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옛 기억이 별 이유도 없이 떠올라서,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난 내게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걸 막연하게나마 자각하고 있었고, 군대를 제대할 무렵에야 그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확실히 깨달았다. 그게 10년 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난 후회하면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더없이 간절히. 시행착오가 있을 거라는 건 예상하고 있었고, 그렇게 실패와 약간의 위안, 희망을 반복해가면서도 조금씩 나아져 가고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난 알고 있다. 때로는, 진심과 선의가 가장 치명적인 독이 된다는 걸. 그 독은 평생 동안 내 혈관을 타고 돌며 날 괴롭힐 테고, 결코 회복할 수 없다는 걸. 그걸 도저히 견디기 힘들어서 한 번 죽으려고 했고, 그마저도 실패했다. 그 때, 난 내가 한 때 지키고자 했던 게 내 안에서 무너지는 걸 느꼈다.
이젠 그저... 아마도 난 죽을 때까지 人間이 될 수 없다는 게 내 운명이려니 한다. 하지만 가끔은, 예를 들어 오늘 같은 날은 그 날의 기억이, 그 날 느낀 절망이 너무나 끔찍하고 생생하다. 나새끼가 이러니까 모처럼 반한 사람이 생겨도 입도 뻥끗 못하고 오히려 내 쪽에서 멀리하는 거지. 스스로 생각해봐도 진짜 개노답이네 썅ㅋㅋㅋㅋㅋㅋㅋ
....뭐, 일베충 수준이 아닌 이상(사실 당연히 그보단 나아야 하고) 왠만하면 어떤 남자도 뭐 나보다는 정신 상태가 건전할테고, 그 분도 뭐 아무 놈하고나 덥석 사귀지야 않겠지. 그 분이 행복하게 잘 지내신다면 적어도 최악은 아니다.
날씨도 좋고 다 좋은데 왜 쓸 데 없이 떠올라 가지고.... 아 기분 더럽네 진짜.
집중할 일이 필요하다.

도심환경(나)
*전체적으로 기대되는 수작. 배경은 미국인데, 작가와 독자가 모두 한국인이라는 데서 오는 이질감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가 관건
*괴물의 정체가 무엇일지 궁금하다. 과거 시점과 현재 시점이 만나는 지점이 불명확함. 왜 하필 그것이 인디언들과 관련이 있는지, 그리고 현재 재개발 와중에 정체를 드러내게 되는가, 그런 부분이 좀 임팩트가 더 있었으면 한다.
*인디언들이라는 존재의 등장이 어떠한 ‘경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당위성 측면에서 약간 의문이 있다. 왜 굳이 지금 그 괴물이 깨어나는가?
*0과 1이 이어지는 부분이... 독자를 이야기 내에 몰입시키지 못하고 소외시키는 느낌. 좀 더 자연스럽게 이어줬으면 싶음
*주연이 셋인데, 독자가 셋 중 하나에게는 몰입해야 한다. 록슬리는 비인간이니 논외, 가르시아나 루시엔이 그 역할을 해 줘야 한다. 루시엔의 경우는 캐릭터가 찌질해 보일 수 있음. 초반 몰입은 중요하다.
*묘사가 수려하긴 한데 진도가 잘 안 나간다. 읽다가 빡세:Q
*대화(특히 록슬리가 블라블라 하는 부분)가 재미있긴 한데, ‘한국적 표현’이 종종 튀어나온다. 보가트 경사의 “개이득!(Profit)"이라거나.
*헌트 시장의 인물상 묘사가 마음에 든다.
*이야기 흐름에 있어서 묘사에 리듬 조절? 강약 조절? 그런 게 필요하다. 예를 들어, 록슬리가 나오는 부분.
*마지막에 록슬리가 돌아오는데, 마치 투자자가 ‘너무 결말이 암울하니 희망적인 걸 보여줘’라고 요구해서 나온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 이야기의 주제가 흐려진다는 느낌. 시장부터 시작해 선하게 살려고 노력했던 사람들도 전부 죽고. 그런 판인데. 이 결말은 좀........ 어............. 음...........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40100&artid=201504132151545
벌써 1년이 지났구나. 살고 싶지 않은 나는 살아 있고, 살고 싶었을 사람들은 죽어 있고.
