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분에 대한 내 감정도 많이 흐려졌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완전히 지워지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불현듯 또 생각났다. 그 웃음, 그 머리칼, 그 눈동자. ...그리웠다, 좀 많이.
그와 동시에,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그 분과 난 생판 남남인데'라는 자문과 함께 한참 머리 속 구석으로 치워놓고 있던 자살 충동이 다시 몰려 들었다. 전에 한 번 죽으려고 했던 이후, 그 충동은 일종의 보험이 되었다. 무엇을 하고 있어도 머리 속 한 구석에선 '죽을까' 하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고, 때때로 그것은 '이거 저거 좀 더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마지막으로 나를 써'라고 속삭이곤 했다.
이거 저거 할 것은 아직 약간 남아 있다. 그래도, 그래도. 결국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비가 내린다. 사랑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이 내 안에서 겹치는 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