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생각을 해봤습니다만, 저와 교수님은, 그리고 현행 수업 방식은 저와 도저히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은 이하와 같습니다.
첫 번째로, 수업 내용 자체에 대해서는 별로 불만이 없습니다. 하지만 매스컴과 현대 사회라는 이 과목은 그 근본적인 정의 상 교수님의 정치적인 관점 및 견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자연히 수업 내용에 있어서도 그것이 반영될 수밖에 없고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는 정치적으로 중립이어야 한다’는 식으로는 저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학자 역시도 인간이며, 그 자신이 속한 사회와 환경에 대해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고 과목 특성 상 그것은 필연적인 결과니까요. 관건은 다만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그러한 관점 차이를 얼마나 현명하게 좁힐 수 있느냐라고 봅니다. 딱히 그러한 견해가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요(개인적으로는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으로서 그러한 자신의 신념이나 입장이 없어선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러나 교수님은 그를 인정하지 않으시는 경향이 있습니다. 전에 수업 중에, 교수님이 ‘한국 사회의 분열은 북한의 책동 탓이다’ ‘현재 한국의 정당 중 보수는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이며 민주당부터 민주노동당까지는 전부 진보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저는 정치적 견해 차이를 떠나 사실 관계 자체가 틀렸다고 여겼고, 그래서 이견을 냈습니다. 하지만 그 때 교수님은 제가 하고자 하던 이야기를 중간에 묵살해 버리고는 다른 학생들을 향해 교수님 자신의 주장만을 반복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첫 번째와 이어지는 겁니다. 제 정치적 입장은 명백히 좌파입니다. 그러나 저 역시 북한 체제에 대해서는 누구 못지않게 증오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북한 정권이 모든 종류의 가난과 억압, 고통과 슬픔을 거부했던 맑스의 이상을 외면하고서, 권위주의적 억압과 대중들에 대한 통제와 감시를 정당화하는 스탈린 식 일당 독재 체제를 합리화하며 결국 그들이 말하는 주체사상으로 생명, 인권, 정의와 같은 ‘이념을 떠난 근본적인 가치’들을 외면했기 때문이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는 것처럼 ‘사악한 빨갱이들’이라고 생각해서는 아닙니다. 전 북한 지배층이 좌파라거나 사회주의라거나 하는 것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오히려 그 이상을 모독하고 있다고 봅니다.
문제 자체는 단순합니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반공’을 국시로 내건 이승만 정권 이래로 내내 ‘북한 체제는 사악한 것이다’->‘북한 체제는 정치적으로 사회주의, 경제적으로 공산주의다’->‘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사상은 자유민주주의에 어긋나는 사악하고도 불합리한 것이다’라는 위정자들의 선전에 지배당해왔고, 그로 인해 진보와 보수, 좌익과 우익의 개념 자체가 왜곡되어 일반에 전파되어 있는 실정이며 저는 그러한 혼란의 와중에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본 결과 좌파를 스스로의 정치적 정체성으로 삼았습니다. 저는 자신이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음을 인정하며, 언제든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라고 말씀하시면서 정작 스스로는 ‘좌파 사상은 사악한 것’이라는 식의 7~80년대 군사정권 시절의 테제를 그대로 반복해서 주장하고 계십니다.
세 번째는 지난 주에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지금처럼 살면 인생의 패배자 밖에 못 된다, 노력하면 누구나 승자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겁니다. 경쟁 체제는 그 정의 상 본질적으로 ‘승자’는 소수이며 ‘패자’는 다수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출발선의 위치 자체가 너무 현격히 차이가 나면 그 가능성은 더욱 줄어들며, 한국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은 이미 견고해져가고 있습니다. 교수님이 젊으셨던 시절에는 그것이 비교적 용이했을지 몰라도 부와 권력의 자손 승계가 느리지만 확실하게 합리화, 합법화되어 가고 있는 현재에 이르러서는 아닙니다. 그러한 노력이 계층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한 원동력이 된다는 점에 있어서는 이견이 없습니다만, 승자는 패자가 있기에-즉 자신이 경쟁에서 따돌린 패자들의 시체를 발 아래 딛고 있기에 그 ‘승리’를 손에 잡을 수 있는 겁니다. 교수님께선 기업의 사회 환원이나 자선 활동 등이 무한 경쟁의 폐해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여기시는 듯합니다. 그것도 어느 정도까지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존재할 수밖에 없는, 그리고 언제나 승자보다 많을 수밖에 없는 패자들은 바로 그것 때문에 스스로 발전하고 향상될 기회를 얻지 못하고서 늘 승자가 관대하게 베푸는 자비에만 의존해야 하게 될 겁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철학자 에리히 프롬이 말했던 것처럼 삶의 목적은 고통과 희망으로 가득 차 있는 삶 그 자체를 누리는 것이지 승리하고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이것은 교수님과 저의 관점 차이로 여기도록 하겠습니다.
