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05'에 해당되는 글 9건
- 2025.05.31
- 2025.05.29
- 2025.05.28
- 2025.05.24
- 2025.05.20
- 2025.05.18
- 2025.05.14
- 2025.05.03
- 2025.05.01
날 싫어하는 티를 내는 직원들이 두셋 정도 있다. 그것 때문에 그간 꽤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참이고, 이 블로그에서도 트위터 쪽에서도 가끔 불평한 적 있었는데 오늘 문득 생각해 보니 전부 여직원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 여직원들과 트러블이 있었던가... 하고 좀 더 생각해 보니까, 왜 날 싫어하는지 짚이는 이유가 있긴 하다. 좀 더 돌이켜 보니까 상대방 입장에선 오해할 수도 있었겠다 싶기도 하고.
나로선 좀 억울하고 자존심도 상하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앞으로는 그냥 그 직원들에겐 업무 상 꼭 필요하지 않은 이상 말 걸지 말고 최대한 접촉 자체를 피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내가 해명 따위 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고, 그 직원들은 내가 말 거는 거 자체를 싫어할 것 같으니.
그래도 무슨 바퀴벌레 보는 듯한 눈으로 노려볼 때마다 화가 치밀긴 하는데, 여기서 오래 일할 것도 아니고 참을 수밖에. 그래도 여기 일 끝난 이후로는, 우연히라도 그 직원들 다시는 안 봤으면 좋겠다. 기왕이면 나도 계약직이나 기간제 전전하는 이 생활 접고 글만 써서 먹고 살 수 있으면 더 좋고. 그냥 빨리 죽어서 無가 될 수 있으면 그게 제일 좋고.
나로서도 사회생활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웃는 낯으로 그 짓거리 하는 거 내심 역했거든 솔직히... 그 직원들은 그걸 또 이상한 의미로 여긴 거였겠지. 계약 끝나려면 아직 기간이 좀 남았는데, 혼자 견딜 수밖에.
내 추측이 맞다면 앞으로도 그 직원들은 계속 날 쓰레기 보듯 볼 테고, 나 역시 그 때마다 긁힐 거 같지만... 앞으로는 두 번 다시 스스로도 오글대고 짜증나는 거 참아가며 그런 짓 따위 하지 말고, 현실에서건 인터넷에서건 만만한 상대를 찾아 그 화풀이를 하려들지 않길 바랄 뿐이다.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정도 뿐인 것 같다.
그래도 좆같긴 해. 쓰벌.
나와 사상적으로 대체로 비슷하지만 절박감과 위기감으로 인해 다른 후보를 찍은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한다. 나 역시 그런 절박감과 위기감을 느끼지 않는 건 아니다. 압도적인 승리가 아니면 내란을 끝낼 수 없다고 판단하고 힘든 선택을 한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한다.
하지만 자존을 지키면서 패배해야 할 때가 있는 거다. 좌파로서, 그리고 가난한 도시 노동자로서. 나와 비슷한 고통을 공유하는 농민과 여성과 퀴어와 소수자들과 함께.
누군가는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누군가는 고집을 부려야 한다. 나와 내 계층의 고통을 아는 사람을 내세워 세상에 외치게끔 해야 한다. 빈자와 약자와 소수자가 여기 있다고. 우리는 보수정당이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우리를 불쌍하게 여겨서 관대하게 베풀어줄 지도 모르는 은혜를 구걸하지 않겠다고.
돈 없고 힘든 거야 언제나 그랬다. 이제 와서 자존심까지 팔지는 않을 거다.
나는 굴복한 적 있다. 두 번 다시는 그러지 않을 거다.
내가 싸우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이타심이나 정의감이 아니라 그저 자기만족을 위해서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한 명은 뭐 내가 잘못 처신한 게 있긴 해서... 가끔 그게 이 정도로 개무시당할 정도의 잘못인가 싶어서 약간 욱하긴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그것 때문에 날 싫어한다는 걸 알 수라도 있긴 하다. 그런데 다른 한 명은 왜 바퀴벌레라도 보는 듯한 눈으로 날 노려보는지 이유를 통 모르겠다. 업무도 그 사람과는 관련이 없고 그 사람에게 딱히 무례하게 대한 적도 없는 거 같은데.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미움 받는 경험은 처음이 아니다. 일개 임시직 입장에서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실질적으로 그 직원들이 나한테 뭔가 해를 끼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받아들이고 있지만... 솔직히 그 혐오감 가득한 눈빛을 받다 보면 가끔 화가 치민다. 내가 부지불식 간에 만만한 상대에게 그 화풀이를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못 견딜 정도는 아니다. 훨씬 나쁜 경험도 해봤다. 그러니 괜찮다. 견딜 수 있다.
옛 친구가 어제 결혼했다. 나만큼이나(어쩌면 나 이상으로) 힘든 경험을 해왔고, 오랫동안 조울증으로 힘들어했던 사람이다. 앞으로 그 사람이 행복하게 잘 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난 행복 같은 거 더 이상 원하지 않게 됐다. 이제 난 그저 홀로 견디다가 죽어 無가 되길 원한다. 빠를수록 좋다.
