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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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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의 명성에 누를 끼치지 않는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만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거 같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브라질>이 더 좋다. 스스로가 '작품성을 따질 때 배드 엔딩을 해피 엔딩보다 우월하게 여기는 것 아닌가' 자문해 봤는데 2049도 결말의 그 울림과는 별도로 이 세계에서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생각해 보면 딱히 밝고 희망찬 엔딩은 아니겠다 내가 좋아하는 다른 작품들 중엔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것들도 많겠다... 그건 아닌 것 같고.


디스토피아적 미래 배경 SF물에 대해서는 어두침침하고 씁쓸한 결말이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것도 없지는 않겠지만 그보다 더 결정적인 이유는... 아마도 내 뼈저린 인간불신 때문이겠거니 한다.

And

하루 늦게, 혼자 술 마시는 중이다.


난 사람이 싫다. 나에겐 그럴 만한 이유가 있고, 그에 대해 굳이 남에게 일일이 설명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그런 내 방식이 잘못되었다고도 생각한다. 곱씹어 생각할수록 인간불신만이 끝없이 솟아나는 데도, 아직까지 마음 한 구석에선 평범하게 친구를 사귀고, 누군가와 애정을 주고 받고 싶다는 욕망이 남아 있기도 하고. 블로그를 통해 이런 심정을 주절주절 늘어놓는 것도, '그래도 어쩌면, 이 글들을 읽을 누군가 한 명 쯤은 이해해주지 않을까' 하는... 상당히 유치하고 모순적인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난 그 사실을 인정한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그게 한없이 하찮은 욕망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런 욕망을 여전히 갖고 있으면서도, 막상 누군가가 내게 호의를 보이면 난 내심 의심부터 할 테고, 동정한다면 거부할 것이다.


배트맨이 등장하는 만화, <킬링 조크>에 이런 내용이 있다. 결국 조커를 몰아넣은 배트맨은 '아직 늦지 않았다, 난 네가 광기를 치유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너는 구석에 몰려 미쳐있지 않아도 된다'고 제안한다. 그러나 조커는 이렇게 대답한다. 

"정신병원에 두 녀석이 있었는데 어느 날 밤, 그 놈들은 도망치기로 결심하지! 그래서, 그놈들은 지붕으로 올라가고, 거기서, 좁은 틈만 넘어가면 도시의 지붕으로 이어지는 걸 보게 되지. 달빛이 뻗쳐 있는 곳, 자유가 있는 곳으로 말야. 이제 첫 번째 녀석은, 문제 없이 곧장 뛰어넘어. 근데 녀석의 친구는 도무지 뛰어넘을 엄두를 못 내. 그 친구는 떨어질까봐 겁나는 거야. 그래서, 첫 번째 친구가 아이디어를 내지. '야! 나 손전등 있어! 내가 이 빌딩들 사이의 틈새에 빛을 비출게. 그 빛줄기를 밟고 건너와서 함께 가자구!' 그러나 두 번째 놈은 그냥 자기 머리를 가로저을 뿐이거든. 그 놈이 말하길 '너 내가 반 쯤 건너면 확 꺼버릴 거잖아!'


나도 그 만화 속의 조커와 같다(상대방이 배트맨이란 법은 없더라도). 마음 한 구석에선 여전히 '평범하게 친구를 사귀고 싶고, 누군가와 애정을 주고 받고 싶다'는 욕망이 남아 있으면서도 정작 그럴 기회가 생긴다면 상대방을 믿지 못할 것이다. 그러기에는 내가 어느 날 겪었던 절망이 너무나 끔찍하다.


나는 혼자 살다 혼자 죽을 것이다. 그렇게 결심한 이상, 그런 욕망을 없애야만 한다. 내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걸 자각하고 있는 이상,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다는 욕망도 포기해야만 사리에 맞다. 도저히 불가능하다면 평생 동안 억눌러야만 한다. 난 혼자 살다 혼자 죽어야 한다. 오직 홀로.


하지만, 대체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까?


난 이미 한 번 죽으려고 했고, 실패했다. 좀 더 살아보기로 했지만, 늘 내심 그 때 죽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있다. 대체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을까?

 



And

미뤄놨던 조지 오웰의 카탈루니아 찬가를 읽어야 할 거 같은 기분이 든다.

And

늘 그랬지만 이번 생일은 특히나 더 헛헛하지 싶다.


...뭐, 하루이틀도 아니고 새삼.

