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퇴근하고 바로 갔다 왔더니 너무 늦은 시간이라서 고꾸라져 자느라 오늘 올림.
평일 저녁 집회인데도 꽤 많았다. 트랙터 행진->남태령에서 경찰들에게 막힘->시민들이 달려감->서울 진입 성공이라는 상황이 한 번 더 반복된 게 주목도가 높았던 듯. 마침 이재명 2심 무죄 받은 것도 겹쳐서인지 몇 만 명은 온 듯했다. 나도 어제 남태령 못 간 게 못내 마음에 걸리던 터라, 평소보다 5분 일찍 사무실에서 탈주해서 왔다.
바닥에 분필로 이거저거 쓰고 그리는 민중미술이 성행 중. 마침 내가 앉은 자리 바로 앞에 누가 적어놨다. "빨갱이라고? 감사합니다^^"
전에도 몇 번 본 전태일 열사 깃발. 펄럭이는 건 멋있었는데 폰카가 화질 구져...
비건 감튀 푸드트럭의 손피켓
이건 누가 그린 건지는 몰라도 분명 트위터 하시는 분이다(...)
요즘 민주당 하는 짓거리가 영 좀 재수 없긴 한데 뭐 그거야 늘 그랬던 거고 곰 탈은 죄가 없으니까.
다시 발견한 노란 풍선 리본. 저것도 이제 슬슬 익숙하다.
파멸 파멸 윤석열 파멸
트랙터 사진도 찍고 싶었는데 결국 못 찍고 돌아와서 아쉬웠다...

다음 주 중으로 탄핵 판결이 나올 거라던데, 결과 여부에 따라선 비교적 평화로운 집회는 오늘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싶어서 단단히 준비하고 경복궁 갔다. 다들 같은 생각이었던 모양인지 오늘은 특히 인원이 많더라. 체감 상으로는 지난 3.1절 집회 때 이상이었다.
남태령 이후 오랜만에 본 전농 분들.
주여, 전 한낯 인간에 불과하고 우리의 투쟁이 당신께서 보시기에 어떠한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의 슬픔과 두려움과 용기와 유대가 당신을 기쁘게 한다면, 불의에 맞서 싸우는 이들에게 당신의 가호가 있기를.
트위터 쪽 지인을 뵙고 받은 카드.
17년 전 촛불집회에서 부모님을 따라온 아이들을 보며, 이 아이들이 자라고 살아갈 나라는 좀 더 덜 나쁜 나라이기를 바랐다. 17년이 지난 지금, 다시 그 기원을 반복한다.
다시 발견한 세월호 리본 풍선
말로만 듣던 하오문 깃발 발견
오늘 공연에서 가장 마음에 든 부분. 아침이슬 따라부르면서 현장에서 이거 듣는 거 진짜 오랜만이라고 생각하며 감상에 젖고 있었는데 그게 바로 다시 만난 세계와 이어졌다. 나 이제 가노라, 다시 만난 세계로.
이젠 일방적으로 친숙해진 불꽃남자 정대만 깃발.
이번엔 가까이서 찍은 세월호 국민연대
새삼 진짜 많았다 싶었는데, 도중에 듣기론 전국에서 100만명이라더라. 전국 단위로 100만이면 영 아쉬운데...
행진 도중 마주친 풍물놀이패. 저 스님 저번에도 뵈었었지.
걸으면서 찍다 보니 흔들렸는데, "제 스스로를 불꽃의 등불로 악을 대항하게 하소서"라고 적혀 있다. 퇴마록 완전히 내려가기 전에 한 번 더 보고 싶다.
행진 도중 내란집회 측이 지나가며 야유하길래 "한줌단이라서 안 들려!"라고 외쳐줬다.
도중에 만난 반도체 특별법 저지 집회. 힘내시라고 외치다가 무책임한 소리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 살짝 울적해졌다.
반대편 차도까지 점령함. 아카이아 노조 깃발의 그 분이 옆 차도에서 엄청 빠르게 지나가시더라.
오늘의 마지막 사진은 (잘 안 찍힌) 스타워즈 저항군 연합
비상행동이 재정 상태도 나쁘고 다들 무리하고 있다고 한다. 비상행동만이 아니라 민주노총도, 현장에 나와 있는 민변 분들도, 의료진 분들도 다들... 다음 주 중에는 어떻게든 끝이 나야 할텐데.

경복궁역 오자마자 보이는 황금거룡 깃발. 기수 분과 가볍게 인사했다. 비건 감튀 처음으로 먹어봤는데 맛있더라.
저 촛불모자 깃발 바로 옆에 <-얘도 가능이라고 적힌 가능충 깃발이 있는 게 신경쓰였다. 모자에 그런 욕망이 드는 거야...?
아무래도 신경쓰여 더 크게 찍어봄.
518 소년이 온다(featured by 민주묘총)
반가워서 가까이서 찍은 키탈저 사냥꾼 깃발. 그렇지 세상의 모든 평화가 오려면 왕이 없어야지.
탄핵집회에서 가장 유명한 깃발 3대장을 꼽자면 역시 아카이아 노조 깃발, 정대만 깃발과 더불어 우리나라 정상영업합니다 깃발이 아닐까 싶다.
위-엄. 지난 주에 본 예술이 혁명이 되는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깃발도 다시 발견해서 찍었는데 사람들 얼굴이 너무 많이 찍혀 그 사진은 뺐다.
천마신교!
SYSTEM:garleng은(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 소책자'을(를) 얻었다
저 잠비나이라는 밴드 음악 스타일이 내 취향이더라.
윤석열을 파면하고 차별과 혐오를 넘어 모두가 평등한 세상으로.
룬썩10새끼가 결국 석방되어 지 우리로 돌아갔다는 소식이 전해져서 다들 탄식했다. 다시 끌어내선 이번엔 구치소가 아니라 교도소에 처넣어주마. 아마 지금 이 시간 쯤 좋댄다고 술처마시고 있지 않을까 싶은데 그대로 뒈져도 나쁘지 않고.
오늘은 여성의 날이기도 했다.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스스로가 페미니스트는 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페미니즘을 지지한다.
룬썩10새끼는 결국 다시 처기어나왔다. 이렇게 끝날 거라곤 기대하지도 않았다. 트위터 쪽에선 이러다가 탄핵까지 기각되고 2차 계엄 본격적으로 하면 다 죽는 것 아니냐는 공포심을 드러내는 글들도 있는데... 뭐, 그럼 죽을 뿐이다. 어차피 늘 혼자 살다 혼자 죽기를 바라왔다. 같은 대의를 위해 싸우는 이들과 함께 죽는 것도 나쁘지 않아.

