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 속에서 우산을 쓰지 않고 춤추는 사람이 있어도 좋다, 자유란 그런 것이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51857.html
"민주주의의 본령이 다수결이라는 형식적 승패가 아니라 소통을 통한 숙고와 성찰이라는 내용적 과정에 있다면, 피로감 프레임은 민주주의 자체를 질식시킨다."
한겨레는 안 챙겨 읽은지 꽤 됐지만, 그래도 가끔 가다 상당히 괜찮은 통찰이 종종 보이곤 한다.

온갖 불쾌한 무언가가 정신의 파도 밑에서 스물스물 헤엄쳐 다니고 있는 느낌이다.
인간 관계 중 하나를 단절할까? 예전 같았으면 어떻게든 좀 더 노력해야지 아예 관계를 단절한다는 건 터무니 없다고 여겼겠지만 이젠 제법 괜찮은 선택지라고 느껴진다. 이젠 관계망이라고 할 만한 것도 몇 개 안 남긴 했는데. 그렇게 해서 모든 게 끊기고 나면, 그 때 또 다시 그 절망이 밀려오면.... ...그 때는 어떻게 할지는 이미 생각해 뒀다.
그 때는, 저번보다는 좀 더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
비가 와서 그런지, 별 이유도 없이 또 옛 기억이 확 떠올랐다. 아 썅. 차라리 그 누군가가... 애초에 악의를 갖고 접근해서 날 이용하다 배신한 거였다면 지금보단 훨씬 나았을 거다. 하지만 최소한 처음에는 그 사람도 나름 진심과 선의를 갖고 나를 대했을 거라는 점, 그리고 그건 딱히 엄청난 악인이 아니라 해도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었을 일이라는 게 내가 절망한 이유다.
하던 일 제쳐두고 게임하고 만화보고 인터넷하고 해봤는데도 머리 속에 달라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남은 평생 동안 이러려니 한다. 그게 얼마 동안일지는 모르겠지만.

http://media.daum.net/issue/682/newsview?issueId=682&newsid=20140820004206108
아침부터 짜증나는 기사 하나. 아놔 새민련 이 볍진 새퀴들한테는 애초에 큰 기대를 안 걸었지만 새삼 딥빡친다. 대체 니네는 하는 게 뭐냐? 그래도 제 1야당이니 말로만 반 새누리당 외치면 최소한 지금의 위치는 유지할 수 있다 그거지?

He's the one, pure in his heart
Shining fair in the bliss never lost
Noble grace, innocent faith
Running throughout the fields immense
Shouting free in the air again
Dancing there with the wind
Sudden gust hit my face, burning rain tore the clouds
From depth of the gloaming thunder came
On a mountain I saw it
When lightning reached out for him
Enchanting my eyes... in magical rhapsody
On a mountain I watched him
As power filled up his veins
Surrounded by dusk
As the rain from the heavens falling, falling...
And lone he might be on the ways of this world
His sword, sole companion, always there
On a mountain I watched him
When proudly he swung his steel
Entracing my heart... in mystical harmony
On a mountain I saw it
When knowledge aroused his sense
Encircled by clouds
In the gales now enlightened reborn
Wish I could fly through the land beloved
Not in my dream, nor by spell then bound
Paradise's here in the fields immense
Here is my life, not above!
How could I leave this place...
Wish I could fly through the land beloved
Not in my dream, nor by spell then bound
Paradise's here in the fields immense
If I return to this world here I will live again
Strenghtened by fury, I feel no fear
Fire inside, it keeps me awake
For no blind I ever shall bend!
This is my law! This is my way!
Hey!
Insight's my power, truth is my breath
Free in my thoughts I always remain!
Choose to take a different path
Strong in the storms, pure through the waste
Stand up, Oh brothers over the world!
Enemies are there and mostly the same
We are a kind that never gives in!
We are a flame born in the wind!
Hey!
Time's of no matter, it never was!
World is the same, just different form
Freedom is something one doesn't earn
Always your own! Graced by the will!
He's the one, pure in his heart
Shining fair in the bliss never lost
Noble grace, innocent faith
Running throughout the fields immense
Shouting free in the air embraced
Dancing there with the wind

Tanaka Kouhei, "불타올라라 투지여 ~슬픈 숙명을 뛰어넘어(燃え上がれ鬪志~ 忌まわしき宿命を越えて)"
Echo from distance |2014. 8. 18. 02:29

Tanaka Kouhei, "나의 마음은 명경지수 ~이 권은 열화와 같이(我が心 明鏡止水~されどこの掌は烈火の如く)"
Echo from distance |2014. 8. 18. 02:26


지인 하나가 자주 간다고 한 게 생각나서, 현장에 도착해서 혹시 왔냐고 물어보려고 전화했었는데 안 받더라(....)
