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이렇게 침울할까 생각을 해봤는데, 이유를 깨달았다. 사소한 계기로 내가 남의 감정에 공감도 잘 못하고, 남의 입장이나 상황을 헤아리는 것도 못하는 인간이라는 걸 새삼 느껴서 그런 거다.
몇 년 전 내가 그런 인간이라는 걸 자각했을 때는, 스스로가 끔찍한 괴물처럼 여겨졌었다. 나는 왜 이런 거냐고 울면서 기도했고, 당연히 신께선 내게 아무런 답도 주지 않으셨다.
죄책감과 고립감 때문에 죽으려고 했다가 실패했고, 다시 몇 년이 지난 지금은 그런 스스로를 어떻게든 감당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난 이런 인간이니까 연애 같은 것도 해선 안 되고, 일정 이상 친한 사람도 없이 살다가 죽어야 한다'는 생각이 가시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도 헤아리지 못하는 주제에 소설은 무슨 놈의 소설이냐... 같은 생각도 했었는데, 그래도 최소한 자기표현은 가능하고 창작은 원래 그런 거라는 식으로 마음을 고쳐 먹기는 했다. 하지만, RPG는 관둬야 할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취미긴 한데.
미련을 완전히 떨치지 못한 모양이다.
대학 때 친했던 선배에게서 연락이 왔었다. 그냥 생각나서 연락해 봤다는데... 한 번 보자니까 바쁘다길래 한 동안 기다렸다가 다시 연락해 보니 안 받는다.
뭐... 한 때 친했어도 기껏해야 2년 정도고, 마지막으로 본지 거의 10년은 됐다. 지금 와서 부담 없이 만나서 놀기엔 시간도 많이 지났고, 무엇보다도 내가 그 때와는 너무 많이 변해 버렸다.
난 여전히 내가 변할 수 있을 거라고 믿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한편, 그 시절의 나를 미워한다.
거짓 희망은 없느니만 못하다.
술 마셔야지.

밖에 나갔다가 쥐약 같은 걸 먹었던 거 같다. 낮에 애교 부릴 때 좀 더 쓰다듬어줄걸.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내내 생각해온 건 나인데, 왜 네가 죽은 거지?

여전히 명작이지만, 처음 봤을 때 내가 감동했던 이유는.. 그 때의 나는 '사람이 싫고,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무렵이었기 때문이었다는 걸 새삼 확인하고는 살짝 기분이 그랬다.

The dead are no longer lonely.
죽은 자는 더 이상 고독하지 않으리.
.......
빨리 죽었으면.

장:온갖 호러물의 세례를 무수히 받은 입장에서 봐도 악마 분장의 비주얼은 제법 훌륭하다(BJ 철구 닮았다. 철구가 방송에서 한 짓거리들을 생각해 보자면 노린 걸지도 모른다). 창백한 피부에 새카만 뱀을 휘감은 모습이나, 피부 아래쪽에서 꺼지지 않는 불꽃이 끝없이 타오르는 모습 같은 건 꽤 볼만하다. 이거 하나만큼은 <곡성>보다 낫다.
단:악마 분장 외의 다른 모든 부분이 구리다. 강조하고 싶은 주제가 뭔지는 알겠는데... 그걸 자막까지 깔아가며 직설적으로 들이대는 바람에 곱씹어 생각할 시간을 안 준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고 하지는 못하겠고, 그와 마이너스 시너지를 일으키는 극적이고 과장된 성경체(...) 대사들의 남발도 문제. 가끔 가다 '악마스러움'을 강조할 때나 극적인 타이밍에 인간을 조롱하기 위해 반어적으로 성경구절을 인용하거나 할 때만 그런 거 해도 충분하잖아... 노숙자 4인방이 묵시록의 4기사와 각각 대응된다고 설명이 나오는데 보는 입장에선 별로 매치가 안 된다는 문제도 있고. 메인 스토리라인인 휴게소 파트와 서브 스토리라인인 사채업자와 대학생 파트+조건만남하는 여고생 파트의 접합력이 부족해 몰입을 방해하며(주제 측면에서는 이어지지만 이야기 내에서는 겉돈다), '저 상황에서 저 인물이 왜 저렇게 행동하지?' 싶은 부분들이 너무 많아서 영 거슬린다.
재희는 연기대상 수상 경력도 있는 꽤 괜찮은 연기자인데 작품 선구안은... 어..... 할 말 없다. 맨데이트에서도 그러더니 또......

