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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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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도덕 교과서를 보면 그런 내용이 나온다. "몇몇 사람들의 나쁜 짓만 보고서 그 사람들이 속한 집단 전체가 나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정치적 공정함이라는 맥락에서 보자면 더없이 타당한 말이고, 보편적인 윤리의 기본 중 하나다. 그러나 기계적 공정함에 치우친 나머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실이 있다.

집단 전체가 나쁘지 않다는 것만으로, 그 집단에 속한 이들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이 잠자코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청교도들의 이민으로 시작된 백인들의 신대륙 이주. 백인들이 자리를 잡은 이후 원주민들을 상대로 벌인 대살육-백인들이 옮겨온 전염병으로 인해 죽은 숫자가 훨씬 많긴 했지만-. 이제 한줌도 안 되는 보호구역 내에서 간신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원주민들에게 가서 '좋은 백인들도 많다' '백인들을 이해하고 사랑해봐라' 같은 소리를 해봤자 설득력이 없다.

자신들의 옛 땅을 빼앗은 백인들을 증오하는 그들. 당장 푼돈을 벌기 위해 바로 그 백인들 앞에서 춤추고 노래해야 하는 그들. 그리고는 백인들이 입에 담는 '고귀한 야만인'이 어쩌고 하는 알량한 소리를 참고 들어야 하는 그들의 마음 속 깊이 뿌리내린 절망과 분노는, 지극히 온당하다.

난 증오와 복수를 옹호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초딩 도덕 교과서스럽다'라는 표현은 옳긴 하지만 뻔하고 두루뭉실한 소리, 어린애들에게만 유효한 도덕 관념에 대한 혐오를 나타낼 때 주로 쓰이긴 한다. 하지만 그만큼 중요하고 기본적인 가치이기 때문에 초딩 도덕 교과서에서부터 가르치는 것이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주관적인 감정과 Individuality 역시도 객관적인 이성과 당위만큼 중요하며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일부에 불과하다'라는 식의 논리는 그 자체로는 옳을 수 있을 망정, 당사자가 겪어야 했던 고통은 그와 별개의 문제다. 게다가 이것은 단순한 감정적 문제만은 아니기도 하다.

한국의 개신교 같은 경우는, 미군정 시절 이래로 정치권력과 유착하며 봉사와 헌신보다는 교세 확장을 중시하는 기형적인 형태로 발달해왔다.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서도 공격적인 선교 방식과 배타적인 태도로 인해 대외적인 이미지는 대단히 나쁜 편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교회도 많다. 그러나 개신교 신자들의 '그런 사람들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일반적으로 설득력이 없다. '그런 사람들'이 일부라고 해서 '그런 사람들로 인해 실질적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의 분노'가 없는 걸로 되는 게 아니기도 하거니와, 개신교 내부도 백 여 개에 달하는 교파들로 갈라져서 서로 반목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기총이 있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권력화된 재벌 교회들의 정치적인 연합일 뿐이다. 개신교의 근본적인 특성은 성경 해석 및 예배 방식 결정에 있어 목회자의 재량이 크다는 것이며, 외부인들이 보기에 개신교는 뚜렷한 핵심 줄기가 없는 '수많은 일부들의 집합'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전부가 곧 일부들이라면, '그런 사람들은 일부에 불과하다'라는 식의 논리는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쓰다보니 개신교 까는 글 비슷하게 됐는데=_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거다. 편견을 갖는다는 것은 부정적인 면모를 내포하고 있을 망정 극히 인간적인 것이며, 일단 그게 편견임을 인정한 뒤 어째서 그런 편견이 존재하는지 그 본질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PS=난 한나라당에 대한 차별주의가 있다. 편견이라는 건 인정하지만 별로 고치고 싶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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