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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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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블로그에 방문하시는 분들 중 어떤 분들은 RPG가 무엇인지도 모르실 겁니다. 그리고 어떤 분들은 RPG를 하고 계실 것이고, 또 어떤 분들은 한때 RPG를 하셨던 적이 있으셨을 겁니다. 네, 그리고 저는 현재 RPG를 하고 있습니다. 한때는 아주 많은 게임을 했었지만, 요새는 그럴수까지는 없지요. 저는 격주의 게임을 1회, 그리고 격주는 아니지만 사정상 매주 할 수는 없는 게임을 주당 2회하고 있습니다. 평균적으로 보자면 주당 1.5회 게임을 하게 되는 셈이고, 아직까지는 제가 감당할만 합니다. 물론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적은 게임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지요.


2. RPG가 뭔지 모르시는 분들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일종의 보드게임과 유사합니다. 보드게임과 다른 점은 자신이 사용하는 캐릭터가 경험치를 얻음에 따라 계속 성장해 간다는 것과, 마스터라는 게임의 주재자 역할 플레이어가 있어서 그가 게임의 이야기와 장애물을 만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저는 격주 게임에서 마스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3. 그러나 RPG에 있어서 다른 종류의 게임 취미들과 가진 가장 큰 차이를 말하자면, 이 게임이 매주, 아니면 그게 아니라도 매번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사람들과 만나서 일정한 정도의 시간을 소비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겠습니다. RPG는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점이 이 괜찮은 취미를 고사시키고 있는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만, 그 이야기는 천천히 하도록 합시다. RPG 말고도 여러가지 다양한 게임을 즐기고 있기도 하지만, 여튼 저는 RPG 플레이어입니다.


4. RPG를 잘 모르시는 분들에 대해서는 이정도까지만 이야기를 합시다. 혹시나 제 블로그의 글들을 읽어보시면서 RPG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셨다면 좋겠군요. 이제부터는 RPG에 대해 알고 계시는 분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정확히는 그 RPG들 중 한가지, Dungeons and Dragons의 4번째 판형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겠지요.


5. 아시겠지만, D&D는 가장 오래된 RPG입니다. 최초의 D&D는 말하자면 보드게임의 적자라고 해야겠지요. D&D는 거대한 성공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업계가 형성되었겠지요. AD&D 역시 거대한 성공이었고, RPG 퍼블리셔들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들 중 대다수가 망했지만 말이죠. RPG계는 쇠락했습니다. 생각해보면, D&D를 출판한 TSR이 트레이딩 카드 게임의 시작자인 Wizards of the Coast에 매각되었던 1999년이 바로 RPG라는 취미가 쇠락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시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6. 트레이딩 카드 게임이란 다양한 종류의 카드들을 규칙에 따라 사용해 가면서 상대를 이기기 위한 목적으로 해 나가는 게임입니다. 저는 그 정확한 규칙을 알지 못하지만, 유희왕이 유명하다고 하더군요. WotC의 자금원천이 된 트레이딩 카드 게임은 소비적인 게임입니다. 이들은 계속 새로운 카드를 발매하여 이전의 카드들을 밀어내도록 만듭니다. TCG의 핵심은, 돈을 많이 소비하는 자가 더 많은 자원을 가지게 되며, 따라서 높은 확률로 승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네. 이들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M:tG는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의 영향력은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요. WotC는 그러한 게임의 창시자이고, Magic : the Gathering으로 벌어들인 돈을 통해 TSR을 매입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그들에게서 D&D의 3번째 판형이 나왔죠.


7. 그건 상당한 변화였습니다. WotC가 내놓은 D&D 3판의 시스템은 RPG의, 정확히 말하자면 D&D의 고전적 팬들에게서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게임의 핵심적인 부분들이 상당부분 변화하였지요.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2002년에는 3.5판을 내었습니다. 저도 그 변화에 거부감을 느꼈습니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배신감이라고 느껴도 좋겠지요.


8. 그리고 2008년 6월, WotC는 D&D 4판을 발매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어난 변화는 AD&D에서 3판으로 변화했을때보다 훨씬 거대했지요. 이 블로그에 포스팅으로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저는 그 변화들의 차이에 대해 글을 쓰려 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언젠가는 올릴지도 모르겠지요. 여하튼, 저는 바로 그 4번째 D&D로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제가 하는 3가지 중 2가지는 그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제가 거부감을 느꼈던 3판의 변화에서 오히려 더욱 많이 변화한 4판의 게임을 하고 있지요.