조연 캐릭터 하나가, 마치 나 같아서 약간 침울해졌다. 나는 스스로가 사이코패스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굉장히 냉담하고 자기본위적인 인간인 건 맞다고 생각한다.
그게, 내가 혼자 살다 혼자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내 절망도 고독도 분노도, 나만의 것일 것이다. 견뎌야 한다. 하지만,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가시지 않는다.
9년 전 그 날이 문득 생각났다. 뭐... 살아오면서 그보다 더 나쁜 경험도 해봤다. 그 날은 다만 가득 찬 물을 넘치게 하는 단 한 방울이었을 뿐이다.
이제 와서 굳이 보복할 생각은 없다. 내가 예의 그 이기심 때문에 잘못한 부분도 분명히 있고.
하지만, 내 증오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10년 전, 2009년 시점의 내가 지금 내 앞에 있다면, 난 "네가 가장 간절히 원하는 건 결코 이뤄지지 않는다"라고 말할 것이다.
5년 쯤 전에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 그 때와 다른 부분은, 역시 2009년의 나에게 똑같이 그런 말을 하면서, 비웃으며 한 대 쳐 주겠다고 생각했었다는 점이다. 뭐, 그 때의 나라고 해서 얌전히 맞고 있지야 않겠지만.
지금은... 똑같은 말을 해 주겠지만 분노보다는 씁쓸함을 담아 그렇게 말할 것이다. 2009년의 나도 그 사실을 깨달아 가고 있었음을, 이제는 알고 있다. 결국 그 모든 것이 무가치할거라는 걸 나는 훨씬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저, 혼자 견디며 살다 죽을 수 있기를.

http://yasa.nycmongol.com/spellcost.html

오리지널
http://kimkero.tistory.com/1354
리메이크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cartoon&no=410045

9년이 지났고, 나는 사람을 싫어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종종 미련을 완전히 떨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자각할 때가 있다. 나 같은 일 안 겪고도 천성적으로 딱딱 선 긋고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갈 수 있는(어쩌면 내가 보기에만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사람들이 가끔 부럽다.
그런 꼴을 겪어놓고서도 이러고 있다니, 빨리 죽어야 나으려니 한다.
그 때까지 홀로 견디며 살다 죽을 각오는 되어 있지만, 그래도 바람이나 빗방울이나 모래알 같은 걸로 태어났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은 떠나지 않는다.