And

노래하는 소리가 다시 들려온다.

And

 '악인'의 존재를 상정하고 그가 어쩌다 악인이 되었는지 그의 유년 시절의 경험을 토대로 재구성하는+한 발 더 나아가 한국 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해 온 구체제의 신화가 어떤 식으로 구성되었는지에 대한 은유를 섞는 우화적 성격의 호러물이다. 내가 좋아하는 크툴루 신화스러움도 슬쩍 첨부되어 있고. 크툴루 신화의 소재를 일부 차용해 오긴 했지만 이 단편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작가는 클라이브 바커고, 클라이브 바커의 작품들이 대개 그렇듯 이 단편도 최소한 겉으로 드러나는 묘사나 사건은 성적이고 폭력적이다. 포르노를 쓸 생각은 없고, 내가 이해하고 있는 한국은 그렇게 기괴하고 잔혹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유형의 '악인' 중에서도 내가 특히 혐오하는 부류(동시에 내 안에도 그러한 악성이 있지 않을까 가장 고민하게 되는 부류)의 악인 내부로 들어가서 그 심리를 나름 설득력 있게 묘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극도로 힘든 작업이라서... 단편인데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쓰다 말다를 반복했다. 그런데 다시 읽어 보니 새삼 걱정스럽다. 시부엉 나한테 그런 의도가 전혀 없다 해도 포르노로 읽히면 어쩌지? 묘사를 좀 더 완화할까? 


한국 과학문학상 심사평을 읽다 보니 2배로 걱정되기 시작했다. 

And

http://m.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34032


이 기사의 표현을 빌자면 나는 지금도 여전히 포퍼적 관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고 있다. 난 애초에 그가 '진보' 대통령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래서 FTA 타결과 이라크 파병, 친삼성 행보를 비판하는 와중에도 딱히 배신감까지는 느끼지 않았다. 또한 동시에 그를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인물로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가 그렇게 죽었을 때, 그렇게 죽어도 될 사람이 아니라고 여기며 슬퍼했다. 그러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양가적 감정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런 감정을 품은 채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를 보고 있다(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을 동일시해서는 안 되지만, 아무래도 그를 겹쳐보지 않을 수가 없다).


이 기사에서는 이렇게 쓰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역사적 가치를 무시하며 근시안적인 시각에서 노무현 정부의 소소한 실수나 한계를 지적하고 노무현 정부가 보수 언론으로부터 흠씬 두들겨 맞을 때 정치권력과 비판적 거리를 유지한답시고 뒷짐 지고 있던 비판적 지지 세력은 노무현 정부에 적대적인 보수 세력만큼, 아니 그보다 더 해로울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절감한 것이다 (참고기사 “유시민이 옳다” http://www.huffingtonpost.kr/taekyung-lee/story_b_16466760.html).

그렇게 그들은 정치에 대한 포퍼적인 관점을 뒤로하고 문재인 정부에 비판적 지지가 아닌 전략적 지지를 보내고 있고, 그러한 그들의 지지는 토마스 쿤의 철학에 의해 능히 정당화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비록 주류 언론은 일관되게 문빠들을 광기에 찬 개떼들로 매도하고 있지만 나는 반대로 그들이 한층 성숙한 민주적 시민상을 실현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참신하고 읽어볼 가치가 있는 기사긴 하지만 이 논조에는 동의할 수 없다. 과학의 진보에 대한 관점과, 정치인의 지지여부에 대한 관점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이른바 '문빠'들을 '광기에 찬 개떼'로 취급하는 건 지나친 비하일지 몰라도, 그들이 '한층 성숙한 민주적 시민상'이라고도 할 수 없다. 나라는 개인은 결점 많은 인간이지만, 내 좌파로서의 포퍼적 관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ps=블로그로 돌아오니 140자 제한이 사라져서 편하고 좋네.

And

대체 왜 늘 이런 식인 거지. 인간관계 관련한 옛 트라우마가 살짝 되살아났다. 그래도 그 때보단 갑옷을 두껍게 챙겨입은 상태라 침울한 정도에서 그쳤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꽤 타격이 심했을 것 같다. 


.......

일찍 자자, 술은 마시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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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럭저럭 평타는 치는데 1보다 못하다. 뭔가 무서운 게 나올 것처럼 음악과 카메라 앵글로 분위기를 잡는다->별 거 아니라는 게 드러난다->작중인물(+관객)이 '뭐야 괜히 긴장 빨았잖아'할 타이밍에 점프 스케어 갑툭튀... 라는 연출이 남발된다. 