다들 지쳐 있고,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다는 게 공기에서 느껴졌다. 무슨 이야기를 해도, 무엇을 하더라도 와닿지가 않고, 그저 의무감으로 한데 모여 앉아 있을 뿐. 바로 앞의 이순신 장군 동상 뒤 편 분수대에서는 초딩들이 까르륵 거리면서 뛰놀고 있는데 그 갭이 미친 듯이 쩌는 게... 한 폭의 초현실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6년 전 이맘 때 바로 여기서 촛불집회 한참 할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스크럼 짠 전경들과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시위대가 대치하고 있는 도로에서 불과 십 여 미터 떨어진 카페 안에 앉아,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재미있는 구경을 하듯 그를 바라보던 그 시선들.
저녁 무렵이 되자 대책위 소속이라는 분이 앞으로 나와서는 내일 교황께서 집전하는 시복 미사 때문에 유민이 아버님이 있는 중앙 천막 2개만 남겨두고 나머지 천막들은 일단 걷었다가 내일 미사가 끝나고 3시 쯤 다시 천막을 치기로 유가족들과 이야기가 되었다고 하자 앉아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웅성대는 분위기가 감돌더니 아줌마 한 분이 격앙된 어조로 반발했다. 이 틈에 천막들 전부 치워버리는 거 아니냐, 유가족들과 무슨 관계냐, 하는 거 보니 영 미덥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대책위 측도 유가족들의 뜻이다, 내일 3시에 다시 천막 치기로 서울시와 합의가 되었으니 걱정 안해도 된다고 반박하다가 점차 분위기가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듣다가 짜증이 나서(....) 쓰레기 치우고 천막 철거하는 거 좀 돕다가 쉬다가 하다가 다시 돌아왔다. 아까 그 아줌마가, 내 자식들이 그렇게 될 지도 모르는 판인데 경찰들이 그렇게 무섭냐, 당장 청와대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걸 시큰둥하게 듣고 있다가 옆에 있던 아저씨가 하는 말 듣고 움찔했다.
"유가족들 뜻이라고? 나는 내 자식들이 그렇게 될까봐 불안해서 온 거야! 애초에 도와달라고 하질 말든가!"
6년 전 이 무렵 바로 여기서 촛불집회가 벌어질 때도, 청와대로 가 MB에게 우리들의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있었다. 내가 종각에서 광화문 광장까지 가면서 본 의경들만 몇 개 소대 규모는 된다. 바로 옆 청계 광장 쪽에 있을 인원들까지 합하면 수 백 명은 족히 될 것이다. 그들이 그걸 그냥 둘 리가 만무하다. 반드시 충돌이 일어날테고, 다음 날 조중동이나 종편에서 추모가 폭력시위로 변질되었다고 난리칠 게 너무도 뻔하다. 일베 벌레놈들이 어떤 드립을 쏟아 낼지는 생각하기도 싫고. 그리고, 유가족들과 대책위, 그들을 지지하는 시민들과 이제 세월호를 '비극적인, 그러나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일 뿐이며 나와는 사실 별 상관 없는 흔한 사고 중 하나'로 기억하고 싶어하는 사람들 간의 괴리는 더욱 더 커질 것이다.
만에 하나 청와대 앞 마당까지 제지받지 않고 도착해서는 레이디 가카를 불러냈다고 치자. 난 박근혜가 유족들의 슬픔과 원한, 시위 참가자들의 다음에는 내 자식들이 그렇게 희생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정말로 모르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박근혜는 일부러 그걸 무시할 뿐이다. 러시아 3월 혁명 초반 '자비로운 차르에게 온정을 구하기 위해' 상트 페테르부르그로 향했던 농민들을 차르가 총칼로 진압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현실에서 무슨 이말년 만화도 아니고 청와대로 간다(그리고 의경들과 좀 싸우다가 진압당한다)는 선택은 세월호 특별법 무손실 버젼을 통과시켜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게끔 한다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는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겁이 나느냐 나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가능하냐 불가능하냐의 문제일 뿐이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는 걸 알면서도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때는 분명 존재한다. 나는 그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청와대로 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저씨의 말을 듣고 내가 움찔할 수밖에 없었던 건, 세월호 참사와 특별법 제정을 위한 노력이 이 정도 수준의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그것이 옳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다음에는 내 자식들이 저렇게 당할 수 있다는 사람들의 '불안감'을 자극했기 때문이라고 나 자신부터가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에 지방선거 관련해서 이 블로그에 글을 썼을 때도 그러한 논지였고. 난 청와대로 가야 한다는 주장은 귓등으로 튕겨내 버리고서 당장 그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하지만 같은 절박함과 위기의식을 통해서- 하지만 이미 육친을 잃고서 같은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과 아직 잃지는 않았지만 앞날을 대비해두고 싶어 투쟁하는 사람 간의 온도 차는.... 고민된다.
