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헬레이저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 클라이브 바커의 원작 <헬바운드 하트>에 기초한 첫번째 작품. 원작 소설에서는 래리를 짝사랑하는 여자였던 커스티가 영화에서는 래리의 친 딸로 바뀌었다(그와 더불어 원작에서는 똑똑하고 사려 깊지만 썩 미인은 아니었던 커스티가 미소녀로 변했고, 원작에서는 요염한 팜므 파탈 그 자체로 묘사되던 줄리아는 무서운 인상의 아줌마로 변했다. 흠좀무). 당시에는 래리가 흘린 피를 통해, 핀헤드를 비롯한 수도사들이 있는 지옥 같은 이세계에서 탈출해 서서히 인간으로서의 '몸'을 복구하는 프랭크의 모습을 역대급 아날로그 특수 효과로 묘사해 보는 이에게 엄청난 충공깽을 선사했다.
개인적으로 헬레이저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은 1. 완전한 고통은 쾌락과 같음을 역설하는, 기존의 선악 관념에서 일탈해 있는 핀헤드의 철학적인 캐릭터성 2. 인간을 파멸로 이끄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 자신의 욕망이며 핀헤드를 비롯한 수도사들은 그러한 욕망에 탐닉하는 인간에게 '그가 원한 것'을 줌으로써 역설적으로 일종의 심판을 내리는 존재라는 주제의식 3. 르마샹의 상자가 열리고 수도사들이 이 세계로 건너올 때를 비롯한,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너지는 압도적인 연출 이 세 가지라고 보는데, 이 중 1과 2를 매우 탁월하게 살려냈다.
2)헬레이저2:헬바운드
시리즈 중 가장 인기가 좋은 2편. 시리즈의 저 3가지 매력 요소 중 3.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이번에는 1편의 메인 악역이었던 프랭크 코튼이 퇴장하고(정확히는 후반부에 얼굴만 잠깐 비치고) 프랭크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지상으로 돌아 온 줄리아와, 그녀가 유혹한 채너드 박사가 메인 악역이 된다. 이 작품의 가장 큰 가치는 역시 병실에서 커스티가 르마샹의 상자를 열고 수도사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시퀀스와
줄리아의 인도를 통해 수도사들이 찾아오는 이세계로 온 채너드 박사가 끝없이 펼쳐진 미로의 압도적인 황폐함에 위축되고, 레비아탄의 빛 아래에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는 시퀀스
이 둘이다. 이후 핀헤드의 과거가 드러나는 장면과 더불어서, 수도사들이 진정으로 어떠한 존재인지에 대해 작품 내적인 설명을 덧붙임으로써 누군가에게는 천사이며 누군가에게는 악마라는 그 유니크한 캐릭터성을 다소 퇴색시켜 버렸다는 점에서는 약간 불만스럽지만 그 충격적인 비쥬얼만으로도 충분히 용서가 된다. 핀헤드라는 존재의 상징성이 퇴색되는 시발점이라는 점에 있어서 비판받을 여지도 있지만, 그래도 이 2편까지는 괜찮았다. 뭣보다 수도사들의 등장 장면에서, TV가 지직거리고 전등이 깨지고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려오며 현실에 균열이 일어나는 그 연출이 너무 쩔어놔서 도저히 못 까겠음. 아, 그리고 커스티가 티파니와 함께 떠나는 마지막 장면은 <델마와 루이스> 비슷하게 여성 간의 유대라는 면에서 페미니즘적 주제의식을 읽어낼 여지도 있다.
3)헬레이저3:헬 온 어스
....오우 쒯 더 퍽....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이시여. 시리즈를 좆망의 길로 이끌기 시작한 망작. 2편에서 조짐을 보인, 핀헤드의 '선과 악이 아니라 쾌락과 고통이란 관점을 통해 인간을 보는, 그 잔혹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도덕관을 들이댈 수 없는 초월적인 심판자'로서의 상징성이 완전히 무너졌다. 1편과 2편은 영화의 근본적인 주제 자체는 상당히 건전한 내용이었고, 그 메시지의 건전함과 사슬과 갈고리와 피와 살점이 난무하는 고어함이 공존하는 가운데 핀헤드라는 철학적인 심판자가 가교로서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3편에서 핀헤드는 그 유니크한 캐릭터 성이 완전히 증발하고, 기독교적인 개념의 '신에게 대항하는 존재로서의 악마'가 되어 버렸다. 성당에서 자기 머리에 박혀 있던 못을 뽑아 손에 박고 십자가 위의 예수 그리스도처럼 양 팔을 벌리며 "내가 길이다!"라고 선언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만 보자면 꽤나 포스있지만... 이 영화는 <엑소시스트>가 아니다. 게다가 보일러룸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부하로 만들고, 그들이 시민들을 학살하는 걸 보면서 큰 소리로 웃어 젖히는 모습은 보는 사람의 정신을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다.