9. 잠시 이야기를 돌려도 될까요? 사실 저는 RPG 말고도 아주 많은 게임을 합니다. 그러다보니 게임이라는 것의 본질이 어떤 것일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지요. 물론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다 이런 생각을 하고 다니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저는 그렇습니다. 여하튼, 그러한 저에게 있어 게임의 본질에 가장 가깝다고 느겼던 명제는 영국의 유명한 게임 개발자 그렉 코스티캔이 했던 말입니다.


10. "게임이란 자신의 토큰을 가지고 제한을 지키며 자원을 이용하고 장애를 극복하여 목적을 성취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얻는 과정이다."


11. 테트리스나 갤러그 같은 간단한 컴퓨터 게임에서 시작하여, WoW나 다른 여타 복잡한 현대적 MMORPG들에 이르기까지, 이 명제는 거의 다 들어맞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대신할 토큰을 가지고 게임을 진행하고,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을 현명하게 사용해야 하며, 규칙이라는 제한을 지키면서 당면한 장애를 극복해 나가서 목적을 성취해야 합니다.


12. 그런 의미에서, 보드게임에서 RPG로서의 진화는 (그렇습니다. 저는 진화라고 부르겠습니다.) 대단히 특이한 것입니다. RPG는 여러가지 부분에서 저 근본적 게임의 정의에 있어 예외를 만들고 있으니까요.


13. RPG에 있어서 토큰이 되는 캐릭터는 계속 발전하고 성장합니다. 자원 역시도 지속적으로 소비되는 동시에 재보충되고 발전합니다. 제한이 되는 규칙들은 추가되거나 일부 무시될 수 있습니다.


14. 그러나 RPG가 일반적인 다른 게임들과 가장 크게 다른 부분은 RPG에 있어서 목적을 설정하고 장애를 배치하는 것이 다른 플레이어 중 하나인 마스터라는 것입니다. 그 차이점은 생각보다 매우 거대합니다. 물론 대전적인 성격의 보드게임(체스나 장기 등)에서 이미 상대편이 움직이는 말들이 장애가 되며 상대를 이기는 자체가 목적이 되기도 합니다만, RPG에서 마스터가 움직이는 방식은 체스게임의 상대방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15. 바로 이것이 RPG의 특이점을 만듭니다. 저는 일부 RPG 플레이어들처럼 RPG가 다른 게임들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 다른 게임들보다 우월한 게임이 있다고 주장하는것은 바보같은 짓이거든요. 그러나 RPG는 그 부분에서 분명하게 다른 게임들과 다릅니다. RPG는 목적의 설정에 있어서 무한하며, 장애의 배치 방식과, 심지어 무엇을 장애로 여겨야 할지의 정의에 대해서도 무한합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마스터의 역량에 달려 있는 문제가 됩니다.


16. 그러나 이 특이한 게임 RPG는 현재 고사의 시기에 있습니다. 애초에 RPG 인구가 그렇게 많지 않았던 국내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겠습니다. RPG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만 해도 RPG 플레이어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시장의 규모 역시 감소 일로를 걷고 있습니다. 슬픈 일이지요. 대체 왜 그런 걸까요.


17. 여러가지 이유를 댈 수 있겠습니다만, RPG의 위기에 있어 핵심적인 부분은 RPG가 사회적인 게임이며, 플레이어들이 정기적으로 모여야 할 수 있는 놀이라는 것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주제에 RPG에서 사용되는 토큰은 발전하며, 그 발전의 정점에 달하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소요됩니다. RPG는 사회를 구성하기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그 사회 내에서 서로 협력하기를 요구합니다.


18. 물론 그러한 사회 구성과 내부 협력이 RPG에 있어서 또다른 중요한 즐거움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즐거움에 쉽사리 끌리지요. 파티를 구성하는 방식의 MMORPG가 끄는 인기를 생각하시면 쉽게 이해가 되실겁니다. 하지만, 그러한 MMORPG들과 우리가 테이블에 둘러앉아 하는 RPG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테이블에 사람들이 둘러앉으려면 실제로 모여야 하고, 서로 정해진 약속을 지켜야 하지만, MMORPG는 그런 귀찮은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습니다. 시간이 날때 접속해서 금방 만들어지는 파티를 구성해서 가면 됩니다. 이것이 점점 더 MMORPG가 테이블을 대체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지요. 그런 연유로 RPG가 쇠락하게 되는 과정이 MMORPG의 발전과정과 겹치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19. 그런데 이상하지요. AD&D의 절정기라고 볼 수 있었던 1992년에서 3년 사이에, TSR은 1년에 평균 9권의 책을 냈습니다. 물론 그들이 발매하고 있던 소설을 합하면 1년에 17권 정도가 되겠지요. 2008년, WotC가 D&D에 관련하여 출판한 출판물은 관련 소설을 포함할 경우 총 30권이 넘습니다. 어떻게 된걸까요. RPG는 쇠약해졌는데 말입니다.