요즘 들어 자주 꾸네. ....현실에선 절대 그렇게 될 리 없는데 말이지.
꿈에서 누군가를 봤다. 지금까지는 깨닫지 못했는데... 잘 생각해 보니 내가 진지하게 반한 상대는 대부분 외모에 있어 몇 몇 공통점들이 있더라. 내 외모 취향은 참으로 일관성 있구나 하는 생각이 꿈 속에서도 잠깐 들었다ㅋ
하찮다.

몇 년 간 같이 RPG를 해 온 지인이 집으로 와 하루를 묵고 갈 예정이다.
RPG는 대단히 사회적인 취미다. 오랫동안 같이 플레이를 하다 보면 굳이 프라이버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해도 어느 정도는 서로의 성격과 취향, 그리고 됨됨이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다 보면 딱히 개인적으로 절친한 사이가 아니어도 나름 정이 붙기가 쉽고.
그 지인은... 지금까지 접해 온 바로는 나쁜 사람은 아니다. RPG에 있어서도 그 사람은 노련하고 실력 있는, 가능하면 앞으로도 같이 플레이를 계속하면서 배우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나는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사람'과 인간적으로 가까워지고 싶지가 않다. 굳이 그 지인이 아니라, 다른 누구더라도. 평소에는 누군가를 만난다 해도 일 관련이거나 뭔가 명확한 공통의 목적 의식을 갖고 있는... 어느 정도는 공적인 범주에 속하는 만남들이 대부분이니 문제될 게 없는데, 그 지인을 대할 때면 뭔가 거리 감각이 흐트러지는 느낌이 든다.
난 그 날 이후, 내가 더 이상 人間으로 살지 못하리라는 것을 느꼈다.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다시 한 번 더 노력했었고, 결국 또 실패했다. 그 후로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난 아직 여전히 마음 속 한 구석으로는 人間이 되고 싶다는 욕구가 남아 있다는 걸 자각하면서도 그걸 거의 포기해 가고 있다. 이젠, 완전히 포기하고 더 이상 신경쓰지 않을 때도 됐는데.
그 날 이후로 지난 몇 년에 걸쳐 줄곧 생각해 왔다. 학교 동기들을 비롯해 몇 명 있는 친구들도, 어쩌면 단지 내 쪽에서만 '친구'라고 여겼던 게 아닐까. 걔들은 내 둔감함을, 눈치 없음을, 신경질적인 면모들을- 철저히 공적인 관계에서는 나름 잘 숨길 수 있지만 그 경계가 조금만 희미해지면 튀어나오는, 내 엉망진창인 사회성을 그저 참아주고 있던 게 아닐까. 앞에서만 친한 척하고 뒤에서는 날 비웃거나 짜증내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확신할 수 있다. 하지만 단지 거기까지였던 게 아닐까. 만일 아니라 해도 나 자신의 문제에 짓눌린 나머지 상대의 입장과 감정을 충분히 신경쓰지 못하고, 그러다가 결국 문제를 일으켜서는 서로 감정이 나빠진 채 멀어지지 않을까. 만일 그렇다면 차라리 내 쪽에서 거리를 둬야 하지 않을까.
난 그들을.... 아직도 내 친구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이유들 때문에 연락하지 않은 지 벌써 몇 년이나 지났다. 아마도, 이대로 멀어질 것이다.
진심과 선의로 사람을 대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나와는 전혀 상관 없는 일이다. 그렇게 새로 사람을 대할 때의 거리 감각을 맞춰놨는데, 그 지인을 대할 때면 그 거리 감각의 영점이 흔들린다는 느낌이 든다.
.....어쩔까, 이렇다는 이야기를 그 지인한테 확실히 해 버리고 영점을 새로 맞추는 쪽이 더 나을까 아니면 무난하게 적당히 농담과 드립과 RPG와 책과 만화 이야기나 하면서 하룻밤 보낼까. 이성적으로는 내가 이런 걸 두고 고민하건 말건 그 사람은 알 바 아닐테니 후자 쪽 선택지가 훨씬 나을 것 같긴 한데... 그러기엔 그 거리감각이 엉망이 되는 감각이 너무 혼란스럽다.
