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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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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상자료원 11월 기획전으로, '몸짓의 행로:김승호 對 에밀 야낭스'를 시네마테크 KOFA에서 하고 있다. 이번 기획전에서는 독일 나치 시대의 선전 영화 5편을 묶어 상영하고 있는데, 그 중 2편인 <지배자>와 <크뤼거 아저씨>는 특히 선전의 수위가 높아서 홈페이지 신청자에 한해 입장이 가능하며, 독일 정부가 인가한 해설자를 초청한 상태에서 단 1회만 상영한다는 제한이 붙어 있다. 모 게시판에서 소개 글을 봐서, 그걸 보러 갔다 왔었다.

*이하 스포 있음*

<지배자>는 나치 치하의 독일에서, 이름 높은 군수 회사인 클라우센 사의 노 회장이 주인공이다. 그는 아내를 잃고서 한 동안 비탄에 빠지지만 그를 성심껏 돌보아 주는 젊은 비서와 곧 사랑에 빠지고, 재혼하려고 하지만 클라우센의 사장인 사위와 자녀들은 그런 하층 계급의 여자와 결혼하는 건 말이 안된다, 1년 만에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면 죽은 어머니는 뭐가 되느냐고 반대한다. 당연한 수순으로 사위는 둘의 결합을 막기 위해 비서의 집으로 사람을 보내 이 도시를 떠날 것을 요구하고 블라블라... 한 끝에, 결국 회장은 인간에 환멸을 느끼고서 조국과 노동자들을 위해 클라우센을 국영 기업으로 전환할 것을 선언하고 차기 회장은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중에서 선출할 것을 유언으로 남긴다.

<크뤼거 아저씨>는 영국과 그 식민지였던 남 아프리카 보어 공화국 간의 전쟁을 다루고 있다. 보어에서 다량의 금광이 발견되자, 영국은 그를 손에 넣기 위해 보어의 대통령인 크뤼거를 압박해 오고 그에 분노한 크뤼거는 전쟁을 선포한다. 친영파이며 평화주의자인 그의 아들은 전쟁에 반대하나, 결국 전쟁이 발발하고 자신의 아내가 영국군에게 겁탈당할 위기에 처하자 그를 살해하고는 전선으로 뛰어 든다. 1년 동안 보어 인들은 영국군에게 맞서 대항하나 결국 병력과 장비의 열세로 위기에 빠지고, 크뤼거 대통령은 시력을 잃은 몸으로 유럽을 돌면서 이 전쟁의 부당함과 영국의 탐욕을 설파하지만 정치적인 문제에 얽힌 유럽의 국가들은 지원을 거부한다. 결국 크뤼거의 아들과 그의 아내는 포로 수용소에서 학대당하다 목숨을 잃고, 보어는 패배한다. 마지막에, 완전히 눈이 먼 크뤼거 대통령이 주치의에게 우리는 옳은 일을 위해 싸웠으며 결국 우리의 정당함은 역사가 알아 주리라고 말하는 장면으로 영화가 끝난다.


난 지금까지 프로파간다 영화라고 하면 <똘이 장군>이나 <배달의 기수>같은 것부터 떠올리곤 했다(...) 그러나 이 두 영화는 결코 '게르만 민족은 우월하며 히틀러 총통은 민족의 태양이다'라고 대놓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 대신 조국애, 공장 노동자로 대표되는 하층 계급에 대한 동정심, 탐욕스런 제국주의에 대한 분노와 같은 비교적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을 만한 주제들을 일단 앞세운다.

물론 이 영화들이 개봉할 당시 독일 내에서 제대로 된 비평가와 지식인들은 이미 망명하거나 투옥당한 뒤였고, 당연히 이 영화들은 그 뒤에 깔린 정치적 음모를 논외로 하고 순전히 영화적 완성도라는 면에서 보더라도 형편없는 수준을 자랑한다(특히 <지배자>는 상영 시간 내내 한국 아침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 들어 손발이 오그라 들었다). 그러나 모든 외부 정보가 통제되는 상황에서 동일한 선전을 끝없이 접하다 보면 부지불식 간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는 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크뤼거 아저씨>에서는 그런 대사가 나온다. "계속 거짓말을 하다보면, 스스로도 그걸 믿게 된다."

히틀러는 적어도 집권 초기에는 독일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부패한 관료들을 척결하고, 공공 복지 시설을 확충하고, 독일 내에서의 경제적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던 외국계 자본(특히 유태계) 의 흐름을 차단했다. 그리고 애국심과 민족애, 단결과 정신력을 강조했다. 그렇다, 3제국의 군인들도 유태인들과 집시들을 학살하고 숱한 만행을 자행하며, 자신들이 도덕적으로 정당하고 올바른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큰 거짓말(혹은 '커다란 악')을 행하기 위해서는, 작은 진실들(혹은 '작은 선들')로 토대를 깔아줘야 한다. 자신의 악은 숨기고, 적의 악은 드러낸다. 자신의 선은 부풀리고, 적의 선은 축소한다. 이것이 선전의 본질이다. 그리고, 나치의 악명높던 선전상 요제프 괴벨스는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해설자의 설명에 의하면 네오 나치에게 이용되는 걸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러한 나치 시대의 선전 영화들 중 30편 가량이 제한 상영작으로 묶여 있다고 한다. 그들의 역사의식이 부럽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부러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물 건너 섬나라의 역사 인식은 한심하지만 지금 한국 정부의 역사 인식은 혐오스럽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PS=그리고 독일 패망 이후 괴벨스가 정립한 대중 매체 통제 기술과 선전 이론은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이 배워가서 유용히 써먹었었지, 우왕ㅋ굳ㅋ

PS2=영화가 끝나고 나오던 중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났다. 반가워서 인사라도 하고 싶었지만...  친구분들과 같이 오신 것 같아서 간단히 눈인사만 하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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