신대한국 독립군의 백만 용사야 조국의 부르심을 네가 아느냐
삼천 리 삼천 만의 우리 동포들 건질 이 너와 나로다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독립문의 자유종이 울릴 때까지 싸우러 나아가세
원수들이 강하다고 겁을 낼 건가 우리들이 약하다고 낙심할 건가
정의의 날쌘 칼이 비끼는 곳에 이길 이 너와 나로다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독립문의 자유종이 울릴 때까지 싸우러 나아가세
너 살거든 독립군의 용사가 되고 나 죽으면 독립군의 혼령이 됨이
동지야 너와 나의 소원 아니냐 빛낼 이 너와 나로다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독립문의 자유종이 울릴 때까지 싸우러 나아가세
압록강과 두만강을 뛰어 건너라 악독한 원수 무리 쓸어 몰아라
잃었던 조국강산 회복하는 날 만세를 불러보세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독립문의 자유종이 울릴 때까지 싸우러 나아가세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나가 나가 싸우러 나가
독립문의 자유종이 울릴 때까지 싸우러 나아가세
싸우러 나아가세 싸우러 나아가세 싸우러 나아가세 헤이!

진짜 이번 주는 밀린 게임이나 하면서 쉴 생각이었는데 룬썩10새끼 구속 취소 소식('대통령으로서 복귀'하는 건 적어도 아직은 아니긴 하다) 보고는 딥빡쳐서 퇴근하자마자 경복궁으로 튀어갔다.
4번 출구 엘리베이터 바로 옆 횡단보도에 세워져 있던 차. 옆에 아재들이 "사형수를 내보내면 어쩌자는 거냐"고 역정내고 있더라.
진보당당(펄럭). 진보당 지지자는 아니지만 멋있어서 찍었는데 폰카가 화질구지다.
민중의 분노가 나부낀다. 인사하고 스티커도 받아왔다.
그 옆에 있던 공주 깃발.
우리도 정대만처럼. 불꽃처럼!
오늘의 수확물 아카이아 노조 스티커와 황금거룡 수호협회 스티커.
난 언제나 빨리 죽어서 無가 되기를 원해왔었다. 사실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다시 자살 시도를 할 정도까지는 아니고, 지금 죽으면 저 광장을 채울 머릿수가, 룬썩10새끼 파멸을 외치는 목소리가, '나는 불의에 굴복하지 않았다'는 대단치 않은 자기만족꺼리가 하나 줄어든다. 무엇보다도, 난 이제 더 이상 하찮은 인간관계 따위는 원하지 않게 됐지만 그래도 아직 같은 대의를 위해 싸우는 이들과의 연대는 가치 있다고 여긴다. 원래 사람은 여러 측면이 있는 거고, '죽어서 사라지길 원하는 나'라는 측면과 '연대를 원하는 나'라는 측면이 별개의 존재인 것처럼 분리하는 건 불가능하다. 죽는 건 언제든 가능하다. 하지만 이 대오에서 함께 싸우는 건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
지금의 '나'가 죽을 때는 아직은 아닌 것 같다. 적어도 아직은.
그러고 보니 좋아하는 작가 분이 이런 글을 쓰셨다.
https://x.com/DCDaxter_text/status/1897943286234726706

최초로 '국가가 세금을 써서 기초 교육을 국민에게 제공하고, 국민은 그를 이수해야 할 것'을 강제로 규정한 것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국왕이었다. 이후 200여 년에 걸쳐 그 대상과 지역이 확대되어 왔고, 이를 통해 '중세의 백성'은 '근대의 시민'이 되었다. 평범한 시골 농부조차도 읽고 쓰기와 사칙연산 정도는 할 줄 알게 된 것은, 미시적으로 봤을 때 나름 발전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과정을 거쳐 그들은,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증오와 악의를 주고 받으며 죽고 죽이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조국을 위해 살인하는 것을 정당화하면서, 그로 인해 안전하게 구체적인 이득을 보는 집단이 그 알량한 조국ㅋ 내에서도 따로 있다는 것까지 생각하면 이것은 그저 '변화'일 뿐 딱히 '발전'이나 '진보'라고는 할 수 없고 결국 거시적으로는 인간사 자체가 원래 그렇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지 않나 싶은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내가 좌파로서 노동이나 환경, 젠더 의제 같은데 신경쓰는 건 불합리한 것도 괜찮다는 고집 때문이겠지. 일부러 좀 거창하게 멋부려서 쓰자면, 이것은 내가 영겁회귀로 귀결되는 세상과 삶의 허무를 받아들이는 방식이기도 하다.
고독과 고통을 견디다 못해 죽으려고 했었고, 그것조차 실패해서 부서진 상태로나마 그런 걸 그럭저럭 나의 삶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지만 기왕이면 빨리 죽어서,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고 싶다. 빗방울이나 바람, 모래알 같은.

