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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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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룬썩10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매일 같이 커다란 폭로와 떡밥이 튀어나오고 온갖 썰과 음모론이 범람하고 있어서... 나도 정신이 온통 그쪽에 쏠려 있는 참이긴 한데, 멘탈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일상을 회복해야겠다 싶던 참. 좋은 소설을 쓰려면 좋은 인풋이 필요한 법이고, 질 좋은 인풋을 한참 안 했다 싶어서... 전부터 한 번 보려고 했던 호러 영화 <디 이노센츠>와 <더 터닝>을 몰아봤다.

 

이 두 영화는 고딕 호러의 고전이며 최초로 하우스 호러라는 호러의 서브 장르를 개척한 작품이기도 한 헨리 제임스의 중편 소설 '나사의 회전'이다. 장중하면서도 음산한 대저택에 가정교사로 고용된 주인공이 유령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일련의 괴현상을 접하고 자신이 가르치는 어린 남매를 유령에게서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게 기본적인 시놉시스인데, 원작 소설이 지금까지도 수많은 작가에게 영감을 준 고전 명작으로 추앙받는 이유는 예의 역사적 의미도 있지만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가며 '이 괴현상이 과연 유령의 짓인지 상상력 풍부한 주인공의 망상 내지 환각인지 만약 진짜 유령의 짓이라면 정말로 홀린 것은 누구인지'를 독자가 계속 자문하게끔 만들고, 어떻게 해석하더라도 나름 말이 되는 세련된 서술 방식 때문이었다. 19세기 기준으로 이런 소설은 정말로 드물었다. 1961년에 <디 이노센츠>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고, 플롯이 좀 단순화되었고 밋밋해졌지만 주인공인 미스 기든즈 역을 맡은 배우 데보라 커의 호연과 인상적인 연출로 역시 명작 반열에 들었다(그 대신 호러 씬의 연출이나 공포 수위는 아무래도 요즘 호러 영화보다 훨씬 약하다).

 

<더 터닝> 역시 나사의 회전을 원작으로 해서 비교적 최근(2020년 작)에 나온 영화인데.... 이건.... 음.............. 원작 소설과 <디 이노센츠>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별개의 호러 영화로 보면 뭐 그렇게까지 나쁜 영화는 아니다. 양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당히 볼 만한 수준은 된다. 하지만 원작 소설과 <디 이노센츠>의 핵심이었던 그 애매모호함- 유령의 존재가 진짜인지 아닌지, 어쩌면 문제의 근원은 망상과 편집증에 빠진 주인공의 강박적인 도덕성과 의무감은 아닌지-이 완전히 사라지고, 악령이 대놓고 살인하는 평범한 영화가 되어 버렸다. 물론 원작 소설의 후광이 크고 <디 이노센츠>도 호러 영화사에 남은 명작이다 보니 감독 입장에서는 최대한 차별화를 하고 싶었을 거라는 건 이해가 되는데, 이런 식으로 원작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를 포기했다면 그걸 보충할 만한 독보적인 개성이나 미점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것도 없고, 결과적으로 '아예 조진 건 아니지만 애매하게 평타 정도만 치는 그저그런 호러 영화 A'가 되어 버렸다. 평가가 1961년작보다 훨씬 나쁜데는 이유가 있었어...           

 

<그것>에서 리치 토저, 미드 <기묘한 이야기>에서 마이클 윌러 역을 맡은 핀 울프하드의 연기만은 좋다. 61년판에서 마일즈라는 캐릭터는 마치 호색한 성인 남성처럼 주인공에게 징그럽게 들이대는 걸 빼면 대체로 착하고 예의바른 빅토리아 시대 부유층 집안 아들인데 비해 <더 터닝>에서 핀 울프하드가 연기한 마일즈는 여자 가정교사를 은근히 얕보면서 이겨 먹으려 드는 느자구 없는 90년대 청소년 느낌을 잘 살렸다. 

 

 넷플릭스 드라마 <블라이 저택의 유령>은 역시 나사의 회전 원작이면서도 꽤 잘 뽑혔다고 들었는데 그건 그것대로 또 로맨스 중심이고 호러 씬이 약하다고 들어서 손이 안 간다. 난 로맨스 안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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