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CALENDAR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TAG CLOUD

  • Total :
  • Today :  | Yesterday :



사용자 삽입 이미지

폭풍간지 포스터. 하지만 그 진실은 충격과 공포가 플라즈마 캐스터 후폭풍 마냥 휘몰아친다

스탭롤이 올라가는 순간 입 속으로 중얼거린 한 마디.

시밤


프레데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크리처 중 하나다. 그 고도로 발달한 과학력과 우수한 지성, 그리고 호전적이고 원시적인 용맹성과 명예욕. 일견 상충하는 것처럼 보이는 두 요소들이 공존하는 외계 생물체라는 컨셉은 그 세련된 디자인과 맞물려서 10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내내 날 하악하악거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티저 무비를 보면서도 어딘가 시망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게 좀 불안했는데... 프레데터라는 크리처를 워낙 좋아하다 보니(난 그토록 악명 높았던 에일리언VS프레데터2도 그럭저럭 재미있게 봤다) 영화적으로 좀 구려도 어지간해서는 수긍하고 볼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나는 상상한 그 이상(나쁜 의미로)을 보아 버렸다.

일단 이 영화 자체는 프레데터1, 프레데터2, AVP 중 일반적으로 가장 걸작으로 일컬어 지는 프레데터1을 베이스로 하고 있다. 배경도 1에서 아놀드 주지사님하와 프레데터가 맞붙었던 정글(당시는 과테말라 밀림이라는 설정이었지만 이번에는 아예 프레데터들이 우주 각지에서 잡아 온 외계 괴물들을 풀어놓은 사냥터로 전용하고 있는 정글 행성이다)이고, 영화 초반에 1에 대한 내용도 잠깐 나온다(유일한 생존자였던 주지사 님하가 자신이 맞서싸운 괴물의 외양과 특성, 능력에 대해 증언을 남겼다고 언급된다). 2편의 도시 한 가운데서의 '우주 최고의 사냥꾼'VS'리쎌 웨폰'이라는 컨셉도 괜찮았지만 2의 프레데터는 좀 포스가 떨어졌으니까... 이건 마음에 들었다. 첫 장면 이후, 주인공들이 하나 둘 모이는 부분에서 약간 위화감을 느꼈지만("출근길에 빛이 번쩍했다가 정신차려 보니 낙하산 매달고 떨어지고 있었다? 프레데터들은 뇌의 절반 중 반에는 과학기술, 나머지 절반 중 반에는 전사의 자존심(해골 트로피 만들기 포함), 나머지 절반에는 사냥만 들어차 있는 애들이고, 지구인들의 가치관이나 장비에 대해서는 도통 개념이 없어 보이던데 그런 것까지 마련해 주디?" "너는 점쟁이냐? 얼굴만 보고 누구는 이스라엘 군, 누구는 스페스나츠, 누구는 멕시코 마약 갱이라는 식으로 바로바로 견적이 나오냐? 게다가 연쇄 살인마는 아예 범주가 다르쟝?")... 애초부터 기대치를 약간 낮춰두고 그저 오오 프간지 오오 하고 찬양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갔었기 때문에 대충 넘어 갔었다. 다들 험악하게 살아온 인물들이고, 낯선 상황에 갑작스레 떨어져서 서로 의심하고 죽이려고 드는 거야 충분히 자연스럽긴 한데 그 싸움이 멈추고 서로 협력하게 되는 과정이 부자연스럽다. 차라리 서로 죽이려 들다가 프레데터들 사냥개가 난입해 와 얼떨결에 협력하게 됐다고 하지 그래. 그래도 여기까지는 한정된 시간 안에 많은 주인공들 집어 넣고 설명하려니 그런 거라고 넘어갔다. 그리고 내내 클로킹 상태로 감질나게 하던 프레데터들이 적외선 탐지 장비가 실린 비행 로봇으로 인간들을 포착하고는 차례차례 클로킹을 풀며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은 그야말로 폭풍간지. 그 장면 하나 만은 구라 안까고 정말 멋졌다.

....그리고 나는 그 시점에서 극장을 나왔어야 했다.

프레디 로드리게즈 이생퀴야, 타란티노랑 헤어지고 정줄 놨냐!? 님 왜 이럼, 옛날엔 이런 감독 아니었잖아! 로렌스 피시번 같은 배우를 그런 식으로 소모해야겠음? 무려 모피어ㅅ... ...어흠. 아무튼, 가장 눈에 띄는 문제는 인물들이 생동감이 없다는 점이다. 무려 외계인이 눈 앞에 돌아 다니는데 지나치게 상황에 빨리 적응하는 등 '각본 상의 필요로 인해 기능적으로만 움직이는' 티가 너무 뻔히 나는 것까지는 넘어갈 수 있다. 그런데 나름 인간미를 부여한답시고 취하는 방법이란 게 지나치게 뻔하고 진부하다는 게 문제다. 어린 자식들 사진 보여주며 '난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야 해'드립이라니, 맙소사 이게 무슨 80년대 전쟁 영화임? 그것만으로도 문제인데 영화가 진행되며 인물들이 우수수 죽어 나가니 더 심각해진다. 안 그래도 그럴싸한 과거사가 풀린 것도 아니고 도통 공감이 안 가는 인물들인데 그저 진행 상의 필요로 인해 그렇게 소모되어 버리니 긴장감도 안 들고 맥이 풀린다. 최근 몇 년 간 본 영화 중에서 이 정도로 인물들이 매력 없는 영화는 처음 본다.

