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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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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돌린 캠페인들을 반추해 보니 영 찜찜하다.

 

데브그루 팀 쪽에서 지금껏 마스터링한 캠페인이 2개인데... 결과적으로 전부 실패했었다. 이유를 각각 분석해 보자면...

 

1)뉴욕 배경 퇴마물 캠페인

너무 많은 사전 준비+그에 비해 너무 잦았던 플레이 공백. 당시 준비했던 내용들을 지금 꺼내서 다시 살펴보면... 2011년 겨울 뉴욕 뒷골목의 우중충한 분위기에 대한 이미지 트레이닝이나 중간 중간 PC들에게 주어질 일기나 메모 등의 준비는 충실했던 듯한데... RPG를 하며 '너무 많은 사전 준비'를 하면 필연적으로 생기는, '준비한 걸 어떻게든 써먹고 싶어하는' 증상이 도졌다. 워낙 오랜만의 마스터링이다 보니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었던 거 같기도 한데, PC들은 별로 궁금해하지도 않는 정보를 굳이 투입하려고 하고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디테일의 묘사에 지나치게 정력을 낭비하는 결과를 낳았다. 소설을 쓰면서 자료 조사하고 관련 설정을 준비해 놓는다는 차원에서 보자면 합격점이었지만, 문제는 내가 소설을 쓰는 게 아니라 RPG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거다. 게다가 당시 개인 사정으로 인해 플레이에 빠지거나 시작 시간이 지연되는 일이 잦으면서 괴현상이나 괴물을 본격적으로 투입해야 할 타이밍을 놓치고서 헛물만 켜게 되었고, 나도 지치고 플레이어들도 흥미를 잃으면서 동결 처리로 끝이 났다. 자동차 추격전 등 참신한 시도도 많았는데 아쉬움이 많다. 언젠가 가다듬어서 단편 시나리오 용으로 정리해볼까 생각 중.

 

2)포스트 아포칼립스+퇴마물 '욱일의 망령' 캠페인

취향의 폭주. 1)의 실패를 거울 삼아... 플레이 도중의 전개에 대한 사전 준비는 가능한 하지 않고, 대신 배경과 밑준비를 충실히 해 두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플레이 전 과정은 대체로 스무스했는데... '밑 준비' 과정에서 내가 자연스럽다고 판단한 것과 플레이어가 자연스럽다고 판단한 부분에 있어 충돌이 생겼다. 원활하게 의견 조정을 했어야 하는데 실패하고, 결국 플레이어가 '마지 못해 자기 의견을 굽히는 모양새'가 되었고 그로 인해 플레이 내내 삐걱거렸다. 어떻게든 엔딩은 냈지만 일보고 밑을 안 닦은 식이랄까... 영 껄끄럽지 않은 마무리를 맺었다. 당시의 배경 설정 같은 건 마음에 들어서 소설용으로 옮겨서 재활용할 생각은 있는데 RPG로 다시 플레이할 마음은 안 든다.

 

이번에는 내막을 정해놓고 그걸 공개한 뒤 다들 그 내막이 마음에 든다면 합을 맞춰가는 쪽...으로 할까 하다가 취소. 내막도 결과도 공백으로 두고 플레이 도중에 흘러 가는대로 두도록 방침을 바꿨다. 다른 플레이어들도 대체로 이런 장르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가 있으니 어떻게든 될 거 같긴 한데... 계속 마음에 걸리는 게, 플레이어들의 순발력과 상식은 지금까지 3년 여를 같이 플레이하며 검증이 되었지만 마스터로서의 내 순발력과 상식에 대해서는 자신감이 많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쥐뿔도 모른 채로 친구들과 시작했던 어린 시절에는 그저 매번 플레이가 즐거웠는데, 경험도 지식도 그 때보다 훨씬 늘어난 지금은 오히려 자신감이 없어지고 있다.

 

부수적으로... 지금까지 마스터링했던 캠페인들이 대부분 내가 좋아하고, 배경 지식이 있는 장르다 보니 '일정 기준'을 확립해 놓고 그 기준에 다른 플레이어들을 맞추려고 했던 감도 있고. 일종의 오만이랄까.다음 번에 마스터링을 하게 되면, '엄청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적당한 흥미와 사전 지식을 갖고 있는 역사물이나 액션물을 해볼까 싶기도 하다.

 

전부터 계속 했던 고민이 다시 든다. 팀에서 빠질까... 데브그루 팀 쪽은 애초에 다들 돌아가면서 마스터링을 하기로 하고 모인 건데, 매번 실패를 반복하다 보니 민폐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가 딱히 멘탈이 약하다거나 한번 시작한 일을 금방 금방 포기하는 타입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지만, 나 혼자의 노력만이 중요한 일이 아니라 남들과 같이 하는 거라서... 할수록 나아지기야 할테고, 나도 기왕하는 거 더 잘 하고 싶기야 하지만 기약도 없는 그 때까지 계속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기다림을 강요하는 꼴 같다. 그게 계속 마음에 걸린다.

 

어 씨 운동이나 하러 가자...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