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해리스가 됐다 해도 중동 지역 통제를 위해서 이스라엘 지원은 계속할테고, 미국의 오만하고 강압적인 대외정책은 변함 없을 것이며, 지구 환경은 계속 조져질테고, 일론 머스크를 비롯한 친 트럼프 성향 대기업 오너들은 어떻게든 살 길을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노골적인 천박함과 추잡함보다는 덜 나쁘다고 생각해왔고 그래서 지금의 결과가 쓰라리다. 말하자면 한국에서 민주당이 정권을 잡아도 가난한 좌파인 나로서는 그다지 나아지는 게 없고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이 꼬우면 국혐 찍을 거냐고 빈정대는 꼴 볼 때마다 한 대 치고 싶지만 국혐이 정권을 잡으면 돌이킬 수 없이 최악으로 치닫는 것과 비슷하다. 술 한 잔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마시니까 오늘따라 술도 잘 안 받더라고, 썅.
사실은 박근혜 때부터 막연히 느끼고 있었다. 안 그래도 사바세계는 원래 어둡고 비참한 곳인데다가, 그냥 지금이.... 이런 시대인 거라고. 기후 격변에, 전쟁과 역병이 창궐하고,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차별과 증오가 넘쳐나고, 그 속에서 나 자신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더욱 나약해지고 비겁해지기를 강요받는 시대라고. 그게 확실해졌을 뿐이다.
하지만 이런 시대를 살아간다는 게 그 강요 앞에 굴종할 이유는 되지 못할 것이다. 비록 나는 빨리 죽어 아무 것도 아닌 게 되기만을 바라는 인간이 되었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 죽을 생각까지는 없고, 살아 있는 한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러하길 바란다.
하지만 지금이 바로 종말의 시기이며 두 개의 달이 떠오르는 밤이라는 예감을 떨칠 수 없다.
원래 켈트 인들의 겨울맞이 축제이던 삼하인에 그 근본을 두고 있으며 죽은 이들의 영혼이 돌아오는 날이라고 한다. 오늘, 난 이태원 참사 현장에 찾아갔다. 분향소에는 몇 번 갔었지만 현장에 직접 간 것은 처음이었다.
공기에서 슬픔의 냄새가 난다고 느낀 건, 아마도 내 착각이었겠지.
꽃과 먹거리들이 늘어서 있었다. 아마도 엊그제 온 사람들이 두고 간 거겠지.
"기억해줘 죽은 자를, 새카맣게 타버렸지만" 좀 울컥했다.
문득 시선을 잡아끌던 메모 한 장 "이름도 몰랐던 내 친구들 금방 따라갈께 맥주 한 잔 하고 기다려"
저걸 쓴 사람은 어떤 사연이 있을까.
근처 광화문 민속박물관에서 마침 작게 전시회하는 게 있길래 그걸 보러갔다. 조선 후기에서 일제 강점기 무렵, 장례를 치를 때 상여에 장식하던 꼭두들 300여 점과 각종 부속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2년 전, 그날 그곳에서 죽은 159명의 영혼들도 상여를 타고 저 꼭두들의 보호를 받으며 다음 세상으로 무사히 떠났기를 바란다. 오늘이 죽은 이들의 영혼이 돌아오는 날이라고 해서, 이 땅에서 너무 오래 헤매지는 말기를 바란다.
부디, 안식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그 죽음들에 책임이 있는 자들이 정당한 응보를 치르기를. 반드시.
그 날 그곳에서 죽은 이들의 영혼이, 신의 품 속에서 안식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그 참사에 책임이 있는 자들이 정당한 응보를 받기를.
비록 나 자신은 행복한 미래를 상상할 수도 없고, 그런 미래에 대한 희망도 가질 수 없고, 그저 빨리 죽어서 아무 것도 아닌 게 되기만을 원하는 이런 인간이 되었지만 그 사람들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부모님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꿈이었다. 현실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결코 그렇게 다정했던 적 따위 없다. 깬 뒤 잠시 뭔가 아무 거라도 하면서... 하다 못해 게임을 하거나 만화를 보면서 기분전환을 하려고 했지만 잘 안 됐다. 줄지어서 나쁜 기억들만 주르륵 떠올랐을 뿐이다.
나의 실패고, 나의 상실이고, 나의 슬픔이고, 나의 고통이고, 나의 분노고, 나의 고독이고, 나의 절망이고, 나의 허무다. 이게 날 망가뜨리고 있다는 걸 안다. 한 때는 고쳐 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러고 싶지도 않다. 오직 나 혼자 견딜만큼 견디다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할 정도가 되면 죽겠지. 그 노력들이 실패했을 때 이미 한 번 시도했던 거고,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창 밖에서 해가 뜨는 게 보인다. 오늘도 난 어떻게든 혼자 견디며, 남루한 일상을 반복할 것이다.
이게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다.
은근히 눈치를 보던 상대가, SNS에서 이해하기 힘든 이유로 화를 내는 걸 봐도 이제는 '저 사람은 또 뭣 때문에 긁혔댜ㅋ' 정도 생각 밖엔 들지 않는다. 이 쯤 되니까 뭐... 굳이 가까워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도 더 이상 딱히 없고.
난 (비꼬는 의미 없이, 진짜 좋은 의미로의) 인싸가 되면 분노와 절망, 피해의식으로 가득하던 과거의 자신을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었다.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고,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고 노력했었다. 하지만 결국 실패했고, 포기했고, 그 이후로 10년이 넘은 지금에야 다른 방향으로 좀 발전했구나 싶다. 적어도, 스스로 느끼기에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남의 눈치를 보지는 않게 됐다.
이렇게 혼자 견디다가 죽어, 無가 되길 원한다.
트위터에서 양궁 선수 김안산 선수가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라고 써 놓은 게 묘하게 웃겼다.... 그러고 보니 김안산 선수 고향이 광주였지 아마.
나 자신은 더 이상 소설을 통해 뭔가 이룰 수 있을 거라고 믿지 않게 됐지만, 그건 내 일이고 내 믿음일 뿐이다. 한강 작가의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좋아하는, 오랫동안 애착을 가져 온 취미이기도 하지만 또한 동시에 일도 집에서 혼자서 하고 변변한 친구도 없는 내가 자신의 망가진 사회성에 붙이는 청테이프 같은 것이기도 하다.
난 이제 깊은 인간 관계를 갖는 게 싫다. 하지만 꼭 그럴 필요도 없는데 공연히 남에게 괜히 공격적으로 대하거나, 불쾌한 오해를 살 만한 말을 해서 만들 필요 없는 적을 굳이 만드는 것 역시 그것대로 내키지 않아.
적당히 매끄럽게, 무난하게.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떠나길 원한다. 그래서 죽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고 싶다.
뻐킹한 부분이 많은 것과는 별개로, 룬썩10이 대통령이 된 건 투표한 사람의 48.56%가 그를 찍었기 때문이다. 문재인이 룬썩10을 키워준 덕분이 아니다. 대통령직은 왕위가 아니고, 문재인은 누구에게도 직을 양위한 적 없다.
솔직히, 천안문 시위 사진이나 Free Tibet 구호 걸어놓고 한국 민주화운동가들에 대해선 ㅆ팔육 꿘충 운운하는 놈들 멘탈은 별로 이해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하고 최대한 설득하는 게 민주주의자로서의 의무일 것이다. 민주주의의 대의를 진심으로 믿고 추구한다면, 룬썩10을 찍은 다른 시민들을 결국 설득하지 못한 스스로의 실패 역시 인정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그렇게 힘들고 고통스럽다.
