람들이 불신과 공포에 차서 서로를 죽이려 드는 아수라장을 지켜보는 쾌감만을 위해 거리낌 없이 악을 저지르는 순수한 악의 광대다. 자신의 유희를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의미가 없다. 돈도, 권력도, 명성도, 사랑도, 심지어 스스로의 목숨도.
이러한 면에서 봤을 때, 완전한 혼돈의 사도이며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저 지평에 있는 존재라는 <다크 나이트>의 조커 설정은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조커가 과거도 없고, 어떠한 데이터 베이스에도 기록이 없는 존재라고 나오는 장면에서 무릎을 쳤다).
그러나 이러한 매력적인 설정과는 달리, 히스 레저가 연기하는 조커에게서는 그러한 초월적인 아우라가 없다. 물론 히스 레저가 훌륭한 연기자라는 건 인정하며, 그가 이 영화를 위해 대단히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도 안다(오죽하면 자살했을까). 그러나 나는 스크린에서 히스가 연기하는 조커를 본 것이지, 조커 그 자신을 본 건 아니었다.
그의 눈빛, 음성, 동작 하나하나에서는 히스가 이 배역을 위해 얼마나 각고의 노력을 했는 지가 절절히 드러난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다크 나이트>의 조커는 '아무도 알지 못할 뿐, 나름 인간으로서의 과거와 사연을 지닌 악당' '인간에 대한 뿌리깊은 악의와 증오를 가진, 그를 광기와 무작위성으로 포장하는 악당'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정리하자면, '악당이 광대짓을 한다'랄까.
히스 레저의 조커는, 결코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그를 순수한 광대로 보기엔, 그의 웃음 소리 너머에서 너무도 인간적인 슬픔과 고뇌가 느껴졌다. 그렇기에, 난 저 장면에서 고개를 떨군 그가 슬퍼하고 있었으리라고 상상한다.
2) 잭 니콜슨의 조커
팀 버튼의 89년 버젼 배트맨에서 조커는, 원래 마피아 두목이었으며 브루스 웨인의 양친을 살해한 원수로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배트맨이 된 브루스와의 대결 중 화학 약품이 든 통에 빠지는 바람에 얼굴에 상처를 입어서 웃는 표정 밖에 짓지 못하게 되었다는 게 잭 니콜슨 조커의 설정이었다(정확하진 않다, 옛날 버젼 배트맨을 본 게 워낙 오래전인데다가 애니 버젼의 설정과 뒤섞어 기억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니 상세히 아는 분은 알려 주시길).
1)에서도 언급했듯이, 잭 니콜슨 조커에 대한 이러한 설정은 내가 '조커'라는 캐릭터 자체에 대해 갖고 있는 기대와는 어긋난다. 내가 생각하는 조커란 오직 유희만을 위해 뭐든지 저지르는 궁극의 카오스이며, 이러한 인간으로서의 근원 같은 것과는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난 89년 버젼 배트맨에서 잭 니콜슨이 연기하는 조커가 아니라 조커 자신을 보았다. "달빛 아래서 악마와 춤춰 본 적 있나?"라고 질문을 던지는 그는 카리스마적이고, 교활하고, 무자비했으며, 천진했다. 조커라는 존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배경 설정과는 달리, 즉물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잭 니콜슨의 조커는 '초자연적인 광기와 혼돈의 살아있는 화신'으로서, 절대적인 아우라를 품고 군림했다. 그리고 그가 행하는 모든 죄악과 그 결과물을 그는 거리낌없이 즐겼다. 정리하자면, '광대가 악당짓을 한다'랄까.
잭 니콜슨의 조커는, 아무런 모순도 번민도 없이 모든 것을 유희의 일환으로 취급했다. 그의 웃음 소리 너머에서 난, 인간이 사는 세계 저편에서 어떠한 종류의 이해도 인정도 필요로 하지 않은 채 스스로 온전히 존재하는 초월성을 느꼈다.
3) 두 명의 조커, 89년 버젼의 배트맨과 <다크 나이트>
설정과 플롯에 있어서는, <다크 나이트>가 더 좋았다. 그러나 '조커'라는 캐릭터가 응당 가져야 할 힘과 광기에 있어서는 89년 버젼의 배트맨이 더 좋았다.
이러한 엇갈림은, 팀 버튼의 고담과 크리스토퍼 놀란의 고담이 다르다는 것에서도 기인하는 듯 하다. 버튼의 고담은 음울하고 우중충한, 어둡긴 하되 현실 세계와는 다른 양상의 어둠을 가진 몽환의 도시였다. 그리고 그러한 세계 내에서 조커의 악마적인 초월성은 빛을 발했다. 그러나 놀란의 고담은 부패한 경찰 및 관리가 대다수고 갱들이 어슬렁대는 슬럼가가 도처에 깔려 있긴 하되, 아침이 되면 해가 뜨고 극소수의 선인도 절대다수의 악인도 그 빛을 쬘 수 있는 '현실에 충분히 있음직한' 도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잭 니콜슨이 연기했던 89년 버젼 배트맨의 조커는 어두운 과거로 인한 고통도, 우울한 미래에 대한 절망도 없이 혼돈과 파괴 자체를 위해 종사하고 그를 즐기는 유형이고... 히스 레저가 연기한 <다크 나이트>의 조커는 인간의 내면에 깔린 어둠과 악의에 대한 확고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공포와 광기를 뿌리는 유형이었어야 했던 걸로 보인다. 이로써 전자의 조커는 이렇다할 존재 근원이나 탄생 배경 없이 스스로 완전한 '광대'가 될 수 있으며, 후자의 조커 역시 유쾌해 보이는 태도 뒤에 인간성에 대한 철저한 증오와 악의를 숨긴 '악마'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미 시간이 지났고, 팀 버튼의 배트맨도 크리스토퍼 놀란의 새로운 배트맨도 세상에 나왔다. 전자는 이미 고유한 영역을 쌓아 올렸고, 후자도 호평 속에서 그를 구축해 가고 있다. 둘 다 지금 이대로도 물론 훌륭한 작품이지만, 유독 조커라는 캐릭터에 대해서만은 아쉬움을 금하기 힘들다.
슈퍼맨과 캡틴 아메리카를 필두로 해, 슈퍼 히어로 업계의 양대 산맥인 디씨와 마블이 배출한 영웅들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그들의 폼나는 액션과 간지 넘치는 고뇌에 가려진 마초주의와 인종주의에 대해선 예전부터 수많은 태클들이 있어왔다.
두들기고 부수는 슈퍼 히어로 물을 보면서까지 정치적 올바름을 따지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히어로 물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거치며 (적어도 미국에선) 독자적인 거대 시장을 형성했고, 숱한 클리셰가 쌓이고 쌓여 오며 웬만큼 특이한 설정이나 파워로는 관객들에게 더 이상 어필하지 못한다. 그래서, 난 핸콕을 기대했다.
까칠하고 건들건들한, 양아치스러운 슈퍼 히어로. 게다가 노숙자 흑인! 막장 인생이 세상을 구원한다!! 이러한 카피는 날 흥분시키기 충분했다. 그리고 다크나이트 볼 돈만 남기고(...) 두근두근하며 극장에 갔다 온 지금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