+
이야기할 타이밍을 못 잡았다. 트라우마가 무슨 자랑 거리도 아니고, 차라리 잘 된 일이다 싶기도 하다.

세월호 특별법은, 유족들에 대한 보상성 이벤트가 아니다. 이러한 참극을 막기 위한 첫 걸음이다.
+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112249
세월호 특별법 전문
즐거운 꿈을 꿨다. 아주 즐거웠다.
그리고 난 내가 살고 있는 내 현실에서는, 그러한 꿈이 결코 이뤄질 수 없다는 걸 안다. 꿈이 즐겁고 행복할수록, 오히려 악몽처럼 느껴진다.
그런 악몽을 꿨다.

1)
새누리당이 선거에서 승리하는 이유는, 어찌 보자면 단순하다. 새누리당은 국민들에게 '무엇이 옳은 것이고 무엇이 그른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가능한 하지 않는다. 매번 선거철이 올 때마다 '애국'이니 '보수'니 하는 이념적 가치의 당위와 중요성을 말하는 것은 항상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과 친정부 성향 인터넷 사이트였고, 당 차원의 선거 공약에 있어서는 '무엇이 유리한가' '무엇이 편리한가'에 더욱 방점을 둔다.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그 때도 '무엇이 옳은 것인가'라는 근본적 가치에 대한 이야기는 항상 최소한으로만 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대개의 사람들은, 추상적이고 거시적인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의 일상과는 별로 상관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은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그러한 기준을 통해 상대방이 자신에게 옳다느니 잘못됐다느니 하는 훈계를 하려든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그러한 무관심은 상대방에 대한 강렬한 적개심으로 변한다. "니가 뭔데 선생질이냐?" "아오 재수 없는 선비 새끼들ㅋㅋㅋㅋㅋㅋ" 이라는 식으로. 그리고 그 적개심은 상대방만이 아니라, 상대방이 말하는 그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전치된다(이것은 일베에서 민주주의를 경멸하는 이유 중 하나기도 하다.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지만).
다시 강조한다. 새누리당은 유권자들에게 무엇이 옳다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대신 "요즘 먹고 살기 힘들지?" "아파트 값은 떨어지고 자식들 등록금은 계속 오르니 고민 많지?" 라는 식으로 접근한다. 그들이 일상 속에서 매일 같이 느끼고 있는 민감한 문제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어필하고, 한 발 더 나아가 그들의 욕망과("세월호 유족들이 특별법 제정하라면서 물고 늘어지는 거 사실 좀 불공평하다는 생각 안 듦?") 두려움을("전교조 좌파 교육 OUT! 공교육은 중립적이어야 되거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전교조 선생들은 애들을 빨갱이로 만들거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애들이 세뇌당할 지도 모르는데 불안하지 않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극한다. 여기까지 진행했다면 이미 절반은 성공한 거다. 그리고 새누리당이 그러한 욕망과 공포를 해소해 줄 수 있음을 은근히 강조한다.
이상의 과정을 정리하면 이하와 같다.
1. 유권자에게 이해와 공감을 표한다. 그게 거짓이라 해도.
2. 1.을 통해 경계심을 허물어 뜨린 뒤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 갖고 있는 이기심과 탐욕, 불안을 조장하고, 새누리당에 의존하게 만든다.
->상대의 반 새누리 정서가 강할 경우, 경쟁자에 대한 적극적 마타도어를 통해 진흙탕 싸움으로 끌어 들임으로써 차라리 다 똑같은 놈들이라고 여기게 만들어 투표를 포기하도록 유도한다. 이미 전략적 고지를 차지하고 있는 상태라면, 자기 표를 더 늘리지 못한다 해도 그게 고스란히 상대의 표가 되는 것만 막아내면 최소한 본전은 건진다. 투표율은 더욱 떨어지고 민주주의의 가치는 추락하겠지만, 어쨌든 선거에서 이길 수 있으니 상관 없다.
3. ?????
4. PROFIT!
앞서 강조했다시피, 새누리당은 무엇이 옳은 것인지, 왜 자신들을 뽑아야 하는지에 대해 도덕이나 가치의 차원에서 유권자들을 설득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자신들은 유권자들이 일상 속에서 체감하는 문제의식에 공감하며 그를 해결해 줄 수 있음을 어필한다(그 문제의식이 '옳은지'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 유권자의 거부감을 자극하기 쉬우므로).