민주주의는 (적어도 정치적으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고 모두를 구원할 수 있는 한 명의 절대적인 영웅을 부정한다. 그 영웅이 진짜로 그게 가능할만큼 정의롭고 유능해도 마찬가지다. 대신 권리와 책임을 모두 불특정 다수 시민들 하나 하나에게 분산하고, 그런 시민들의 이성과 대화, 협력이 낳는 가능성을 믿는다. 민주주의자라면 응당 그러해야 할 것이다... 다만, 이제는 내가 그렇게 하기 싫어지기 시작했다.
10년 쯤 전에는 이명박 찍은 이들이 가축 같다고 생각했다가도 그런 생각을 해선 안 된다고 스스로를 책망하곤 했다. 이제는... 가축이 되는 걸 선택했다면 그냥 가축처럼 살다 죽으라는 생각부터 든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그런 생각이 들면 굳이 더 이상 그런 생각을 계속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것도 언제까지 가능할지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해야 내 분노의 대상을 그 당 의원이나 고위 관료들, 그 당과 끈끈한 자칭 보수언론 및 재벌로 한정하고, 2찍했던 다른 시민들까지 적어도 감정적으로는 미워하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 뿐이다. 하지만 그것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쉽지 않다.
오랫동안, 죽음은 인간에게 있어 '가장 큰 미지'이며 '영원히 해명할 수 없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인식 범위에는 한계가 있고, 21세기를 살아가는 인간의 정신은 이미 온갖 세속적, 물질적인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렇다면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것도 그에 종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만큼 죽음과 그 이후에 있는 것에 대해서 상상할 수 있는 힘도 약해지고, 그걸 현실감 있는 공포로 받아들이는 감각 자체가 약해지지 않을까? 요즘 범죄자가 발각될 것 같자 자살했다는 뉴스가 유독 자주 보이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감옥에 가고 이후의 삶이 꼬일 거라는 공포가 죽음과 그 이후에 있는 것에 대한 공포를 압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저 죽음에 대한 공포 자체가 둔감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 사람이 더 이상 후자를 상상할 수 없게 된 거라면?
그것이 극한 상태에 몰린 범죄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면? 이미 한국은 OECD 가입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찍고 있는 상태다. 그리고 현 대통령은 천박하고 우둔하기 그지 없는 윤석열이고, 그를 바지사장으로 삼아서 이 나라의 옛 기득권은 남은 2년 반 동안 최대한 해 먹고 이 나라를 뜨겠다는 기세로 사회를 망가뜨리고 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더욱 큰 다른 공포로 대체된 남은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호러물을 쓰는 입장에서 나는 독자의 공포를 어떻게 묘파해야 할까?
룬썩10이 임명한 독립 기념관 관장이라는 새끼는 친일 발언을 주절주절 늘어놓고 있고, 그에 반발해서 광복회는 광복절 기념 행사를 자체적으로 따로 개최했다.
나는 좌파로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거부한다. 하지만 일본제국의 억압과 수탈에 저항하고 민중을 돕는 것은 알량한 국가와 민족의 이름에 기대지 않고서도 추구할 가치가 있는 대의였고, 그렇기에 수많은 사회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들이 그 대의를 위해 싸우다 죽어갔다.
대한 독립 만세.
대구에 갔다가 장례식장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는 오랜만에 만난 나와 조금이라도 길게 이야기를 하고 싶으셔서 생각나는대로 아무 말씀이나 하시는 것 같았지만(아버지가 소설쓰기의 전략이나 시장 트렌드 같은 것에 대해 잘 아실 거 같지는 않다) 난 좀 건성으로 대답했다.
그게 티가 난 모양인지, 사촌놈 차를 타고 같이 돌아오던 중 사촌놈이 '너 고모부가 어렵냐'고 묻길래 그냥 오랜만에 봤더니 어색해서 그렇다고 얼버무렸다. 거짓말이었다. 아버지는 나쁜 사람이 아니고, 나름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셨다는 건 알고 있다. 다만 비겁하고 무책임한 사람이었고, 그게 내게 큰 상처를 입혔으며, 나이가 든 지금도 그 상처가 여전히 갈라진 상태일 뿐이다. 오래 마주 앉아 긴 이야기를 하다 보면 화가 치밀 것 같았고, 그걸 참을 자신이 없었다.
날씨 한 번 덥다, 젠장...
0년차-
한동안 잠잠하다고 여겼는데, 다시 전쟁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짧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살던 마을에도 징집령이 떨어졌고, 나 역시 성지의 수복을 위해 검을 다시 찼다. 아내는 솔직히 이 전쟁이 성스러운 것인지 어떤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부디 몸 성히 돌아오기만 하라고 당부했다. 나는 짐짓 화내는 척했지만 아내가 진심으로 날 걱정해서 한 말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코흘리개 아들 녀석도 아비가 먼 곳으로 떠난다는 걸 눈치챘는지 오늘은 조용했다. 언제나처럼 간소한 식사를 마친 뒤 아내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마굿간에서 말을 끌어냈다. 아내는 웃으면서 나를 전송했지만 밤새 울었는지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아들은 날 빤히 올려다 보며 손을 흔들었다. 반드시 돌아와서 다시 아내와 아들을 안아줄 것이다.
전장으로 향하는 동안 수많은 징집병들이 곁을 지나쳤다. 나는 모아둔 돈이 좀 있어서 검과 말이라도 챙길 수 있었지만, 저들은 보병으로서 조잡한 창과 가죽갑옷만 지급받고 최전선에 내몰릴 것이다. 다들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성전에 동참한다는 자긍심이 뒤섞인 눈을 하고 있었다. 이들 중 몇이나 살아남을까?
1년차-
전쟁터에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수많은 이교도들을 베어 넘기면서, 그들의 얼굴에 가득한 분노와, 두려움과, 고통과, 슬픔, 그리고 놀랍게도 연민을 보았다. 우리와 마찬가지다. 그들을 사악한 이교도들이라고만 여겼지만 이 전장에서 마주치는 그들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 이 전장에 신은 없으며, 오직 다 같은 인간만이 존재한다. 싸우고 싶지 않다, 죽이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내 입은 기도문을 외우고, 등자에 얹힌 내 발은 말의 옆구리를 걷어차고, 내 손에 들린 검은 적의 목숨을 앗아간다. 내가 방금 베어 죽인 이조차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거라는 확신이 나를 미치게 한다.
2년차-
부대를 지휘하던 십부장이 전사하는 바람에 최선임이었던 내가 십부장이 되었다. 이제는 내 명령을 따르고 내게 의지하는 부하들이 있다. 지금까지 싸워오며 깨달은 것은, 칼날을 날카롭게 하는 것만큼이나 스스로의 정신을 둔탁하게 만들어야만 미치지 않고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적에 대한 연민을 버려야 한다. 오직 승전 후의 약탈이 주는 쾌감과, 신에 대한 신앙으로 자신의 정신을 무디게 해야 한다.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부하들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해가 불그스레하게 저물기 시작하는 게 보인다. 아내와 아들이 그립다.
3년차-
또 다시 진급했다. 이제 난 부사관이다. 오늘은 오전 내내 요새 건설을 감독하고, 오후에는 포로로 잡은 적병을 심문한 뒤 처형했고, 저녁 때는 보고서를 썼다. 더 이상 이교도들에 대한 동정심 같은 것도 들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 적일 뿐이고, 적은 죽여야 할 상대일 뿐이다. 내일 새벽,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 때 기습 작전이 있다. 남자건 여자건, 어리건 늙었건, 건강하건 병들었건, 이교도는 모두 죽일 것이다, 만에 하나 그 중에 의로운 자가 있다면 신께서 골라내시리라.