핀헤드 횽아 횽 그렇게 경박하게 처웃는 캐릭터 아니었잖아.... 2편에서 캐릭터성이 좀 흔들리긴 했지만 그래도 횽은 어디까지나 고통의 본질과 인간성의 관계에 대해 성찰하고 온갖 고문을 통해 나름의 진리를 찾는 '수도사'였지 의미 없는 대량학살 자체에 탐닉하는 '살인마'는 아니었잖아....? 횽 왜 구랭 하지마 해지마 그르디망...........................'_`..............
4)헬레이저4:블러드라인
2편까지의 철학성이나 주제 같은 건 머리에서 지우고, 3편에서 새로이 제시된 핀헤드의 캐릭터성을 어떻게든 수용하고 이 시리즈 역시 걍 B급 공포영화로 받아 들이는데 성공한다면(....그게 매우 어렵긴 하지만) 어떻게든 봐줄 만하다. 영화 자체의 수준만 보자면 완전 똥은 아니고 똥맛 카레 정도는 된다(3편이 워낙 개판이었던 터라 상대적으로 더 나아 보이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 영화 배경이 갑자기 현대에서 2127년으로 타임워프하고, 공간적 배경도 지구 궤도 상에 떠 있는 미노스 우주 정거장으로 바뀐다. 3편에서 핀헤드의 인간 시절이 묘사된 것을 뒤이어 이 작품에서는 르마샹의 상자가 맨 처음 어떻게 만들어졌는지+3편의 마지막 장면 이후 어쩌다 배경이 미래로 바뀌었는지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서 처음 상자를 만든 르마샹 가문(프랑스 출신이었지만 미국으로 이민온 뒤 영어 식인 머천트로 성을 바꾼다)의 마지막 후계자와 핀헤드 간의 최후의 대결을 다루고 있다. 새로이 등장한 부하 수도사들의 면면이 볼만하다(특히 샴쌍둥이 수도사가 두 명으로 분리한 뒤 희생자를 둘러싸고 다시 합체해서 죽여 버리는 장면은 제법 신박했다). 시리즈의 타임라인 상 가장 마지막 작품이며 이 작품에서 핀헤드는 르마샹의 상자('비탄의 형상'이라고 불린다)와는 대극을 이루는 물건이며 르마샹 가문 마지막 후계자가 만들어낸 '엘리시움의 형상'에 갇혀 드디어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스토리 상 시리즈의 최종작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그래봤자 똥맛 카레지만! 나으 헬레이저는 이 따위 단선적인 선악구도로 만사를 퉁치는 작품이 아니라능!
5)헬레이저5:인페르노
....구라 안 까고 제법 괜찮다. 레알. 참트루. 다시 현대로 배경이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우연히 르마샹의 상자와 엮이게 된 형사가 주인공이다. 지금까지의 주인공들이 비교적 순수하고 건전한 인물들이고, 핀헤드를 비롯한 수도사들과 만난 뒤 방탕하고 타락한 인간들이 끔살당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면서 ㅎㄷㄷ하다가 핀헤드와 계약을 맺건 아니면 틈을 노려 상자 모서리로 통수를 까서 돌려 보내건(....) 어떻게든 끝을 보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유형이었던 것과는 달리, 이번 주인공은 지금까지 핀헤드에게 당해 온 그 '방탕하고 타락한 인간'에 속한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사라지고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는(....) 보는 사람마저 멘붕할 거 같은 괴괴한 연출이 이번 작품의 포인트. 헬레이저 시리즈의 매력 중 2.가 잘 드러난 작품이라고 본다. 물론 1.과 3.은 시망.
마지막 장면은 개인적으로 약간 주인공에게 이입이 되서 가슴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