이 지점에서 주의해야 할 사항은, 새누리당이 말하는 '실용'은, '이익'은, '편리'는, 궁극적으로 국민들 전체의 공익이 아니라 그들 내부에 있는 폐쇄적인 이너 서클의 반영구적인 권력을 담보하는 토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그 사실을 은폐하고 그러한 실용과 이익과 편리를 마치 유권자 개개인의 실용과 이익과 편리인 것처럼 오도하는 것이 새누리당 선거 전략의 핵심이다. 유권자들이 사회 구성원 모두의 공익이 아니라 나와 내 가족, 내 지역만의 실용과 이익과 편리만을 원할수록 새누리당의 권력은 더욱 공고해진다. 그리고 그 권력은 그들의 '나와 내 가족, 내 지역의 실용과 이익과 편리'를 위해서조차 충분히 쓰이지 않는다. 잡은 고기에게는 먹이를 주지 않는 법이므로.
내가 새누리당을 증오하는 이유가 이거다. 그들은, 사람을 추하고 야비하게 만든다.
2)
얼마 전부터 새누리당 놈들보다 새민련이 이 나라의 민주주의에 더욱 큰 해악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재보선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게 확신.... ....으로까지 변하지는 않았지만 새민련 새퀴들에 대한 거부감은 확실히 더 커졌다.
새민련은 '새누리당의 전횡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대형 세력이며 제1야당'이라는 위치에 있다. 하지만 범야권의 수장이라는 것도, 새누리당이 누리고 있는 만큼의 강고한 권력은 아닐망정 무시할 수 없는 기득권이다.
현재 한국의 정치 지형을 보수냐 진보냐라는 관점으로 읽는 것은 오독의 여지가 너무 많다. 한국의 정당 중 정말로 '진보' 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정의당과 노동당 둘 정도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유의미한 정치 세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친 새누리냐 반 새누리냐 라는 관점으로 보는 게 더 현실적이다. 그리고 반 새누리의 맹주이며 범야권 수장이라는 위치는 그를 통해 '무엇을 할 것이냐'가 아니라 용 꼬리보다는 뱀 머리가 되겠다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충분히 매력적인 자리다.
그리고 나는 새민련이 민주당 시절부터 한 줌도 안 되는 진보 진영에게 어떨 때는 '새누리당이라는 공동의 적을 막기 위해 협력하자'고 하고 어떨 때는 '새누리당을 막고 싶거든 우리한테 힘을 실어주는 게 더 유리한 거 알지? 이번 지역구 선거에선 사퇴하고 우리 지원해 주셈' 이 지랄을 떠는 걸 숱하게 봐 왔다. 난 새민련이 대권으로 대표되는 이 나라의 최고 권력은 거의 포기하고 그 대신 범야권 수장이라는 현재의 위치를 독점한 채 지역구 의원이나 선출직 관료 자리 같은 소소한 실리를 꾸준히 확보하는- 새누리당과의 일종의 적대적 공존 관계를 구축해가고 있다는 걸 거의 확신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새민련의 자세는 때때로 최소한 명확한 '악'인 새누리당보다 훨씬 비열해 보인다.

http://newstapa.com/news/201415193
난 갑작스런 해방과 전쟁,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모든 게 너무 빨리, 많이 변해 버렸고 그 와중에서 이 나라의 국민들은 '무엇이 옳은 것인가'를 성찰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라고 본다.
http://garleng.tistory.com/766
몇 년 전에 학교 다니면서 레포트로 썼던 글. 내게 있어선 이 다큐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유한계급론'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로 보인다.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보수라고 해서 나쁘다는 법은 없고 진보라고 해서 옳다는 법도 없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저러한 대규모의 급변 속에서 진보와 보수의 지형 자체가 뒤틀려 버렸고 박정희와 전두환은 지역 구도와 빨간 칠로 그걸 조장했다. 현대 한국에서는 그에서 발생한 인식 왜곡을 자각하는 것조차도 어렵다.
이 나라의 근간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국민들의 '잘 살아보세'라는, 그 자체로는 딱히 나쁜 것도 아닌 욕망과 '빨갱이'에 대한 완전히 불합리한 것만은 아닌 공포(6.25를 거쳤으니 오히려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다)라는 두 개의 심리적 축을 이용해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쌓아 올린 구체제다. 그 어떠한 악도 그를 구성하는 개별적인 요소 하나씩을 살펴보면 나름 이해될 만한 이유는 있다. 하다 못해 나치 조차도 그에 힘을 몰아 준 독일 국민들이 느끼던 '1차 대전을 일으킨 전범국가라는 낙인의 무게'는 진실했고, '독일 경제를 지배하던 유태계 자본의 전횡'도 그 자체는 사실이었고, '선조들이 다스리던 정당한 옛 국토를 회복하겠다'는 갈망도 전혀 이해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치가 인류 역사 상 길이 남을 막장 집단이며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절대악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니다(같은 논리로, 지금 팔레스타인을 짓밟고 있는 이스라엘의 만행 역시 그들이 한 때 감내해야 했던 탄압과 고문과 유린과 죽음들로 정당화할 수 있는 게 아니다).