그 분에 대한 내 감정도 많이 흐려졌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완전히 지워지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불현듯 또 생각났다. 그 웃음, 그 머리칼, 그 눈동자. ...그리웠다, 좀 많이.
그와 동시에,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그 분과 난 생판 남남인데'라는 자문과 함께 한참 머리 속 구석으로 치워놓고 있던 자살 충동이 다시 몰려 들었다. 전에 한 번 죽으려고 했던 이후, 그 충동은 일종의 보험이 되었다. 무엇을 하고 있어도 머리 속 한 구석에선 '죽을까' 하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고, 때때로 그것은 '이거 저거 좀 더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마지막으로 나를 써'라고 속삭이곤 했다.
이거 저거 할 것은 아직 약간 남아 있다. 그래도, 그래도. 결국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비가 내린다. 사랑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이 내 안에서 겹치는 게 느껴진다.
반한 분을 떠올릴 일이 좀... 있었다. 돌아오는 길 위의 인파 가운데, 그 분의 얼굴만이 가득했다.
내 감정이 한 없이 얄팍한 것이라는 걸, 내 안의 그 분은 진짜 그 분이 아니라 온갖 미화와 환상으로 덧칠된 자아도취적인 이미지에 불과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마도 그런 내 감정은, 도저히 사랑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만에 하나. 정말로, 정말로 만에 하나. 내 감정이 사랑이 맞다면,
난 내 그 사랑이 집착과 질투로 타락하게 두지 않을 것이다.
주말이다. 날씨는 맑고, 벚꽃은 피었다. 데이트라도 하셨으려니 한다. 행복하게 잘 보내셨기를.
좀 더 시간이 지나고 내 감정이 완전히 흐려지고 나면 그 후로는 누군가에게 반할 일 같은 건 없었으면 한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04082235595&code=210100
세월호 침몰 1주년을 맞이해, 박민규 작가가 특별 기고한 글.
또 반한 분이 떠올랐다. ....이젠 내 감정도 많이 흐려졌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그 분은, 내 감정을 받아 줄 수 없는 입장이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내 감정을 아신다면 불편하실 수도 있고. '나 인기 많구나' 하고 기뻐하실 수도 있지만 모험은 하고 싶지 않다. 놀라실지도 모르고. 무엇보다도, 그 분이 남자친구가 없으셨어도 나는 내 문제 때문에 다가가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전에 다른 사람한테 반했을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는데, 그 때는 결국 내 감정을 가누지 못하고 고백했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 사람은 불편해 했었다. 고백 방식과 타이밍이 안 좋기도 했지만. 그 사람이 깔끔하게 거절해줘서 차라리 고마웠었다.
이번엔, 그 때와는 다를 거다.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bestofbest&no=240808
한국 대기업:
당신에게 소 500마리가 있습니다. 당신 목장에서 일하는 일꾼들에게 우유를 당신 맘대로 나눠주며, 일꾼 하나가 와서 왜 이것 밖에 안 주냐고 항의하면 당신 옆에 있는 다른 일꾼은 당신보다 많이 우유를 받아갔다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일꾼들이 서로 싸우는 동안 당신은 항의를 하지 않을 만한 일꾼을 새로 뽑을 준비를 합니다.
http://mirrorzine.kr/index.php?mid=w1_domestic&document_srl=7465
1)
만우절이겠다 뭔가 재미있는 거짓말할 게 없나 생각해 봤는데, 그런 이야기를 할 사람이 마땅히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에라 내 팔자가 아무렴 그렇지ㅋ
2)
소설 쓰던 걸 완성하려고 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정작 소설은 한 줄도 안 쓰고서 그 대신 RPG 팀에서 마스터링할 새 캠페인에 필요한 데이터만 잔뜩 만들어놨다. 일해라 나새끼
3)
반한 분이 여전히 약간은 그립다. 하지만 예전에 비해 내 감정이 좀 흐려졌다는 느낌은 든다. 오래지 않아 사라지겠지. 그러고 나면 다음에는 누군가에게 반할 일 없길 바란다.