노란 풍선으로 만든 세월호 리본 발견.
OH OH ANARCH OH OH
밑에 방구석 호러 영화 오타쿠 깃발과 더불어 오늘 본 깃발 중 가장 마음에 든 예술이 혁명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깃발. 밑에 깃발이 호러 취향이라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다면 이건 내 작가로서의 무언가를 불끈하게 만들었다.
발덕후가 여기에도...!
우리는 무시무시한 늑대다. 멍멍.
애국주의를 배격하는 좌파로서, 애국가 역시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저 올드 랭 사인 곡조가 붙은 버젼의 애국가는 예외적으로 마음에 들어.
적기가 가사가 너무 순해졌어(...)
지난 주에 발견한 키탈저 사냥꾼 깃발을 멀리서 다시 발견. 혼자 속으로 살짝 반가워했다. 그 외에도 민주묘총, 전국 설명충 연합회, 우리가 나라를 굴린다를 비롯해 눈에 익은 깃발들이 여럿 눈에 띄더라. 초반에는 명색이 삼일절 집회인데 숫자가 너무 적다 싶어서 살짝 시무룩했는데 5시가 넘으니까 사람 숫자가 확 늘어나서 경복궁 앞 광장을 가득 채웠다. 다음에는 광화문 광장을 되찾을 차례다.
언제봐도 위엄 넘치는 국민이 주인이다 깃발.
이제는 많이 입에 붙은 다만세. 작년 이맘 때만 해도 내가 아이돌 노래 흥얼거리게 될 줄은 몰랐지...
마왕 보고 있지?ㅠㅠㅠㅠㅠㅠㅠ
행진 도중 발견한 풍물놀이패와 신나게 춤을 추시는 스님

그게 우정이 됐건 연애감정이 됐건, 난 이제 깊은 인간관계 같은 걸 원하지 않게 됐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전에 가까워진 사람이니까... '친구'라고 부르기도 좀 애매하지만 그냥 옛 친구라고 치자고.
괜찮은 사람이고, 우울증으로 인해 오랫동안 고생했었고, 10년 넘게 알고 지내며 연민과 동질감도 느꼈었다. 아주 조금씩 천천히 괜찮아지는 걸 곁에서 봐왔고, 이제는 사랑하는 누군가와 함께 미래를 꿈꿀 수도 있게 된 그 분이 너무 오랫동안 미뤄뒀던 행복을 이룰 수 있기를 마음 깊이 기원한다.
비록 나 자신은 이렇게 됐지만, 나 같은 사람은 적을수록 좋다. 행복하길, 나의 옛 친구.
나는 결코 가질 수 없을 그 행복이 그 사람에게 있기를.

어떤 노부부를 보았다. 서로 팔을 두르고 있다가 빈 자리가 나자 할머님 쪽이 가서 앉으라고 하시자, 할아버님은 같이 있겠다고 고개를 내저으셨다. 할머님은 주책이라면서 웃으시더라.
나는 결코 갖지 못할 행복의 모습이다. 별로 원하지도 않는다.
이런 삶도 있는 거다.

자신은 나라를 팔아도 한나라당 지지할 거라는 사람들을 보고 '가축 같다'고 생각하다가도 그렇게 생각해선 안 된다고 속으로 스스로를 책망했었다. 그로부터 16년 쯤 지난 지금 나는, 윤카 어쩌구 하는 치들을 보고 '개돼지는 그렇게 살다 뒈지라지' 라는 생각부터 한다.
스스로가 잘못되었다는 걸 안다. 그런 자신을 정당화할 생각은 없다. 어떤 측면에서 나는 그 때보다 훨씬 강인해졌다. 하지만 어떤 측면에서(특히 타인에 대한 연민이나 이해심 같은 부분에서) 나는 그 때보다 훨씬 뒤틀렸다. 분명히, 변명의 여지 없이.
아마도, 지금의 나는 예전의 나의 파편에 불과하기에 그런 거려니 한다. 새삼스럽지는 않다. 어차피 생물학적으로도 16년이면 전신의 세포가 16번은 바뀔 때도 됐어ㅋ
이젠 그럭저럭 파편 더미에 불과한 스스로를 견딜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빨리 죽어서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가시지 않는다.

