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竹影掃階塵不動 죽영불계진부동 月穿潭底水無痕 월천담저수무흔- 대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일지 않으며,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못 위에 흔적조차 없다.
by 자레드 갈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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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점을 막는 장애물

 

로봇이 사람 못지않게 똑똑해지는 시기는 언제일까? 아마도 21세기가 끝날 무렵 쯤일 것이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컴퓨터의 눈부신 발전은 무어의 법칙을 따르고 있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 점차 누그러지다가 2020~2025년 쯤 되면 성장이 거의 멈출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그 이후의 발전속도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이 책에서는 컴퓨터의 성능이 계속 상승하되, 상승속도는 점차 느려진다고 가정한다.

 

둘째, 컴퓨터가 1초당 10의 16승 회의 연산을 수행한다고 해서 사람보다 똑똑하다는 뜻은 아니다. IBM사의 체스 전문 컴퓨터 딥블루는 초당 2억 개의 행마를 분석할 정도로 빨라서 결국 세계 챔피언을 이겼지만,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똑똑한 존재가 되려면 체스의 길을 분석하는 것보다 훨씬 고난도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자폐증 환자 중에는 엄청난 기억력과 계산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러나 이들은 혼자선 구두끈조차 매지 못한다. 이들이 직장을 갖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이야기다. 영화 <레인맨>의 모델이 된 실제인물인 킴 피크는 1만 2천 권의 책에 들어 있는 모든 단어를 외우고 컴퓨터를 동원해야 검산이 가능할 정도로 복잡한 계산을 암산으로 척척 해냈다. 그러나 그의 IQ는 겨우 73에 불과하여 일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했으며 죽는 날까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했다. 생전에 그의 부친이 돌보지 않았다면 피크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미래에 만들어진 초고속 컴퓨터도 자폐증 환자처럼 기억력이 뛰어나고 계산속도도 빠르겠지만 그것이 전부이다. 이런 기계가 현실 세계에서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다. 앞으로 컴퓨터의 계산능력이 인간과 비슷해진다해도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려면 그에 걸맞는 소프트웨어와 프로그램이 주입되야 한다. 빠른 계산속도는 인간과 비슷해지기 위한 첫걸음일 뿐이다.

 

셋째, 똑똑한 로봇이 탄생했다 해도 자신보다 똑똑한 복제로봇을 만들 수 있을지는 분명치 않다. 자기복제 로봇의 수학적 기초를 확립한 사람은 게임 이론의 창시자이자 초기의 전자식 컴퓨터를 설계했던 존 폰 노이만이었다. 그는 임의의 기계가 자신과 똑같은 기계를 복제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수학적 기준을 제시했다. 그러나 노이만도 '자신보다 똑똑한 복제품을 만드는 기계'까지는 고려하지 않았다. 사실 '똑똑하다'는 말의 정의 자체가 모호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똑똑해야 하는지도 분명치 않다. 로봇에 칩을 추가하면 원래보다 메모리 용량도 커지고 성능도 향상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업그레이드한 복제로봇이 원래의 로봇보다 '똑똑하다'고 할 수 있을까? 전자 계산기는 계산속도가 사람보다 거의 100만 배나 빠르지만 사람보다 똑똑하진 않다. 기억력과 연산속도는 지능의 척도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넷째, 하드웨어의 성능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지수함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소프트웨어는 그렇지 않다. 하드웨어가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기판에 새겨넣는 트랜지스터의 크기가 계속 작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프트웨어는 사람이 책상 앞에 앉아 종이 위에 무언가를 적어나가면서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사람이 생각하는 속도가 트랜지스터의 조밀도처럼 매년 몇 배씩 증가할 수 있을까? 턱도 없는 소리다. 다시 말해 소프트웨어의 병목현상은 바로 인간에 의해 초래된다. 인간의 모든 창조활동이 그렇듯 소프트웨어도 오랜 침체와 부단한 노력, 그리고 어느 날 운 좋게 떠오른 황금 같은 아이디어의 산물이다. 하드웨어는 실리콘에 새겨진 트랜지스터의 개수가 증가하면서 예측 가능한 속도도 발전하고 있지만 소프트웨어는 인간 사고의 산물이므로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컴퓨터의 성능이 지수함수를 따라 꾸준히 향상된다는 주장은 반론의 여지가 많다. 다들 알다시피 쇠사슬은 가장 약한 고리보다 강할 수 없다. 그리고 컴퓨터에서 가장 약한 고리는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프로그램과 소프트웨어를 연결하는 거리이다. 공학분야는 지수함수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특히 효율성에 따라 결과가 좌우되는 경우에는 상당기간 큰 폭으로 발전할 수 있다. 실리콘 기판에 초소형 트랜지스터를 새기는 기술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수학, 물리학 등 사람의 머릿속에서 이뤄지는 기초과학 연구는 행운과 숙련도, 그리고 언제 떠오를지 모르는 천재의 영감 등에 의존하기 때문에 발전속도가 거의 무작위로 나타난다. 이 패턴은 아주 긴 세월 동안 아무 변화가 없다가 갑자기 큰 변화가 초래되어 전체적 흐름이 바뀌는 '단속평형'과 비슷하다. 뉴턴에서 아인슈타인, 그리고 현대로 이어지는 기초과학의 변천과정을 돌아보면 꾸준한 변화보다 단속평형에 훨씬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섯째, 앞에서 두뇌의 역설계를 다룰 때 언급한 바와 같이 사람의 두뇌구조를 규명하는 프로젝트는 비용과 규모가 너무 엄청나기 때문에 21세기 중반 전에는 착수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프로젝트가 진행되며 산더미처럼 쌓인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도 수십 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따라서 두뇌의 역설계는 아무리 빨라도 21세기 말이 되야 완료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섯째, 생각 없던 기계가 어느 날 갑자기 의식에 눈을 뜨는 '빅뱅'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앞에서 그랬덧 것처럼 '사전 시뮬레이션으로 미래를 계획하는 능력'을 의식의 한 요소로 정의한다면, 의식의 형성은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기계가 이런 수순으로 발전한다면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나의 지론에 의하면 의식을 가진 기계는 21세기 말에 등장할 것이기에 다양한 사안들을 논의할 시간은 충분하다. 또한 기계의 의식은 인간과 달리 기이한 특징이 있을 것이므로 인간의 순수의식보다 '실리콘 의식'이 먼저 규명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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