4)
약을 다 먹었다. 전에 한 번 죽으려고 했다가 실패한 이후, 죽는다는 건 나한테 있어... 일종의 최후의 보험 같은 게 된 것 같다. '이것도 저것도 전부 안 되면 그 때 죽어도 된다' '그러니 지금은 이거 저거 해봐라'라고 무언가가 나한테 속삭이는 듯한 느낌이다. 병원에 다시 가서 요즘 상태를 이야기하고 약 좀 더 사올까, 아니면 약 끊는 게 나을까.
5)
난... 어느 정도 이상 사람과 관계가 가까워지면, 관계가 망가질 것이 두려운 나머지 내 쪽에서 일부러 상대를 쳐내고 멀리 하려고 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가까운 사람이 없어서 정말로 그런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한 때 더 없이 간절히 바란 것은, 그리고 그걸 손에 넣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은 결국 무가치한 것에 불과했고 그저 혼자서 견디며 사는 데까지 살아가는 것만이 내게 남은 유일한 운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TRPG 체험 플레이에 갔다 왔다. 원래는 참가 신청 타이밍을 놓쳐서 걍 김성일 님한테 인사 정도만 하고 밖에서 책이나 읽다가 올 생각이었는데 자리가 남은 바람에 어찌어찌 끼게 됐다. 그 외에도 아는 얼굴이 좀 있었다('온우주' 출판사 사장님도 개인적으로 흥미 있으시다고 오셨더라). 플레이 전에 성일님이 잠깐 RPG에 대해 강연을 하셨는데, 거의 아는 내용일거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꽤나 영양가 있는 내용이 많았다. 4시점론에서 한 축이었던 '배우' 시점이 '작가'와 '캐릭터' 시점에 통합된 계기, 리플레이의 비효율성 등. 전부 공감가지는 않았지만 생각해 볼 만한 가치는 충분한 내용들이었다. 사용한 룰은 피아스코. 피아스코는 이번이 2번째라서 약간 헤맸지만 같은 테이블에 경력자이고+피아스코 룰북을 미리 읽어온 분이 계셔서 그 분이 하드캐리.
옆 테이블은 전부 여자분들이었는데, 건너 건너 이야기를 하는 걸 들어보자니 전원 RPG 무경험자였던 모양이다. 체험 플레이가 끝나고 난 뒤에도 서로 연락처 주고 받으면서 계속 같이 해보자고 하는 걸 곁귀로 듣고 있자니 아무 상관도 없는 내가 괜히 좀 흐뭇했다. 피아스코는 즉각적인 임기응변이 중요한 룰이고, 나는 그런 게 부족하다 보니 피아스코라는 룰 자체에 크게 정이 붙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RPG 인구가 하나라도 늘어나는 건 좋은 일이다.
플레이 끝나고서 도서관 관장님과 성일님, 온우주 사장님, 그리고 SF 출판사 '불새' 사장님과 함께 저녁 먹으러 갔다. 내가 낄 자리가 아닌 거 같아서 빠지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저녁 값도 굳었고. 그래도 역시 다음 번에는 빠지는 게 나을 것 같다(...)

