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새누리당이 선거에서 승리하는 이유는, 어찌 보자면 단순하다. 새누리당은 국민들에게 '무엇이 옳은 것이고 무엇이 그른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가능한 하지 않는다. 매번 선거철이 올 때마다 '애국'이니 '보수'니 하는 이념적 가치의 당위와 중요성을 말하는 것은 항상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과 친정부 성향 인터넷 사이트였고, 당 차원의 선거 공약에 있어서는 '무엇이 유리한가' '무엇이 편리한가'에 더욱 방점을 둔다.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그 때도 '무엇이 옳은 것인가'라는 근본적 가치에 대한 이야기는 항상 최소한으로만 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대개의 사람들은, 추상적이고 거시적인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의 일상과는 별로 상관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은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그러한 기준을 통해 상대방이 자신에게 옳다느니 잘못됐다느니 하는 훈계를 하려든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그러한 무관심은 상대방에 대한 강렬한 적개심으로 변한다. "니가 뭔데 선생질이냐?" "아오 재수 없는 선비 새끼들ㅋㅋㅋㅋㅋㅋ" 이라는 식으로. 그리고 그 적개심은 상대방만이 아니라, 상대방이 말하는 그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전치된다(이것은 일베에서 민주주의를 경멸하는 이유 중 하나기도 하다.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지만).
다시 강조한다. 새누리당은 유권자들에게 무엇이 옳다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대신 "요즘 먹고 살기 힘들지?" "아파트 값은 떨어지고 자식들 등록금은 계속 오르니 고민 많지?" 라는 식으로 접근한다. 그들이 일상 속에서 매일 같이 느끼고 있는 민감한 문제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어필하고, 한 발 더 나아가 그들의 욕망과("세월호 유족들이 특별법 제정하라면서 물고 늘어지는 거 사실 좀 불공평하다는 생각 안 듦?") 두려움을("전교조 좌파 교육 OUT! 공교육은 중립적이어야 되거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전교조 선생들은 애들을 빨갱이로 만들거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애들이 세뇌당할 지도 모르는데 불안하지 않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극한다. 여기까지 진행했다면 이미 절반은 성공한 거다. 그리고 새누리당이 그러한 욕망과 공포를 해소해 줄 수 있음을 은근히 강조한다.
이상의 과정을 정리하면 이하와 같다.
1. 유권자에게 이해와 공감을 표한다. 그게 거짓이라 해도.
2. 1.을 통해 경계심을 허물어 뜨린 뒤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느 정도 갖고 있는 이기심과 탐욕, 불안을 조장하고, 새누리당에 의존하게 만든다.
->상대의 반 새누리 정서가 강할 경우, 경쟁자에 대한 적극적 마타도어를 통해 진흙탕 싸움으로 끌어 들임으로써 차라리 다 똑같은 놈들이라고 여기게 만들어 투표를 포기하도록 유도한다. 이미 전략적 고지를 차지하고 있는 상태라면, 자기 표를 더 늘리지 못한다 해도 그게 고스란히 상대의 표가 되는 것만 막아내면 최소한 본전은 건진다. 투표율은 더욱 떨어지고 민주주의의 가치는 추락하겠지만, 어쨌든 선거에서 이길 수 있으니 상관 없다.
3. ?????
4. PROFIT!
앞서 강조했다시피, 새누리당은 무엇이 옳은 것인지, 왜 자신들을 뽑아야 하는지에 대해 도덕이나 가치의 차원에서 유권자들을 설득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자신들은 유권자들이 일상 속에서 체감하는 문제의식에 공감하며 그를 해결해 줄 수 있음을 어필한다(그 문제의식이 '옳은지'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 유권자의 거부감을 자극하기 쉬우므로).
이 지점에서 주의해야 할 사항은, 새누리당이 말하는 '실용'은, '이익'은, '편리'는, 궁극적으로 국민들 전체의 공익이 아니라 그들 내부에 있는 폐쇄적인 이너 서클의 반영구적인 권력을 담보하는 토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그 사실을 은폐하고 그러한 실용과 이익과 편리를 마치 유권자 개개인의 실용과 이익과 편리인 것처럼 오도하는 것이 새누리당 선거 전략의 핵심이다. 유권자들이 사회 구성원 모두의 공익이 아니라 나와 내 가족, 내 지역만의 실용과 이익과 편리만을 원할수록 새누리당의 권력은 더욱 공고해진다. 그리고 그 권력은 그들의 '나와 내 가족, 내 지역의 실용과 이익과 편리'를 위해서조차 충분히 쓰이지 않는다. 잡은 고기에게는 먹이를 주지 않는 법이므로.
내가 새누리당을 증오하는 이유가 이거다. 그들은, 사람을 추하고 야비하게 만든다.
2)
얼마 전부터 새누리당 놈들보다 새민련이 이 나라의 민주주의에 더욱 큰 해악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재보선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게 확신.... ....으로까지 변하지는 않았지만 새민련 새퀴들에 대한 거부감은 확실히 더 커졌다.
새민련은 '새누리당의 전횡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대형 세력이며 제1야당'이라는 위치에 있다. 하지만 범야권의 수장이라는 것도, 새누리당이 누리고 있는 만큼의 강고한 권력은 아닐망정 무시할 수 없는 기득권이다.
현재 한국의 정치 지형을 보수냐 진보냐라는 관점으로 읽는 것은 오독의 여지가 너무 많다. 한국의 정당 중 정말로 '진보' 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정의당과 노동당 둘 정도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유의미한 정치 세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친 새누리냐 반 새누리냐 라는 관점으로 보는 게 더 현실적이다. 그리고 반 새누리의 맹주이며 범야권 수장이라는 위치는 그를 통해 '무엇을 할 것이냐'가 아니라 용 꼬리보다는 뱀 머리가 되겠다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충분히 매력적인 자리다.
그리고 나는 새민련이 민주당 시절부터 한 줌도 안 되는 진보 진영에게 어떨 때는 '새누리당이라는 공동의 적을 막기 위해 협력하자'고 하고 어떨 때는 '새누리당을 막고 싶거든 우리한테 힘을 실어주는 게 더 유리한 거 알지? 이번 지역구 선거에선 사퇴하고 우리 지원해 주셈' 이 지랄을 떠는 걸 숱하게 봐 왔다. 난 새민련이 대권으로 대표되는 이 나라의 최고 권력은 거의 포기하고 그 대신 범야권 수장이라는 현재의 위치를 독점한 채 지역구 의원이나 선출직 관료 자리 같은 소소한 실리를 꾸준히 확보하는- 새누리당과의 일종의 적대적 공존 관계를 구축해가고 있다는 걸 거의 확신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새민련의 자세는 때때로 최소한 명확한 '악'인 새누리당보다 훨씬 비열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