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명 넘는 사람들이 강철방에 갖힌채 물속에 생수장당하는 걸 라이브 방송으로 본 멘탈 약한 사람들은, 조금만 더 상상을 진행시켜도 상당한 멘탈 데미지를 입게 된다. 지금도 관련 내용을 접할 때마다 메쓰꺼움과 두통이 따라온다.
참사는 그 내용으로 사람들의 정신을 고문하고 실제로 다른 종류의 광범위한 데미지를 만들어낸다.세상에는 멘탈 약한 사람들이 많다. 끔찍한 참사는 되도록 빨리 보상할 거 보상하고 잡을 놈 잡고 애도할 거 애도하고 기억에서 지우고 싶어한다.
참사의 공식적인 '엔딩' 을 만들어줘야만 약한 사람들은 그나마 안심하고 그 데미지들에서 멀어질 수 있을 것이기에, 빠른 엔딩을 바라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바 아니다.
함께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타인의 큰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자신의 작은 데미지를 감내하는 바람직한 인간상을 추구하도록 이끄는 지표들이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그런 인간상을 추구하도록 가르치는 훌륭한 종교들이 있고, 그런 인간상을 추구하도록 가르치는 역사와 윤리 교과서가 있고, 그런 인간상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영화와 드라마, 만화, 스토리들이 있지 않았던가.
세상의 야비함에 적응해 살아가는 것을 어른의 가치라 강요하는 아재들이 저 경전과 교과서와 스토리들을 비웃는다. 데미지를 입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예 공감의 상상력을 뿌리채 뽑아버리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아재들이 세상을 지배한다.
메스꺼움과 두통에 시달리는 멘탈 약자들은 저 강한 아재들의 티타늄 멘탈을 부러워하고, 참사의 엔딩에 대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우물쭈물거리다가 채널을 돌리는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이 야비한 세상의 강함 대신, 저 이야기 책들 속의 고결해 보이는 강함을 부러워할 수 있을까? 세상의 합리와 공정성에 대한 잣대를 내 자신의 황금률로 대체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