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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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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상당한 호러 팬이라고 자부하면서도 '너무 유명하고 잘 알려져서 오히려 잘 안 보게 되는' 작품이 종종 있다. 어렸을 때 집 근처 비디오 대여점에 들를 때마다 이 테이프 커버에 박힌 스틸 컷과 줄거리 요약을 보면서 '언젠가 봐야지' 생각하면서도 매번 내 지갑에서 나온 꼬깃꼬짓한 천원 짜리 지폐들은 다른 작품을 빌리는데 쓰였고, 어느덧 나는 나이를 먹어 성인이 되었고, 동네 비디오 대여점은 씨가 말랐다. 그러던 차에, 평소부터 좋아하던 작가이던 클라이브 바커가 이 영화의 원작을 쓰고 제작도 맡았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서 "헐 이거 언제 한 번 봐야지 생각했는데 원작이 바커였어?" 하는 심정으로 이 영화를 봤다.

 

클라이브 바커는 안 그래도 호러 장르가 척박한 한국에서는 스티븐 킹과,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히 유명해진 러브크래프트의 명성에 밀려 인지도가 낮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둘에 비교해도 전혀 안 꿀린다고 생각하는 탁월한 작가다. 다만 그의 작품에서 묘사되는 '공포'가 대중적인 코드와는 엇박자를 밟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잘 먹히기 어려울 뿐이다. 유혈 낭자한 자극적인 고어 묘사에만 치중한다는 오해도 흔하고. 하지만 그러한 선혈 아래에는, 결코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묵직한 주제가 빛나고 있다.

 

이 영화는, 대학원생 헬렌이 논문을 쓰기 위해 시민들 사이에서 떠도는 도시전설(Urban legend)를 채록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이런 걸 수집하는 걸로 봐서 아마도 민속학과일 것이다). 헬렌은 카브리니 그린이라는 슬럼 가에서 전해지는, 거울을 들여다 보면서 그의 이름을 다섯 번 부르면 나타나 오른 손 대신 달려 있는 갈고리로 자신을 부른 자를 무참히 살해한다는 '캔디맨'이라는 존재에 대해 관심을 갖고서 조사를 시작한다. 카브리니 그린에서 예전에 일어났던 살인 사건이 캔디맨의 소행이라는 현지 주민들의 광범위한 믿음에 흥미를 느낀 헬렌은 직접 카브리니 그린으로 찾아가 살인 사건이 일어났던 장소를 조사하다가, 자신이 캔디맨이라고 주장하는 폭력배에게 구타 당한다. 그 폭력배는 곧 경찰에 잡혀 들어가지만, 이후 '진짜 캔디맨'으로 추정되는 존재가 헬렌의 앞에 나타나고. 그가 저지르는 살인의 누명을 쓰며 헬렌은 위기에 처하기 시작한다.

 

이 영화에서 높이 사고 싶은 부분은, 캔디맨이 과연 실존하는 초자연적 살인마냐 아니면 단지 부상과 정신적 압박감에 짓눌려 미쳐가는 헬렌의 망상에 불과한 것이냐에 대한 정답을 최소한 중반이 넘는 시점까지는 명확히 관객에게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캔디맨은 항상 헬렌이 혼자 있을 때만 그녀의 앞에 나타나며, 그가 사라진 후 아무 것도 모르는 제3자가 보기에는 헬렌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볼 만한 정황이 충분하다. 클라이브 바커의 원작 단편을 읽어 보진 못했지만, 독자로 하여금 끊임 없이 일련의 살인 사건은 사실 전부 헬렌의 소행이고 캔디맨은 그녀의 공포가 반영된 허구의 존재인가 아니면 헬렌의 시점에서 묘사되는 대로 악마적인 괴물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악몽 같은 묘사로 가득할 것이다. 아, 상상만 해도 염통이 쫄깃거린다 헉헉(....) 써놓고 보니 좀 변태 같다(.......)

