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그 분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결정을 내렸다.
너무 유치하다 싶어서 지금까지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역시 내 '연애 감정'이란 건 어린애 수준에 불과하다. 어렸을 때는... 그저, 하루 하루 견디는 것으로 힘겨워서 그런 감정을 느낄 여유 자체가 없었고... 내가 구체적으로 누군가에게 반한다는 게 어떤 감정인지를 깨달은 건 나이를 먹고 군대를 다녀와 학교에 복학한 후의 일이었다. 그 때부터 세도 고작 7년에 불과하다. 내 육체나 이성은 성인이지만, 정서- 그 중에서도 특히 연애에 관련한 감정 발달 부분은 여전히 지독하게 자기본위적인 애새끼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다. 이 나이를 먹도록 '썸'이나 유사연애 관계 이상을 겪어보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일테고.
내가 지금... 연애 감정 같은 것을 받아들이기에는 상황이 너무 나쁘다고 내내 생각해왔다. 그토록, 가슴아프게 아름다운 사람이 혼자일 리 없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런 이유들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이유는...
내가 '죽고 싶다'가 아니라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그 때, 내가 정말로 자살하거나 미치지 않도록 막은 단 한 가지가... 부모님에 대한 애정이나 미래에 대한 희망, 죽음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게 아니라 내 '명예'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종의 에고나 자기애와 비슷한 거다. 극한 상황에서, 나를 붙잡아줬던 유일한 기둥이... 이제는 마음을 드러낼 수 없게 하는 장벽이 되고 있다.
ida님이 전에 지적하셨던 대로, 내 안에는 오직 '나' 밖에 없다. 이런 내가, 누군가와 사랑을 주고 받으며 함께 행복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만에 하나, 모든 것이 믿기 힘들 정도로 좋게 진행되서... 그 분과 연인 사이가 된다해도 그것은 대등한 인간끼리의 이해와 사랑이 아니라 일방적이고 자기충족적인 수준에서 멈출 것이다.
'사랑'은 그래서는 안 될 것 같다.
이미 반해 버린 거야 어쩔 수 없으니, 굳이 일부러 내 감정을 부정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 고백한다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런 삶도 있는 거다, 혼자 품고 있다 보면 흐려지겠지. 시간이 좀 더 많이 지나고 나면 또 다시 다른 누군가에게 설레거나 할지도 모르고.
그리고,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괜찮다, 이런 삶도 있다. 한 잔 생각이 간절하긴 한데... 바쁘기도 하고, 지금 같은 심정으로 마시고 잠들었다간 또 악몽을 꿀 것 같다.
......그립다, 울고 싶을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