원래 이건 호러물의 역사를 통틀어 수없이 반복되어 온 굉장히 유효한 기법인데(클리셰가 클리셰인 이유는, 그만큼 효과가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초반부터 내내 이런 게 반복되다 보니 나중에는 그에 면역이 되서 공포감이 증발하고 걍 피식피식 웃으며 보게 된다. 호러물이라면 역시 천천히 죄어드는 맛이 있어야지 아무렴... <애나벨>에서와 마찬가지로 작중에서 해결되지 않는 후속작 떡밥의 비중이 너무 큰 것도 감점 포인트. 

이 와중에 막내딸 자넷 역을 맡은 아역 배우의 연기랑, 카메라 포커스가 나간 상태에서 빙의 모드와 통상 모드를 전환하는 연출은 볼 만하다.  


인시디어스도 그렇고 컨저링도 그렇고 1편이 제일 재미있음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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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대로 걸거치는 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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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때와 달랐던 건, 꿈 속의 나는 이미 한참 전에 제대했고 군 생활의 기억도 얼추 있는 상태에서 이등병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는 거다. 


실제로 그 무렵, 내가 잘 해내지 못했던 일이 있었다. 그 꿈 속에서 나는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필사적이었다. 그래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과는 약간 다른 결과(좋아질지 나빠질지는 아직 불명확한)를 눈 앞에 두고는 초조해하던 순간 깼다. 


예비군도 끝났는데... 군대 시절 기억이 내게 트라우마긴 한가보다 싶었다. 평소에는 자각하지 못하고 있지만, 나는 무의식적으로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모양이다.


.....의미 없다, 과거를 후회하기보다는 지금을 제대로 사는 게 더 낫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직도 씁쓸하다, 담배 한 대 피우고 올까. 다시 잠이 올지 모르겠다.


And

마태복음 5장 3~12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요.


-윤동주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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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절대로, 神께 내 개인적인 복락을 빌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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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잖은 동정 나부랭이나, 얄팍한 선의 따위는 사양이다.


진심과 선의가 때때로 얼마나 나약한 것인지는 아주 잘 알고 있다.

And

더 강한 갑옷을 챙겨입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한 때, 나는 '강자'가 되기를 원했었다. 이제는 그저 원하는 게 아니라,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알고 있다.

And

보험이나 유산 같은 문제가 골치를 썩이는구나. ...침울하다.

And

나는 나대로 가족이 깨질 판이고 큰이모부는 위독하시다고 하고... 가정사정이 진짜 왜 이 모양이냐.


+


결국 돌아가셨다. 누나랑 큰이모가 걱정이네.

And


마스터의 성향 상 무난한, 라노베스러운 해피 엔딩으로 잘 끝났다. 내 캐릭터는 뭐... 파티에선 약한 편이었지만 중요 NPC도 자기 손으로 구해냈고, 덤으로 최종보스 막타까지 쳤으니 적당히 만족. 마지막엔 신위도 얻었고. 차원신의 농간에서 구해진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 동료들(역시 신위에 오른 다른 파티원도 있다)과 함께 신성의 여정을 떠나는 엔딩을 맞이했다. 플레이어 입장에선 아무래도 약간 찜찜한 구석이 남아 있긴 했지만 뭐 캠페인 설정 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


오랜만에 밝고 선량한 캐릭터를 해봐서 즐거웠다. 그저 게임 속의 캐릭터일 뿐이긴 한데(+게다가 내가 만들어서 굴린)... 현실의 나로선 결코 가질 수 없을 뭔가를 갖고 있구나 싶어서 마치 딸 결혼시키는 것마냥 뿌듯하고 아쉬우면서도 약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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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고 싶던 순간을 견뎌낸 나 자신을 위해 나머지 삶을 살기로 했다'고 하는 걸 봤다. 그 사람이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죽고 싶다'가 아니라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던, 하지만 결국 실패했고 그 이후로 내내 마음 한 구석에서 '역시 그 때 죽어야했던 것 아닐까' 싶은 나로서는 별로 와닿지는 않는다.


뭐... 가능하면 죽는 것보단 살아 있는 쪽이 맞겠지. 내 쪽이 잘못된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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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런 이름이 Ego라니, 이름값하는 놈일세....