....일단 죽으면 어디에 묻혀 있는지가 중요할까? 더러운 구정물 웅덩이든, 높은 언덕 꼭대기의 대리석 탑이든 그게 중요한 문제일까? 당신이 죽어 깊은 잠에 들게 되었을 때, 그러한 일에는 신경쓰지 않게 된다. 기름과 물은 당신에게 있어 바람이나 공기와 같다. 죽어버린 방식이나 쓰러진 곳의 비천함에는 신경쓰지 않고 당신은 깊은 잠에 들게 되는 것뿐이다. 나도, 이제는 그러한 비천함의 일부가 되었다. 러스티 리건이 그랬던 것보다도 훨씬 깊숙이 빠져들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노인까지 그럴 필요는 없었다. 그는 핏기 없는 이불 위에 올려놓고 차일을 친 침대 위에서 조용히 누워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심장은 짧고 불확실한 중얼거림과 같았다. 그의 사고는 타 버린 재처럼 회색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면 그 또한, 러스티 리건처럼 깊은 잠에 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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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타이틀을 바꿨다. 이전의 타이틀은, '지옥에서 너 자신을 구하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이제 나는, 어딜 가더라도 그곳은 내게 있어 저마다 다른 종류의 지옥에 불과할 것이며 내 유일한 운명은 오직 그 색채 없는 불길 속에서 홀로 견뎌내는 것 뿐이라는 예감이 든다. 허수아비의 주머니 속에서, 별들 사이의 공간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언제까지 가능할까? 가끔은 형언할 수 없이 두렵다.

나새끼가 지금 도대체 뭐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상황은 단순하다. 난 그 분에게 반해 있고, 나와 그 분은 객관적으로 생판 남남이고, 그 분은 남자 친구가 이미 있고, 아마도 행복하게 잘 지내시는 것 같고, 그 분이 남자 친구가 없으셨더라도 난 내 문제 때문에 접근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걸 아주 잘 알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매일 같이 그 분을 떠올리고, 그 분은 그 분이 사랑하는 다른 어떤 놈과 함께 행복하게 잘 살길 바란다고 기도하고, 내가 그 분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기도 뿐이라는 것에 대해 좀 허탈해하고... 그를 반복하고 있자니 '1년이 넘게 얼굴을 안 봤는데 왜 아직 감정이 안 없어지는 걸까' '내가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분의 이미지와 실제의 그 분은 아마도 분명 다를 텐데 이런 걸 사랑이라고 해도 되는 건가' '이 감정이 정말 사랑이긴 한 건가' '난 비극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도취감을 즐기고 싶은 것 뿐 아닌가' 하는 생각이 밀려온다.
이 감정이 다 사라지고 나면, 또 누군가에게 반해서 똑같은 과정을 반복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건 피하고 싶다.
+
새삼스럽게, 그 분에 대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서 혼자 속에 묻어 버리고 가기로 한 게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을 알면 그 분 입장에서는 불편하시겠지, 암.
+
문득 그 분이 이 블로그 보시지 않을까, 내가 자신한테 반한 거 눈치채시고 이미 불편해하고 계시지 않을까 싶어서 약간 불안해졌다. ....눈치챌 만한 증거는 모두 없앴다. 그 분과 난 생판 남남인데 이 블로그까지 굳이 찾아서 보실 것 같지도 않고. ....괘, 괜찮겠지.

그려진 지 이미 좀 된 물건 같긴 한데.
테러 희생자들의 죽음은 물론 추모 받아야 마땅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대가 먼저 내게 몽둥이를 휘둘렀으니, 나는 총을 쏴서 반격하겠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다 못해 슬픈 일이다. 상대는 돌멩이와 몽둥이 밖에 없고 나는 대전차 미사일과 거치식 기관총을 갖고 있다면 더욱 더.
평소에는 이성적이고 과묵한 편이지만(정확히는 이성적이려고 하는 편이지만) 사실은 다혈질에 자존심도 강한 편. 욱하는 기질 때문에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았기에 가능한 스스로의 감정을 억누르고 매사에 이성적이고 냉정해지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기분 상하는 일이 있어도 가능하면 속으로 삭이거나 좋게 돌려서 생각하려고 하는 편.