지난 1월 중순의 철야 집회 이후 한 동안 쉬었는데, 경찰이 남태령의 전농 분들을 피의자로 소환했다는 소식 듣고 빡쳐서 근 한 달만에 다시 나갔다. 샹 그 분들은 경기도까지만 해도 경찰들 호위까지 받으면서 안전하게 왔었는데 왜 서울 들어서자마자 그 취급이냐? 오세훈 새끼의 서울은 적용되는 법이 다르냐?
트위터 쪽에서 몇 번 본 남태령 깃발 직관. 웅장하다.
트위터에서 유명해진 아카이아 노조 깃발. 기수 분에게 괜히 아는 척하고 왔다.
서부지법 테러한 폭도 중에 짝퉁 캡아가 있었다던데, 이 쪽엔 뱃신 있다.
솔직히 민총이 무쌩겼다고 생각하지만 자주 보다 보니 좀 귀여운 거 같기도 하고...
최근 트위터에서 본 키탈저 사냥꾼 깃발도 직관했다.
이 쪽에 계시던 분들 전부 이영도 덕후였던 듯. 저 뒤쪽에 하오문 깃발이 묘하게 시선 강탈.
오랜만에 집회분 채우니 좋긴 하다. 비록 나 자신은 더 이상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지 않고, 홀로 살다 홀로 죽기만을 원하게 됐지만 광장에서 같은 대의를 위해 함께 노래하고 행진하고 투쟁하는 건 싫지 않다. 후원금도 좀 냈다. 이걸로 이제 사흘은 하루 1끼(직장 구내식당)로 떼워야 수지타산이 맞겠지만... 뭐 할 만한 지출이었다고 생각한다.
난 전에 자살하려고 했을 때 이미 죽었고, 지금 여기 있는 건 옛 나의 파편 같은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옛 친구들이 그리우면서도 연락은 하고 싶지 않다. 그 친구들과 같이 웃고 마시고 이야기하던 나는 이미 죽었을 지도 모르기에.
이젠 그런 스스로를 그럭저럭 받아들이게 됐다. 여전히 빨리 죽어서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게 제일 좋다는 생각을 자주 하긴 하지만.
이렇게 된 내가 평범하게 사랑하고 사랑받는 건 불가능하다. 앞으로도 누구와도 깊은 감정적 교류(특히 연애 같은 거) 없이, 공연히 엮이지 않고 홀로 살다 홀로 죽기를 바란다. 그렇게 죽은 뒤에는, 환생 같은 거 하지 않고 無가 되길 바란다. 기왕이면 빠를 수록 좋다.
소설 쪽도 영 재미를 못 보고 통장 잔고가 막장을 향해 가고 있어서 공공근로 신청해뒀던 게 통과되서, 첫 출근을 했다. 출근이라는 거 어떻게 하는 거였더라 싶어서 좀 헤맸다(...)
우연히 예전에 일한 곳에서 만난 공무원과 다시 만났다. 다른 곳으로 옮겼다더니 여기로 왔구나. 날 보고 '어디선가 본 얼굴 같은데' 하는 표정이었지만 굳이 아는 척하지는 않았다. 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퇴근해서 긴장을 풀 겸(...좀 핑계 같은데) 한 잔 하는 중.
전에 일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역시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적당히 괜찮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되 굳이 그 이상으로 친해지고 싶지는 않다. 어차피 그 사람들은 공무원이고, 나는 5개월 일하고 돈 받아가면 끝나는 입장일 뿐이다. 그렇게 이번 일을 무난하게 마치고 당장의 호구지책을 마련할 수 있으면 그걸로 되는 거다, 기왕이면 좀 더 일해서 컴퓨터 좀 새로 샀으면 싶고.
역시 가장 좋은 건 따로 있지만ㅋ