보면서 저 철저하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랑이, 나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나도 '나'만 앞세웠을 뿐 상대의 입장과 감정을 제대로 신경써주지 못했었다. 그게 잘못된 거라는 건 알고 있지만 앞으로 그러지 않을 자신이 별로 없다. 


그리고 그런 무책임함은 내 아버지도 그렇다. 아버지의 그런 점을 싫어하면서도, 이런 부분에서 쓸데없이 아버지와 내가 닮긴 닮았구나 싶다. 피터 퀼은 적어도 욘두라는 훌륭한 또 다른 아버지가 있었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최소한 난 아버지처럼은 되지 않을 거다. 난 혼자 살다, 혼자 죽을 거다. 이제 와서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다. 이제는 내 안의 절망과 불신이 너무 커졌다.


나는 그저 혼자 견디며 살아가다가 죽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도 가끔은, 차라리 바람이나 빗방울이나 모래알로 태어났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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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 김윤태란 놈이 ㅈ되는 걸 보고 싶다' '범죄자는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이 참에 패드립이나 날리며 애들한테 악의를 가르치는 BJ들도 한 번 족쳐야 한다'는 생각은 했지만, 피해자인 갓건배와 두려움을 느꼈을 불특정다수 여성들에 대한 걱정은 거의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문득 자각했다. 갓건배의 평소 언행에 문제가 있었다 해도 이 건에 있어서는 어디까지나 피해자인데도. 

아마도 내 인간불신 경향 때문이겠지만, 약간 가책이 느껴진다. 혹시 이런 게 내 본성인가 싶기도 하고, 조금만 더 가면 인간혐오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난 아무래도 역시 선인은 못 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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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소적이 되어 간다. 인간이 사는 곳은 절대 유토피아가 될 수 없다는 오랜 믿음이 점차 강해진다.

And

이야기를 좀 해봤는데, 예상대로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완전히 마음이 뜬 모양이다. 다른 여자 있다는 거 진짜냐고 여쭤봤는데 니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라고 하시길래 아들인 내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면 누가 신경써야 되냐고 짜증냈다. 


재혼할 수도 있다고 하시길래 나는 어떻게든 어머니와 법적인 부부 관계는 유지할 수 없냐고 했는데 역시 무리인 모양이다. 그 여자분도 전처의 아들인 내가 불편할 텐데 그거 어쩔거냐고 물어보니까 만일 널 껄끄럽게 대한다면 자신이 용납하지 않을 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서로 알고 지내다 보면 마음을 열고 잘 지낼 수도 있는 건데 그렇게 나쁜 가능성만 생각하지 말라는 등의 아무 말을 하시길래 살다 보면 나쁜 방향의 가능성부터 고려하고 준비해 두는 게 더 낫다는 거 아버지도 아실 거 아니냐고 하니까 아무 말 못하시더라.



오면서 생각해 보니 아버지는 '이미 마음이 뜬지 오래된 어머니는 더 이상 신경 안 쓰고, 나름 사랑하고는 있는 아들과 새 여자와 셋이서 함께 잘 지내고 싶은'모양이다. 하지만 난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어머니도 종교 관련해서 다소 거북스런 면모가 없지는 않다. 어쩌면 내 생각보다 그 여자가 훨씬 좋은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생판 모르는 사람이 명절 때마다 와서 제사 지내는 걸 보고 싶지는 않다.



아버지와 헤어지기 직전, '나는 그 여자 보고 싶지 않다, 아버지 삶이니 강요는 못하겠지만 제가 실망할 선택은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지만 아버지는 끝내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가 버리셨다.



최악의 경우에는 아버지와 절연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친가 쪽 친척들과의 관계도 자연스레 소원해지겠지만 뭐 어쩔 수 없는 문제고. 이번 건에 있어서는 양보하고 싶지 않다.



신의를 바칠 친구도, 절조를 바칠 연인도 가지지 못할 거라고 늘 생각해왔다. 이제는 가족도 박살날 판이구나, 쯧.


And

ㅇㅇ 병먹금.

And

예전에 좋아했던 선배가 떠올랐다. 아마 지금쯤이면 결혼하셨을지도 모르고, 아이가 있을 수도 있겠지. 나에 대해선 잊어 버리셨을 수도 있고.


행복하게 잘 사신다면 됐다.



많이 사랑했어요, 선배님. 잘 지내세요. 

And

새삼 약간 허무하구나.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