20. 이제 우리가 생각하던 처음 이야기로 돌아와봅시다. D&D 4th에 대한 이야기로 말이죠. 1999년 D&D 3판이 받았던 비판의 핵심적인 부분은, 그 시스템이 매우 컴퓨터 게임적으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과연 컴퓨터 게임적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RPG는 아무리 애를 쓰더라도 컴퓨터 게임이 될 수 없습니다. 장애를 설치하고 목적을 제시하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RPG가 가지는 확장성과 다변성이 실현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컴퓨터 게임적이라는 이야기는 왜 나오는 것일까요?


21. 잠시 돌이켜 제가 D&D 3rd를 처음으로 비판했던 때로 돌아가서 생각해 본다면,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게임은 캐릭터를 지나치게 효율적 방식으로 만들기를 요구한다. 국민트리라고 불리는 Feat 선택이 생겨날 것이고 캐릭터들의 효율성이 중시된다면 개성이 사라질 것이다."


22. 생각해보면 D&D 3판의 "컴퓨터 게임적 변화"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이들은 캐릭터의 능력을 Feat와 Skill, Spells등으로 분해했고, 그 분해된 부분을 조립해 나가는 과정을 게임의 일부로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서플리먼트들이 나올 때마다 조립해 나갈 수 있는 블록의 수가 늘어납니다. 마치 새로 구입한 LEGO 블럭을 이용해서 조립해 나가는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겠지요. AD&D 당시의 캐릭터 구조를 생각해보면 이는 놀라운 일입니다.


23. 이 변화는 어찌 보면 필연적이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첫째로, D&D가 처음 등장했을 때에 비하면 토큰(=캐릭터)의 개별성이 점점 더 커졌습니다. AD&D에서라면, 캐릭터를 만들 때 종족과 클래스를 선택했다면 중요한 결정은 거의 다 한 것이었습니다. 캐릭터의 나머지 개성을 만드는 것은 전적으로 플레이어의 능력에 의한 부분이었죠. 그러나 D&D 3rd가 그것을 변화시킨 것입니다. 플레이어들이 캐릭터의 개성을 만드는 부분 역시 게임적 효율성의 일부로 끌어들였던 것이지요. 플레이어들은 토큰에 개성을 부여하기 위해 상상력과 이야기를 만드는 재주를 사용하는 대신, WotC가 제공한 목록에서 선택하는 과정을 밟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선택마저도 효율적인지 아닌지를 생각하게 만들었지요.


24. 결과적으로 말하면, D&D 4th에서 나온 변화는 그것보다 더 심각한 종류입니다. 모든 캐릭터들은 기본적으로 같은 숫자의 Power들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Feat 등의 선택을 "효율적으로" 하면 조금 더 많은 횟수를 가질 수야 있겠지요. 캐릭터는 완전히 분해가능합니다. 그리고 원한다면 철저한 효율성을 가지고 선택 가능한 모든 Option을 고려해서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캐릭터를 만들 수 있습니다. 네. 물론 그렇게 된다면 캐릭터들은 모두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지게 되겠지요.


25. 그러나 실제 게임에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모든 파이터가 바스타드 소드를 들고 있지도 않고, 모든 파이터가 드래곤본으로 만들어지지도 않지요. 심지어 눈에 띄게 비효율적인 선택도 이루어집니다. 왜 그럴까요. 플레이어들이 효율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아니겠지요. 적어도 제가 아는 플레이어들은 효율을 최고로 중시하지 않을지는 모르겠지만 모른 척하지는 않았습니다. 플레이어들이 게임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아마 그것도 아닐 겁니다.


26. D&D 4th의 변화 결과는 적어도 몇가지는 분명한 목적을 지니고 있습니다. D&D 4th의 디자이너들은 모든 캐릭터에게 동일한 숫자의 선택을 주기 위해 애썼습니다. 이제는 파이터들도 위저드들은 비슷한 숫자의 Power를 가지게 됩니다. 3rd까지의 파이터들이 몇가지 매뉴버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타격만을 할 수 있었던 것에 비하면 큰 변화라고 할 수 있겠지요. 반면, 위저드들은 그들의 거대한 주문책을 접고, 전투 중에는 파이터와 유사한 숫자의 능력들만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투에 사용되지 않는 대부분의 주문들은 Ritual이 되었지요.