우웩, 너무 많이 퍼마셨어. 죽겠구만 아주. 푸하핫, 용병 숙소는 그 방향이 아니야! 그래 그래, 부축해 줄테니 팔 이리 달라고. 고귀하신 성전사께서도 한 번 술 꼴면 나 같은 강도 새끼랑 별로 다를 것도 없구만 그래? 으으, 그 도굴꾼 계집은 대체 얼마나 술이 센 거야? 전혀 취하는 기색이 없던데 말이지. 그 년 제법이야, 입 터는 것도 한 가닥 하고. 숙소 들어가기 전에 우물가에 좀 들러서 찬물에 머리 좀 담그고 가자고. 내일은 머리가 깨질 것 같겠지. 분명 오늘 밤을 후회할테고. 하지만 그렇다고 술을 끊지도 않을 거야. 아무렴 개가 똥을 끊겠어? 댁도 이젠 나 엔간히 알잖아 성전사 나리, 응?
후우, 이제야 좀 살겠구만. 개좆 같은 괴물들이 사방에 넘쳐나는 이 영지에서도 밤 하늘의 별빛만은 참 예뻐. 이 구질구질한 곳에선 별을 볼 기회도 자주 생기는 게 아니니까. 그녀도 정말 예뻤지. 그런 눈으로 보지 말라고, 내가 이래뵈도 좀 감성적인 구석이 있거든. 취한 김에 하는 소린데 말야, 사실은 시를 쓰는 취미도 있어, 안 믿어지지? 최근 영지에 온 그 문둥이 말야, 소문을 듣기론 어느 나라의 왕이었다더라고. 하! 개소리지. 국왕 폐하께서 뭐 볼 게 있으셔서 혼자 이런 썩창까지 오겠어? 뭐 그래도 나름 교양은 있으신 거 같으니까, 기회가 있으면 내 시를 한 번 봐달라고 할 생각이야. 흠, 설마 비웃진 않겠지? 응? 그녀가 누구냐고?
하 씹... 구질구질하게 그런 거 왜 묻고 그래? 자자, 아편이나 한 대씩 피우고 들어가서 잠이나 쳐자자고. 어 씨, 다 피웠네. 나리, 혹시 아편 좀 쎄벼둔 거 없어? 뭐? 그 손버릇 고쳤다고? 에헤이 별로 안 믿어지는데... 하하, 그래 그래, 나리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뭐? 그녀에 대해 듣고 싶다고? 아놔 나리 이런데 관심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뭐 술 깰 겸 옛날 이야기나 좀 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응, 일종의 고해성사라고 생각해도 될 거야. 빛을 섬긴다는 종교쟁이들은 위선자가 많아서 맘에 안 들지만 나리라면 뭐 참아줄 만하기도 하고.
난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있는 편이었고, 혼자 날 키우시던 어머니는 날 초장이의 도제로 들여보냈어. 매일 싸구려 기름 젓고 심지 꼬는 나날이었지만 내가 철이 없었거든. 난 영웅담 속, 모험과 낭만으로 가득 찬 의적을 동경했어. 나리도 알지? 재수 없는 부자들 털어서 빈민들에게 나눠주고, 나도 좀 챙기고. 뭐 그 나잇대 남자애들 꿈이란 게 뭐 뻔하잖아? 그래서 뒷골목 친구들과 어울렸어. 단도질도 그 때 익혔고. 낮에는 공방에서 기술을 배우고, 밤에는 친구들과 밤이슬 맞고... 그러다가 시집 읽는 걸 좋아하는 동네 빵집 아가씨랑 눈이 맞았지 뭐야.
주제 넘는다고 웃어도 좋아 나리. 답잖게 사랑 따위를 하게 되니까... 행복하긴 했어. 하지만 그게 참, 더 나은 미래를 생각하게 되더라고. 초장이는 안정된 일자리긴 하지만 수입이 좋다고는 하기 힘들고, 좀도둑질 따위로는 모을 수 없는 큰 돈이 필요했어. 밤일을 나가는 횟수가 많아졌고, 점차 난 거칠어졌어.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도로를 오가며 오가는 행인을 덮치기 시작했지. 부자만이 아니라 만만해 보이는 목표라면 아무에게나 손을 댔고, 좀 다치게 하는 것 정도는 망설이지도 않게 됐어. 의적? 얼어죽을.
그만큼 낮의 일엔 소홀해졌지. 결국 실수로 불을 내고는 공방에서 쫓겨났어. 집에서도 쫓겨났고. 아가씨도 내가 위험한 일을 한다는 걸 어느 정도 눈치챘고, 제빵기술을 배워보라고 권했지만 난 무리하는 한이 있어도 큰 돈을 벌어 그녀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어. 아니, 지금 생각해 보면 협박과 폭력으로 상대를 꺾고 짓밟는 게... 내심 즐거웠던 걸지도 몰라. 나리, 그 옛날 이야기 들어봤어? 니미럴 양심이란 건 마음 속 삼각형 같은 거라서, 험하게 굴리면 마음 속을 아프게 찌르지만 계속 굴리다 보면 모서리가 닳아 버려서 아무렇지도 않아진다는 그 이야기. 단도와 권총을 휘둘러 돈을 빼앗은 손으로 그녀를 안으면서도, 난 아무런 모순이나 가책을 느끼지 않았어. 씨발 꺼.
하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 않았어. 강직하고 청렴한 걸로 이름 높던 보안관에게 덜미를 잡혔지. 보안관에게 정신이 팔려서 그의 개를 잊어버리는 실수를 저질렀고, 내 몸에 밴 화약 냄새를 개가 알고 있었거든. 뭐, 그래서 결국 큰 집 신세를 지게 됐지. 바로 그 보안관 양반과 이 세상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재회하게 될 줄은, 그리고 그 짜증나게 올곧던 양반이 나 이상의 막장 주정뱅이가 되어 있을 줄은 전혀 예상 못했어. 헤헤... 모든 길은 끝이 있는 법이고, 그 양반도 예외는 아니었던 거지. 오, 방금 이 표현 괜찮지 않았어 나리? 잊어 버리기 전에 적어놔야지...
얼레, 그거 아편 아냐? 뭐? 손버릇 고치기 전에 챙겨놨다가 잊어버리고 있던 거라고? 응 그래 정말로 그렇겠지, 킥킥킥... 아, 고마워. 한 대 빠니까 기분이 좀 낫구만, 후우. 아무튼, 그 안에서 그녀 소식을 들었어. 돈 많은 귀족의 첩이 되어서 애를 낳았다더라고. 그리고 나는 살인도 태연히 저지르는 개자식이 되어 있었어. 사막의 나라와 전쟁 중이었고, 또라이 흉악범들은 질리게 많았고, 주변엔 온통 그런 년놈들이었으니까.
그 개자식은, 어느 날 죄수 폭동이 일어난 틈에 교도관을 처치하고 탈옥했어. 갈망하던 자유를 얻었지만 여전히 춥고, 피곤하고, 배고프고, 악에 받쳐 있었지. 세상 모두가 밉고 원망스러웠어. 수배령을 피해 하수도에서 숨어지내며 쥐를 잡아 산 채로 뜯어먹던 중 문득 밤하늘을 올려다 보니 흐린 하늘에 가득한 구름이 잠시 걷히고, 별빛이 보이더군. 그래, 마치 오늘 밤의 바로 저 별빛 같은. 그 빛을 보는 순간... 이렇게 사는 게 너무 지겨워졌어. 아무도 이 개자식을 모르는 먼 곳으로 도망쳐서, 그래도 아직은 젊고 튼튼한 편이니까 막일이라도 하면서 더 이상 범죄 따위 저지르지 말고 자유롭게 살자고 결심했어.
하지만 그 결심을 실행에 옮기는 데에도 돈이 필요했고, 할 줄 아는 거라곤 하나 뿐이었어. 무기와 정보를 마련하고, 이번에야말로 정말 마지막이라고 결심하고는 한 탕을 준비했어. 너무나 절박했고 다른 수가 없었지. 그래... 그 땐 그렇게 생각했어. 그리고 산길에 숨어 있다가, 화려한 문장이 찍힌 마차를 덮쳤어.
너무 쉬웠어. 몇 년의 공백이 무색하게 너무나도. 현기증이 날 정도로 머리는 팽팽 돌고, 팔다리엔 힘이 넘쳤지. 우선 마부의 대가리부터 날려 버리고, 겁에 질려 도망치는 경비의 목을 순식간에 따고, 멈춘 마차에서 인기척이 났어. 생각할 틈도 없었어. 순전히 몸에 익은 행동이었지. 한 순간, 반사적으로... 정말이야, 나리. 성스러운 빛에 걸고 맹세할 수 있어. 진짜 저절로.... 손이 움직여서 방아쇠를 당겼어. 단 한 방.
모든 게 조용해졌지. 어두운 만족감이 마음 속에 차오르는 그 순간 묘한 충동에 사로잡혔어. 이 마지막 강도질에 죽은 사람이 누군지 얼굴을 봐두고 싶다는 충동. 마차에 다가가서 문을 열었어.
익숙한 얼굴이 거기 있었어. 한 때 사랑했던, 그녀의 얼굴. 공포로 차갑게 굳은 채 식어가는 그 얼굴에 피가 튀어 있었어. 그리고... 그녀의 품에 안겨 있던, 몸통에 커다란 총알 구멍이 뚫린 어린애.
어딘지 모르게, 나를 닮았었어.
이게, 내가 이 영지로 온 이유야. 속죄? 난 그런 같잖은 걸 하려고 여기 온 게 아냐, 나리. 그 따위 것, 해서 뭐해? 내가 진심으로 내 잘못을 뉘우친다고 치자고,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아이가... 되살아나는 것도 아니잖아. 그 빌어먹을 개자식은... 결코 용서 받지 못할 쓰레기는... 바로 나는... 내 죄로부터, 나 자신으로부터... 너무도 기나긴 길을 지나 세상 끝까지, 세상의 끝이 시작될지도 모르는 가장 어두운 던전이 있는 곳까지 그저 도망치고 싶었을 뿐이야. 그래서 마침내 여기까지 온 지금, 난 여전히 갇혀 있어. 이제 와서 내가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아. 아무렴 개가 똥을 끊겠어? 댁도 이젠 나 엔간히 알잖아 성전사 나리, 으응?