좋은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게임도 좀 하고, 특히 소설을 쓸 때면... 적어도 그 때만큼은 계속 나빠지기만 하는 어머니의 관절염, 장애가 있는 친척들, 내 절망에 가득 찬 과거, 허무한 미래, 내내 억눌러놨지만 요즘 슬슬 다시 올라오는 자살충동 같은 게 안 느껴진다.
하지만 이것도 언제까지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차별금지법 영원히 못해" 비판에도 이재명 "급한 건 민생"
"언제나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다. 가치지향적인 문제들에 대해선 중요한 얘기이긴 한데 당장 생존의 문제가 급하기 때문에 충분히 논의하고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
www.ohmynews.com
너무나도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다운 말이다. 그런 건 어디까지나 '하면 좋지만 꼭 해야 하는 건 아닌 덤' '불쌍한 소수자들이 착하게 굴면 관대하게 베풀어줄 수도 있는 은혜'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아마도 영원히) 미룰 수 있는 무언가' 로 취급하는.
깨놓고 말해서 이재명이 차금법을 쌩까더라도, 시스 헤테로 성인 남성인 내가 당장 직접 피해를 입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난 겨울의 광장에서 여성과 퀴어들은 나와 함께 윤석열 파면을 외쳤고, 함께 추위에 떨었다.
난 남태령의 그 새벽을 기억한다. 춥고 지쳐 있을 때, 나눔물품으로 나온 방석 마지막 1개를 어떤 낯선 여자 분이 양보해주셨다. 그 분에 대한 의리도 의리지만, 어떤 사회에나 있을 수밖에 없는 (나 역시도 거기에 포함되는) 약자와 소수자의 외침을 받아들이는 게 민주주의라고 믿는다. 그리고 난 민주주의자로서의 자존심을 값싸게 팔지 않을 거다.
트위터 쪽 지인들은 대부분 어제부터 기념식 참가한다고 광주에 갔다. 교통비와 식비 때문에 전전긍긍해야 하는 가난뱅이인 나는 타임라인 너머로 지인들이 찍은 사진과 글 보며 하트만 찍는 중. 좀 아쉽기도 한데... 뭐 어쩔 수 없지.
광주 영령들을 추모하며 오늘은 조용히 보내야지.
사람 취급해선 안 될 쓰레기 집단 내란충들은 뻔뻔하게 후보를 냈고(당원들의 경선을 통해 뽑힌 김문수를 당 지도부가 멋대로 파내고 한덕수를 집어 넣으려다가 마는 같잖은 해프닝도 있었다. 민주주의를 경멸하는 저짝 패거리 다운 짓이다), 가장 유력한 후보인 이재명은 언제나의 민주당 후보들과 마찬가지로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진보의제를 무시하고 있다.
이명박 이후 늘 그랬듯 이번에도 역시 일부 질 나쁜 민주당 지지자들은 만약 민정당 패거리들이 이기면 소신투표한 진보정당 지지자들 탓이라고 갈구고 있다. 이번에 국혐 종자들이 저지른 짓의 임팩트가 워낙 크다 보니 그들 역시 나름 불안감과 위기감이 클테고, 많은 사람들이 피눈물흘리며 내란종식을 위해 이재명 지지 의사를 밝히고 있고, 진보당 김재연도 민주당과의 단일화를 선언했다(유감스럽지만 존중한다. 나름 많이 고민하고 힘들게 내린 결정이었겠지. 그리고 이재명은 진보의제를 최대한 반영하도록 고민해보겠다는 형식적인 립서비스조차 하지 않고 "안 나가신대요? 감사하죠~"라고 가볍게 그를 받았다).
지금도 여전히 트위터 쪽에선 그 문제로 격론이 오가는 중이다. 하지만 나는, 명태균을 본 이후로 여론조사 같은 건 그냥 참고사항으로만 취급하고 걍 내가 원하는대로 투표하기로 결심했다.
지금도 '나는 꼬리 안 잡힌 명태균이 될 거다'라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작자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만에 하나 그런 탐욕이 없더라도, 많은 데이터와 노하우가 쌓인 조사기관도 조사 방법을 살짝 바꾸는 것 만으로 결과가 크게 바뀌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나는 수많은 정보들을 교차검증해서 가장 정확한 지지율을 예측하거나 각 후보들의 공약 이행 가능성을 추산해낼 수 있을 만한 지식과 판단력이 있는 것도 아닌, 일개 소시민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그저 불가능한 꿈을 품은 채 내가 믿는 가치를 고수하고 그에 매진해야 한다. 난 이것 역시 일종의 현실주의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저마다의 온갖 의도와 욕망이 깔린 기사와 여론 조사들을 붙잡고 승률을 따지며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고 억지로 자신을 납득시킨 적이 있다. 이제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이미 알고 있다. 그래도 나는 가닿지 못할 먼 지평을 꿈꿀 것이다. 후회 없이 그저 원하는 것을 행할 것이다. 이 나라의 노동자와, 농민과, 여성과, 장애인과, 성소수자들을 위해. 약자와 소수자를 위해.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위해. 트위터 쪽에서는 좌파로서 고집을 부리는 사람도 있어야한다고 멋있는 척했지만, 솔직히 가장 큰 이유는 자기만족에 불과하다. 나는 굴복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했다는.