27. 물론 이 모든 것이 점점 더 플레이어들의 창조범위를 축소시키는 과정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고전적인 게임플레이어들에게 마음아픈 일입니다. 토큰의 효율성 중 큰 부분이 이제는 플레이어들의 사고과정에서가 아니라, 캐릭터의 제작 과정에서 결정되니까요. 하나의 캐릭터가 완성된 이후 할 수 있는 일의 다양성은 확실히 감소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걱정하고 있는 효율성의 극단적 추구와 개성의 극단적 상실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아니오. 저는 그것이 우리가 개성을 중시하는 아름다운 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저도 게이머가 어떤 사람들인지 알고 있습니다. 저도 게이머이기도 하구요. 이는 차라리 새로운 책이 계속 공급되며 새로운 블럭들이 늘어나고, 더욱 효율적인 제작법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며, 무턱대고 효율성만 추구하는 것보다 가능한 한 다양한 경험을 하고자 하는 것이 게이머들의 본능에도 그 이유가 있다고 보는 쪽이 옳을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특이한 것에 환장하는 사람들이기도 하죠.


28. 하지만 봅시다. WotC의 이러한 방향 전환이 과연 비난받을만한 것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의 제작 방향은 이해할만한 사고의 결과입니다. 이들은 먼저, 줄어들어가는 RPG 플레이어의 숫자를 고민해야만 합니다. 많은 이들은 편안하게 만드는 가벼운 사회의 구성원이 되길 바랍니다. 이들은 매주 정해진 시간에 약속을 잡고 만나는 대신, 그냥 시간날 때 접속해서 파티를 구성하길 바랍니다.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이해하기 쉽고 간단한 규칙이 필요합니다.


29. 그리고 또한 이들은 투자된 자본의 회수를, 아니, 이익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들은 더 많은 책을 팔아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옛 AD&D 방식으로는 많은 책을 팔 수 없습니다. AD&D에서 캐릭터들은 만들어지면 오랜 기간을 사용되며, 하나의 캐릭터로 매우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매번 새로운 책에 새로운 캐릭터 옵션을 제공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캐릭터의 제작은 플레이어들의 창조성보다는 옵션 중의 선택으로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30. 말하자면, 이들은 RPG를 자신들이 만들던 카드 게임과 유사하게 만드는 것만이 이를 통해 이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이겠지요. 가능한 한 쉬운 규칙, 지속 가능한 간단한 캐릭터 제작, 다양한 옵션을 제공하지만 하나의 캐릭터에 모든 것을 담을수는 없게 만드는 이 방식은 출판사에 지속적인 게임 제작 환경을 제공해 줍니다.


31. 그렇습니다. D&D 4th는 AD&D에서 아주 많이 달라진 게임입니다. 예전에 플레이어들이 상상하고 가정하고 결정하던 많은 것들이 이제는 선택 가능한 옵션으로만 주어집니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것들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고전적인 게임 플레이어들은 선택권이 줄어드는 것을 본능적으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들에게는 D&D 4th를 비판할 충분한 권한이 있습니다.


32. D&D 4th는 컴퓨터 게임화된 것일까요? 제 생각은 "아니오."입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RPG를 컴퓨터 게임처럼 만들려면 최소한 인간에 의한 장애와 목적의 배치라는 과정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것은 개념 자체에 대한 도전입니다. 여전히 D&D 4th에서도 장애를 배치하고 던전의 지도를 그리며 게임의 목적을 만드는 것은 마스터의 일입니다. 이것이 또다른 문제를 야기하고 있음도 중요합니다.


33. WotC에게 있어서, 아니, 현대 RPG의 쇠락 상황에 있어서, 전체적인 플레이어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보다 더 두려운 일이 있다면, 그중에서도 게임을 마스터링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게임 마스터에게 가해지는 책무가 생각보다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많은 이들은 이를 시작하기 힘들어합니다. 그리고 새 마스터가 없다면, 당연하게도 새 RPG 게임도 없습니다.


34. 저는 D&D 4th가 컴퓨터 게임화 되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도 고전적 RPG 플레이어들의 심정을 이해하니까요. 저 역시 캐릭터를 만들 때 가능한 한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캐릭터로 만들고 싶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플레이어들은? 우리가 옛 방식을 고집한다면 새로운 플레이어란 없습니다. 새로운 게임 마스터도 없습니다. 우리는 점점 적어지는 플레이어들의 공동체 속에서 고립될 것입니다.