각잡고 액션 영화로 만들었으면 전투 씬이라도 화려하던가, 하다못해 일본도 한 자루 든 야쿠자와 프레데터 간의 1대 1 대결은 오리엔탈리즘 스멜이 물씬 풍기면서 오글거리는 재미라도 있는데 나머지는 개판이다. 나의 프레데터는 리스트 블레이드만으로 수많은 에일리언들을 철근처럼 씹어 먹으며 무쌍난무를 펼치는 폭풍간지지 고작 총 몇 방 맞았다고 어버버하다 주저 앉아 버리는 약골이 아냐OTL ...냉정히 생각해 보면, 프레데터1 기준으로는 그 정도 파워 레벨이 적당하긴 하다. 그 이후 나온 게임 등에서 지나치게 파워풀해진 거지. 하지만 초반에만 전술 같은 걸 좀 쓰는 것 같다가(목소리 흉내내는 아이디어는 꽤 그럴싸했다) 중반 이후로는 수류탄을 비롯한 폭발물에 얄짤없이 낚인다. 프레데터가 플라즈마 캐스터나 디스크 같은 원거리 무기에 의존하기보다는 육박전을 통한 정면 승부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고려해도, '최소한 인간 수준, 어쩌면 그 이상으로 지적인 놈들'이라는 게 거의 어필이 안 됐다. 상대의 특성에 따라 무기와 편성을 바꾼다고 인물들 입으로만 주절주절 설명해주면 뭐하냐고 정작 중요한 영화 상에서 그런 모습이 도통 안 보이는데 이거 어떻게 설명할거야 로드리게즈 ㅅㅂㄻ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 넷건이나 디스크, 콤비 스틱 같은 다양한 무장들은 엿바꿔 먹었냐? 그것들은 1에서 안 나왔으니 무시했다 치더라도, 초반에 잠깐 나온 정찰용 비행 로봇은 왜 안 쓰는 거고 그야말로 필살 무기 포스를 자랑했던 플라즈마 캐스터 위력은 왜 그리 조루인 거고 개나소나 간파하고 쏴 맞추는 클로킹은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데 응응응?

꽤 괜찮은 영화였던 1편의 오마쥬로 보이는 장면들이 이래저래 많은데, 그 장면들은 1에서는 영화 내에서 확실히 '그런 장면이 나올 수 있을 만한'  개연성이 있었고 그걸 최대한 살려 주는 연출이 받춰 줬기에 명장면이 되었던 거다. 그런데 그냥 아무 설득력 없이 적당히 '그 장면 간지났으니까 여기서도 집어 넣자'라는 마인드로 대충 우겨 넣은 티가 난다. 머 병시나?

그리고 결정적으로, 후반의 어이 없는 반전(이라고 해주기도 아깝다). 니마 복선 없는 반전은 보통 반전이라고 하지 않고 걍 ㅈㄴ 생뚱맞은 전개 내지 억지라고 하거든요?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  나름 그걸로 지금까지의 다른 프레데터 영화에서는 표현하지 못했던 주제의식을 드러내고 싶었던 모양인데, 내적으로 무리수돋는 설정이나 전개가 너무 많아서 설득력 쥐뿔도 없거든요?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

마지막으로, 나는 저 커플링 반댈세. 영화 도중에 저 둘은 별다른 플래그도 안 섰거등요? 걍 마지막에 살아남은 게 저렇게 둘이니까 적당히 사귀라는 거임? 게다가 여자 쪽이 너무 아깝잖아, 저래놔선!!!!!!! 그 조루 엔딩은 또 뭐고, 장난함?


총평은 별 다섯개 만점에 두 개. 별 하나 중 절반은 '그래도 어쨌든 프레데터가 나오니까'라는 이유로 줬고, 절반은 알리스 브라가가 연기한 이사벨 누님이 마음에 들었다는 이유로 줬음(....)

만일 프레디 로드리게즈가 후속을 만들면(세계적으로 폭풍까임 당하고 장렬히 흥행 시망할 거 같지만) 아무리 프레데터라고 해도 내가 머리에 총맞지 않는 한은 안 보러 갈 거다 후(...)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