본성 자체는 정의감이 강하고 올곧지만 인간관계에 있어 나쁜 일을 워낙 많이 겪어서 타인에게 마음이 닫혀 있고 늘 거리를 두려고 한다. 인간불신이 대단히 심함. 게다가 말주변까지 없다 보니 오해를 사기도 쉬운 타입. 초면이어도 잠깐 마주치는 상대에게는 평범하게 웃어 보이며 사교적으로 대할 수도 있고 화제가 적절하다면 적당히 농담도 해 가며 대화를 나눌 수도 있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본인도 스스로의 문제를 자각하고 있어서 그런 성격을 고쳐보려고 한 때는 꽤나 노력했지만 실패를 거듭한 끝에 좌절하고서 이제는 거의 포기했다. 그 당시의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노력한답시고 허공에 삽질만 잔뜩 한 끝에 스스로를 망쳐버린, 지금 만나면 한 대 치고 싶을 정도로 한심한 찌질이’로 여기며 부끄러워한다(그나마도 지금은 좀 나아진 상태). “내 문제를 근본적으로 고치려면 계속 재시도를 하면서 시행착오를 반복해야 하는데, 남들로서는 자신의 시행착오를 받아주며 고쳐질 때까지 옆에서 기다려 줄 이유가 없을 테고 관계만 더 나빠질 뿐이니 차라리 입 다물고 그저 공적인 차원에서 말썽 안 생기게 주의하면서 사적으로는 사람을 멀리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른 상태. 몇 없는 옛 친구들에 대해서도 혹시 “그저 내 서투름을 적당히 참아주고 있었던 것 아닐까” “어쩌면 내 쪽에서만 친구라고 착각했던 게 아닐까” “그렇지 않다 해도, 오랜만에 만났다가 상대방의 감정이나 입장은 충분히 배려하지 못하고 나 자신의 한탄만 늘어놓으며 분위기를 망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에 내심 그리운데도 연락을 하지 않고 있다. 쿨한 것과는 거리가 멀고, 다만 강한 자제력으로 그러한 욕구를 억누르고 있는 것일 뿐.
원판이 감정적이다 보니 내심으로는 스트레스가 많이 쌓여 있으며 그를 혼자서 견디다 못해 자살시도도 한 적 있다. 무작정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억누르기 보다는 잘 표현하고 해소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그러한 자신의 약한 부분을 남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고+한번 섣불리 드러냈다가는 눌러둔 게 한꺼번에 터져 나올 것 같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중.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어 있는 블로그에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그렇게 억눌러둔 감정과 욕구들을 비교적 안전한 방식으로 해소하기 위해서(자신을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딱히 크게 신경 쓰지도 않을 테니까).
스스로의 그러한 정서적 결함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도 다가가지 못하고 멀찍이서 막연히 그 사람이 행복하기만을 바란다. 그 분에게 뭔가 해주고 싶으면서도, 그 분과 자신은 생판 남이며 친구도 뭣도 아니니 그랬다가는 오히려 부담만 줄 거라고 여기는 중. 그 분에게는, 아무리 사소한 거라도 나 때문에 불편한 감정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얼굴을 보면 마음이 흔들린 나머지 거리 조절에 실패하고 거북하게 해드릴 것 같아서, 그 분과 마주칠 가능성이 있는 자리는 피한다. 스스로가 생각하는 ‘사랑하는 그 분’에 대한 심상이 실제의 그 사람과는 동떨어진, 자신의 환상이 덧씌워져 미화되고 변형된 이미지일 뿐 그 사람이 아닐 거라는 점-즉, 자신은 그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낸 허상을 사랑하고 있다는 자각- 때문에, 그런 자신의 감정은 진짜 사랑이 아니라고 여기며 약간 죄책감과 좌절감을 느끼는 중. 그 분의,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남자친구에 대해서는 질투심을 느끼고 있지만 동시에 ‘어떤 놈인지 몰라도 최소한 나처럼 정서 결함은 아니겠지’ ‘그 분이 행복하다면 그걸로 괜찮아’ 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감정도 완전히 사라지려니 하는 중.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이제 거의 포기했다.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 있는 ‘관계’에 대한 욕구가 전부 사라지고 지금 느끼는 고독감이나 좌절감도 모두 사라져서는, ‘혼자여도 현실적인 불편함만 느낄 뿐 적어도 정서적으론 어떤 번민이나 고독, 슬픔도 느끼지 않는 상태’가 되면 최소한 절반은 성공한 인생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는 게 현재 상태.