 

 실존하는 초자연적인 살인마인가, 아니면 헬렌의 망상일 뿐인가. 이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이 주제는 도시전설이라는 소재 자체의 핵심적 특성과 겹쳐진다. 도시전설이란,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개연성은 충분히 존재하는' 이야기다(이 점에서 음모론과도 어느 정도 특성을 공유한다). 특정한 대상(사람일 수도 있고, 사건일 수도 있고, 장소일수도 있다)에 대한 불특정 다수의 막연한 공포나 두려움, 의구심이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가고. 기승전결을 갖춘 구조의 이야기가 되고, 점차 살이 붙으며 디테일이 생기고, '내 친구의 사촌이 겪었대' '내 친구의 아는 사람이 해준 이야기래'라는 식으로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지는 과정을 거쳐 확고한 전설로 자리매김한다. 작중에서 캔디맨은 헬렌을 위협하면서 '나는 벽의 낙서와 교실에서의 속삭임 속에 존재한다' '너로 인해 내 신자들이 믿음을 잃었다' '죽음을 두려워 마라, 그로서 너는 불멸을 이루게 될 것이다' 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이 대사들은, 도시전설의 본질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해당 커뮤니티 내 사람들의 구전을 통해 떠도는 실체 없는 이야기라는 점, 그에 대한 대중들의 믿음과 두려움에 의해 이야기가 커지고 강해진다는 점, 그리고 한 인간이 늙어 죽기 충분할 정도의 긴 세월이 흘러도 두고 두고 구전되면서 일종의 불멸성을 성취한다는 점에 이르기까지.

 

캔디맨 역을 맡은 토니 토드의 우수한 연기와 탁월한 음악을 통해 쌓아 올린 이러한 장점들은, 지금의 눈으로 보자면 조악한 특수 효과와 부자연스런 설정(시체가 갈고리에 꿰어 죽은 것인지 헬렌의 손에 들려 있던 칼에 찔려 죽은 것인지도 구분 못하는 경찰들이라거나)들에도 불구하고 후반에 이르기까지 훌륭하게 빛난다.

 

......마지막 10분 전까지는. 마지막의 그 10분이, 그 장점들을 모두 망쳐 버린다.

 

지금까지 '캔디맨이 과연 실존하는가 아닌가' 부터 시작해서는 잔혹한 연쇄 살인마 주제에 정작 헬렌에게는 털 끝 하나 안 건드리고(단지 살인 누명 씌우는 것부터 시작해 정신적으로 몰아붙일 뿐) 다정돋게 대하며 '우리의 죽음을 통해 불멸로의 문이 열릴 것이다' 같은 로맨틱한 대사까지 날리는(캔디맨의 전설 속에 등장하는, 그의 옛 연인을 헬렌과 동일시하는 걸로 보인다) 캔디맨의 모습에서 '저토록 광적이고 집착적인 애정도 어떤 의미에서 순수한 것 아닌가' 한 발 더 나아가 온갖 현시창으로 인간을 떠밀면서도 여전히 인간을 사랑하고 있는- 캔디맨을 일종의 신적 존재로, 헬렌을 인간으로 놓는 식의 훨씬 깊은 해석까지 나아갈 수 있을 법한 떡밥이 가득하다. 그런데 그걸 카브리니 그린에서 살던 앤 마리 맥코이의 아기를 캔디맨이 납치하고, 헬렌이 그 아기를 구해내어 카브리니 그린의 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앤 마리 맥코이에게 돌려주는 후반부 장면에서, 현실과 도시전설의 경계에 걸친 존재로서의 아우라로 가득하던 캔디맨의 위상은 그냥 흔한 스플래터 호러 영화 속 살인마 A로 추락해 버린다. 영화 중후반까지 계속 집요하게 관객에게 던지던 '과연 캔디맨이 실존하게 안 하게?'라는 의문은 '캔디맨이 납치해 간 아이가 살아 있고 헬렌이 그를 구해낸다'라는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너무 순식간에 해결되고, 캔디맨이라는 존재와 부재 사이에 걸쳐 있는 독특한 존재로서의 신비감을 한 순간에 탈색해 버린다. 이로서 캔디맨은 '도시전설을 통해 실체화되고 그에 대한 대중들의 믿음을 통해 영생을 얻는, 독특한 아이덴티티를 지닌 초월적 존재'가 아니라 '강하고 무섭고 나름 비극적 과거도 있지만 단지 그 뿐인 슬래셔 영화의 살인마'로 전락한다.

 

마지막 10분만 아니었으면, 망할!!!!!! 굳이 그렇게 안 해도 헬렌이 또 다른 캔디맨이 된다거나 하는 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말이잖아!!!!!!!!! 꼭 그렇게 했어야 했냐고 감독놈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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