끝으로, 가장 제가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유성 기업 자동차 노조의 파업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교수님은 그 사람들도 계속 야근하려면 힘들기야 하겠지만 그 직장도 없어서 고생하는 실업자들이 한 둘이 아니다, 당장 학생들도 취직 고민이 많은데 보기에 좀 그렇지 않냐, 그런 파업은 국익에 위배된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교수님께 묻고 싶습니다. 무엇을 위한 국익입니까? 국가는 그 자체로 신성하고 존엄한 권위가 아니며, 국민 대다수를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나 기업은 이익을 내는 게 존재 의의이고, 거기에 노동 강도나 작업 환경 등의 문제는 가장 효율적으로 이익을 내야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부차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구 소련의 국가에 의한 직접적인 시장 통제와 같은 방법이 먹힐 거라고는 저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업에 도덕관념을 요구하는 대신 그 존재 의의에 따라서 이익을 위해 움직이라고 하고, 법과 시스템을 통해 그러한 기업을 견제하고 가능한 모든 국민들의, 불가능하다면 최대한 많은 국민들의 복리 증진을 위해 움직이는 게 국가의 역할이죠. 그러나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 지상에 오르내리는 정경 유착과 기업인들의 탈세, 중소기업에 대한 폭리, 노조 탄압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무엇을 위한 국익입니까? 나라를 위해서 희생해야 한다는 겁니까? 나아질 거라는 전망도 없는데 대체 언제까지? 그런 걸 두고 파시즘이라고 부릅니다.
결정적으로,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너희도 취직 때문에 고민이 많을텐데 고액 연봉을 받는 노동자들이 파업하는 게 보기 좋냐’는 투로 말씀하셨습니다(그런 의도가 아니셨다면 죄송합니다만 맥락 상 저는 그렇게밖에는 해석이 안 되더군요). 이번 파업은, 합법적인 과정을 거쳐 시행됐습니다. 교수님도 인정하셨다시피 파업 노동자들이 죽창과 쇠파이프를 휘두르지도 않았고요. 정당한 이유에 따라 합법적으로 실시된 파업을 공권력으로 억누르는 처사는 그 실체조차 불명확한 ‘국익’으로 합리화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교수님은 ‘무엇이 옳은 것인가’ ‘무엇이 정의인가’를 말씀하시는 대신, ‘당장 취직을 하지 못해 힘든 입장에서 고액 연봉 받는 노동자들의 파업이 어떻게 보이냐’라는 ‘이익’을 말씀하셨습니다. 교수님 자신은 자각이 없으셨을지 몰라도, 교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심으로써 학생들이 ‘정의’를 고민하게 하는 대신 이기심에 더 이끌리도록 종용하신 셈입니다. 저 자신도 완벽하게 도덕적이고 고결한 인간과는 거리가 멉니다. 저도 이기심이 있고, 시기심이 있고, 냉담함이 있습니다. 가끔은 거기에 휘둘릴 때도 있고, 그로 인해 후회하게 될 일을 저지른 적이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가능한 자주 스스로를 돌아보고, ‘무엇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 무엇이 드높고 명예로운 것인가에 대해서 자문해 보곤 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저 자신에게 긍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 다른 학생들 역시도 그러한 자문을 해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교수님은 학생들이 스스로 그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조차 빼앗으려고 하셨습니다. 그게 교수님의 본의는 아닐지라도요.
제가 어리고 철없는 이상주의자로 보일 것은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럴 겁니다. 어린 시절, 쌀 살 돈이 없어서 뒷산에 올라가 약숫물과 진달래 꽃잎, 산딸기로 배를 채워야 했던 가난을 겪어봤으면서도 ‘정신 못 차리고 세상모르는 소리만 하는’ ‘책상머리 앞에 앉아 책만 줄창 읽었을 뿐 현실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으로 여겨지실 겁니다. 시간이 좀 더 흐르고, 비정규직이라도 좋다는 심정으로 수 십장의 이력서를 써서 어디에라도 취직하고, 나이가 더 들고 나면 저도 역시 어떤 식으로건, 어느 정도로건 탐욕과 이기심을 정당화하고 남들도 다 그렇다- 산다는 게 원래 그렇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니, 아마도 그렇게 될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직 20대인 지금은 도저히 그렇게 못 하겠습니다.
