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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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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어느 대학 면접에서 이런 질문이 출제되었다고 한다. <이 작곡가의 작품이 음악으로 분류될 수 있는 근거>를 질문하며, 한 현대음악을 들려주었다. 물론 통상의 관점에서 음악으로 들릴 만한 것이 아닌 것에 가까운 소리였다.
나는 그 음악을 들어본 적은 없으나, 그와 비슷한 건 요즘 많이 들었다. 여기서 슈톡하우젠의 작품에 관한 언급은 일단 제하겠는데, 이미 그의 작품은 의도야 어찌됐건 음악이라고 인식할 만한 요소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나는 많이 들어봤으되 정작 이름을 기억하는 작곡가는 많지 않으므로, 굳이 내가 들 수 있는 예를 든다면 스티브 라이히의 테이프 루프 정도가 되지 않을까. (테이프 루프의 시초가 된 피에르 쉐퍼의 무지끄 콩끄리뜨는 역시 제하기로 한다.) 스티브 라이히는 소음이나 인간의 목소리 중 한 부분을 발췌하여 여러 테이프로 복사한 다음 각각 루프를 만들어 각기 일정한 시차를 두고 재생시키는 방식으로 루프를 계속 반복시키며 위상의 변이에 따른 소리의 변화를 통해 음악적인 요소를 얻는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스티브 라이히의 “Come out”으로, 폭동 중 흑인이 경찰에게 상처를 보이기 위해 상처에 일부러 피를 내며 외친 “Come out to show them”이라는 말이 우연히 녹음된 테이프에서 그 말만 잘라 네 개의 루프를 만들어 위상변이를 부여해 만든 테이프 루프 기법의 작품이다. 테이프 루프를 통해 만들어진 작품은 각자 처음에는 하나의 루프 반복을 계속하는 듯 들리다 어느덧 재생 시간에서 조금씩 차이가 나기 시작해 점점 Sustain처럼 바뀌며, 이는 반복되는 복합적인 시간차를 통해 점차 각자 여러 성부로 분할해간다. 이는 기존에 존재했던 음악적인 기법이 아닌, 기존의 음악 체계에서 완전히 벗어난 기법이며 루프도 음악이 아닌 단순한 소리를 차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를 음악이라 정의할 수 있는 것은 단순한 소리에 재생 시간에 차등을 두는 작업을 통해 얻어낸 결과물에 “음악적인 효과”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스티브 라이히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의미 있는 말을 차용해 루프를 만들어, “음악”에 저항 정신까지 담아내었다. 이로 인해 말로 이루어진 단순한 소리는 스티브 라이히의 작업을 통해 음악이 될 수 있었다.


내가 저번 학기에 작업했던 것 중 “알고리즘 음악”이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알고리즘은 음악이 수학의 일부로 받아들여졌던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존재해 왔고, 푸가, 캐논에 이르는 고전 음악까지도 아우르는 개념이지만 존 케이지를 비롯한 야니스 크세나키스 등의 현대음악가 내지는 전자음악가들은 알고리즘을 음악적인 차원보다는 보다 철저히 수학적인 개념의, 혹은 우연에 의존하는 차원의 방법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전혀 음악적이지 않은 소재를 이용해 음악적인 요소를 부과하고, 이를 통한 하나의 음악으로 만들어 내는 작업의 일환 중 하나가 알고리즘 기법이었고, 요즘은 상당히 보편화되어 (음악공학용으로 분류되는 프로그램인)MaxMSP와 같은, 음악 작곡을 위한 알고리즘 기반의 프로그램까지 나와 있다. 나도 피보나치 시퀀스에서 나오는 수를 [12X허용된 옥타브(C2~C8)]로 나누어 얻은 나머지에 그에 상응하는 음을 대입하여 만드는 방식의 알고리즘 음악을 계획했던 바 있는데, 이 역시 단순한 수열에 음을 대입했을 뿐이지 기존에 존재해 왔던 음악적인 방식을 기반으로 한 작업이 아님은 자명하다. 그럼에도 실제로 내가 그 곡을 만든다면 선율적인 진행을 떠나 일단 음악이라는 칭호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근대까지의 음악은 사람의 수요 및 필요, 기호에 따라 맞추어진 가장 의존적이고 원시적인 개념의 예술이었으나 바그너, 드뷔시, 에릭 사티, 스트라빈스키 등의 근대 음악가들의 시도를 통해 극복되어갔으며, 쇤베르크의 12음 기법을 통해 음악은 비로소 <인간을 위한 음악>에서 <음악을 위한 음악>으로, 철학적인 진보를 이루었다.


고전 음악을 위한 <음악의 정의>는 음정과 리듬, 템포, 화성이라는 요소를 통해 가능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보다 진보된, 이 시대를 위한 <음악의 정의>는 이와는 따로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음악에 관한 생각이 보다 다원화된 현대의 음악은 기존에 비해 보다 폭넓은 시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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