http://ize.co.kr/articleView.html?no=2014072720407210351
날도 덥고 잠들기는 글렀고 기분은 미묘하고.... 선링크 후정독.
+
수인이형 이런 거 괴로워하는구나, 수인이형 내가 좀 해칠께. 저 중 몇 가지는 당하면 나도 괴로울 거 같긴 한데 형한테 해보고 싶어 허억허억. 역지사지? 그게 뭐?
꿈 속에서 총을 맞고 죽었었는데, 죽어 있는 그 상태에서 '아직 덜 쓴 소설 많은데' '내 사랑도 충분히 다하지 못했고' '아쉬워라' 같은 생각을 하다가 병원에서 깨어났다. 옆에 있던 간호사가 "선생님, 작년에 들어온 환자가 깨어났어요!" 하고 법석을 떠는 걸 멍하니 듣고 있다가 '아, 이거 꿈이구나' 생각하는 순간 깼다.
다 됐고,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요즘 자주 했다. 진짜로 죽어도 아쉽다고 생각하게 될지 약간 궁금하다.

1)헬레이저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 클라이브 바커의 원작 <헬바운드 하트>에 기초한 첫번째 작품. 원작 소설에서는 래리를 짝사랑하는 여자였던 커스티가 영화에서는 래리의 친 딸로 바뀌었다(그와 더불어 원작에서는 똑똑하고 사려 깊지만 썩 미인은 아니었던 커스티가 미소녀로 변했고, 원작에서는 요염한 팜므 파탈 그 자체로 묘사되던 줄리아는 무서운 인상의 아줌마로 변했다. 흠좀무). 당시에는 래리가 흘린 피를 통해, 핀헤드를 비롯한 수도사들이 있는 지옥 같은 이세계에서 탈출해 서서히 인간으로서의 '몸'을 복구하는 프랭크의 모습을 역대급 아날로그 특수 효과로 묘사해 보는 이에게 엄청난 충공깽을 선사했다.
개인적으로 헬레이저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은 1. 완전한 고통은 쾌락과 같음을 역설하는, 기존의 선악 관념에서 일탈해 있는 핀헤드의 철학적인 캐릭터성 2.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 자신의 욕망이며 핀헤드를 비롯한 수도사들은 그러한 욕망에 탐닉하는 인간에게 '그가 원한 것'을 줌으로써 역설적으로 일종의 심판을 내리는 존재라는 주제의식 3. 르마샹의 상자가 열리고 수도사들이 이 세계로 건너올 때를 비롯한,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너지는 압도적인 연출 이 세 가지라고 보는데, 이 중 1과 2를 매우 탁월하게 살려냈다.
2)헬레이저2:헬바운드
시리즈 중 가장 인기가 좋은 2편. 시리즈의 저 3가지 매력 요소 중 3.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이번에는 1편의 메인 악역이었던 프랭크 코튼이 퇴장하고(정확히는 후반부에 얼굴만 잠깐 비치고) 프랭크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지상으로 돌아 온 줄리아와, 그녀가 유혹한 채너드 박사가 메인 악역이 된다. 이 작품의 가장 큰 가치는 역시 병실에서 커스티가 르마샹의 상자를 열고 수도사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시퀀스와
줄리아의 인도를 통해 수도사들이 찾아오는 이세계로 온 채너드 박사가 끝없이 펼쳐진 미로의 압도적인 황폐함에 위축되고, 레비아탄의 빛 아래에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는 시퀀스
이 둘이다. 이후 핀헤드의 과거가 드러나는 장면과 더불어서, 수도사들이 진정으로 어떠한 존재인지에 대해 작품 내적인 설명을 덧붙임으로써 누군가에게는 천사이며 누군가에게는 악마라는 그 유니크한 캐릭터성을 다소 퇴색시켜 버렸다는 점에서는 약간 불만스럽지만 그 충격적인 비쥬얼만으로도 충분히 용서가 된다. 핀헤드라는 존재의 상징성이 퇴색되는 시발점이라는 점에 있어서 비판받을 여지도 있지만, 그래도 이 2편까지는 괜찮았다. 뭣보다 수도사들의 등장 장면에서, TV가 지직거리고 전등이 깨지고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려오며 현실에 균열이 일어나는 그 연출이 너무 쩔어놔서 도저히 못 까겠음. 아, 그리고 커스티가 티파니와 함께 떠나는 마지막 장면은 <델마와 루이스> 비슷하게 여성 간의 유대라는 면에서 페미니즘적 주제의식을 읽어낼 여지도 있다.