35. WotC의 정책이 고전적 게임 플레이어에게 환영받을만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RPG라는 취미가 고사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필요한 조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들은 지속적으로 이익을 취할 수 있는 RPG 출판의 방식을 찾아냈고, 새로운 게임 마스터가 쉽게 게임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그를 통해서 새로운 시장... 아니지요. 새로운 플레이어를 확보하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36. 한편, 우리 플레이어들의 입장은 어떨까요. 제 생각에, 우리는 너무 시스템 탓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RPG는 게임 시스템 자체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게임의 5대 요소 중에서, 시스템이 제공하는 것은 오직 제한과 자원, 그리고 토큰이나 장애를 만들 수 있는 도구 뿐입니다. 장애를 실제로 만들고 목적을 지정하는 것은 마스터들의 일입니다. 만약 D&D가 정말로 컴퓨터 게임처럼 변하고 있다면, 그것은 한편으로 마스터들의 사고방식 역시 컴퓨터 게임에 영향을 받으며 그처럼 변해가고 있는 과정이라 봐야겠지요.


37. 저라고 D&D 4th에 아무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레이호크를 너무나 좋아합니다. 하지만 30여년의 역사를 가진 이 세계는 4th가 되어서 이제 역사의 무대에서 공식적으로 퇴장하기 이르렀습니다. 4th의 공식 세계는 아무도 들어본 적이 없는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졌지요. 저 역시 주문 체계가 크게 바뀐 것에 대해서는 마음이 아픕니다. 저는 AD&D에서도 파이터와 위저드를 제일 즐겨했습니다. 3rd나 3.5에서도 그랬지요. 저 역시 아쉬운 부분은 많습니다.


38. 하지만 저는 한편으로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새 플레이어들의 숫자가 걱정됩니다. 단순히 취미를 즐기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새 플레이어들에 대해 걱정을 해야 할 필요는 없을수도 있지요. 계속 즐기던 이들과 조촐하게 즐기면 될 것 아닙니까? 하지만 시장 규모의 감소가 계속된다면 결과적으로 우리가 조촐하게 즐기고 있는 이 게임들에 대해서도 위기는 닥쳐올 것입니다. 더이상 새로운 책을 볼 수 없는 시기가 올수도 있다는 겁니다.


39. 그러니 컴퓨터게임화 되어가고 있다고 비판하며 눈을 흘기며 지나치기 보다, 그냥 조금 차가운 눈으로 지켜봐주면 어떨까요. 가능하면 실제로 한번씩 해보면 더 좋을 것 같고 말입니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컴퓨터게임화 되지 않은 것일수도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에게는 마스터가 있고, 그들이 만들어가는 게임은 비록 다른 도구를 썼을지 몰라도, 여전히 그들의 게임입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제가 WoD 텔링을 하든, D&D 마스터링을 하든, 똑같은 Zerdion의 게임인것은 변화가 없다고 말이죠. 칭찬일지는 모르겠습니다. 똑같이 형편없다는 뜻일수도 있겠죠.


40. 그리고 조금이라도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늘어나기를 기대해봅시다. 우리가 처음으로 RPG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느꼈던 흥분과 기대를 느끼고 있을 사람들 말입니다. 그들에게는 우리가 오랫동안 알아왔던 오어스(Oerth : 그레이호크의 무대가 되는 별의 이름)의 땅이나, 올해 6월에 막 역사에 처음으로 이름을 새기게 된 넨티르의 골짜기(Vale of Nentir : 4th의 첫 시나리오 배경이 된 장소)나 마찬가지로 처음 맞이하게 되는 환상의 장소일 뿐입니다. 그들의 환상이 펼쳐져 나갈 세계를 우리도 같이 받아들이도록 합시다. 어차피 우리에게는 추억에서 결코 잊혀지지도 않을 오래된 세계들 역시 있지 않습니까.

[출처] Dungeons and Dragons 4th를 변호한다.|작성자 제르디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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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4판 까는 글 써놓고(...) 네이버 쪽 이웃분 블로그에 가봤다가 마침 다른 관점에서 쓰인 글이 있길래 허락받고 퍼옴.

'여전히 우리에게는 마스터가 있고, 그들이 만들어가는 게임은 비록 다른 도구를 썼을지 몰라도, 여전히 그들의 게임입니다.'라는 제르디온님의 말씀도 나름 일리가 있긴 하다. 하지만 4판은 그걸 근본적인 차원에서 뒷받침해줄 수 있을 만한 무언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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