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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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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포스터는 스웨덴 판, 아래 포스터는 미국 판.

이번 미국 판 <렛미인>은 그냥 무난한 수준의 헐리웃 리메이크 작이라는 느낌이다. 영화 자체는 별 것 없되, 원작이 워낙 좋았고 그 원작의 품질을 적당히 답습한 안정적인 노선의 작품이랄까. 작년에 리메이크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는 볼거리 중심의 헐리웃 스플래터 무비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전체적인 스토리는 스웨덴 판의 그것을 충실히 따라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감독의 <클로버 필드>를 인상적으로 봐서 좀 더 과감한 재해석이 이뤄지거나 아니면 아예 원작 소설의 노선을 따라가기를 기대했었지만.

차이점 1. 시간적 배경은 여전히 80년대 중반이지만 공간적 배경이 미국으로 바뀌었고, 스웨덴 판에서는 뉴스에서 브레즈네프가 언급되고 동구권의 몰락이 화자되던 것과는 달리 레이건이 연설하는 장면이 있다. 소품이나 음악에 있어서도 당시의 미국 분위기가 잘 반영되어 있는 편.

차이점 2. 뱀파이어 소녀 애비(스웨덴 판에서는 이엘리)가 금발 벽안의 앵글로 계 미소녀로 바뀌었다. 비쥬얼적으로 보자면 일단 이쪽이 더 일반적인 관점에서 예쁘고 귀엽긴 한데, 스웨덴 판에서는 아랍계 소녀 배우를 캐스팅함으로써 보다 이질적이고 초월적인 존재라는 느낌을 강화했던 것에 비해 너무 판에 박힌 미소녀라 개성이 부족하다. 연기력이나 포스에 있어서도 스웨덴 판의 이엘리가 더 매력적. 웃기도 하고 가끔 신발도 신는 등 '귀여운' 면모를 보이는 건 애비 쪽인데 대체로 무표정한 이엘리 쪽이 더 호소력이 있었다.

차이점 3. 찌질한 미소년 주인공 오웬(스웨덴 판에서는 오스카르)이 스웨덴 판에서는 북구 미소년이었던 것과 달리, 검은 머리칼의 좀 더 어리고 중성적인 이미지를 가진 소년으로 묘사된다. 둘의 인물상은 거의 유사하지만(학교에서 불량아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거나, 거울 앞에서 허세 부리며 화풀이한다거나, 단 걸 좋아한다거나) 미국판은 미성숙하고 나약한 이미지를 좀 더 부각시킨 느낌. 스웨덴 판에서는 후반에 불량아들의 리더를 까 버리고 '성장'하는 부분에서는 오스카르가 보여주던 썩소가 대단히 인상적이었던 데 비해 이 쪽은 그 이후에도 별 차이 없어 보인다. 보기에 따라 호오가 갈릴 만한 부분.

차이점 4. 오웬의 부모가 별거 내지 이혼 상태라는 설정은 스웨덴 판과 동일. 그러나 미국판에서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아버지의 친구 캐릭터 때문에 스웨덴 판에 쏠렸던 '오스카르 아버지 게이 떡밥' '아버지 친구가 매의 눈으로 오스카르를 노리는 것 같더라' 의혹은 이 때문에 안 나올 듯). 어머니가 종교에 심취하여 오웬을 소홀히 한다는 묘사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어머니에게서 충족받지 못한 모성을 애비를 통해 찾으려 한다는 코드로 읽혔다.

차이점 5. 오프닝부터 '피를 뽑아 가는 연쇄 살인마'를 추적하던 경찰 캐릭터가 등장하고(영화에서 직접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그 경찰은 어느 정도 애비의 정체를 짐작하고 있으며 젊은 시절부터 내내 추적해 왔을 것으로 보인다), 후반에 이 경찰 캐릭터가 애비에게 살해당하며 엔딩에 대한 복선이 된다. 스웨덴 판에서는 엔딩의 개연성에 대해 약간 설명이 부족했다는 느낌이었는데 미국 판에서는 경찰이 애비에게 피를 빨리며 오웬에게 손을 내밀고, 오웬이 그를 외면하는 장면을 넣음으로써 보다 엔딩의 개연성을 강화시켰다. 설명이 보강되었다는 느낌. 보다 대중친화적인 헐리웃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이점 6. 스웨덴 판에서는 이엘리의 사회적 보호자 겸 피셔틀(...) 역할이었던 호칸(미국 판에서는 토마스)이 어렸을 때는 오스카르의 위치였다는 게 간접적으로만 암시되는데 비해, 미국판에서는 훨씬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애비의 집으로 간 오웬이 토마스가 어린 시절 애비와 함께 찍은 사진을 발견하는 장면이 있다.