PS=트위터에서 발견한 내용
한편 타인에게는 자신에 엄격하고 타인에 관대하도록 요구하며 사스로는 자신이 엄격하고 타인에 관대하다고 기만해야 합니다. 제 생각에 이것은 성공하는 사람의 자기관리로서 기본중의 기본입니다.

http://www.ilwar.com/allbest/192642
일베의 기본적 성격, 행동양식, 유사집단 소개부터 시작해서 일베에서 쓰이는 코드 분석, 주요 전략, 그에 대한 대처법, 그간 일베에서 저지른 주요 트롤링과 패악질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일베의 거의 모든 것을 총망라해 놓았다. 출처는 일간 '워'스트. 늘 느끼는 거지만 꽤나 방대한 분량인데도 상당히 정리를 잘 해놨다. 일워는 커뮤니티로선 솔까말 노잼이지만 뭐 이런 사이트도 있어야지.
1)
꿈 속에서, 반한 분이 곧 결혼하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겉으로는 그 소식을 전해준 상대에게 "축하할 일이지만 나와는 상관 없어" "그 사람하고 친한 것도 아닌데 뭐" "그래서 언제?" 같은 반응을 하면서 동시에 속에선 '그 분이 행복하다면 된 거야' '추하게 질투 같은 거 해선 안 돼' '그 분이 남자 친구 없으셨어도 나하고 잘 됐으리라는 법은 없어' '어차피 난 내 문제 때문에 사랑 같은 거 못해' '이제 내 감정을 거의 다 추스렸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나 보다' 등등 온갖 생각들이 끓어 오르는 걸 느끼다가 깼다.
현실에서 같은 소식을 듣더라도, 나는 꿈 속에서와 똑같이 반응할 거다. ...그 분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없는 것 같다. 그게 매우 안타깝다. 뭐... 이것까지는 딱히 악몽이랄 것도 없는데, 다시 잠들었다가...
2)
엄청 뜬금 없이 내가 국정원 요원이 되서는 '빨갱이'들을 잡으러 다니는 꿈을 꿨다. 난 국가의 인정을 받는 고급 공무원이며 내가 하는 일은 정당하다는 자의식과 정권의 사냥개에 불과하다는 자격지심 사이에서 고민하던 중 한 유명한 사회 운동가를 붙잡았다. 마침 난 혼자였고, 늘 나를 쫓아 다니면서 은근히 감시하던 파트너도 곁에 없었다. 난 그 사회 운동가에게 '적당히 치고 받은 뒤 놔줄 테니 내가 때리면 같이 맞 때려라'고 하고는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사회 운동가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나에게 맞고 있다가 죽어 버렸다. 그 시체를 붙잡고서 당황하던 중 잠에서 깼다.
.....어린 시절 생각나서 엄청나게 기분이 더러웠다. 게다가 그 사회 운동가가, 현실에서 내가 존경하는 한 작가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더욱 기분이 더러워졌다.
난 다시는, 내가 한 때 그러했던 것처럼 비굴하게 살지 않을 거다.
+
그 분한테 반한 이후 거의 하루도 빠짐 없이 그 분이 행복하게 잘 살길 바란다고 기도했다. 이젠 그 기도마저도, 어느 정도는 관성이 되어간다는 걸 자각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얼굴 하나만 보고 반했던 건데 내 감정이 과연 얼마나 진실한 것일지 회의도 숱하게 했었고.
난 결국 내 감정이 이렇게 수렴할 것임을, 내 사랑이 오래지 않아 바래지고 끝나갈 것임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분을 떠올리면 아직 마음 한 구석이 쑤셔온다.
오랜만에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라서, 일찍 잠들었다가 지금 일어났다.