3)헬레이저3:헬 온 어스
....오우 쒯 더 퍽....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이시여. 시리즈를 좆망의 길로 이끌기 시작한 망작. 2편에서 조짐을 보인, 핀헤드의 '선과 악이 아니라 쾌락과 고통이란 관점을 통해 인간을 보는, 그 잔혹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도덕관을 들이댈 수 없는 초월적인 심판자'로서의 상징성이 완전히 무너졌다. 1편과 2편은 영화의 근본적인 주제 자체는 상당히 건전한 내용이었고, 그 메시지의 건전함과 사슬과 갈고리와 피와 살점이 난무하는 고어함이 공존하는 가운데 핀헤드라는 철학적인 심판자가 가교로서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3편에서 핀헤드는 그 유니크한 캐릭터 성이 완전히 증발하고, 기독교적인 개념의 '신에게 대항하는 존재로서의 악마'가 되어 버렸다. 성당에서 자기 머리에 박혀 있던 못을 뽑아 손에 박고 십자가 위의 예수 그리스도처럼 양 팔을 벌리며 "내가 길이다!"라고 선언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만 보자면 꽤나 포스있지만... 이 영화는 <엑소시스트>가 아니다. 게다가 보일러룸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부하로 만들고, 그들이 시민들을 학살하는 걸 보면서 큰 소리로 웃어 젖히는 모습은 보는 사람의 정신을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다.
핀헤드 횽아 횽 그렇게 경박하게 처웃는 캐릭터 아니었잖아.... 2편에서 캐릭터성이 좀 흔들리긴 했지만 그래도 횽은 어디까지나 고통의 본질과 인간성의 관계에 대해 성찰하고 온갖 고문을 통해 나름의 진리를 찾는 '수도사'였지 의미 없는 대량학살 자체에 탐닉하는 '살인마'는 아니었잖아....? 횽 왜 구랭 하지마 해지마 그르디망...........................'_`..............
4)헬레이저4:블러드라인
2편까지의 철학성이나 주제 같은 건 머리에서 지우고, 3편에서 새로이 제시된 핀헤드의 캐릭터성을 어떻게든 수용하고 이 시리즈 역시 걍 B급 공포영화로 받아 들이는데 성공한다면(....그게 매우 어렵긴 하지만) 어떻게든 봐줄 만하다. 영화 자체의 수준만 보자면 완전 똥은 아니고 똥맛 카레 정도는 된다(3편이 워낙 개판이었던 터라 상대적으로 더 나아 보이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 영화 배경이 갑자기 현대에서 2127년으로 타임워프하고, 공간적 배경도 지구 궤도 상에 떠 있는 미노스 우주 정거장으로 바뀐다. 3편에서 핀헤드의 인간 시절이 묘사된 것을 뒤이어 이 작품에서는 르마샹의 상자가 맨 처음 어떻게 만들어졌는지+3편의 마지막 장면 이후 어쩌다 배경이 미래로 바뀌었는지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서 처음 상자를 만든 르마샹 가문(프랑스 출신이었지만 미국으로 이민온 뒤 영어 식인 머천트로 성을 바꾼다)의 마지막 후계자와 핀헤드 간의 최후의 대결을 다루고 있다. 새로이 등장한 부하 수도사들의 면면이 볼만하다(특히 샴쌍둥이 수도사가 두 명으로 분리한 뒤 희생자를 둘러싸고 다시 합체해서 죽여 버리는 장면은 제법 신박했다). 시리즈의 타임라인 상 가장 마지막 작품이며 이 작품에서 핀헤드는 르마샹의 상자('비탄의 형상'이라고 불린다)와는 대극을 이루는 물건이며 르마샹 가문 마지막 후계자가 만들어낸 '엘리시움의 형상'에 갇혀 드디어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스토리 상 시리즈의 최종작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그래봤자 똥맛 카레지만! 나으 헬레이저는 이 따위 단선적인 선악구도로 만사를 퉁치는 작품이 아니라능!