전작은 말할 나위 없는 명작이었지만 동시에 아서 플렉에게 지나치게 이입한 찐따 인셀들이 많아졌다는 문제도 있어서... 토드 필립스 감독이 왜 이렇게 스토리를 짰는지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본인의 의도와는 달리 이상한 쪽으로 영감을 받은 머저리들이 진짜 폭도가 되어 날뛰는 꼴을 보는 게 즐겁지는 않겠지. 나도 나름 작가고, 만약 내 작품이 그런 식으로 나쁜 사회적 영향을 주는 상황이 되면 책임감을 느낄 거라는 게 납득이 안 가는 건 아닌데... 감독이 그걸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너무 사렸다는 느낌이 든다. 전작의 그 딱히 엄청나게 사악한 건 아니지만 냉혹하고 약자에게 무관심한 상류층과 그런 상류층의 이익을 위해 돌아가는 사회 속에서 짓밟힌 하류층의 증오와 폭력성의 대비라는 사회적 맥락에서 비롯하는 그 불온한 에너지가 사라져 버렸다는 건 많이 아쉽다.

겸 비정규직 노동자 집회. 난 안 팔리는 작가이자, 현재 무직인 계약직 노동자다.

결국 경호차 타고 나온 게 유감이다. 수갑차고 끌려나오는 꼴을 기대했는데. 뭐, 그래도 이걸로 1차전은 승리했다. 확실한 파면과 구속을 위한 2차전 시작이다.
그 다음으로는 국혐과 자칭 보수 종자들을 족쳐놓는 3차전이, 그리고 같은 민주주의자들끼리 좌우로 나뉘어 대립하는, 하지만 적어도 더 이상 보수우파를 자칭하는 쓰레기들은 정치판에 없는(적어도 인간 흉내는 낼 줄 아는) 이념 지형을 만드는 4차전이 기다리고 있다. 머나먼 지평이다...
축하 의미로 한 잔 할까 했는데 어제도 마셨던 게 떠올라서 참고, 있는 걸로 대충 저녁 때웠다. 축배는 구속영장 통과되면 그 때 들자고.
'쓸데 없는 인간관계 따위 싫다' '나는 혼자 살다 혼자 죽을 거다' 뭐 그런 생각을 좀 하다 잠들었는데 집회 나가서 낯선, 하지만 친절한 사람들과 함께 민중가요 열창하는 꿈을 꾸다 깼다; 깬 지금도 꿈에서 본 사람들 얼굴이 대강 기억난다.
....
설마 아직도 하찮은 미련을 못 떨치고 있는 건 아니겠지. 뭐 그래도 '어쩌면 그 사람들도 실존하는 사람들이고 꿈에서 나를 만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약간 재밌긴 하다.
깼을 때 반사적으로 '또 쓸데 없는 꿈 꿔버렸다' 생각했던 건 취소. 난 개인적인 수준에서 괜히 남과 깊이 엮이는 게 싫을 뿐, 대의를 위해 함께 싸우는 건 싫지 않다.

내 인간불신을 남들에게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그저 '제가 I라서요, 사람이 싫은 건 아닌데 길게 응대하다 보면 피곤해요' 라고 얼버무릴 수 있다.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민주노총
이 사진들 외에도 황금거룡 깃발을 발견하고 사진 찍어도 되냐고 여쭤봐서 허락 받았는데, 하필 그 때 폰이 말썽을 일으켜 못 찍었다. 13시대 재밌나....
트위터에서 핫했던 단두대도 발견. 역시 폰 문제 때문에 못 찍었다. 수백 개에 달하는 깃발들이 나부끼는 것, 나와 같이 행진 맨 뒤에 있던 '민중이 주인이다'라고 적힌 위엄 넘치는 초거대 깃발도 찍고 싶었는데 역시 폰이.... 그만...

