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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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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히트 이후로 달착지근한 하이틴 로맨스 물에 뱀파이어 등의 초자연적 요소를 끼워 넣는 게 유행이 되고 있다. 이것은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이미 전범이 마련된,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고전적인 테마에다가 ‘일상에서 벗어난 힘과 근원을 가진 초월적인 존재’라는 요소를 추가하여 인물에게 이질적인 매력을 부여하는 동시에 ‘진부하고 지루하지 않은, 운명적이고 특별한 사랑’이라는 판타지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욕구의 발로로 풀이될 수 있다. 중세 유럽의 민담 속에서 전해지는 나무꾼과 숲의 요정 간의 사랑 이야기와 같은 서사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는 이러한 욕구는 결코 새삼스러운 게 아니며 현대에서도 수 없이 재생산되어 왔다. 그리고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그러한 판타지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다. 그 영화 속에서는 인간을 양에, 그리고 뱀파이어를 늑대에 비유하며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의 관계를 ‘양과 사랑에 빠진 늑대’로 묘사한다. 그러나 그런 류의 작품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점은, 거기서 묘사되는 ‘괴물’들이 전혀 괴물답지 않았다는 점이다. SF작가이자 영화 평론가인 듀나는 그 시리즈에서 그려지는 뱀파이어를 두고서 ‘모든 폭력성과 불편함이 거세된 괴물은 괴물이라고 불릴 필요가 없다’고 불평했다. 나는 거기에 동감한다. 그런 류의 작품 속에서 묘사되는 괴물은 그저 독자의 판타지를 충족시키기 위한, ‘강하고 예쁘고 멋있고 내게는 다정한 그 무언가의 번데기(...)’일 뿐이며, 괴물이라고 불릴 만한 존재 고유의 이질성이나 위험성은 그저 ‘뭔가 신비롭고 이국적인 매력을 부여할 수 있는 배경 요소’로 최소화된다. 본질적으로 이것은 ‘부자 부모를 뒀고 잘 생겼고 싸움 잘하고 터프하지만 고독해 보이는 고등학교 일진’과 별로 다르지 않다.
  초자연적인 존재, 그 중에서도 특히 뱀파이어나 워울프를 다루는 이러한 작품은 그 정의 상 벗어나기 힘든 그림자가 몇 개 더 겹쳐져 있다. 첫 번째는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 연대기』다.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가 동유럽의 흡혈귀 전설과 이전의 몇몇 흡혈귀 물을 집대성하여 근대적인 뱀파이어 물의 완전체가 되었다면 그 시리즈는 뱀파이어라는 존재에게 반 기독교적인 악마의 이미지를 벗겨내고는 대신 영원한 저주에 고통 받는 고독한 영혼이라는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창조해냄으로써 현대적인 뱀파이어 물의 완전체가 되었다. 사랑했던 이들이 늙어 죽어가고 한 때 소중했던 것들이 시간과 더불어 아무런 의미도 없는 티끌로 변해 가는 걸 지켜보면서 느끼는 절망과, 생명의 근원인 피를 살아 있는 인간에게서 갈취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죽어 있지도 살아 있지 않은 자신의 존재를 유지해간다는 모순 등 일반인들이 뱀파이어 물이라고 하면 떠올리곤 하는 거의 모든 것들이 그 시리즈에서 완성되었다. 두 번째는 캐나다의 TRPG 회사인 화이트 울프 사에서 나온 『World of darkness』 시리즈다. 현실 지구와 대단히 비슷하지만 보다 더 어둡고 퇴폐적인, 고딕적인 분위기와 펑크적인 분위기가 기묘하게 얽힌 세계를 배경으로 뱀파이어나 워울프, 메이지, 레이쓰(WOD 세계관의 ‘유령’), 체인즐링(요정들의 후예) 등의 초자연적 존재들이 저마다의 목적과 이상을 가지고서 인간 역사의 배후에 숨어서 세계를 움직이며 한편으로는 인간들에게 영향을 받는다는 스케일이 큰 음모론적 설정을 기반으로 현실과 가상을 교묘하게 뒤 섞어 놓은 이 세계관은 현재 유행하고 있는 초자연적 존재들을 전면에 내세운 숱한 픽션-앞에서 언급한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비롯해-들에게 거대한 영향을 미쳤다-제작사인 화이트 울프는 게임이 아니라 소설을 비롯한 관련 설정을 팔아먹고 산다고 팬들이 농담을 할 정도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다르다. 이 영화에서 묘사되는 워울프는, 여타 초자연체들을 전면에 내세운 여러 다른 영화(『블레이드』나 『언더월드』를 비롯한)와는 달리 그러한 괴물이 얼마나 위험하고 치명적인 존재인지를 전면에 부각시킨다. 게다가 이 영화의 주체가 되는 건 퇴폐적이고 관능적인 흡혈귀나 음험하고 교활한 마법사가 아니라, 야성적이고 광포한 워울프다. 산업 혁명이 한창이던 19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가장 야만스럽고 흉폭한 초자연체인 워울프가 날뛴다는 것은 독특한 대비를 이룬다. 이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첫 변신을 마친 주인공이 정신 병원에 갇히는 부분이다. 스스로가 늑대라고 믿는 정신병은 물론 실제로 존재한다. 그러나 주인공이 그 병에 걸렸다고 판단하고, 학회에 모인 동료 의사들 앞에서 자랑스레 자신의 연구 성과를 보이려던 의사가 만월을 보고 변신해 미쳐 날뛰는 주인공에게 도망치다 목숨을 잃는 장면은 매우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 영화에서도 사랑 이야기는 나온다. 그러나 그 사랑은 주인공을 결국 구원하지 못한다. 앞선 명작들이 남긴 그림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시달린 나머지 억지스러운 해석을 부여하거나, 괴물이라는 이미지에서 대중적으로 잘 먹힐 만한 달콤한 코드만을 뽑아내서 적당히 포장하는 대신 전통적인 워울프 전설의 형태에 가까운 영화의 설정은 대단히 단순하고 직접적이며, 그만큼 감상자에게 강한 임팩트를 준다(이것은 히라노 코우타의 만화 『헬싱』에서 제시된, 스스로의 존재에 고뇌하는 대신 적극적으로 어둠을 즐기는 광기에 찬 흡혈귀 상이 정말로 ‘괴물’스러운 임팩트를 준 것과도 비슷하다).
  이 영화에서는 아쉬운 부분도 많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대단히 중요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심리에 대한 설명이 상당히 부족하고, 여주인공이나 영화 초반에 나타난 은탄환을 사용하는 워울프 사냥꾼들에 대한 묘사도 아쉬움이 있다. 워울프로 변한 주인공의 광기에 찬 파괴 묘사도 힘이 딸린다. CG에 부을 제작비가 좀 부족했던 모양이다(...) 워울프의 괴물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한 제작진의 노력은 확실히 보이지만 그 결과물은 아무래도 미흡한 감이 있다-‘워울프’ 부분이 보통 사람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압도적이고 강대하면서도 불안정한 존재라는 묘사가 부족하며, 대신 주인공 역을 맡은 베니치오 델 토로의 ‘인간’ 부분의 섬세한 연기와 우수한 연출로 그를 보충한다-. 그러나 민간전승에서 나타나는 전통적인 형태에 가까운 고전적 워울프 상을 썩 괜찮게 스크린에서 재현했다는 점만 봐도 『울프 맨』은 상당히 볼 만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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