이젠 연락이 끊겼지만, 그리워하는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 꿈이었다. 깨자 마자 묻어놨던 옛 기억들이 우수수 내 위로 떨어져 내렸다.
오늘 밤은 다시 잠들기 어려울 것 같다. ...글 쓰자.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많음.
기본적인 배경은 원작 소설 <가끔 그들이 돌아온다>와 영화가 비슷하다. 주인공은 학교 선생이고, 한 때 신경쇠약을 앓았지만 지금은 그럭저럭 회복했으며, 썩 질이 좋은 편은 못 되는 학교의 문학 수업 선생 일자리를 막 얻은 상태다. 어린 시절 절친했던 형이 동네 불량배들에게 살해당하는 걸 눈 앞에서 봤었고, 아직도 그 때의 악몽을 종종 꾼다. 그럭저럭 견뎌가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 때의 불량배들이 전혀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전학생'이라면서 눈 앞에 나타난다.
원작은 '떨치지 못한 유년기의 악몽이 성인이 된 이후 반복된다'라는 스티븐 킹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를 활용한 단편이다. 별로 길지 않은 분량 속에서도 어린 시절 잔인하고 난폭한 불량배들에게 느끼던 두려움과 성인이 된 지금도 무례하고 반항적인 학생에게 문득 문득 느끼는 두려움이 교차되는 가운데 점차 과거가 현재를 잡아먹어가는 걸 느끼면서 멘붕하는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잘 드러나는 준작인데, 유감스럽게도 이 영화는 그런 부분이 무척 부실하다.
물론 괜찮게 잘 찍었다 싶은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원작에서는 담당 클래스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몇 안 되는 학생 중 하나가 갑자기 죽었다는 언급이 있는데, 소설에서는 그저 한 줄로 묘사되고 끝나는 반면 영화에서는 주인공과 친근하게 대화하다가 뭔가를 놓고 가고, 주인공이 그걸 주려고 쫓아가던 중 사고가 나서 눈 앞에서 끔찍하게 죽어 버린다. 확 바뀌는 분위기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또한, 원작에선 어린 시절 형이 살해당한 곳과 지금 주인공이 근무하는 학교가 있는 곳이 별 관계가 없는데(오히려 그를 통해서 떨치지 못하는 과거에 대한 두려움을 상징적으로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영화에서는 어린 시절 형이 죽었던 바로 그 마을의 학교로 오는 걸로 시작한다. 두려움보다는 과거와 직면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더 강조하는 설정 변경인 셈인데, 이것도 괜찮았다.
하지만 결말을 원작과는 완전히 다르게 바꿔놓았는데, 그 바뀐 부분이 영 조잡하다. 원작의 결정적인 호러 포인트는 유년기부터 지금까지 자신을 쫓아 온 악몽을 떨치기 위해서 악마와의 계약을 결심하고는 형의 모습을 한 악마를 소환해 불량배들의 악령을 끝장내지만 과연 이걸로 전부 끝난 것일지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는 마지막 장면의 그 쌔함이었다. 악마를 소환하기 위해 사용한 제물이 바로 형이 쓰던 모자(우애 깊던 형과의 추억이라는 의미도 있다)라는 게 그 쌔함을 한층 더 강화시키고.
그러나 영화에서는 죽은 형의 영혼의 도움을 받아서 악령들을 물리치고는, 아내도 (원작에선 없는) 아이도 살아 남는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물론 해피 엔딩이라고 해서 배드 엔딩이나 새드 엔딩에 비해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법은 없는데, 이건 지나치게 평범하고 진부하다.
'...반쯤 내려왔을 때, 무언가 그림자 또는 그저 이상한 느낌 때문에 그는 돌아섰다. 보이지 않는 무엇이 다시 나타난 것 같았다. 짐은 악마 불러내는 법에 적힌 경고가 생각났다. 무슨 일에든 위험은 따르게 마련이었다. 사악한 기운을 불러올 수도 있고 그들의 힘을 빌려 어떤 일을 해결할 수도 있고 심지어 완전히 제거해 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가끔 그들이 돌아온다. 그는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이제 악몽이 완전히 끝난 것일까?'
원작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느끼는 그 명치 끝이 싸해지는 먹먹함과 약간의 슬픔이, 이 영화에는 없다.
혼자서 살다 혼자 죽었으면 좋겠다, 가능한 빨리.
그리고 신께서 허락하신다면, 그렇게 죽은 뒤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고 싶다. 내 절망들이 노래하는 소리가 아득히 들려온다.
그래도 어제 뒷풀이 2차에서 다른 분들과 같이 술 마시면서 그날이 오면 부르던 순간은 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한 분은 고개 숙인 채 부르고, 한 분은 앞을 똑바로 바라보며 부르고, 나는 천정을 올려다 보면서 부르고...
ps=전에 반했던 분이 계시면 그냥... 돌아와야겠다 생각하고 모자 푹 눌러쓰고 갔었는데, 안 오셨던 모양이다. 한 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무슨 일 있으신가 싶어서 좀 걱정된다. 뭐, 내 걱정 따위 그 분에겐 별 의미 없겠지만.