4년차-
어제 사령관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받았다. 의외로 전혀 떨리지 않았다. 사령관은 무릎을 꿇은 내 머리와 양 어깨를 칼등으로 한 번씩 살짝 두들기고는 "성스러운 빛의 전사" 같은 말을 했다.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았지만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다. 서임식을 마치고 술을 마시면서 농부 레이널드는 죽었고, 이제 여기엔 기사 레이널드가 남았을 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창문 밖의 하늘이 온통 검붉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내와 아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5년차-
전쟁이 끝났다. 이번에도 성지의 수복은 실패했다. 양측 총사령관은 휴전 협정서에 서명한 뒤 악수를 나눴다. 부대는 해체되었고, 나는 고향집으로 돌아왔다. 그곳에서는, 약간 주름이 생기긴 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여인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나이에 비해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눈을 가진 소년이 내게 인사하고는 정중하게 묻는다. "고귀하신 기사님, 혹시 저희 아버지를 아십니까? 레이널드라는 분입니다만..." 달콤한 바람이 깔끔하게 개간된 밭 위로 불고, 활짝 핀 꽃들이 정원에 넘실거린다. 그림으로 그린 듯이 완벽한 평화와 행복의 모습이다.
그러나, 고개를 들어보면 하늘은 끝없이 검붉게만 보인다. 이제 나는 안다. 저 하늘의 색은, 살육과 약탈, 고문, 강간, 수많은 죄악으로 점철된 성기사의 영혼의 색깔임을. 저 평화와 행복 속에 스스로를 끼워넣을 수는 없다. 농부 레이널드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기사 레이널드는 불가능하다.
나는 투구를 벗고 여인과 청년을 껴안는 대신, 그런 사람은 알지 못한다고 대답한다.
언젠가 가족에게 돌아가면 이걸로 다 함께 행복하게 살겠다는 생각을 하며 약탈한 금화와 보석이 가득 담긴 자루를 반강제로 청년에게 건네 준 나는 말머리를 돌려, 전쟁 중에 얼핏 소문을 들은 한 영지로 향한다. 소문에 따르면 그 영지를 다스리던 선대 가주가 방탕한 삶에 질린 끝에 흑마법에 손을 댔고, 고대의 악마를 깨웠다고 한다. 한 때는 아름답고 풍요로웠던 그 영지는 이제 끔찍한 괴물과 산적으로 넘쳐나는 지상의 지옥이 되었고, 현 가주는 영지를 수습하기 위해 용병을 모으는 중이라고 한다.
나는, 그 지옥이야말로 성기사 레이널드가 진정 가야할 곳임을 깨닫는다.
이름:사마트 카엔노르싱
천상 이름:제라키엘
컨셉:보호자이자 살인자
가문:슬레이어
형상:에레쉬키갈
파벌:루시페리안
본성:케어기버
태도:레벨
의지력 회복:인간에게서 신앙을 거둬들일 때마다 회복
속성
힘 1
민 5
체 4
카리 2
조작 2
외모 2
지각 3
지능 2
재치 3
능력(재능 기술 지식에 13 9 5 배분, 최대 3닷)
기술 13-
보안 3
은신 3
동물소통 2
총화기 2
운전 1
예의범절 2
재능 9-
경계 3
운동 3
회피 2
거리지식 1
지식 5-
의학 4
금융 1
법학 1
장점(배경 5 전승 3 덕목 3 배분, 덕목에 기본 1씩)
배경 5-
계약3
자원1
영향력3
유산 2
전승 3-
영역의 전승2
죽음의 전승2
덕목 3-
양심 2
확신 3
용기 3
신앙3
번민4
의지력 8
---------------------------------------------
Q. 추방 전 캐릭터는 어떠한 존재였습니까?
타락한 자들은 모두 현재와는 전혀 다른 존재였습니다. 각 가문은 일정한 의무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 공통의 의무 안에서도 다양성의 여지는 당연히 남아 있습니다. 가문 내의 의무를 통해 창조에 어떠한 방식으로 이바지하였는지, 그 의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했는지, 의무를 위해 어떠한 어려움을 극복했는지를 고민합니다. 더불어 그 당시, 조물주의 창조물 중에서 가장 높이 평가 받는 인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신을 섬기는 엘로힘이던 시절의 제라키엘은 어떠한 의문도 번민도 갖지 않고서 신의 결코 틀리지 않는 ‘위대한 구상’을 구성하는 부품 하나로 스스로를 규정하고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당시 제라키엘은 남타르로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동식물들에게 죽음을 주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제라키엘이 보기에 인류는 좀 모자라고 손이 많이 가지만 사랑스런, (인간 식으로 표현하자면)나이차가 많이 나는 어린 동생 같은 존재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행복은 어리석음에서 비롯하며, 그래서는 짐승과 무엇이 다르냐는 의문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Q. 어떻게 추방당했습니까?
추방은 데몬이 조물주에 맞서 루시퍼의 기치를 따르기로 한 결정적인 순간입니다. 이 중대한 결정을 하게끔, 캐릭터를 이끈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루시퍼가 반역을 선언하자 그에 따른 것입니까? 아니면 갑자기 어느 순간, 반역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단 하나의 사건이 있었을까요? 캐릭터에게는 어떤 동기가 있었나요? 타락한 자들 중 일부는 인류를 향한 사랑과 연민으로, 또 그들이 지켜 본 조물주의 부당함에 맞서 반역을 택했습니다. 다른 이들은 인간과 함께 하기를 원했거나 인간에게서 숭배받고 싶어 하는 등 가질 수 없는 것을 갈망했기에 반역을 택했습니다. 물론, 남들에게 휘둘리거나 심심해서 반역에 가담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인간은 낙원에서 불로불사를 누리고, 죽음은 아직 동물과 식물에게만 주어진 운명이던 시절, 인간은 사랑하던 것들의 죽음을 접하고 슬퍼했습니다. 이 무렵까지 엘로힘으로서 신을 섬기던 제라키엘은 슬퍼하는 인간 앞에 나서서 죽음의 필연성을 설명해주고 싶었지만 인간들을 사랑하되 스스로의 존재를 드러내지 말라는 신의 명령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제라키엘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 건 달의 회랑에서의 대토론 결과 제기된 '인류가 그 어리석음으로 인해 낙원의 힘을 남용하며 창조의 가능성을 소진시키고 있다'는 가능성이었습니다. 제라키엘은 초조해했지만 핀드가 아닌 그로선 미래의 가능성을 엿볼 수 없었습니다. 바로 그 때 루시퍼가 '첫 번째 명령을 우선해서 따를 것' '이 선택이 틀렸다면 그 모든 책임 역시 나의 것'임을 선언했고 제라키엘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루시퍼는 스스로를 부품으로 규정했던 자신과 달리, 스스로의 의지로 어떤 명령을 따를지 선택했습니다. 제라키엘은 천사가 자신만의 자유의지를 가지고 선택할 수 있음을 스스로 증명해 보인 루시퍼에게 매료되었고, 자신 역시 신의 명령을 일부 거역하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인류를 이해시켜야겠다고 마음을 굳혔습니다. 루시퍼와 함께 하면 왜 사랑하는 존재가 죽을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인류에게 설명할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여긴 제라키엘은 전쟁의 시작과 끝을 루시퍼와 함께 했고, 결국 전쟁에서 패배해 무저갱에 떨어졌습니다.
Q. 전쟁 중에는 무엇을 하였습니까?
전쟁의 선봉장에 섰습니까? 아니면 전쟁의 결과에 슬퍼했을까요? 전쟁에 거부감을 느끼거나, 충격을 받거나, 강한 유혈 충동을 미화하면서 전쟁에 참여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캐릭터를 괴롭히는 전쟁 당시의 상흔이 있나요? 캐릭터는 위대한 업적 혹은 위대한 만행을 저질렀을까요? 반역과 전쟁이 계속되면서, 전쟁 중 어쩔 수 없이, 혹은 자발적으로 해야 했던 일들은 추방된 자들을 쉴 새 없이 변화시켰고, 많은 이들의 열의는 희미해지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이 캐릭터를 어떻게 바꾸었습니까?