무슨 만화 주인공마냥 딱히 별 거 안 해도 저절로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고, 우정과 유대를 맺고, 서로 도와 난관을 타개하고, 그런 일은 현실에서는 판타지에 가까운 수준의 행운이다.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난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늘 마음 한 편으로는 '남들은 훨씬 더 쉽게 타인과 관계 맺고, 더 쉽게 속내를 나누는 걸로 보인다' '나도 평범하게 친구를 갖고 싶다'는 욕구를 완전히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말하자면... '타인과의 이해와 유대'라는 개념을 수치화한다고 가정한다. 물론 그런 추상적인 개념을 수치화한다는 것은 터무니 없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그렇다. 평균적인 사람은 그걸 30~40 정도로 누리고 있다. 특히 인기가 많고 주변에 사람이 떠나질 않는 사람은 80에서 90 정도 된다고 친다. 픽션에서는 그 정도가 훨씬 높아지고, 소년만화처럼 애초에 그런 주제가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장르라면 200을 넘어간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그것의 수준이 기껏해야 5, 높이 쳐도 10 정도에 불과하다. 애초에 난 밖에 나가서 놀기보다는 책을 읽는 걸 더 좋아하는 성격이었고, 그러면서 같이 본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에서 묘사되곤 하는 '화목하고 건강한 가정' '늘 함께 온갖 말썽에 말려드는, 하지만 밉지 않은 친구들' '역경에 처했을 때는 우정과 믿음으로 극복' 같은 요소들을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그걸 어느 정도 '이상적인 모습'으로 내면화했고, 그렇기 때문에 객관적으로는 충분히 나름의 고민과 신산이 있을망정 나보다는 그런 '이해와 유대'를 높은 수준으로 누리고 있다고 여겨지는 타인들을 보면서 그러한 이상적인 모습을 투영해 저 사람들은 한 70 정도 누리고 있겠거니 하고, '나도 저렇게 평범하게 친구들과 어울려 같이 놀고 싸우고 웃고 그렇게 살고싶다'고 생각했던 거다. 그 사람들이라고 해서 소년만화 주인공 같은 삶을 살 리는 만무한데도. 그리고 이제 나는 그걸 거의 포기했다. 완전히 포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런 친구를 가지고서 그런 삶을 살고 싶어했고 그걸 위해 진심으로 노력했던 한 때의 나 자신이 끔찍할 정도로 치욕스럽고 한심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때의 내가 눈 앞에 있으면 두들겨 패주고 싶었는데(그 때의 나라고 해서 가만히 맞고만 있을 것 같지도 않지만), 이제는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여전히 싫다.
전에 가까이 지냈던 옛 친구들과 연락하지 않은지 한참 지났다. 분명 그 친구들도 자신의 삶이 있고, 그 자신의 고통이 있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나 자신의 고통과 고독감, 절망감에 짓눌려서 내 이야기만 끝없이 늘어놓을지도 모를 스스로를 보고 싶지가 않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가끔, 가볍게 연락이라도 할 걸 그랬다 싶긴 한데 이젠 이미 늦은 것 같다. 때로는 그립다. 아주 많이.
내 안에서 이 毒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예감이 종종 들곤 한다.

이 중에 끼지도 못한 건담 X (´;ω;`) 불쌍하다... 오프닝 음악은 쩔고 여주인공도 귀여운데 말이지.
얼마 전에, '아, 이 친구는 더 이상 내가 보고 싶다거나 안 봐서 아쉽다거나 하지 않는가 보다' '굳이 내 쪽에서 자꾸 연락해봤자 좋을 것도 없겠다' 생각하게 된 옛 친구와 같이 노는 꿈이었다. 즐거웠다, 그래봤자 꿈 속의 일에 불과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악몽인 거다.
이대로 천천히 멀어지겠지. 잘 지내길 바란다.
잠이 안 올 거 같다.

http://mirrorzine.kr/index.php?mid=w2_oversea&document_srl=37415
사회주의적 관점에 입각한 리뷰. ...내가 사상적으로는 사회주의자에 가까운 주제에 정작 개인적 레벨에 있어서는 타인과의 소통과 이해를 거부한다는 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약간 한심하다.