차이점 7. 애비가 인간의 음식을 먹지 못한다는 묘사. 스웨덴 판에서는 오스카르가 준 과자를 먹었다가 토하는 것 뿐인데 미국 판에서는 그 전에 함께 데이트를 하며 약국에서 오락도 하고(아타리의 팩맨이다) 과자를 사는 장면이 추가로 삽입되었다. 둘 간의 감정선이 평범한 연애 감정이라기보다는 동경과 육욕 등이 뒤섞인 보다 복잡한 것으로 묘사되었던 스웨덴 판보다 좀 더 단순해지고 이해하기 쉬워졌다. 둘 간의 성적 긴장감도 보다 완화되어 묘사된다. 뱀파이어 물도 피해가지 못하는 쌀나라 아동 보호법의 위엄.

차이점 8. 후반부의 하이라이트 수영장 씬이 좀 다르다. 전후 사정이나 맥락은 스웨덴 판과 동일하다(오웬이 자신을 괴롭히던 불량아 리더를 까버렸고, 그 형이 복수하러 왔다). 그러나 좀 더 유혈이 낭자하고, 오웬이 물 속에서 괴로워 하는 동안 애비가 초음속(...)으로 날아 다니며 학살을 벌이는 게 좀 더 직접적으로 부각된다. 비명 소리, 신음 소리, 뼈 부러지는 소리 등.

차이점 9. 흡혈 시 애비의 눈동자 색깔이 바뀌고 표정도 더 험악해진다. 일본 만화 같은 느낌이 들었음.

차이점 10. 스웨덴 판의 이엘리가 입에 담던 시적이고 함축적인 대사("빛이 사라지면 너에게로 갈께" "내가 되어봐" 등)들이 왕창 짤렸다. 그 대신 사랑한다고 말한다. 이런 명쾌한 쌀국놈들.

차이점 11.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부분. 스웨덴 판에서는 초대 받지 않은 채 집에 들어왔다가 전신에서 피를 흘리고, 얼굴이 순간적으로 늙어 보이는 장면이 있었다. 뱀파이어의 비극성이 드라마틱하게 부각되는 명장면이었는데 미국판에서는                                                       



그런 거 없어



걍 피만 좀 흘리고 만다.

차이점 12. 스웨덴 판에서는 영화가 끝나고 메인 테마와 함께 스탭롤이 다 올라가고 나면 검던 화면이 천천히 붉게 물드는 연출이 있었는데 미국 판에서는 그냥 끗.

전체적으로는 스웨덴 판이 좀 더 나았다. 똑같이 눈 내리는 겨울인데도 애초에 추운 나라인 스웨덴에서 찍어서 그런지 스웨덴 판 쪽이 그 특유의 스산하면서도 매혹적인 분위기를 훨씬 더 잘 살렸다. 미국 판도 나쁘진 않고, 제법 선방했다 싶은 부분도 있는데 원작에 비해 다소 밀린다는 느낌이다.  스웨덴 판에는 그런 분위기를 극단적으로 끌어 올렸던 요한 소더크비스트의 OST 빨도 있었고.

다른 데서 좀 찾아보니 원작 소설에서는 호칸이 그냥 아동 성애자였으며 오스카르와 이엘리의 관계 같은 정서적이고 밀접한 관계가 아니었다-즉 오스카르는 나이를 먹어도 호칸처럼 되지는 않을 것이다-고 하던데, 이에 대해서는 영화의 해석이 여운도 강렬한 게 더 나은 듯 싶긴 하다. 하지만 미국 판에서는 원작 소설을 재해석하는 것도 좋아 보였는데 너무 안전하게만 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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