전쟁 중의 제라키엘은 아즈라엘의 휘하에서 카스데자 건설에 참가하며 영역의 전승을 익혔고, 이후 카론과 함께 헤이븐 건설에도 일부 참가했습니다. 애초에 제라키엘은 별로 호전적인 성격이 아니었고, 옛 형제들과의 직접적인 교전보다는 그쪽이 더 마음이 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바벨탑이 세워졌다가 무너지고 네필림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긴 세월 동안 전쟁이 계속되면서 그에만 전념할 수 없게 되었고, 먼 거리를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영역의 전승의 힘을 이용해 적진 후방에 침투해서 주요 지휘관을 급습하는 작전에 투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새 임무를 끔찍하게 싫어했지만 점차 그에도 둔감해져갔습니다. 전쟁을 혐오하면서도 그에 길들여져 버린 인간 군인처럼. 마른 나뭇가지를 꺾듯 무심하게 옛 형제를 죽일 수 있게 되었을 무렵 전쟁이 끝났습니다. 완전한 패배로.
Q. 무저갱에서 캐릭터를 괴롭혔던 주요한 의문은 무엇입니까?
"의문의 예 : 루시퍼는 왜 무저갱에 없는가? 우리는 왜 실패하였는가? 전쟁과 반역은 진정으로 끝났는가? 조물주의 의도는 무엇인가? 인간은 우리를 잊었는가? 등 이러한 의문과 캐릭터가 내린 답─설령 답을 내리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 캐릭터가 가진 번민의 근원이며, 파벌을 결정짓거나, 세상을 대하는 시각과 태도의 근간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이후 무저갱에서 벗어나 인간의 몸에 깃들에 이 세상에 다시 돌아왔을 때 이 의문과 답을 현실에 견주어볼 수 있으며, 이 과정을 통해 세상을 대하는 태도와 파벌을 바꾸기도 합니다.
신은 언제까지 인류를 어리석은 존재로 놔둘 것인가? 신의 인류에 대한 사랑은 그저 순종적인 애완동물을 대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감정 아닐까? 신은 접근이 가로막힌 죽음의 영역 너머에 있는 인류의 영혼을 어디에 쓸까?
Q. 데몬이 깃든 '인간'은 어떤 사람입니까?
타락한 자들은 인간의 모습을 ‘훔친 채’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타락한 자가 인간에게 깃들기 전, 그 인간의 삶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 인간은 어떠한 삶을 살아왔나요? 그리하여 마침내 데몬이 그 인간에 깃들 수 있을 만큼 절망하게 된 이유는, 죽음으로 내몰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인간의 삶과 성격은 데몬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므로 신중히 생각해봐야 합니다.
인간 사마트 카엔노르싱은 제법 유복한 가정 출신의 젊고 유능한 외과의였습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장래가 촉망되는 의사였지만 모터사이클 여행을 계기로 혁명가가 된 체 게바라의 전기를 읽으면서, 부유한 상류계급만이 자본과 권력과 결탁한 의학의 빛나는 성과를 누리고, 훨씬 수가 많은 가난한 사람들은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현실에 분노했습니다. 사마트의 부모는 '그 무렵에 흔한, 영리하지만 반항적인 중상류층 젊은이의 치기'로 생각하고 아들의 일탈을 관대하게 봐줬지만 사마트는 신도 부처도 비참한 처지에 내몰린 사람을 보살피지 않으니, 사람인 자신의 지식과 기술로 그들을, 특히 범죄와 마약에 노출된 빈민가의 어린 아이들을 돕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결국 대학을 졸업하고 수련의 과정을 마칠 무렵 부모와 크게 다툰 사마트는, 반쯤 절연한 채 빚을 내어 방콕의 빈민가에서 개인 병원을 차리고는 최소한의 돈만 받으면서 진료를 시작했습니다.
그의 선의와 열정은 점차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그에게 존경을 표하기 시작했으며(사마트가 단호한 무신론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낼 때마다 떨떠름해하기도 했지만) 한두 번 정도는 신문에도 그의 선행에 대한 기사가 작게 실렸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빈민가의 젠트리피케이션과 관련해서 이익을 내고 싶어하던 부패한 기업가들의 미움도 사기 시작했습니다. 사마트의 병원과 그 근처 슬럼을 전부 철거해야 했는데, 사마트는 그러면 아이들이 지낼 곳이 없어진다고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사마트는 우호적인 공무원과 경찰, 기자들의 도움을 받아 어떻게든 재개발을 취소시키거나 최소한 보상금이라도 올려 받으려고 병원 일도 등한시하고 뛰어다니던 중, 첫 눈이 내리던 날 기업가가 고용한 폭력배들의 총을 맞았습니다. 사마트의 35세 생일날이었습니다. 쓰러져 죽어가던 그는 난생 처음으로 무신론자로서의 신념을 버리고 신에게 아이들을 지킬 힘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목숨이 끊어지기 직전, 무저갱에서 갓 탈출한 상태이던 제라키엘이 그의 기도에 응답했습니다.
Q. 인간의 어떠한 점이 캐릭터를 일깨웠을까요?
인간의 성격이나 기억에 대한 무언가는 수천 년동안 번민과 고통에 시달린 타락한 자에게 충격을 주었으며, 그리하여 타락한 자는 약간의 분별력을 되찾았습니다. 그 요인은 무엇이었을까요? 이는 데몬의 뒤틀린 인식을 다시 확인시켜주는 인간 고유의 고통이나, 덕목, 독하거나 냉소적인 영혼 속에 남은 신앙이나 희망, 사랑, 또는 연민일 수도 있으며 야망이나 욕망, 증오일 수도 있습니다.
사마트의 몸에 깃들어 그의 기억을 엿본 제라키엘은 동네의 고아들이 서툰 글씨로 쓴 생일 축하 편지를 읽으며 사마트가 느끼던 사랑을, 다쳐서 죽어가는 환자를 살릴 때의 환희를, 자신의 노력과 헌신이 현실에 부딪쳐 무가치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이익을 위해선 뭐든 하는 탐욕스럽고 잔인한 부자들에 대한 미움을 고스란히 함께 느꼈습니다. 그 감정들은 아주 오래 전, 인류를 '좀 우둔하고 갑갑할 때가 많지만 그래도 사랑스럽고, 눈을 뗄 수 없는 존재'로 여기던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냈고, 무저갱에서 고통받으며 키워낸 번민을 상당 부분 희석시켰습니다.
Q. 인류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아이들? 추종자? 장난감? 경배자? 힘의 근원? 동료? 적? 도구? 친구? 타락한 자들은 모두 자신만의 시야로 인류를 봅니다. 한 때 인간들은 가장 고귀한 존재였고 타락한 자들은 인류를 사랑하기에 싸우고 고통 받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에게 있어서 이 사랑은 수천 년간의 고통 속에서 뒤틀렸고, 증오로 변했습니다. 캐릭터는 어떤가요?