내가 여러 사람을 지키고 책임져야 하는 정치인이 아니라 일개 소시민 A에 불과하며 내 결의는 대국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 사실이 가끔은 좀 다행스럽다.
'원하는대로 닥치고 일이나 하고 돈이나 받아가지 뭐' '씨벌 나는 좋아서 광대짓한 줄 아나' '만약 내가 진심으로 친해지고 싶어서 이 지랄한 거였다면 상처받았겠지, 적어도 그런 건 아니어서 다행이다' 뭐 그런 생각을 하며 술 퍼마시고 잠들었다가 묘한 꿈을 꿨다. 그 꿈 속에서, 난 성노동자 강제퇴거 반대 집회 현장에 나가 있었다. 나 외에도 몇몇 사람들이 와서 인간 사슬을 잇고 있었지만 경찰이 들이닥쳤고, 옆 사람의 안전을 빌며 도망치다가 잠에서 깼다. 지금도 내 옆에서 손을 잡고 있던 사람들, 성노동자들이 반항과 조롱의 표시로 벗어 길모퉁이에 쌓아둔 옷가지들, 도망치던 골목길의 구조가 희미하게 기억난다. 음... 별 꿈을 다 꾸네.
그러고 보니 몇 달 전에도 비슷한 느낌의 꿈을 꾼 적 있다. 그게 우정이나 애정 같은 긍정적인 관계건 혐오나 질시 같은 부정적인 관계건, 개인적인 수준에서 괜히 남과 엮이는 건 싫다. 하지만 그래도, 대의를 위해 남과 연대하는 건 싫지 않다. 아직은.
혜화동 성당에서 운영하고 있는 장애인 시설에서, 성과 보고 및 지원금 문제 때문에 시설 소속 장애인들의 탈시설을 억압하고 학대한다는 기사를 처음 봤을 때만 해도 반신반의했다. (참고 기사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7230.html https://www.khan.co.kr/article/202504182040001 ) 당연히 천주교도 사람이 운영하는 종교 집단이고, 돈과 영향력이 있는 조직은 그 목적이 뭐가 됐건 간에 지저분한 게 꼬이는 법이긴 한데 '그렇게까지 한다고?' 싶기도 했다. 내부 상황을 잘 모르는 입장에서 섣불리 연대하러 가기가 애매하기도 했고. 하지만 종탑 위에 올라간 활동가에게 천식 약을 전달하는 것조차 막혔다는 소식을 보고 긁혀서, 마침 오늘 노동절이라 쉬는 김에 현장으로 갔다(낮에 노동절 대회 갔다 갈 생각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거긴 못 갔다. 뭐 트위터에서 보니 그 쪽은 많이들 간 모양이니 괜찮겠지).
가보니 눈물날 정도로 사람이 적더라. 기껏해야 3~40명 정도... 좀 옛날 표현으로는 안습할 정도. 오길 잘했다 싶었다. 전장연 박경석 대표님이 날 알아보시는 눈치길래 가볍게 인사했다.
그리고 종탑 위에 올라가 있는 세 활동가들. 손 흔들길래 이쪽도 플래시 켜서 흔듦.
현장에서 자유 발언을 듣다 보니 문득 어린 시절 생각이 났다. 꾸준히 노력한 결과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난 말하는 게 무척 어눌한 편이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긴장하면 말을 버벅이거나, 잘못 말했다 싶으면 이미 한 말을 무심코 한 번 더 반복하는 버릇이 남아 있고. 집단 괴롭힘도 좀 심하게 당했었다. 개중 몇 명은 진심으로 내가 '원래 특수학교에 들어가야 하는데 간당간당하게 일반 학교에 온, 좀 모자란 애'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그런 상황에서 공부가 제대로 될 리가 없고, 당시 집안 상황도 나빴다 보니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당시 내 상태가 안 좋기도 했던 터라... 선생들도 날 무시하고 괴롭힘에 동조하곤 했다.
스스로 그런 경험을 했고, 친척이 장애가 있기도 해서 난 장애인(특히 발달장애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지금이야 나이도 꽤 먹은 성인이겠다 나름 고친 것도 많아서 어지간해선 그런 취급은 당하지 않지만, 만약 내가 그 때 견디지 못하고 정신이 나가기라도 했으면 지금도 그런 꼴을 당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이 정도 나이 들기 훨씬 전에 자살했을 수도 있고. 그러고 보니 "왜 사냐 병신아, 내가 너 같았으면 진작에 자살했다"라는 조롱도 여러 번 들었었지.
성당 앞에 붙어 있던 평화의 기도문.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이라... 주여, 한국 천주교가 그렇게 당신께 쓰이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