어차피 학기가 끝날 때까지는 별로 남지 않았습니다만, 저는 더 이상 이 수업을 듣지 않을 생각입니다. 아니, 거부합니다. 교수님은 한심하다고 여기실지도 모르고, 이 수업을 같이 듣는 학우들은 허세라고만 여길지도 모르는 저의 그 긍지를 위해.
학우 여러분들께도 한 말씀 드립니다. 제 생각을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저처럼 수업을 거부하라고도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틀렸을 수도 있는 겁니다. 하지만 ‘무엇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한번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너무 무례하다고 여겨지신다면 죄송합니다 교수님. 하지만 저는 더 이상 이와 관련해 교수님께 드릴 말씀도, 들을 이야기도 없을 것 같습니다.
불손하게 보일 수 있는 글을 드리는 것, 재차 죄송하다는 말씀 올립니다. 건강하십시오.
2011. 6. 2. 올림.
목요일이다. 참다 못해 결국 그 교수에게 '빡쳐서 도저히 님 수업 못 듣겠음 수업 거부할거임ㅇㅇ'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써서는 주려고 했는데 아침에 가보니 아직 안 왔길래... 그냥 책상에 올려놓고서는 몇 부 더 뽑아온 걸 같이 수업 듣는 학생들에게 생각 있으면 돌아가며 한번씩 읽어보라고 하고서는 나눠줬다.
그 교수가 저 편지 한 장 읽고서 스스로의 사고방식을 고칠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같이 수업 듣던 학생들도 저거 읽어보고서 무언가 영향을 받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그런 알량하고 순진하기 짝이 없는 기대를 가질 만한 시기는 지났다. 교수는 그냥 '얘가 좌빨이구나' 내지 '건방진 새퀴' 해버리고는 F를 띄울 가능성이 높고, 다른 학생들도 대충 읽어보는 둥 마는 둥 하고 '아 ㅅㅂ 조낸 잘난 척하네 어쩌라고'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내가 손해볼 건 없다. 어차피 이 수업에서 배울 수 있는 게 오직 그 교수만 알고 있는 특별하고 독보적인 지식인 것도 아니고, 책 좀 읽고 뉴스만 꼬박꼬박 챙겨봐도 익힐 수 있는 수준이다. 그리고 그 정도 지식은 이미 가지고 있다. F가 뜰 게 거의 확실한 학점은 좀 문제긴 한데, 그래봤자 교양이고 이번 학기에 듣는 교양은 그것 말고도 많다. 학점 포기 하고서 다음 학기에 교양 하나 더 들으면 된다. 그래도 교수인데 너무 무례했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한데... 이건 좀 마음에 걸리지만 뭐 어쩔 수 없다. 단지 교수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아무 말도 않고 그걸 계속 듣고 있기에는 내 정신 건강에 미치는 해약이 너무 심각하다.
내가 좌파인 진짜 이유는, 그 좌파로서의 이상이 정말로 실현될 것이라고 믿어서가 아니라 다만 눈 앞의 현실에 굴복하지 않은 채 불가능한 것을 끊임없이 꿈꾼다는 자기만족을 위해서일 뿐이다. 나의 그러한 에고만 충족된다면 사실 굳이 '정치적 지향점으로서의 좌익'이라는 정체성을 택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나는 이념을 떠나서, 진정으로 순수하고 고귀한 인간은 되지 못할 것이다. 그 이상을 믿으며 타자와 연대하는 게 아니라, 다만 나의 그 에고만을 충족시킬 수 있다면 거기서 만족하는, 그런 인간에 불과하다.
....그래서 원래 교수한테만 쓸 생각이었는데, 나 자신도 확실히 특정할 수 없는 어떤 충동 때문에 여러 장 뽑아서 다른 학생들에게도 나눠줬다. 돌아오며 속으로 자문했다. 어차피 이 수업을 듣는 40여 명의 학생들 중에 이 편지에서 내가 쓴 내용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가능성은 결코 높지 않은데 나는 왜 공연히 돈 들이고 종이 낭비해 가며 여러 장을 뽑아간 걸까.
아마도 중2돋는 허세일 거다. 나는 내가 저 편지에서 틀린 이야기를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남들이 그걸 알아줄 거라고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나는 사람을 너무나도 믿지 못한다. 게다가 나 자신이 그렇게까지 정의롭고 고결한 인간일 리도 없다.
의식적으로는 '내 에고만을 만족시키면 되니까 남들이 다들 절망하고 포기해 버리건 말건 나는 저항을 계속할 거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내 안 깊은 곳에서는 남들에게 인정 받고, 그 가운데서 돋보이고 싶다는 욕구가 남아 있는 모양이다. 내가 다른 학생들에게도 저 편지를 나눠준 건 아마도 그런 이유... 일 거다.