현재 제라키엘은 자기 고아원의 아이들을 상대로 계약을 맺어 신앙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아이들 특유의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신앙이 그의 구미에 맞기도 했고, 빈민가의 거친 환경에도 불구하고 아직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순수함이 남아 있는 아이들이 옛날 그 시절의 인류를 연상케한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사라진 루시퍼를 찾아내어 의문에 대한 답을 얻고, 인류가 진정으로 신과 대등한 초월자의 경지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 다시 한 번 지켜보는 게 제라키엘의 목적입니다. 특히 어린아이들의 삶과 성장을 곁에서 지켜보면 그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인간의 몸을 빌려 세상으로 귀환한 지금, 조물주와 루시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무저갱에 루시퍼가 없다는 걸 알고 많은 동족들이 루시퍼를 의심하거나 아예 루시퍼가 자신들을 팔아넘겼다고 믿게 되었지만, 제라키엘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루시퍼 자신이 가장 탁월한 천사로서 전쟁 동안 보여준 개인적인 능력과 위엄에 매료된 것도 사실이지만, 천사가 자신만의 자유의지를 가지고 선택할 수 있음을 보인 이상 신이 결코 루시퍼를 방치해 두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제라키엘이 루시퍼에 대해서 갖는 감정은 '절대적인 충성을 바칠 주군'이라기보다는 '존경하는 위대한 스승이자 모범'에 가깝습니다, 신에 대해서는 무저갱에 갇혀 있던 시절의 의문에 더해 그 때의 고통에 대한 원한이 더해져, 의구심 4 적개심 6 정도의 감정을 갖고 있습니다.
Q. 세상으로 귀환한 시기는 언제인가요?
‘악의 권태'는 데몬 더 폴른의 메타 타임라인(1999년 무저갱의 균열(여섯 번째 마엘스트롬) → 2002년 11월 LA의 루시퍼 현현)을 따르되, 타임 오브 저지먼트에서 제시한 '세상의 종말'은 가져가지 않습니다. 즉, 캐릭터들은 무저갱이 찢겨진 초기에 세상으로 귀환했을 수도, 또 최근에 돌아왔을 수도 있습니다. 캐릭터들이 귀환한 시기에 '격차'가 생길 경우, 시트 상에 메리트(ex. 프리비 점수 추가)와 패널티(ex. 번민 점수 증가) 또는 제약(ex. 전승 n점 이상, 유산 n점 이상 등)을 가할 수 있습니다. 또한 시나리오의 원활한 진행과 캐릭터 사이의 정보 격차를 줄이기 위하여, 현재 시점으로 세상에 귀환한 지 4년 이상일 시에는 태국인·현지인 설정은 불가능합니다.
3년 정도 됐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캐릭터는 현실을 어떻게 대합니까?
한 때 창조의 힘을 다뤘던 타락한 자들은 현대 WoD에서는 훨씬 더 일상적인 문제를 다뤄야 합니다. 캐릭터는 인간 숙주의 삶과 비슷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나요, 아니면 인간적인 삶을 완전히 버렸나요? 겉으로나마 인간적인 삶을 지속하고 있나요? 인간 숙주의 가족과 친구들은 어떻게 대하나요? 그들과의 관계를 끊은 적이 있나요? 아니면 그들을 속여 여전히 인간 숙주인 척 하나요? 그들 중에 캐릭터를 의심하는 사람도 있나요?
사마트의 병원을 처분하고, 대신 근처의 고아원을 인수해서 낮에는 고아원장으로서 생활하며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고 스폰싱을 부탁하고 돈을 마련합니다. 세속의 돈보다는 신앙의 수급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고아원이 있는 빈민가의 이웃 중 똑똑하고 나름 재주가 있는 사람들 중 3명을 골라 계약을 맺는 데도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제라키엘이 사마트의 몸을 차지하고서 얼마 뒤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사마트를 죽이려 들었던 폭력배들이 그가 죽지 않았다는 걸 알고는 밤마다 고아원 창문에 돌을 던지고 아이들에게 겁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사마트의 영향을 받아 고아들에게 애정을 느끼고 있던 제라키엘은 아이들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공포를 느꼈지만, 아이들 앞에서는 그런 내색을 할 수 없었습니다.
얼마 뒤 그 폭력 조직을 이끄는 보스가 그를 저녁식사에 초대해서 '알다시피 이 근처는 위험한 곳이니 고생할 것 없이 고아원을 적당한 가격에 팔고 떠나서 편히 살아볼 생각 없냐'고 제안을 했습니다. 겉으로는 정중한 단어들로 포장되어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돈 몇 푼 받고 꺼지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남겨질 아이들과, 자신과 함께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으려고 노력하던 사람들을 생각하며 주변을 정처없이 걷던 제라키엘은 문득 주변에 인기척이 전혀 없고 엄청난 폭풍이 불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있던 영역의 전승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해 섀도우월드에 들어왔다는 걸 깨달은 제라키엘에게 해야 할 일은 명백해 보였습니다. 되돌아가는 그의 뇌리에 잊어버리고 있던 전승들, 천상과 반역의 기억이 희미하게나마 떠올랐습니다. 도착한 곳에서 제라키엘은 자신의 묵시형상을 드러내어 보스와 주변의 부하들을 모조리 살해하고 고아원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당장은, 위협이 끝났습니다.
사마트의 죽음의 계기가 되었던 젠트리피케이션 계획은 그 후로도 최종승인을 앞두고 방콕 시의회에서 밀고 당기기를 반복 중입니다. 그리고 제라키엘은 자신이 해야할 일을 확신하고, 적대적인 기업가나 돈을 받고 빈민가에 불리한 기사를 쓰는 기자를 처리하기 시작했습니다.
1년 쯤 전에 오랜만에 사마트의 부모가 찾아와서는 "총까지 맞았다고 들었는데 지금이라도 이런 일 관둘 생각 없냐, 프렉크라 인터내셔널 병원의 외과장과 아는 사이이니 소개해줄 수 있다" "좋은 일 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그것도 자신이 안정된 다음에 하는 거다, 모처럼 괜찮은 집안 외아들로 태어났으면 그 기회를 살리는 게 맞지 않냐"고 눈물흘리며 부탁했지만 사마트(안의 제라키엘)는 "그 전에 외아들에게 총질하라고 시킨 작자를 알아내 어떻게 해볼 수는 없냐"고 까칠하게 대답하다가 다시 싸울 뻔했습니다. 결국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하고 헤어졌지만 가끔 안부 전화 정도는 하는 정도 수준으로는 관계가 회복됐고, 부모는 가끔 돈을 보내주기도 합니다(물론 그 돈들은 거의 다 빚을 갚거나 고아원 지붕을 수리하거나 아이들에게 좀 좋은 식사 한 끼를 먹이는데 쓰입니다, 리소스 1닷이 뭐 그렇죠). 요즘 제라키엘은 전화 저편에서 부모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자신의 마음 속에서 안도감과 함께 미안함이 느껴지는 걸 깨닫고 놀라고 있습니다.
이제, 제라키엘은 아이들과 이웃들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할지 명확히 압니다. 그에 대해선 어떤 후회도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아이들도 결국 자라면 사마트가, 그리고 자신이 증오하는 탐욕스런 부자와 천박한 기자, 잔인한 갱들처럼 되어버리지 않을지, 그렇게 되지 않는다 해도 자신의 더러워진 손으로 과연 아이들을 안아줘도 될지에 대한 고민이 그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Q. 라바나와는 어떠한 관계입니까?
물론 해당 사항은 라바나가 NPC인 만큼 텔러와의 조율이 필요합니다만, 일단 라바나와 어떤 관계를 구축하고 싶으신 지, 라바나를 어떻게 인지하고 있는 지, 라바나는 캐릭터를 어떻게 인식하여줬으면 좋겠는지를 자유롭게 써주시면 최대한 해당 내용을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라바나와의 관계는 그냥 이름만 알고 있는 관계로도 족합니다.
프렉크라 인터내셔널 병원 자회사 경영지원실의 기획전략팀에서 일하는 라바나와는 일 관련해서 오가다가 몇 번 마주쳐서 인사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같은 슬레이어 하우스 출신이라는 걸 알아봤지만, 예전에 LA에서 큰 사고를 친 적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어서 별로 신뢰하지는 않습니다.