직장 다닌답시고 핼로윈 파티도 못 갔고 SF도서관 휴관 파티도 건너 뛰었는데 이번엔 꼭 가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운영진 인원에 아는 이름이 보인다. 좀 피하고 싶은 사람이다...
그 사람은 내게 잘못한 게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내가 그 사람을 피하고 싶은 이유는... ...내가 그 사람에게 반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 뿐이면 괜찮은데, 내가 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약간 폐를 끼친 적이 있다. 그 사람 입장에선 내가 스토커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이젠 시간도 제법 지났고, 난 내 감정을 묻어 놓는데 성공했다. 가능하면 앞으로는 누구에게도 반하거나 하는 일 없이, 혼자 살다 혼자 죽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그거야 내 사정이고... 그 사람 입장에서는 내가 좀 불편할지도 모른다.
난, 한 때나마 반했던 분이 나로 인해 거북해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 절대로.
먼 발치에서 보는 것까진 어쩔 수 없겠지만, 가능한 피해 다녀야겠다.
...그냥 가지 말까?
내 생일이야 별로 축하할 거 없으니 퇴근길에 어머니 드릴 케잌이나 사다 드릴까 하다가 비가 와서 그냥 왔다. 빵집은 내일 모레도 열 거야.... 쿨.

꿈을 꿨다. 옛 친구들과 다시 만나서 노는 꿈이었다. 단편적이고 감각적인 '즐거움'의 차원이 아닌, 이제는 어떤 감정인지조차 기억이 희미한 깊은 기쁨을 잠시 느꼈다.
그리고 난, 그것이 꿈일 뿐이며 결코 나의 현실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나는 혼자 살다가, 혼자 죽을 것이다. 내겐 그래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죽은 뒤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고 싶다.
그래도 다들,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란다.
...좀 마셔야겠다.

PC충이 어쩌고 페미가 저쩌고 하는 헛소리는 거른다 쳐도 너무 악평이 많아서 거의 1년을 미루다가 뒤늦게 봤다. 일단 내가 보기에는 2, 3가지 정도의 눈에 확 띄는 결점이 있는데, 그 결점을 빼면 그렇게까진 나쁘지 않아 보인다.
결점 1)포의 선상반란
라스트 제다이의 중요한 테마는 '실패를 통해 성장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실패가 비극적인 장엄함을 갖기 위해서는 그 과정에 있어 깊이감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포 다메론은 핀과 로즈의 개별 행동을 서포트하기 위해서 레아 이후 공식적인 리더로 추대된 홀도 사령관에게 총까지 들이댄다. 이 전개에 있어서는 아무런 불만도 없는데... 핀과 레이가 결국 실패한 이후 정작 포는 큰 처벌을 받지 않고, 게다가 작중에서 홀도 사령관 본인이 나중에 레아에게 그가 마음에 든다고 언급함으로써 감정적인 면죄부까지 쥐어줬다. 관객이 포의 실패와 그 의미를 충분히 곰씹기 전에 작중에서 등장인물들이 'ㅇㅇ 괜찮음' '사적으론 유감 없음'으로 결론을 내버려서... 감정선을 따라잡기가 힘들다.
영화의 테마를 부각하기 위해서는 이 부분에 더 힘을 줘서, 정당한 신임 사령관에게 총을 겨눈다는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의 번민과 결국 자신의 행동이 (최소한 작중 인물들이 느끼기에는) 무의미했음을 깨닫고 괴로워하는 묘사, 그리고 홀도 사령관 역시 그런 그를 이해하면서도 입장 상 포를 처벌하며 씁쓸해 하는 묘사 등이 짧게라도 드러나야 했다. 러닝타임 문제 상 어쩔 수 없다고? 그럼 다른 걸 잘라냈어야지... 카지노 씬 같은 거 말야... 제일 중요한 주제의 연출이 이렇게 설렁설렁해서는 그런 중요한 '실패'의 무게감이 와닿지가 않는다.
결점 2-1)핀의 카미카제
....그 상황에서 꼭 포구를 향해 직접 개돌해야 돼? 여럿이서 포구 안 쪽으로 미사일이나 레이저 쏴 넣어서 내부 폭파를 시킨다거나 하면 안 되는 거야? 원래는 감동적이어야 하는 타이밍인데 너무 작위적이어서 짜식기만 한다. 게다가 카미카제로 비장함을 끌어내는 수작, 21세기 영화에서 써먹기엔 너무 촌스럽지 않아?
결점 2-2)핀과 로즈의 뜬금포 로맨스
ㅅㅂ
남초 사이트 등지에서 로즈 티코 발암이라고 쌍욕하길래 큰 삽질이라도 하나보다 생각하면서 봤는데 진짜 의외로 그런 쪽으로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다른 부분에서 짜증이 솟구쳤다. 이놈의 헐리웃은 그 놈의 억지 로맨스 좀 못 때려 치우냐.
PS=제다이의 귀환에서 "It's a trap!"이란 명대사를 남겼던 아크바 제독이 대사 한 마디로 사망처리된 건 굉장히 아쉽다.
PS2=고뇌하는 루크를 보면서 '요다나 오비완은 어디 갔냐' 생각하고 있던 바로 그 순간에 포스의 영으로 요다가 나타나서 놀랐다. 요다가 나온다는 걸 전혀 모르고 봤던 터라 깜놀 2배. 타이밍 보소....
PS3=루크가 허무하게 죽는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어서 걱정했는데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었다. 루크 스카이워커는 작품 외적으로도 미국에선 신화적인 위치의 영화 시리즈의 주인공이고, 작품 내적으로는 전설적인 대영웅이다. 그런 그가 전면에 나서 버리면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스타워즈 트릴로지의 주역들이 묻혀 버리게 된다. 그런 걸 고려하면 화려하게 퇴장할 필요가 있긴 했는데, 그 마지막은 무척 좋았다. 그나마 아쉬운 부분은 '요다 보니까 포스의 영 상태에서도 포스 능력은 쓸 수 있는 모양이던데 헉스가 끌고 온 공성포나 AT AT 좀 화끈하게 때려 부숴주지.... 안 그래도 액션 분이 부족한데...' 싶은 정도.