내가 돌팬이 아니다 보니(난 락과 메탈 좋아하고, k팝에 별로 관심 없었다. 이번 집회 나가면서 다만세 듣다 보니 이것도 생각보다 괜찮네 정도로 생각하게 됐을 뿐이고...) 별로 공정한 관점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내가 퀴어나 트랜스젠더인 것도 아니니까 뭐. 대략 주장을 보자면... '응원봉 문화는 아이돌 팬덤의 것인데, 퀴어나 트랜스젠더들이 그걸 자신의 것인 마냥 현장에서 뺏어가는 것이 싫다'는 거다.
중간 중간에 아예 '자유발언에서는 탄핵 이야기나 할 것이지 퀴어나 트젠들이 자기 정체성 밝히는 거 자체가 싫다'는 주장도 보이긴 한데 뭐 그런 차별적 언사는 아예 제끼고, 앞서의 주장만 보자면... 별로 공평한 것 같지는 않다. 아이돌 팬이 된다는 건, 어디까지나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가'라는 기호의 문제다. 말하자면 내가 호러나 sf, 판타지는 좋아하지만 로맨스에는 죽은 눈이 되는 것과 비슷한 거다. 하지만 성정체성이나 지향성은 '나는 무엇인가'라는 존재의 문제다. 기호의 문제와 존재의 문제가 완전히 구별되는 건 아니지만 일단 이 글에서 다루는 논제는 그게 아니고...
잠시 옛날 이야기를 좀 하자면, mb 때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 때도 그랬다. 표면 상으로는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쇠고기 수입 여부에 관한 것에 불과했지만, 실질적으로는 mb 정권의 독선과 강압에 반감을 갖고 있던 수많은 집단이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게 되었다. 이명박은 취임 당시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겠다'고 했지만, 그게 낮은 자세로 국민들 패겠다는 뜻이었던 거 아직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겠지. 그래서 그 당시에도 갈라치기 공작이 성행했던 거고.
여하간 난 계엄 선언도 '모두가 결정적으로 딥빡쳐서 뛰쳐나오게끔 하는 계기'였을 뿐 그 전부터 다양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룬썩10 정권을 극혐해왔다고 생각한다. 하다못해 평소 국힘 지지하며 기존 체제 내에서의 입신양명과 일확천금을 꿈꾸던 보리수도 계엄 선언 이후 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지며 크게 손해 본 바람에 '나중에 홍준표나 한동훈을 찍더라도 지금은 일단 저 돼지새끼 좀 치워놔야겠다'는 생각으로 집회 나올 수도 있는 거다. 그저 이번에는 아이돌 좋아하는 젊은 여성층이 많았고, 그들이 각자 팬질하던 아이돌에 대한 애정의 표시로 들고 있던 응원봉이 이번 탄핵정국의 일반적인 아이콘이 된 거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존재론적 문제인 성지향성이나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돌팬으로서, 또는 그저 탄핵집회 참가자로서의 일반적인 아이콘 차원에서 응원봉을 드는 걸 '본래의 의미를 흐리는 문화 전유'로 취급하는 건 부당하다. 응원봉을 드는 걸 통해 세력 뻥튀기를 하는 걸로 보일 수는 있겠고 뭐 퀴어나 트젠 측에서 진짜 그런 의도가 있을 가능성도 있겠는데... 온갖 입장과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든 광장에서까지 그렇게 기싸움을 꼭 해야겠냐 씁.
게다가 문화 전유는 근본적으로 주류 집단이 소수 약자 집단의 전통문화를 존중 없이 유희나 과시적 대상으로 가볍게 취급하는 현상에 대한 비판적 인식으로 시작된 개념이다. 깨놓고 말해 현대 한국사회에서 아이돌 덕질이 지탄받는 불건전한 취미도 아니겠다, 아이돌 덕후가 퀴어나 트젠에 비해 딱히 소수 약자 집단인 것 같지는 않다.
이건 '그냥 같이 좀 쓰게 허락해주자'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퀴어나 트랜스젠더가 사회적 약자라고 해서 그들 개개인이 딱히 '착하고 불쌍한 사람들'일 리는 만무하다. 그들도 소수자로서 나름의 좌절이 쌓이고 피해의식이 있을테고, 그걸 또 다른 집단에 대한 공격성으로 돌린 이들도 개중에는 분명 있겠지. 어쩌면 돈 많고 학벌 좋아서 그걸 나름의 무기로 쓸 수 있는 이들도 있을테고. 적극적인 차별주의자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런 상대와 엮이는 바람에 집단에 대한 편견이 생긴 케이스도 있을테고.
하지만 탄핵정국이라는 현 상황 하에서 룬썩10 정권과 국혐 종자들에 저항하는 것은 개인의 도덕 차원이 아닌 공공의 정의의 문제다. 응원봉이라는 아이콘이 갖는 대표성을 통해 그 다양한 계층과 입장의 사람들이 한데 묶이는 건, 음... 만약 내가 돌팬이라면 자랑스러울 일 같다.
그래도 우리 팬덤 소속도 아닌 이질적 집단이 우리 응원봉 들고 나오는 게 싫고 무시당하는 것 같다면 어쩔 수 없는데, 광장에서 그런 이들이 눈에 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건 차별적이고 부족주의적인 사고다. 민주주의자라면 그를 인정해선 안 된다.
+
다른 데에도 비슷한 글을 썼다가 아이돌 팬인 지인이 불쾌해하길래 굳이 자극할 필요도 없겠다 싶어서 그 쪽은 지웠다. 음... 좀 더 이야기를 해 볼 수도 있었겠지만, 이미 기분 상한 상대 입장에서 공격적으로 여겨지지 않게끔 이야기할 재주가 없어서 말이지. 뭐 이걸 계기로 그 분에게 미움 받을지도 모르겠다 싶긴 한데, 만약 그렇다면 유감이고.