Q. 그 외에 해당 캐릭터에 대한 참고사항.
겉보기엔 30대 중반의, 큰 키에 깡마르고 검은 장발 머리에 동그란 검은 안경을 즐겨 쓰는 남자입니다. 싸구려 담배를 자주 피웁니다. 대체로 예의바르고 진중한 편이지만 동족끼리 있을 때면 가끔 성경 구절을 패러디한 시니컬한 농담을 던지기도 합니다. ...근데 실 플레이에선 반대로 평소엔 개그 치다가 가끔 가다 한 번 진지해지는 듯.
*다른 PC들에 대한 호칭:
제레마이어에게:반말 사용. 성으로 부름(미스터 콜). 오늘의 "안 죽었냐"를 비롯해 은근히 막 대하는 듯하면서도 꼬박꼬박 성으로 부르는 게 미묘한 거리감의 포인트(?)
브라마리에게:존댓말 사용. 이름으로 부름(온유 양). 꼬박꼬박 ~양을 붙이는 게 미묘한 거리감의 포인트2
바루나에게:반말 사용. 츠렌으로 부름(서니). 꼬박꼬박 츠렌으로 부르는 게 이하 생략
다른 PC들에게 한꺼번에 대화를 걸 때는 존댓말 사용
좋아하는 성경 귀절 및 기도문:
이사야서 41장 11절~13절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시편 23편 1절~6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편 1편 1절~6절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편 46편 1절~11절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존하신 이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뭇 나라가 떠들며 왕국이 흔들렸더니 그가 소리를 내시매 땅이 녹았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와서 여호와의 행적을 볼지어다 그가 땅을 황무지로 만드셨도다
그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하느님의 어린 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여, 저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주여, 이 혼을 긍휼히 여기소서."
기타 설정:
제라키엘은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항하기 위해, 갱들이나 기업가와 정치가들의 대리인, 기자들의 대화를 엿듣고 가끔은 그들을 암살하기 위해 섀도우랜드에 들어간 적이 몇 번 있다. 섀도우랜드는 원래 (그가 엘로힘이던 시절 건설에 참여한) 헤이븐이었이지만, 지금은 '저승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한 망령들이 배회하는, 신에게도 외면 받은 영혼들의 쓸쓸한 땅'으로 인식하는 한편 목적 달성을 위한 우회 통로로만 여긴다. 무의식적으로는 한 때 자신이 열과 성을 기울여 창조한 장소가 어떻게 퇴락했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해보는 걸 꺼리기 때문. 섀도우랜드의 유령들에 대해서는 약간의 동정심을 갖고 있지만 전쟁 당시부터 암살 같은 지저분한 임무를 해온 자신이 유령들을 위로하는 것도 주제 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중.
한 때 헤이븐 건설을 주도한 카론의 경우, 카론은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무저갱으로 떨어지지 않고 헤이븐 너머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제라키엘은 그런 카론에 대해 처음엔 헤이븐이 왜 이렇게 변하도록 방치했는가 싶어서 분노했지만 지금은 자신도 이런 처지이니 카론을 탓하면 자신의 무력함을 탓하는 의미도 되므로, 카론 역시 별 수 없었겠거니 생각하고 있다. 카론 개인에 대해서는 비극적인 로맨티스트로 기억하는 중. 슬픔과 그리움을 느끼는 한편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다른 pc들 앞에서는 카론을 비웃는다.
이하는 참고하기 위한 카론의 설정:
Charon은 한 때 아즈라엘의 부관이었습니다. 그는 일반적으로 인류에 대한 그의 사랑을 능가하는 사랑으로 인간과 사랑에 빠졌다고 인정했습니다. Azrael은 천사가 일반적으로 정욕이나 열정으로 고통받지 않기 때문에 놀랐습니다. 전투에서 그의 분노는 그녀의 영혼을 신이 정한 목적지로 데려가는 하늘 군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Charon은 Azrael에게 Halaku가 그들의 초점을 옮겨야 한다고 설득했습니다. 다른 여섯 가문은 이미 천국의 전복을 모색하고 있었으므로 Slayers의 우선 순위는 죽은 자의 영혼을 구하고 천국의 천사가 할 수 없는 안식처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없는 죽음의 세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안전하고 전투에서 쉴 수 있는 우리만의 세계를 건설합시다." Azrael은 동의했고 Charon은 Alabaster Legion의 4분의 1을 차지하여 이 Haven을 건설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Lucifer에게도 비밀로 유지했습니다. 다른 가문들이 파괴의 대리인이라고 멸시하던 천사들이 이제 세계 그 자체보다 가장 야심찬 창조 행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1]
Charon과 그의 조수들은 그들의 행동을 숨기기 위해 죽음의 고통과 고통으로 만들어진 베일에 몸을 숨겼습니다. 그들은 점차 공허함에서 일했고, 그것은 공간이 되었고, 그런 다음 장소가 되었고, 마침내 죽음이 제1세계에서 앗아간 모든 것의 아름다움을 반영했습니다. 충성파 천사를 포함하여 어떤 생명체도 슬레이어의 도움 없이는 헤이븐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안전함이 입증되자 Charon은 선호하는 음영을 Haven으로 운반하기 시작하여 Mortality War에서 승리하면 살아있는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유령을 Haven으로 수송하는 임무를 맡은 슬레이어는 스스로를 "Ferrymen"이라고 불렀습니다.
유령들은 공허 속에서 안절부절하기 시작했고, 최초의 여성 유령은 Charon에게 기억을 강화하기 위해 소유물 없이 유령들이 길을 잃었다고 알렸습니다. 어떤 죽은 것도 베일을 통과할 수 없었기 때문에 Charon은 규칙을 수정했습니다. 각각의 새로운 유령이 Haven에 들어올 때 그녀의 가장 소중한 소유물은 기억의 물건에서 다시 만들어질 것입니다. 곧 Slayers는 Malefactors와 합류하여 Haven이 건물, 도시 및 기타 소유물과 같이 세상에서 전달되는 모든 것의 저장소가 되었습니다. 나중에도 여전히 Haven이 충분히 안전하지 않다고 걱정한 Charon은 공허 속으로 더 깊이 뛰어들어 Haven 아래에 광대한 기억의 바다를 만들고 Malefactors에게 비밀 도로로 연결된 바다에 새로운 섬을 세우도록 요청했습니다. Charon은 이 섬 중 하나에 집을 마련했습니다. 제1 세계에서 멀리 떨어진 여기에서 그들은 풍경을 그들의 변덕에 따라 형성하는 데 더 많은 재량권을 가졌습니다.
자신이 충분히 안전하지 않다고 확신한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영원히 안전할 수 있는 요새를 건설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자신의 궁전 아래 공허를 파고 들었습니다.
결국 베일은 뚫렸고 천상의 군대는 헤이븐을 공격했습니다. 기억의 바다 깊숙한 곳으로 이어지는 샛길은 대부분의 유령과 나룻배가 통과한 후 케르베로스에 의해 절단되었고 카론은 다시는 천사나 악마에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른 Slayers는 체포되었고 반란은 끝났습니다. 귀신들이 형벌을 기다리는 동안 아무도 오지 않았고, 그들은 처음으로 홀로 남겨졌다.
Abyss가 갈라진 후 Demons가 지구로 돌아오자 많은 Slayers는 Charon을 찾는 것이 Lucifer를 찾는 것만큼 시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카론주의자"들은 망자의 제국을 이끈 카론에 대해 보고한 망령들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쫓았지만, 불행하게도 그것은 잘못된 정체성의 경우일 수 있습니다.