5)헬레이저5:인페르노
....구라 안 까고 제법 괜찮다. 레알. 참트루. 다시 현대로 배경이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우연히 르마샹의 상자와 엮이게 된 형사가 주인공이다. 지금까지의 주인공들이 비교적 순수하고 건전한 인물들이고, 핀헤드를 비롯한 수도사들과 만난 뒤 방탕하고 타락한 인간들이 끔살당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면서 ㅎㄷㄷ하다가 핀헤드와 계약을 맺건 아니면 틈을 노려 상자 모서리로 통수를 까서 돌려 보내건(....) 어떻게든 끝을 보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유형이었던 것과는 달리, 이번 주인공은 지금까지 핀헤드에게 당해 온 그 '방탕하고 타락한 인간'에 속한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사라지고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는(....) 보는 사람마저 멘붕할 거 같은 괴괴한 연출이 이번 작품의 포인트. 헬레이저 시리즈의 매력 중 2.가 잘 드러난 작품이라고 본다. 물론 1.과 3.은 시망.
마지막 장면은 개인적으로 약간 주인공에게 이입이 되서 가슴 아팠다.
4년 전 이 맘 때, 그 날의 절망을 겪은 후... 난 내가 한 때 가장 간절히 원했던 것을 거의 포기했다. 개강하고 학교로 돌아간 뒤 난 학회장인 친구를 도울 겸, 사람 사이에 섞여 함께 살고자 하는 욕구- 人間으로 살고 싶다는 욕구를 채우기 위해 다들 기피하던 3학년 과대 일을 맡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의 난 그게 더 이상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난 필사적으로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했고 이제 더 이상은 노력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한 학기 동안, 나 자신의 소통 부족과 학과 애들의 비협조 끝에 결국 그 친구와도 대판 싸우고서는 멘탈이 박살나 휴학했었다.
군대를 갔다 와서 막 복학했을 무렵만 해도, 나는 여자 후배들한테 술 접대 강요하고 모텔로 끌어 들이려 하던 과 남자 선배들을 더 없이 혐오했고, 동기들과 함께 그런 폐단을 근절하고자 했고, 어느 정도 성과도 거두었었다. 그 때의 나는 人間이 되고 싶었고, 될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친하던 몇 안 되는 선배들과 동기들이 하나 둘 졸업하고 홀로 남으면서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결국 그 날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날을 겪은 후, 일종의 마지막 발악이었던 과대 일마저 실패한 후, 난 정말로 상대를 침대로 끌어 들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의미 없이 날리는 개드립이라는 차이만 있을 뿐 내가 한 때 그토록 혐오했던 선배들과 똑 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그 때부터 난, 더 이상 人間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고 싶지 않다는 걸 인정하기 시작했다. '관계'는 미끄러운 모래알처럼 내 손가락 사이를 빠져 나갔고, 전처럼 굳이 힘들여서 그걸 움켜쥐려고 하지도 않았다. 여자라면 아무한테나 '어익후 미인이시네' '남자 친구 없으면 난 어떠함?' 같은 마음에도 없는 개드립을 거리낌 없이 던졌고, 상대방이 앞에서만 웃어 넘길 뿐 뒤에서는 날 꺼림칙해하는 걸 느끼면서도 신경쓰지 않았다. 애초에 진심으로 대하지 않으면 상처 받지도 않는다고 여겼기에. 진심과 선의는 그 자체로 중요한 거긴 하지만, 별로 쓸모는 없다고 끝없이 스스로에게 되뇌곤 했다.
졸업한지 몇 년이 지났고, 옛 선배들이나 친구들과는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이 진심과 선의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 같은 건 현실에서도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한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기엔 난 너무 뒤틀렸다. 내가 사회적 정의나 민주주의의 대의 같은데 아직도 신경쓰고 있는 건.... 아마도 그 날의 절망을 겪고서도 그 좌절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아직 희망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헛된 기대로, 갈등과 대립의 형태로라도 좋으니 人間으로 살고 싶다는 욕구로 과대 일을 자청한 것과 비슷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 자신은 절망과 인간 불신에 가득 차 있다 해도, 내 이상은 그렇게 하찮은 게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은 걸지도 모르고. 영화 <아마데우스>에 나온 모차르트가, "나란 인간은 쓰레기지만, 내 음악은 위대해!"라고 절규하던 것처럼.
항상 마음 속 어디선가, 가끔은 꽤 구체적으로 끝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곤 한다.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만일 정말로 내세라는 게 있다면 그 때는 빗방울이나 바람, 모래알 같은 걸로 태어났으면 좋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