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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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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처럼 스포일러 많음.


기본적인 배경은 원작 소설 <가끔 그들이 돌아온다>와 영화가 비슷하다. 주인공은 학교 선생이고, 한 때 신경쇠약을 앓았지만 지금은 그럭저럭 회복했으며, 썩 질이 좋은 편은 못 되는 학교의 문학 수업 선생 일자리를 막 얻은 상태다. 어린 시절 절친했던 형이 동네 불량배들에게 살해당하는 걸 눈 앞에서 봤었고, 아직도 그 때의 악몽을 종종 꾼다. 그럭저럭 견뎌가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 때의 불량배들이 전혀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전학생'이라면서 눈 앞에 나타난다.


원작은 '떨치지 못한 유년기의 악몽이 성인이 된 이후 반복된다'라는 스티븐 킹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를 활용한 단편이다. 별로 길지 않은 분량 속에서도 어린 시절 잔인하고 난폭한 불량배들에게 느끼던 두려움과 성인이 된 지금도 무례하고 반항적인 학생에게 문득 문득 느끼는 두려움이 교차되는 가운데 점차 과거가 현재를 잡아먹어가는 걸 느끼면서 멘붕하는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잘 드러나는 준작인데, 유감스럽게도 이 영화는 그런 부분이 무척 부실하다.


물론 괜찮게 잘 찍었다 싶은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원작에서는 담당 클래스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몇 안 되는 학생 중 하나가 갑자기 죽었다는 언급이 있는데, 소설에서는 그저 한 줄로 묘사되고 끝나는 반면 영화에서는 주인공과 친근하게 대화하다가 뭔가를 놓고 가고, 주인공이 그걸 주려고 쫓아가던 중 사고가 나서 눈 앞에서 끔찍하게 죽어 버린다. 확 바뀌는 분위기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또한, 원작에선 어린 시절 형이 살해당한 곳과 지금 주인공이 근무하는 학교가 있는 곳이 별 관계가 없는데(오히려 그를 통해서 떨치지 못하는 과거에 대한 두려움을 상징적으로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영화에서는 어린 시절 형이 죽었던 바로 그 마을의 학교로 오는 걸로 시작한다. 두려움보다는 과거와 직면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더 강조하는 설정 변경인 셈인데, 이것도 괜찮았다.


하지만 결말을 원작과는 완전히 다르게 바꿔놓았는데, 그 바뀐 부분이 영 조잡하다. 원작의 결정적인 호러 포인트는 유년기부터 지금까지 자신을 쫓아 온 악몽을 떨치기 위해서 악마와의 계약을 결심하고는 형의 모습을 한 악마를 소환해 불량배들의 악령을 끝장내지만 과연 이걸로 전부 끝난 것일지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는 마지막 장면의 그 쌔함이었다. 악마를 소환하기 위해 사용한 제물이 바로 형이 쓰던 모자(우애 깊던 형과의 추억이라는 의미도 있다)라는 게 그 쌔함을 한층 더 강화시키고. 


그러나 영화에서는 죽은 형의 영혼의 도움을 받아서 악령들을 물리치고는, 아내도 (원작에선 없는) 아이도 살아 남는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물론 해피 엔딩이라고 해서 배드 엔딩이나 새드 엔딩에 비해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법은 없는데, 이건 지나치게 평범하고 진부하다. 


'...반쯤 내려왔을 때, 무언가 그림자 또는 그저 이상한 느낌 때문에 그는 돌아섰다. 보이지 않는 무엇이 다시 나타난 것 같았다. 짐은 악마 불러내는 법에 적힌 경고가 생각났다. 무슨 일에든 위험은 따르게 마련이었다. 사악한 기운을 불러올 수도 있고 그들의 힘을 빌려 어떤 일을 해결할 수도 있고 심지어 완전히 제거해 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가끔 그들이 돌아온다. 그는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이제 악몽이 완전히 끝난 것일까?'


원작 소설의 마지막 부분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느끼는 그 명치 끝이 싸해지는 먹먹함과 약간의 슬픔이, 이 영화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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