------------------------------------------------------------------------------------------------------
첫 세션 때만 해도 고아원 비품으로 쓰기 위해 호텔 어메니티를 훔치는 걸 다른 PC들에게 들키던 그는, 엔딩에서는 옛 의뢰인의 전 재산을 물려받았고 드디어 고아원의 아이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게 되었다. 그에 더해, 옛 의뢰인의 소개로 영향력 있는 장군을 소개 받아 그의 힘을 빌려 젠트리피케이션을 취소시켰다. 하지만 동시에 흑막이라고 할 수 있는 어스바운드에게 "내가 직접 널 거둬들일 것이다"라고 원한 어린 약속을 하면서 흑화 플래그가 섰다. 게다가 시나리오 후반 루시퍼에게 일어난 어떤 사건으로 인해, 미카엘이 이끄는 천상의 군대가 다시 지상의 데몬들을 공격해 올 거라는 게 암시되면서 앞 날이 별로 밝지 않게 된 상태. 후속 시나리오를 플레이할 기회가 생길 지는 모르겠지만 음.... 너 이 새끼 파이팅^^!
첫 데몬 캐릭터였는데 개그와 진지함이 잘 섞여서 평가가 좋았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듯하다.
https://garleng.tistory.com/1896
꿈 속에서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있었고, 이 애와 다른 예쁘장한 여자애가 나타나 누구랑 사귈 거냐고 따지다가... 이 애가 키스하려는 듯 내게 몸을 붙여오는 꿈이었다. 그 향기로운 숨결을 느끼고 당황하다가 깼다.
나한테 있어서는 그저 악몽에 불과하다. 물론 매력적이고 좋은 애였고, 당시 그 애가 내게 어느 정도 호감을 보이기도 했지만 나는 그걸 받아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건 나이가 든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니, 그 때보다 상태가 더 나빠졌다. 나는 연애를 비롯한 깊은 인간관계 자체가 싫다. 현실의 그 애는 아마도 지금쯤 나에 대해선 잊어 버리고 괜찮은 남자랑 결혼해서 잘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도 하고. ...정말로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그러기를 바란다.
이런 종류의 꿈을 꿀 때마다 '혹시 내가 무의식적으로 연애하고 싶어하는 거 아닌가' 고민했었다. 그리고 한 동안 이런 종류의 꿈은 꾸지 않아서 드디어 내가 그런 하찮고 무가치한 욕구를 떨치는 데 성공한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안도하고 있었는데... 또 꿔 버렸다.
난 한 때 사람이 싫다고 생각했었다. 이제는, 그저 깊은 인간관계가 싫을 뿐 사람 자체가 싫은 건 아니라고 생각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 인간불신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나는 혼자 살다 혼자 죽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기만을 바란다. 더 없이 간절히.
.....
뭐 그래도 그 애가 나에 대해선 잊어 버리고 괜찮은 남자랑 결혼해서 잘 살고 있기를 바란다. 기왕이면 착한 자식도 한둘 정도 낳아서.
"이것이 삶인가? 좋다, 그럼 다시 한 번!"이라고 가슴을 펴고 선언했었지만 아무래도 난 도저히 그렇게는 못하겠다.
나는 한 번 죽으려다가 실패했었고, 그 이후로 가능한 한 삶을 견뎌보기로 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직 한 번이라는 전제 하에서의 결심이었다. 화창한 5월 오후고, 하늘은 맑다. 그리고 나는 내가 살아 숨쉬는 모든 순간들이 고통스럽다. 언제나처럼.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고 싶다.
호 요소-
*춤을 통한 강령의식이라는 참신한 소재
*폐교된 대학교의 음산한 분위기와, 그 대학교 건물 옥상에서 춤추는 장면과 같은 인상적인 미장센
*무력한 희생자로 보였던 주인공이 사실 원래는 끔찍한 초자연적 힘을 가진 존재였다가 힘과 기억을 잃은 상태이며, 악역 사교도 집단처럼 보였던 이들이 그런 주인공을 물리치기 위해 이쪽 세계에도 저쪽 세계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은 힘을 동원한 게 사건의 발단이었다는 반전(주된 동기는 어디까지나 회장의 사적인 복수이며, 그 수단으로 선택한 게 좀비 만들기라는 점에서 '알고 보니 좋은 놈들이었다'고 하기도 어려운 도덕적 애매함 자체도 마음에 든다)
*일단 주인공이 힘과 기억을 되찾고 자신을 족치려 했던 이들을 역으로 족치는 걸로 끝나지만, 주인공을 제거하려고 했던 회장과 그에 조력한 (아마도)무속인 집단, 그리고 가톨릭으로 추정되는 종교 조직이 연합해서 반격을 준비하는 걸 암시하는 엔딩. 이런 소재 좋아한다...
*Scene과 Sin의 발음이 유사하다는 걸 이용한 제목 센스. 神일 지도?
불호 요소-
*배경 음악에 묻혀서 잘 들리지 않는 대사들. 그나마 들리는 대사들도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경우가 많음
*시간대가 낮이었다가, 이야기 내에서 그렇게 긴 시간이 흐른 것도 아닌데 갑자기 밤이 되어 있는 등 장면 전환이 매끄럽지 못함
*스토리 상 결과적으로 '춤'이 딱히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음. 초반 배경이 영화 촬영 현장이라는 설정도 필연성이 부족함
*Scene과 Sin의 발음 유사성을 이용한 것까지는 좋은데 그게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음
개인적으로 추측하기에는 '춤을 소재로 한 영화가 사실은 강령의식이었다는 내용'과, '주인공이 사실 끔찍한 초자연적 힘을 가진 존재였고 그런 주인공을 제거하기 위해 대기업+무속인 집단이 연합했다가 작전이 실패한다는 내용' 둘이 원래는 서로 무관한 별개의 작품 스토리로 구상되었다가 어떤 사정으로 인해 하나의 영화로 합쳐진 게 아닐까 싶다. 제목이 Scene과 Sin의 발음 유사성을 이용한 것까지는 좋은데 그게 이야기와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원래는 첫 번째 스토리의 제목으로 구상되었다가 두 번째 스토리와 합쳐진 이후에도 수정이 되지 않아서 생긴 문제로 추정된다. 나름 땜질을 하려고 한 티는 나지만 아무래도 여전히 위화감이 들고, 그걸 덮기 위해서 복합 장르라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실패한 시도로 보인다. 이런 식으로, 원래는 별개의 스토리 원안이 둘 이상 있었고 그걸 영화화하며 억지로 합치는 과정에서 위화감이 생기게 된 게 아닐까 의심스러운 케이스는 이 영화 외에도 있다. 귀문...
큰 스포일러가 많아서 접힘글로 처리ㅇㅇ
나는 보면서 미처 캐치하지 못한 부분도 꼼꼼하게 잘 봤네. 역시 프로는 다르구나.
https://extmovie.com/movietalk/35141836
https://extmovie.com/movietalk/35161502
https://extmovie.com/movietalk/35197738
심상정의 몰락을 지켜보면서 새삼 드는 생각은, 노동이나 환경, 소수자 의제를 우선시하는 좌파가 정치적인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딴에는 전략적 동맹일 뿐이랍시고 극우와 제휴하기 시작하면 결국 장검의 밤 때 숙청된 나치 내 좌파(웃음)들 꼴이 난다는 것이다...
녹색정의당이 0석을 찍으면서 원외로 쫓겨난 건 유감이지만,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는 뻔하고 진부한 핑계 대가면서 돌격대 노릇하는 꼴을 보지 않게 된 건 다행스럽다. 이를 계기로 두 번 다시는 저짝 패거리들과 어울리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절대악을 막기 위해서라면서 늘 좌파들에게 일방적인 양보를 요구하는 민주당이 ㅈ같은 건 인정하지만, 저짝 패거리와 붙어 먹는 건 선택 가능한 옵션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문득 심상정을 만났던 게 기억난다. 아마 2016년 쯤이었던가...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가 한창일 무렵이었다. 예술의 전당 근처였던가... 심상정이 연설하는 것과 마주쳤는데, 연설이 끝나고 자리를 떠날 때 쯤 "시간 괜찮으시면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없겠냐"고 청했었다.
