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정의 몰락을 지켜보면서 새삼 드는 생각은, 노동이나 환경, 소수자 의제를 우선시하는 좌파가 정치적인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딴에는 전략적 동맹일 뿐이랍시고 극우와 제휴하기 시작하면 결국 장검의 밤 때 숙청된 나치 내 좌파(웃음)들 꼴이 난다는 것이다...
녹색정의당이 0석을 찍으면서 원외로 쫓겨난 건 유감이지만,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는 뻔하고 진부한 핑계 대가면서 돌격대 노릇하는 꼴을 보지 않게 된 건 다행스럽다. 이를 계기로 두 번 다시는 저짝 패거리들과 어울리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절대악을 막기 위해서라면서 늘 좌파들에게 일방적인 양보를 요구하는 민주당이 ㅈ같은 건 인정하지만, 저짝 패거리와 붙어 먹는 건 선택 가능한 옵션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문득 심상정을 만났던 게 기억난다. 아마 2016년 쯤이었던가...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가 한창일 무렵이었다. 예술의 전당 근처였던가... 심상정이 연설하는 것과 마주쳤는데, 연설이 끝나고 자리를 떠날 때 쯤 "시간 괜찮으시면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없겠냐"고 청했었다.
당시 나는 정의당 지지자였고, 투표도 여러 번 했었지만 그 무렵 이미 정의당은 이념이나 대의가 아닌 의석 수와 입지를 위해 타협하고 민주당과는 원팀이라고 말하면서도 충돌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심상정에게 "정치적 이익을 위한 애매한 타협은 하지 말되 민주당에게는 너무 날 세우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었다. 심상정은 웃으면서 "저희가 민주당과 싸우긴 왜 싸워요, 동맹인데"라고 대답했지만... 순간 어딘지 모르게 그 대답이 건성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내가 민주당 지지자라고 여겼던 걸지도 모르겠다.
여튼 당시 나는 옆에 있는 경호원으로 추측되는 사람들 눈치가 좀 보이기도 했고, 나도 내 생각을 충분히 정제해서 말할 수 없는 상태인데 바쁜 의원 오래 잡고 있기도 좀 그렇다 싶어서 "좌파 정당으로서의 선명성을 유지한 채로 박근혜 정권 및 새누리당과 싸워달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인사를 건넸다. 심상정은 어색하게 웃기만 할 뿐 끝내 대답은 하지 않았다. 난 뭐라고 말하기 힘든 복잡한 심정으로 그가 떠나는 뒷모습을 지켜봤지만, 박근혜가 탄핵되고 다음 대선에서도 심상정을 찍었었다. 문재인이 될 것이라는 걸 충분히 예상하고도 남았지만, 가난한 좌파로서의 내 자존심은 민주당 후보를 찍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이후 문재인 정권에서도 정의당은 계속 정권과 갈등했고, 가끔은 석연치 않을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기간 동안 내내 나는 심정적으로 정의당 편이었다. 계약직 단기 노동자이자 안 팔리는 작가로서 매달 내야 하는 최저한의 당비조차도 부담스러웠기에 당원 가입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끔 돈에 여유가 생기면 후원금도 냈었고. 하지만 점차 내 마음은 정의당을 떠나고 있었고, 지난 대선에서 나는 노동당 이백윤 후보를 찍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정의당에 실망하게 된 건 작년의 일이었다. 윤석열은 이명박 때 인사들과 검찰 출신들로 대통령실과 내각을 채웠고, 그 과정에서 밥그릇을 잃고 그들 나름 윤석열에 대한 원한이 생긴(그러나 쓰레기이긴 마찬가지인) 이준석이나 천하람 같은 것들이 생겼다. 정의당 내에서는 그들과 제휴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생겼고, 심상정은 그를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았다. 결국 제3지대를 자칭하는 기괴한 혼종이 생겨났다(류호정은 뭐 그럴 거 같았지만 장혜영은 실망스러웠다. 좋게 표현해서 '실망스러웠다'는 거다, 썅).
그리고 2024년 총선이 끝났다. 녹색당과 합쳐진 정의당은 창당 이후 최초로 0석 신세가 되면서 원외정당 신세가 되었고, 심상정은 정치 은퇴를 시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화창하고 아름답지만, 떨쳐낼 수 없는 불길함도 함께 느껴지는 봄날 오후다. 그리고 나는 그 흐린 저녁 하늘 아래에서 어색하게 웃으며 내 시선을 피하던 심상정을 떠올린다. 결국은 오늘 같은 날이 오리라는 것을, 나는 10년은 더 된 그 날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제는 아예 원외정당이 되었으니 당장의 입지에 연연하지 말고 다시 야성을 찾고는 노동자와 소수자의 편에 서서 싸워주기를 바랄 뿐이다. 고 노회찬 의원이 "우리가 가야할 곳은 좌도 우도 아닌 아래다"라고 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