탄핵집회지만, 동시에 전장연 집회기도 했다. 원래는 서울대 병원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경찰에 막혀서 혜화 마로니에 공원으로 바뀌었다길래 급히 턴했다.
재작년 새해는, 녹사평에서 이태원 참사 분향소를 지키면서 맞이했었다.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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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분향소 지키러 갔다 왔다
뉴스를 보니 신자유연대 양아치들이 바로 앞에서 스피커 틀어놓고 깽판 친다길래 재수 없으면 누구 때려서 깽값 물어줘야 할지도 모르겠다 마음 먹고 나갔는데, 밤 10시가 좀 안 되어 현장에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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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새해는 기억이 안 나는 걸 보니 마감치느라 정신줄을 놓은 상태였으려니 싶고, 올해 새해는 전장연과 함께 맞이했다.
그간 국혐 종자들이 이재명만은 안 된다고 무슨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마냥 줄창 떠들어대는 바람에 나도 평소의 신념을 젖혀두고 다음 대선만은 민주당 후보 찍을까 생각했었는데, 장애인 의제를 두고 이재명이 '그런 식으로 하면 반감만 커진다'고 말하는 것과 주변의 이재명 지지자들이 그만 하라고 하는 영상 보고 확신이 생겼다. 역시 이 나라에서 좌파라면 투표는 소신껏 하고 봐야 해. 이재명 본인도 장애가 있겠다, 뭐 본인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노동자와, 장애인과, 여성과, 퀴어와, 트랜스젠더가 굳이 그 입장을 따라줘야 할 이유도 없다.
1시 좀 넘어서 끝나고 현장 정리를 좀 도운 뒤(어린 여자아이가 추워보이길래 꿀물 갖고 있던 걸 건네줬었는데 고맙다고 활짝 웃으며 인사하고 가더라, 귀여웠다) 혼자 남아 가져간 책 읽다가 첫 차 타고 귀가했다. 동네에 걸려 있던 국혐 시의원 현수막 문구가 며칠 전만 해도 혼란을 막겠다는 개드립이었는데 다른 걸로 바뀌어 있더라.
지금 베란다 창 밖으로 날이 밝아오고 있지만, 흐린 날씨라서 해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미하일 바쿠닌은 이렇게 말했었다. "소멸해가는 세계가 뿜어내는 독한 연기가 아직은 하늘을 뒤덮고 있지만 조만간 작열하는 자유의 태양이 그 연기를 거둬낼 것입니다."
이 나라를 살아가는 이들이, 그 태양의 빛을 볼 수 있기를 기도한다.
비록 나는, 빨리 죽어 아무 것도 아닌 게 되기를 바라는 이런 인간이 되었지만. 그래도.

...라고 보수들은 (니가 뭘 몰라서 그런 거라는 눈으로 은근히 비웃으면서) 말하기를 좋아하지만, 진정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라서만 돌아가는 세상 역시도 '공산주의 유토피아'만큼이나 비현실적이다. 보수들이 자본주의의 장점이라고 그렇게 강조하는 자유경쟁과 기회의 평등을 확립하고 돈이 더 많은 돈을 벌어다줌으로써 출발선 위치를 바꿔놓는 걸 막으려면 상속세부터 현행 1000% 정도로 올려야 하는데, 막상 실제로 그렇게 하려고 하면 다들 공산주의하자는 거냐고 불탈 걸ㅋ
공산주의도 역사 속에서 온갖 현실적 조건과 한계에 따라 변화가 이뤄지며 맑스가 제시했던 근본적인 초기상과는 멀어졌고, 자본주의가 그에 저항하기 위해 수정자본주의로 변화했다. 그리고 냉전이 끝나며 자본은 더 이상 스스로를 수정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됐다. 지금 당장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자본주의의 병폐에 대해선 침묵한 채, 공산주의의 해악만을 끝없이 강조하며 'XX하면 공산주의해서 다 같이 망하자는 거다'라는 주장만 되풀이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그런 이유 때문에 난 금투세 법안 내다버린 이재명을 그래봤자 보수정당 민주당 정치인으로 취급하는 거고(국혐은 보수가 아니라 사람 취급해선 안 될 쓰레기 집단이며, 이번 내란 과정에서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13년 전, 월가 점령 시위가 한참일 무렵 슬라보예 지젝은 이렇게 말했었다:
"오늘날 무엇이 가능하겠습니까? 언론을 봅시다. 기술과 성(性)의 측면에선, 모든 것이 가능해 보입니다. 달을 여행할 수 있고, 유전공학으로 영생을 누릴 수도 있으며, 동물이나 그 무엇과의 섹스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사회와 경제 영역을 보죠. 거의 모든 것이 불가능해 보입니다. 부자들의 세금을 약간 인상하고자 하면 그들은 경쟁력을 잃을 테니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의료보험료를 인상하고자 하면 그들은 전체주의 국가의 방식이니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영생을 약속하면서 의료보장을 위해선 한 푼도 쓸 수 없다는 세상은 잘못됐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더 높은 생활수준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생활수준을 원하는 겁니다.
만약 우리가 공산주의자라면, 그 유일한 이유는 우리가 공공의 것을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자연에서 공공의 것, 지적 재산에 의해 사유화된 공공의 것, 유전공학의 공공의 것. 이를 위해, 오직 이것만을 위해 우리는 싸워야 합니다...."

경복궁역 4번 출구에서 크리스마스 특별 콘서트가 있다길래 쓰린 가슴을 끌어안고(으앙 내 사진들...) 거기 나갔다 왔다.
주여, 오늘이 진짜 생신이 아닌 건 알지만 뭐 그래도 대충(...) 축하드립니다. 작년 오늘 이-팔 전쟁 꼬라지 보며 당신께 기도했던 게 생각나네요. 그 전쟁은 아직 안 끝났고, 사람들은 계속 죽어나가는 중입니다. 당신 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속세의 일은 인간이 해결해야 하고, 그 전쟁을 끝내는 것도 인간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나라에서도 일종의 작은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저기 모였던 이들, 싸우고자 하는 이들에게 당신의 가호가 있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