당시 나는 정의당 지지자였고, 투표도 여러 번 했었지만 그 무렵 이미 정의당은 이념이나 대의가 아닌 의석 수와 입지를 위해 타협하고 민주당과는 원팀이라고 말하면서도 충돌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심상정에게 "정치적 이익을 위한 애매한 타협은 하지 말되 민주당에게는 너무 날 세우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었다. 심상정은 웃으면서 "저희가 민주당과 싸우긴 왜 싸워요, 동맹인데"라고 대답했지만... 순간 어딘지 모르게 그 대답이 건성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내가 민주당 지지자라고 여겼던 걸지도 모르겠다.
여튼 당시 나는 옆에 있는 경호원으로 추측되는 사람들 눈치가 좀 보이기도 했고, 나도 내 생각을 충분히 정제해서 말할 수 없는 상태인데 바쁜 의원 오래 잡고 있기도 좀 그렇다 싶어서 "좌파 정당으로서의 선명성을 유지한 채로 박근혜 정권 및 새누리당과 싸워달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인사를 건넸다. 심상정은 어색하게 웃기만 할 뿐 끝내 대답은 하지 않았다. 난 뭐라고 말하기 힘든 복잡한 심정으로 그가 떠나는 뒷모습을 지켜봤지만, 박근혜가 탄핵되고 다음 대선에서도 심상정을 찍었었다. 문재인이 될 것이라는 걸 충분히 예상하고도 남았지만, 가난한 좌파로서의 내 자존심은 민주당 후보를 찍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이후 문재인 정권에서도 정의당은 계속 정권과 갈등했고, 가끔은 석연치 않을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기간 동안 내내 나는 심정적으로 정의당 편이었다. 계약직 단기 노동자이자 안 팔리는 작가로서 매달 내야 하는 최저한의 당비조차도 부담스러웠기에 당원 가입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끔 돈에 여유가 생기면 후원금도 냈었고. 하지만 점차 내 마음은 정의당을 떠나고 있었고, 지난 대선에서 나는 노동당 이백윤 후보를 찍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정의당에 실망하게 된 건 작년의 일이었다. 윤석열은 이명박 때 인사들과 검찰 출신들로 대통령실과 내각을 채웠고, 그 과정에서 밥그릇을 잃고 그들 나름 윤석열에 대한 원한이 생긴(그러나 쓰레기이긴 마찬가지인) 이준석이나 천하람 같은 것들이 생겼다. 정의당 내에서는 그들과 제휴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생겼고, 심상정은 그를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았다. 결국 제3지대를 자칭하는 기괴한 혼종이 생겨났다(류호정은 뭐 그럴 거 같았지만 장혜영은 실망스러웠다. 좋게 표현해서 '실망스러웠다'는 거다, 썅).
그리고 2024년 총선이 끝났다. 녹색당과 합쳐진 정의당은 창당 이후 최초로 0석 신세가 되면서 원외정당 신세가 되었고, 심상정은 정치 은퇴를 시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화창하고 아름답지만, 떨쳐낼 수 없는 불길함도 함께 느껴지는 봄날 오후다. 그리고 나는 그 흐린 저녁 하늘 아래에서 어색하게 웃으며 내 시선을 피하던 심상정을 떠올린다. 결국은 오늘 같은 날이 오리라는 것을, 나는 10년은 더 된 그 날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제는 아예 원외정당이 되었으니 당장의 입지에 연연하지 말고 다시 야성을 찾고는 노동자와 소수자의 편에 서서 싸워주기를 바랄 뿐이다. 고 노회찬 의원이 "우리가 가야할 곳은 좌도 우도 아닌 아래다"라고 했듯이.
나한테 활짝 웃어 보이고 있더라. 아름다웠다.
당시에는 별로 친하지 않았다. 그 애는 내게 어느 정도 호감을 보이며 친절하게 대했고, 날 좋아한다는 소문도 몇 번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저 동정심일 거라고 생각했고, 만약 진짜 좋아하는 거였다 해도 그런 감정을 받아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어서... 일부러 무뚝뚝하게 대하면서 거리를 뒀었다.
좋은 애였지. 예쁘기도 했고. 하지만 이제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난 이제 그저 홀로 견디다 죽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기만을 원하는 인간이 되었다.
그 애는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란다. 난, 비록 이런 인간이 되었지만.
그 친구도 나름 나에게 친애의 감정이 아예 없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오래 알고 지내기도 했고. 다만, 그런 감정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기엔 내가 너무 뒤틀려 버렸을 뿐이다.
이런 삶도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 나는 그저 홀로 견디다가 죽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난 더 이상 행복을 원하지 않는다.
이런 삶도 있는 거다.
시장에서의 수요를 고려하지 않고 자기만족성을 우선하면서 그걸로 먹고 살 만큼 벌고 싶다는 건 지나친 욕심이 맞다.
하지만 나는, 내가 사랑하지 않은 글은 쓰지 못하는 인간인 것도 맞다.
나는 내가 그러하다는 사실을 이 나이가 되어서야 간신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오직 나 자신만을 위해서, 쓰고 싶은 소설을 쓰고 싶은 방식대로 쓰다가 죽는 것도 나름 낭만이야. 난 부양해야 할 가족도, 나를 걱정할 만한 친구도 없으니까. 한 번 뿐인 삶이라면, 이것도 이것대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왕이면 빨리 죽어서, 아무 것도 느끼지 않고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었으면 한다.
'내가 사랑하는 분이, 날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그 분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옆에서 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애초에 그런 감정을 주고 받는 것 자체가 내키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여전히, 내가 한 때 사랑했던 분이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 자신은 홀로 견디다 죽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기를 바란다.
이제는, 절망만이 나의 본성이 된 것이려니 한다.
진심으로 두려워했던 이유는, '청렴하고 유능한, 신념과 카리스마를 갖춘, 그러나 결국 부하에게 비극적으로 살해당한 지도자'라는 판타지를 뒤집어쓴 애비의 후광을 빼면 허수아비에 불과한 박근혜와는 달리 그가 표상하는 탐욕과 천박함은 이른바 '진보세력' 내에도 이미 뿌리를 박고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명박과 대립하면서도 '그래도 내 주식과 아파트 값은 올랐으면 좋겠다' '그래도 내 자식은 미국 시민권 따뒀으면 좋겠다' 라는 식으로. 이명박은 그렇게 독의 씨앗을 뿌렸다.
결국 그 씨앗은 윤석열 정권에서 거목으로 자라났다. 그 거목은 서민과 노동자의 피를 빨고 더 크게 자랄 테고, 드리우는 그늘은 더욱 짙어질 것이다.
전부 아파서 못 자겠다. 내내 철야하고 몸을 망가뜨려 가면서 작업한 게 허사가 됐어. 그나마, 인간관계 쪽으로는 쓸데 없는 감정을 느끼지 않아서 다행이다.
새삼스럽지만, 빨리 죽어서 아무 것도 아닌 게 되고 싶다.
동료 작가 한 분은 북토크를 위해 인도네시아에 가 있는 모양이다. 알고 지낸 정도 있고, 진심으로 축하하지만... 한 편으로는 솔직히 좀 질투심도 든다. 나는 계약 파기할까 고민 중인데.
그래도 난 내 글을 쓸 수밖에 없겠지. 나는 비록 이렇지만, 내 소설은 나 자신보다 나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