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라서, 일찍 잠들었다가 지금 일어났다.
무슨 만화 주인공마냥 딱히 별 거 안 해도 저절로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고, 우정과 유대를 맺고, 서로 도와 난관을 타개하고, 그런 일은 현실에서는 판타지에 가까운 수준의 행운이다.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난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늘 마음 한 편으로는 '남들은 훨씬 더 쉽게 타인과 관계 맺고, 더 쉽게 속내를 나누는 걸로 보인다' '나도 평범하게 친구를 갖고 싶다'는 욕구를 완전히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말하자면... '타인과의 이해와 유대'라는 개념을 수치화한다고 가정한다. 물론 그런 추상적인 개념을 수치화한다는 것은 터무니 없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그렇다. 평균적인 사람은 그걸 30~40 정도로 누리고 있다. 특히 인기가 많고 주변에 사람이 떠나질 않는 사람은 80에서 90 정도 된다고 친다. 픽션에서는 그 정도가 훨씬 높아지고, 소년만화처럼 애초에 그런 주제가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장르라면 200을 넘어간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그것의 수준이 기껏해야 5, 높이 쳐도 10 정도에 불과하다. 애초에 난 밖에 나가서 놀기보다는 책을 읽는 걸 더 좋아하는 성격이었고, 그러면서 같이 본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에서 묘사되곤 하는 '화목하고 건강한 가정' '늘 함께 온갖 말썽에 말려드는, 하지만 밉지 않은 친구들' '역경에 처했을 때는 우정과 믿음으로 극복' 같은 요소들을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그걸 어느 정도 '이상적인 모습'으로 내면화했고, 그렇기 때문에 객관적으로는 충분히 나름의 고민과 신산이 있을망정 나보다는 그런 '이해와 유대'를 높은 수준으로 누리고 있다고 여겨지는 타인들을 보면서 그러한 이상적인 모습을 투영해 저 사람들은 한 70 정도 누리고 있겠거니 하고, '나도 저렇게 평범하게 친구들과 어울려 같이 놀고 싸우고 웃고 그렇게 살고싶다'고 생각했던 거다. 그 사람들이라고 해서 소년만화 주인공 같은 삶을 살 리는 만무한데도. 그리고 이제 나는 그걸 거의 포기했다. 완전히 포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런 친구를 가지고서 그런 삶을 살고 싶어했고 그걸 위해 진심으로 노력했던 한 때의 나 자신이 끔찍할 정도로 치욕스럽고 한심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때의 내가 눈 앞에 있으면 두들겨 패주고 싶었는데(그 때의 나라고 해서 가만히 맞고만 있을 것 같지도 않지만), 이제는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여전히 싫다.
전에 가까이 지냈던 옛 친구들과 연락하지 않은지 한참 지났다. 분명 그 친구들도 자신의 삶이 있고, 그 자신의 고통이 있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나 자신의 고통과 고독감, 절망감에 짓눌려서 내 이야기만 끝없이 늘어놓을지도 모를 스스로를 보고 싶지가 않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가끔, 가볍게 연락이라도 할 걸 그랬다 싶긴 한데 이젠 이미 늦은 것 같다. 때로는 그립다. 아주 많이.
내 안에서 이 毒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예감이 종종 들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