별로 생각 없다, 때 되면 하지 않겠냐고 웃어 넘겼다.
난... 결혼 같은 거 하고 싶지 않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연애도 하고 싶지 않다. 난 평범하게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기에는 정서적으로 지나치게 결함이 많다.
내 안에는 '사려 깊고 다정한 여인이 나를 내 그 숱한 절망과 고통들로부터 구해줬으면 좋겠다'는 욕구가 있고, 동시에 그 욕구가 부당하다는 걸 자각하고 있다. 그런 건 굉장히 힘든 거고, 자신의 삶과 자신의 신산이 있을 상대방에게 그런 걸 요구하는 건 지나치다. 세상의 그 누구도 내게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의무는 없다. 뭣보다 이 나이씩이나 먹고 구원을 바랄 수는 없다.
제대로 된 관계는, 서로 믿고 버팀목이 되야 한다. 하지만 나는 아마도 분명히 내 고통과 절망에만 눌려서 상대의 감정과 입장을 제대로 신경쓰지 못할 것이다. 난 내가 그런 인간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는 반드시 뭔가가 엇갈리게 되고 결국 뒷맛은 결코 좋지 못할 것이다. 정말로 만에 하나, 상대가 그걸 이해해준다고 해도 내 인간불신이 결국 벽이 될 테고.
그렇기에, 나는 혼자 견디며, 혼자 살다가 혼자 죽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그렇게 죽은 뒤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게 되고 싶다. 난 그래야만 할 필요가 있다.
몇 년 정도 뒤에는, 그저 '오늘 저녁은 입맛이 없으니 먹지 말자'고 생각할 때와 비슷한 심정으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괜히 쓸데 없는 소리를 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야 뭐 그 사람에게 배울 게 많다고 여기고, 호감도 어느 정도 있지만 그 사람은 아닐 수도 있는 거고... 사실 그 사람과 그렇게 절친한 것도 아니겠다, 그 사람 입장에선 뜬금 없다고 여기거나 할 수도 있는 거니까.
내가 이러는 이유를 알고 있다. 지금의 나는 사람을 싫어하지만, 내가 그렇게 되기 전에 호감을 갖고 친해져보고 싶었던 상대이기 때문이다. 그 때의 감정의 잔영이라고 해야 하나 뭐 그런 게 남아 있기 때문에 알아서 잘 할텐데도 괜히 신경쓰이는 거지. 말하자면, 사람이 싫다고 늘 생각하면서도 이제는 연락이 닿지 않는 옛 친구들을 떠올리면 가슴이 시린 것과 비슷한 거다.
이런 하찮은 미련만 완전히 떨칠 수 있다면 좋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