우연히 지인을 만나 인사를 주고 받았다. 최규석 작가님께 가져갔던 책들에 사인도 받았다. 다 끝나고 난 뒤 하종강 선생님께 질문을 하나 했다.
나:노동운동에 있어서, 노 측을 '선' 사 측을 '악'으로 규정하는 프레임은 위험하다고 보는데요. 그간 운동 해오시면서 노동자들끼리도 서로 벼라별 괴이한 이유들...출신 지역이라거나 종교 같은 걸로 싸우고 대립하는 경우 숱하게 보셨을 거 같은데...
하종강 선생님:숱하진 않아요, 가끔...(웃음)
나:그런 경우를 보다 보면, 실망스럽기도 하고 종종 진짜 정 떨어지거나 하지 않나요?
하종강 선생님:어쩔 수 없지요. 잘 이야기해서 하나로 묶어야 해요. 그런 문제 때문에 지쳐서 운동 그만 두는 활동가 분들도 많아요. 그래도 해야죠. 그런 걸 너무 많이 접하면, 운동을 관둬야 해요. 인간이 파괴되어 버리거든요.
나:그걸 머리로 알아도 그런 상황을 계속 겪다 보면 지칠 수밖에 없을 텐데.... 그냥 견디는 것 밖에 방법이 없나요?
하종강 선생님:네.
인간이 파괴된다는 말씀을 하실 때, 문득 '이 분은 그런 상황에 처해서 좌절한 동지에게 운동 그만 두라고 직접 설득하신 적 있지 않을까' '고양이 손이라도 아쉬운 상황에서, 동지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운동을 관두라고 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의 각오가 필요할까' 라는 생각이 들어 숙연해졌다.
나는, 좌파임을 자임한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적어도 세상에 의해 바뀌어 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人間 간의 신뢰와 연대가 어떤 힘이나 지식, 논리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적 지향에 있어서 그러할 뿐 누군가와 개인적으로 친해지고 싶다거나... 마음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은 거의 들지 않는다.
...사실은, 그러고 싶지가 않다.
<송곳>에서, 구고신 소장이 이수인에게 "직원들이랑 호형호제 안 하죠? 밥부터 같이 먹어요, 사람들은 옳은 사람 말 안 들어, 좋은 사람 말을 듣지." 라는 대사를 할 때, 그걸 보면서 약간 슬퍼졌다. 난 얼추 중학생 때부터 막연히나마 정치 성향이 굳기 시작했고 군대를 제대할 때 쯤 확실히 '아, 난 좌파구나'라는 걸 자각했다. 그리고 대학 시절부터 사회주의에 큰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사회주의자가 되기에는... '사람'을 너무도 믿지 못한다. 그러기에는, 내가 느꼈던 절망이, 人間이 되기 위해 했던 모든 노력들이 하찮고 무가치한 게 되었다는 느낌이 너무나도 끔찍하다. 하종강 선생님의 표현을 빌자면, 나는 이미 파괴되어 있다.
난 이성적으로는 나의 그 절망이 어디까지나 나 자신의 서투름과 불운에서 비롯한 개인적인 문제일 뿐이며, 사람과 사람 간의 신뢰와 연대는 여전히 고귀한 가치라고 여긴다. 하지만 누군가를 믿고 손을 잡는 건 도저히 할 수 없다. 정 필요하다면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도 웃고, 농담하고, 친한 척하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장일 뿐 진심으로는 도저히 그렇게 할 자신이 없다.
사회주의적 가치를 추구한다고 하는 주제에 인간불신이라니ㅋ
...괜히 반한 분 생각난다. 모든 것이 잘 되어서 그 분과 자주 볼 기회를 만들면서 친분을 쌓고, 고백하고, 그래서 그 분이 내 마음을 받아 주셨다고 해도 이렇게 사람을 믿지 못하는 내가 연애를 제대로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 분이 남자 친구가 있는 게 차라리 다행일지도 모른다.
부디, 행복하시기를. 부디. 부디.
시간이 더 지나고, 그 분에 대한 내 감정이 전부 사라지고 나면 그 후로는... 누군가에게 반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